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슬픈 여자의 기도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삼상 1:1-18)
녹취자: 백지영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스스로 자기에 대해 말하기를 마음이 슬픈 여자라고 칭하였던 여자였습니다. 엘가나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때는 사사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에 아직 왕정이 시작되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때에 이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한나라고 하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한나가 아이를 갖지 못하고 첩으로 들어온 여자가 이 여자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슬픈 여자가 되어서 이제 하나님의 성소에 올라와 기도를 하게 되었고 거기서 제사장을 만나고 거기서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제의 시작은 이 여자가 결혼을 했는데 아이를 갖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을 했고 당연히 그 집안에서는 대를 이을 아이를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아내에게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편은 그 당시 관습을 따라서 이제 둘째부인을 첩을 얻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를 통해서라도 후사를 보고자 하는 집안의 간절한 바람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자, 오늘 이 여자에게 만약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문제가 없었더라면 아마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이 한나는 이제 후에 보면 알지만 훌륭하게 아들을 낳아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릅니다. 구약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 한 사람을 꼽으라면 모세이고 두 사람을 꼽으라면 모세와 다윗이고 세 사람을 꼽으라면 모세와 다윗과 사무엘입니다. 바로 이 한나는 사무엘의 어머니였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였다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 모본이었고 사무엘은 바로 그 다윗을 기름 부어 왕이 되게 했던 인물로서 사사시대와 왕정시대의 다리를 놓은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수많은 선지자들이 배출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버지처럼 생각하던 인물이 바로 사무엘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여자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었는데 왜 이 여자에는 아이가 없었을까? 놀랍게도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고 했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이 이 여자에게 아이를 갖지 못하게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한나가 아이를 갖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시간이 흘러가고 보면 하나님은 한나에게 아이를 허락하시고 그 아이를 낳아서 사무엘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역사를 움직일 위대한 인물로 키우시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이 이 여자가 적시에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막으셨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하나님이 이 믿음의 여자를 왜 이렇게 슬픈 여자가 되게 하셨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인물을 기다리고 계셨고 그 인물을 세워 이스라엘의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고 싶으셨습니다. 특별한 인물에게는 특별한 신앙이 필요했고 그래서 하나님은 이 어머니 한나를 이런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건을 통하여 연단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데 잘 안 되는 일들은 그냥 우리가 노력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막으시는 일은 하나님이 아니면 고칠 수 있는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한나를 향해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엘가나의 혈통을 이을 한 집안의 아들을 기대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에 영향을 끼칠 위대한 인물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건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나 그러나 그것을 끝났을 것입니다. 한나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 사건 때문에 심한 괴로움과 고통을 겪었고 그리고 첩으로 들어온 브닌나가 교만해 지면서 그녀를 몹시 격분하게 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이 남편의 극진한 사랑과 돌봄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의 마음은 슬픈 여자의 마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는 일은 그 안에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입니다. 한나가 그랬습니다. 자상한 남편, 여유 있는 집안에서 아들만 제때에 낳았더라면 불행할 것이 없었을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녀에게 잉태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여자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었고 그 고통 끝에 이 여자는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은 하나님이 임신하지 못하게 하신 것은 잠시 동안의 일로서 아주 못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이 여자의 마음을 움직여 신앙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신앙이 있었으나 이 여자가 성소에 올라가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토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릴 때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과연 사무엘 이라는 인물을 교육시킬 정도의 영적인 어머니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막고 계시는 일들이 있습니까? 그것은 오늘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만나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위해하고 계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성태하지 못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연약한 한나를 큰 믿음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문제가 없었더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았을 사람이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매우 크게 느껴지지만 하나님은 문제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될지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보다 훨씬 크신 분이시며 하나님 당신 자신이 이 온 세계와 우리 인간 나 개인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붙들고 계시고 당신의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아이를 갖지 못하자마자 하나님께 나아간 것도 아니었고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여자도 아마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이요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첩을 얻고 서서히 남편의 마음이 나뉘고 애매모호한 태도로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그 첩이 남편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빌미로 삼아 그래서 교만해 지고 본처인 자신을 욕보이고 분노하게 하게 그리고 무시히고 멸시하는 상황에 이르기 까기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더 많은 음식을 주고 그리고 남편이 위로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고 위로하였으나 조금도 이 여자의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이 여자를 특별히 쓰시기 위해 문제를 통해서 당신에게 부르신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특별한 어려움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한 믿음을 갖게 된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특별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특별한 어려움을 만나면서 이 어려움이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해결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 이 여자에게 아들 하나 더하여 주시는 것이 무엇이 힘드셨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 안 주셨습니다. 왜요? 이 여자를 특별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이 여자만의 아픈 것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 여자에게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하는 낙인, 그리고 아이를 낳아서 첩이 기고만장하여 그 본처인 자신을 무시하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이렇게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당시의 성소가 실로에 있었고 이것은 그 후에 예루살렘처럼 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인생의 모든 사연을 안고 거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 하나님께 제사가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는 하나님께 올라갔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 정도 되었다면 아마 이 여자는 거의 신경쇠약에 걸리거나 요즘으로 말하자면 우울증 정도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자폐증에 걸렸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속에서 이 여자는 홀로 뒷방에 앉아 문을 닫아걸고 시름에 빠지는 일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혹은 포악한 성격으로 이 첩을 물리적인 힘으로 제압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나가 뒷산에서 목매달아 죽는 자살을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무엇을 선택했어도 이 여자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올바른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 앞에 나아가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사연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았습니다.
