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3._학부모세미나
부모 인생의 가장 기쁜 날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녹취자 : 박나리
이런 시간을 가지면 제일 부담 가는 사람이 학부모님들과 교사들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먼저 저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그 사람이 진정으로 거듭나고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이 신령한 세계에 대해서 눈뜰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이 세상에서 제일 기쁜 날은 그 아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난 날입니다. 이 날 외에도 부모에게 기쁜 날은 많습니다, 아이가 1등을 하고 달려올 때, 아이가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상을 받았을 때 등 자녀가 자랑스럽다는 느낌을 부모가 가질 때, 그보다 더 행복한 날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강의를 듣고 있는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그 모든 기쁨은 이 세상에 한정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나라까지 영원히 계속되는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주님을 만나고 구원받았다는 것, 구원받은 우리 자녀들이 은혜를 많이 받고 좋은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만큼 행복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돈을 많이 남겨주고 죽는 부모는 자식을 보면서 눈을 감기 어려워도 훌륭한 신앙을 물려주고 죽는 부모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일평생을 우리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어야 하겠는데, 부모는 자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일 먼저 부모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경우에도 그 아이를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아닌데,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한 아이가 얼마나 성격이 이상한지 10살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부모 말을 지겹게 안 듣습니다. 그리고 말리고 나무라면 엄마를 발로 차서 엄마 무릎에 멍이 시퍼렇게 들었습니다. 얼마간의 세월을 그렇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정신에 이상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하면서 사니까, 교육을 전문으로 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보통 10주 정도 아이를 가르치면 바꿀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아이는 6개월 동안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겨우 변화되었습니다. 이 엄마가 하도 답답하니 교육을 받는 동안에 이 아이를 산에 데리고 다니면서 관계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 아이가 말을 듣기 시작합니다. 이 엄마가 싱글맘 같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데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정상적인 아이를 키워도 그 엄마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닌데, 그런 이상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엄마가 그만큼이라도 자기 아들이 고쳐진 것을 보면서 산꼭대기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엄마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산에 올라서 외쳤습니다. ‘강하자! 나는 엄마다! 할 수 있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두 눈에 뜨겁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저 아이는 성격은 정말 이상해도 복되다고, 그를 포기하지 않는 엄마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되 얼마나 열정적인가 뿐 아니라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엄마, 아빠가 되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 아이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이해하지 못해 포기해도 엄마인 나는 아빠인 나는 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엄마 아빠가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 아이는 정말 불행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되기 위한 깨달음을 자기 스스로 온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아야 합니다. 어린 나이에 신앙이라도 들어가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다면 이 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험한 일이 기다릴까 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운 일을 만나고 힘들 때 주님을 부릅니다. 저는 신앙을 갖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이 그렇게 감격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왜 감격스러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하나님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가 빨리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데 감격스럽지 않았습니다. 후에 세월이 흐르며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알고 나니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의 인생에 많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일단 하나님을 아직 몰라도 ‘엄마’하고 마음속에서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 자기를 맞아줄 것이고 그런 엄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아이는 행복한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부모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고 자기가 힘들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하지만, 엄마, 아빠는 그러면 안 됩니다.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를 길러본 모든 사람은 다 알지만, 자식들은 다 자기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그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고 아팠던 순간을 남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자식에게도 그런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못 털어놓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마치 여러분들이 부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세월이 지나서 부모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부모도 역시 자식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부모는 끝까지 자기 자식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사랑해야 합니까. 오늘 아침 설교와 똑같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고 대부분 자기 이기심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자기와 코드가 맞는 자식을 더 사랑하고 유산도 더 물려줍니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녀를 위해서 자녀를 사랑한다고 할 때 육정에서 나온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부모라 자식을 낳으면 육정이 있습니다. 그 육정이 거룩해져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식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기를 때에는 마치 나무를 기르는 것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육관 5층에는 ‘에드워즈 파크’가 있습니다. 그 안쪽에 소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자라면 금강송이 될 것입니다. 진짜 예쁩니다. 지금으로부터 17~18년 전쯤 나무를 심었습니다. 사다 놓았을 때 너무 작아서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60만 원이나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담장을 넘어 아주 키가 크게 자랐습니다. 긴 세월 동안 나무를 기르는 사람들은 조바심을 내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 적어도 30년은 바라보고 길러야 합니다. 그때까지 부모의 마음에 쏙 드는 자식은 별로 없습니다.
