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러 테제와 개혁신학의 미래
(The Mullerian Thesis and the Future of Reformed Theology)
녹취자: 김경애
Ⅰ. 들어가는 말
오늘 멀러 교수님을 처음 뵈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예전에 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저분이 왜 그렇게 오늘날 이 개혁파 신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도대체 저 양반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 개혁신학과 나아가서는 교회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들이 먼저 이해되어야지만 그래야지만 저분의 책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것이고 또 여러 가지 논의에 참여할 생각도 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관심사는 리처드 알프레드 멀러라는 한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하고 있는 신학적인 작업들이 우리에게 함의하는 바가 너무나 충격적이고 그리고 이 충격적이라는 말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고안해냈기 때문에 충격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우리들이 편견에 의해서 보지 못하고 있었던 신학연구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었다는 점에 있어서 충격적이니까 사실 이 충격의 궁극적인 저자는 리처드 알프레드 멀러 자신이 아니라 이미 17세기에 있었던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그 저자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잠시 후 소개하겠습니다만 흔히들 이것을 가리켜서 멀러테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멀러테제라는 말 자체는 사실은 멀러 교수 자신은 매우 싫어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멀러테제라는 그 테제는 당신 자신이 발견한 테제가 아니라 이미 있었던 것인데 너무나 오랫동안 여러 가지 편견에 의해서 잊혔던 것들을 다시 보여주었을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멀러테제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1980년도 초반기에 총신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신학을 공부했고 신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고 그러다가 이제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느 교수님이 명시적으로 이렇게 가르쳐준 것은 아니지만 신학교육을 받으면서 이런 인상을 받았고 또 그중의 어떤 것들은 직접 교수님들에 의해 언명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중세는 종교개혁과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이 중세를 반발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이 아주 순수한 성경적 신앙을 재건하였는데 그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의 제자들이 1, 2세대 종교개혁 자들의 순수한 가르침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그게 루터 파에서는 멜란히톤이 주범이고 칼빈파에서는 베자라는 사람이 주범이었다. 그들의 커다란 과오는 종교개혁자들이 세워놓은 성경적이고 신앙중심적인 신학을 이성주의와 스콜라 철학을 도입해서 변형시켜놓았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개혁신학의 내용들이 훼손되어서 별 가치가 없는 신학적 결과물들이 되었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이렇게 놓고 결국은 중세와 종교개혁 사이에 획을 긋고, 그 다음에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이후의 정통 개혁파 사이에 줄을 긋고, 그러고 나서 그 다음에 종교개혁가들이라고 그랬는데 종교개혁가들 중에서 루터는 너무 신앙 중심적 주관주의에 빠졌고 또 그는 급히 종교개혁을 만들었고 사실은 그래서 잘못된 요소들이 많았는데 칼빈이 그 모든 것들을 조정해서 완전한 형태의 개혁신학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루터는 잘라져나가고 그 다음에 같은 시기에 있었던 츠빙글리나 그 다음에 블링거나 그런 사람들은 왜 그런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연스럽게 떨어져나가고 그리고 칼빈 한사람이 남았는데 칼빈의 저작이 지금 제 기억으로는 ‘칼빈 오페라’를 가지고 있는데 55권인가 그렇게 알고 있는데 그렇게 많은 저작들을 썼지만 이제 그가 쓴 논쟁적인 작품들이나 편지 같은 것들은 아예 번역이 안 되었기 때문에 잘라져나가고 주석은 너무 기니까 생략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남아있는 것이 ‘기독교강요’ 그것도 세 번에 걸쳐서 증보되었지만 그저 마지막 것이 제일 좋으니까 앞의 1판, 2판은 잘라내고 마지막 최종판이 남은 것입니다. 그것이 곧 개혁신학의 전부인 것처럼 외로운 섬 하나 ‘기독교강요’ 그것이 개혁주의와 일치를 하고 그것이 어떤 신학을 개혁신학적이냐 아니냐를 재는 거의 유일한 Norm이 된 것입니다. 기준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제가 받은 인상이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이것이 이 전체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 사이에 있는 이 단절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내세운 테제가 ‘슐라이마허 테제’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슐라이마허 테제 하에서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런 식으로 가르치고 또 생각을 했으면서 정작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그러면 개혁파의 신학적 유산 특별히 교의학의 유산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그것은 우리는 유럽 쪽의 신학자들보다는 미국 쪽의 신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루이스 벌콥 그 다음에 더 위로 올라가면 찰스 하찌라는 인물이 나오고 사실 그 두 사람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은 굉장히 큽니다. 그런데 찰스 하찌가 쓴 조직신학 책이 사실은 개혁파 정통주의 시기에 나왔던 프란시스 튜레틴이라는 칼빈이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17세기에 존 오웬과 같은 시대에 활동하던 사람의 소위 ‘변증신학강요’라는 그 책을 정리해서 만든 것이 찰스 하찌의 조직신학 책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모순이 굉장히 명백해집니다. 그래도 사실은 이런 모순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거의 모르면서 신학 작업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멀러 교수가 이제 이러한 기존에 알고 있었던 테제가 상당히 잘못된 편견에 의해서 확인도 되지 않은 채 전승되어 내려온 습관적인 편견이라는 사실을 방대한 문헌을 통해서 섭렵해 내면서 이제 소위 멀러테제라고 하는 것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멀러 교수 자신이 말씀하듯이 멀러 교수님이 연구하는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연구하던 사람들이 모두 당신의 가르침을 받거나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화란 같은 데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멀러 교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런 종류의 종교개혁과 그리고 개혁파 정통주의의 연속성의 문제를 가지고 신학 작업을 하던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고 거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스위스에도 있었고 독일에도 있고 등등 여러 나라에서 그런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소수이기는 했지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Ⅱ. 개신교 정통주의란 무엇인가?
A. 정통주의의 정의
우선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들이 다 살펴볼 터인데 먼저 이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계속 오늘 강의에서도 나왔던 소위 개신교 정통주의 혹은 개혁파 정통주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먼저 정의해야지만 될 것 같습니다. 원래 이 개혁파 정통주의라고 할 때 이 정통이라는 것은 영어로 Orthodox 라고 하는 것인데 오르도가 결국은 질서 혹은 길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Orthodox, 정통주의라는 것은 '올바른 가르침' 혹은 '견해'라는 뜻이었고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자들이 제기했던 최대의 화두였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어쨌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해서 사도들, 신약성경, 속사도 교부들, 초대교회 교부들, 중세 교부들, 이렇게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거쳐 왔지만 어쨌든 예수님과 사도들이 교회의 터를 놓을 때 견지했던 그 정확하게 일치하는 올바른 가르침이라는 것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똑같은 형태로 하나의 막대기처럼 존재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처럼 계속 성장해나가고 덧붙여져 나간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의 발전입니다. 그렇지만 덧붙여진 것 중에 어떤 것들이 정통적인 것을 역사적으로 정당하게 펼치면서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성장한 것인지 아니면 덧붙여진 것들이 잘못되어서 원래 있던 것 자체를 굽게 하였는지의 문제가 분간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통의 문제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이 이제 자신들이 중세의 교회로부터 종교개혁을 할 때 제일 먼저 제기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과연 우리들에게 광범위하게 살포되고 있는 이 기독교에 대한 견해가 참으로 근거가 있는 성경과 사도의 가르침,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통적인 것이었는가? 하는 것이 화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성경이 쓰일 당시부터 이미 벌써 참된 가르침이 있고 곁에는 너무나 가까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거짓된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거짓교사들을 조심하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은 어떻게 됩니까? 초대교회에 오면서는 더 펼쳐집니다. 중세에 와서도 많은 잘못된 가르침들이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있게 되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을 판별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으로써의 소위 이야기하는 규범을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정통이라는 말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이것은 비성경적인 가르침들이 어느 시대에 가르침에 함께 융합되어 있는데 그것들을 제거하고 일탈된 견해에 대항해서 올바른 기독교적인 삶과 교훈을 다시 재확립하는 그것을 위해서 정통주의라는 용어가 도입이 된 것입니다.
