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소생시킴(2)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녹취자: 허혜숙
이어서 시인은 세 번째로 자신이 왜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게 되었는지를 4절에서 언급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합니다. 2절에서는 공급해 주시는 은혜 때문에, 3절에서는 영혼을 소생시켜주시는 은혜 때문에,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4절에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지켜주시는 은혜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목자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4절에서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들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이 말하는‘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을 치던 문맥에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축을 기를 때 한 곳에서 기르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목초지를 찾아서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꽤 먼 길을 많은 가축 때와 함께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그럴 때 종종 계곡을 지나기도 합니다. 그 땅에서의 계곡은 우리나라의 계곡처럼 물이 흐르고 꽃들이 피고 아름다운 숲이 우거진 그런 생명이 충만한 계곡이 아닙니다. 건조하고 메마르고 짐승의 위협이 있고 혹은 강도의 위협이 있는 그런 곳을 지납니다. 그 때 목자는 바짝 긴장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비교적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 왕이 되도록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게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사울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아 끊임없이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던 현실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영적인 고통 속에서 자신이 죽을 것 같은 시기를 보냈던 그 모든 세월들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꽃길만 걸어가시게 하시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이 세상에서 돈 많이 벌고 출세하고 자녀들도 모두 훌륭하게 되고 고통과 괴로움이라고는 없는 그런 꽃길을 걸어가는 신앙생활을 꿈꿉니다. 이따금 그런 길을 걸어갔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오면 부러운 마음이 솟구쳐서 자신도 그런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자신의 인생은 왜 그런지 너무 십자가가 많고 고통스러운 현실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꽃길만 걷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종종 그들을 꽃길이 아니라 돌밭, 그리고 골짜기, 때로는 폭풍과 바람이 휘몰아치는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때로는 아주 평화롭고 잔잔한 바다를 항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삼킬 것 같은 무서운 파도와 싸우며 폭풍과 흑암을 뚫고 지나야 하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별빛조차 없는 캄캄한 밤하늘에 뒤치는 파도와 함께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며 항해를 계속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의 신앙을 단련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만나는 다양한 삶의 환경은 하나님의 성품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아주 훌륭한 장인이 만든 바이올린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바이올린을 켜지 않는 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현을 시련과 고난,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현을 연주하십니다. 그리고 좋았던 때는 결코 들려줄 수 없었던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쓰신 모든 사람들은 고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모두 시련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많이 받으면 사람들은 힘들고 어렵게 하는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많이 주시고 은혜를 많이 주신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그만의 십자가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당신의 마음에 합당하였고 그를 통하여 자신의 일을 모두 이루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사용하시기까지 이 다윗은 그 혹독한 시련을 지나며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야 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사람들의 위로를 받는 대신 그는 하나님 한 분을 대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평탄하고 꽃길만 걸어가는 신앙생활을 꿈꾸지만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하시는 한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지고 있는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십자가가 매우 크고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이미 그는 그런 골짜기를 많이 지나온 경험자로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깊이는 고난을 소화해 내는 깊이입니다. 모든 인간이 행복하기를 원하지 불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이기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고난을 무조건적으로 참으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인생의 의미를 찾는 능력입니다. 오늘 나는 원하지 않는데 고난의 길을 걷게 되고, 나는 원하지 않는데 시련이 오게 될 때, 나는 바라지 않는데 외톨이가 된 느낌을 받을 때 하나님이 왜 자신을 그렇게 두시는지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에 보이는 의미에 자신의 인생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이 시련과 고난이 결국은 나를 어떤 의미를 찾아가게 하는 꼭 필요한 과정일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환경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에 대한 신뢰입니다. 나는 다 알 수 없지만 좋으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되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사랑하셨으니 내 인생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한, 내 인생에 나쁜 일이 일어나더라고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고 믿는 것입니다.
