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관한 Q & A
녹취자 : 오희열
내가 답변해주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고, 여러분이 1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저기에 나와 있지만 직접 한 마디씩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혜원입니다.
먼저 저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실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담임목사님께서 잊으셨는지 오우진 목사님께 여쭤보려고 했는데 기억하고 만나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여기 오기 전에 이런 걸 물어보실 것 같아서 생각해보긴 했는데 구체적인 것들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영적으로 무너질 때는 무너졌다가도 언젠가는 올라오겠지 하면서 의지를 갖지 않았다면, 이제는 방법이나 여러가지 조언해주신 것들을 토대로 빨리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과 의지를 갖게 된 것이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
저는 청년3국의 신평안입니다.
이전에 저는 제 앞에 처한 상황이 굉장히 많이 침체되고 그 상황에 매몰되다보니 환경에 많이 휘둘렸었는데 침체 이후에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신 구체적인 경건생활과 그런 시간을 갖는 것들을 제가 직접 실천해보고 효과를 느끼게 되니까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의 지체들이 영적으로 힘들어 할 때도 단순히 그냥 위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구체적으로 조언을 할 수 있게 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니까 굉장히 이전의 제 삶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매일 이런 고난들을 대응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직장생활은 잘 하고 있니?) 네, 직장도 제가 새로운 곳으로 갔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경건생활을 하려고 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항상 잘 이끌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청년 3국의 최정우입니다.
저도 똑같이 직장이나 상화에 매몰되면서 침체가 계속 지속되는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잘 유지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뭔가 제가 비교하고 살아가면서 응답받는 것들이, 은혜 가운데서 많이 해결되고 다시 살아가면서 힘이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좀더 그때보다는 매일매일 상황이 생기고 어려움이 있는데도 그때보다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기고 그때 상황을 생각해보면서 제 삶에 다시 적용하는 힘들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000자매입니다.
저는 예상치 못한 사정이 생겨서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알바도 하면서 가족을 많이 사랑해보려고 했는데 정말 김남준 목사님의 얘기를 들을 때 제 정신이 잡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우울증이 있는데 입원을 했었다가 집안에 그리스도인이 저밖에 없어서 참으려고 했는데 김남준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남을 사랑하려고 노력은 했는데 제가 뭘 잘못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남을 사랑하는 게 이렇게 힘든데 교회 있는 지체들은 남을 위해 일하고 계시는 것을 보고 은혜를 느꼈고 남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3국 이소성입니다.
제 인생을 통틀어서 올해가 가장 자유롭게 살게 된 해였던 것 같습니다. 항상 설교에서 말씀해주실 때 주체적인 삶을 살라고 하셨는데 그게 사실 잘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제 하나님을 사랑을 진심으로 조금 깨닫게 되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속도를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려고 많이 노력했었는데 그런 강박 같은 삶을 조금 벗어놓고 은혜와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뭔지를 조금 깨달은 것 같습니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서로 세워주고 서로 아껴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체들을 통해서 많이 알게 된 것 같고, 힘들 때마다 전에 목사님께서 저희를 위해서 한 달 동안 기도해주신다는 약속들이 문득문득 생각나면서, 나를 위해서 믿음으로 기도해주고 계신다는 생각이 많이 의지된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청년 4국 대표로 나온 정현아라고 합니다.
저는 작년에 이 세미나를 들을 때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많았고 몸도 안 좋아서 일을 쉬고 있었는데 그때도 말씀드렸데, 삶의 공허함에 대해서 많이 느끼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기도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책을 통해서 극복하라고 하신 것인지, 교회 도서관에서 일하도록 불러주셔서 평소에 관심도 없던 서적도 많이 읽어보고 지금은 그나마 책을 통해서 더 침체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많이 잡아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은희입니다.
저는 1년 전에 비해서 많이 바뀐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을 때 좀 더 삶에서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여러 방편들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았던 패턴도 바꿔보고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좀 더 가까이 하기 위해서 실천적인 노력을 많이 했었는데, 그것에서 하나님이 많이 알려주셨고 또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있어서 그때 보다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는 한승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1년 동안 목사님께서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를 말씀해주셨는데 그 중에서 경건생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것이 가장 인상 깊어서 마침 청년부 안에서도 경건 세미나가 있었고 그런 모임들이 만들어지고 거기 참여해서 지체들과 그리고 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고 제가 듣고 싶어 하는 말씀보다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면서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다보니까 예배 가운데서도 마침 저의 지금 상황에 맞는 말씀들이 저에게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 시기가 아니라 이전에는 늘 말씀해주시고 항상 저희에게 은혜를 부어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때는 정말 들리지 않았던 것 같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분투하며 살아가다보니까 그 말씀이 정말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사람을 의지면서 저의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저와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에서 침체를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하고 그러고 나니까 나중에 지체들과 교제하게 되고 마음이 더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배지은자매입니다.
