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성령 강림 2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3-4)
지난 시간에는 1절서부터 2절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3절서부터 4절까지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 곳에 모여서 아마 사가가 아니라 성전으로 생각되는 곳에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성령 충만함을 받는 그런 역사가 임했다 그랬습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면은 저희들이 앉은 그 온 집에 성령이 가득하게 되었는데 그 성령이 사람의 눈에 보이도록 임하게 되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이것은 일반적으로 성령이 임하시는 장면이 아닙니다. 성령은 그렇게 사람의 눈에 보이게끔 임하시는 것이 아니죠. 그러나 성령이 보이도록 임한 것이 여기 말고도 또 한번 나옵니다. 그것이뭐냐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단강변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와 같은 형체로 위로부터 아래로 내리시는 것이 보였다 그랬습니다. 어쨌든 눈에 보이지 않게 성령이 임하시는데 눈에 보이게 임할 수도 있는데 이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되풀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고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중요한 구속사의 전개,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드러내실 때 성령이 보이도록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승천하시고 다시 예수님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하시던 그 일을 계속 하시게 하기 위해서 성령이 임하실 때 그 순간은 구속사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어요.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마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할 때 역시 또 보이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들어가실 때 성령이 임하실 때는 비둘기와 같이 임하시는 것으로 보였는데 오늘 여기서는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였다는 그랬습니다.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받으시는 그 장면과 그 다음에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승천 하신 후에 받는 성령의 모습이 모양에 있어서도 엄청나게 다르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보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비둘기와 같은 성령을 받으셨다 할 때에 그 비둘기는 온유와 평화와 화목과 이런 것들의 상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성령을 충만하게 입으셨을 때에 그 때에 그렇게 예수그리스도에게 공생애 사역에 들어가기 전에 그렇게 비둘기와 같이 내리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다는 거예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1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죽어서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비둘기와 같은 형태로 임한 것을 가지고 여러 가지 해석들이 구구하지만 저는 그 비둘기를 구약에 나타나는 제물로 쓰여지는 비둘기로 그렇게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임한 성령은 한량없이 부어지는 성령임에는 틀림없지만 예수그리스도가 그 성령의 그 능력을 힘입어서 최종적으로 완수하기를 바라셨던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죄를 위해 비둘기가 그렇게 제물로 죄사에 드려지는 것 같이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구속의 제물로 드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 약속대로 임하게 하신 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하신 성령의 모양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의 혀였습니다. 그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임했습니다. 이것을 놓고 그러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 계실 때에 임한 그 성령이 더 쎄냐, 2장에서 내린 성령이 더 쎄냐, 그런 거를 따지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예요. 그것은 뭐냐,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께 임하셨을 때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셨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비둘기와 같은 모양을 통해서 보여주고, 또 하나는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지는 것들을 통해서 교회에게 그 성령을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을 얘기하기 위함이예요. 그럼 불은 뭐고 혀는 무엇이냐? 불은 문자 그대로 불이죠.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불은 집안을 태우는 물리적인 불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불의 모습이 또 출애굽기에서도 나타나죠. 모세가 하나님께로 소명을 받았을 때 타지 않는 불, 가시나무 떨기사이에서 불이 붙고 있으나 그러나 타지 않았던 것, 그것을 보는 거죠. 이 불의 1차적인 상징은 하나님의 임재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임하여 계신 것에 하나님이 임하여 계신 상징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불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자리에 성령이 오신 것은 곧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것이었다 그 얘기입니다. 죄 많은 인생들이 거룩한 하나님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느냐, 그것은 바로 이렇게 성령이 오셔서 그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불에 좀더 중요한 의미는 소멸하는 것이예요. 태우는 것입니다. 성경은 소멸하는 불에 대해서 말합니다. 태우는 것입니다. 태워서 태우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이 태우는 것은 우리에게 크게 성경으로 볼 때에 두 가지 개념을 시사하고 있는데 하나는 심판의 개념이죠. 그렇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오시나니 그가 오시면 곧 너희에게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리라 그랬는데 그것은 세례는 하나인데 하나 속에 두 가지 요소가 들어가 있는 거요. 하나는 불이고 하나는 성령이요. 그것은 불과 같은 성령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세례 안에 불도 들어 있고 성령도 들어있다는 거요. 