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하늘의 경륜
녹취자: 김경애, 조원정
안녕하셨습니까? 여러분을 이렇게 다시 만나서 매우 반갑습니다. 지난번에 2권의 책 게으름과 새벽기도를 출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약 한달 전에 한국에서 ‘차이스타’라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있는 중국유학생들이 모이는 수련회였습니다. 한 1,200명 정도의 많은 학생들이 모여서 2박3일간 집회를 했습니다. 저를 초청해서 제가 한 타임의 강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고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50명 정도 되는 중국학생들이 저에게 인사를 하고 책에 사인을 받기 위해서 모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책을 사랑해주는 중국독자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2주 전에는 제가 대만에서 일 년 동안에 4권의 책을 출판했고 이런 모임을 가졌습니다. 거기서도 역시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대해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제가 세 번째 책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가족’이라는 책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가슴시리도록 그립다. 가족’이라는 책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한국과 중국은 모두 동양문화권입니다. 그리고 가정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들인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부부와의 관계를 우리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가정에 대한 가치를 우리가 동양적으로 굉장히 중시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정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계실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혼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만 해도 굉장히 금기시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많이 이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섯 가정에서 일곱 가정 정도에서 하나는 이혼을 할 정도입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이 지금 중국도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단지 부부가 이혼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에도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요새 효도계약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부모가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고 싶은데 이 자식이 과연 자신에게 효도를 할 것인가 다시 말해서 먹고 입는 것을 계속 공급할 것인가에 대해서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호사들이 만들어놓은 것이 효도계약서입니다. 그래서 실제 한국국회에서 입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고 자식이 의무를 다 이행하지 않을 때 그 부모가 유산을 회수할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효라는 가치는 동양에서 아주 고귀한 가치였습니다. 그 글자를 보더라도 노인을 아들이 업고 있는 그림이 아닙니까? 그런 것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유산을 안 물려주면 맞아죽고, 조금만 물려주면 볶여죽고, 다 물려주면 굶어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적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은 이제 현대 자본주의 물결들이 몰려들면서 일어나는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이 왜 오늘 우리에게 문제가 되느냐하면 이런 영향이 교회 안에도 밀려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부부관계, 부모관계, 부모와 자식, 이런 관계들이 이미 성경에 의해 영향을 받기보다는 이 세상의 시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시점에서 하나님이 가정을 주신 경륜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가치관을 확고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이 가정을 주신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것을 자신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며 사는 사람들은 더욱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항상 신앙이 충만하고 사랑이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은혜를 많이 받을 때에는 사랑이 많지만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굳게 붙들어야할 것은 이런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원하는 가정의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고히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리를 따라서 실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하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믿지 않는 사람들의 가정과 믿는 사람들의 가정은 구별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믿는 가정이 행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그 가정을 보면서 ‘왜 저 가정은 행복할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행복한 이유가 돈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돈이 많아서 행복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행복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누구든지 돈이 많으면 돈이 없고 쪼들리는 것보다 행복할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독려해줄 수 없는 다른 이유 때문에 행복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은 나보다 가난한데도 저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분명 저 가정에는 우리 가정에는 없는 다른 어떤 것들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통해서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일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 신앙을 갖는데 그게 누구를 향한 신앙인가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저 사람을 붙들어주시니까 저렇게 가난한속에서도 행복하구나! 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이 가정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것은 돈이 어느 정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돈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에는 슈퍼볼이라는 복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당첨자가 없어서 돈이 180억 위안의 당첨금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당첨되었습니다. 180억 위안입니다. 그 돈이 당첨이 되었는데 자동차공장에서 열 명의 노동자들이 돈을 모아서 매달 복권을 사고 당첨이 되면 똑같이 나누어 갖기로 한 사람들 중의 한 표가 당첨이 되었습니다. 열 명이 모여서 돈을 내서 계를 만들어서 항상 같이 사는데 그중에서 당첨이 되면 똑같이 나누어갖기로 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당첨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18억 위안씩 나누어가졌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에 방송국에서 그 사람들이 정말 행복해졌는지를 추적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불행해졌습니다. 제일먼저 한 일은 제일 좋은 차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하는 일은 이혼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세 번째 하는 일은 집을 사는 일이었습니다. 