이 여자의 믿음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만 모든 것을 아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아기를 갖고 싶어 했는지, 이 집안을 위해서 아들을 낳아주어 자기의 집을 세우려 했는지, 엘가나 조차도 자기의 절절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억울하게 첩에게 고통을 당하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를 사랑하는 남편도 완전히 알아 줄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그 모든 위로의 말이 이 여자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만날 때가 되면 우리의 마음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게 됩니다. 즉 마음이 강퍅해 지고 거칠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궁극적인 위로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에 깊이 눈뜨게 되고 이 세상의 즐거움이나 사람의 위로를 구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따뜻한 위로가 이 여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여자는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 올라갔습니다. 이때에 이 여자의 마음에는 “하나님만이 내 마음을 아신다”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얼마나 많이 실망하고 난 후에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세상의 물질로부터 얼마나 많은 배신을 당하고 난 후에 “물질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밖에 없도다”라는 고백을 하게 되겠습니까? 오직 이 여자는 하나님만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실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사랑하는 남편의 위로조차 멀리 하고 그렇게 가슴에 깊이 쌓인 원통함과 한을 안고 아버지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이 여자는 이곳에서 마음을 쏟는 기도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집안의 자녀들이었으니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을 때 집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이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간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드린 이 하나님의 집에서 올린 이 기도는 매우 특별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는 마음이 너무 너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면서 서원을 하였습니다.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나실인 즉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 머리털을 깎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이 아이를 주시면 이 아이를 하나님께 바쳐서 온전히 주님만을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겠나이다” 이런 뜻이었습니다.
그 기도를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매우 힘든 일이었고 시간이 한참 지나자 이 여자도 기진하여 통곡이 멎었습니다. 통곡이 그쳤으나 이 여자의 마음의 기도가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극도의 통곡으로 하나님께 매달린 끝에 이 여자는 육체의 힘이 모두 다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말을 하니까 입술이 움직였고 음성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입술만 움직이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기도는 이 여자가 자신을 모두 쏟아 부은 통곡하는 기도 끝에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놀라운 교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입술을 조용히 움직이며 이 여자가 넋 빠진 사람처럼 그렇게 있자 제사장 엘리는 그 여자가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무라듯이 말했습니다.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그리고 타일렀습니다. 그러자 한나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이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결국 이 여자는 그렇게 통곡하며 기도했고 기도의 문이 열려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기도를 진심으로 올리고 있었으나 슬픈 이 여자의 마음은 아직 사라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마 이 기도를 드릴 때 이 여자의 마음속에는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스쳐갔을 것입니다. 남편 엘가나와의 꿈같은 사랑, 그리고 그림 같았던 신혼생활들, 아이가 없으면서 점점 갈라지는 그런 인생의 커다란 균열들을 경험했을 것이고 틀림없이 엘가나에게 부모도 있었고 친족도 있었을 것이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저 여자를 내치라는 소리까지 들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한 마음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남편과 어쩔 수 없이 첩을 얻어야 했던 광경 그리고 이 첩과 함께 첫날밤을 들 때에 그 바깥에서 홀로 있어야 했던 외로운 기억들 그리고 그 집에서 태어난 아이, 이런 모든 기억들이 이 여자의 마음을 극단적인 아픔으로 몰아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억제할 수 없는 정으로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고 드디어 온 몸의 힘이 다하였을 때 입술만을 움직이면서 음성은 들리지 않게끔 하나님 앞에 여전히 자신의 진심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된 때에 제사장이라고 하는 그런 존경스런 분조차도 자신을 대낮에 술이나 먹고 중얼거리고 있는 여자로 여겼으니 이 여자의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더 컸을까요? 그랬기에 그는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라고 고백을 했겠습니까? 