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강해Ⅱ
(설교모음)
설교기간|날짜 미확인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 빌립보서 2:23-25 새벽예배 1
2. 빌립보서 2:25 새벽예배 3
3. 빌립보서 2:26-29 새벽예배 5
1. 빌립보서 2:23-25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빌 2:23-25)
디모데는 연단 가운데서 주님 앞에 쓰여서 사도 바울에게 요긴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요즘으로 말하면 전도사쯤 되는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겠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에서 보조적인 교역자였는데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사도 바울이 쓸 것을 도와주는 물질을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에게 가지고 왔다가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몸이 아파서 고생하였는데 이 이야기가 빌립보 교회에 들어가서 교인들이 걱정을 하는 것을 알고 에바브로디도가 그 사람들의 근심으로 인하여 고민을 하니까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기 전에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그렇게 큰 병이 아니었음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알게 하여 서로간 근심을 덜어주려고 한 것입니다.
제가 20년 전에 한 주간 동안 금식을 하면서 빌립보서를 수십번 읽었습니다. 그 때 은혜받았던 대목 가운데 한 곳이 이구절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돈을 모아서 선교에 쓰라고 모아주니까 에바브로디도가 그것을 가지고 이곳에 와서 열심히 섬기니 아파서 누웠고 그가 아파서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빌립보 교회가 걱정을 하고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런 사정을 에바브로디도가 알고 나 때문에 교회가 걱정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걱정하고 이 사람들이 서로 걱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울이 걱정하며 이 사람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생각하었습니다.
어디서 우리들이 이런 사랑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피도 살도 섞이지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의 참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삶을 우리들이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성도들 속에서 경험하는 참된 기쁨과 참된 즐거움이 없다고 할 것 같으면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뭔가 문제가 있고 부족한 것이 있음을 보여준느 것 입니다. 이런 관계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 관계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이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함께 형제된 자요, 수고하는 자요 군사된 자요 사자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사도 바울이 개인적으로는 박해와 고난을 많이 당한 고생길을 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충성스럽게 돕는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보실 때에 이 에바브로디도를 사도는 말하길 한 형제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향하여 품었던 뛰어난 감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형제였다는 것입니다. 즉 에바브로 디도와 사도 바울 두사람이 긴밀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결속되어 있는데 그것이 결국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맺어준 하나님의 자녀의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가 족속하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두 사람 속에 얼마나 깊이 박혀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생사를 초월해서 눈 앞에 있는 이익을 초월해서 그들은 형제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각자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사람이 각자를 형제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렇게 정말 영혼과 영혼이 연락된 그런 굳센 목양의 관계, 나아가서는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목양의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복음에 의한 감화가 하나님의 교회에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각사람의 심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진정으로 변화되어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해지고 우리가 예수의 피로 사신바 된 것이 새겨지지 아니하면 우리는 먹고 마시는 관계 이외에 아무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에바브로디도와의 관계가 형제의 관계였습니다.
함께 수고한 자였습니다. 그들은 서 있는 자리는 달랐지만 한가지를 위해 모두 함께 수고한 자들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인간성을 보려면 무거운 것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을 시켜보면 그 사람의 인간성이 들어납니다. 서로 힘을 다해 들어야 들리는데 무거운 것을 들 때 항상 함께 수고하지 않고 들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에바브로디도는 다른 사람은 어떠하든지 자기 있는 힘을 다해 그 복음 사역이라는 무겨운 짐을 사도 바울과 함께 들었던 자로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 영원히 새겨지고 아로새겨진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전에 있던 교회에서 누군가가 그 교회에서 충성을 한다는 보고가 되고 인식이 되면 목이 메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무거운 짐을 드는 사람들 간에 끈끈한 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사도 바울이 우리들을 바라보는 마음과 상당히 흡사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하시기 전에 한 여인이 향유를 부은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여인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괴롭게 하지 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사랑으로 쏟아부으신 사람의 편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 사역을 위해 부름을 받았음에도 불고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고 충성스럽지 않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단지 자기의 복음 사역을 밥벌이나 체면치례용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복음 사역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고 주님을 향한 사랑은 영혼 사랑으로 나타나서 혼신의 힘을 쏟아붓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이 에바브로디도를 생각할 때 함께 수고하는 사람이라는 고백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2. 빌립보서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히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빌 2:25)
바울에게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통해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아 주를 위해 살아보려고 한 사람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유익을 구해 떠나갈 때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에게 있어서 함께 수고하는 자로 나타났습니다.