네 번째 하는 일은 다른 여자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하는 일은 알코올중독에 걸리거나 마약중독에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재산을 모두 허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돈이 인간을 절대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찾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에 대해서 반대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봐라 주위의 이혼하는 많은 사람들을 봐라. 대부분 다 돈 때문에 이혼한다.’ 그런데 결혼에 있어서 돈이 행복을 좌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돈이 없기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이혼하는 것입니다. 저도 결혼을 해서 정말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반찬을 거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혼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그런 것들을 극복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처음 결혼해서 어려움을 모두 같이 극복한 아내를 가리켜서 조강지처라고 이야기합니다. 거친 곡식을 함께 먹으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것은 결국은 물질이 없기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이혼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가정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세상적인 관점을 가지고 가정을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오히려 이 가정을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의 틀 안에서 이해해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가정을 통해서 인류를 번성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이것은 가정을 통해서 사람이 태어나고 그 사람이 이 세계를 가꾸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원리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모든 창조물 중에 맨 마지막에 창조하셨습니다. 맨 마지막에 모든 세계를 완전히 만들어놓으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먼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셔서 남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를 정복하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여자는 흙으로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갈비뼈를 취해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사실상 하나의 사람으로 여기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여러분의 중국은 남녀가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교육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남녀평등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요새는 오히려 여자들의 힘이 훨씬 세져서 남자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위 여성상위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여성들의 지위는 매우 낮았습니다. 저는 실제로 교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은 흙으로 직접 만드셨지만 하와는 남자의 부품으로 만드셨으니까 남자가 더 우월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그래도 여자는 신제품입니다. 남자를 만든 다음에 신제품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도 새로 만든 것이 옛날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재료를 보더라도 남자는 흙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몸의 일부를 떼어서 만듭니다. 훨씬 수준 높고 고급의 재료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더 깊은 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을 한 몸으로 창조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든 것입니다. 그 여자를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데려오실 때 아담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보십시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이는 히브리어 표현에서 아주 최상의 표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몸의 살 중에 실제로 잘라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살이 있습니다. 그러나 심장의 살은 손톱만큼만 잘라져나가도 절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살 중의 살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한 몸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이 성경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희랍의 신화에 보면 비슷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인간이 원래 남녀가 하나로 되어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녀가 하나가 된 사람이 워낙 고상한 진리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신들의 지위가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들이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인간을 잘라놓습니다. 인간이 계속 지식이 성장하다가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이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진리를 멀리하고 짝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것을 가지고 동성애까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로 되어있던 사람들은 남녀를 찾아서 헤매고 남자와 남자로 되어있던 사람들은 남자를 찾아다니고 여자와 여자로 되어있던 사람들은 여자가 여자를 찾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되어있었는데 신들이 이것을 나누어놨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 합쳐진 상태에서는 다른 잡념이 없이 진리를 찾아서 사람이 고상해져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들이 보니까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을 받을 정도로 인간이 너무 훌륭해져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어느 정도 되면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진리를 찾아서 고상해지지 못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설명을 성경적으로 모두 받아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남녀 즉 부부가 하나가 되어야한다는 사상이 이미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두 사람을 서로 사랑하게끔 하셔서 결합하게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신기합니까?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무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육체적인 결합을 통해서 생겨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육체적인 결합은 죄가 들어오지 않아도 인류에게 계속되어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성적인 결합이 커다란 기쁨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동산을 에덴이라고 합니다. 히브리말로 이것을 여성용으로 사용하면 ‘에드나’ 가 되는데 성적인 기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런 놀라운 기쁨을 주셔서 육체적인 결합을 촉진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동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동물은 본성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인간과 같이 영혼사이에 나오는 사랑과는 다릅니다. 그렇게 해서 여성들이라는 이 여성의 몸은 하나의 신비한 생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생산해낼 수 있는 놀라운 몸인 것입니다. 여자들이 보호받고 사랑받아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두 사람을 결합시켜서 한 가정을 이루게 하십니다.
