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성찬, 세례, 예배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마 26:1-5)
녹취자: 박지성
고난주간을 지키면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금요일을 주목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 목요일을 특별히 기억해야 할 의미를 찾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목 박히신 것은 금요일이지만 그러나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하루 뒤에 몸을 찢고 그리고 피를 흘리심을 그 십자가의 고난을 기념하는 만찬은 바로 목요일 날 행해졌습니다. 이 목요일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과 같이 오늘 이 저녁에도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목하게 하시고 가르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를 잠시 후 앞에 두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랬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비로소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그러니까 오늘 읽어드린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유월절이 시작되기 이틀 전이었습니다. 유월절이 시작되기 이틀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서 팔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라는 내용이 무슨 이야기인지 아십니까? 마태복음 25장은 말세의 교훈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말세훈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성도들이 마지막 때를 지키며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그 마지막 때를 살아 가야할지를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와 같이 천국이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충성스러운 삶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 한 달란트 맡은 자와 같이 악한 자가 되지 말고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를 맡은 자 같이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삶을 살고 이 세상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당신을 섬기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그 모든 기회들을 선히 사용하며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충성된 삶을 살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서 참된 신자가 되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로서의 모습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진실한 모습으로 삶과 그리고 자신의 믿음이 일치하는 삶을 살도록 주께서 부탁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그네와 죄수와 가난한 자와 주린 자들에게 하나만 그 모든 선한 일이 곧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일이라고 주께서 칭찬하시면서 너희도 이와 같이 속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산 자들은 영원한 상급과 영생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옳지 못한 자들은 영벌에 처하리라는 교훈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셨던 것입니다. 모든 말씀을 마치신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될 것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여러분, 무엇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필이면 잠시 후 다가올 이 엄청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을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에 앞서서 이렇게 마지막 때에 되어 질 많은 비유와 많은 일들을 먼저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난 이후에 비로소 십자가를 말씀하셨던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이 마지막 때를 지나고 이 마지막 때에 충성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남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지극히 의로운 의인들로서 주님을 공경하듯이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을 곤경하며 그리고 이 마지막 때에 너희가 영벌에 들어가는 자가 아니라 영생에 들어가는, 진리에 속하고 그리스도에 속한 자가 되기 위해서 너희들은 그리스도가 어떻게, 무엇 때문에, 왜?, 언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했는가를 너희들이 기억하고 그것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그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 없이 이 말세를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 마음속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의 몸을 살 찢으시고 피 흘려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불꽃과 같이 역사하고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속마음과 우리의 모든 심령을 붙잡고 사로잡고 그 우리의 모든 삶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활활 타오르는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이 어두운 세상을 결코 승리하며 불꽃과 같이 살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보십시오.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성도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라 이름 불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여러분, 무엇 때문에 그들이 생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천하보다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한량없는 사랑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왜 그들의 마음속에 참된 기쁨과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 일생을 살아서 이 어두운 세상이 우리로 말미암아 아침이 오고 우리로 말미암아 이 캄캄한 땅에 빛이 비치기를 원하는 이러한 불굴의 사명이 우리의 마음속에 역사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을 향하여 빛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빛이라고 말하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빛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가지고는 우리가 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먼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환하게 비치는 일들이 우리의 속에서 일어나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속사람이 어두우면 만약에 너희의 마음이 어두우면 무엇으로 너희의 어두운 눈을 밝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눈은 이렇게 어두워져 있습니다.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빛을 잃어버리고 그의 영혼이 깊은 삶 속에서 참빛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그는 빛을 비출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의 사랑이 가슴속에 역사하는 사람들만 세상을 향해 목이 터져라 예수의 사랑을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만 그 사랑을 알 수 있고 그 사랑에 감격한 사람들만 그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십자가의 정신없이 마지막 때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아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깨어있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깨어있기를 원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중에 누가 깨어있는 사람이 되지 않기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마지막 때에 주께서 오실 때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기 원하는 사람 있습니까? 주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에 양에 속한 무리로 구별되는 대신 염소에 속한 무리로 구별되어서 너희는 바깥 어두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갈아라.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깨어있고 싶습니다. 모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모두 위선적인 사람 대신에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한 종이 되고 싶습니다. 누가 싫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마음에 이렇게 되고 싶은 것을 하나님은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가지고 있는 것, 그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정신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의 심령을 움직이고 그 빛이 우리로 이 어두움 속에서 참된 것을 보게 하고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만을 사랑하게 하고 그 십자가에 나타난 그리스도 예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베푸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인하여 감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주는 이러한 우리 속사람의 진리로 말미암는 놀라운 변화가 없이는 우리는 원하나 그 삶을 살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주목하고 직시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 자체가 곧 믿음인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를 향하여 눈을 들고 그 십자가를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 그 속에서 어두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힘과 그리고 주의 능력을 공급받고 그리고 이 세상을 살면서 예수만을 위해서 살아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 없이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세의 교훈을 주신 다음에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려야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자는 죄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허물도 없이 죄도 없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늘의 거룩한 영광대신에 낮고 천한 이 땅에 죄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시며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인자는 영광 가운데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 인자는 하나님과 영광을 나누어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주께서 영광스럽게 하신 분이었고 그리고 진리 가운데 계심으로 빛나는 영광을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멸시와 천대를 받고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장 사랑하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는 십자가의 고난을 눈앞에 두고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가 그렇게 우시고 기도할 