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함께한 사람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몬 1:23-24)
녹취자 : 장주은
사도바울의 서신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편지 끝에 여러 동역자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수신자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고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전하기도 하면서 편지를 끝내는 방식입니다. 여기서도 많지는 않지만 에바브라,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 이런 사람들에 대한 문안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라는 줄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아서 옥에 갇힌 사도바울과 함께 그 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여기에 나오는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 이런 사람들은 이미 성경에서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이고 누가는 누가복음을 기록한 그 누가가 맞는 것 같습니다. 데마는 디모데후서에 보면 이 사람은 세상을 사랑해서 사도바울을 버리고 간 사람으로 나옵니다. 어쨌든 이런 등등의 사람들이 빌레몬서에서는 동역자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저 간단한 사람들의 네 사람의 명단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복음적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이 사람들의 모든 연합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3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라고 나와있습니다. 에바브라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동역자이고 마가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와 같은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동역자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가 없겠지요. 그러니까 이 모든 동역의 관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규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에서 어떤 일치하는 삶에 대해서 사랑의 일치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하고 우리들이 노력을 해야 될 부분이긴 하지만 그러나 사실 그리스도인의 일치라고 하는 것은 각자 서로 사람들이 모여서 일치를 이루자고 이야기함으로서 이루어지는 그런 일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사랑은 그리스도인 각자가 진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그리스도께 하나 된 합치의 삶을 살면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그리스도를 각자 깊이 만나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됨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의 일치와 사랑입니다.
비유를 들어봅시다. 산이 있다고 칩시다. 워낙 큰 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각자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한쪽 사람은 북쪽 능선에서 또 한 사람은 남쪽 능선에서 또 다른 사람은 동쪽, 또 다른 사람은 서쪽 능선에서 각자 등산을 시도합니다. 그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자기만의 독특한 삶의 상황과 연결이 되어서 주님을 믿게 되고 올라오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각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면서 올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에서 모두 만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그분을 사랑하게 될 때 자기와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외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선포가 되고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때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랑과 일치를 도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첫 번째 우리가 배운 것이지만,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분신으로 살아가는 데는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동역자들과 함께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도 보면 사도바울은 물론이거니와 에바브라,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 이런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에바브라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나 등장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혼자 믿는 종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맨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를 말미암아 한 몸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또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의 놀라운 은혜에도 공동체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성경의 은택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진리의 말씀도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주신 것이고 그래서 교회를 통해 그 진리의 말씀을 배움으로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협력하여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 우리는 혼자서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사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며 살아가는 방법들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자체가 사회적인 동물이고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인간과 함께 살면서 자기를 완성하고 공동체를 완성하고 인류를 완성해 나가게끔 되어있고 행복은 바로 그런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지평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사는 이치입니다. 그런 것들을 인류가 어디서 배웠을까요? 바로 하나님이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이후로부터 그 모든 사람들 속에 그렇게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들을 터득하게 하셨고 그런 것들을 이 세상 사람들도 배워서 혼자서 살지 못하고 공동체를 이루면서 인생을 영위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삶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함께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들을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성도들의 연합은 참 인간이 되고자 하는 사람, 참 인간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당신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바이기도 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의 연합의 속에는 항상 완벽한 것이 아니라 뭔가 모자라는 것 같은 사람들이 끼어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데마, 라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결말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디모데후서에서 이 사람은 세상을 사랑해서 사도바울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떠난 그 사람이 다시 돌아왔는지 어쨌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이렇게 사도바울의 동역자가 되기까지 그 사람은 주님을 깊이 만나고 마음의 결심한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주님을 떠난 사람이 되었고 사도바울도 이 사람에 의해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가장 어려운 때에. 그러면서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불변하지만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늘 변하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을 향한 사랑은 언제나 뜨겁게 사랑할 때가 있는가하면 식을 때가 있고 좋아할 때가 있는가하면 싫어할 때가 있고, 연합하여 함께 수고하는 때가 있는가하면 배신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많은 점들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자신의 구원이 불변하고 영원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며 사는 것은 좋지만 그 확신이 더욱 기쁨으로 주님을 붙들며 사는 삶이 되게 해야지, 그 확신 때문에 자신을 향한 경계를 잊어버리고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확신하면서도 마음으로 항상 자신의 이 구원을 자신의 일생동안 하나님 앞에 입증하면서 사는 충실한 언약 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긴장을 여기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오늘 성경에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그것은 비록 이 사람들이 오늘 이 빌레몬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아마 서로 늘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레몬에게 특별히 네다섯 사람을 언급하면서 이들도 문안한다, 라고 말합니다. 당시 문안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또 서로에 대한 소식들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교제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빌레몬과 그의 교우들의 형편이 마가나 아리스다고나 데마, 누가, 에바브라, 이런 사람들에게 사도바울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기도제목이었고 관심사였던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각자 자기 일에 코 박으면서 살기에 바쁜 시대를 지나고 있고 자기일 이외에는 별로 중요한 것이 없고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이런 모습들이 사실 교회에서도 많이 재현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주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사랑은 끊임없이 관심사가 자신에게로 오그라들게 만들지만 주님의 사랑은 관심사가 끊임없이 파문처럼 번져가서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랑하고 세우고 주님 안에서 온전한 자로 만들고 하는 그 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런 그리스도의 교회의 온전케 됨을 위해서 자기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져 간다라는 그런 구도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여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자기를 돌아볼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서 우리 주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해드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