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하나님께 기도할 때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시 88:1-2)
녹취자: 원수연
탄원시입니다. 표제에 따르면 ‘고라 자손의 찬송시, 곧 에스라인 헤만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마할랏르안놋에 맞춘 노래’,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고라 자손이 집안에서 보관해 온 시인데 그 시를 지은 사람은 헤만이라는 사람이고, 또 그 시의 내용은 계속 반복해서 읽으면 삶의 지혜를 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이 노래는 원래 성전에서 성가대 지휘자의 인도에 따라서 부르던 노래이고, ‘마할랏르안놋’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곡조인지는 모르지만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가락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병의 노래’라는 가락인데 그 가락에 맞추어서 이 시를 읊으라는 지시사항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표제를 상당히 권위 있게 받아들입니다. 아무튼 그런 노래인데 그 노래의 내용은 구원의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간절히 호소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88편의 내용을 보면 어떤 상황 속에서 이 시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뭔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패배의 기운이 아주 분명해서 이제 뭔가 자신이 스스로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 바꿔놓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아주 힘겹고 어려운 때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이 말하기를 하나님을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이런 모든 삶의 곤경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이 말하는 구원은 오늘날 우리가 종교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구원이라기보다는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용사처럼 자신의 대적과 싸워주시고 자기를 커다란 위기에서 끌어내주시는 그러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이 어려움 속에서 처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야로 주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지금도 기도하고 있지만 이전에도 이러한 삶의 상황을 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고, 부르짖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사는 것이 이 시인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모든 역경과 난관에서 건져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시련과 난관에서 건져주시고 그렇게 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렇게 자기를 구원하시고 도우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 고난 속에 처하기를 좋아하고 시련 속에서 고통 받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우리의 삶 속에서 늘 일어납니다. 그런 일들이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날 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어떻게 깨닫고, 믿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관건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것이 이 곤란중의 위로였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자신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고 주님이 자신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달라는 이 표현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탄원인 동시에 하나님의 증언을 구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자신이 놓여있는 처지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음으로써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주님께 아뢰고, 하나님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시며, 악인과 자신 사이에 있는 이 다툼에 대해서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다는 사상입니다.
사람은 자주 돈을 받고 혹은 압력에 굴복해서 위증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실이 아닌 것을 거짓으로 증거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굴복하시는 분도 아니고 사람에게 뇌물을 받으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아주신다는 것이 위로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인은 악인으로 인해서 받는 큰 고통 속에서 아무데도 의지할 데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주님의 부르짖음에 간절히 귀를 기울일 때 주님께서는 이 기도에 귀를 기울이는 이 시인의 간구에 응답하셔서 그래서 하나님이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해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 시인의 이러한 간절한 기도의 경험은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우리의 생사 간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의지하도록 만드는 계기입니다. 때로는 원인과 이유를 알 수 있게끔 일어나는 일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는 때도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시련과 고통, 방황, 이런 것들을 하나님의 자녀라도 경험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자신이 살아온 많은 날들이 주님의 보호 속에 살아온 날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인도를 통해서 예전의 자신의 많은 인생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붙들어주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 모든 속에서 하나님은 매순간 우리를 붙드시고 도우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도록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인처럼 우리가 어떤 위기와 난관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야합니다. 위기와 어려움이 왔을 때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은 언제나 비굴합니다. 모든 일들은 주님의 손 안에 있고 하나님이 가장 좋은 당신의 뜻대로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고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보면 그런 시련과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그에게 기쁨이 되고 오히려 은혜가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우리 가까이 계셔서 우리를 붙드시고 도우시는 주님이시니 이 주님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