B. 정통주의에 대한 이해와 특징들
1. 개신교 정통주의 발전 1단계
그러면 이 정통주의는 개신교 정통주의라고 할 때 이것은 어떻게 봐야 되느냐 하면 이 개신교 정통주의를 이야기하면 우리들이 크게 시기를 나누어서 생각해야합니다. 종교개혁 1, 2세대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이것은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가 아니라 종교 개혁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1, 2세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츠빙글리의 67개 조항, 베른 명제 등이 나온 때부터 1564년 칼빈이 죽을 때까지의 시기를 개신교 종교개혁 1, 2세대라고 합니다. 루터가 1세대라면 칼빈은 제 2세대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루터와는 달리 멜란히톤의 세대에 속하고 블링거, 무스쿨루스, 버미글리, 히페리우스, 파렐, 비레, 이런 사람들과 동시대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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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정통주의 발전 4단계
1단계: 종교개혁 1, 2세대 (1523/28∼1564)
- 개신교 신학 전제들이 제시되고 설명됨
- 주요학자: 멜란히톤, 칼빈, 블링거, 무스쿨루스, 버미글리, 히페리우스, 파렐, 비레
2. 개신교 정통주의 발전 2단계
그러면서 그 다음에 정통주의 시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것이 개신교 정통주의 시대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 개혁파 정통주의는 다시 초기와 전성기 그리고 후기로 나뉘게 되는데 초기 정통주의는 이제 하이델베르크 문답이 1565년에 작성되고 1618년에 그 유명한 도르트 회의가 열리게 되는데 이때까지를 가리켜서 초기 정통주의 시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존 오웬이 1616년에 태어났으니까 존 오웬이 세 살쯤 되었을 때 이미 초기 정통주의가 막을 내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에는 정통주의라는 독특한 나름대로 고유한 신학의 형태의 뼈대를 세우고 형식화했던 시기인데 이때 어떤 신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교리에 대한 응집력이 있는 방법론들을 제시하고 정리하였던 그런 시기입니다.
그리고 정통주의 후기가 도르트 총회 이후에 도입되게 되는데 이때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알미니우스와의 논쟁이었습니다. 이 알미니우스는 레이든 대학의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원래 레이든 대학교의 유니우스 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프란시스 유니우스라는 인물이 칼빈 밑에서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레이든 대학교를 개혁 신학으로 이끕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의 제자가 프란시스크스 고마루스 라는 사람인데 프란시스크스 고마루스 사이에 알미니우스라는 사람이 들어오게 됩니다. 시간이 없어서 길게는 하지 못하지만 이 사람은 상당히 잔재주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요소로 이 사람이 개혁신학자가 아니었는데도 어쨌든 이 학교에 힘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혼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다가 고마루스라는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고마루스는 영국에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옥스퍼드에서 학위를 받는데 개혁신학에 있어서 아주 괄목할만한 업적들을 이룬 아주 훌륭한 신학자입니다. 이 사람의 제자가 푸치우스 라는 계보로 이루어집니다. 아마도 개신교 신학자들 가운데 로마 가톨릭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몇 사람 중의 한사람이 보에티우스, 혹은 푸치우스 라고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제자가 바로 페트루스판 마트리우스라는 사람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페트루스판 마트리우스가 바로 이제 전성기의 이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의 아주 중요한 저자가 되고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성경 다음으로 극찬한 책이 이 사람의 소위 이야기하는 피티피 실천이론 신학이라는 그 유명한 조직신학 책이 이 사람의 작품입니다.
자, 그런데 이 초기 정통주의에서 알미니우스와의 논쟁을 거치면서 종교개혁자들 편에서는 굉장히 커다란 충격이 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제까지는 종교개혁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그냥 물려받으면서 대충 해왔는데 처음부터 개신교의 모든 조직신학의 뚜렷한 형태들이 다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칼빈 같은 경우를 보면 삼위일체론을 기독교강요에서 안 다룹니다.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당시 로마 가톨릭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삼위일체론 물론 거기서 정통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과 별로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선 가톨릭과 관계에서 볼 때에 차이가 나는 것들에 논쟁을 집중하게 되고 거기에서 각각 다르다는 것을 내세우면서 이제 조직신학의 교리를 세우게 됩니다. 그러다가 알미니우스가 등장하면서 두 가지 커다란 도전을 받게 됩니다. 첫째는 무엇이냐 하면 여태까지 우리들이 이루어진 논쟁이 뭉툭한 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면도칼 같이 훨씬 예리하게 해야지만 저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와서 문제를 안 일으키겠구나 하는 이런 주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 교수님이 ‘아미로’ 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했는데 알미니우스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미로 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뭐라고까지 이야기하느냐 하면 칼빈의 신학을 정당하게 물려받은 사람들을 향해서 ‘사실은 너희들은 칼빈을 몰라! 너희들은 잘못 계승하고 있는 거야! 내가 칼빈을 가장 정확하게 해석하거든!’ 그러면서 칼빈이 동의할 수 없는 알미니우스주의적인 내용들을 아주 설파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칼빈의 원천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을 내놓게 되면서 이제는 좀 더 예리하게 이 문제를 다루어야겠다는 필요성이 생겨나게 되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이제 개신교에서도 개신교만의 독자적인 교의학의 체계들을 가져야 되겠다는 요청이 생기게 되면서 이제 이 두 가지 요인에 의해서 초기 정통주의 후기 다시 말해서 전성기의 개혁파 정통주의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활발한 작업들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다시 정확하게 정의하고, 그 다음에 형식화하고, 논리적인 일관성을 다시 갖추고, 철학적인 일관성을 다시 점검하면서 잘 갖추어진 교의신학을 교회교의학을 발전시키기 시작합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나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스위스신앙고백서(이것은 아주 훌륭한 신앙고백서입니다.) 그리고 브란덴베르그 신앙고백서 이런 것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 활동했던 사람이 우루시누스, 유니우스, 퍼킨스, 베자, 케커만, 폴라누스, 에임즈, 고마루스, 왈래우스, 마코비우스 이런 쟁쟁한 학자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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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정통주의 발전 4단계
2단계: 초기 정통주의 (1565∼1640)
⑴ 초기 정통주의 전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출간(1565)부터 도르트 총회(1618) 까지
- 정통주의의 뼈대를 세우고 형식화를 시작한 시기
- 주요 국가신앙고백서들이 출현
⑵ 초기 정통주의 후기: 도르트 총회 이후 시기
- 알미니우스와의 논쟁을 통해 종교개헉자들의 사상을 정의
- 논리적 철학적 일관성을 갖춘 ‘교회교의학’을 발전시킴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스콜틀랜드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스위스신앙고백서, 도르트신경
- 주요학자: 무르시누스, 유니우스, 퍼킨스, 베자, 케커만, 폴라누스, 에임스, 고마루스, 왈래우 스, 마코비우스 등
3. 개신교 정통주의 발전 3단계
그러다가 이제 드디어 전성기 정통주의로 가게 됩니다. 이때는 더 많은 새롭게 등장하는 논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들과 대항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 신학의 대대적인 정교화 작업과 그 다음에 그 모든 것들을 함께 묶는 종합화의 작업이 일어나게 됩니다. 신앙고백의 형태를 띠게 된 신학을 논쟁적이고, 스콜라적이고, 적극적이고, 그리고 교리문답적인 형식 안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정교화 하는 작업을 이 전성기에 이루게 됩니다. 이때 활동했던 사람들이 코케이우스, 마레시우스, 보에티우스, 아까 말씀드린 푸치우스, 영국의 청교도 스테반 차녹, 존 오웬, 프란시스 튜레틴, 피터판 마스트리히트, Our reasonable service 라는 책으로 유명한 브라켈, 픽테트, 그 다음에 영국의 청교도 중의 아주 박식했던 토마스 리즐리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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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정통주의 발전 4단계
3단계: 전성기 정통주의(1640∼1725)
- 새롭게 등장한 논적자들에 대항하여 신학의 정교한 작업과 종합화 작업이 일어남
- 신앙 고백의 형태를 띤 신학은 논쟁적, 스콜라적, 적극적, 설교적, 요리문답적 형식 안에서
정교화 시킴
- 주요학자: 코케이우스, 마레시우스, 보에티우스, 차녹, 오웬, 튜레틴, 마스트리히트,
푸치우스, 브라켈, 픽테트 등
4. 개신교 정통주의 발전 4단계
이런 개혁파 정통주의는 1725년을 기점으로 급속하게 막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 18세기에 거대한 사상적 폭풍이 몰아치는데 그것이 바로 계몽주의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이 시작되면서 전통적인 철학과 논리학들을 신학 분야가 상실하게 되었고 스콜라주의적인 방법론들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개혁주의 사상의 신앙고백들이 사라져가게 되었는데 그래도 남아서 나름대로 정통주의의 유산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이 존킬, 꼼리 이런 사람들이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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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정통주의 발전 4단계
4단계: 후기 정통주의 (1725∼1770)
- 18세기 시대적 변화와 정통주의의 죽음이 시작됨
- 전통적 철학과 논리학의 상실, 스콜라주의적 방법론의 쇠퇴로 개혁주의 사상의 신앙고백들이 사라져감
- 주요학자: 존 킬, 꼼리
