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회수련회 1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8-29)
녹취자: 박지성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에는 정말 교회를 위해서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이 담겨있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 보면 “우리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가 누구입니까? 사도바울, 사도바울과 동행하고 있는 동역자들, 골로새에 있는 목회자와 사랑하는 성도들, 교회에 회원 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목회는 목회자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늘 성경 본문은 원리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우리가”라는 말이 교회를 교회답게 이루어 가는 목회가 우리 모두의 공통된 분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은 사실 이런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일어난 것입니다. 중세의 교회는 가르치는 교회와 가르침을 받는 교회로 나누었고 그 다음에 높은 사제들의 계급과 그들의 지배를 받는 평신도들로 나누어 버렸습니다. 여기에서 만인제사장주의를 부르짖었고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힘을 합쳐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질서 안에서 핏줄처럼 함께 참여하여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목회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함을 보여줍니다. “그를 전파하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형성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순전하게 전파함으로써 그것을 통해서 성도들이 거듭나고 회심하여 교회의 진정한 일부분이 됨으로서 교회의 몸을 이루어 간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교회의 목회도 없습니다.
마이클 호튼은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라는 책에서 현대 교회의 이런 문제점들을 아주 심하게 질타하였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이 회복하여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정신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더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교회의 모습이 될 때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목회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교회의 지체들이 모두 함께하는 목회, 두 번째는 예수를 전파하는 목회가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각 사람”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오늘 우리들의 시대에 교회는 집단주의적입니다. 마치 큰 구릅에서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지만 그 구릅의 이름을 빛내게 하는 것처럼 교회가 이제 성도들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보다는 교회 자체의 브랜드화, 교회 전체의 명성, 혹은 교회 전체의 성장 이런 것들에만 너무 마음을 씁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목양의 원리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의 본문에는 각 사람, 각 사람, 각 사람 하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목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올바르게 세워서 완전한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완전하다는 것은 결함이 없는 완벽한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희랍어 성경으로 보면 “다 자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끊임이 없지만 육체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20세쯤 되면 더 이상 키도 안 자라고 다 커버립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른스럽게 자라는 일은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성인 그리스도인으로 유아기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성인 그리스도인으로 키워내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 목회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자, 그러면 어른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은 어른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몇 가지 그림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히브리서에 보면 첫째, 어른 그리스도인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는 교인들입니다. 그저 설탕을 바른 것처럼 달콤한 설교, 신학적인 내용은 좀 없어도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그런 따뜻한 설교는 무르고 먹기 쉬운 음식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튼튼한 육체를 가지고 강건하게 싸우려면 영양가 있는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음식이 부드러워도 순두부 같은 것은 먹기 좋지만 몇 개를 먹어도 갈비 서너 대 뜯은 것 같은 에너지를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 자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단단한 음식도 잘 먹고 그것을 소회시켜서 영양분을 삼을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적인 설교도 듣고 깊이 있는 사상적인 설교도 들으면서 그것을 소화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드리면 장로님들은 동의를 안 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17년 동안 목회를 하지 않았습니까? 설교를 수천 번을 하면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쉬운 설교 듣고 회심한 사람과 어려운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쉽게 마음에 와 닿는 실생활에 적용하는 설교를 듣고 많이 회개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사람도 정말 새로워진 것이겠지만 고린도서 13장 강해나 이사야 53장 강해 같은 신학적인 설교들을 듣고 회심한 사람은 지성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커다란 생각의 선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적인 설교의 중요성이 여전히 대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각 사람, 각 사람이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은 첫째,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며 두 번째, 에베소서에 보면 어른스러운 사람은 판단이 어른스러운 사람입니다. 판단이 어른스러운 사람, 그것이 바로 다 자란 성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렸을 때는 판단력이 그릇되고 감정에 치우치지만 어른이 된 다음에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로는 인격적으로 온전한 사람입니다. 네 번째로는 행위에 있어서 온전한 사람, 이런 것이 성경이 그려내고 있는 어른스러운 그리스도인의 특징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이 교회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목회의 영광입니다.
