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언약의 피니라”(마26:28)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설교의 제목은 언약의 피 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본문은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유월절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는 마지막 식사를 통해서 인간적으로는 사랑하는 제자들과 결별하고 그리고 신앙적으로는 이 유월절 마지막 식사를 통해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제 제자들과 함께 식탁을 마주하시고 떡을 떼어 나누어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라. 이것을 받아먹어라” 말씀하시고 식후에는 다시 잔을 가지고 사례하시며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전에는 이렇게 떡을 가지고 그것이 자기 자신의 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떡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이 내 몸이고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이 바로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이 상징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식으로 먹는 빵, 그들이 늘 주식으로 먹는 빵과 그리고 주식으로 마시는 그 음료인 포도주를 가지고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이 떡, 그리고 이 포도주 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별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빵 없이도 얼마든지 살수 있고 포도주는 몇 년이 지나도 한잔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문맥으로 보면 이 떡은 그들의 주식이었고 포도주는 물을 대신한 음료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우리 문화의 맥락에 맞게끔 등가번역을 한다면 이 밥은 내 몸이오, 이 물은 내 피다. 우리들이 밥 없이 살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것은 내 몸이요. 이것은 내 포두주인데 이것은 내 피라고 말씀하셨을 때 문화적으로는 제자들의 마음에 들려오기를 우리를 비유로 말한다면 내 몸은 너희의 밥이오, 내 피는 너희의 물이라 이렇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밥 없이는 살수 없고 물 없이 살수 없는 아주 필수적인 생전의 요소를 들어서 그것이 당신 자신이며 바로 당신 자신이 죽음으로서 우리들에게 이런 양식이 되고 음료가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죽으심이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무엇을 가져다주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 원래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낮고 천한 세상에 내려오셨습니까? 그분이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진 관계를 다시 화목 시키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가장 위대한 일은 화목하게 하시는 역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인간 스스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그래서 하나님과 한없는 거리감과 낯선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의 그 비참한 처지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낮고 천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인간들은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를 계속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하나님과 관계를 계속 가지고 그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지는 자원을 힘입어서 살수 있게끔 인간은 그렇게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처음 하나님이 만드실 때 하나님이 그들을 많이 복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과 말할 수 없는 화목한 가운데 친밀함을 누리고 내적인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정신과 영혼의 필요한 하늘의 자원을 공급해주시고 또 자신의 육체를 위한 이 땅의 자원을 공급해주셔서 인간은 그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창조한 계획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인간이 바로 그 안에 있을 때 그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또 인간은 하나님이 또 그렇게 자기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행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깨트려져버렸습니다 이렇게 깨트려진 것은 오직 인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가 깨트려져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이 지은 죄가 그처럼 무서웠던 이유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언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놓으신 후에 하나님이 그를 많이 복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인간을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는 최고의 훌륭한 관리자로 삼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고 그들에게 단 한 가지를 요구하셨으니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당신의 능력으로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그들에게 누리고 살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그의 마음과 영혼은 찬란한 하나님의 은혜와 지식의 빛 아래 있었고 그리고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안에서 그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창조의 세계를 좀더 잘 가꾸고 보살펴서 이미 있는 하나님의 영광도 충만했지만 그 충만한 영광이 더 충만하게 증대되도록 기여하며 살도록 하나님이 인간을 배려하셨던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인간이 하나님이 이 세상과 자기를 창조하신 계획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모두 받아들인 가운데 거기에서 순종하며 살아갈 것이 예고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당신에게 순종하도록 명령하셨고 그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안 하는지를 하나님도 아시고 또 인간 자신도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동산 한가운데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것 하나를 지키고 순종함으로 인해서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세계의 아름다움을 모두 누리도록 그렇게 지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아름다웠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도 선한 것이었지만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같이 완벽하지는 않았고 또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사람을 기계처럼 만들지 않으시고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게끔 만드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계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에 살면서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싫증은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하나님이 