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잔, 그리스도의 피 (1)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5)
녹취자: 김동길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어서 잔을 가지시고 앞에서 떡을 떼신 바와 같이 그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나의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하던 대로 빵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포도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역시 포도주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포도주를 1년에 딱 두 차례만 먹습니다. 성찬 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포도주가 음료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이 있는데 물이 매우 드물고 또 우물을 파도 쓴물이 나올 때가 많고 좋지 않은 물을 계속 먹으면 다리가 퉁퉁 붓는 풍토병 같은 것이 걸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에스골 골짜기를 비롯해서 그 지방에서 많이 나는 그 포도를 이제 포도주로 담궈서 그래서 그 포도주를 늘 사람들이 물처럼 넣어놓고 음료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포도주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포도주 없는 삶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문맥에서 포도주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포도주는 빛이 붉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의미한다기보다는 늘 떼놓고 살 수 없는 음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빵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포도주를 한 잔 따라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가라사대 이 잔은 언약의 피 곧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언약의 피니라 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구속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수적일까 하는 것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속으로 말미암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가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몸이 예수의 피로 채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물리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똑같이 떡이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모두 우리의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처럼 그 포도주의 잔이 또한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피와 그 포도주가 만든 피가 나누어지지 않고 섞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연합될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의 삶은 그리스도와의 철저한 연합을 이루는 삶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삶에 있어서 최고의 축복을 누릴 때에 그 지고의 축복은 어떻게 나타나는고 하니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것 같은 그러한 상태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그 마음이 나를 통해 전해지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에게로 전해지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 지배되고 나의 인격과 사상과 모든 삶과 삶의 모든 갈망까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지배받는 삶을 살게 되는 것. 이것이 최고의 영적인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잔을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피 곧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피는 구약성경에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맺었다고 하는 그 의미는 그 피를 모두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서 그 피가 모두 흐름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는다는 사실을 먼저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피를 쏟았다는 이야기는 모두 죽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새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셔야 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그러면서 형제로서의 한 가족으로서의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면서 결국 당신 자신이 죽어야 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모든 우리됨,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토록 진노의 자녀이었던 자리에서 은총을 입는 하나님의 자녀로 나아가게 된 데는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진 사랑의 부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가슴 속에 예수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부활의 약속에 마음이 들떠하기 전에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그리스도 예수께서 피 흘리고 죽으셨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 의로운 일을 위해서 죽는 것도 장열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늘 경험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누군가가 죽으면 충격 받고 놀랄 것 같지만 하루 이틀 밖에 안 걸립니다. 2-3일 지나면 먹을 것 다 먹고 잘 것 다 잡니다. 석 달쯤 지나면 거의 잊어버리고 3년 지나가면 새까맣게 잊혀 집니다. 어느 날 친척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산책을 가셨다가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셨으니까 그 비극이야 이루 말할 데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그 다음날 헐레벌떡 갔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들을 위로하려고,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예수도 안 믿고 돌아가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 되시는 분이 전혀 슬픈 기색을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하면 아이고, 팔자도 좋은 양반이지. 저는 위로하러 갔는데 자기 죽은 그 남편이 팔자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고생이라고는 하나 모르더니 마지막에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으면서도 병 때문에 고통 받지 않고 한 순간에 절명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 그런 뜻이었습니다.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열심히 국밥도 드시고 빈대떡도 드시면서 먹으라고 권하는데 위로하러 갔는데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죽음이 부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그러나 자연스러운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생명이셨습니다. 