이 개혁파 정통주의는 그러니까 종교개혁 이후에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을 보다 구체화하였던 그런 신학자들을 가르치는데 이때 이 사람들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사람들의 신학적인 자질이 사실은 종교개혁 이후에 최고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철저하게 인문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개혁파 정통주의자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출신으로 있다가 전향해서 개신교도가 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가톨릭을 철저하게 공부한 철학적, 신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고 기독교 인문주의가 되고 이러면서 신학을 이제 발전을 위해 헌신하게 되었는데 이때 사실은 우리들이 자랑스러워할만한 신학적 유산들이 거의 중요한 모든 토대들이 이때 형성하게 됩니다. 그 작품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어저께 멀러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당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당신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학교에 있다는 것입니까? 33,000권이고 이것저것 다 합해서 80,000 item이 올라와 있다고 하니까 아무튼 놀랍습니다. 나중에 언제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 제가 컴퓨터상으로 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프린트아웃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린트아웃을 해서 세상에 보여주려고 그러는데 그 깊이라는 것은 굉장합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대부분 라틴어로 쓰인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영어로 영국 사람들이 꽤 열심히 번역을 했습니다. 그렇게 아주 많지는 않지만 꽤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엄청난 작품들이 이때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를 가리켜서 어떤 사람들은 개신교 교부시대라고 불렀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 말이 정말 적합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다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저는 그 유산을 보고 가슴이 얼마나 벅찼는지 나의 지적인 여정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플라톤을 공부하면서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했고, 아우구스티누스를 공부하면서는 기독교인인 것이 자랑스러웠고, 루터와 칼빈을 배우면서는 개신교도인 것이 영광스러웠는데 개혁파 정통주의를 배우면서는 내가 개혁파교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무한한 긍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교가 안 됩니다. 이때에 이루어진 신학의 일반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전의 교회가 신앙을 고백해왔습니다. 자기들도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백은 수천페이지가 아니고 간단하지 않습니까? 신경이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고백한 그 내용을 성경 석의를 통해서 철저한 성경 석의를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인상중의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이때의 종교개혁자들 이후의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조직 신학에 대한 지나친 압도하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직신학을 자기가 다 쓰고 그것을 입증해주는 성경구절을 성경 속에서 찾았다고 해서 나의 표현에 의하면 자기가 쓰고 싶은 내용을 다하고 성경을 고문을 해서 자백을 받아서 그래서 거기다가 써놓았다고 사람들이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멀러교수님의 강력한 주장입니다. 멀러교수님이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 때에 결코 성경 신학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했느냐하면 그 시대 사람들이 쓴 주석의 제목만 적었는데 레터지로 250페이지랍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성경 신학을 해도 신약 학자들은 헬라어만 합니다. 구약 학자들은 히브리어만 합니다. 그런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 가운데 40%정도 되는 사람들은 거의 어학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헬라어뿐만 아니라 근동언어까지 아람어까지 자유자재로 섭렵하고 심지어는 성경해석의 유대교적 전통을 연구할 수 있도록 라바이닉 히브리어까지도 마스터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고 실제로 존 오웬은 광대한 랍비들의 자료를 읽으면서 구약을 연구했습니다. 자,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단지 공부만 잘한 것이 아니라 그때는 경건의 능력이 교회에 상당히 역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경건과 지식이 탁월하게 결합되는 방식에 대해서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이렇게 아무나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귀족의 집안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면 될 수 없는 것이 마치 오늘날 우리들이 사회에서 의사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좁은 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깊이 만나고 경건과 학문이 융합된 가운데 그들이 제시했던 신학은 삶 전체를 포괄하는 신학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트리스히트가 자신의 책에서 신학의 목적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독트리나 에스트 비벤디 데오 페르 크리스툼’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신학지식이라는 것은 ‘신학지식 혹은 교리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정의하고 있는 신학의 말하자면 궁극적인 목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성경 하나를 배우고 ‘믿습니다.’ 하면 복을 받고 충분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이 아니라 지식의 원천이 칼빈이 말한 대로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지식의 원천으로 해서 그 모든 세계에 대한 지식이 하나로 통합된 가운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인간이 사는 지혜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C. 신학방법론으로서의 스콜라주의
이러한 통합적인 신학에 대한 생각과 그림들을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의 일반적인 특징이 스콜라적 방식으로 신학을 진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것이 많은 비난을 받게 됩니다. 신학 방법론으로써의 스콜라주의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도표를 대조해놓고 보면 종교개혁과 개신교 스콜라주의에 대한 멀러 이전의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개인적이고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개혁파정통주의라는 이들이 스콜라주의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때에는 명제적인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진짜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대조해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언제? 멀러와 같은 학자들이 나타나서 이러한 오해를 벗겨주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은 그것은 역동적이고 스콜라주의는 정적이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은 그것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스콜라주의자들은 하나님에 의해 언어적으로 지시된 말씀이 성경이라고 보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온건한 인문주의정신을 가졌는데 개신교 스콜라주의자들은 지나치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형이상학을 의존하는 그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철저하게 따르는 엄격함을 따르고 있었다는 것이 멀러 교수 이전에 있었던 일반적인 이해였습니다.
(화면)
종교개혁 개신교 스콜라주의
-하나님의 계시를 개인적 사건으로 이해함 -명제적인 것으로 이해함
-역동적 -정적
-그리스도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 -하나님에 의해 언어적으로 지시된
경은 그것을 증거하는 것임 말씀이라고 전제함
-온유한 인문주의 정신을 가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형이상학의
엄격함이 있음
그러면 이제 스콜라주의를 이해해야겠습니다. 스콜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개혁파정통주의에 대한 오해 혹은 개혁파정통주의가 왜 그런 형식으로 신학을 진술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적절한 이해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스콜라주의를 영어로 Scholasticism 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희랍어 ‘스콜레’ 라는 형용사에서 옵니다. ‘스콜레’ 라는 형용사는 한가한, 할 일이 없는, 노는, 그런 뜻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당시에 여기에서 School이라는 말이 오는데 그리고 거거서 Scholastic 이라는 말이 오는데 결국은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당시의 개념으로 보면 공부는 한가한 사람, 배부르고 할 일이 없는 그래서 노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하는 것이 공부다. 그리고 그곳이 학교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Scholasticism 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방법, 이런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콜라주의라고 정의할 때 제가 여기에서 4가지로 정의했는데 본래적 의미는 학교에서 교육을 위해 사용하는 정신 훈련의 형태를 가리킵니다. 내용적 의미는 내용적으로 스콜라주의를 이야기할 때는 방법론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세시대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을 스콜라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었는데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전횡적이고, 권위적인, 고루하고 꼬치꼬치 따지기를 좋아해서 어떠한 상상력도 용납하지 않는 그러한 철저한 논리주의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스콜라적이라고 그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상은 안경을 쓰고 바짝 마르고 꼬장꼬장해서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오는 이러한 논리를 이야기하는데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고 방식적인 의미는 이제 4번째 의미로 개신교 정통주의에서 스콜라주의라는 말이 나오면 이 4번째 의미로 우리들이 이것을 이해해야지만 멀러 교수를 비롯한 최근의 연구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개신교 교리를 말하자면 형식화함에 있어서 고도의 기술적이고 논리적인 접근방식이 교리 진술에 사용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개신교 스콜라주의라고 하는 이름을 나오게 한 원인이라는 뜻입니다.
(화면)
스콜라주의 정의에 대한 4가지 범주
⑴ 본래적 의미-학교에서 교육을 위해 사용하는 훈련의 형태
⑵ 내용적 의미-방법론만의 문제가 아닌 중세시대 대학에서 가르친 가르침(Doctrine)을 뜻함.