나는 금년 한해를 넘기면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어느 날 가만히 돌아보니까 우리 교회가 성장하다가 조금 주춤하다가 성장하다가 조금 주춤하는 변화는 있었지만 한 번도 어느 교회처럼 뒤로 간 적은 없습니다. 우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증인이지만 우리교회는 한 번도 내년의 목표가 몇 명이라고 정해본 적도 없고 사람 명수를 나누어서 교역자들을 쪼아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매년 마다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진리를 갈급해하는 사람들에게 회심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교회가 무슨 남성들을 데리고 스포츠클럽을 운영합니까? 아니면 다른 교회처럼 사교모임을 갖습니까? 그런데도 남성들에게 많은 회심을 주셔서 이렇게 교회가 세워지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목회의 가장 큰 보람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실 이번에도 캄보디아와 미국에 가서 여러 가지 일을 보면서 정말 세상은 넓고 가슴이 벅찰 정도로 할 일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교회가 조금 컸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지금하고 있는 일도 교회가 작았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입니다. 그런 것은 있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회의 목표는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 각 사람을 주님 안에서 잘 세우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 너무 중요하고 거룩한 목표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화) 엊그제 총신에 강의를 갔습니다. 그곳에 열린교회에 다니는 우리 학생들이 한 열 명 정도 있습니다. 다른 교회 목사님도 채플시간에 설교를 하러오면 자기네 교회에서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부른다고 합니다.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습니다. 불러서 밥을 사주면서 구두를 하나씩 다 맞춰주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난 돈이 없어서 그냥 만 오천 원짜리 한정식 하나씩 사주고 위로를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왜?”, “교수님들이 와서 우리 열린교회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그런데 전체적인 공통점이 있어요.” “그것이 뭔데?” 그랬더니 “여러분들이 하시는 얘기인데요.” “그것이 뭔데?”, “한국교회에서 지금 본받을 만한 교회가 두 교회 있는데 착한 목회를 하고 싶으면 분당우리교회를 본받으면 되고 신앙이 있는 목회를 하려면 열린교회를 본받으면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래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교회를 세우게 하셨을 때에는 우리는 남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해마다 우리의 앞길을 개척해 가기도 어렵습니다. 오늘도 외국에 있는 분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어둠속을 해쳐가는 기분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왔을 뿐이기 때문에 나는 5년 후, 10년 후의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그런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걸어갈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하려고 애를 쓰게 되면 우리가 걸어온 길 자체가 길이 되고 우리가 가는 곳, 그곳이 사람들의 목표가 됩니다. 그래서 나는 감사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크기로 말하자면 그리 큰 교회가 아닙니다. 얼마든지 큰 교회가 많고 교인이 3000명이 된 교회가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정말 각 사람을 주님 안에서 세우는 이 목회를 위해서 우리들이 헌신해야 된다하는 것입니다. 교역자들에게도 간절히 촉구하는 바가 그런 각 사람 하나하나를 위한 눈물과 그런 고통을 가지고 목회를 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가 바로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그 다음 네 번째로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해서 어른 그리스도인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각 사람을 권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사람들에게 인격적으로 타일러서 좋은 길로 같이 가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를 해보면 알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군대같이 명령하는 데로 깍듯이 움직이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개념 없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도 되지 않게 교회를 훼방하는 일들도 아주 다반사로 있습니다. 옛날에 교회는 아버지 같은 교회였는데 요새는 힘없는 엄마 같은 교회가 되어서 그렇게 무한정 애들을 끌어안고 돌보고 응석받이로 길러놨더니 이제는 엄마한테 대듭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교회 속에 있을 때에 교회가 그런 교인들을 모두 끌어안고 잘 못한다고 내치지 않고 다독거리면서 타이르는 사랑의 권면으로 또 하나는 가르침으로 해야 합니다. 선명한 진리를 가르쳐서 권하는 것이 어머니와 같은 역할이라면 가르치는 것은 추상같은 가르침, 아버지의 기운입니다. 이것을 온전히 같이 겸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아버지처럼 진리의 말씀을 엄중하게 가르치고 장로들은 어머니처럼 교인들을 잘 다독거리면서 실제적인 삶으로 권면하고 이렇게 하면서 교회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어른 그리스도인으로 세워가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의 참된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화) 저는 이번에도 두 분 장로님, 집사님과 캄보디아를 가면서 가슴이 벅찼습니다. 무안신학교는 잘 되어가고 있고 학생들이 여기에 수학여행을 두 번 왔다 가면서 가슴이 훨씬 뜨거워져서 아주 영리하고 좋은 학생들이 한국에서 유학을 하겠다고 지금 한국어를 배우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가 이미 중국 널리 소문이 났고 학교를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들이 중국 전체에 전파되어서 다른 신학교들이 우리 학교의 수준을 부러워합니다. 