저는 1년을 지나고 보니까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 말씀이 안 들린다고 한 것이 제일 어려웠었는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이후로 계속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을 했었고, 처음부터 확 변화된 것은 아니지만 점차적으로 조금씩 변화되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 안에서의 삶과 제 삶이 저도 모르게 많이 분리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어디 가서든지 저는 저니까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구분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30대에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제 인생에 고민이 많았는데 올 한해 그런 것들이 많이 정리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신앙생활에서도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그 방향이, 내가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봐야겠다는 것들이 더 확실해졌고 저도 모르게 다른 것들을 많이 의지했던 부분들을 하나님께서 많이 알려주셨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회개할 수 있었고 지금 지나고 나니까 마음이 많이 가벼워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방향을 알게 되니까 그것에 대해서 더 힘쓰고 노력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목사님 : 저기 나온 문제들을 간략하게 답하고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1) 신앙생활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답변 1) 사실 그 기준은 우리가 누구에게 평가받기 위해서 신앙 생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연애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연애를 해서 누군가를 사랑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중에 평범한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경험한 지가 오래되었습니까? 경험한 지가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다시 생각하면 떠오르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많이 말할 수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되고, 말씀을 사랑하면 순종하고 싶어지게 됩니다.
질문 2) 어떻게 하면 매 순간 기쁨을 유지하며 살 수 있습니까? 우울함은 성향의 문제입니까, 은혜의 문제입니까?
답변 2) 우울한 일이 일어나니까 우울하기도 하지만 우울한 성격이니까 모든 일이 우울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기질을 가지고 너무 고민하지 마십시오. 그 기질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부적으로 주신 것인 경우에는 우리가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생각이 깊은 사람이 대부분 우울질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저는 낙관적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인생의 이면들을 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거기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밝은 면을 보질 못할 위험이 있으니까 기질의 문제를 가지고 너무 고민하지 말고 매 순간 기쁨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길은 기쁜 일이 자기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바깥에서는 기쁜 일이 항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하셨는데 “괴롭다”는 말은 “꼬키아”라는 단어인데 쉽게 말하면 “나쁜 일”이라는 뜻입니다. 나쁜 일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인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신앙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기쁨을 유지하는 비결은 다른 것은 없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역경이 와도 그것 때문에 그렇게 슬퍼하지 않습니다.
질문 3)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있다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답변 3) 우선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에 명백하게 계시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적질하지 말라.”했으면 도적질을 할지 말지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성경을 읽으면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이 명백하게 계시되어 있는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성경이 우리에게 명확하게 계시하지 않은 것, “직장을 옮겨야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저 사람이 계속 프러포즈를 하는데 결혼을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사업을 접고 직장 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뜻일까?” 등등 성경이 규정하지 않는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가장 중요한 길은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정을 갖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마음이 욕심을 깊이 움켜쥐고 있으면 모든 것을 그쪽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하는 바가 있는 모든 것이 욕심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자신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마음에 평정을 주십니다. 평정을 주시면, 하나님의 뜻이 명료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은 간절히 기도할수록 없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뜻은 간절히 기도할수록 처음에는 없었던 것이 점점 더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자신이 깊이 확신하게 되고 가장 중요한 것은 평안이 옵니다.
질문 4) 미워하지 않고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무엇입니까?
