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과 설교 1
녹취자: 김은정
될 수있으면 여기 올려놓은 책들이 이번학기에 다 읽혀졌으면 바랍니다. 역시 1학년들이 다 순진합니다. 1학년들은 읽어야 된다하면 진짜 읽어야하는 줄 압니다. 여러 전 이번 학기를 준비하면서 묵상하기보다 생각을 했는데 좋은 비유가 한번 떠올랐습니다. 지난 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강의를 하면서 묵상을 했는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사람? 얼굴? 다 자기 수준에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활입니다. 신학교육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 냈는데 누구한테도 힌트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강의하러가면서 차를 타고 가면서 생각해냈는데 기가막힌 비유같습니다. 이것은 신학에 있어서 영적수련입니다. 이것은 신학에 있어서 지적수련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신학교에 들어왔고 또 신학교에서 신학을 하고 있다면 옛날에 한번쯤은 다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치 않은 사람들이 가끔 들어와서 신학교가 문제가 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사람들이 다 수준이 틀리지만 그러나 영적인 것에 대해 뭔가 다 사명감으로 느꼈기 때문에 온 것 아닙니까? 그래서 뜨겁고 또 우리학교에서는 뜨겁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데 뜨거운데 너무 뜨거워서 전에 개강집회 때 딜 뻔했는데 왜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북을 치고 그렇습니까? 북을 치는 거야 찬양을 할 때 좀 마음에 안들지만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기도하는데 북은 왜 두드립니까? 자기도 기도하지.. 막 두드리고 심벌즈 그런거 하고 왜 그렇습니까? 드럼치다 끝나니까 기도도 같이 끝나데.. 그런데 우리는 항상 양쪽으로 치우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쪽에 치우치고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치우칩니다. 그래서 여기에 치우친 사람들은 이것을 하찮게 생각하고 여기에 치우친 사람들은 이것을 하찮게 생각합니다. 근데 그 두 사람 다 바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안하고 책을 안 읽습니다. 그래서 화살 촉이 없습니다. 여러분 전쟁터에 나가서 군사가 적군의 심장을 향해서 활을 겨누는 것은 무엇을 하기위함 입니까? 근데 화살을 쐈는데 적군이 뭐라 하냐면 '아야''누구야' 합니다. 화살촉이 있어야 맞아서 죽는데 뭔가 있기는 있는데 딱 맞어서 적군이 '으악' 그래야 하는데 '누구야' 하고 쫒아와서 뒤통수를 치는데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대는 책도 많이 읽고 예리합니다. 예리해서 적군이 서서 화살을 쏘면 태양빛에 반사되어 화살이 비치는데 예리하게 벼립니다. 맞았다고 하면 죽겠다 해서 그래서 기겁을 했는데 아무리 쏴도 이게 문제가 있는데 안옵니다.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 다음서 부터는 적군이 활을 겨누던 말든 너는 아무리 왼쪽 눈을 감고 폼을 잡아봐야 오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양쪽 극단이 되있습니다. 제대로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겠습니까? 이것이 예리하게 박멸되고 팽팽한 실줄에 매어 푝하고 날라갈 때 시기를 떠난 화살이 과녁을 꿰뚜름같이 빠지지 않고 깊이 박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이 만난 하나님이 더 위대합니까? 베드로가 만난 하나님이 더 위대합니까? 누가 더 위대한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다 같은 하나님입니다. 거기에 우열의 차이를 말하면 곤란합니다. 그들은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사람들이고 성령의 위대한 초대교회의 시대를 개막하는 위대한 성령의 능력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을 만나도 영원히 로마서를 쓸 수 없었습니다. 바울밖에 쓸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빌립보서에 보면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 신학교육에 화살에다 그 얘기를 적용합니다. 그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문맥을 보면 그 얘기가 아니라 사도바울이 그리스도 예수께 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던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 것입니다. 모든 학문과 모든 지식을 다 소용없다고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너희를 모든 지식과 총명으로 자라게하사" 그렇게 기도했겠습니까? 지식의 은사는 구원의 은사 다음으로 우리에게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아무리 똑같은 하나님을 만났어도 로마서는 베드로는 쓸 수 없었습니다.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아 그래도 베드로는 족하지 않느냐" 그러나 여러분 공부만 안한다고 해서 무조건 베드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지식이 우습고 하찮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았던 그 지식을 취하는 것 보다는 이미 얻은 그리스도가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아주던 세상의 화려한 지식이 맞바꿀 수 없다는 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그러나 결국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예리한 화살촉이 없는 신학교육 그리고 그러한 설교자 나중에 설교자의 모델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 양쪽에 있어서 똑같이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것을 설교와 관련시켜서 얘기할 때는 이 지적이라는 것은 결국은 뭐냐면 성경을 중심으로 놓고 성경에 원을 그려가면서 확장되는 지식입니다. 신학서적을 여러분들이 읽을 때 늘 성경을 옆에 놓고 신학서적을 읽어나가다가 성경을 해석하는데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성경에 메모를 해야 합니다. 결국은 무기는 책꽂이에 꽂아놓고 무기는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다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공부를 좀 한다는 학교에서는 이쪽으로 치우치고 이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에 있어서 균형을 잡혀야 합니다.