지정해주신 인간의 자리, 그리고 자기를 그 자리에 두신 하나님에 대한 싫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영혼의 싫증 속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할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를 뱀의 유혹을 받아서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셨고 하나님이 지정해주신 자리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모든 우주의 창조된 세계의 궁극적인 지배자가 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세상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범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었고 파기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게 되자 그것을 계기로 댐이 무너지듯이 이 세상에 무너진 둑을 따라서 커다란 흙탕물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되듯이 죄가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비록 선악과 하나를 따먹었지만 그러나 그 선악과의 가치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의미가 문제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에 보면 왕들이 있었습니다. 왕은 무소불의의 권력을 자랑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번 가정을 해봅시다. 한 나라의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가 있는데 거기서 신하 하나가 왕이 앉는 용상을 청소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합시다. 청소는 먼지가 끼니까 해야지 될 것입니다. 청소를 하다가 이 신하가 황제가 앉는 자리에 한번 앉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청소를 하다가 쓰레기와 걸레를 나두고 그 황제가 앉는 용상에 올라가서 앉고 팔을 앞으로 내밀면서 등을 뒤로 제치고 한번 어험! 했습니다. 아무도 안 봤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바로 그 장면이 다른 대신들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그 사람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그 용상에 잠깐 앉았다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 비단이 달면 얼마나 닳았겠습니까? 그러니 그것은 비단이 닳았는가, 의자가 망가졌는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의미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거기 앉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뭘 의미하는가 하면 거기에 앉은 황제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대역죄 중에서도 말할 수 없이 큰 대역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사형을 당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흔히 인간이 그렇게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무엇 때문일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그렇게 선악과를 따먹게 된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찌하여 선악과를 따먹었는가. 그랬더니 아담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내게 주셔서 함께 하게 하신 그 여자가 내게 주었기 때문에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하와 때문에 자신이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하와에게 물었더니 뱀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에 내가 먹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소위 이야기하는 죄에 있어서 작용인에 관한 것입니다. 죄를 작용하게 하는 원인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이런 뜻입니다. 그러나 교리적으로 볼 때 죄의 작용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선한 일을 할 때는 작용인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많이 성화되었습니다. 그때는 우리를 이렇게 성화되게 만든 그렇게 작용하게 만든 원인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성화되게 만든 것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우리를 위해 대신 죽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로가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계속 주님의 성품을 닮아 거룩하게 되어가도록 우리 속에 작용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유효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거룩해졌어도 우리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 이처럼 죄를 이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구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찬송하고 또 우리가 순종함으로 거룩해지기는 했지만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순종을 사용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신 그 성령의 은혜로운 작용인이라고 부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에 있어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아우레리우스 어거스틴 교부는 말하기를 죄는 죄를 짓게 하는 어떤 외부의 작용의 원인이 있어서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결함이 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결함 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어떤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결함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참다운 사랑이 사라지고 나니까 그러니까 그 인간이 속에 있는 것들이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도록 만들어주었던 그 어떤 것이 사라져버리고 나니까 인간은 자연스럽게 범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아담과 하와가 그런 결함인 때문에 죄를 짓게 되고 범죄 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누구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와의 핑계를 대는 아담의 변명도 듣지를 않으셨고 뱀의 핑계를 대는 하와의 변명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 하나님께 대한 은혜로 가득 차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경배하고 있는 동안에만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그런 결함 인으로 말미암아서 범죄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깨달을 수 있는 교리적 사실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고 진 죄에 대해서 전적으로 그것이 인간의 책임이지 누구의 작용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자신의 죄인 된 책임을 전가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결국은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말할 수 없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아까 예를 든 한 사람이 용상에 한번 앉아본 것은 그가 실제로 왕국을 망가트린 것이 아니라 의미적으로만 왕에게 대든 대역죄에 해당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하나님이 지정해주신 자리를 떠나서 타락한 이것은 실제적인 파괴를 이 세상에 가져온 것입니다, 인간의 그 죄로 말미암아서 