자, 그런데 그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난다고 칩시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신기하게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젖을 먹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젖을 빨아먹는 것을 학습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를 낳았을 때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전혀 학습한 적이 없는데 엄마의 젖을 입에 댈 때 아이는 그것을 빠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에 20그람씩 아이는 살이 찌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제일 먼저 만나는 세계가 엄마입니다. 그 세계가 전부 다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자라는 것입니다. 엄마의 절대적인 보호 속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엄마는 그 아이를 위해서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엄마가 아이를 보호한 기사를 읽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엄마는 온 몸이 다 상하고 아이를 품에 안고 엄마는 죽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엄마가 아이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사랑입니다. 그런 속에서 아이는 계속 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세계에 대한 지식을 엄마를 통해서 배웁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진짜 좋은 엄마를 만나는 것입니다. 아빠는 아이가 충분히 자란 다음에 엄마의 어깨 너머로 만나는 그 다음 세계가 아빠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지금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부모가 아이를 살해한 사건이 최근 10년 동안에 230건에 있었습니다. 아주 갓난아이거나 조그만 아이일 때 부모가 아이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제는 엄마의 사랑도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것들은 이미 벌써 이 세상에 있는 풍조들이 사람들에게 ‘네 행복이 제일 중요하다.’ 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극도의 물질적인 숭배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정신들이 황폐해져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엄마가 되기 위해서 혹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자기가 마음속으로 생각해야할 희생의 양이 예전에는 컸었는데 지금은 작기 때문입니다. 그냥 가족들이 아주 가난하게 살더라도 함께 사랑을 나누면서 사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이미 상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을 지켜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주신 뜻은 이것입니다. 거기서 자녀들이 참으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부모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가정이 없이는 거기서 사람다운 사람이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자녀들에게 정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야할 것인가를 가르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결혼시키는 장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2장 23절 24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최소한의 결혼의 원리를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사랑의 원리입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고 고백합니다. 그런 고백에 의해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섭니다. 그러니까 결혼의 목적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어야지 다른 것들이 결혼의 토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결혼이 어떤 정략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진다든지 그런 것은 성경적인 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그것이 우리들이 흔히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그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혼하기까지만 사랑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사랑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결혼하기 전에 연애할 때에는 그런 사랑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연애를 할 때 ‘저 사람을 사랑할 수 없어도 사랑하도록 노력해야지.’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귀다가 헤어지고 사귀다가 헤어지고 자꾸 그럽니다. 그런데 결혼은 그럴 수 없습니다. 결혼한 다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들 때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힘들 때에도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약속하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굉장히 신중하게 생각해야합니다. 쉽게 무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 그런데 우리들이 같이 서로 살아가는 것은 가끔 만나서 연애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연애를 하고도 몰랐던 면을 결혼을 하고나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미 결혼하기까지만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결혼한 사람이 계속 살아가면서 계속 사랑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그렇게 끊임없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솟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결국 그 사람의 인간성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완성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끊임없이 완성되어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어려울 때마다 자신의 부족을 깨달으면서 다시금 자신이 새로운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그렇게 하기로 하는 약속입니다.