(찬송)
폭풍우 흑암 속 해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 잡고 날 인도 하소서
많은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시인은 때로는 곤궁해하기도 하였습니다. ‘왜 나에게는 이런 큰 시련과 고난이 계속 되는가?’ ‘왜 악인들은 번성하고 의롭게 살려고 하는 나는 고통을 당하는가?’ 나오는 질문 말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한 대답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의뢰하는 하나님이 자기를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시련을 만나거나 역경을 만날 때 눈에 보이는 현실에 요동치는 대신 이 모든 우주와 세계를 붙잡고 계신 하나님이 시인이 이해할 수 없는 뜻이 있으셔서 고난을 주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곤고했던 날에 고백을 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부모에게 조차도 버림을 받은 것처럼 살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이 시인은 어머니 같은 하나님의 품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았던 이 시인에게는 곤고할 것 같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련을 통하여 평화롭고 행복한 날에는 배울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한 성품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찬송)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라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기르리라
그렇게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배웠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좋은 일들은 모두 좋은 일이 아니고 나쁜 일은 모두 나쁜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의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죽는 날까지 그렇습니다. 여기에 신앙의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인생이 펼쳐지지 않은 때 고통을 받고 때로는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하지만 그 때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잠시 후면 지나가리라,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시련의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의심할 수 없이 우리 자신이 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때에 우리 하나님을 신뢰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시인이 그런 인생의 위기를 지나면서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복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은 것이 많지만 돈을 가지고 있으면 그 중의 하나나 둘 밖에 못 삽니다. 그런데 아빠가 함께 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의지하고 살면 그 세상에 있는 것들만큼은 우리들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그 사람은 하나님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이곳에 와서 손자 손녀를 만났습니다. 1년 만에 만났으니까 너무 반갑고 좋았습니다. 너무 예쁩니다. 애들이 어디를 가면 좋아할까 생각하다가 마트를 데리고 갔습니다. 얘들이 막 뛰어다니면서 할아버지랑 같이 왔으니까 이 온 마트가 모두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이나 막 삽니다. 모두 갖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고 위해서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시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인생의 괴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원래 성경을 보면 “당신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가난하고 목숨이 위태롭고 많은 고난이 있는 인생을 살면서 그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이 “God with us”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존 오왠 목사님은 자신의 책 속에서 “성도가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행복을 이 시인은 충만하게 누린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의 최고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영적인 깊은 침체에 있던 어느 한 그리스도인이 우리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자기는 예수 믿고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주시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면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모두 주시는 간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뿐이더랍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자기가 기도하면 필요한 것들은 주시지만 하나님 자신은 안 주시더랍니다. 그것이 신앙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마음에는 깊은 공허감이 그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입니다.
어느 한 부부가 살아가고 있다고 칩시다. 남편이 돈이 많아서 돈을 쌓아놓고 쓰고 카드를 주고 무엇이든지 아내가 아무것이나 다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해 주지를 않습니다. 만족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시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을 때에 많은 고통과 시련을 당했습니다. 이길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항상 하나님이 시인과 함께 하셔서 그와 동행하신다고 하는 것을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련과 고난을 지나지만 그 시련과 고난의 아픔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고 지금도 나를 붙들고 계시다는 아주 깊은 관계의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 잃어버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릴 것이 많은 사람은 무섭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은 무섭지 않습니다.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세상이 그것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이 시인에게 무슨 애착이 있었을까요? 언제 시인이 왕이 되고 싶다고 하나님께 원했습니까? 그냥 목동만 시켜주셨어도 아버지의 사랑은 못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양떼를 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았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셔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한 나라의 임금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시련과 고난이 많았습니다. 왕위를 잃어버리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으로 시련의 계곡을 지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하나님이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때로는 부족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가난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우리의 인생이 잘 나가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고난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스러운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뿌리 채 흔들어놓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이 시인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무력의 입장에서 보면 사울에 의해서 여러 번 죽임을 당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사랑하는 시인을 당신의 생명싸개에 싸고 감추셨습니다. 