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시 86:8)
녹취자: 조은경
환란 때에 주님 앞에 기도하면 주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한 다음에 시인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리고 그의 능력에 대해서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를 하던 애굽이나 가나안에 정착한 다음에 그 땅이나 모두 할 것 없이 신들의 천지인 세상이었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아서 떠나야했던 갈대아 우르까지도 신들의 천지인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신들의 천지였기 때문에 다신교시대였습니다. 그런 신들이 천지인 시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신앙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 위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들이 너무 많으니까 하나님도 이 많은 신들 중에 하나이거니, 그리고 그 신들은 신실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려내는 신들이라고 하는 것은 능력이 있지만, 그래서 인간 같은 것들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관성도 없고 그래서 수시로 심통을 부리고 무엇인가 인간들로 하여금 자기를 섬기도록 계속해서 못살게 굴고 무언가 늘 굶주려서 무엇을 먹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몰려다니는 귀신과 같은 그런 존재들이라고 사람들은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많은 신들을 인정하고 섬기는 문화 속에 살면서 인간도 역시 그렇게 하나님을 생각하기 쉬운 그런 환경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을 보존하면서 사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크고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수시로 하나님의 존재 그리고 하나님이 성품을 찬송하면서 그 하나님이 우리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다신교 사회에서의 신과는 비교될 수 없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시인의 찬송을 통해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는 신들 중에 여호와 같은 자가 없습니다. 이거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즉 하나님은 존재에 있어서 모든 피조물들은 물론 이거니와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신 그런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상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싫어했고 미워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면 결국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만들면 그것은 이 땅에 있는 물질들을 가지고 형상으로 만드는 것일 텐데, 그리고 그것을 향해 경배하게 되는데 하나님께 그것은 중대한 모독이라고 본 것입니다.
어제 잠깐 나눴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배반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그 만든 상을 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를 불러 일으키느냐하면 인간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물의 배후를 꿰뚫어보기 보다는 처음의 시작은 그렇게 했어도 사물에게서 자기 생각이 멈추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만들어 놓으면 그 우상너머에 있는 그 우상을 만든 것을 통해서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관상하는 그런 것들을 발견하고 인식하기보다는 오히려 편안하게 그런 모든 것들을 접고 우상 그 자체에 영험한 힘이 있다거나 혹은 우상 그 자체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고자 하는 그런 당신에 관한 사실들이 담겨있다고 생각하기가 십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상을 만드는 것 자체를, 목적이 무엇이든지간에 만드는 것 자체를 하나님은 아주 엄격히 금하셨고 미워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제 시인이 말하는 바는 “신들 중 주와 같은 자가 없습니다.” 이게 무슨뜻이냐 하면 상대적인 비교가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한 인정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펫셀' 이라고 그랬는데 그게 결국은 헛된 것 그런 뜻입니다. 의미가 없다 이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와 만물들 영적인 사물들까지 지으셨고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시라고 하면 하나님은 한분밖에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그런 존재가 둘이나 셋이 된다고 하면 필연적으로 그 둘이나 셋이 서로를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절대적인 하나님은 오직 한분밖에는 존재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게 그런 의미입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며” ‘많은 신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님이 제일 뛰어나십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참 신이 없습니다. 신은 사실은 신이 아닙니다.’ 그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들이 흔히 귀신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신이 아닙니다. 신이라는 이름은 썼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생각하며 신이라고 할 때에 그 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 소위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신들이 하나님의 처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다투고 하나님과 투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고 언제든지 심판받고 쓸려져 나갈 수 있는 존재들 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그것들을 하나님이 놔두셔서 이것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이 세상에 이루어 가는데 사용하시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을 확고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땅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해 내실 때에 그 유명한 애굽의 10대 재앙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하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땅에 살면서 깊이 받아들이고 젖어왔던 그 위대한 애굽의 나라를 건설하고 움직였던 그 놀라운 능력 뒤에 있는 신들에 대한 생각을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어 그것들을 처단하고 심판함으로써 이 세상에 어떠한 신도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아래 있다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셔서 궁극적으로 신은 하나님 여호와 한분이시라는 사실을 심어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신앙은 이렇게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시며 나머지 모든 것들은 그 하나님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아래 있다라고 하는 것은 확고하게 믿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찬송입니다. 여기에서 주와 같이 행하는 일이 없나이다. 하는 것을 보면 성경본문의 뒤쪽에 보면 하나님의 위대한 힘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도를 앞으로 돌리면 그 앞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하심과 자비를 노래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높고 뛰어나심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악한 이방민족들에게 적용될 때에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지만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당신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향하실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한없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인류를 미워하고 어떤 인류를 사랑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시지만 특별히 함께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이 매우 특별하고 탁월하다는 것을 시편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향한 찬송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만물과 온 세계위에 뛰어나신 존재인 유일하신 신이라는 사실과 그리고 하나님이 그 큰 능력으로 이 세상을 우주를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 그리고 당신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하면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 성품을 묵상하면서 거기로부터 우리의 현실을 헤쳐나 갈수 있는 거룩한 힘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부르심 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이 하나님을 섬기고 찬송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