때 세상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 몸부림치는 영적인 투쟁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그분의 영적인 투쟁을 주목하셨고 또 천사들도 기회만 있으면 이 예수 그리스도를 돕기 위해 하늘에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죄 없는 하늘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천지에 창조된 것보다도 더 엄청나게 중요한 이 사건을 주목하고 있었지만 세상은 그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흘리며 몸부림치며 통곡과 눈물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의 모습은 비참했으나 그분은 영광의 인자였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이 세상에서 영광을 인정받으며 이 땅에 살아계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고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자신의 입으로 가장 더럽고 흉악한 죄인들을 처벌하는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리라는 예언을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인자의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하늘 높이 매달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기 위해서 영광을 모두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같은 십자가에서 자기의 영광을 버리는 이 비참한 고난은 그 다음날 바로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그 영광을 버리는 연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영광을 이미 하늘의 보좌를 떠날 때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버린 그대로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마지막에는 극도의 멸시와 천대 속에서 죽어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되겠다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그리스도 예수는 오늘 팔린 다음에 십자가에 못 박히겠다고 말하셨습니다. 여러분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 수 이겠습니까?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값을 매겨서 팔 수 있냐는 말입니다. 그는 자기가 만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었고 그리고 지금 그를 못 박아 죽이고 있는 이 사람도 자기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값을 매겼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은 30에 해당한다고 값을 매겼습니다. 그리고 그 30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은 30이었다고 계산하였습니다. 그 은 30이었다고 계산한 것은 바로 자신의 생명의 값어치를 은 30으로 계산한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대제사장들이 유다를 향해서 너는 예수를 얼마에 팔아넘길 수 있느냐? 그 예수의 값을 매기라 말했을 때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오히려 “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분입니다”라고 말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떻게 값으로 매길 수 있겠습니까? 사망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또 이미 죽었던 죄인들을 살리셔서 거룩한 하나님과의 교통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그 놀라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때때로 사람들 속에 있는 아주 선한 호의가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돈으로 계산될 때 사람들이 모욕을 받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황금만능주의시대에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물질로 계산하고 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에 사는 사람들의 그 영혼의 생명의 가치를 언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폐로 환산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가슴 속에 있는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을 향한 사랑은 이 한마디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셨던 그리스도 예수의 몸값을 세상은 은 30으로 계산해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은 30에 팔렸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유다가 준 30때문에 예수가 팔렸다고 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 30에 자신을 팔아넘기도록 내버려 두신 것은 사실은 자기가 팔림으로 말미암아 더 큰 대가를 지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그렇게 자신을 팔아넘기심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지불했던 그 대가를 다 지불하고 치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겠다는 교훈을 주셨을 때 바로 그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는 당시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뜰에 모였습니다.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서 그들은 예수를 어떻게 하면 비겁한 방법으로 이 예수를 죽일 수 있겠는가를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면 유월절이 다가올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안의 뜰은 대제사장의 뜰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제사장으로서 일 년에 한 번씩 온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지고 성소를 지나 지성소로 들어가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통곡과 눈물로 탄원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그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통곡과 눈물을 탄원해야 할, 백성들의 죄가 곧 자기의 죄인 것처럼 흐느끼며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님의 뚜렷한 심판의 진노를 진노의 심판을 느끼며 그 진노의 심판을 자신이 당할지라도 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속죄를 빌어야 하는 사람이 대제세장이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제사장의 뜰에서는 이 세상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겁한 궤계로 잡아 죽이기 위한 술책이 모의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 가야바라는 대제사장의 뜰에 모여서 백성의 장로들과 그리고 대제사장들이 백성들의 대표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 수 있을지 신앙을 접어두고 우리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자고 의논하고 있는 이 장면을 보십시오. 차라리 이 속에서는 이미 임박하게 다가온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의 죽음을 내다보며 자신들이 그토록 매일 제사를 드리며 그렇게 죽어갔던 수많은 희생양들의 원형으로서 이 땅에 오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그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죽음 앞에서 오히려 대제사장들은 이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죽음이 우리의 죄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렇게 매달리며 주님의 자비를 구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제사장의 아문에서는 오히려 예수를 모의하고 예수를 핍박하고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술책들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 세상에서의 종교적인 입지와 직위를 위해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잡아 죽일 계책을 꾸미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대제사장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은 결국 의논을 하고 궁리를 하고 흩어졌습니다. 대제사장의 뜰에 있던 사람은 다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바로 전능하시고 거룩한 하나님과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뜰은 어떠한지 오늘 성경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뜰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바로 이 고난주간에 우리는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그 사건이 여전히 우리에게 감격이 되고 있고 이 세상과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 사이에서 참된 화목을 가져다주고 샬롬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주어서 치료받게 하는 이 세상을 고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마음의 뜰에서 여전히 거룩한 하나님과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 대속의 십자가와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위해서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리스도를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는 이 비참한 인생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뜰에서 한없이 이 세상을 향하여 중보하며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생명이 없는 사람들을 인해서 참된 제사장으로 중보하고 그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용서함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이 복음이 모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 가운데 줄달음치도록 제사장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의 뜰에서 한없이 엎드려 구속의 보혈의 능력을 이 생명을 잃어버린 세상에 보여주시도록 통회하고 그들을 위해 자복하며 그들을 위해 애곡하는 이런 마음의 뜰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 대제사장의 뜰이 오늘 백성들을 위해서 화목하게 하는 거룩한 직분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로들과 백성의 대표들과 모여서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잡아 죽이고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와 종교적인 입지를 지켜보려고 하는 이 모든 세상의 사람들이 오늘 우리의 마음의 뜰을 다스리고 있습니까?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와 더불어 그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고 나와 함께 힘을 합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힘을 합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 자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자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주간에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청소하는 일들이 일어나야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정한 대제사장의 아문의 뜰이 되어서 고통 하는 이 세상을 위해 전심으로 우리의 마음의 뜰에서 주님을 위하여 고통 하는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면 그 영혼들이 하나님과 진정으로 화목하게 되는 날이 도래하기를 애원하는 이런 삶 속에서 살아가도록 결심하는 고난주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