학생들도 그것을 충분히 알고 그래서 이제 바라기는 무안신학교도 무안만이 아니라 중경이나 광저우, 청도, 성도 같은 곳에 하나 더 세워서 무안에 간 길에 교수들이 한 번만 비행기 타고 가서 이틀, 삼일씩만 더 가르쳐주고 오면 지금 무안신학교 들어가는 경비의 절반이하를 드리고도 또 하나의 신학교를 세울 수 있고 거기서 중국지도자들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길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 생애에 얼마나 놀라운 일이 되겠는가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일들은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고 이번에도 캄보디아에 가서 바라보면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 많은 사람들, 이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나라의 지도자로 세워주는 역할들을 우리들이 할 수만 있다면 교회건물 하나짓는 것 가지고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가슴 벅찬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번에 제가 유럽출장을 가서 영국에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세우신 신학교를 방문하게 됐는데 우리가 간다고 하니까 학장한테서 연락이 와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외국인들이 좀처럼 그렇게 하지 않는데 자기네 집에 초대할 테니 꼭 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우리에게 이렇게 참된 신앙과 개혁신앙에 대한 꿈을 품게 해주시고 이런 것들을 우리들이 중국에서 캄보디아에서 이루어 가게 하십니다. 이번에도 선교사들이 220명이나 모였는데 프놈펜에 있는 등록된 전체 선교사 숫자가 250명밖에 안되는데 220명이 왔으니까 사실 경이적인 숫자가 모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유럽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모습들을 나는 확신하건데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 교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보편교회를 가슴에 깊이 품고 그렇게 주님의 부르심을 감당하도록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저희 집사람이 전도세미나를 했습니다. 그 강의가 제가 늘 강단에서 부르짖던 보편교회의 정신에 입각한 개 교회의 전도방식입니다. 엊그제 우리 집사람과 앉아서 둘이 대화를 하는데 그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눈을 뜨게 된 제일 커다란 가르침 중에 하나가 보편교회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개 교회가 전도를 하면서 싸우고 심지어는 교구끼리 전도를 하면서 네 식구니 내 식구니 하면서 싸우고 그런 그림들을 보면서 정말 이런 것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편교회의 개념들,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시리즈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이 이 시대의 교회를 향한 사랑과 눈물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학교들을 돕고 쓰러져가는 교회들을 일으켜 세우는 그 일에 이바지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화) 작년에도 영국을 갔다가 정말 가슴 아픈 얘기를 들었습니다. 영국은 국교회 아닙니까? 성공회. 목회자가 지망을 안 한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7~8개에서 심지어는 15개의 교회를 돌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봉급이 우리나라 돈으로 딱 300만원입니다. 영국물가가 우리나라의 두 배 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화폐로 환산하면 120만 원정도 됩니다. 대학원 나와서 물론 아이들을 교육시켜주고 병원비는 해결해준다고 하더라도 그 120만 원정도 되는 돈을 가지고 소명감이 투철하지도 않은데 그 7~10개씩 되는 교회를 돌보면서 생활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점점 안 갑니다. 이런 신학교들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엊그제도 선교타임지라는 잡지하고 인터뷰를 하는데 “능력이 있는 선교의 비결은 무엇입니까?”하고 묻기에 “파송한 교회의 부흥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파송한 교회에서 부흥이 일어나면 선교사후보생들이 질이 좋은 사람들이 나오고 물질과 재정적으로 그들을 뒷받침 할 수 있고 선교를 돕는 일꾼들인 평신도 헌신자들이 많이 나오니까 감당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쭈그러들면 같이 쭈그러듭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회가 잘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정말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두 개가 나옵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가 누구겠습니까?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의 은혜와 하고자하는 인간의 간절한 의지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의 강한 은혜와 그렇게 하고자하는 인간의 간절한 의식이 두 개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사모님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분과를 이끌어 나갈 때 안 되니까 못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역자들을 보면 난관에 너무 쉽게 굴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역이 잘 안됩니다. 난관보다 더 강한 힘이 있을 때 그것을 뛰어넘을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사역입니다. 그런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목회를 해보니까 참 재미있는 것이 지도자들이 뛰어가면 따라오는 사람들은 걸어오고 지도자가 걸어오면 따라오는 사람이 섭니다. 지도자가 앉으면 따라오던 사람들은 누워버립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잘하고자하는 의욕이 넘치고 성령이 함께하시게 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새벽기도 인원이 많이 줄었다고 걱정을 해서 내가 엊그제는 교역자들에게 문자를 쭉 보냈습니다. 장로님들이 열심을 내야 됩니다. 담임목사야 바쁘니까 교회를 비우는 때도 많은데 여러분들이 모본을 보여서 기도하는 장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럴수록 교회가 더 간절히 기도해서 교회가 든든히 서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사역을 감당해 나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내년에는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셔서 우리의 사역의 지경을 넓히시고 넓혀진 지경을 깊게 파게하시고 그래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더 큰 열매들을 거둘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