세 번째는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평가 할 때 군사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길을 마차를 타고 왔다가 병에 걸려서 죽을 정도까지 이른 사람이니까 우리가 이 사람이 육신적으로 강건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가 이렇게 육신적으로 연약한 자를 가르켜 군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사람이 보기에는 육신적으로 매유 약하고 힘이 없는 자였지만 신앙적으로, 영적으로는 강건한 군사와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주님을 섬기기 위해 신앙의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군사와 같이 강건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강한 군사가 되어서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나갈때 그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에바브로디도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냄비처럼 부글부글 끊다가 좀 있으면 푹 가라 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에바브로디도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강한 군사로써 전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그런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군사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환경에 쉽게 굴복하고 감정과 의지에 쉽게 동요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군사다운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서 보면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소개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육익을 구하였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끝까지 그리스도를 구하지 않고 자기의 육익을 구하는 이유가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그리스도의 일의 유익을 구하다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곁길로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맛설 힘만 있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보람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지 주님을 섬기며 사는 그 일이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문제는 자기가 군사와 같은 강인함이 없기 때문에 어려움이 올 때에 이기지 못하고 그 어려움이 자신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 줄 때 그런 신앙을 포기하면 얻을 수 있는 안일하고 편한 삶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그런 삶을 못사는 것입니다. 바로 바울이 이 에바브로디도를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였지만 이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는 끝까지 주님의 일을 구하고 자기의 곁에서 섬긴 강한 군사와 같은 사람들이였다는 것입니다. 군인은 식씩하고 강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에바브로 디도를 너희 무리를 위해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한 사자로써 물질로 사도 바울을 돕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것을 몰라도 돈 심부름을 하였다고 것을 보면 이사람은 도덕적으로 참 깨끗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돈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신앙도 좋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미국을 지난 번에 갔더니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가 헌금을 계수할때 감시하는 사람을 임명하였다고 합니다. 정직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담임 목사가 그 이야기를 하였으니 그 교회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지만 정확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서로 믿지 못하는 시대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누구에게도 그런 의심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헌금이었을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런 것을 안심하고 맡겨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에바브로디도는 교인들에게 신임을 얻을 수 있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들어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에 요긴하게 하실 때 우리들은 더더욱 사람들에게 책망받을 것이 없고 흠이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남아야 합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이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바울에게 매우 큰 유익이 되었고 빌립보 교회에서도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었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당신의 일군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비록 양떼들이라고 하지만 양떼들도 주님을 위해 살고자하는 일꾼들을 알아보는 안목과 감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주를 위해 살고자하는 사람들 곁에서는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일꾼들이 있고 대충대충 살고자 하는 사람들 곁에는 대충대충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약하면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봉사하며 함께 사자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될 때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들을 기뻐하겠습니까?
3. 빌립보서 2:26-29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을 덜려 함이니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빌 2:26-29)
에바브로디도는 교인들을 사랑함에 있어서 바울에게 깊이 인정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 무리를 사모하고 자기의 병든 것을 너희 무리가 아는 것을 인하여 많이 근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면서 교회를 향한 마음을 인정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에바브로디도가 이처럼 사도에게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사도 바울 자신도 깊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아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러나 차가운 피를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뿐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함께 보낸신바 된 자기의 백성들을 사랑하신 일꾼들을 볼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겠는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마음으로 지체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지체의 모습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성도의 모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그러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성도들을 사랑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이를 긍휼히 여겨주셨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심지어는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와 바울이 함께 입은 긍휼은 그런 일반적인 긍휼이 아니라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그런 긍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기를 사랑하고 충성된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깊은 마음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일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 와서 병이 걸려 자기의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할 위기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라보실 때 자기의 일을 하고 당신이 맡겨주신 거룩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 성도를 섬기며 그렇게 길을 다가다가 육신적으로 연약해져서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에바브로디도를 궁휼히 여기고 에바브로디도를 보고 마음 아파하는 바울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병에 걸려서 고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근심하고 있는 빌립보 교인들을 긍휼히 여기셨고 또 그렇게 근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하고 있는 에바브로디도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결국 이렇게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과 그리고 영혼들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깊이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이 에바브로디도에게 건강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살아도 하나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는 그 고백이 가능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더 긍휼히 여기셨는지를 모릅니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더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보실 때 주님만을 위해 살아서 주님을 긍휼을 얻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를 향해서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사도가 너희가 에바브로디도를 보고 근심을 면하고 기뻐하라는 말과 함께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사람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이 하나님의 일군들은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함께 섬기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즐거움은 하나님에게 잇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하나님만 위해 살고 주님만을 위해 살고자하는 그분의 복음 사역자들을 외롭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존귀히 여기는 섬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귀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일군들은 있습니다. 목사가 아니고 전도사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헌신된 마음을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어디든지 있습니다. 그들이 만약에 진심으로 성도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앙의 지조를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위해 사역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할 것이면 그들을 더 깊이 존경하고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땅에 기여하는데 귀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재산과 같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교회의 진정한 재산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심기 바랍니다. 넓은 땅이나 높은 건물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재산일 수 없습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재산, 진정한 부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존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그 안에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뵈옵고 주님을 믿는 아름다운 신앙 안에서 성숙한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께 충성스러운 삶을 살려는 사람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성도를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이 교회의 진정한 자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일꾼들이 잘 자라도록 도와주고 북돋고 그리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그런 성도로서의 섬김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훌룡하고 아름다운 투자입니다.
빌립보서 강해 Ⅱ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