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님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시 89:15)
녹취자: 김경애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가 무엇 때문에 슬퍼하고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지를 알면 됩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이 그 사람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악한 사람도 경우에 따라서는 선한 일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아무 보람이 없으면서도 어떤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사람됨은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리칠 줄 안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즉, 마음속에 어떤 기쁨과 감격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시인은 바로 그 앞 두절에서 어제 우리가 설교에서 들은 바와 같이 하나님의 공의와 그분의 인자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다.’라는 사실이 감격스럽게 가슴속에서 솟구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칠 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행복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복’은 일반적인 복이 아니라 성도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그러면서 그 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하는데 “…주의 얼굴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닌다.’라는 것은 ‘일반적인 삶’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 살아간다.’라는 말은 ‘여호와 앞에서 출입하며’ 라고 표현합니다. 마치 사람이 집을 드나드는 것처럼 이렇게 다니는 것을 가리켜서 인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다닌다는 것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 다니는 자는’, ‘빛 속에 걷는 자는’ 이런 모든 표현들이 ‘인생을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주의 얼굴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라고 할 때, ‘주의 얼굴빛’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혹은 ‘그분의 임재’를 가리키는데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상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주의 얼굴빛을 내게 비추소서.’ ‘하나님은 당신의 얼굴빛을 비추시나이다.’ 와 같은 고백은 하나님과의 친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직시하시는 때가 두 번 있는데 하나는 악인을 벌주시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복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의 최고의 행복은 그분의 얼굴빛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얼굴빛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산상수훈 중 팔복을 가지고 말한다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라는 복입니다. 여덟 개의 복 중 가장 포괄적인 복은 첫 번째인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왜냐하면 애통하는 자에게는 위로를, 온유한 자에게는 땅을 주시지만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는 천국 자체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위로’, ‘땅’,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천국에서 누리는 부분적인 행복들입니다. 이에 비해서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주시는 복은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의 일부이지만 최상의 복이어서 그 복이 없으면 거기가 천국이 될 수 없는 정도의 복입니다. 그 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얼굴빛 안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는 최고의 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복을 사모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의 얼굴빛을 이스라엘에게만 비추시는 것이 아니라 열방에까지 비추셔서 악한 자들을 정리하시고 의로운 자들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온 땅에 두루 펼치시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망을 뒤이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약시대의 시인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기뻐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서 여호와의 얼굴빛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더욱이 이 시인은 구약의 역사를 상세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당신의 얼굴빛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추어 그 위엄과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시던 때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영광의 때가 재연되기를 사모하였던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이러한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얼굴빛에 대한 열망을 오늘 신약시대에는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합니까? 신약시대의 하나님은 당신과의 교제의 친밀함을 무엇을 통해서 주셨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 각사람 속에 임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주셨습니다. 누구도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느낄 자가 없습니다. 사람으로 교회를 가득 채우는 것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사람이 그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교회가 빌어야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부흥을 가리켜서 교회는 사람으로 가득차고,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교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가 사람으로 가득차기를 원하시고 가득 찬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신앙의 마지막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 행복한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빛 안에서 그분과의 말할 수 없는 친교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속박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를 많이 해라.’ ‘기도를 열심히 해라.’ 그렇게 잔소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얼굴빛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원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지나쳐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것이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매순간 당신의 교회가 당신의 자녀들이 이런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가득차서 당신과의 친교 속에서 사는 것 때문에 기쁘고 당신과의 교제 속에서 사는 것 때문에 새 힘을 얻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하루를 이렇게 하나님의 얼굴빛 안에 다님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여러분 자신은 충만한 행복 속에서 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