⑶ 경멸적 의미-전횡적 or 권위적인 방법론 or 고루하고 상상력이 결여된 견해를 뜻하기도 함.
이는 스콜라주의가 변질되었을 때 나타난 전형적인 특징을 지칭하는 것이었음
⑷ 방식적 의미-개신교 교리의 제도화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적이며 논리적인 접근방식을 말함.
그러면 이 스콜라주의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그러면 이 시간에 스콜라주의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스콜라주의는 인문학에서 어떤 내용들을 논리적으로 진술해나갈 때 사용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은 크게 4가지로 이루어지는데 Quacstio 이것은 질문, 곧 논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Status quacstionis 는 무엇이냐 하면 제시된 질문 안에서 무엇이 논의되어야하는지 그 주제를 명확히 지정하는 것이 두 번째 이루어지는 형식이었습니다. 이것이 글을 쓰는 순서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Objectioncs 채택된 교리와는 정반대된 논리, 교리와는 상반되는 주장, 다양한 반론들을 제시하고 왜 그런 주장이 옳지 않은지를 Responsio에서 하나하나 논박함으로써 맨 처음에 자신이 제시했던 그것이 올바른 주장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스콜라주의적인 방법을 가지고 우리가 믿는 신앙의 교리를 진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화면)
스콜라주의 방법론의 핵심 4가지
⑴ quacstio-질문 곧 논제를 제시함
⑵ status Quacstionis 제시된 질문 안에서 논의해야할 주제들을 명확히 지정함
⑶ objictioncs 채택된 교리와는 상반되는 주장 곧 다양한 반론들을 제시함
⑷ responsio 광범위한 신학의 원천들을 고찰하여 제시된 반론에 답변함
그런데 이제 이 스콜라주의는 스콜라주의라는 것을 여기서 오해가 생겨나게 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확실히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스콜라주의적인 방식을 가지고 교리를 진술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들의 자료를 대충이라도 한번 읽어보게 된다면 그것이 굉장히 난삽하고 그리고 철저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스콜라주의의 그런 방식을 접하면서 슐라이마허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향을 받으면서 스콜라주의를 어떤 인상으로 보게 되었느냐하면 종교개혁자들이 만들어놓은 좋은 순수한 신앙의 재료들을 그대로 물려받지를 않고 어느 순간에 그것들을 상당히 많은 부분들을 본질적으로 양보하면서 중세로 돌아가서 중세의 가르침의 내용들을 가지고 들어와서 만든 것이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의 내용이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통해서는 종교개혁자들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했던 순수한 교리와 경건에 대한 가르침을 올바로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거기에서 옳지 않은 것들을 걷어내야 하는데 그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기본적인 테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멀러 교수님을 비롯해서 일단의 오늘날 지지를 받고 있는 많은 학자들은 이런 것들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주장들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들이 종교개혁의 후예들인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 베자 아니면 멜란히톤 같은 이런 사람들은 종교개혁자들이 살던 시대와는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문학의 기본은 그 사람의 저술이나 업적을 해석할 때 당대의 Context 에서 해석을 해야지 오늘날의 문맥을 가지고 가서 바울에게 혹은 칼빈에게 왜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사람과 피 흘리며 싸우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는 것은 인문학의 A, B, C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Context 로 보면 루터와 칼빈과 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신학을 진술하는 것이 꼭 필요했고 만약에 가정이기는 하지만 루터와 칼빈이 그가 죽은 이후 약 100년 후에 치열하게 전개되는 개혁파 정통주의의 방식으로 종교개혁의 대의를 진술했다면 종교개혁은 본래의 의미를 희석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저술된 루터나 칼빈의 저작들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이 가톨릭과 다르다는 말인가?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시대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들이 죽고 난 이후에는 상황이 굉장히 급속히 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보면 알지만 기독교강요 초판을 우리 문병호 교수님이 라틴어에서 직역을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1559년에 쓰인 마지막 판 제3판을 대조해놓고 보면 앞에 것은 800P정도로 끝납니다. 그런데 마지막 것은 2400p 정도입니다. 세배가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무슨 이야기냐 하면 칼빈이 자기 생각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 세월이 흐르면서 산전수전 화생방전까지 겪으면서 할 말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옛날의 그 간단한 것 가지고는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칼빈의 사후에는 더 많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들이 스콜라주의를 사용하는데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들이 사용한 스콜라주의는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론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칼빈과 그 다음에 루터가 만들어놓은 종교개혁의 떡 반죽이 예전에는 큰 양푼에 담겨있었는데 이번에는 새로 나온 정교한 유리그릇에 담은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신학이라는 내용이라는 신학의 질료를 스콜라주의라는 그 틀을 사용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먹을 만한 빵으로 계속 다른 모양으로 찍어냈다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멀러 교수의 주장의 개신교 스콜라주의에 대한 요점입니다.
그럼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스콜라주의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알아보면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스콜라주의를 온당하게 다루었느냐 그렇게 안 다루었느냐를 알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놓고 보면 이 사람들은 스콜라주의를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하고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의미로는 자신의 학문적인 내용이나 배경 이런 것들을 호소력 있게 나타내고자할 때는 이런 방법을 사용했는데 자기가 주장하는 많은 내용을 아주 간결하고 명확하고 논리적인 학문의 형식으로 제시하는데 이 스콜라주의가 큰 도움을 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스콜라주의는 1세대, 2세대 종교개혁자들도 결코 버린 적이 없었던 방법입니다. 두 번째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기독교강요를 보면 여러분들이 스콜라주의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규탄하는 칼빈의 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스콜라라는 학문 형식에 대한 탄핵이라기보다는 당시에 있었던 소르본느에 있었던 이 개신교 신학을 불합리한 방법으로 공격하고 모함하던 가톨릭 스콜라주의자들에 대한 탄핵이라고 우리들이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서 이제 이러한 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진도를 나가겠습니다. 이렇게 되었는데 결국은 이 스콜라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개신교 정통주의의 스콜라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개신교 스콜라주의는 13세기에 완성된 신학적 스타일을 변형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대개 성경을 중심에 놓고 그리고 가능한 한 대중적이고 그리고 설득적인 방식을 사용했고 특히 초기인 경우에는 과도하게 논리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신학을 전개해나가지 않았습니다. 주석적이고 강해적이었지만 후기로 가면서 상황이 바뀌면서 그렇게 이루어놓은 성경 해석, 주석의 결과를 토대로 논적들과 달리하는 의견에 대하여 정의하고 구분하고 논증하는 이성적인 형태를 따르게 됩니다. 기독교강요가 앞에 해당된 것이라면 폴라누스의 신타그마 라는 조직신학 책은 바로 이런 후기의 논리적인 방식을 채택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 교리를 총 포괄적으로 그리고 이제 어떤 부분은 없으니까 가톨릭 것을 보면 된다고 하지 않고 개신교만의 독자적인 그런 기독교 교리의 포괄적인 진술들을 만들기 위해서 이 스콜라주의적인 방법을 사용했고 이 스콜라주의는 개신교신학을 풍성하게 하고 정확하게 하는 데에 이바지한 것이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의 내용을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첫째로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개신교 스콜라주의는 방법론에 속한 스콜라주의였고 중세 스콜라주의의 폐단과 문제점들을 종교개혁자들은 물론 개혁파 정통주의자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할 때 방법론으로써의 스콜라주의와 내용으로써의 스콜라주의를 혼용해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변질시킨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스콜라주의가 개혁파 정통주의에 미친 영향에 대한 올바른 평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Ⅲ.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 연속성이론
A. 불연속성 이론과 연속성 이론
자, 그러면 우리는 매우 커다랗고 중요한 핵심적인 논점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 사이에 연속성이 있는가? 라는 이론입니다. 그러면 슐라이마허 테제에서는 아주 당연히 불연속성이 강조되었고 연속성이 혹은 강조되었어도 부정적인 의미에서 연속성이 강조된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오늘날 멀러 교수를 비롯한 많은 새로운 방식의 이 개혁파 정통주의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이제 공정하게 말하자면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제 오늘날의 견해입니다. 그러면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연속성은 19세기에 확연히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종교개혁과 개혁과 정통주의 사이의 연속성에 대한 관계에 관한 연구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면서 이제 이것들을 요약하면 불연속성 이론과 연속성 이론으로 요약이 됩니다.
