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기이한 일을 찬양함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 (시 89:5)
녹취자: 백지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자손을, 정확히 말하면 다윗의 자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하고 찬송했습니다. 지난주에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시인의 반응이 나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입니다.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언약관계는 항상 큰 은총으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는 (언약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은총 속으로 들어가는 언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던 언약관계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베풀어 주신 덕, 그것을 찬송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고난을 겪고 또 이방민족들에게 에워싸여서 공격을 당하고 하는 일들을 수없이 겪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히 멸망되지 않고 존속하는 것처럼, 또 그 다윗의 왕위를 대대에 이어지도록 만드시는 그 은총처럼 그렇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범사에 복을 주신 것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그 찬양하는 주체를 “하늘”과 그 다음에 “거룩한 자들의 모임”으로 대조시킵니다. 그러니까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이것과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서 찬양하리이다.”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주의 기이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를 보면서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으로 이 세계를 창조하셨는가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읽어냅니다. 하나님에 관해 모를 때에는 그냥 어느 절대자이고 조물주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올바르게 배우고 난 다음에는 그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가 바로 그것을 지으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음을, 그런 탁월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 존귀와 그 이름을 찬송합니다. 그래서 시편 다른 곳에서 시인은 하늘의 궁창이, 땅이, 그리고 밤이 또 낮이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한다고 찬송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핑계 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증거 받는 재료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놀랍고 위대한 세계, 이 모든 자연적인 것이 하나님 앞에 찬송의 제목이 됩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은 단지 높은 하늘의 별과 달, 자연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역사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나라의 역사까지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정의와 능력으로 이 세계를 다스리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도 무질서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이 나라의 역사를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때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역사에 참여할 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우리의) 찬송제목이 됩니다. 때로는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가 구겨지는 것 같고 잘못되는 것 같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펴셔서 모든 일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그것을 찬송제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찬송의 주체가 하늘입니다. 저의 생각에는 여기에서 말하는 이 하늘이 그냥 물리적인 하늘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라고 해석을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 혹은 천사들의 모임, 바로 그 뒤에 나오는 병행법의 또 다른 찬송의 주체가 성도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모인 성도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하늘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를 보며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노래하고 또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의 권능을 노래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기이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조적으로 하늘에 천사들이 있다면 이 땅에는 거룩한 자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이고, 이스라엘이고,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거룩하다 여김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 성도들은 또 다른 것을 찬양합니다. (성도들은) 주님의 성실을 찬양합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찬양하고 있는 주님의 성실을 찬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땅에 있는 거룩한 성도의 무리가 하나님이 행하신 크고 기이한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찬송제목으로 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조 속에서 나오는 하나님께 거룩함을 입은 자들의 모임에서의 가장 탁월한 찬송제목이 주의 성실하십니다. 성실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하나님 자신이 진실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그 진실을 이 세상에 펼치시기 위해서 나태하거나 태만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기쁘게 그 일을 행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게 성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겉과 속을 따로 의심할 필요가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말을 청산유수처럼 하고 말을 바꿉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벌써 말을 계속 바꾼다고 신문에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말을 하면 그것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저 말 중에 얼마만큼이 거짓말일까? 거짓말은 아니더라고 얼마만큼 저 사람이 그것을 시행할까?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등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그대로 믿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과 달리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을 식언하거나 혹은 약속을 해 놓고 그때에는 기꺼운 마음으로 약속을 했는데 후에는 생각이 달라져 그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너무 귀찮고 맘에 내키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언약을 약속을 폐기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와 불순종으로 모두 멸망을 당했을 때 그 황폐하게 된 예루살렘을 보며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찬양)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다 파괴되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같았으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고통 받을 때에 하나님이 어디에 있었느냐?” 물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황폐하게 부서진 자신의 고국 땅에서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읽어냈습니다. 성실하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내버려두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내 백성이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역사에 개입하십니다. 그게 바로 이방나라의 침입을 받고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기서 껍데기들을 걷어내고 하나님이 아끼시는 새순이 돋게 하셔서 그래서 거기서 남은 자들을 일으켜 세우셔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드실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것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한없는 하나님의 찬송제목이 되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진노하고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열매가 없고 논밭에 소출이 없는 상황이 됐는데, “나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라”고 노래합니다. 바로 거기서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함께 하시고 당신의 성실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시는 분이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나라를 그런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부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 찬양제목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