설교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3가지 분야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신학에 있어서 특별히 그것이 무엇이냐면 첫번째는 교의신학(조직신학), 두번째는 성경신학, 세번째는 교회역사, 거기에 만약 하나 더 한다면 설교의 아트입니다. 이런 훈련이 이루어진 것과 함께 중요한 것은 화살을 잡은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화살을 잡은 사람이 주님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원수를 향해 과녁을 겨눌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앞에 귀히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이러한 준비 없이 이러한 준비만 이루어진 것은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12세 때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에 있었던 율법사와 선지자들은 깜짝 놀랄정도로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지혜가 출중하셨습니다. 결국은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이 안되었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 오면서 무슨 기사가 나오냐면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에 하늘이 열리고 그리고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렇게 음성이 들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무엇이냐면 지적인 훈련을 받은 그 후에 영적인 문제는 뭐냐하면 설교자에게는 하늘이 한 번 열리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실 그때에 하늘이 열리고, 그다음에 성령이 비둘기와 같이 형제로 임하시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는데 3가지 요소가 겸지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늘이 열리고, 그다음에 성령이 내려오시고, 그 다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관계를 확인하시고, 그리고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에 들어서시는 그 사명, 소명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같이 균형을 갖춰가지고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근데 이런 것들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치우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교하시는 장면을 보면 굉장히 풍부한 상식, 그리고 풍부한 성령의 지식, 원숙한 인격, 한량없이 부어지는 설교의 능력, 이 모든 것의 종합으로서 그의 사역의 축복스런 결과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포인트를 맞추어서 우리들이 생각을 해야합니다.
책을 많이만 읽으십시오. 시험으로 괴롭히지는 않겠습니다. 책을 우선 필독서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책을 나누어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주경 쪽의 이야기를 좀 하고 설교 쪽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현재 나아가고자 하는 작업에 가장 유용한 책이 워터칼저에 의해서 지어진 책인데 번역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주경신학의 연구]로 이 책을 읽으면서 도전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미국에도 이런 문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보면서 놀랐습니다. 구약학자인데 지난 번에 채플에 강의하기 위해서 한국에 오셨습니다. 아주 대단합니다. 주경학자로서 오늘날 성경적이지 못한 설교들에 대한 많은 고민, 설교되어져도 사람들을 감화시키지 못하는 설교, 이런 것들을 가지고 깊이 고민하고 있는데 책만 읽어봐도 이분이 확실히 경건하신 분임이 입증이 됩니다. 교회에서 고민하지 않고는 사실 이런 것들을 말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얘기하고 있냐면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설교를 시작하는 시간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모든 것을 장악하는 본문, 분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능력, 이것이 우리의 전 존재를 지배해야 한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대단합니다. "진리를 불태우는 능력이 우리의 마음과 입술을 휩쓸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사상과 감정과 의지와 행위는 진리의 포로가 되어야 하며 진리가 선포될 때 선포자의 마음에는 기쁨과 흥분과 성실함이 뒤따르며 하나님에 성령이 말씀 안에 임재해 계신다는 명확한 증거를 보여주어야 된다." 사실 이렇게 얘기하면서 자기의 신학 서적에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구약학 교수들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것이 의문입니다.