답변 4)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그러나 그것만이 사랑은 아니니까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계속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 속에 감격할 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느끼며 살 때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질문 5) 하나님이 여러 일들을 통해 신실하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삶 속에서 나의 판단과 방식대로 살아가는 순간이 월등히 많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답변 5) 상대적이지 않겠습니까? 저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면 상당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많은 가책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제가 권하고 싶은 것은, 저렇게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소위 “정사”라고 하는 것인데, 꼼꼼하게 자기의 삶을 객관적으로 살피면서 거기서 잘못한 것이 드러나면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순종하려고 애쓰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가 온전히 순종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내가 알기만 하면 능히 살아낼 수 있다.” 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사는 것이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질문 6) 주님의 뜻과 다른 기도에 오랫동안 매달리는 경험들이 기도에 좌절감을 느끼게 합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응답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답변 6) 주님의 뜻과 다른 줄 알면서도 매달리는 것은 사실 집착입니다. 그런 집착을 가지고 있는 한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기도제목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편안한 것 아니겠습니까?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그러면서 우리의 인생을 주체성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기도응답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내려놓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욕망은 처음에는 아주 확실하다가 기도하면서 점점 사라지게 되고, 하나님의 뜻인 것은 처음에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간절히 기도할수록 점점 높이 떠올라서 부인할 수 없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한두 번의 기도로 저런 확신을 갖게 해 주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확신을 갖게 만드십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저 앞의 문제나 그 아래 문제나 마찬가지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좋을 것이다.” 이것을 믿는 마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질문 7) 2년 전부터 철학이나 사상, 정신들을 공부하고 재밌습니다. 경건생활은 흥미를 못 느낍니다. 지적인 탐닉으로 여겨집니다. 마음이 잘 바뀌지 않습니다. 의지적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것 외에 또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답변 7) 사람마다 약간 해석이 다르기도 하지만, 사도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증하다가 그 후에 간 곳이 고린도입니다. 사람들은 아테네에서 사도바울의 전도가 변증의 아주 유명한 한 본보기를 보여준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해석합니다. 사실 예수 믿은 사람을 몇 사람밖에는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참 겸손해진 마음을 가지고 처음 간 곳이 고린도였습니다. 거기를 전도하기에 앞서서 “내가 그리스도와 및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노라”는 결심을 고백합니다. 내가 답하고 싶은 것은 저렇게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중심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께 붙들리는 것이 아니라면 끊임없이 파도 물결에 쓸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시대에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철학이나 사상을 진술하면 거기에는 나름대로 그 시대를 사는 우리를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유행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 같은 사람들이 빨려들어 갈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아직까지 그 모든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판단할만한 자질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사상으로 끊임없이 표류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자신은 어떤 지적은 흥미를 느끼면서 만족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나는 제법 뭔가 사상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 우리의 삶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행복하게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사는 것, 그것을 위한 것이지 남의 평가나 받고 남의 박수나 받기 위해서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썩 바람직한 삶은 아닙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것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나는 경건생활을 하지 않고 저런 것에 빠져들다가 결국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을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렇게 하지 말고, 경건을 위한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 아니라 설교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길”은 종교가 찾으려고 애썼고 “진리”는 철학이 찾으려고 애썼지만 사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계속 자살하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런 삶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마치 드라마에 빠져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 속에서 달콤함을 느끼면서 사는 그러한 은혜생활이 여러분에게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수없이 다녀도 거기에서는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저렇게 철학이나 사상, 정신을 공부하고 알아가는 것에만 재미를 느끼지 말고 주님을 깊이 만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재미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예전에도 부분적으로 한 이야기지만 당연히 여러분은 인생의 무게를 많이 느낄 것입니다. 영적침체 세미나를 할 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사연이 있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1년 동안 영적침체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가장 많이 기도해주었던 때 같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인생이 원래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매우 독특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인생이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볼 때 위대해 보이지 않습니까? 최근에 아기를 낳은 사모가 있는데, “아기를 낳아보니 어떤 마음이니?” 물으니, “우리 엄마가 위대해보여요.” 합니다. 아마 아기를 낳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기를 낳아보니까 엄마가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의 신혼시절을 생각하면 내 눈에 위대해 보이는 사람은 엄마 아빠가 손을 잡고 아이가 땅을 걸어다니는, 이런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들이었습니다. 왜? “이 아이를 낳아서 이렇게 길러서 제 발로 걸어다닐 만큼 컸구나!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여러분은 오늘 어려움을 느끼지만 1년 전에는 1년 전대로 어려움을 느꼈고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의 20대 때도 똑같은 어려움을 느끼고 고민거리가 없는 때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 날에는 언제나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런 어려움을 살살 피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선택받은, 불행도 없이 아주 기쁘기만 한 삶으로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복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그것을 피해간 사람이 아니라 똑같이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극복해서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사람들입니다. “항상 나쁜 일은 일어난다. 그런 나쁜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우리는 것을 맞이하며 살 수밖에 없다. 다른 선택은 없다.” 고 생각해야 합니다.
