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운 구원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시 85:9)
녹취자: 김명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셨는데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시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고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것을 회상하면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불순종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어려움가운데 두셨지만 영원히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주님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그러면서 탄원하는 가운데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그러면서 그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구절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그의 구원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다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그들이 어려움 가운데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그런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깝다.” 무슨 뜻이냐면 결국 불순종, 죄, 하나님을 향한 반역, 이 모든 것들은 결국은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마음으로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그럴 수가 없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고통가운데 있으면 얼른 이 고통에서 벗어나서 행복한 상태에 도달하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하나님은 그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불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자만심과 거짓된 마음으로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한번 보아라. 그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멀리 떠남으로 네가 정말 행복해질 수 있었느냐?” 하나님이 반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동물은 고통을 받아도 반성 할 줄을 모릅니다. 어느 정도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예전에 하던 것들에 대해 학습효과를 얻을지는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반성,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고통을 받을 때 그 의미를 물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거기에서 인간다운 삶이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신앙이 없을 때에는 그 고통에 대한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해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미움, 증오, 좌절, 원망, 이런 것들이 차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만나는 다양한 고통들의 의미를 묻고 그 의미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깊이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고통과 시련에 대한 것들을 극복하면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을 아는 깊이만큼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의 인생을 기름지게 한다고 하는데, 땅을 생각해 봅시다. 땅에 쓰레기를 묻으면 땅의 지력이 그것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묻혀진 오물들은 그것을 땅이 썪히고 분해하면서 아주 비옥한 땅을 만듭니다. 거기에 이바지 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런데 땅이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버리게 되면 그 쓰레기들이 땅을 망쳐버립니다. 아무것도 심을 수 없는 그런 척박한 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신앙은 지력과 같아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경건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풍성하게 되면, 적당한 고통이 들어와도 그것들을 소화해 내면서 그것들의 의미를 물으면서 아프지만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비옥하게 합니다. 성경에서 정말 높은 수준의 신앙의 삶을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그 들 중 아무도 고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고난과 시련이 있었고 모든 아픔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시련과 고통, 아픔, 이런 것들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은 아주 비옥한 인생에 대한 생각, 삶을 헤쳐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면 주님을 아는 지식의 깊이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구원이 가깝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시련을 당하면 제일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시려고 하는구나. 그 동안에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고 교만하게 살았었는데 이제 하나님이 나를 고치시려고 하는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향한 경건을 회복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런 모든 과정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우리가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으로 떨어지게 했던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셔서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영광이 우리의 땅에 머무를 것입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영광이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영광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살아가게 하는 효과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저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구나 저 백성들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백성이구나.’ 이런 것들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 영광입니다. 이런 영광이 우리의 땅에 머무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든 부패와 타락은 이 영광을 하나님이 지정하신 곳에서 찾지 않고 다른 곳에서 찾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곳에서 찾는 것입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님 때문에 존귀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는 그런 종류의 영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불순종하면 자기 영광을 추구하게 됩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면서 결국 그는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시고 거기에 세워주신 하나님의 계획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세상의 헛된 영광을 추구하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면서 드러낼 영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 밖에서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 하나님 밖에서 영광을 얻어 보려고 하는 것, 거기에서 모든 신앙의 타락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어그러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회개라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영광을 추구하던 것으로부터 돌이키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귀해진 것으로부터 돌이키는 것, 그런 것이 회개이고 그것이 신앙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진정한 행복은 주님과 함께 동행 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 한해 우리가 살 동안에 주님을 늘 경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주님이 그런 자리에 세워주시면 그런 영광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분투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