죄가 물밀 듯이 들어오게 되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연결이 그 죄의 유통으로 말미암아서 다 부서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창조에 깃들어있던 그 찬란한 영광이 단숨에 그 영광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피폐하게 되었고 그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가 버리게 된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해와 달과 이 모든 세계가 만약에 아름다운 전구 조명기구와 같다면 인간은 그 모든 수많은 영광의 빛을 발하는 조명기구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스위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전원은 하나님이시고 스위치가 망가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불이 나가면서 창조하신 세상이 캄캄한 어두움과 파괴가 깃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는 제 멋대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모든 만물들이 고통을 겪었지만 특별히 그 죄의 대가를 단단히 짊어지고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인간이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서 인간은 제일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처음 창조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의 지식의 빛 가운데 그분과 교제하며 사랑 가운데 가족처럼 살도록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면서 태어나면서 하나님께 대한 적대감을 품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고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렇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도 파괴되었습니다. 모든 창조된 세상은 인간의 의해서 돌보아지고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지상의 세계를 임금처럼 다스리고 돌보도록 영광스러운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이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이 생겨나게 되었고 거기에서 인간은 자연에 오히려 지배를 받는 아주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많이 애를 써도 겨우 곡식을 거두는 그런 비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했을 때 그가 온전히 가지고 있었던 하늘과 이 땅의 자원들을 거의 모두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관계도 깨트려지게 되어서 이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과의 평화로 말미암은 진정한 행복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돕고 함께 손잡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위해서 일하는 대신 전쟁과 미움, 갈등과 고통 속에서 서로의 존재 때문에 서로가 불행해진다고 믿고 그들을 대적하고 미워하고 그리고 심지어는 전쟁 같은 것들로 번져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깨트려지게 되어서 이제는 자기 자신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혼돈 속에서 수많은 모순 속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그런 존재가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인간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렇게 비참하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트려진 가운데 자연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사람과의 관계도 깨지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파멸되어 저주받은 자로 영원히 이 땅에 살아가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셨으니 이것은 바로 당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인간을 향한 말할 수 없는 긍휼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자마자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게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여야할 죄인들을 좀더 이 땅에 살려두시고 몇 백 년 사는 동안에 그들은 씨를 퍼트렸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메시야를 약속하셔서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 원래의 창조의 상태로 돌이킬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 죄에서 그들을 구원해낼 메시야를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그 긴 역사는 바로 이 메시야 한분을 바라보고 달려온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간직한 채 살아갔습니다. 여자의 후손 중에 하나가 태어나서 자기들을 이 죄와 죄로 말미암은 이 비참에서 구속하여 아득히 잊혀져가는 그 행복의 상태로 돌아가게 해줄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산 사람들은 하나님이 끊임없는 구원의 지식들을 공급해주셨고 희미하나마 그 지식을 붙들고 그들은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제한된 계시나마 붙들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긍휼을 보여주셔서 그들에게 부분적으로나마 이 땅과 하늘에 있는 자원을 공급해주셔서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을 구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구약의 역사 속에서 드려졌던 제사와 선지자들의 피 끓는 예언에 바로 이렇게 우리를 그 모든 비참의 궁극적인 원인이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실 것이라고 하는 예언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붉은 포도주잔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면서 이것을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득한 붉은 포도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피는 곧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고 피를 흘린다고 하는 것은 죽어간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피를 모두 쏟았다고 하는 것은 생명이 끝났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궁금한 것은 왜 예수님이 흘린 이 피가 언약의 피 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는데 우선 첫째는 예수님이 흘리신 이 죽음의 피가 바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 언약을 깨트린 인간의 모든 죄에 대한 대가였다는 점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언약의 피였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망가트리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기했기 때문에 인간은 영육 간에 모두 철저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임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자신이 행한 죄의 대가를 하나님 앞에 치룰 수는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미 더러운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죄인이 애틋한 마음으로 자기의 죄를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어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하나님 앞에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 속죄할 수 있는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죽어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외아들이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과 언약을 깨트리고 그래서 인간이 저지른 그 모든 죄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배상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모양은 어느 모든 사람들과 같은 모양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셨지만 그분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여느 사람과 같이 않으셨으니 그분은 죄가 없고 흠이 없으신 순결하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의 그 순결한 사람됨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 그 순결한 사람됨과 같습니다. 