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하나님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나이다(시 89:11-12)
녹취자: 원수연
하나님이 큰 위엄과 권능으로 세계를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찬송하면서 시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온 세계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근거는 바로 그 하늘과 모든 땅이 주님이 창조하신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즉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에 의해 유지되고 지탱되며, 그분에 의해서 그 모든 것들의 종말이 정해질 것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이렇게 모든 것을 창조하셔서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스르는 대적들에게는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것이 오히려 두려움의 근거가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신뢰하면서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고 그것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만물들을 다스릴 것이고 자신은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바로 하나님의 이 위대하신 권능과 위엄 앞에서 그분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단지 노예적인 두려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함께 하나님께 대한 깊은 공경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에 대한 깊은 두려움 속에서 그분을 공경하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모든 세상만사에 질서가 없는 것 같고 악인들이 처처에서 횡횡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아도 어느 한 순간 깊이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성찰해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 세상에 대한 당신의 통치를 그치지 아니하시고 계속하고 계시다는 믿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그분을 우러르며 살 수 있는 능력과 믿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시인은 11절에서 말한 내용을 12절에서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나이다” 즉 (시인은) 11절에서 하늘과 땅, 이렇게 위, 아래를 가리켰다면 이번에는 남북을 가리키면서 상하좌우, 높은 하늘과 낮은 땅뿐 아니라 북쪽 끝에서 남쪽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계가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의 통치아래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다볼’과 ‘헤르몬’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둘 다 산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고 유명한 산 이름입니다. ‘다볼’은 이스라엘 골짜기를 따라 있는 산이고 ‘헤르몬’은 국경지대에 있는 아주 높은 산입니다. 특히 이 헤르몬산이 중요한 이유는 강수량이 매우 적은 이 나라이지만 비가 오면 그 빗물을 헤르몬산이 흠뻑 머금었다가 그 물을 흘려보냅니다. 물이 매우 귀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헤르몬산 아래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맑고 풍부한 물이 사시사철 흘러넘칩니다. 그래서 시편에 보면 “헤르몬 산에서 시온 산줄기를 타고 굽이굽이 내리는 이슬 같구나” 그러면서 헤르몬산과 관련된 찬송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는 산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산에서 모든 지면에 있는 만물들이 꼭 필요로 하는 물이 한없이 흘러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맥에서 표현을 하자면 그저 ‘백두산에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그런 표현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아무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가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모든 땅이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찬송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이 말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큰 의무는 무엇일까요? 틀림없이 높으신 우리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신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일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의 통치를 인정하면서 사는 것이야말로 신자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무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당신의 백성들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모든 위엄과 영광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송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당신의 능력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보면서 또한 그 능력과 은혜로 우리를 도우실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이 가장 곤고하고 어려운 때에 눈을 들어서 산을 본다고 노래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이며 살아야합니다. 세상에 모든 질서가 흐트러진 것 같고, 하나님의 통치가 사라진 것 같고, 모든 것이 기도하는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길 때 그때마다 하나님이 여전히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으며, 이 모든 세계의 주인이시며, 또한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심을 굳게 신뢰하고 그분을 의지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매우 가까이서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인생을 먼발치에서 바라봄으로, 가까이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하나님이 아무데도 안 계신 것 같지만 좀 떨어진 먼발치에서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면(봄으로써) 그렇게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반항하고 하는 가운데도 주님은 우리의 인생과 세계를 굳게 붙드시고 당신이 원하는 길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입니다. (따라서) 신자의 가장 큰 의무는 모순으로 가득 찬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를 믿음으로 읽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그때에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하루도 이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