솔직히 우리 어머니를 저를 보고는 너 때문에 속상했던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효자는 아니었지만, 우리 형제 중에서는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애들은 아주 드뭅니다. 이번에 우리 이슬이가 시집갔는데, 신랑 어머니가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이 아이 때문에 한 번도 속상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드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를 속상하게도 하고, 기쁨도 주고 하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되, 그 아이들에게 절대 강압하거나 상처를 주면 안 됩니다. 안 되는 아이도 끝까지 교육하려면 마지막까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그것이 깨어지면 남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됩니다. 남편이 아내와 살아가는데 어떤 점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고쳐줬으면 좋겠는데 지혜로운 남편은 몇 번 이야기를 해봅니다. 재봅니다. 죽어도 안 고쳐질 것 같으면 남편이 거기에서 접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저 여자는 못 고쳐지니까 자신이 받아줄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합니다. 변한다고 하더라도 천천히 스스로 깨닫고 돌이킬 때까지 기다려줘야 합니다.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혼을 합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결국 기다리고 오래도록 사랑하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참을 수가 없을 때 관계가 깨어집니다.
자식들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공부 못 하면 아이의 미래가 불안합니다. 공부를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실해야 하고 사람다운 습관도 익혀야 하고 신앙도 가져야 합니다. 부모는 이것을 빨리 빨리 넣어주고 싶어합니다. 빨리 빨리 넣어주도록 노력을 하십시오. 그런데 관계를 망가뜨리면서까지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기와의 관계를 포기하기까지 자신을 괴롭게 하면 안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항상 나는 엄마라는 것, 아빠라는 것,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내 자식을 못 되었다고 말하고 포기하고 버려도 마지막에 끝까지 우리 자식을 버리지 않는 마지막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부모도 아이가 너무 변하지 않고 괴로움을 주면 부모의 마음에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것을 은혜로 이겨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실 자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할 때 엄마, 아빠가 받는 가장 큰 유익은 그 아이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면서 그 아이를 미워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사실은 아이를 위해 기도할 때 제일 큰 유익을 받는 사람은 그렇게 기도하는 부모가 제일 큰 유익을 받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자기 자신을 일깨워야 합니다. 나는 엄마다, 나는 아빠다. 이 아이의 인생을 사람답게 살아가는 인생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이 아이의 지킴이로 부르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모든 다른 집 아이보다 뛰어난 것이 없습니다. 비교해보면 벌써 내가 엄마, 아빠인데도 그 아이보다 못하다는 것이 명백해 보입니다. 그런데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식은 시장에 내놓은 상품이 아닙니다. 상품이면 이리저리 만지다가 더 좋은걸 사가겠지만 잘생긴 남의 자식을 아무리 들여다봐야 자기 자식이 안 됩니다. 비교할 수 없는 나의 혈육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엄마 아빠로서의 마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이 사랑을 굳게 하는 아주 중요한 생각이 있는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여러 가지로 모자랄 수도 있고 결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좀 더 살아봐야 합니다. 아이들이 발현되는 것은 아직 모릅니다. 두고 봐야 압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이 아이가 내 아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여기서부터 첫발을 딛고 어떻게 내가 부모 역할을 해 나갈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첫 번째 이야기를 여기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자식을 포기한 부모치고 사람답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2021.05.23._학부모세미나
두 번째는 이 아이의 영혼을 위해서 염려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회심이라는 것은 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자신의 영혼을 죽은 상태에서 살려주신 것을 최초로 의식 세계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심입니다. 좁은 의미는 일생에 딱 한 번만 합니다. 구원받을 때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다시 한 번씩 경험되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의 회심을 한 번 하고 넓은 의미의 회심을 반복하며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회심의 핵심적 요소는 두 개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회개하는 것과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처음 회심할 때에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아이들이 아주 절실히 회개합니다.