우선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불연속성 이론과 연속성 이론으로 나뉘게 되고 그리고 연속성 이론은 다시 부정적인 의미의 연속성이냐 긍정적인 의미의 연속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연속성의 이론을 먼저 보겠습니다. 불연속성의 이론에 의하면 이게 우리들이 이전에 이미 오래전에 내려져오는 슐라이마허 이후로 내려오면서 지배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물론 칼바르트가 나타나서 약간 수정을 가하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내려오는 토대가 이것입니다. 개혁파 정통주의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종교개혁으로부터 치명적으로 이탈해서 종교개혁의 대의를 심하게 훼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정통적인 신앙으로 돌아가려면 개혁파 정통주의에서 어떤 중요한 근거들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개혁파 정통주의는 이성을 너무 중시했다. 그래서 이성을 너무나 중시한 나머지 계시와 거의 동등하게 놓기를 중세의 가톨릭 신학이 실패한 바로 그 이성의 지위를 너무 높인 것을 그대로 계승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는 그 정도가 아니라 나중에 가서는 이성이 계시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평가되었고 심지어는 계시를 대치할 수 있을 정도까지 이성의 지위를 높였기 때문에 성경의 계시 없이도 자연신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들을 보여주었고 이성적인 논쟁, 그리고 많은 이런 자연이성의 경계선 안에 있는 계시신학의 논제들을 제시했는데 이것들이 바로 그런 실례들이라는 것이 불연속성의 이론입니다.
(화면)
불연속성 이론
- 종교개혁으로부터 이탈한 것이라는 주장
- “두 원천을 가진 교리” (이성과 계시)로 주장
- 이성 우위론(계시를 대체할 중요한 원리로 등장), 자연신학에 대한 신뢰 등을 그 실례로 제시
이에 비해서 연속성 이론이 다시 둘로 나눠지는데 부정적 연속성의 이론입니다. 이 부정적 연속성은 무엇이냐 하면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안 좋은 의미에서 스콜라주의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어디서 배웠는지 아느냐? 종교개혁자들에게 없던 것을 얘네들이 새롭게 중세에서 배워온 것이 아니라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루터나 칼빈 그 외에 2세대의 종교개혁자들이 이미 스콜라주의적인 요소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는 이것이 활짝 펼치지 않았던 것을 이 친구들이 이것을 물려받으면서 선생님들이 절제한 것을 풀고 확 쏟아놓은 것이 바로 개혁파 정통주의의 스콜라주의적인 경향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스콜라주의가 결국은 이성주의로 가게 되었고 그것이 기독교신학을 합리주의로 변질시켰다고 보는 것입니다.
(화면)
부정적 연속성 이론
- 스콜라주의적 요소가 종교개혁자들 속에 있었다는 점에서는 연속성을 주장, 그러나 둘 사이의 연속 성은 부정
- 신앙을 체계화, 이성화 하였고 스콜라주의적 사고방식 요소를 의식적으로 차용하였다고 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개념의 틀이 정통주의 해석학을 결정하였다고 주장
- 스콜라주의는 형식적 도구적 장치 이상이었으며 성경은 이성주의 양식 안에서 왜곡되었다고 봄
그리고 긍정적 연속성의 이론이 있습니다. 자, 이제 조금 있다가 나오겠습니다만 폴 오스카 크리스텔러 라는 아주 중요한 학자가 등장하는데 이 사람에 의하면 스콜라주의라는 것은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점진적으로 발전을 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수용함에 있어도 내용적인 측면과 형식적인 측면을 구별해서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기도하면서 기독교 안에서 스콜라주의가 발전해왔다는 것입니다.
(화면)
긍정적 연속이론
- 스콜라주의는 14∼17세기 까지 점차적으로 발전함
-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수용함에 있어서 내용적 측면과 형식적 측면을 구별하여 전용하기를 거부 하기도 하였다고 주장 (Paul Oskar Kristeller)
- 이중적 연속성을 강조함 (중세와 종교개혁, 종교개혁과 전통주의)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중세신학에 대해서 어떤 성격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간단하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차용하여 기독교에서 생각하는 하나님의 존재와 세계, 인간, 그 다음에 영혼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것이 중세철학의 전체적인 내용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배웁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중요한 책 가운데 ‘헤리푸슈케스’ 라는 책이 있습니다. 번역을 하면 ‘영혼에 관하여’ 라는 책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영혼의 이야기만합니다. 그런데 이 영혼의 이야기는 상당히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그중에 재미있는 내용이 뭐냐 하면 모든 사물에는 다 영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이런 것에는 이런 것들이 영혼이 있고 심지어 이런 책상도 영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책상을 만들어놓으면 이것이 뭉개지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이유는 영혼이 그런 형태를 유지하려고 꽉 버티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버티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기독교의 미친 신학자가 아니고는 이런 식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가톨릭이건 아니면 개신교건 그런 것을 받아들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긍정적 연속적 이론에 있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스콜라주의적인 방식으로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틀을 사용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얘기를 하면 좀 길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기원전 3세기의 철학자입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이 체계가 이 기독교에서 생각하기에는 이게 기독교에 적합하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오히려 초기 기독교의 사람들은 플라톤에 심취했습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이 가지고 있는 설명이 우리 기독교에서 선호하는 사상과 아주 유사합니다. 일자가 있다는 사실, 세계가 일자로부터 왔다는 것, 그 다음에 만물이 다시 일자로 돌아간다는 것, 그 다음에 인간이 덧없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제일 높은 존재이고 그 다음에 인간이 있고 그 밑에 이 모든 피조물들이 있다는 존재도의 문제 이런 많은 것들이 기독교와 상당히 유사한 설명을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플라톤을 좋아했는데 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분들이 시간이 물론 없으시겠지만 시간이 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다른 것은 못 읽더라도 ‘메타히치카’ 형이상학과 그 다음에 범주론 이런 것들을 쭉 읽으면 특히 형이상학을 읽으면 어떤 느낌을 받느냐하면 플라톤은 확실히 회심한 철학자라는 느낌이 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회심을 할까 말까하는 그런 철학자라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감지되어서 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다음부터는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깨끗이 없애버립니다. 그래서 다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다가 이제 여러분이 알다시피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고 그리고 옛날에 이 마호메트 교도들이 있던 땅에 기독교도들이 쳐들어가게 되는데 그때 유럽에서는 어떻게 배웠느냐하면 우리만 그리스도 성경계시 때문에 찬란한 문명의 빛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캄캄한 야만이라고 그러면서 들어갔는데 보니까 눈이 부실 정도로 문명과 정신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이야 거기 가고, 장사꾼들이야 물건 파는데 정신이 팔려있었겠지만 그중에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그 문명을 보면서 이 위대한 정신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가? 생각해보니까 이슬람 철학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첸나, 아비로에즈, 이런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이슬람 철학들을 토해놓는데 그 웅장함과 규모에 충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놓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철학과 비교해보니까 이것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정교화 된 것들을 가지고 있고 학문과 과학, 예술 모든 방면에 있어서 탁월한 발전을 이룬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아비로에즈, 아비첸나, 알파라비파,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엄청난 그런 자원들을 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면서 파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네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어떤 한 원천이 있었습니다. 그 양반이 누군가 했더니 자기네 조상들이 싹 없애버린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그 사람이 그 당시에 연대가 지금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BC 3세기 이전에 그 사람이 팔십만 권의 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별로 놀라지도 않으시네요. 요즘은 누구나 그렇게 가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 정도야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팔십만 권입니다. CD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팔십만 권의 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한 인간을 기점으로 해서 이전에 있던 모든 학문이 한 점으로 수렴하는데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인물입니다. 여기서 다시 분광을 하면서 다시 퍼져나갑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 55권인가 59권인가로 알고 있는데 나도 50권이 넘게 썼는데 그런데 이 사람은 분야가 다릅니다. 저기 기상학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해부학, 식물, 윤리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다 읽을 리는 없지만 다 안 읽어도 좋습니다. 그 메타피치카를 도서관에서 꺼내서 한번 만지기라도 해보세요. 펼쳐서 쭉 한번 보십시오. 이렇게 두꺼운 800, 900페이지 되는데 보면 무슨 아리스토텔레스가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뭔가를 판단하거나 어떤 사실들을 진술할 때 쓰는 방법들입니다. 그것을 이 사람이 다 정리해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 논리의 틀을 가지고 원래 학문이라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유사해보이지만 그 속에서 다른 것을 찾는 것, 이것이 학문의 첫 번째 요소인 분석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르지만 같은 것을 모으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합입니다. 이것이 학문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것들 속에서 요소와 요소 간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찾아내고 이것을 통해서 아직은 발생하지 않은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학문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제학자가 보는 경제현상하고 우리처럼 경제와 별로 상관없이 사는 사람이 보는 경제현상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신학을 하는 사람도 그렇게 됩니다. 신학을 안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다음에는 어떻게 일하실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아냐? 