한 번도 죽음에 복종해 보신 적이 없고 그리고 죽음에 복종할 위협을 느껴보신 적도 없고 죽음을 체험해 보신 적도 없는 그 분이, 하나님이신 그 분이, 위대한 능력을 행하시고 죽은 자를 살려주시던 그 분이 자기가 살려낸 죽음에 복종된다는 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하는 의미는 우리의 죽음의 의미와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죽음이 수치스러운 것이 될 수 없지만 그 분은 죽음은 그만두고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더러운 세상에 내려오신 것만 해도 그 분에게는 그 분의 마음속에 있고 영혼 속에 있는 거룩한 신성에게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영광이신 그 분이 이 더럽고 추한 세상에 오셔서 당신들이 지은 피조물과 함께 사시면서 그들에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시면서 오히려 종과 노예로 허리를 숙이시고 그들의 발을 씻기며 섬기신 생애를 사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에게는 그것이 전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러한 생애를 사셨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자기가 죽음에 이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견딜 수 없는 많은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그것을 모두 이기고 견디면서 그렇게 치욕스러운 생애를 계속해서 사셨던 것은 마지막 순간에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야할 일은 다름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죽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이신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죽음을 맛보셨을 때 그 분이 느끼는 고통과 아픔은 이 세상의 인간들이 죽음 앞에서 느끼는 아픔과 고통과는 비교될 수 없는 신적인 아픔이었고 고통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못 박혀 죽으실 때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아무런 회개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어가는 그 분을 십자가 아래서 욕했고 미워했고 모욕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이 언약을 세우셨다고 하는 말씀은 바로 이렇게 죽으셨다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미리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피로 세우실 언약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손을 잘라서 한 방울 떨어뜨리는 그 피가 아니라 말하자면 자신의 생명을 모두 버려서 세운 언약이라고 하는 말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을 타고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죽지 아니하셨더라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요 은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모든 피를 흘리고 죽어 주신 것에 대해서 부채의식을 느끼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앞에서 할 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앞에 아무것도 드린 것이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는 것이 우리를 위해서 이 온 우주를 모두 주는 것보다도 더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까짓 우주야 하나님이 다시 한 번 말씀하시면 사라졌다 다시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 분이 죽으셨습니다. 생명이신 그 분이 누가 원하는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몸을 스스로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로 주시고 죽으셨던 것입니다. 당신이 만든 사람들의 박해와 오해와 멸시를 받으시면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모든 피를 한 방울도 남김이 없이 흘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주시고 있는 순간에 그 중 누구도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예언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해하는 사람이 있던 없던 그것과는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의 30년 세월은 3년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의 33년의 세월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 앞에 바쳐질 그 순간을 위해서 순결한 육체와 거룩한 정신과 하나님을 향해 불타는 마음과 그리고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는 우리와 같은 인생들을 바라보시면서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마음속에 느끼시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어디로 보내신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때로는 험한 계곡이나 풍랑이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바다 한 가운데를 지나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으셨습니다.
(찬송)
마지막 피 한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성찬에서 잔을 받을 때마다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그 사실 앞에서 삶의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는 문득 우리의 문제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일평생 어떻게 하면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잘 죽을 수 있을 지를 가지고 고뇌하시면서 인생을 사셨는데 우리는 살아가는 인생의 잠시 불편하고 마음 상하는 일과 이 세상의 안락과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잠시 누리는 것들에 대한 애착 때문에 고통하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우리들이 깊이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회자 세미나를 하기 전에 하용조 목사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짧은 시간에 잠깐 대화를 하면서 그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고난이 억수로 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 하는 말이 큰 고난이 교회에 오니까 하나님이 교회를 정화시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 정말 그리스도 편에 선 사람인지를 하나님이 깨끗하게 구별해 주시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김 목사님 거룩이라는 말은 낭만적인 단어가 아니더군요. 치열하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맞습니다, 목사님. 역사적으로 보면 거룩한 삶을 살았던 시대에는 치열할 정도로 죄에 대한 설교가 행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생애를 산 사람들은 모두 온 몸에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이 거룩의 삶을 산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당신이 죽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은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은 당신이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서 바치실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안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크신 은혜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 사람들은 바로 한 사람의 죽음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한 분이 자기를 위해 죽으신 것을 언제나 생각하고 거기에 인생이 매인 사람,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다 버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마지막 남긴 말씀 중 한마디는 다 이루었도다 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혀 다 이루었도다 말씀하신 것이 그 분이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를 버려 죽으신 것이 오늘 우리에게 입술의 찬송이 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받으면서 그 붉은 포도주 잔을 보며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셨도다. 