주된 텍스트 북의 제목은 [새로운 주경신학 연구] 엠마오 출판사, 워터 칼저,
그 다음에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주경이니까 사실 어떻게 주경을 했는가? 하는 문제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선 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제 자신의 생각은 설교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문제는 성경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모른다'라고 하는 것은 성경의 저자 연대를 모른다든지, 성경의 내용분야가 모른다든지 저자가 누구라든지 이런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그런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저자가 누구든지 66권 성경을 하나님의 문제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을 보면 저자문제라든지 정경론이라든지 구차하게 많이 쓰지 않습니다. 간략 간략하게 쓰고 어떤 것들은 아예 필요도 없이 넘어가 버립니다. 그런 논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학으로 받아들이는데 그런 신학적인 문제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깃들여 있는 깊은 내용들 그런 것들을 우리들이 이해가 잘 안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의 깊이가 없어지는 이유는 결국은 무엇이냐면 이번 학기를 공부하면서 여러분들이 설교자료들을 읽게 될텐데 칼빈이나 루터의 설교를 읽게 될텐데 조사를 해보면 결국 무슨 생각을 해보면 1시간, 2시간 넘도록 설교하는 내용이 본문이 한절 내지 반절밖에 안되었습니다. 칼빈에게는 많아야 2절입니다. 결국은 설교를 계속하는데 성도가 성경 본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으로 장로교에서 가지고 있던 3대지 3소지 해가지고 3대지 9소지로 되어있는 것이 헌법에 나와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통적으로 많이 물려 내려왔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아주 회의적입니다. 어떤 본문은 그런 구성을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본문은 그런 구성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지를 둘로 나눌 것이냐 셋으로 나눌 것이냐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통째로 되어있으면 통째로 하고 끝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대지를 꼭 나누어 되는 것입니까? 그 모든 문제들은 어디서 왔냐면 제가 보기에는 미국의 영향입니다. 리멤버시키기 위함입니다. 대지 1, 대지2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리멤버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좀더 공부를 하면서 우리들이 다루어 보겠습니다만 설교는 사실 리멤버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기억을 못하는 것보다 기억을 하는 것이 낫지만 그러나 설교는 기억되어지는 설교가 되어야지 기억시키기 위한 설교가 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성경이 본문을 따라가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행해질때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어지듯이 새겨지면 그 내용이 자연스럽게 리멤버 되어지는 것입니다. 대지 1, 대지 2를 몰라도 설교를 전체적으로 듣고 그것을 리프로듀스 할 수 있다면 그러면 된 것이 아니겠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형식의 구애를 받는 것, 워런 위어스비의 설교집을 좀 읽어보셨습니까? 비씨리즈 고린더 전서뿐 아니라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거의 다 나왔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이 열심히 번역을 하셨습니다. 워런 위어스비를 이동원 목사님이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반짝했는데 역시 나누어 가지고 쪼개는데 천재입니다. 토막을 내가지고 보기좋게 배열하는데 천재입니다. 위런 위어스비의 설교는 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나름 대로... 한국에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젊은 설교자 가운데서 이동원 목사님을 비롯해서 많은 설교자들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깔끔하게 성경본문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관찰을 요합니다. 그러나 왠지 신선한 느낌은 주는데 중후하게 밀려들어오는 느낌은 안됩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은 우리들이 확실히 전통적인 구분같은 것도 다시 생각을 해보야한다는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러면서 두 권을 추천을 하겠는데 이 책은 강해 설교의 모본을 보여준다기 보다도 성경의 깊이를 어떻게 복잡한 성경을 간단하면서도 깊이 있게 꿰뚫는가? 하는 말하자면 설교자로서 성경에 대해 가져야할 해안들을 열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던 구약성경 연구]인데 38편 예레미야 애가만 빠졌습니다. 예레미야 애가만 빠지고 38권의 구약성경을 38번의 강의로서 꿰뚫은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연구]인데 똑같이 27편에서 27번, 성경이 두껍다고 해서 많이 쓰지 않고 성경이 얇다고 해서 조금 쓰지 않고 똑같습니다. 거의 비슷비슷 합니다. 근데 저는 이것을 읽으면서 탁월한 충격을 얻었습니다. 아주 신선한.