불은 심판이라는 거요. 그리고 성령은 축복이죠. 쉽게 얘기하면 예수께서 오셔서 그 죽음의 하나님의 심판을 세례를 받으시는 거요.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거죠. 그것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받으신 최고의 세례였어요. 그렇게 세례를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이제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그럴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신 이후에 우리에게도 그것이 다 적용되는 것이예요.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주시는 거요. 예외 없이. 누구든지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주시는 거요. 그리고 그를 믿지 않은 자들에게는 불의 세례를 주는 거예요. 그 불은 바로 끝 날에 받을 심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불은 한편으로는 태우는 것을 심판을 의미하고 또 하나는 성결을 의미합니다. 태워서 깨끗케 하는 것, 불결한 것들을 태워버리는 것, 이것을 의미하는 거죠. 성령이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실 지를 보여주는 거죠. 죄를 태우고 더러운 것들을 소멸하고 그리고 불의한 것들을 태워버리고 그 성령이 쓸고 지나가는 것마다 불결했던 것들이 거룩하게 되고 부패했던 것이 깨끗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보여준다 라고 하는 것이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죠. 성령만이 우리의 부패한 심령을 정결케 할 수 있어요. 죄악으로 가득한 우리의 마음을 오직 성령만이 정결케 하고 깨끗케 할 수 있는 것이예요. 성령이 오셔서 사람의 마음을 태우고 그리고 심령을 그 말씀으로 태울 때 그 때 불결하고 더러운 것들이 사라지고 거룩하고 깨끗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불의 혀라고 하는 것은 불이 이렇게 타오르면서 막 넘실넘실 춤추잖아요. 그 뭐라고 해요? 뱀의 혀 바닥처럼 춤추는 것, 그걸 의미하는 것이거든요. 이거는 또 한편으로는 말이죠, 복음전파의 역사를 보여 주는 거예요. 불길이 산에서 번지는 것처럼 그렇게 삽시간에 작은 불씨가 삽시간에 온 산을 태우고 온 산맥을 태우는 것 같이 그렇게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복음에 불이 담겨지고, 그래서 이 교회로 말미암아 수많은 미전도 족속들,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데 이것은 누구도 끌 수 없는 불과 같애요. 맹렬하게 번져나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또 태우고 그렇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강림의 성령이 2장에서 임하신 최고의 이상은 뭐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2장에서 성령을 하나님이 교회에게 보내신 최고의 이상이 뭐냐하면 복음의 전파요. 복음의 전파. 그러니까 복음 전파가 없는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권능에 대해서 성경은 아는 바가 없다 이거요.
성령이 임하는 것은 복음전파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거요. 그게 뭐냐하면 잠시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냐 하면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사람들이 다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방언을 하기 시작한 거요.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 후 최초로 보여준 표징이 방언이었어요. 왜?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오셨다, 지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죠. 그러면은 왜 성령이 이렇게 강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일가운데 병자를 고친다든지 귀신을 내어 쫓는다든지 오히려 예수님은 방언을 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런데 그런 일들을 하지를 않고 제일 먼저 성령이 임할 때에 방언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거는 은사에 있어서 방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예요. 은사에 있어서 방언의 중요성이 아니라 그 의미의 중요성이예요.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빨리 복음이 전파되어야 되겠는데 언제 하나님이 언어를 훈련시켜서 여기 보면 메소포타미아,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구레네, 밤빌리라,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이런데 파송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이 신적인 능력으로 그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각 방언으로 말하게 해서 복음이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거는 전혀 이치에 타당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이때는 이미 코이네 헬라어라고 하는 만국공용어가 이 로마가 지배하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그 말이 통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국아래 사는 모든 민족들은 모두 다 두 가지 이상 언어를 말할 수 있었어요. 자기나라 말과 그 다음에 코이네 헬라어를 말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신약성경이 그렇게 빨리 퍼진 거요.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어요. 히브리 사람들이 기록할 때에 히브리말로 기록하지 아니하고 헬라어로 기록을 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제국 어디로 보내든지 그거는 다 읽혀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거는 그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러면은 도대체 무엇이냐? 이거를 놓고 어떤 교파에서는 성령을 받은 가장 중요한 증거로서 방언을 이야기 했어요. 마치 방언이 구원의 조건으로까지 되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잘못된 것이다. 왜? 여기에서 말하는 이 방언은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제일 먼저 나타난 은사가 방언의 은사였지만 이것은 방언 자체에 대한 중요성보다는 하나의 의미의 중요성이예요. 그것이 뭐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었는데 그들이 모여서 이 사람들이 방언하는 것을 들었다 했으니까 확실히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그런 곳일 거예요. 그런데 들었는데 듣다보니까 자기네 나라 말들이 쏟아져 나온 거요. 그런데 이거를 못보고 어떤 성경학자들은 사람의 귀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한가지로 말을 했는데 들릴 때에 그 말이 메데 사람에게는 메데 방언으로 엘람 사람들에게는 엘람방언으로 들렸다, 청취력의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발언이 방언이 되어서 각 나라의 말이 나왔다고 보는 거죠. 근데 타당한 견해예요.
