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아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시 81:5-6)
녹취자: 박은희B
여기에서 “애굽 땅을 치러 나아가시던 때에”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시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바로가 그렇게 쉽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전무후무한 열 가지의 재앙을 애굽에 내리십니다. 피, 개구리, 이,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하면서 이어지는 열 가지 대 재앙을 이제 애굽땅에 내리시면서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녹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게 됩니다. 바로는 이 엄청난 노동력을 잃기 싫었기 때문에 끝까지 붙잡고 싶었지만 신하와 백성들의 피해가 너무 크니까 신하들의 간청을 듣고 이스라엘백성을 놓아주게 됩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위한 용사가 되었다”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그래서 마치 전쟁이 일어나서 자국의 포로들이 적국에게 붙잡혔을 때에 아군이 응원군을 이끌고 공격을 해서 그 포로를 구출해 오듯이 하나님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포로 구출을 하는 전쟁에서의 용사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치러 나아가시던 때에” 이게 결국은 전쟁의 문맥입니다. 그래서 열 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이 커다란 이적을 일으키시면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때에 이제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증거로 세웠도다”라고 하는 것이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여 가나안땅을 주겠다라고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는데 백성들이 쉽게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열대재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지 않는 바로와 애굽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그 모든 심판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약 430년 만에 이들이 애굽에서 나오게 되는 건데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앎을, 지식을 허락해주셔서 그 하나님에 대한 지식 때문에 심령의 부흥이 일어나게 하시는 것이 이 바로 증거였습니다. 증거.
그럼 “요셉의 족속”이라는 것은 뭐냐? 이것은 애굽 땅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칭입니다. 왜 그 애칭이 되었을까요? 요셉이 제일 먼저 애굽에 팔려가잖습니까? 그래서 애굽에서 먼저 자리를 잡습니다. 국무총리가 되어서. 그래서 자기 가족들을 모두 데려옵니다. 이게 이제 70명, 거기에 이미 요셉이 가 있어서 거기서 생산해낸 아이들까지 모두 하면 약 75명 되는 사람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거대한 민족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육신의 혈육이 아니라 애굽 땅을 기준으로 보면 그 사람들이 모두 요셉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혈통적으로는 거기에 형들이 다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이 결국 요셉의 그늘 아래로 들어와서 보호를 받으면서 커다란 민족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든지 “요셉의 족속”이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이라는 이런 표현과 같이 그렇게 흔한 표현은 아닙니다. 그러나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킬 때에 “요셉의 족속”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또 요셉에게는 번영이 약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족속”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족속이라는 말은 안 나오지만 “요셉 중에 증거로 세우셨도다” 그래서 이름을 나라나 민족에 한 제유법적인 표현으로 그래서 어느 한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말하는 그런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이 구약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들 중에 하나님이 증거로 세우셨도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시며 조상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사 우리를 찾아오시고 애굽에서 탈출시켜 가나안을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그런 증거입니다.
그 “증거로 세우셨도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제 말합니다. “거기에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그러니까 거기서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다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을 보고 지금 하나님 앞에 내가 깨달았다라는 뜻도 되겠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애굽을 열 가지 재앙으로 치러 나아가실 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전자로 보면 그 역사적인 기록에서 “자기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시인 자신의 깨달음이었다면 그러면 그것은 “이르시되” 라고 하는 그 뒤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은 이 시를 쓰고 있는 시인자신이 들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풍부하게 성경이 아직 완성되기 전이니까 계시를 풍부하게 받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어떤 말씀이 있었겠죠.
두 번째는 여기에 나와 있는 이 뒤에 이어지는 이 말씀이 시인이 들은 말씀이라기보다는 이미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지금 정리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라는 이 의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그 놀라운 역사의 전개의 과정이 기록된 성경 속에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던 말씀을 알게 되었나니 혹은 형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그 말씀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내가 그 진정한 의미, 중요성들을 파악하게 되었나니 그런 뜻입니다.
두 번째 해석을 저는 훨씬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뒤에 나오는 이 모든 내용들이 이미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에서 하나님이 건져내실 때, 건져내서 가나안땅에 들어가시기까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면서 주신 말씀들을 여기저기서 모아놓은 내용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제 그 주신 그 말씀들을 말씀을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말하는 것이 그것이 적합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특별히 이 시인이 강조하는 것은 6절 7절입니다. 6절 7절의 내용이 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내려오셨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 부르짖음이라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경건하고 간절한 기도라기보다는 당신이 언약을 맺어 친 백성을 삼으신 이스라엘이 받는 고통 때문에 울부짖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때로는 경건한 사람의 기도만을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너무 고통을 받고 신음하면 하나님이 그 정의의 차원에서라도 간섭하셔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하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를 통치하시는 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자, 어쨌든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해방입니다. 이것은. 여기에 짐, 광주리 이것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혹독한 노역에 종사하면서 노동력을 착취당했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애굽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 광주리를 들고 종살이를 했는데 그것을 벗기고 놓게 하였도다 이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주시는 해방의 선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거운 돌짐, 흙짐을 졌습니다. 그리고 손에는 무거운 광주리를 들고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섬겼습니다. 겨우 먹고 사는 것 이외에 아무 미래나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이들을 해방시켜 주시겠다고 선언하고 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주 놀랍고 커다란 희망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을 어떤 짐을 지고 계십니까? 그리고 어떤 광주리를 들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그 짐을 벗기고 광주리를 놓는 해방을 허락하셔서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자유를 주시고 그래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언약 백성으로 승리하며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