여기에 보니까 아직 결혼하지 않으신 남자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충고가 있습니다. 어떤 여자를 만나야 행복할 것인가 입니다. 물론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신앙심이 좋은 여자와 만나야합니다. 그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것 외에도 또 중요한 요소가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 여자의 엄마를 보는 것입니다. 그 엄마가 남편을 너무 사랑하고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던 엄마라면 결혼에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그 자매가 자기에게 시집을 올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남자들은 여자의 외모가 첫 번째 요소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자가 친구에게 ‘나 선보고 왔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여자 친구들이 물어본답니다. ‘그 사람 잘생겼어?’ ‘그 사람 학교는 어디 나왔어?’ ‘직업이 무엇이야?’ ‘아빠는 부자야?’ 그렇게 많은 것을 물어본답니다. 그런데 남자가 선을 보고 왔습니다. ‘나 선보고 왔어.’ 친구들이 둘러앉아서 물어봅니다. 첫 번째 사람이 물어봅니다. ‘예쁘게 생겼어?’ 선 본 남자가 말하기를 그 여자가 재능도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는 피아노도 잘치고 직장도 좋은 곳에 다닌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다음 친구가 또 물어봅니다. ‘그런데 잘생겼어?’ 세 번째 친구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그렇게 물어봅니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중국에서는 어떤 것입니까? 남자들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 여자들이 지루해하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한국에서는 군대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축구이야기입니다. 그럼 한국에 있는 남자들은 여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싫어하겠습니까? 이것에 대해서 한국남자들이 똑같이 말합니다. 못생긴 여자가 하는 모든 이야기입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미모를 중시합니다. 왜 그렇게 웅성대십니까? 불평하시는 것입니까? 그런데 제가 보기에 여러분은 그렇게 불평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결혼을 하고 나면 그 외모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아내가 아주 예쁘게 생기면 모임에 갈 때 기분이 훨씬 좋을 것 같기는 할 것입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정말 아내가 탤런트처럼 예뻤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면 친구들이 모두 ‘배우하고 결혼하니?’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할머니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허무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미국의 톰 크루즈라는 배우를 아십니까? 그 부인이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니콜 키드먼이었습니다. 그림같이 예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헤어졌습니다. 결혼은 그런 연애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랑을 계속 가꾸어갈 수 있는 정신적인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인류를 사랑하는 쉽습니다. 어차피 추상명사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만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는다 해도 그는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말입니다.
한국에서도 자살의 문제가 심각하고 중국도 심각합니다. 한국과 중국은 세계에서 자살률이 매우 높은 나라에 속합니다. 자살의 심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밖에 없을 때 죽는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타인에게서 발견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삶을 접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사랑하는 아기가 있는 엄마는 결코 자살하지 않습니다. 자살의 심리는 사랑의 끝입니다.
여러분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중국어에 나오는 사람인 자에 나오는 선생님의 설명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선생님이 어린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된 자와 이렇게 된 자가 만난 것이다. 만약에 이것이 하나만 서 있다면 이것이 쓰러질 것이다. 그래서 두 개가 이렇게 만난 것이다. 그 설명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설명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은 이런 설명이 성경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사람을 만드실 때 그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셨습니다. 인간 존재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만드십니다. 히브리말로는 ‘아파르’라는 단어입니다. ‘티끌’입니다. 그 전토를 보면서 나의 존재라는 것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구나. 나의 육체가, 그걸 인간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하나님 의존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또한 인간을 의존합니다. 어려서는 엄마를 의지합니다. 자라면서는 아빠를 의지합니다. 장가가려면 아빠가 돈을 줘야 합니다. 유산을 물려 줄 때도 아빠가 물려줍니다. 성장해서는 남편을 의지합니다. 혹은 아내를 의존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를 의존합니다. 끊임없이 인간은 다른 사람을 의존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의존하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저는 한국이나 중국 사회를 보면서 가장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서구의 극단적인 물질주의와 자본주의 풍조들이 밀려들어 옵니다. 수시로 우리는 물질이 최고라는 사상을 주입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것들을 네가 누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 이하의 삶이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물질을 많이 누리는 삶의 나라의 사람들이 인생의 만족도를 많이 누릴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의 만족도는 아프리카 이런 나라들에 나오는 것입니다.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부에게 한번 적용시켜 보십시오. 자기 혼자 살아갑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물론 부모님이나 가정이나 직장 생활 하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하고도 같이 살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내 혹은 남편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려고 하다 보니 그것이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잘 안 맞는 것입니다. 연애할 때는 그래도 마음이 잘 맞았었는데 결혼하고 나서 잘 안 맞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힘으로 해서 여자들이 자기 말을 듣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은 주먹으로 때리는 이런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자기의 지위에 굴복하는 여자, 돈이 많으면서 돈의 위력에 굴복할 수 있는 여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 욕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부부관계는 그런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대등한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관계여야 합니다. 여자도 미모나 어떤 다른 것으로 남자를 지배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인격적으로 서로 사랑합니다. 결점을 발견합니다.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됩니다. 그럴 때 나는 괜찮은 인간인데 저 사람은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럼 저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결국 관계가 깨어집니다.