열린교회의 역사를 보면 때때로 하나님이 큰 부흥을 주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의 역할이 매우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한 번 쓸고 지나가시면서 아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서 집단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회심하게 해주십니다. 학년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회심할 때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엄마가 잔소리하는 이유라고만 느끼던 자신의 죄를 심각하게 깨닫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자기를 뽐내면서 살았던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 인간이 자기를 의지하든 하나님을 의지하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 회개와 믿음이 회심의 핵심입니다. 이 회심이 아주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에게 경험됩니다. 그래서 한 인간의 영혼이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 혼자 하시는 것이지만, 회심은 하나님도 역사하시고 자신도 의식하면서 됩니다. 쌍방적 사역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많이 요구합니다. 돌이켜 회개하라고 요구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사용해서 회심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로써 회개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가정 예배 드릴 때에도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집중하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잘 참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인가 보고 그 안에서 설교해야 합니다. 제가 교회학교 교역자들에게 15분 설교를 추천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분명히 교회학교 아이들 중에 어떤 아이들은 오래 설교해도 충분히 받아들일 아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율이 얼마 안 됩니다. 특별한 때에야 가능합니다. 담임목사와 함께하는 회심 집회에서 초등부였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제가 70분을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집에 가서 ‘엄마, 오늘 회심 집회가 너무 은혜로웠고 기도도 많이 했어. 그런데 아쉬운게 있었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목사님 설교가 너무 짧았다고 합니다. 실화입니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 예배 드릴 때에도 아이가 5분 밖에 못 찾는다고 느껴지만 설교를 5분만 들려줘야 합니다. 그러면서 10분, 15분 이렇게 늘려 나가야 합니다. 그 자세를 가지고 예배당에 나와서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끔 교회학교 가서 살피는 적이 있는데 한 번만 보면 압니다. 전도사님이 설교할 때 아이들이 어떤 태도로 듣는지만 보면 그 부서에 상황을 거의 파악할 수 있습니다. 90%의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손장난, 발장난을 하고 있으면 그 부서의 사역은 썩 칭찬할만한 사역이 아닙니다. 설교가 아이들에게 거의 영향을 못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부서에 가보면 유치부인데도 아이들이 똑바로 정자세로 앉아서 15분의 설교를 듣습니다. 집중하지 않는 아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흔들리는 잉크병에 잉크를 붓는 것과 같이 어렵습니다. 아이에게 그 훈련을 먼저 시켜야 합니다. 이 시간은 구별된 시간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딴생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깔보는 것이라고 아주 굳게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똑바른 정자세로 앉아서 설교를 능력껏 듣게 해야 합니다. 그런 태도를 가진 아이들은 공부하는 데에도 집중력을 훈련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도 그렇게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부모들은 자기가 회심한 형태에 아이들을 맞추려고 합니다. 자기가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람들은 자기들과 똑같이 자녀들이 회심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의 회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한 사람이 깊이 회개할 때 대체적으로 뚜렷한 회심의 징표, 모습이 있지만 획일적이지는 않습니다. 에드워즈가 뉴잉글랜드에 부흥이 일어날 때 이 신학적인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고, 구원받았다고 확실하게 고백하고 표징이 확실해도 1년 동안 두고 보며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도달한 결론은 회심의 양상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슬처럼 조용히 내리는 은혜를 받고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회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격렬하게 데굴데굴 구르며 회심하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자기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회심에 대한 다양성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회심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이 아이의 열렬한 기도나 유창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아이를 말씀과 기도에 가까이 다가가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가 정말 은혜를 받고 나면 말씀을 배우고 싶은 뜨거운 열망이 생깁니다. 아이도 똑같습니다. 제가 총각 집사 때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에 의하면 아이들이 은혜를 받고 부흥을 경험하고 나니까 주일날 모여서 3시간씩 성경 공부를 해도 딴짓하는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6개월이 되기 전에 신약성경을 한 번씩 읽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분의 말씀을 알고 배우고 싶은 욕구가 막 생겨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이들이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히려 핸드폰이나 딴 짓할 때에는 집중을 뛰어나게 잘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그렇게 말씀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아이들보다 안 그런 아이들이 많습니다.
엄마, 아빠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말씀에 가까이 가도록 인격적으로 돕는 것입니다. 방배동에 3년 살았고 그다음에 본당 자리에 저희 사택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7년 살았습니다. 얼추 10년을 교회 안에서 살았습니다. 여기 있을 때 우리 딸이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이사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 때는 잘 다녔고 중학교 때는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엄마가 매일 매일 버스 타고 갈래 엄마 차 타고 갈래 물어보면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버스는 돈도 내어야 하고 끼어서 가야 합니다. 엄마가 데려다가 교문 앞에 내려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항상 아내가 엄마가 데려다 준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일찍 일어났더니 시간이 많다고 하는 때가 없습니다. 막 머리도 못 감고 난리를 칩니다. 엄마가 태워주면 15분은 남습니다. 그러면 내려와서 5분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본당이 가까우니 내려가서 기도를 시켰습니다. 어떤 날은 기도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성경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조금씩 조금씩 다가갑니다, 이것이 보통 정성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에게 그렇게 기죽어서 마치 을이 되어서 눈치를 보겠습니까. 목회자는 교인을 보면서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그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부모 눈치를 그렇게 봅니까. 남편 눈치를 그렇게 봅니까. 아내 눈치를 그렇게 봅니까. 부모로 태어난 게 죄도 아닌데 죄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꺾지 않고 하나님께 다가가게 하기 위해서는 노력합니다. 그러면 부모의 모든 마음이 오래 참는 인내로 매순간 마다 이 아이를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어 줍니다. 목사의 집안이니까 아이들에게 신앙생활 똑바로 하라고 예배드리는 태도가 그게 뭐냐고 맨날 이야기할 것 같지만,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자식은 자기가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직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그렇게 안 됩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깨질까봐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깨닫기를 매일 기도합니다.
