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민족의 경배를 받으심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시 86:9)
녹취자: 정유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선교적으로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를 이 시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을 구원해주시고 또 그들이 죄가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그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들이 부르짖을 때에 다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여주시는데 이러한 모든 일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들 중에는 주와 같은 자가 없으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라는 커다란 각성이 생겨나서 유일신 신앙을 굳게 하게 되는데 한편 이스라엘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시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를 경험하면서 그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아브라함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이방민족들이었지만 하나님의 그 크고 위대한 일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아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에 라합과 같은 여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외에도 이스라엘에 전개되는 역사의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됩니다. 가나안 정복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가나안 사람들을 정복하고 그들을 축출하고 쫓아내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이적들은 하나님의 그 큰 권능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위에 베푸시는 그 큰 능력이 얼마나 이방사람들에게 선교적으로 커다란 감화를 주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의 영웅인 ‘갈렙’ 이라고 하는 사람도 이스라엘이 정복했던 가나안의 원주민의 후손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지 않지만 결국 뭘 보여 주냐 하면 그 이스라엘 지도자의 조상도 결국은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그 믿음을 공유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결국 마지막에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전파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는 그런 보편적인 구원의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복음이 전파되고 모든 민족, 나라 그리고 문화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을 믿을 기회가 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표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들에게는 선교적인 지평이 우주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고 그 빛 아래로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도 보면 ‘율법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그 얘기는 이스라엘 나라의 성소로서의 시온 예루살렘 이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율법이 나와서 온 세계에 두루 퍼져서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빛 아래로 들어오게 될 새로운 그리스도의 왕국의 도래를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그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은 전적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우주적인 확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전 세계적인 전망들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시인은 덧붙이기를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지식을 알리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결국은 하나의 씨앗입니다. 씨앗은 씨앗을 내기 위해서 씨앗을 심은 것이 아니라 씨앗을 포함하고 있는 열매를 내기 위해서 그 과일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씨앗을 심었지만 맺히는 것은 수많은 씨앗이 아니라 씨앗을 포함하고 있는 열매들이 두루두루 맺히는 것입니다. 사과 씨를 심으면 사과나무가 나오고 그 나무에서 사과가 달립니다. 사과 씨가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사과가 매달립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아는 지식을 주셨고 그들을 다루심으로써 특별히 하나님의 존재와 그 성품을 이 세상에 드러내시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그 민족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선교적으로 가져야 할 중요한 마인드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지하거나 혹은 신의 존재를 거부하거나 심지어는 이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저 사람들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오류와 무지, 그들의 잘못된 비 진리에 대해서는 치를 떨어도 그들도 역시 그 무지와 오류의 피해자들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마땅히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사랑의 마음입니다. 오늘 이 시인은 바로 그런 여망을 가지고 ‘이 모든 민족이 결국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백성들입니다’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경고하고 난 후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할 때에 56장에 와서 교회에 대해 말하기를 내 집은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결국은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고 그 교회는 이 땅의 모든 민족을 위해 부르짖는 기도의 집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의 앞에 경배하며’. 시인의 간절한 바람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실하게 대해주셔서 그들을 구원해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셨으니 이것을 통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주님을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가 불신자들과 아무리 논쟁을 해서 이겼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신앙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경배를 이끌어내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경배를 받으실 때 그렇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의 마음과 삶이 주님을 향해 질서지어지고 그래서 주님을 향해서 올바르고 진실한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바라시고 원하시는 바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모든 민족이 주님 앞에 경배하는 그 날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그리고 이스라엘의 껍질을 깨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교의 목표는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이유는 바로 이 모든 세상의 민족들이 하나님 앞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경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사는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선교하고 여기 살아있는 것이고 이웃에게 바라는 그것이 우리의 삶과 공동체 속에서 실현되도록 이바지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삶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방면에서 주님이 경배를 받으시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예와 같은 부득이함,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주님을 경배하고 섬기며 사는 우리의 삶이 기쁨에 넘치는 행복한 생활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한 많은 금욕, 의무 이런 짐들을 지고 있지만 그러나 이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사는 나보다는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저들 속에는 진정한 안식이 있구나, 내가 저 가벼운 의무를 행하더라도 저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고 하는 그 무엇이 사람들 속에 싹트도록 만드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선교적인 의무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열렬히 갈망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삶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큰 은혜와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울해지고 불행해지고 예수님을 믿으면서 행복해지지 않는 것이 반드시 고난과 시련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꿈꾸지 않아야 할 욕망의 크기를 키우게 되면 자신의 삶이 매우 불만족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욕망을 한없이 커지도록 내버려두고 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는 그가 하나님께 헌신할 수 없고 자신을 경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예화) 제가 지난해에 퇴계 이황이 쓴 <성학십도>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선조 임금이 직위할 때에 낙향해 있던 유교의 대가가 ‘왕은 이렇게 공부하시면서 나라를 다스리십시오’ 라고 서간을 해서 올렸습니다. 그림까지 그려서 올렸습니다.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내용 전체의 주제는 경건과 학문입니다. 어떻게 경건하게 살아야 하며 -물론 하나님 없는 경건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며 어떻게 학문에 정진해야 되는가 입니다. 그렇게 욕망이 이끄는 대로의 삶을 살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던 시대의 사람들도 학문을 진지하게 탐구하며 인간의 도리를 깨닫는 생활과 욕망을 따라 사는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조선시대 때에는 사치하고 방탕한 고위층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본받을 점이 많은 겁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주님이 주시는 것들로 만족해하며 행복하게 살 때 그 안에서 진정한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이스라엘은 고등학교 역사책에 옛날에 두 줄 나오던 나라이고 세계역사에서는 아주 하찮은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주님께 돌릴 영광은 이 세계 전체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위한 불쏘시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민족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 세상 하나님이 창조하신 어느 영역 하나도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으신 곳이 없고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면 안 되는 영역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반란 때문에 그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반역과 도전이 종식되고 모든 나라들 속에 우리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이름을 높이는 진실한 세상이 오게 되도록 그런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크고 작은 주의 일에 봉사하면서 우리가 그를 위해 희생하면서 일생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오늘 하루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까? 나 같은 죄인을 사용하셔서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이 온 세상에 알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모든 일은 우리에게 가슴 벅찬 일이고 주님이 우리로 하여금 이 일을 위해 살게 하신 것은 노예처럼 그 일을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주님을 향하여 살 때 우리도 가장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거기로 부르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