제목은 [몰간 신약성경 연구, 구약성경 연구], 캠벨 몰간, 무림출판사, 번역은 제가 했습니다. 한번 읽으시게 될 것입니다. 신선한 도전이 되실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것은 주경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마틴 로이드존스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결국은 이 핵심이 설교의 핵심이 되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패커도 여기에 대해서 서문을 썼는데 "단순하고 선명하며 직선적이며 강해적이고 변증적인 방대한 스케일의 설교였습니다. 나는 경외심과 기쁨에 가득차서 교회문을 나섰는데 예전에 알았던 것 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몇 개 안되는 성경 구절을 다루고 있습니다. 금세기에 이 분 만큼 복음에 대해 탁월한 성경의 식견을 가진 분도 많지 않으리라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설교학에 대한 책을 보기 전에 그리고 또 있네요. [설교와 성경신학] 이 책은 에드몬드 크라운이 쓴 책인데 [설교와 성경신학]입니다. 에드몬드 크라운이 지었고, 한국기독교연구원에서 나왔고 얄팍한 책인데 아주 고전적인 책입니다. 성경신학과 설교의 권위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성경신학과 설교의 내용, 설교의 특성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아까 말씀 드린 워터 카이저가 쓴 책인데 설교에서 구약성경이 소외된다는 이런 문제들을 다루었습니다. 원래 제목은 [현대설교에 있어서 구약성경]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대한 편견, 잘못된 취급, 이런 것들이 설교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제시하면서 바로잡아주고 있습니다. [현대 설교에서 천대받는 구약성경] 워터카이저, 여수룬에서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하나 신학적인 어프로치인데 C.H. 다드가 쓴 고전적 책인데 [설교의 원형과 그 발전]이라는 책인데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에서 나왔고 저자는 C.H. 다드입니다.
그 다음에 역사적인 책들을 보기 전에 우선 설교학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책들을 보고, 역사적인 책들을 언급을 하는 것으로 책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우선 현재까지 나와있는 설교학 책 중에서는 가장 설교학 책 다운 설교학 책이 이거 한 권입니다.[목사와 설교]라는 책입니다. 이것은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1969년에 웨스트민스트 신학교에서 말년에 초청을 해서 아무것이나 해달라고 했을 때 설교에 대한 강의를 한 것을 녹음을 풀어서 쓴 것이다. 대단합니다. [목사와 설교] 로이드존스, CLC에서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나온 책이 좀 촌스럽긴 한데 [스펄젼의 설교학]입니다.