그렇게 순결하게 창조된 인간이 죄를 범해서 더러워졌으니 그렇게 순결한 사람이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할 때 인간의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으로 내려 보내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망가트려버린 것은 인간이었는데 그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계획은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로 인해서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이 모두 망가지는 아픔을 겪으셨고 영광으로 가득 찬 세상이 죄와 불결로 가득하게 되는 불명예를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서 하나님께 돌아오려고도 하지 않는 인간을 설복하여 당신께 돌아와 고침을 받도록 만드셨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에 동기가 오직 불쌍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이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실 필요가 없었는데 다만 창조하신 이 세상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수도 있었는데 이 땅에 가득한 불쌍한 죄인들, 죄 가운데 태어나 눈이 어두워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언약을 파기한 악한 죄인의 후손들을 차마 멸망하는 것을 보실 수가 없어서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당신의 세계를 파기한 더러운 죄인을 구하기 위해서 당신께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던 사랑하는 외아들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던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지상생애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착한 아들로 하나님이 구원받게 하시려는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오신 예수님의 생애를 적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구유에 오셔서 30년 동안을 다 사셨고 이제는 당신 자신이 죽어야 할 때가 오신 것을 아셨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제자들은 이제 당신을 버리고 도망갈 것이고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 오셔서 먹이고 입히고 돌보셨던 사람들에 의해서 죽임 당하실 것을 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죄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원망하는 대신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주신 그 십자가를 지고 자기가 순결한 하나님의 아들로 철저히 죽임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피를 모두 흘려 하나님과 그 복된 언약의 관계를 파기한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자기는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더라도 당신의 죽이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등진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꿈꾸셨던 것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사람의 상태로서는 이제 마지막으로 만나는 제자들을 지켜보시면서 그들에게 잔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바 나의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신 두 번째 이유는 이 예수님의 피 흘리시는 죽음을 통해서 이제 새로운 언약이 수립될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인간의 순종하는 행위를 기초로 하나님과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약속되었지만 이제 예수님의 이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제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인간이 영생을 누리게 되는 말할 수 없는 축복들이 성취될 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흘리는 피는 언약의 피였습니다. 옛 언약을 깨트린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는 언약의 피였으며 이제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은혜를 받아들이게 하는 새 언약의 완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이 십자가에서 흘리실 그 죽음의 피를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누리는 모든 영혼의 축복과 오늘 우리들이 향유하고 있는 모든 자원의 축복들은 바로 이 언약의 피를 통해서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 피로 우리를 용서하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얼마나 비참한 존재가 되었을까요? 아무 희망도 없이 허망한 세상에 태어나서 허탄한 생각에 굴복하고 죄에 사로잡혀 그리고 허망한 것에 굴복하며 살아가다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왜 죽는지도 모르고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이 세상을 짐승처럼 살다가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주님의 진노 아래서 죽어갈 쓰레기와 같은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지도 않던 때에 주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스른 모든 불순종의 죄와 우리 안에 모든 원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의 사랑을 안 사람들의 헌신적인 기도와 그들에 마음에 배어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짐승 같은 우리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알아듣게 말씀해주시고 알아들어도 그것을 느낄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서 아들을 보내고 그 피를 발라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강철 같은 우리의 마음을 녹이시고 우리의 속에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생각나게 하시고 예수님이 바로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자유롭게 고백하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들이 얼마나 많이 회개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누구도 우리에게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도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 우리 모든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 없이 살아온 우리의 모든 날들이 주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 되어서 살아온 날들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없이 그렇게 어두움 가운데서 자기를 이 세상에 창조하신 목적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살았던 모든 날들을 후회하게끔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악함을 깨닫고 그 죄의 무게에 눌려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었을 때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시지 않았습니까?