LA에 가면 산 위에 게티 뮤지엄(Getty museum)이라는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습니다. 2차 대전 즈음에 게티라는 사람이 석유사업을 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는데 스크루지 영감처럼 야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나중에 깊이 깨닫고 자기 재산을 풀기 시작합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만들어 놓은 미술관이 게티 뮤지엄입니다. 그림 한 장에 수백억 원이 되는 그림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습니다. 너무너무 예쁩니다. 거기를 몇 번을 갔었는데 어떤 목사님이 저를 데려갔습니다. 제가 건축을 워낙 좋아해서 그 안에 있는 미술작품보다 건축을 더 감상했습니다. 그 목사님과 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분은 하버드에서 공부를 하셨으니까 저보다 더 많이 공부하셨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건축으로 넘어갔습니다. 제가 그 건축의 해설을 해 드렸습니다. 제 설명을 듣고 보니까 그 건물이 새롭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계속 흐르는 물소리가 있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쪽을 보니까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물을 퍼 올려서 게티 뮤지엄을 휘돌아 흐르게 했습니다. 화강석으로 돌멩이를 깎아서 깨끗하게 해 놓고 그 물길 사이사이에 굵기와 크기가 각각 다른 돌멩이들을 사선을 박아두었습니다.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목사님, 저 돌멩이들을 왜 저렇게 박아놓은 것 같습니까?” 그분은 건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시니까, “글쎄요?” 했습니다. “결국은 소리입니다.” 기가 막힌 자리에 물이 흐르도록 해서 병풍처럼 싸고 있는 건물에 물이 떨어지면서 휘돌아 울리도록 만든 것입니다. 각각 다른 거리와 위치에 있으니까 다른 소리를 내면서 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물이 그냥 주르륵 흘러서 소리도 나지 않았을 텐데 그런 돌멩이들을 박아놓고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그 소리가 건물 벽을 때리고 휘돌면서 관람객들에게 음향효과를 주었던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 것을 정말 오랜만에 깨달았어!” 라고 할 때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지 않았던 사람은 그런 고백을 할 수가 없고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나쁜 일을 경험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시지 않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나쁜 일을 만나도 나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냥 나쁜 것이 되고, 좋은 일은 만나도 나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반드신 나쁜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 신앙이 나쁜 사람에게 돈이 많이 주어지면 그 돈을 가지고 뭐하겠습니까? 쾌락에 빠지거나 죄를 짓거나 할 것입니다. 신앙이 나쁜 사람에게 시간이 많으면 뭐하겠습니까? 게으르게 살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면 자립심있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좋은 일이 좋은 사람에게 일어나면 좋은 일이 되고, 나쁜 일도 좋은 사람에게 일어나면 그것이 좋은 일이 됩니다. 그래서 시인이, “고난 받은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 고난을 통해서 주의 율례와 말씀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어떤 최악의 상황이라도 내 인생에 일어날 수 있다고 미리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한 시대에 아주 유명하고 정말 신실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뉴욕에 여행차 방문하셨는데 그곳의 다른 목사님이 이 분을 알아보고 너무나 유명한 분이니까 가서 공손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설교는 이미 계획이 되어 있으니까 축도를 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쭙고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축도 시간이 되어 위로 올라갔는데, 보통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시작하는데, 그 목사님은 손을 들더니 “홍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여기 있다.” 하시더랍니다. 알고 보니 치매에 걸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한국에 그분만큼 말씀을 전하실 분이 몇 안 되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분이셨는데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일이 내일 내게 일어나도 너무 이상한 일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비관주의로 살라는 말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용기가 없이 우리의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용감하다는 뜻은 무엇에든지 놀라지 않는 것입니다. 불행 같은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일어나든지 나는 주체가 되어서 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비서실에서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는데 앵무새 사진입니다. 앵무새의 평균 수명이 약 80년이랍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입니까? 거북이는 종류에 따라서 1000년을 넘게 사는 종류도 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인간은 정말 파리 목숨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10여 년 전의 사진을 보면서, “이때는 참 젊었구나!” 하지만 그때도 우리는 사진을 보면서 “참 많이 늙었구나!”합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흘러가버리고 아마 20년 정도 지나면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우리 육신이 쇠해가고 변화되어 가고 노쇠해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거기서 변함없이 자신이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생각해야합니다. 모든 것이 순간의 기쁨이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 삶 속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이 허무하다고 느끼지 않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삶이 너무나 허무합니다. 그러한 세상 너머에 우리의 사랑을 맡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린 사람은 성숙해질 것이고 성숙한 사람은 늙을 것이고 늙은 사람은 더 늙을 것이고 더 늙은 사람은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그것과 상관없이 “내 인생의 모든 길을 우리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살아갔노라.” 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가 재밌고 행복한 일이 너무 많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살아간다면 삶은 매 순간 여러분을 배신합니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경험하지 못하셨겠지만 자식을 낳았다고 해 봅시다. 이 아이가 아주 귀엽고 예쁜 모습만 보여줄 것이기 때문에 이 아이를 양육한다고 하면 결국은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자체가 자신의 인생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아이를 사랑하고 그 아이와 함께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삶을 계속하는 이유는,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내일은 오늘보다 좋을 것입니다.” 하는데 쥐뿔도 아닙니다. 솔직히 이야기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있지도 않은 그런 거짓말 같은 달콤한 이야기로 우리 자신을 홀리면서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합니다. 예수님도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매일매일 괴로운 일이 일어난다는 뜻 아닙니까? 그것을 변화시켜주는 것은 삶의 태도입니다. 유치한 것입니다.