여러분들이 기억해야할 것은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쓴 설교학 책만 신경을 쓰십시오. 설교자로 이름난 사람이 쓴 설교학 책 그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런 감화를 끼치지 못하는 설교가에 의해 쓴 설교학책은 늘 학적인 언급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물론 거기에도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살아있는 설교학 책이 되기 위해서는 그래야 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를 선포하는 자여 인색하지 말라. 엉망으로 섞여 잡탕이 된 설교를 듣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설교를 엉덩이에서 시작하여 머리로 갔다가 발로 갔다가 할 수는 없다. 엄숙하게 말하고 모든 능력을 총 동원하며 표현을 거룩하게 하라. 유머를 조금 섞으면 번개의 순간적인 섬광이 깊은 밤의 정취를 한층 더 인상 깊게 할 것이다. 무게있는 언어를 사용하되 집중적인 설교를 하라. 온 정력을 겨냥하고 있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라." 등등의 이야기를 쭉 "진리를 선포하는 자는 논리적으로 정리된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재에서의 연구, 밀실에서의 기도, 강단에서의 열심히 인색하면 설교자가 될 수 없다" 20대의 초반, 초창기의 모습이었습니다. 감화를 많이 받은 설교자였습니다. 그다음에 [찰스 스펄전의 설교학], 신망애 출판사, 마지막에는 건강도 안좋고 참 설교자들이 건강하게 죽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마음 고생을 하도 많이 하니까 한 번 열을 받으면 위가 붉어지면서 위액에서 쓴 위액이 나오니까 설교시간 마다 그러니 어떻하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메릴 에펌 보수신학자입니다. 성경신학자로서 설교에 손을 댔습니다. 이런 책들이 볼만 한 가치가 있습니다. [강해설교의 기술], 메릴 엉거, 보이스사, 그 다음에 웨스터민스터의 실천신학 교수로 있는 [J.E. .아담스의 설교연구] 여기 보면 스펄젼의 설교를 많이 분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앤드류 블랙우드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바울에의 설교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고 있는 유용한 책입니다. [J.E. .아담스의 설교연구] 생명의 말씀사. 그 다음에 [강해설교의 원리와 실제] 상세하게 강해설교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설교라는 책입니다. [열린체계로서의 귀납적 설교방식] 프레드 크레독, 컨컬디어사, 그 다음에 제랄드 캐네디가 쓴 [설교의 이론과 실제] 이 책, 출판사는 기독교서회, 그 다음에 나온 책이 [설교학] 앤드류 블랙우드, 창조적 설교라는 책도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스펄전이 쓴 책인데 이것을 1,2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1권이 특별히 설교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그래서 그가 돈만 있으면 거져 찍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했는데, 목회직의 소명, 설교자의 개인기도, 설교의 재료, 본문의 선택, 영적인 해석, 음성, 주의 집중, 즉석설교의 재능, 목회자의 기죽음, 영적 침체, 등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괜찮은 책입니다.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제 1권] 찰스 스펄전, 생명의 말씀사,
그 다음에 이것은 정성무 교수님이 총신에 계신분이 쓰신 것인데 현재 우리나라에 나온 설교학 교과서 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많은 책들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특별히 설교하게 대한 역사, 역사적인 발생, 설교자론, 강해설교란 무엇인가?, 성경해석, 구속사적 설교해석, 칼빈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용한 책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는 지난 번에 여러분이 읽으셨죠? 안읽고 그냥 쓰신 분도 있지만 레포트 들어온 수 만큼 책이 서점에서 안팔렸답니다. 2월달 목회와 신학에 한 페이지에 대해서 이 책에 대해서 서평을 썼습니다. 좋은 평가를 내려줬고 3주 전에는 기독신보에도 서평이 한 번 났습니다. 영적부흥도 실어줬고 사보나롤라도 여기다 실어줬습니다. 하권이 다음 다음 주 나옵니다. 벌써 그렇게 좋아하시지 않아도 되는데 얇은 책인데 더 윅 폴란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간략하긴 하지만 설교의 전통을 깔끔하게 기술을 해놓았습니다. 특별히 사도시대의 설교, 그 이후의 설교 설교가 어떻게 쇠퇴하게 되었고 소생하게 되었으며 특별히 미국을 중심으로 18세기부터 20세기 전까지 설교가 어떻게 변해왔으며 20세기에서 설교와 선교가 어떻게 관계가 있으며 등등의 이야기들 이야기하고 설교의 원리와 설교의 교회사적인 전망도 실었습니다. 아주 좋은 책입니다. 더 윅 폴란드가 섰고 [설교의 전통] 도서출판 소망사