그 잔을 마시며 우리는 그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간 거룩한 성찬의 포도주가 우리 안에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위해서 죽기를 거절하는 모든 피를 출혈시키고 정화시켜서 우리의 몸 구석구석에 우리의 살 구석구석 우리의 혈관 구석구석 우리의 지극히 작은 모세혈관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언제든지 우리의 혈관이 깨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처럼 그렇게 죽음의 정신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을 받을 때마다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것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의에 대해서는 살아서 우리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도록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며 살아야 될 사람이라는 본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주에 이르는 맹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찬은 구약에서 유월절의 배경을 가지고 있고 구약은 다시 중동지방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말씀하시기 오래 전에 피로써 서로의 언약을 세우는 풍습이 중동 지방에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양권에서도 무언가 신성한 서약을 할 때는 반드시 피(혈)자가 들어갔습니다. 혈맹의 관계에 있다느니 아니면 혈맹지 형제라고 한다느니 이렇게 혈자가 들어감으로써 그 약속과 언약의 의미를 한층 더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때보다 약간 위로 올라가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팔을 이렇게 걷고 여기를 칼로 쭉 긋고 둘이서 딱 이렇게 피흐르는 것을 딱 맞대고 아주 심각하게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는 피로 맺은 형제다 이런 신파조의 사진들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주 남자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요즘 보면 코미디에 나올 일이지만 그 때는 그런 사진 한 장씩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나이가 아닌 것같이 그렇게 이해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배경이 되고 있는 유월절, 그 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는 고대 근동에서의 언약을 맺는 풍습은 그렇게 장난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언약을 맺습니다. 그래서 한 영토를 크게 다스리고 있는 임금이 그 영토를 혼자 다스리기 힘드니까 영토를 떼어서 맡길 분봉왕을 임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봉왕으로 임명된 사람은 은혜입니다. 이쪽 지역을 다 다스려라 너는 나 대신에 다스리니까 이 지역에서는 네가 왕이다 그리고 세금도 받고 재판도 너가 해라. 그 대신 나한테 충성을 다해야 한다 전쟁이 나면 군사를 동원하고 그리고 세금 중 얼마는 나한테 갖다 바쳐라. 그러면서 언약을 맺습니다. 그 언약이 워낙 호의적이고 은혜언약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 입장에서는 곤란한데요.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습니까? 그렇게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가게 됩니다. 언약을 맺을 때 큰 황소를 갖다가 중간을 쪼갭니다. 그리고 벌려놓습니다. 큰 황소는 500kg까지 나갑니다. 그것을 반 틈을 쪼개서 이쪽에 놓고 이쪽에 놓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피가 얼마나 쏟아져 나오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몇 통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몸의 70%가 물이라고 했는데 물 중에서 피를 계산하면 얼마나 많은 피가 쏟아져 나오겠습니까. 피로 흥건하게 젖는 것입니다. 거기를 두 사람이 많은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서약서를 가지고 같이 그 길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의미가 무엇인지 아세요? 우리 둘 중에 한 사람이 만약 약속을 파기하면 이렇게 몸을 두 동강내는 징벌이 신들에게로부터 있을지어다 하는 맹약입니다. 그래서 그 문서를 가지고 한부는 내가 갖고 한부는 그 사람에게 주고 한부는 신당에 보관합니다. 그러한 배경을 가지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오셔서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언약체결 의식입니다. 그런 것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여기서 피라고 말씀하신 또 다른 의미는 죽음 말고 진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잔은 나의 흘리는 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께서 그렇게 피를 흘리고 죽는 그 의미는 하나는 죽음의 의미였고 또 하나는 그 죽음이 진노로 말미암는 죽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진노는 바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였기 때문에 그 언약을 파기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지금 지극히 복음적인 것을 예수께서 말씀하시면서도 여전히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심각한 진노의 심판이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잔을 마시고 이 떡을 먹음으로 말미암아서 생명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 불붙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면제되지만 그러나 이것들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와 한 생명을 누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아까 말씀드린 언약을 파기한 것에 대해서 피를 흘려야하는 피의 요구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하나님의 단순한 사랑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관찰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한꺼번에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지혜 그의 자비 그의 분노 그의 엄위하심 그의 공의 그의 사랑 이 모든 것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신 이 사건은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잔은 나의 흘리는 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을 때 에 이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을 세우신 그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기가 대신 만족시켜드리는 일을 통해서 이 언약이 세워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잔을 나누어 주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향해서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이 진노의 심판이 속속히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충분히 느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미래의 다가올 심판도 현재적으로 느끼실 수 있는 분이었으니까 자신을 향하여 잠시 후에 닥칠 하나님의 그 진노하시는 심판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온몸으로 느끼시는 가운데 이것을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예언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범죄한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이 진노의 심판을 하실 터인데 내가 이제 그 진노의 잔을 마시리라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풀어주시고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마음이 