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모든 길이 하나님 없는 삶이었으며 그리고 우리가 행한 것이라고는 붉디붉은 피와 같이 더러운 죄 뿐이 없었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흘려주신 보배로운 용서의 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모든 생명을 버리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푸시고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원래의 영혼의 아버지를 생각나게 해주신 그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그때에 우리에게 사랑하는 것이 있었습니까? 그때에 우리에게 욕심이 있었습니까? 그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광 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습니까? 세상의 헛된 번영을 추구하고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탐욕이 우리에게 있었습니까?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처음으로 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이 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셔서 아무 가치가 없고 벌래와 같이 더러운 이 인간을 위해서 당신의 흠 없는 아들을 주셨을까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많이 울었습니다. 시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많은 은혜를 누렸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주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인 우리가 예쁘셔서 하나님이 이 땅에 있는 자원도 많이 주시고 또 하늘에 있는 자원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주신 그 은혜의 자원들, 시시때때로 우리의 영혼에 베푸시는 용서의 은총, 그리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 성령의 은혜, 하나님의 말씀의 빛과 그 은혜의 놀라운 깨달음, 하늘을 열고 우리에게 부어주신 이 땅에 많은 자원들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정말 그 처음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저미는 가슴을 끌어안고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하며 울던 때처럼 그렇게 주님이 모든 자원을 오직 그 주님을 사랑하고 그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계획을 완성시키는데 기여하면서 살려고 그렇게 애를 썼습니까?
오히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구원, 천하보다 놀랍고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 놀라운 구원에 대한 감격을 모두 잃어버리고 구원을 아주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무지무각 하게 살아가는 감동이 없는 신앙생활로 떨어지지는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굳어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에게 다시 냉랭한 것이 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자의 일생은 빚진 일생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의 나 된 것,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이 땅의 자원과 하늘의 모든 은혜의 자원이 그분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의 빛 아래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평생 어린아이처럼 그 십자가 아래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 아래서 자신이 다만 형벌 받은 죄인이며 아무 선한 것이 없고 하나님 앞에 아무 희망이 없는 극악무도한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 이런 사랑을 고백했다고 해서 우리가 항상 일평생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주님만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살고 싶고 또 그렇게 살아야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 살 때뿐만 아니라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십자가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굳어진 가슴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 때도 결국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말합니다. 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분이 나에게 무슨 나쁜 일을 하셨단 말인가. 그분에게 죄가 있다면 너를 너무나 사랑한 죄밖에 없다.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는 그렇게 시시때때로 그 사랑의 빚을 지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일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의 주간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 앞에 이 큰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주님 이외의 것들을 사랑한 것에 대해서 참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모두 고백하고 처음 어린아이처럼 그 십자가 아래서 죄에 대한 사랑에 대해 깨트려지고 자기 의에 대해 파괴되며 어린아이처럼 십자가만을 붙든 그때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그 십자가를 굳게 쥐고 살아갑시다. 넘어지고 쓰러져서 주님의 십자가로부터 너무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랑하는 지체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합니다. 그대들이 넘어진 그 자리에 거기서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거기서 바로 여러분들같이 악한 죄인을 위해서 여러분들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하다고 가슴을 두드리는 그런 병든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미끄러진 그 자리에, 넘어진 그 자리, 쓰러진 그 언덕에서 주님을 부르십시오.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이제껏 믿음을 따라서 훌륭하게 십자가를 지며 살아왔던 사랑하는 지체들에게 나는 말합니다. 조금 더 싸우십시오. 이제 최후의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끝까지 인내함으로 주님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실 때 언약의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까지 인내하시며 그대들을 구속의 대업을 이루셨던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고 있는 모든 십자가가 그분이 십자가보다는 크지 않다고 여러분 자신을 타이르십시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으니 내가 그 고난으로 인해서 이 큰 구원의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그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는 찬란한 우리의 영혼의 현재적인 부활을 몸에 부활과 함께 경험합시다. 그래서 늘 실패하고 넘어지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서 언약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