나도 모르는데.’ 그런데 신학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다음에 이렇게 일하실거야.’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안 그런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학문입니다. 그런데 그 학문을 하려면 그 틀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이슬람 문화가 탁월하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들을 빨리 가져가자!’ 그렇게 가지고와서 그래서 탐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러니까 11세기 12세기경의 일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구라파에 있는 대학들은 오래된 대학의 설립시기를 보면 전부 12세기경입니다. 그 이전에는 대학이 설수가 없었습니다. 왜? 아는 지식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을 체계화할 수 있는 형식이 없기 때문에 대학다운 대학을 세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학이 막 폭발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이제 학문들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에 대학은 나중에 생긴 것이고 수도원에서 훨씬 높은 수준의 학문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스콜라주의라는 것이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 사이에는 분명히 다른 것이 있다. 다른 것이 있지만 그러나 연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해야 된다. 그래서 처음에 있는 것들이 우리가 눈사람을 만들 때 뭉쳐서 굴리면 언덕으로 천천히 스스로 굴러가게 만들면 처음에는 요만한 것들이 저 밑에 가면 커집니다. 그렇게 발전해서 추가된 면들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이 의도했던 내용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바꿔서 전혀 다른 종류의 신학을 만들어냈다고 하는 이런 예전의 이 테제는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작은 결론을 내리면 불연속성과 연속성은 이런 이야기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인 통찰들을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이어받았다는 점에서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의 반복이나 복사판이 아니었다는 점에서는 불연속성을 가진 것이고 그 다음에 또 중세신학의 스콜라주의적인 형태를 의존하는 면에 있어서는 방법론적인 연속성을 가졌으나 중세의 내용이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의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제 불연속성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역사에서 발견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정보를 여러분들에게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름이 생소할지 모르지만 피터 버미글리 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물론 신학자입니다. 그런데 이 피터 버미글리 라는 사람은 할아버지가 종교개혁의 자유를 찾아서 넘어왔는데 원래 이태리 사람입니다 그래서 개혁신학을 갖고는 도저히 이태리에서는 살 수 없어서 이 사람이 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때에 이 사람이 결국은 와보니까 이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으로 많이 이동해온 이태리 난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칼빈이 정말 탁월한 행정가라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여러분 존 낙스가 칼빈 밑에서 공부한 것을 아실 것입니다. 제네바에 있을 때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영국 난민들을 돌보았습니다. 칼빈이 일차 종교개혁을 하다가 쫓겨나서 스타스부르크로 도망을 갑니다. 누구 밑으로 들어갔습니까? 부처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불교에서의 부처가 아니라 이름이 부처입니다. 거기서 칼빈이 한 일이 바로 프랑스에서 온 종교개혁 난민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마틴 부처에서 배워가지고 와서 똑같이 적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피터마터 버미글리에게 ‘네가 와서 나를 도와다오. 그리고 여기에 굉장히 많은 이태리 난민들이 있는데 내가 다 감당이 안 된다. 그러니까 네가 여기에 와서 나의 회중을 돌봐다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내가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줄 테니까 오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잘 들으십시오.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말로 번역이 안 된 것이 문제인데 영어로 번역된 것이 열권 정도 나왔습니다. 그것을 사서 하루만 그중에서도 무엇을 보느냐하면 ‘필라소피칼라이팅’이라는 것이 있고 그 다음에 또 무엇이 있느냐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인 ‘니코마코스 Ethics’ 라는 것이 있는데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것이 있는데 중요한 책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쓴 것은 아니고 누가 학생들이 강의시간에 받아서 필기한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작품인데 니코마스윤리학을 개인적으로 보면 윤리학이고 확장시키면 정치학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XXX합니다. 가서 잘 읽어보면 이 사람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칼빈의 인상으로는 이 사람을 절대 자기의 후계자로 부를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견지에서는 말입니다. 만약에 부목사로 있는데 칼빈 앞에서 그렇게 했으면 이 사람은 잘렸을 것이라는 인상을 우리들이 받게 될 정도로 So Philosophical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6번 편지를 씁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제발 와달라고 씁니다. 마지막에 뭐라고 쓰느냐하면 ‘내가 달려가서 당신을 못 오게 당신을 붙잡고 있는 그 모든 일을 때어놓아서 손목을 잡고라도 내가 당신을 데려오고 싶다.’ 그랬습니다.
저는 피터마터 버미글리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특히 피라소피칼라이팅을 읽으면서 이것은 진짜 충격적이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배운 칼빈에 대한 인상을 다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칼빈이 이 버미글리를 제자나 동생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였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뭐라고 그랬느냐하면 ‘고린도전서 주석 좀 빨리 써라. 내가 정말 보고 싶다.’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썼을 때는 ‘이 정도면 되겠느냐?’ 고 보낼 정도의 신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사람과 칼빈이 교류를 가졌다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칼빈에 대한 인상으로는 상상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공감이 안 되니까 지금 가만히 있으니까 재미가 하나도 없는데 보면 충격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헌이 어디 있느냐 하면 내가 찾아서 정확하게 페이지까지 알려줄 수 있습니다. 어디에 실렸느냐하면 칼빈의 ‘레터 앤 트리타이드’ 라는 7권으로 된 파란색으로 된 책입니다. 거기에 나옵니다. 그런 자료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번역하시는 분이 우리 총신에 계신 파리 대학을 나오신 박건택 교수님이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목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빨리 주목해서 우리들이 보아야하는데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천재였습니다. 그 사람이 쓴 책의 양이 어느 사가가 이야기하는데 평범한 사람이 20년을 베껴야 될 양이라고 합니다. 하루에 8시간씩일 것입니다. 그것을 그 생사를 넘나드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그리고 또 90살, 100살까지 산 것이 아니라 일찍 죽습니다. 다 일찍 죽습니다. 별로 신통치 않은 사람만 그렇게 오래 살지 진짜 다 50대에 다 죽습니다. 명 짧은 사람 이름을 대보겠습니다. 저쪽부터 칼빈, 에드워즈, 찰스 스펄전, 조지 휫필드 이렇게 쟁쟁하던 사람들이 다 일찍 죽습니다. 오래 산 사람들은 별 볼일 없다는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래 살아도 됩니다. 그런데 루터가 죽습니다. 죽으면서 계승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계승자를 루터가 얼마나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냐 하면 죽을 때 마치 정주영 씨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온 그룹을 혼자 이끌어가던 시대는 나로써 막을 내린다.’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왕자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죽으면서 자기는 이 신학운동과 목회운동을 두 개를 한꺼번에 했는데 자기는 후에 못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멜란히톤이 가장 유력한 제자였습니다. 보면 그분의 외모가 목회를 하게 안 생겼습니다. 목회를 하려면 우리 이성호 교수나 나처럼 푸짐하고 어디를 찔러도 좀 가만히 있을 것 같아야 되는데 칼빈보다 더한 사람 그 사람이 멜란히톤입니다. 칼빈은 그래도 품위가 있는데 이 사람은 머리도 조그맣고 이런데 그러니까 이제 루터가 어떻게 하느냐하면 ‘너는 신학교만 맡아라.’ 너는 목회는 아닌 것 같다. 맡기고 부겐하겐이라는 제자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신학교는 못할 것 같으니까 ‘너는 목회를 해라.’ 그렇게 맡겨주는데 그 부겐하겐이 루터가 쿤버라와 결혼을 할 때 주례를 섰던 사람입니다. 별로 놀라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맡기게 되는데 자, 문제는 이것입니다. 루터가 살았을 때 이미 구텐베르크 신학교를 이 멜란히톤에게 거의 일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주 어렵게 당시의 제네바 아카데미와 구텐베르크 신학교의 커리큘럼을 조사해놓은 것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정말 충격을 받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⅔가 인문과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멜란히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구텐베르크의 신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특히 메타피치카 같은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자, 내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루터가 죽은 다음에 그 일을 했다면 비난할 수 있겠지만 루터는 그것을 다 본 것입니다. 그러면 칼빈도 피터마터 버미글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 알고 그가 쓴 책을 거의 다 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렀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미 루터와 칼빈의 말기에는 그들의 초기 종교개혁을 할 때와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고 거기에는 이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가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봅시다. 마르틴 루터와 칼빈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사실 루터가 천재라고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학교의 성적을 확인해 보니까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중간을 조금 넘는 정도 그 정도니까 여러분도 용기를 가져도 됩니다. 