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수련회 (2)
(녹음상태 안좋음)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2-23)
녹취자 : 조원정
오늘 아침에 이 본문을 생각하면서 두 분 김경해 전도사님, 이명희 전도사님을 생각났습니다. 아마 교역자 수련회나 직원 수련회 와서 가장 많이 설교한 본문이 오늘 우리가 읽은 것입니다. 교역자 수련회가 23년 동안 1년에 두 번씩, 봄에는 1박 2일 수련회도 있었습니다. .......친근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가...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돈입니다.
나는 사실 다섯 달란트 맡아본 사람이라고 한번 도 여겨본 적은 없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라기 보다는 ..... 어쨌든 그것이 기회가 되었든지 재능이 되었든지 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도 결국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어쨌든지 그것을 주셨을 때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이 있는데 칭찬이 동일합니다. 첫 번째는 잘됐다 혹은 완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입니다.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맡길 때 주인의 의도를 몰랐다는 것은 핑계이고 그것을 맡겼을 때에는 이익을 남기라는 뜻입니다.
잘했다. 이렇게 칭찬을 받은 이야기는 무슨 뜻인가 하면 내가 의도한 대로 일이 이루어졌구나.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들도 구역장이나 교사나 무슨 일이든지 그에게 맡기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이미 학습이 된 것입니다. 이 사람한테 일을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번 경험한 것입니다.
기회를 사람에게 무한히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습니다. 교사에게 무엇을 맡겼는데 .... 기다려 줍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잘 하는 것보다 사람 됨됨이다. 우리는 이런 충고를 많이 받습니다. 일의 00감과 무개를 볼 때에 000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이지만 한 사람이 일을 매우 못하면서 사람이 매우 훌륭한 경우는 없습니다. 사람의 일이 경솔하게 처리가 되면 어떤 일을 할 때에 사려 깊지 못하면 그 사람도 사려 깊지 못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챙기지를 못하고 질질질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00가 비교하면서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일이 잘못 될 때에는 반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허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보십시오. 잘하였도다. 주인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 의도는 돈을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도대로 잘하였도다. 주인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일을 맡기셨을 때 그 의도가 무엇인지 헤아리고 그것을 희망적으로 표현하자면 그가 가지고 있는 경외심의 크기입니다. 00을 하다가 00을 치면 치리까지는 몰라도 당회를 해서 엄중한 경고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일들이 잘하는 것은 신앙입니다.
사람마다 능력의 크기가 다르니까 일머리가 있고 훈련이 잘 되어서 잘하는 사람이 있고 훈련이 안 되었거나 아니면 워낙 자연인으로서 사람 자체가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시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얼마나 자신을 그 일에 적합하도록 바꾸느냐, 마느냐, 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동창인데 들은 바인데 김경해 전도사님보다 조금 낫지만 정말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대입니다. 부목사가 심방 가자고 하는데 정확하게 그 집 앞에, 내비게이션도 없는 시대에 그전까지는 아무도 그런 교역자가 없었습니다. 같이 차를 타고 계속 헤매는 것입니다. 오면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내가 부목사 자리를 안 해서 그렇지 진짜 웬만한 교회에서는 다 잘렸을 것이다. ...웃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옛날에 집을 못 찾아서 방황을 했답니다. 담임 목사님이 얼마나 교인을 안 돌아봤으면 심방을 가자는데 그 집을 못 찾나? 내가 그랬습니다. 나는 부목사 생활을 안 한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인가? 그 전날 밤중에 와서 집으로 가서, 다음 날 담임 목사를 태워 가서 저기 산속으로 가서 뱅글뱅글 돌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실수를 통해서 많이 배웁니다. 그것을 통해서 그 다음에는 그 일을 함에 있어서 더 완전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상대주의 포스터 모더니즘에 대해 강의를 하고 질의응답을 하고, 산상세미나 한 것을 90분으로 질의응답 강의를 하고 .... 컴퓨터가 음성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화면도 안 나오는데 그 어려운 강의를 90분 동안 들은 것입니다. 똑같은 일이 작년에 총신 세미나 할 때도 있었습니다. 프로젝트인데 잘 되냐고 했더니 잘된답니다. 인간과 잘 사는 것 돌렸는데 3분의 1 강의 했는데 픽 하고 나가 버리고 안 돌아 오는 것입니다. 머리가 하얗게 되고 강의한 내용이 전부다 뒤범벅이 된 것입니다. 외줄 타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그런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빈 프로젝트 하나하고 코드하고 노트북 하나만 들고 가면 대비책이 됩니다. 항상 이 다리가 끊어지면 어느 다리로 걷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준비하는데 몇 백만 원을 줘서 빈 프로젝트를 하루를 빌려야 된다면 그것은 또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이미 다 있는 것입니다. 두 대만 챙겨서 겨드랑이에다 끼고 가면 해결이 될 문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모들이 해야 되는 일입니다.