정상적인 신앙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저 사람에게도 결점이 있지만 나에게도 있구나. 내가 이런 점에서 저 사람을 끝까지 사랑을 못하구나. 그것을 결혼 생활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은혜를 빕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아픕니다. 왜냐하면 부모님한테는 그렇게 자기를 꺾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불행한 장가를 드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그것은 이런 여자를 얻는 것입니다. 막 발을 구르고 떼를 쓰면 엄마 아빠가 모든 것을 해주는 여자를 만나면 반드시 불행해집니다. 남편한테도 똑같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얼굴이 기가 막히게 예쁘다고 합니다. 연애할 때는 그것을 용납해 줍니다. 결혼했는데도 계속 그럽니다. 그것을 받아줄 남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연애는 감정이지만 결혼은 생활입니다. 끊임없는 자기반성이 요구됩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자기의 부족을 못 느끼는 사람은 진정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아내를 잘 사랑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아내를 정말 사랑했어. 우리 아내는 죽었다가 살아나도 나 같은 남자는 절대 못 만날 거야. 우리 아내 같은 사람이 나를 만난 것은 하늘의 복을 받은 거야. 그런 사람은 진짜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내가 여보 당신은 나를 너무 사랑해줬어, 고마워. 하고 말할 때 정말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야지 진짜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을 끊임없이 사랑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 이런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름답고 예쁜 것을 볼 때 사랑이라는 것이 생겨납니다. 추하고 잘못된 것을 보면 싫은 감정이 생겨납니다. 남편을 만났는데 남편이 결혼하기 전에는 모든 것이 마음도 몸도 완벽했습니다. 결혼하고 나니 자꾸 결점이 눈에 띄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만 내버려두면 여기에서 싫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습니다.
(예화) 한번은 제가 결혼 주례를 써준 부부가 결혼 한지 석 달 쯤 되었을 때 아내가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나 이남자하고 못 살겠습니다. 왜 그러냐? 너희는 사랑한다고 3년 반 동안 연애 했지 않느냐?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하고 못 살겠습니다. 이 남자가 나를 때립니다. 내가 화가 이렇게 났습니다. 그런 나쁜 녀석이 있나? 당장 경찰에 고발해서 감옥에 집어넣어 버리라. 내가 가만 안 내버려 두겠다고 하고 잘 달래서 보냈습니다. 당장 그 녀석 오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 왔습니다. 내가 화가 나서 이야기 했습니다. 네가 아내를 때렸다며 어디 그런 나쁜 짓을 하느냐? 내가 설교 시간에 절대로 아내 때리면 안 된다고 이야기 했지? 너는 정말 나쁜 놈이다. 그랬더니 이 형제가 제가 때렸다기보다는 덤벼들고 싸우다가 밀친 것을 맞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너희 들 결혼 한지 석 달 밖에 안 되었는데 왜 그러냐? 이 형제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3개월 반 동안 한 번도 아침을 안 만들어 줬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나는 이 여자가 그런 여자인 줄 몰랐답니다. 이 형제는 아주 힘들게 육체적인 일을 하는 형제입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가야 일을 합니다. 나 아침 좀 채려줘 하고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이불을 확 뒤집어쓰면서 난 졸려 더 자야 해. 그것을 석 달 동안 했습니다. 내가 뭐라고 한지 아십니까? 맞을 짓을 했네. 그런 단점들이 살면서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발견이 됩니다.
단점들이 발견 될 때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 저 여자에게 저런 단점이 있기 때문에 그 여자가 혼자 살면 영원히 모자라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저 여자의 남편으로 만들어서 보충해 주라고 만드셨구나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여자의 모자라는 어떤 점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웃지만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말할 줄 모릅니다. 아니 그렇게 힘들어서야 어떻게 결혼을 하겠습니까? 그럼 혼자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혼자 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것은 이렇게 해도 힘들고 저렇게 해도 힘듭니다.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 사람이 어차피 산다는 것이 시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자신이 온전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를 완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아내가 약간 결함이 있는 여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더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자매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저는요 결혼 상대를 생각할 때 저는 돈이나 높은 지위 바라지도 않습니다. 좋은 대학을 안 나와도 괜찮습니다. 정말 존경할 만한 인격을 가진 사람하고 결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내가 너에게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30년 연상 남자 중에 한번 찾아봐라. 두 번째 방법이 있다. 그냥 위인들의 신앙 전기를 읽으면서 혼자 살아라. 너하고 결혼할 만한 나이에 그런 사람 없다. 설령 있다고 치자. 그렇게 훌륭한 남자가 왜 너한테 장가를 오니? 더 멋있는 여자한테 가지.