그래서 사역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쨌든 칼빈 같은 경우는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들이 막 일어날 때 자기가 막 덤벼들어서 하려면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각 시대마다 인물들이 태어나면 자기에게 맡겨진 몫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미 자기는 것으로써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자기가 갈 때가 되니까 자기와 똑같이 단순한 방식으로 신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그 논적들과 에워싸면서 철저히 싸워서 이길 수 있을 정도의 논쟁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신이 그것을 못했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칼빈에게는 칼빈 같은 사람이 적임자가 아니라 버미글리 같은 사람이 적임자였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발견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모든 학문이라는 것은 최초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리처드 멀러 교수님이 잘하시는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Never say first.’ 절대 그런 말을 하지 말고 네가 몰라서 그렇지 잘 찾아보면 언젠가 다 한 번씩 다 해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이렇게 누군가 ‘멀러테제’ ‘멀러리안’ ‘멀러스쿨’ 이런 용어 자체를 멀러 교수님이 아주 싫어합니다. 여기에 제자 두 사람이 있어서 입증하실 것입니다. 그렇죠? 크게 동의하십니다. 권위가 입증되었습니다. 이분들은 패밀리로서의 제자이고 나는 이방인으로서 책을 통해서만 제자가 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Confirm 이 필요한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갔습니다. 빨리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래도 중요하기 때문에 들어야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멀러 교수님은 어디서 모티브를 얻어서 그렇게 150년 이상동안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 사이에는 굵은 단절이 있다는 것이 통용되어오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선입견이었는데 이분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둘 사이에 있는 연속성을 추적하게 되었느냐하는 궁금증이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중요한 인물 한사람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려야겠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에띠엔느 질송이라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1918년에 이 사람이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이 사람이 박사학위를 받을 때 이 사람이 연구한 논문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데카르트의 자유와 신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데카르트 연구가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데카르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신 분들은 생소하시겠지만 데카르트를 중심으로 철학사가 중세와 근대로 갈립니다. 그 데카르트라는 사람이 남긴 유명한 말이 무엇입니까? ‘꼬깃도 에루구숨=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액면 그대로 놓고 보면 인류 역사상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신기원적인 사유였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아주 알기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여태까지는 철학이 존재론적 중심이었는데 인식론 중심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강강술래를 합니다. 그런데 강강술래 가운데 서있는 술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서 애들이 강강술래 하면서 돌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12시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희였다면 순희가 뛰어가면 뒤에 철수가 따라오고 철수 뒤에는 명희가 따라오고 그렇게 돌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예전에는 여기 있는 이 술래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빼고는 우리가 모두 우리가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게 과연 이럴까?’ 그러면서 패러다임을 확 뒤집어 버리는데 그 패러다임을 확 깨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집어넣고 내가 이리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제 강강술래를 도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이해됩니까? 그래서 뭐냐 하면 인식의 중심이라는 것이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모든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느냐? 알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우리들이 배고플 때에 돌을 보면 그것도 빵 같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내가 이것이 무엇으로 보인다는 그것 자체를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면서 회의론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강술래를 돌고 있는 그 많은 것들이 다 의심이 되도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꼬깃도’ 라는 말입니다. 생각하다는 것이 아니라 회의한다는 것입니다. 자꾸 의심한다는 것입니다. 죽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심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명석법칙에 의해서 사람들을 의심할 수 있는 데까지 다 의심하면 마지막에 결코 의심할 수 없는 말하자면 결론이 나는데 그것만 받아들이자. 판단자에 자기가 서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에띠엔느 질송이 너무 충격적인 발견을 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사람은 이것을 어디에서 발견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두 중세철학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렸느냐하면 ‘이 사람은 이것을 어디서 배운 것이 아니라 저기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오다가 중세 교부시대가 되면서 이런 것들이 아우구스티누스 정도로 해서 막을 내리고 완전히 철학이 사라져 버렸는데 천재 하나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열었는데 그것이 여태까지 내려오던 그 모든 세계관을 뒤바꿀 수 있는 충격적인 철학적인 사유의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이렇게 본 것이 졸지에 한번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꼬깃도 에루구숨’이라는 것을 많은 학자들이 표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누구의 표절이냐 하면 ‘씨폴리오르에루구숨’ 이라는 말을 유감스럽게도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미 1400년 전에 한 말입니다. 그 ‘씨폴리오르에루구숨’ 이라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만약 오류에 빠진다면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 그것을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베낀 것이 아니냐?’ 즉답을 회피했다고 그럽니다. 그것도 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즉답은 회피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연구로 옮아가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한 인물이 있었는데 아퀴나스주의자 중의 사람인 보나벤추라를 연구한 것입니다. 그렇게 연구를 하다가 중세 후기철학에 접하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아하, 이 데카르트가 독창적인 사람이 아니라 중세후기에서 이 단서들을 발견하고 자기의 생각인 것처럼 정리해서 소위 이야기하는 칼티시즘 데카르트주의라는 것을 만들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한 연대는 모르지만 1900년대 초에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것을 발표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오는데 그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테제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중세에는 신학만 존재했고 철학은 사라진 시대였다.’ 그것이 모두 합의를 이루고 있는 테제였습니다. 그래서 데카르트의 철학은 중세와 연관성이 없고 저쪽 중세 이전 그리스 철학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리스 철학과 연관성을 가졌지만 독창적으로 근대철학의 문을 연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테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연속성 이론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때에 다 미친놈이라고 욕을 합니다. 그때 그중에서 정확한 숫자는 기억이 안 나는데 7명인가 몇 명이 와서 우리말로 하면 악수를 하면서 격려를 하면서 ‘정말 우리가 궁금해 하고 있던 것에 네가 답을 주었구나!’ ‘정말 놀랍다.’ 그러면서 ‘우리 같이 연구해보자.’ 그중의 한사람이 자끄 마리뗑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데 너무 놀라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정확하게 40년 후에 그 말도 안 된다고 욕을 먹던 에띠엔느 질송의 이론이 이제 완전히 보편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상전벽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띠엔느 질송은 정말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분의 책들을 혹시 구하시면 꼭 사십시오. 안 읽더라도 모두 사서 책이 계속 찍힐 수 있도록 우리들이 이바지해야합니다. 에띠엔느 질송이 그렇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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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띠엔느 질송 (1884∼1978)
- 프랑스 토미스트(Thomist) 철학자
- 중세철학이 역사적으로 ‘존재’했음을 확증하여 중세 철학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 대표저서: 중세철학사(1921)
중세기독교현학사
B. 연속성 이론의 선구적 업적들
이 에띠엔느 질송의 이러한 사유의 방식을 폴 오스카 크리스텔러 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제 이것을 자신의 연구에 상당히 적용하게 됩니다. 자, 그러면 이 폴 오스카 크리스텔러 라는 사람은 무엇과 무엇을 연구했느냐하면 재미있는 것이 또 있습니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르네상스와 중세와의 관계는 종교개혁과 중세교회의 관계와 아주 흡사합니다. 그런데 그래서 그때까지는 어떻게 보느냐하면 ‘르네상스는 중세와 상관이 없다.’ 그리고는 중세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폴 오스카 크리스텔러가 나타나서 면밀하게 조사를 하면서 이제 얘기가 많지만 요약을 하겠습니다.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하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는 사실은 새로운 철학의 사조나 체계가 아니라 고전 수사학 전통에 기반을 둔 문화적 교육적인 프로그램의 하나였다는 것을 찾아내면서 어떤 역설들을 발견해내느냐 하면 막 철저하게 어떤 개념들을 따지면서 어떤 스콜라주의가 일어났는데 르네상스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며 일어나면서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들을 펼치게 됩니다. 그러면서 표현도 굉장히 자유스러운 표현이 많이 들어오게 되고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스콜라주의가 인문주의자들이 종교개혁에 대항해서 일으켰던 사상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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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카 크리스텔러
- 르네상스 인문주의 연구가 중세와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연속성 연구
- 콜롬비아 대학 명예교수