그리고 보호하고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련의 날들을 지나는 때 꼭 필요한 믿음이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그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생사 간에 우리의 유일한 위로가 우리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그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인생의 시련의 골짜기를 지나며 이런 확신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확신은 그 순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을 살면서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형통할 때나 고통을 받을 때나 우리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일에 마음과 뜻을 드린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시인은 오늘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골짜기를 여러 번 지났단다, 그러나 나는 두렵지 않았단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당신의 한 지팡이와 한 막대기가 나에게 위로가 됩니다. 이런 뜻입니다. 사람들은 이 지팡이와 막대기가 같은 말의 반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두 물건은 전혀 다른 물건입니다. 이스라엘 목자들이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는 우리들이 흔히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윗부분이 휘어져있는 긴 지팡이입니다. 그래서 양떼들이 길을 잃거나 다른 곳으로 갈 때 지팡이를 쭉 뻗어서 양의 목에 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끄는 것입니다. 이 지팡이가 의미하는 바는 ‘인도’입니다. 이 지팡이를 가지고 양떼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막대기는 무기입니다. 끝이 뾰족하도록 깎아서 때로는 양떼를 습격하는 맹수들과 싸울 때 목동은 용사와 같은 사람으로 그 막대기를 가지고 짐승들을 무찌르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양떼들을 보호하기 위한 물건이고 막대기는 맹수들의 공격으로부터 양떼들을 지켜내기 위한 무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시인의 목자였지만 그 목자는 아주 힘없고 온순하기만 한 목자가 아니라 양들을 동보고 보호할 때에는 자비심이 넘치지만 양떼들을 해치는 악한 무리들을 향해서는 용사와 같이 싸우는 목자였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을 대신해서 싸워주시는 용감함 무사와 같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큰 용사와 같은 전투기술 뒤에 숨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많은 시련의 골짜기들을 우리 힘으로 통과하고 원수들이 나타나면 우리가 싸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홀로 싸우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이 시인처럼 인격적으로 당신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보이십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섬세한 사랑으로 그들을 보호하시고 계시다는 사실과 그를 해치는 모든 자들을 향하여 용사처럼 싸우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길을 걸으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의 시대가 그 분의 손에 있고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내 인생을 돌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서 꼭 필요해서 우리가 시련과 고난의 계곡을 통과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우리들이 꿈꾸지 못했던 아주 아름다운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힘을 능가하는 이 세상의 힘, 악의 힘, 원수의 힘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의 힘으로는 이것을 이길 수 없다 할지라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 시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원수의 조롱거리가 되고 미워하는 자들에게 박해를 받았을지라도 시인은 이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편에 있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어디에 가든지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나를 보호할 수 없을지라도 그 분이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과 용사처럼 싸우신다는 사실을 굳게 신뢰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그렇게 자신을 죽이려고 했지만 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원수 갚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시대를 그 분의 손에, 그 분의 주권에 맡겨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계십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신앙이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고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어린아이같이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폭풍과 시련의 시기를 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결코 우리를 죽게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 시련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전심으로 의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요 나의 반석이라고 믿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신뢰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굳게 믿게 하십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평탄한 길을 걸었더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빛나는 보석과 같은 깨달음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시련을 통과하면서 어린아이와 같았던 시인 다윗은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묘목과 같은 사람이 거목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 아래 수많은 방황하는 사람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의 지혜를 힘입어 하나님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그의 신앙을 힘입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지나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의 남은 날들은 매우 적습니다. 우리인생의 남은 모든 날들을 예수와 동행하며 살아도 너무나 짧은 시간인데 우리가 주님을 멀리 떠나 방황하며 살아갈 시간이 우리에게 있겠습니까? 오늘입니다. 오늘 인격적인 주님을 마음에 깊이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내 인생의 많은 불행이 하나님 없이 나 혼자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고백을 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깊이 신뢰하며 주님 없이 천국의 길을 걷기보다 예수와 함께 지옥의 불 가운데를 지나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이라고 일컫는 이 날 하루를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하며 믿음으로 살다가 우리 주님 앞에 간다면 얼마나 향기로운 성도의 일생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