공부를 한다고 하면, “내가 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곰곰이 하면서 “아, 내가 공부 해야겠구나.”하는 것이 성숙한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이 공부를 하면 사탕하나 줄께.” 하는 말을 들으면서 고3이 되도록 그 막대사탕을 바라면서 공부를 한다면 그것이 성숙한 인간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막대사탕을 받는 기분으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실 테니까 말입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때로는 울기도 하고 때로는 웃기도 하며 그렇게 살아가면서 자랑스러운 것은, “어느 순간도 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고 하면서 나의 인생을 내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매일 도우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너무 가벼운 말에 현혹되지도 말고, 철없이 세상의 쾌락이나 즐거움만 찾아서 살지 말고, 그러나 우리의 행복이 영원한 미래에만 있고 현재에는 없는 것처럼 그렇게 우울한 사람으로 살지 말고 오늘 이렇게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20년 뒤에는 내가 치매에 걸려서 축도를 하러 올라서 “홍도야 우지마라” 하는 실수를 할지라도 오늘 정신이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내가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오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끝으로 한 토막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긴 편지를 하나 받았습니다. 아주 긴급한 편지였습니다. 우리 교인은 아니었습니다. 외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살았는데 남편이 자기에게 이혼을 계속 요구했습니다. 자기는 이혼하지 말라는 말씀을 붙들고 이혼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남편의 마음은 완전히 돌아서서 25년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으려고 한다고 남편의 협박 문자와 함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뭐라고 답장을 해줬는지 아십니까? “이혼 소송을 하려면 하라고 하십시오. 조금도 겁내지 마십시오. 이미 부부관계가 모두 끝났는데 뭘 그렇게 무서워하십니까? 실제로 소송을 벌인다고 해도 긴 시간 소송이 진행되고 그 사이에 얼마든지 합의해서 이혼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까 협박문자를 받았다고 벌벌 떨지 마십시오.” 라고 즉석에서 편지를 써서 바로 보내줬습니다. 답장이 즉시 왔습니다. 너무 마음에 평안이 오고 힘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목사로서 이혼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이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왜 벌벌 떨고 무서워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당당하게 서로 잘못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갈라서려면 갈라서고 다시 살겠다면 데리고 살면 됩니다. 왜 혼자 모든 죄를 뒤집어 쓴 것처럼 벌벌 떨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체성의 문제입니다. 이혼을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다 나 때문일 거야, 나 때문일 거야” 하면서 계속 우울하게 인생을 바라보지 말고 그대들보다 착한 사람들에게도 그런 일은 생기니까, “인생을 살면서 나쁜 일이 생겼구나, 이 나쁜 일이 더 나쁜 일이 되지 않으려면 내가 오늘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해야 합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저는 어느 날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놀라운 은혜의 하나님은, 내 인생의 꼬인 마디마디에서 나타났지 꽃길만 걷는 좋은 길속에서 그런 것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번 조금씩 참으며 고비를 넘기고 살다보면 더 이상 안 살아도 되는 날이 옵니다. 가끔 목회를 하다가 너무 힘들 때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여보, 너무 그렇게 힘들어하지 마.”, “왜? 무슨 좋은 일이 있어?”, “그럼 좋은 일이 있지!”, “뭔데?”, “조금만 참으면 죽잖아.”, “그것도 위로라고 해요?” 합니다. 보십시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주고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다 지나가지 않습니까? 어깨를 펴십시오. 어깨를 쫙 펴시고 비둘기 가슴처럼 단단하게 내밀고 “내가 뭘 두려워하랴? 나는 기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 살아간다. 내가 걸었던 길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지고 내가 걸었던 좋은 길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가슴을 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 무슨 다른 방법이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자존감을 가지고 다부지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외모부터 시작해서 지적인 능력, 사회성, 어떤 사람은 속에 아무것도 없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나는 어떻게 잘 안 됩니다. 그런 것을 너무 비교하지 마십시오. 그냥 한승연은 한승연 표로 살면 됩니다. 석은비는 석은비 표로 살면 됩니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1년 전의 영적침체 세미나를 하던 그때의 한승연과 지금의 한승연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비교하면서 때로는 반성하고 때로는 격려 받으며, “그래, 내가 잘 살고 있어.” 하며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가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회피할 수 없는 인생의 길이기도 합니다. 절대로 어떤 난관을 만나도 비관적인 생각에 자신을 매몰시키지 마십시오. 죽고 싶다든지 하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죽더라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책이 있지 않습니까? 먹을 것이 얼마나 많고 볼 것도 얼마나 많은데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힘든 일이 있지만 모든 인류가 다 그런 힘든 길을 걸어오며 산 것입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철이 들면 한 사람을 볼 때 대하소설이 생각납니다. “저 사람은 대하소설을 쓰며 인생을 살아왔구나! 죽지 않고 살아서 여기에 있기까지 저 사람은 얼마 많은 피눈물 나는 고생과 외로움과 고통과 시련을 겪었을까?” 그 사람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위대해 보이는 시간이 옵니다. 