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베푸소서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시 86:16)
녹취자: 원수연
시인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그리고 인자하심을 찬송한 후에 자신에게로 돌이켜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편에 보면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자신에게로 돌이켜 주십사 하는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보면 신앙의 유아기적인 표현이고, 또 좋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 시인의 마음을 움직이시되 후에 이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눈높이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신다고 말하지만 어디든지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향해 돌이켜 떠나시고 우리를 버려두시겠습니까?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외면하는 쪽은 우리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어디서 하나님 없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은 거기 계시고,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은 거기서 우리 자신을 대면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내게로 돌이키소서’라기보다는 자신을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게 해 달라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간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삶의 다양한 사태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돌이키는 도구로 하나님이 사용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원수들이 구름같이 에워싸여 있고 삶의 고단한 시련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나의 원수를 쳐서 멸해주시고 내 육신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님을 시인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새벽 2시에 깨어서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할 자료들을 읽기도 하고 특별히 원고를 들여다보다가 왔습니다. 거기서도 똑같습니다. 이 세상에 불행한 가정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다투고 싸우며 일생을 살고 싶어 하는 남편과 아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삶의 안정을 구합니다. 물질이 모자라면 물질을 조달해서 안정을 찾으려고 하고 남편과의 관계가 깨지면 그 관계를 어떻게 하든지 좋게 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도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을 때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만으로는 사람의 삶을 계속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람으로 창조하신 것은 사람 혼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최고의 아름다움은, 그리고 그 존엄과 가치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영혼보다 아름다운 영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할 때 신자의 마음 안에 있는 간절한 그리움이 무엇입니까? 은혜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그 은혜로서만 이길 수 없는 시련을 이기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데도 용서하고, 자기를 꺾고 자기를 포기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힘은 육체의 완력이 아니라 정신의 힘이고 영혼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달라고 시인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백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노예일 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종의 생명과 삶이 상전에게 달려 있고, 여종의 모든 앞길이 주모의 손에 달린 것처럼 이 시인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고 있는 의존의 심정을 이런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을 하면서 힘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힘입니다. 이 힘이 있으면 그 모든 난관과 시련을 극복해서 자신이 행복할 뿐만 아니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많은 사람들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자녀들을 교육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자녀들에게 이런 정신과 영혼의 힘을 갖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에게 이러한 힘이 공급되는지 그 신비로운 비밀을 신앙의 세계 안에서 터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섬김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합니다.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해 주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시인이 무슨 뜻으로 이 기도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붙였는지 정확하게 그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미력이나마 추론해본다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여겨집니다.
우선 첫째는 ‘주의 여종의 아들’이라는 이 표현이 아마도 언약관계를 토대로 하나님의 은총을 호소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더듬어봅니다. 사실 구약성경에 보면 다윗의 입에서 그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결국은 아마도 그 어머니가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언약관계에 있고 자신이 그 언약관계 속에서 태어났으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이 부족하다면 그 어머니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것, 그래서 자신도 그 언약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면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한 호소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반론을 제기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새의 아들’이라고 그러지 ‘여종의 아들’이라고 그랬겠느냐? 그런 반문을 제기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의 어머니도 아버지와 함께 하나님의 언약관계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었으니 이런 해석이 전혀 불가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보다는 좀 더 올바르지 않을까라고 생각되는 두 번째 해석은 이것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주의 여종의 아들’이라는 것이 시편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표현인 ‘다만 사람일 따름이옵나이다’라고 하는 말의 또 다른 묘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시 말해서 ‘주의 여종의 아들’이라고 하는 이 표현이 나는 그렇게 사람의 몸에서 혹은 다윗이 언젠가 고백했듯이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그렇게 죄와 결별할 수 없는 아주 악하고 또 한편으로는 사람의 몸을 가져서 아주 연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자신이니 ‘하나님이 구원해주시지 않으면 누가 건져 주겠습니까’라는 묘사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더듬어 보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이 시편 86편에 어울리는 해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자기를 에워싼 수많은 대적들이 자기보다 강합니다. 자신으로서는 그 현실을 헤쳐 갈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이 그것들을 극복할 수 없는 어린 아이와 같이 연약하고 또 죄의 성품이 뼛속 깊이 배여 있는, 그래서 오늘 자신이 당하고 있는 시련 중 어떤 것들은 언젠가 자신이 뿌린 그 죄의 씨앗에 대한 열매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안팎으로 연약한 자신이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자기를 건져 주실 분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은 수시로 흔들리고 유동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분이시니 주님이 자신을 붙들어 그 자비하심과 신실하심으로 건져달라는 간절한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한 순간도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고난과 시련, 역경과 슬픔이 있을지라도 우리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없을 때조차도 우리의 인생을 살게 하는 위대한 힘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놀라운 특권은 예전에는 없었던 이런 자원에 우리의 인생을 뿌리박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삶입니다.
주님은 매순간 하나님 의지하며 아버지를 향해 자신의 마음을 모으고 어린 아이처럼 의존하는 모자라는 사람을, 그렇게 하지 않는 넉넉한 사람보다 더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약해 보이는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겸손하게 주님께 엎드려 주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우리의 삶이 어떠한 상황 속에 있든지 주님의 은혜면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읍시다. 우리 주님을 붙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