(찬양)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그냥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만나는 것입니다. 저는 스무 여섯 살이었고 우리 집사람은 스무 네 살 때 결혼했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신학교 졸업반이었고 목회자의 아내가 되어서 목숨도 버리겠다고 각오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평생소원이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며칠에 한 번씩 다퉜습니다. 다 그냥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만나는 것입니다. 제가 결혼 한지 36년째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말다툼하고 싸운 지 22년 전입니다. 그 후로는 말다툼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막 집어 던지고 욕하고 싸운 적이 없습니다. 좀 소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리를 높인 지가 22년 전입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그 사이에 그런 것들을 보면서 다투기는 했지만 나에게 이런 것이 부족했구나 하며 서로 깨닫는 것입니다. 진짜 살다보면 정말 사랑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기 힘들 때 그 고비를 넘기면 결혼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 고비를 못 넘기면 불행한 일이 일어납니다.
(예화) 어떤 남자가 아주 나쁜 아내와 살았습니다. 늘 남편을 무시하고 괴롭혔습니다. 남편이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여보, 내가 죽어도 행복하게 살아야 해. 내가 죽으면 망설이지 말고 수절하지 말고 빨리 재혼하도록 해. 아내가 너무 놀랐습니다. 이 인간이 죽을 때 되어서야 철이 드는구나. 그래 여보, 당신의 마지막 유언이니까 내가 뭐든지 들어 줄게. 그런데 여보 내가 죽거든 다른 남자하고 결혼하지 말고 아무개 그 남자하고 꼭 결혼해. 부인이 깜짝 놀랐습니다. 왜? 여보 그 남자는 당신하고 동업했던 사람이잖아. 당신 사업을 다 망쳐 놓고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이잖아. 알아. 그게 그놈한테 할 수 있는 복수야.
살다가 보면 이 여자하고 어떻게 이 긴 일생을 같이 살까 하고 괴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친구가 얘기했습니다. 자네 결혼 10주년 이라며? 그래 맞아 나 10주년이야. 자네 부인에게 10주년 기념으로 무슨 선물을 해 줄 거야. 우리 아내가 10년 동안 하도 고생을 해서 호주 여행을 시켜주기로 했어.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정말 대단하다. 10주년에 그렇게 큰 선물을 해 주면 20주년에 무슨 선물을 해 주려고? 그때 가서 데려와야지. 사실은 한 시대에 유행하는 유머 속에는 결혼생활의 힘든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한때 유행하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 결혼 20주년 맞았다며? 아내에게 뭘 선물했어? 다이아몬드 큰 거 하나 선물했어. 친구가 물어 봤습니다. 왜 그랬어? 너 부인은 항상 지프차를 갖고 싶다고 했잖아.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야, 이 사람아. 지프차를 어디에서 가짜를 구하겠느냐? 결혼하면서 남편이나 혹은 아내와 살다가 너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할 것인지 그 방법을 가르쳐 드리면서 모든 순서를 마치겠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대판 싸웠습니다. 남편이 화가 나서 직장을 갔습니다. 부인이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자기가 심하게 한 것 같았습니다. 전화를 한 번 할까 하다가 자존심이 상해서 내려놨습니다. 여보, 점심은 먹었어? 하고 문자를 썼는데 차마 보낼 수가 없어서 껐습니다. 하루 종일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관계를 풀어야 하는데 그럴 때 남편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직장을 퇴근했습니다. 선물 가게를 갑니다. 여기에서 열이 뻗칩니다. 선물을 사주라고? 미쳤다. 이렇게 못된 마누라한테 왜 내가 선물을 사줘야 해? 자신에게 말합니다. 참아라.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준다고 해라. 불끈 불끈 쏟아 오르는 것을 계속 누르고 선물을 사는 것입니다. 선물을 어떤 것을 사야 되는가 하면 아내가 갖고 싶지만 비싸서 못 사는 것,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내 자신만을 위한 것, 아내에게 고무장갑이나 비누 그런 것 사다 주면 안 됩니다. 거금을 꺼내서 반지 하나를 샀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아내에게 갑니다. 아내는 하루 종일 남편한테 잘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문자를 보낼까? 