어떤 일들이 주어졌을 때 그 일이 잘 되지 않게 하는 요인이 뭔가? 그리고 그 000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슬기로운 것입니다. 제일 부끄러운 것이 못 챙겼습니다. 까먹었습니다.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그 일에 정신이 집중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직원들은 인터폰으로 부르면 모두 수첩을 들고 옵니다. 차나 한잔 마시자고 불러도 모두 수첩하고 연필 들고 옵니다. 그렇게 훈련을 시켰습니다. 세 가지 네 가지 이야기해도 고개를 끄덕 거리며 해도 가서는 두 가지는 잊어버립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는 있습니다. 또 영리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다 적고 마지막 헤어질 때 몇 가지 뜻입니까? 아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다 적고 갑니다. 그런 사람이 발전이, 그런 의지와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그 에너지를 다른데서 아끼고 거기에다 쏟겠다고 하는 것이지 일에 대한 사랑이고 자기 인생에 대한 예의입니다.
이단은 참모가 아니기 때문에 순서적으로 체계적으로 질서를 갖추고 리더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보입니다. 왜 그런 기발한 생각을 일주일 전에 말씀하셔야지 지금 말씀하십니까? 리더는 그렇게 잘 못합니다. 한 가지00 여러 가지 속에서 움직입니다. 강의를 하면 또 몇 달 전에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느닷없이 전화가 와 가지고 목사님 이것 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습니까? 그냥 가서 말로 때워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강의안을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줘서 타이프 하라고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ppt를 만들어라고 하고 ... 만들어서 출판실 직원이 가지고 왔습니다. 오자투성이입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을 말하는 것인지 알지? 알겠다고 합니다. 이 얘기 하는 것도 엄청나게 에너지가 드는 것이기 때문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나는 말도 안한다. 타이프를 쳤으면 타이프를 친 것이 말이 되는지를 한줄한줄 읽어보고 말이 안 되면 동그라미를 쳐 와서 목사님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하고 물어 봐야지 그냥 쓰신 대로 쳤습니다. 그게 글사입니까? 사환입니다. 사역도 그렇게 하면 너는 발전 없다. 시키는 대로 갔다 와라 하면 가니까 없데요, 갔다 와라 하면 다 팔렸데요, 갔다 와라 문이 잠겼던데요, 그 일을 이루겠다고 하는 의지는 없고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는 다 했으니까 난 책임이 없습니다.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할 말은 없습니다. 가니까 없던데요. 어떡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두 번 세 번 반복되면서 읽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의지가 없구나. 가니까 없어서 제가 옆집에서 구했습니다. 하든지 집에도 없어서 수소문을 해 보니까 택시 타고 가면 살 수 있다고 해서 제가 갔다 왔습니다. 제가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것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입니다. 00식의 삶을 계속 살아가면 삶은 도태됩니다. 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하기 위해서는 00 저자의 동기, 일의 본질에 대한 통찰, 그 통찰을 기초로 그것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하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입체적으로 하는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할 얘기가 너무나 많지만 넘어가겠습니다. 잘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년 동안 사역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냉정하게 돌아보면서 된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에도 그런 뜻입니다. 두 번째는 성품입니다. 착하고 그 일을 통해서 주인은 종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여기에서 착하다고 하는 것도 뭐냐 하면, 기업가들은 착한 사람 좋아하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은 너무 양보를 많이 합니다. 기업에 손해를 끼칩니다. 여기에서 착하다고 하는 의미는 그런 의미에서 착하다고 하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 됨됨이가 주인의 맘에 든다는 것입니다. 잘했다는 것과 착하다는 것이 분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잘했다. 착하다. 엄청난 철학적인 관념을 가지고 들어갈 필요는 없고 유괴범이라도 아이들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하지 착하다 하면서 어릅니다.
