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며 높아지오니
“그들은 종일 주의 이름 때문에 기뻐하며 주의 공의로 말미암아 높아지오니 주는 그들의 힘의 영광이심이라 우리의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 우리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니이다” (시89:16-18)
녹취자: 김경애
그렇게 마음에 기쁨과 감격을 간직한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시인은 그렇게 기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기쁨’과 ‘높아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마음에 가득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 앞에 외치게 되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람이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마음에 말이 가득한데 그것은 안하고 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언어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언어가 가득 차 있으면 그것은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기도는 기도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언어가 가득차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두 가지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던가, 아니면 삶의 상황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삶의 상황 속에서 느끼는 모든 것이 기도가 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즐거운 모든 일들을 하나님과 연관 지어 의미를 물을 수 있어야합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속에 수많은 언어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언어의 크기만큼 하나님 앞에 오래 기도하게 되고, 그 언어의 강도만큼 깊이 있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이 말합니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내 심사를 통촉하옵소서! 부르짖는 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몸부림, 마음속에서 차오르는 그런 간절한 부르짖음이 언어의 강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늘 간직하며 사는 것이 은혜생활이 되어야지만 가능한 것입니다. 한 사람은 살아온 것만큼만 기도할 수 있고, 또 기도하는 것만큼만 살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살지 않고는 기도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고는 살아낼 수 없습니다. 이 시인은 기쁨 속에서 그런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 때문에 기뻐하고 주님의 공의 때문에 높아집니다. 즉 하나님께서 공평한 의를 행하실 때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높임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주님은 그들의 ‘힘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힘의 영광’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주는 그들의 힘의 영광이시니라” 여기서 ‘영광’이라는 것은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그들이 힘이 많으면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힘을 통해서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힘이 세지고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무엇이 있으면 그것으로써 자만하여 자기를 들어내 보이고 사람들을 지배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그 힘으로 그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정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사람을 향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비상한 힘이 나오고, 그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이 아닐 때 힘이 생기면 그 힘 때문에 타락하게 됩니다. 그 힘 때문에 남을 지배하고 죄를 짓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질서를 짜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결국 모두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그 사람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그 자체가 삶의 모든 방면과 연관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하나를 잘하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말씀 하나를 잘 터득하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전 방위적으로 모든 것이 한 덩어리로 묶여져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하지 않으면 나머지 모든 것들이 설 수 없습니다.
또한 시인은 “공의로 말미암아 높아지오니” 라고 말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은 굽은 사회에서 미운돌입니다. 진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거친 돌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주의 공의로 말미암아 높아지오니”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기쁨의 마음이 가득 차 있으니까 그분의 뜻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직접 다스리십니다. 그때 하나님이 다스리고자하는 통치와 성도가 살고자하는 바가 일치할 때 그는 이 세상에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게 됩니다.
오늘날 정치의 지형도를 보면 참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이전의 정권에서 아나운서들이나 사회 활동가들은 민주국가에서 표현의 자유가 있어서 자기가 원하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말입니다. 그것 뉴스시간에 한두 줄씩 정부정책에 대해서 좀 안 좋은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밥줄을 모두 끊어놓고 영화에 출연하면 영화회사에 가서 다 뒤져서 뒷조사를 해서 세무조사를 해서 탈탈 털어서 거덜을 내고 방송국에 가서 방송을 하면 저 사람을 쓰면 잘라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어떻게 정부가 그렇게 졸렬할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큰 나라나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자기를 모두 다 좋아하겠습니까? 그냥 선한 일만 하면서 사는 사회사업가도 욕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한 나라의 왕도 그러한데 하물며 평범한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면 귀를 막고, 들을 만한 이야기를 하면 자기를 고치고, 좋은 이야기를 하면 격려를 받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요?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과거의 이야기를 전부 털어서 마치 조사해내듯이 하나씩 하나씩 추적을 해서 무슨 역적을 다루듯이 하는 모습도 그것도 도를 넘었고, 또 언젠가는 정권이 바뀌고 나면 지금 상황에서 할 말을 못하는 사람들, 할 말 했던 사람들이 역지사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너무 사회가 미숙하고 졸렬한 것입니다. 결국은 사람들이 잘잘하니까 사회도 그렇게 되고 나라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은 당시의 백성들을 통치하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 중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이미 오래전부터 고난을 받으며 애쓰며 살아옵니다. 그러면 그때야말로 정말 기쁨의 때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살고 싶어 하는 바대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렇게 보이는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또 지금은 그것을 볼 수 없어도 하나님이 반드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으셔서 이렇게 하나님을 기뻐하며 주의 공의를 따라 살고자하는 사람들의 편이 되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했고 우리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니이다” 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했고…”. 즉, 하나님이 모든 시련과 환난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화살이 소낙비처럼 쏟아질 때 힘센 장사도 소용없고 빨리 달리는 말도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끝에 독을 묻힌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그중의 모든 것을 피하고 단 한발만 맞아도 절명합니다. 이때 필요한 무기는 방패입니다. 큰 방패에 온 몸을 숨기고 그 아래 피할 때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며 날아오는 그 수많은 화살들을 피해가거나 방패에 맞아서 떨어집니다.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완벽하게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돈, 권력, 체력, 지혜, 힘, 관계,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막아줍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히 큰 방패십니다. 그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에게는 후회가 없습니다. 그렇게 언제든지 주님께 피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관계를 올바로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니다”. 두 개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방패가 되시는지를 뒤에 있는 구절이 더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왕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니다”에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분께 속하였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합당하기 때문에 온전히 그분과 연합되어있고 그분에게 복속되어있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을 이야기합니다. 그 왕이 큰 나라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힘이고 놀라운 은혜인지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 속하면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살게끔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뻐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