그 다음에 이 책은 여러분들이 읽으셨을 것이고 이 책은 절판이 되었는데 구하실 수 있으면 구할 수 있으면 아주 좋을 것입니다. [위대한 설교로 이어진 20세기] 기독교 역사를 통괄했던 위대한 설교가들을 생애와 전기 그다음에 설교를 뒤에다 한편 내지 3편씩 실었습니다. 물론 20세기 이후 설교가들을 걸출한 설교가들이라 말할 수 있는가? 거기에 대해선 편집한 사람과 읽는 우리들의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19세기 까지는 위대한 사람들을 뽑아놨습니다. 역사적인 설교가의 맛을 볼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13권이 한질로 되어있는데 누가 사놨다가 안본다고 해서 저는 중고를 간신히 구입했습니다. 혹시 여러분 헌책방에 돌아다니면 얼른 구입하십시오. 전설적인 설교자들의 사진도 나왔습니다. 책들이 잘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지난 시대의 설교집들을 보면 뭔가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설교를 가지고 이용을 하면 성도들이 베낀 것을 모릅니다. 요즘의 아무개 목사님 것을 가지고 하니까 금방 압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가지고 이용을 하면 베낀 것을 모릅니다. [세계명설교 대전집] 성서연구사에서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좋은 책이 또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인데 [요한 크리소스톰의 성직론[ 엠마오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훌륭한 어머니 밑에 훌륭한 아들입니다. 어머니가 19인가 20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미모가 얼마나 빼어났는지 많은 권력자들이 침을 삼켰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을 위해 일생을 희생했습니다. 과연 한 시대의 위대한 설교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신앙으로 길렀습니다.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한 시대를 움직이는 한 설교가가 탄생한 것입니다.
여기 나와있는 성직론은 교부전집인데 교부전집이 지금 우리 손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드만 사에 나오는 마흔 몇 권이 된 것이 있고 하나는 카톨릭 유니버스티에서 찍어낸 것인데 69권인데 원서를 살려면 200만원 가량할 것입니다. 복사판이 나오니까 나중에 어찌됐든 감사한데 그런데서 뽑아내서 일부러 번역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쓴 글들이 헬라말을 전부다 영어로 번역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요번에 복사판을 하나 찍는다는데 루터 전집인데 우리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컨걸디어사의 10권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루터 전집은 58권입니다. 거의 루터가 쓴 모든 것들이 실렸다고 봐야 합니다. 혼자 사기가 벅차면 도서관에 주문을 하십시오. 그런 자료를 가지고 있으면 무궁무진한 자료들이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58권을 쓰고 죽었다고 생각하면 대단한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일찍 죽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25년 동안 사역을 하고 죽었는데 25년 동안 58권의 책을 썼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그것을 베껴쓰는데 25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루터는 25년 동안 사역하고 죽었는데 58권을 쓰고 3시간 이상 기도했으니 입이 열 개있어도 바쁘다고 할 말이 없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주경과 설교에 대한 개괄적인 문제들을 좀 집어보고 결국 설교에 있어서 주경의 위기, 신학에 있어서 설교의 위기 2문제를 집으면 주경과 설교의 브릿지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성경 본문을 통해서 주경을 해서 어떻게 그것이 설교로 나왔는가 하는 것들을 한 예를 워터카이저의 책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설교가 본문을 지향하면서 설교가 되어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을 샘플로 성경을 주경해 가면서 강의를 하면서 설교를 위한 강의가 되도록 샘플 텍스트를 요한 복음 1장하고 사도행전 26장에서 앞에 3절, 사도행전에서 2절정도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의학기가 되는 분량만큼만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강의안을 녹음을 푼 것은 있는데 정리가 아직 안됐습니다. 정리가 학기 중이라도 되면 정리를 해가지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