마찬가지로 이 주인도 달란트를 맡겼을 때 자기의 의도대로 잘 해서 소홀함이 없이 되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행한 일도 마음에 들지만 그 사람의 마음가짐도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인을 주님이라고 놓고 보면 잘했다고 하는 것이 착하다고 하는 것이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을 해야 합니다. 잘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 정말 너는 000 무슨 뜻인가 하면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하셨던 것처럼 어디에 그 사람을 내다 놓아도, 여러분들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신뢰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디 내가 감시할 수 없는 곳에 있다고 할지라도 내 의도와 어긋나게 말하거나 행동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신뢰가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그것이 착한 것입니다. 착하다고 하는 뜻 000이라고 하는 뜻이 그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 그 착함은 어디에서 오나? 000에서 옵니다. 거기서 착함이 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충성된, 충성되다. 충성은 일이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에서 충성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을 충성 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000 했다. 그 시간이 너무 신난다. 열이 뻗쳐서 발톱이 부러지도록, 우리 김성구 목사 발가락이 부러지도록 공을 찬다. 이거 충성된 것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서 한 것입니다. 충성이라는 것이 무어냐 하면 자기가 본성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일이 계속 일어나서 어떤 일을 방해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꿋꿋하게 그 일을 감당해 나갑니다. 그게 충성입니다.
나는 너무 놀라운 것이 여수를 내려갔습니다. 애양원입니다. 여수 애양원이 누가 있던 곳입니까? 손양원 목사님입니다. 나환자들 돌보던 곳 아닙니까? 손양원 목사님이 돌아가신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지금도 거기에는 손양원 목사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에 알려진 그의 성자다운 모습을 훼손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한국 교회가 알고 있는 그런 사람하고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 와서 그 얘기를 해서 뭘 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렇게 집요하도록 교인들이 미워하고 내쫒지 못해서 안달하고 그러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 훌륭한 사람이 되면 00가 될 것 같지만 그것은 다 후세가 하는 이야기이고 죽었으니까 하는 이야기이고 손 목사님이 자기 생애 후기 1년 반 동안을 너무 교회가 차가운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반응이 없고 어떻게 그리스도의 교회가 00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말씀에 대한 냉담이 아니고 000를 향해서 어떻게 그렇게 차가울 수가 있을까? 그분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 이야기가 그것이 목회자의 삶입니다.
모든 것들은 결국 충성을 입증하는 도구로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정말 하나님 000 차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가 종아 하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다음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마지막에 종을 주인에게 소속된 사람, 그 주인을 위해서 있는 사람, 여기에 나오는 이 주인, 슬레이브, 노예인지 서번트인지는 불분명합니다. 나의 생각에는 00이기 보다는 서번트에 가깝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슬레이브와 서번트는 다릅니다. 슬레이브는 그 집의 노예입니다. 서번트는 급여를 받는 사람입니다. 출퇴근을 할 수 도 있고 그 집에서 계속 묵을 수도 있고 슬레이브는 연명적으로 메인 사람, 아마 서번트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지 간에 정체성이 종입니다.
항상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은 서번트가 아니라 슬레이브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만약에 서번트라고 한다면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이 이상의 삶을 살아야 될 운명에 있는 그리스도의 노예들이라는 뜻입니다. 길게 보면 우리의 일생이 늘 배워야, 이렇게 보면 배울 수 있는 기간은 딱 한정되어 있습니다. 일생 동안 공부한다고 하지만 그 사람이 공부를 통해서 사회에서 입질을 할 수 있을지 직업을 갖게 될지 하는 것들이 학교 다닐 때 한 16년 사이에 결정이 되고 대학 가는 것이 고등학교 때 실력에 달려 있으니까 더 짧게 보면 12년 정도의 세월에 의해서 결정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고등학교 3학년 때 졸업할 때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생을 살아가면서 배웁니다. 그런데 집중적으로 배워서 사역자로서의 뼈대가 서게 되는 것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닙니다.
여러분 선배들이 담임목사가 되어서 열심히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부목사때 이 모습 이대로입니다. 그때 뭔가 판단이 우유부단한 사람들은 담임목사가 되어도 그렇고 가끔 삐딱선을 타던 사람들도 담임목사가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어떻게 잘 자신이 훈련되느냐에 의해서 저 사람들 하는 것.... 멘토 제도도 있고 했습니다. 한때 좀했었습니다. ..... 뭐라도 좀 해서 이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한번... 여기서 내려다 볼 때 갑갑하지 않습니까? 내가 무슨 교구하는데 ... 하지 말고 담임목사 한 사람한테 괴롭힘 당하는 것도 죽을 맛인데 시어머니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게 아니고 ...이렇게 유통할 수 있는 그런 것을 한번 만들어 보십시오. 부교역자들 들어오니까 .... 처음으로 온 사람 붙들고 내가 어떻게 말씀의 훈련을 할 것인가 그런 것들을 좀 배우면서 ... 감사합니다. 은혜를 내려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