적극적으로 자기를 변호하면서 “나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셨기 때문에 이렇게 혼자 입술을 움직이며 장시간을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자가 인생의 큰 시련 속에서 마지막 찾은 해결책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도는 평소에 드리던 기도와 같은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마음 얕은 곳에서 그냥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저 깊은 밑바닥에서 자신의 영혼을 바닥부터 끌어올리며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전심의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개인적인 일로 가족의 문제로 그리고 사업의 문제로 혹은 여러 다른 문제들로 인해서 매일매일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그리고 근심과 걱정은 우리의 몸을 상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에 더 큰 괴로움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마음을 쓰고 괴로워하지만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염려한들 한 키나 자라게 할 수 있겠습니까? “들에 핀 백합을 보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들은 스스로 길쌈 수고하지 않고 곡식 모아 곳간 안에 넣어두지 아니하되 하나님이 친히 기르신다고 주님은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그냥 넋 놓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자신의 인생에 방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포기하고 넋을 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음을 기도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모두 쏟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으로 인생을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살기에는 여러분들의 인생이 너무 아까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자처럼 주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놓으십시오. 슬픈 여자가 되되 사람 앞에서 슬픈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슬픈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여자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으며 슬픈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슬픈 사람이 되어 자신이 사람에게 복수하거나 절망에 사로잡히기를 선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모든 마음을 쏟아놓았습니다. 원통한 마음과 상처받은 심령, 괴롭기 짝이 없는 모든 아픔들을 하나님께 쏟아놓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당신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시면서 때로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으시고 때로는 하고 싶은 일들이 되지 않게끔 하나님이 붙드십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거나 무엇이 아까워서 우리에게 안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바꾸어 새 사람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한나는 브닌나에게 받는 말할 수 없는 고통 그리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원통함 때문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분께 마음을 쏟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여러분들을 원통하게 합니까? 어떤 일들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깊은 고통을 줍니까? 어떤 일들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견딜 수 없이 낙심하게 만듭니까? 그 모든 것들은 여러분들이 바뀌지 않으면 그냥 매일 매일 여러분들을 찌르는 고통의 원인밖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께 마음을 쏟아놓는 순간 인생의 이 문제는 여러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는 아주 훌륭한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아픈 가슴을 안고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고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쏟아 매달리며 아버지 앞에 매달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제사장은 그가 술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너무나 간절히 찾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가 자신의 원통함을 호소했을 때 제사장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에게 응답해 주었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사실상 제사장이 응답이었다기보다는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이 마음이 슬픈 이 여자에게 주시는 응답이었습니다.
놀라운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사람이 말했지만 사람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후에 나오기를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왜 그랬을까요? 아마 이 구절로 미루어볼 때 이 여자는 마음이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운 나머지 오랫동안 음식에 곡기도 끊으며 그렇게 괴로워하고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얼굴에는 수심과 걱정이 가득했고 누가 봐도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응답이 주어졌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마음속에 놀라운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운을 내어 다시 가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이 여자의 얼굴에 근심 빛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께 경배하고 자기의 집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동침하였습니다. 그때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고 했습니다.
자,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인생의 견딜 수 없는 고통스러운 문제를 가지고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생각하시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언제나 이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렇게 괴로워만 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긍휼히 여기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불안했고 늘 괴로웠고 늘 브닌나가 격동시키는 그 악한 행동에 그녀의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평안이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 일을 이루실지, 오랜 세월동안 남편과 동침했는데도 아기가 없었는데 갑자기 아기가 생긴다는 보장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자기가 그 실로에서 마음을 쏟아 기도했던 통곡과 눈물로 기도했던 바에 대해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려운 인생의 벼랑 끝에서 하나님 앞에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원래 길은 길이 있는 곳에서 길을 묻는 것입니다. 내 가는 길이 바른 길인지 혹은 잘못 가는 일인지를 알기 위해서 길에서 길을 묻습니다. 벼랑 끝에는 길이 없습니다. 벼랑 끝에서 길을 물어보아야 대답은 천길만길 낭떠러지밖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 벼랑 끝까지 갔을까요? 누가 벼랑 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절망하는 사람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이었기 때문에 상황에 내몰려서 벼랑 끝에 가 있게 된 것입니다.