다시 풀어지셔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구원의 길을 여시는 한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지 아니하고는 풀릴 수 없는 방법이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필이면 인류가 고안해 낸 사형제도 가운데 가장 처참하고 끔찍한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이신 그 분이 순간순간 자기의 영혼을 파고 들어오는 죽음을 느끼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모든 고통을 당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울부짖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과의 영혼의 단절 곧 죽음에로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진노의 심판이 잠시 후에 이렇게 불같이 쏟아질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피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이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십자가를 지시고 주님의 진노를 다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그 사실을 인해서도 감동을 받지만은 그러나 사실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은 죽음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그 십자가의 놀라운 심판이 바로 우리가 당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요즘 유행하는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 끊임없이 덕을 쌓고 끊임없이 선하게 살고 끊임없이 구제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을 만들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기 싫어하는 인간들이 그 십자가 앞에 서서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깨달으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지 아니하고 그 진리 앞에 직면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제는 생각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여러분 생각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럴까봐 참 걱정입니다마는 생각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래도 그 교단에서는 꽤 유명하다는 교회인데 갔습니다. 가서 분위기가 진지합니다. 물었습니다. 수요예배 나왔는지 물어보니까 수요예배 나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일예배 나왔냐고 하니까 나왔다고 합니다. 주일 낮에 무슨 설교를 했냐고 하니까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불꽃처럼 사는 것입니까? 무엇을 가지고 불꽃처럼 삽니까? 정욕은 불꽃처럼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가지고 불꽃처럼 삽니까? 그래서 예수를 정말 믿기를 원하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제 어느 청교도가 책 속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아무리 복음을 간략하게 설명해도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천국의 비밀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는 하늘나라가 소유되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하나님의 분노를 감당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피로 세울 언약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렇게 재물이 되어서 자기의 모든 피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범죄한 우리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신 그 고난의 핏 길을 걸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도록 만들어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범죄는 우리가 했는데 고난은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렸는데 하나님의 진노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홀로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그 분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때 보태드린 것이 없습니다. 그 분 곁에는 언제나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자들도 언제나 예수님 주위에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우리의 죄를 지고 나무에 매달릴 때에 그분은 홀로 계셨습니다. 아무도 나누어질 수 없는 그 고통을, 잔을 마시시고 이 예언을 따라서 하늘 높이 달리셨던 것입니다.
(찬송)
주 달려 죽은 십자가 나 항상 생각할 때에
세상의 붙은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이 찬송을 불러야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의로운 일을 위해서 죽으셨다고 하는 사실도 우리에게 감동이 되는데 그 분이 그렇게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못 박혀 죽으신 것이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에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 수 없는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 안에 십자가는 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한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무슨 대가를 지불했습니까? 죄 용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죄와 결별할 수 없는 속에서 오늘날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신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우리를 버리면서 살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못난 자아와 아직까지도 그리스도 예수처럼 자기를 다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세상에 붙은 욕심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드리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붙은 욕심이 우리를 에워싸고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사람들과 다름없는 삶을 살도록 그렇게 유혹하는 그 유혹에 넘어가며 살 때가 많은 우리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넘치는 진노를 대신 받으실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실 때 누구도 그 고난과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홀로 그 일을 감당해 나가야 할 것을 아셨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원치 않고 쏟아지는 하나님의 그 진노의 잔을 마시시면서 그는 자기의 죽음을 통해서 태어나게 될 수많은 후사들을 보며 기뻐하셨다고 이사야 53장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쏟아지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분노의 잔을 마시면서 온 몸이 하나님의 저주로 쪼개지는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잉태될 수많은 영혼들의 구원을 바라보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그대로 있거니와 죽으면 많은 열매를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쏟아지는 하나님의 그 진노 앞에서 그 진노 앞에 두려워 떨며 그 진노의 잔을 모두 받으셨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 앞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가져다주는 그 모든 아픔을 미래에 우리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기대 때문에 견디셨습니다.