그런데 우리기 이것을 생각하면서 의미가 무엇인가를 따지기 전에 먼저 우리들이 창세기를 생각해야 됩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그 유명한 바벨탑 사건이 있죠? 거기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시날 평지에서 행하신 큰 일이 무엇이냐면은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이 언어가 혼잡케 되는 사건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서 살게 된 말하자면 기초가 되는 일이, 동기가 되는 일이 그때 일어났어요.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지도록 명하셨지만 사람들은 그 대신에 불신앙으로 11장에 와서 바벨탑을 쌓으면서 말하기를 우리가 이 탑을 쌓아서 하늘 끝까지 닿게 하자 그리고 우리의 이름을 온 땅에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언제든지 바벨탑을 중심으로 우리들이 같이 모이자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흩으시기 위한 저주를 내리셨는데 그것이 혀의 저주였어요. 그래서 분명히 그들이 모두 말을 하는데 모두 서로 각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표현을 하는 거요.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합동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일을, 공사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흩어지게 된 것이죠
이 사건을 염두에 두면서 여기를 봐야 되는 것이예요. 그렇게 자기의 이름을 대고 흩어짐을 면하자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혀의 저주를 받아서 온 땅에 흩어지게 되었는데 오늘 여기서는 그렇게 혀에 맺혔던 하나님의 저주가 풀릴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예요. 그것이 바로 성령 강림사건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여러 나라 말들을 하게 되는 그 의미는 무엇이냐면은 그렇게 하나님의 복음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라고 하는 말씀이예요. 그러니까 이 사건은 순전하게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신 목적과 이유가 무엇인지를 명백히 보여주기 위한 표증적인 사건이었어요.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방언으로 무얼 말했느냐예요. 방언으로 무얼 말했어요? 11절에 보니까 뭐라 그랬냐면은 그레데인과 아라비아들이 우리가 다 우리의 방언으로 무엇을 말했어요? 하나님의 큰 일,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나님의 큰 일이 무엇이겠어요? 그렇죠. 하나님의 큰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 이후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무엇을 중점적으로 전했느냐를 보면은 알 수 있어요. 그것은 뭐냐면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이 사건이예요. 그러니까 이들이 성령이 임하심을 받고 그 다음에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막 말하게 되는 데 그것이 하나님의 큰 일이었고, 그 하나님의 큰일은 구속의 사건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는 것이예요. 성령이 이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강제로 그 충만함을 받고 그 사람들이 강제로 자기 입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여러 나라 말로 하게 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수많은 나라의 족속들에게 가서 그렇게 성령이 말하게 하신 그것을 말씀 선포의 제목으로 삼고 그 복음을 천하 만민에게 증거하라고 하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말하자면은 시키심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야지만 이것이 1장 8절에 성령이 이같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의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는 어느 정도의 의미를 파악을 했습니다.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지는 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충만한 하나님의 성령을 받는 것이 얼마나 밀접하고 얼마나 절박한 것이 그런 관계에 놓여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불의 혀와 같이 그렇게 죄악된 세상을 태우고 불결한 세상을 태우고 부패한 사람들의 마음을 태워서 성화시키고 거룩하게 만들고 그렇게 하면 모든 놀라운 역사들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에 복음의 전파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보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때는 언제였냐 하면 복음이 전파되는 때였어요. 복음이 전파되는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세력들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죠.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사는 삶이 아니면은 우리가 영적인 전쟁을 거의 느끼지 못해.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생생하게 이러한 영적인 전쟁과 투쟁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사도행전 5장에 가보면 사도들이 뭐라고 말하냐 하면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도 그러하니. 5장을 먼저 한번 찾아보세요. 5장 32절쯤. 같이 한번 읽어보시죠,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그거 보세요.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성령도 증인이라’. 성령은 오시는 최고의 목적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예요.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예요. 그리고 그렇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우리도 하고 성령도 하시는데 그 성령을 누구에게 주셨다고 하냐면 자기를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셨다 그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케 부어지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믿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어요. 그렇게 성령을 주셨으니까 그 성령은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너는 복음을 전하라, 하나님의 큰일을 사람들에게 말해주라, 예루살렘에서도 선포하고, 유다에서도 전하고, 사마리아와 땅 끝에서도 너는 이 복음을 말하라.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끊임없는 욕구예요.