모든 사람을 아주 특별한 에로의 사랑이나 아가페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인류애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한 인간이 성숙해져 가는 비결입니다. “괜찮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괜찮다.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고 누구 말처럼 인생은 그렇게 살기 힘든 것도 아니고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냥 살만한 인생이다. 더욱이 그런 사람들은 신앙이 없이 살았지만 우리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삽니다. 결국 하나님의 달콤한 사랑은 외로움 없이는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은 나쁜 것이 없이는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순간의 허가 아니면 느낄 수가 없습니다. 어두움을 보지 않은 사람이 빛의 고마움을 어떻게 느낄 수 있겠습니까?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그 반대편에 있는 좋은 것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기 위해서 겪게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비둘기처럼 가슴을 쫙 펴고 자신감 있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사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열심히 성경을 배우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운동도 하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인간성도 개발하면서 좀 더 자신감 있는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나는 아직 젊다. 건강하다. 병이 있지만 아직 죽을 병은 아니다. 연약함은 있지만 아직 치매는 아니니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좋습니까? 살아있는 것은 즐겁고 감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지금의 때를 감사하고 기쁘고 긍정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안 되고 힘든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매달릴 기회니까 하나님께 감사하고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삶이 된다면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이야기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줘도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사랑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깊이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때 그는 행복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누구를 사랑하십니까?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랑을 움직이는 힘이 하나님인지 물어보십시오.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목사님께 질문이나 감사의 인사나 결단을 한 마디 하고 싶은 지체가 있다면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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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8)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한다고 배웠는데 지금까지 목적이 없었습니다. 주체성이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목적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교리반과 순모임을 하면서 (배우게 된 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가 이렇게 이 세상에 남아있는 이유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목적 있는 삶을 살려면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목적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답변 8) 어려운 말로 하지 말고 쉬운 말로 하면, 문수연 자매가 살아있는 것이, 문수연 자매가 이 세상에 없는 것보다 하나님에게 훨씬 기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정성을 다해서 교육을 시키고 인간으로서 교양을 갖게 하고 부모들이 기릅니다. 그렇지 않은 부모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보자면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도 줍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그렇게 20년을 키우고 한 달에 120만원씩 받기 위해서 그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 그것은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물질적인 목적일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에는 목적이 없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익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뜻이고 인간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어야만 사람들에게 잘 해줍니다. 옛날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서도 정승이 죽으면 오는 사람이 없다.” 왜? 이익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목적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이 흔히 하나님의 사랑은 맹목적 사랑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목적이 없지만 목적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아이를 길러서 아이에게서 생활비를 받기 위해서 기르는 것은 아닌데 그 대신 이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는 희생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그러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사람이 사람에게 바라는 대가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기를 원하셔서 그것을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을 가슴 아프고 슬프게 하지는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면 결국 하나님을 위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장 위하는 삶이 됩니다. 그것을 삶의 목표로 가져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고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내가 살아있는 것이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되는 그런 인생을 사는 데서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