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들을 위해서 죽으시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진노 대신 은총 가운데 살아가는 삶을 미리 바라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도 없는 그 외로운 나무 십자가에서 자기의 살과 피를 찢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단절까지 느끼는 그 하나님의 치열한 분노를 자신의 피로 그 진노의 불을 꺾고 자신의 물을 다 쏟아서 하나님의 진노의 타오르는 불길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려서 자기의 몸을 다 찢어 남김없이 피 흘리고 살 찢어 죽으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시는 모습을 보고서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진노의 마음은 그치시고 하나님 없이 구원의 여망 없이 살아왔던 수많은 인생들을 향한 연민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그 마음으로 돌이키셨습니다. 이전에도 하나님이 불붙는 긍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오셨지만 그러나 그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자기가 사랑하는 이 백성들과 그리고 죄에 대해서 참을 수 없이 진노하시는 하나님 사이에서 자기의 옥체를 쪼개어 그 피로 백성들이 당신 앞에 나오도록 길 만들어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마치 노아의 홍수가 있고 난 후에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고 내가 다시는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을 홍수로 진멸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자기를 버리시는 그 진노의 잔을 마시시는 피의 죽음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용납하시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는 그 열매가 되었습니다. 죄 밖에 지은 것이 없고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 수 밖에 없는 숙명처럼 죄에 길들여진 어리석은 인생들이 단 한마디 어느 날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부르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 앞에
(찬송)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우리는 그렇게 고백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죄악의 구덩이에서 살아온 우리를 그 보혈의 샘에서 씻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가락지를 끼워주셨고 거룩한 행실로 살아갈 수 있는 옷을 입혀 우리의 부끄러운 부분들을 가리게 하셨습니다. 죄 가운데 짐승처럼 소망 없이 살아가던 어리석은 인생들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루아침에 하나님 나라의 상속받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대단치 않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한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시려고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 앞에 바치셨습니다. 우리에게 쏟아지는 그 모든 진노를 담당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을 우리들이 기억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 몸에 예수 죽인 것을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이라고 하는 것을 이 예수 죽인 것을 우리 몸에 일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그리고 나 같은 인생을 위한 그리스도의 그 넘치는 고난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는 그 신앙의 고백이 우리 안에 언제나 살아서 역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생각합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하루에 한 번씩만 자기가 예수 죽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들의 몸에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진다면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인생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내 평생에 예수 죽인 것이 한이 되어서 어찌하든지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는 나의 구원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죽으셨지만 이제는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내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나서 내가 내 몸에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지고 예수와 함께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것 때문에 내가 이제는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누명을 쓰신 그리스도 예수가 온 세상 사람들에게 그 죽음의 의미를 드러내사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왜 하나님이 우리의 경배를 받으셔야 하고 왜 그리스도인의 입술에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한 십자가가 영원한 찬송제목이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은 사람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오늘 그리스도 예수가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을 자기의 몸에 짊어진 사람입니다. 언제나 그 십자가 앞에서 할 말을 잃어버리는 사람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을 때에 하늘에서 죽으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짊어진 우리의 죄짐을 향해서 가지셨던 아버지의 그 분노의 마음을 느끼고 그 엄위하심 앞에 두려워하고 그리고 그 엄위하심 앞에서 두려워 떨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셨다 하실 때에 은혜가 은혜로 들려오는 사람 그 사람들이 오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로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만은 그 중에 한 가지는 언제나 십자가에 감격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말 한마디에도 어린 아이와 같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그래서 예수 죽인 것이 내 마음에 상처가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불의한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셨다고 하는 이 사실이 우리의 영혼에 깊은 상처와 멍울이 되어서 우리가 그릇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의 그 부분을 누르기만 하면 우리는 다시 우리의 본연의 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저의 소박한 바램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균형잡인 태도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의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서도 좀 떼어놓고 자신을 위해서도 좀 떼어놓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떼어놓는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사로잡힌 그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을 둘로 나누라면 그리스도께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과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자와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 영원을 향해 씨를 뿌리며 사는 사람과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들을 얻기 위해 씨 뿌리며 사는 사람 두 부류의 사람들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자기의 피를 상징하는 그 잔을 따르시며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실 