-대표저서: Renaissance Thought: the Classic, Scholastic, and Humanist Strains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중세시대 때에 개념에 항거해서 이제 인본주의적인 개념들을 만들어내고 대항하게 됩니다. 자연과 세계와 교회,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런 개념들이 중세에서 만들어낸 스콜라주의라는 상자에 넣어서 보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콜라주의가 아니었더라면 이 인문주의 다시 말해서 르네상스 운동에서 일어났던 대의들은 유실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라는 이런 논리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아, 이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구나!’ 라고 하면서 이 르네상스의 정신들과 사상들을 종교개혁과 중세와의 연관 속에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 헤이코 아우구스티누스 오버만 이라는 학자가 나오는데 최근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중세 후기 스콜라주의 시대가 그때 뿌려놓았던 것을 루터가 거두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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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코 오버만(Heiko A. Oberman 1930-2001)
- 네덜란드 역사신학자
- 중세와 종교개혁의 연속성 연구
- 대표저서: The Haroest of Medieval Theology
그러면서 이러한 것들이 어디로 이어져 가느냐하면 헤이코 오버만이 이것을 물려받아서 이번에는 이것을 에띠엔느 질송은 중세와 근대철학, 크리스텔러는 중세와 르네상스인문주의 그 다음에 오버만은 중세와 종교개혁을 연관시킨 것을 이 같은 연속성이 분명히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 사이에도 있을 것이라고 하고 17세기에만 평생을 헌신하는 분이 나오는데 이분이 바로 리처드 멀러교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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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멀러 (Richard A. Muller)
- 미국 Calvin Theological Seminary 역사신학교수
-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한 ‘멀러 테제’ 주장
- 대표저서: PRRD, Christ and the Decree
Ⅳ. 개혁파 정통주의에 관한 멀러의 주장
A. 멀러 연구의 핵심적 주장
여기에서 핵심적인 주장만 요약하고 끝내겠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뭐냐 하면 멀러테제의 핵심적은 주장이 무엇이냐 하면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의 스콜라주의는 방법론이었고 종교개혁주의자들의 내용을 훼손한 것이 아니었다. 두 번째는 모든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다 스콜라주의적인 방식으로 저술한 것은 아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17세기 개혁파신학은 결코 성경 신학을 무시한 조직신학 일변도의 신학이 아니었다. 네 번째는 16세기 신학자들 그러니까 종교개혁자들은 스콜라주의 신학 일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또 비난 중에 하나가 있는데 17세기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었다고 보는 것인데 그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오히려 어느 철학이든지 성경의 진리를 그 시대에 맞게끔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면 차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혹시 여러분들이 ‘오캄의 면도날’ 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앙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채용했던 칼빈이나 루터나 아니면 존 오웬이나 이런 사람들이 윌리암 오캄의 사상을 다 수용했느냐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 방법을 사용했고 심지어 신학자들 중에는 데카르트의 방법을 사용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것들이 1621년에 네덜란드에서 커다란 문제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하면서 이제 그런 핵심적인 주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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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러 연구의 5가지 핵심 주장
⑴ 방법론에 있어서 스콜라주의를 사용하였다.
⑵ 모든 스콜라주의를 택한 것은 아니다.
⑶ 성경 신학을 무시하지 않았다.
⑷ 종교개혁자들이 스콜라주의를 모두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⑸ 고유한 의미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아니었다.
Ⅴ. 한국에서의 개혁신학의 연구의 미래를 전망함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도대체 이것이 앞으로 개혁 신학연구에 주는 전망이 무엇이냐?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제 우리는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을 공부함으로써 개혁신학의 풍부한 유산을 섭취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의 결론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개혁주의 목회에 대한 멀러의 테제가 준 함의가 무엇이냐는 것만 결론을 대신해서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목회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또 신학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 하면 종합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슨 뜻이냐 하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별로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지식의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그나마도 예전에는 교리교육을 했습니다. 교리를 철저히 가르쳐야하는데 요즘은 교리도 안 가르칩니다. 실제로 열린 교회 중기에 온 사람 20명을 놓고 삼위일체를 가르쳐보면 90%가 양태론 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구원을 믿음으로 얻는다는 명제와 은혜로 얻는다는 것이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반이 넘습니다. 이러한 식의 아주 일천한 교리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 자체가 혼란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쳐야합니다. 철저하게 교리를 가르쳐야합니다. 그런데 교리도 안 가르치니까 그나마 붙들고 살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교리만이 아니라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전 포괄적인 세계관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세계와 교회와 역사와 인간을 보고 그리고 내가 어느 지점에 와서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안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보자면 교회에서 실컷 신앙생활을 했는데 밖에 나가서는 다윈주의를 추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와서는 예수를 믿는척하고 윤리적인 삶에 있어서 당위성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나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욕을 먹으면 안 되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자는데 이것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이런 식의 아주 일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50만 톤 60만 톤 되는 벌크 선은 배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길이가 400m정도 됩니다. 그래서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미션지도를 보니까 남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쪽으로 부지런히 걷는 것입니다. 자기는 남쪽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 자체가 북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남쪽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을 확신할 뿐 이 시대 전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그림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 개혁파정통주의 신학입니다.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로 상당히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교부들, 플라톤, 그 다음에 중세교부들, 그리고 종교개혁자, 그 다음에 계몽주의 신학자들을 공부했는데 연결이 잘 안됩니다. 왜 옛날에 아우구스티누스나 이런 사람들이 써놓은 책을 읽으면 들어오는 이 세계 전체를 한품에 내가 안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을 오늘날의 신학을 통해서는 받을 수 없을까 하고 궁금해 하고 심히 고통을 받던 때에 우연히 멀러 교수님의 ‘PRRD’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PRRD는 Post 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라는 책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노란 책입니다. Christ and the Decree 는 당신의 박사논문을 확장시킨 것입니다. 리처드 멀러 교수의 이 책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멀러 교수님이 여태까지 162편의 논문을 쓰셨습니다. 제가 그분이 쓰신 논문이 162편이라고 가르쳐드렸습니다. 그것을 다 가지고 지금도 계속 읽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받는 것은 엄청난 유산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자료들을 찾으면서 지금은 선입견 속에서 잃어버린 원래의 신앙과 신학의 형태들을 재건해내는 것입니다. 물론 당신 자신이 고백하듯이 완벽한 재구성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이 이 편견에서 벗어나서 풍성한 개혁신앙과 그리고 이 개혁신앙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박수치는 개혁신앙이 아니라 감히 벌떡 일어나서 이 모든 세계의 사조들을 향해 ‘너희들은 결코 총체적인 사상을 갖지 못했다. 너희들은 결코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은 결코 온전하지 않다. 너희보다 완성적인 형태의 사상이 있고, 철학이 있고, 그리고 신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적 기독교 신앙이다.’ 라고 저 위에서 하찮은 것들을 꾸짖듯이 혼내면서 이 사상을 꾸짖고 올바른 길을 보여줄 수 있는 단순히 철학만이 아니라 철학, 예술, 과학, 미술, 심지어는 의술, 의학, 건축, 음악, 법학 이 모든 것을 혼내면서 꾸짖으면서 저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보여줄 수 있는 웅대한 자산을 이 개혁파 정통주의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그러면 어떻게 했느냐하면 그냥 네덜란드의 서고 속에 꽉 묻혀서 먼지가 가득 쌓여서 소수의 사람들만 보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멀러 교수님이 테제를 발표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고 보니까 여러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마치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선지자들이 나타나듯이 막 나타나게 되면서 사실 그분들이 멀러 교수님이 깃발을 들지 않았더라면 죽을 때까지 알려질 리가 없던 사람들이 멀러 교수님이 깃발을 들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멀러 교수님은 이분들이 내리는 멀러 교수님에 대한 평가는 공정하지 않습니다. 같은 패밀리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공정합니다. 같은 솥에 밥을 먹고 산 사이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유럽의 세미나에 가보니까 상당히 많은 학자들이 17세기를 이야기하면서는 결론부분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Muller says.’ 그것이 권위입니다. ‘멀러는 말하기를’ 이것으로써 자기 자신의 논문의 권위를 확정하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