자, 이제 거기서 자신의 생각으로 찾을 수 있는 모든 길을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벼랑 끝에 이르게 되자 이제 더 이상 그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 벼랑 끝은 어차피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아마 죽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집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통곡하는 것 이외에 이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이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 쏟아 하나님 앞에 기력이 진하기까지 토해놓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소통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엘리를 통해서 놀라운 응답을 주셨습니다. 이 여자의 마음에 모든 근심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이 여자에게 무슨 길을 보여주셨을까요? 아무 길도 보여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설명도 없었습니다. 그 긴 세월 남편의 사랑을 갖고 함께 부부로 살았지만 아이가 없었던 그때에 어떻게 아이가 생기게 되는지 이 한나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이 여자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응답이었습니까?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모르는 것이 없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한 변곡점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과 같이 훌륭한 인물을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직접 이 일을 혼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아이가 하나님께 바쳐질 때까지 또 바쳐진 후에도 한나는 하나님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자신의 아들을 만났고 하나님의 신앙으로 교육을 시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위대한 인물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그 어머니인 한나를 이 위대한 인물의 어머니다운 여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그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주셨습니다. 벼랑 끝에서 길을 묻습니다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벼랑 끝에서는 우리는 더 이상 길을 물을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할 때마다 어느 성도가 들려준 꿈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꿈을 꾸었는데 그냥 나쁜 군인들에 쫓겨서 산으로 도망을 가다가 가다가 벼랑 끝에 오게 되었는데 이제 무기를 손에 든 그 적군들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고 자기의 발뒤꿈치가 벼랑 끝에 맞닿았습니다. 이제는 도저히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몸을 돌이켜 이제 떨어져 죽을 마음으로 절벽을 향해 대면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며 뛰어내렸다고 합니다. 그 순간 자신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눈을 떴더니 하나님께서 떨어지는 자신의 어깨 위에 천사의 날개를 달아놓으셨더라는 꿈입니다.
그게 길입니까?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벼랑 끝에서는 길을 물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하는 길과는 비교되지 않는, 인간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희망이 없는 절망의 벼랑 끝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다시 희망을 향해 날아오르게 하십니다. 허공에 몸을 던지는 순간도 하나님의 이름은 불렀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날개를 달아주어서 자신이 죽고 싶었던 그 절망의 계곡 위를 날도록 만드시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사람들만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고 인생의 절망 중에 있을 때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벼랑 끝에서 하나님께 길을 묻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이제껏 내 방법대로 살아오고 인간의 상식으로 살아왔던 그런 길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길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지는 완전히 새로운 기적의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인생의 위기 속에서 마음을 쏟아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큰 유익입니다.
(찬양)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라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그렇습니다. 주 여호와는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보십시오. 인생의 문제가 없는데 주님을 간절히 찾은 사람이 없고 주님을 만난 사람이 없습니다. 인생의 문제가 있어서 생애 벼랑 끝까지 서서 길을 물었는데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유는 그 벼랑 끝에서 절망하는 대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전에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그런 벼랑 끝과 같은 위기를 주신 것 그리고 원통하여 한이 맺힐 것 같은 고통을 주신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찬송합니다. 왜냐하면 그 벼랑 끝에 서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과 마음을 통했을 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고통은 물러가고 오히려 그 고통 때문에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하나님을 만났고 가보지 못했던 은혜의 높은 세계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신앙은 견고해졌고 마음에는 기쁨과 사랑이 가득 찼고 생명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 생명으로 가족들을 가엾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들이 이렇게 자신의 인생의 처지를 올바로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벼랑 끝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잠시 후 낭떠러지가 나타날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허무하게 그 낭떠러지 떨어지는 한줌의 조약돌 같은 처지가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받으면 자신이 인생의 벼랑 끝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걸어오는 이 인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이 어려움을 통해 자기를 부르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게 됩니다. 그렇게 진심으로 하나님께 쏟을 때 근심과 염려 세상은 간 곳 없고 오직 하나님 한분이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뭉쳐 있었던 모든 것을 쏟아놓고 인생의 문제가 하나님과의 화목이 없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여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문제가 원한이 되어 하나님 앞에 올라갔습니다. 여러분들은 또 다른 어떤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제일 먼저 여러분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죄를 회개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없이 살았던 날들, 사람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했던 교만한 날들을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 은혜의 결심을 내리게 해 주십니다. 거기에서 주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벼랑 끝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여러분들의 어깨 위에 날개를 달아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많은 고통들은 하나님이 여러분 만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새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이제는 더 이상 원수를 두려워하고 벼랑 끝에서 낙심하는 대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건져주시는 위대한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