전화를 할까? 고민을 하는데 남편이 들어옵니다. 뭐라고 말을 건네야 할지 모릅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는 말을 못합니다. 그래서 딴 이야기를 합니다. 어, 날씨가 많이 춥지? 그때 남편이 꽃다발 멋있는 것 하나를 아내에게 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여보, 아침에는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아. 당신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 당신한테 내가 너무 미안해서 조그만 선물을 하나 샀어. 하고 반지를 내밉니다. 아내가 그것을 딱 열어 보니까 자기가 너무 갖고 싶었던 비싼 반지입니다. 사실은 아내가 더 많이 잘못했습니다. 그때 아내는 너무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잘못했는데 자기가 잘못했는데 자기를 야단치는 대신 이렇게 잘못했다고 선물을 갖다 줍니다. 그때 아내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너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아내에게 복수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말이니까 쉽지 실제로 한번 해보십시오. 사랑스러울 때 선물하는 것은 쉽습니다. 너무 싫습니다. 한번 싸우고 싶습니다. 네가 잘못했잖아. 네가 뭘 잘못했는지는 알아? 왜 나를 이렇게 구박해? 그렇게 화가 뻗칠 때 그때 선물을 해 보십시오. 자기 자신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합니다. 선물을 사다가 갖다 줍니다. 그게 하도 여러 번 되니까 선물을 받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오늘도 꽤 미웠구나. 선물이 이렇게 비싼 거 보니까 오늘은 특별히 미웠구나. 그러면서 한번 웃고 그러고 나면 아내가 진심으로 내가 잘못했다.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런 일이 있고나면서부터 사랑이 다시 쌓이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자신도 완성되어 갑니다. 누구도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자매들에게 불행해지는 결혼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립니다. 형제가 나타나서 이런 말을 합니다. 진짜 사랑해. 너 아니면 아무도 안 돼. 나는 너를 위해서 생명을 다 바칠 거야. 네가 나와 결혼해 주지 않으면 나는 죽어버릴 것 같아. 이런 게 여자들의 로망입니다. 그런 남자하고 결혼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불행해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결혼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오히려 남자를 보면서 이 사람이 약속한 것을 성실히 지키면서 함께 노력해 갈 수 있는 사람인가? 그런 발전 가능성을 봐야 합니다.
여러분도 한국 드라마 좋아합니다. 거기에 보면 대개 뻔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항상 재벌 2세가 나옵니다. 그런데 백화점 점원이나 아르바이트하는 평범한 가난한 집안의 여자하고 사랑에 빠집니다. 회장 직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면서 그 여자를 뜨겁게 사랑합니다. 한국에서 재벌 2세는 그런 드라마 안 봅니다. 대개 알바 하는 여학생들이 그것을 들여다보고 꿈을 꿉니다. 모두 환상입니다.
결혼은 현실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연애하는 것은 바닷가에서 둘이 어깨 동무를 하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함께 배를 타고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만 느끼는 사람하고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사랑할 뿐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가정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사랑입니다. 누구도 이미 그 사랑에 도달했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 안에서 자가 발전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계속 그 사랑이 부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할 수 있을 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을 때에도 사랑하면서 가정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가정을 이루어 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금 강의한 내용이 아니라도 뭐든지 질문하면 제가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질문 1) 성경에서 순종하라는 것을 가르치는데 가정에서 어떻게 순종해야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요?