이제 무슨 결론에 도달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성령을 근심시키고 거역하는 거예요. 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초대교회의 이 성도들이 말하였던 하나님의 그 큰 일을 증언하기를 원하시는 우리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성령에 순종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증거하기를 원하시는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더 큰 충만함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일들을 한 번 제켜놓고,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선언하고,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일에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한편으로 우리에게 성령이 필요함을 그 때보다도 더 절박하게 느낄 때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야 매번은 아니지만 2주일에 한번이고 3주일에 한번이고 아주 신통치는 않으면은 한달에 한번이고 두 달에 한번이고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들으면서 속이 시원해지고 은혜를 받고 아니면은 부르짖고 기도할 때에 그 말씀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감화를 받고 성령의 은혜를 받지만 저 설교하는 사람은 맨 날 저렇게 쏟아놓기만 하니, 어디에 가서 충만함을 받을까? 그런 생각을 저도 많이 하였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얼마나 신비예요? 상당히 많은 경우에 설교를 하면서 성령 충만해지는 것을 경험하는 적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하나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외쳐 듣게 하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복음의 참된 진리를 사람들에게 외치고 증거할 때에 오히려 설교하는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성령께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 성령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은혜를 경험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을 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도 굉장히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시기 전에도 그가 오시면 증거하리라 말씀하셨고, 그리고 승천하시면서도 성령이 오셔야만 너희들이 증인이 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또 오실 때에도 그 성령이 임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복음 전파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바로 성령의 충만함과 복음의 증거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번 눈을 들어서 많은 교회들을 보십시오 비교적 성령의 충만함을 많은 성도들이 누리고 있는 교회들을 보십시오.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이고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선포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해 있는 교회들을 보십시오. 열심히 복음이 그들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 나누어드린 책 그것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충만했던 교회 이외에는 복음의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던 교회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보면 전도를 해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까지는 이끌려 나올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에 이끌려 나와서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을 때 거기에는 참된 회심이 일어나지 않아요. 영원히 참되게 회심하지 않으면은 그가 진짜배기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겠느냐 말이죠. 무공해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어요. 참다운 회개가 일어나지 않으면, ‘구원 받았습니까?’ 그러면은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게 왜 그래요? 그것은 구원을 못 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또한 하나님 앞에 성령의 이런 충만함을 받고 그리고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의 최고의 의무가 바로 자기가 그 성령을 즐거워하고 그 성령 안에서 자기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복음 전파,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셨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함을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복음전파의 전선에 서지 않는 기도는 간절하고 절박하고 전투적인 기도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평안하기를 원하십니까? 왜 교회가 평안하기를 원합니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길 원합니까? 왜 들어오기를 원합니까? 교회가 재정적으로 넘치기를 원합니까? 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까? 왜 보다 더 교회가 든든하게 서고, 그리고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래야지만 비로소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모두 그런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있는, 없는 노력을 다해서 입에 발린 말까지 다해서 교회에 몇 번은 데리고 나왔지만 그 중에 얼마나 소수의 사람들밖에는 변화되지 않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 까지는 데리고 나왔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이 변화 받아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어려운가를 하는 것인가를 여러분들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으로 교회가 가득한 역사가 일어나면 하나님께서 훨씬 더 많은 이삭들을 추수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신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울부짖는 아비규환과 같이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내 죄를 사하시고 나를 받아주시고 내 영혼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역사가 매주 일어나도 시원치 않다 이거죠. 왜 그래요? 이 세상에는 그렇게 해도 다 구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많은 사람들은 고통하고 그리고 고통하면서도 자기의 고통의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마음도 갖지 않고 있습니다. 그 세상에 나아가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을 훼파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이 일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서만 가능하단 말씀인 것입니다.
다음주가 성령강림주간입니다. 그 후로부터 40일을 정하고 우리가 이제 전심으로 이렇게 익은 곡식들을 추수하는 일을 위해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다음에 이 제자들이 제일 먼저 했던 큰 일은 무엇이냐 하면은, 제일 먼저 베드로가 11명의 사도들과 함께 서서 소리를 높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씀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나아가서 자기에게 성령을 임하게 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방언으로 말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큰 일을 이제 방언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평범한 자기의 언어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말하였고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할 때 성령이 충만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핍박과 위협이 있었지만 그 핍박과 위협을 직면할 때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렇게 복음전파를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부르짖는 기도였기에 그 기도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권능이 넘치는 축복을 받았던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부르짖는 기도 속에서 그들은 다시 충만함을 얻고 그리고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한번 그 복음을 말하는 것과 자기의 생명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사람들로 변화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변화된 사람들로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바로 이런 변화로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하는 이 세상을 대적하게 위해 교회는 너무나 약합니다. 그리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길 때보다는 지거나 비길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모두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비범한 그 권능의 충만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충만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때를 기다리며 우리에게 이미 주신 그 은혜와 그 성령을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하고 전파하는 이 일들을 우리들이 계속하여 나아갈 때 우리의 기도는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르짖는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더 강하고 커다란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되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커다란 역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5월 22일 이후에 모든 사도들이 예루살렘으로 뛰어나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복음 전파의 역사를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