때에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제자들은 철없이 명절이라고 먹고 마셨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 잔을 통해서 당신이 하나님의 모든 진노의 잔을 마셔야 할 것이 가슴에 밀려왔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철없이 그저 명절을 즐거워하는 제자들에게 자기의 잔을 그들에게 주시면서 예수님이 가지셨던 간절한 소원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너희들이 지금은 나의 죽음의 의미를 몰라도 그러나 나는 너희와 더불어 죽어도 너희 안에 다시 살고 또 너희가 죽어도 내 안에 다시 살게 되기를 원하시는 심정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피로 흐르며 사시기까지 우리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당신 자신이 당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제단에 바치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가지고는 예수 그리스도는 만족하실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받으시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당신은 또한 우리가 당신이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의 그 구원의 은혜를 알고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알아서 우리도 당신이 우리를 위해 자기를 버리신 것처럼 우리도 당신의 그 고난의 의미를 알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자신을 다 드리는 삶을 그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싫어합니다. 언제나 우리는 반만 죽고 싶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죽는 척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자기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음 이외의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은 마지막 피 한 방울도 남김없이 흘려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관제로 모두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다 주신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관제로 다 부어버릴 사람들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까지 주셨건만 사람들은 책상 아래 손 집어넣고 신앙생활 하면서 큰 돈 빼고 작은 돈 빼면서 인생의 날들을 계수하고 있을 때에
(찬양)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들을 위하여 십자가의 달려 제물되실 때
그러나 이 세상에는 하나님만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관제와 같이 다 부어버리고 간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죽으셨고 그리고 자기를 아낌없이 하나님의 진노의 그 불붙는 심판 앞에 자기를 다 내어주신 그 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셨는지를 안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는 소원은 어찌하든지 이 생명과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분깃을 아낌없이 주님의 번제의 단에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사면을 두루 살피며 이런 사람들을 찾고자 하나 없기에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 놓으시고 나로 여러분들에게 눈물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두들 춤추고 먹고 마시는 때에 그리스도 예수의 참 사랑을 알았던 사람들은 그냥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안락한 삶을 미워했고 진리를 거슬러 사는 것을 수치로 여겼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들을 위해 생명 기꺼이 버리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 그들은 그렇게 구차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십자가의 의미를 더 밝히 보이사 고난 가운데서도 그 고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비밀을 보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및 그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남이 못 본 세계를 보았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처럼 그렇게 자신을 다 드려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의 살아계심을 하나님은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완전히 죽은 사람들은 능력 있는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반쯤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반밖에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완전히 죽었던 사람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거룩한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고통이 많고 시련이 많은 이 세상을 똑같이 우리와 같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처럼 쉽게 주저앉거나 좌절하거나 실패를 숙명처럼 여기지 아니하고 그들은 박해하는 세상을 비웃으면서 지났습니다. 고난을 당했으나 용사처럼 살았고 시련을 당했으나 사자처럼 싸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이렇게 잔을 들어서 이것이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시면서 언제까지나 이 일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이 복음의 근원적인 뿌리에 언제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정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절의 해설을 다 마치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내가 내 몸에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 같은 인생을 구원하신 것은 부당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얻은 이 구원은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렇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쏟아지는 진노의 잔을 다 마시고 주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이제는 이 몸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실 때에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셨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받으며 그의 죽으심에 동참하고 싶어서 내 모든 것 아낌없이 다 드리며 내 인생을 살아가고 싶을 그 때에 하나님 오히려 나에게는 위로가 넘치는 줄을 믿사옵나이다. 기도하며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이 십자가와 성찬의 의미를 바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없고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를 향해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드십니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을 움직인 것이 우리 같은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불붙은 긍휼과 자비에서 말미암은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구하시고 이제 그 구원의 대가로 너는 나를 위해 바치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스스로 그 핏길을 걸어가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경배하며 내 모든 것 주의 소유 삼아달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잔을 따르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의미 중에 일부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