답변 1) 성경은 특히 에베소서, 골로새서에서 가정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합니다. 가족들과의 우선적인 덕목이 있습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자식이 부모에 대한 것은 공경입니다. 남편이 아내에 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아내의 남편에 대한 것은 복종입니다. 그런데 이 복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질서 안에서 복종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노예적이고 위계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이것은 질서 안에서의 순종을 가리킵니다. 당연히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원리를 파괴하지 않는 질서 안에서 순종이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순종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같은 시대에는 한국에서도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좀처럼 순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남편이 아내가 인격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결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명령이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 주어진 사실이라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상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남편입니다. 당연히 그런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성경에는 피차 복종하라는 말도 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이면 아내나 남편이나 피차 복종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남자이기 때문에 복종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질문 2) 아까 말씀하시기를 결혼 전에는 사랑하지만 결혼하려면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데 같이 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같이 살아갈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인지요?
답변 2)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선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만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같이 직장생활 한다고 칩시다. 저 사람이 상사인데 내가 저쪽 부서로 가면 내가 저 사람하고 잘 일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뜨거운 감정만이 아니라 냉정하게 이 사람과 함께 삶을 같이하면서 살아갈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사람하고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가? 이런 것들입니다. 남들을 어느 정도 배려하는 사람인가? 인간성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이 사람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 아내하고 9년째인데 결혼한지는 5년입니다. 직장 때문에 떨어져 삽니다. 아내보고 이곳에 오라고 하니까 합당한 직장을 못 찾아서 저번에도 올까 했는데 못 왔습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데 가면 남편이 할 수 있는 합당한 직장이 없으니까 가기만 하면 이혼 하겠다고 합니다. 딸이 지금 3세인데 나와 같이 있고 유치원 다니고 있습니다. 아내는 아직 예수를 안 믿습니다. 어떤 때는 자기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답변) 제일 중요한 것은 충분히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거기에 좋은 직장이 있기 때문에 이쪽으로 올 수 없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갑니다.
질문자) 지금 소통을 잘 못합니다. 대화를 나누려면 아내가 화를 내서 엄두도 못 냅니다.
답변)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정신적인 결합이 매우 약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내에게 결혼 생활을 지속하려고 하는 의사가 있는지 정확하게 타진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에 혼인 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남편과 함께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공무원입니다.) 아내가 올 수 없는 입장이라면 남편이 여기에는 직장보다 좀 못하더라도 가서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봅니다.
질문자) 아내는 이렇게 안하고 오면 이혼한다고 합니다.
답변) 아내가 그런 식으로 반응한다면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여기에 있는데 아내가 자주 옵니까?
질문자) 하지만 아내가 이쪽으로 오겠다고 시험은 봅니다. 주말마다 딸 보러 옵니다.
답변) 극단적으로 이혼하겠다고 나오는 말이 자주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내가 원하고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남편이 원하고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충분히 서로 나누고 그것을 서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 생각에는 먼저 직장 옮기는 것보다 무엇이 남편과 아내 사이의 충분한 의사소통을 못하게 했는가를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질문자) 아내가 반항심이 있습니다. 오라고 하면 더 안 옵니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고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마음입니다.
답변)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잘 극복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내도 사랑의 고갈을 느꼈다면 내가 어떤 점에서 부족했는가를 생각하며 아내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랑을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질문 3) 아직 결혼 안 했습니다. 여자 친구와 1년 반 사귀고 있습니다. 여자 친구는 불신자입니다. 결혼해 주기를 원하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나도 여러 면에서 부족하고 예수 믿어도 완벽하지 못하고 사랑도 그렇게 많지 못하고 ... 계획은 예수 믿는 중에 결혼하려고 하는데 그때까지 예수 안 믿으면 결혼을 해야 합니까? 안 해야 합니까?
답변 3) 우선 원리적으로는 결혼은 하나님의 자녀와 자녀가 결혼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좀 부족한 것이 본인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자매에게 아주 친절하게 사랑으로 잘 해주고 그래서 이 사람하고 꼭 결혼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 자매의 구원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최소한 교회에 가서 학습을 받게끔 해서 최소한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하는 고백을 하게 한 후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질문자) 영접기도 안 해도 결혼 할 수 있습니까?
답변) 영접기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사람의 마음에 주님을 믿는 마음이 생겼나가 중요합니다. 자매를 많이 사랑하고 마음에 충분한 소속감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