이제 다 커서 큰아이는 장가가서 아이를 두 명이나 낳고 작은 아이는 이제 시집가서 몇 주 안 되었습니다. 분명히 말하건데, 매일 매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웁니다. 그들이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어서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 자녀를 어린 나이에도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말씀에 가까이 다가가게 하려고 부모가 노력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신학교는 엄마의 무릎입니다. 엄마는 너무 피곤해서 좀 쉬고 싶은데 아이가 큰 그림책을 질질 끌고 오면서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합니다. 눕고 싶은데 굳이 올라와서 엄마 무릎에 앉겠다고 합니다. 빨리 읽어달라고 합니다. 그것이 얼마 안 갑니다. 두 살 때부터 네다섯 살 정도까지입니다. 2~3년 동안 그러다가 안 그럽니다. 세상에 대해서 눈을 뜰 때가 있습니다. ’엄마 이게 뭐야? 뭐야?‘하고 묻습니다. ’아빠 이건 뭐야‘ 하고 묻습니다. 어디를 좀 데려가려고 하면 귀찮기도 합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 한글을 깨우쳤습니다. ’공사중? 저건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설명하기 복잡합니다. 다 한자어입니다. 공사는 무엇을 고친다는 것이고 중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대답하기가 무섭게 다른 것을 물어봅니다.
그런데 그 때가 아주 복된 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아부 부모 때 농사를 잘 지으면 유아부를 쉽게 넘기고 유아부에서 회심을 안 하면 유년부에서 회심을 하기가 더 힘듭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더 굳어집니다. 엄마를 신뢰하며 목에 매달리면서 물어볼 때 엄마가 에너지가 넘치면 아이는 복이 있습니다. 육적으로, 영적으로 에너지가 넘치면 그 때 아이를 앉혀놓고 무릎에서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계시단다.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단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단다‘ 엄마의 무릎이 최고의 교리학교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마음에 믿어지고 나면 신앙 생활 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를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가 자라면서도 강압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가도록 아이들을 가르치십시오. ’학교에 매일 데려다 줄테니 같이 교회에서 기도하자. 엄마는 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너는 엄마를 위해 기도하렴. 우리 5-10분만 하자. 아니면 돌아와서 니 방에 들어가서 5분 기도하고 엄마는 엄마 방에서 널 위해 5분 기도할게. 그러면 너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줄게’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가고 비록 자신이 신앙의 큰 비밀을 몰라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엄마, 아빠를 통해서 보고 자신도 기도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비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도 공부라도 하고, 먹고 사냐며, 이런 식으로 하면 부모가 인성이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공부 못한 것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압니다. 무엇을 그렇게 대단하게 했겠습니까. 진짜 공부를 잘한 부모들은 그렇게 해서는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공부도 기술의 하나인데 모두 잘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대학교 가는 애들도 있고 안 좋은 대학교를 가는 애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용기를 가지십시오. 아이가 무슨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쓸모없이 만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공부도 이 나라 교육에 맞는 아이들이 잘하는 것입니다. 머리가 좋아도 이 나라 교육이 안 맞는 아이들은 공부를 못하는 건데 결국은 제도가 아이를 그렇게밖에 못 길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일평생 공부하면서 사는데 그 아이가 무엇을 잘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날 같이 컴퓨터 게임을 개발하고 프로그래밍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는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3D 업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없어서 못 데리고 갑니다. 무슨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슬기로운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이 있을지 이끌어 냅니다. 다양하게 만들어 줍니다. 무조건 학원에 보내서 돈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모도 끊임없이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신앙교육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그것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주는 것이 부모의 매우 중요한 역할입니다.
절대로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공부를 못한다고 패배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누가 저에게 공부 못한다고 그러겠습니까. 저는 공부가 너무 좋습니다. 결국은 그 아이가 무슨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이를 존중해주십시오. 그리고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주십시오. 부모가 믿어주지 않으면 언제 믿어주겠습니까. 정말로 훌륭한 쓸모가 있어서 하나님이 이 아이를 만드셨을 거라고 믿고 아직 발견을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거기에 너무 신경을 빼앗긴 나머지, 신앙에는 관심을 못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들이 자신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가 하면 아닙니다. 신앙의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눈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도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고 영혼을 위해서 봉사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자식을 향해서도 똑같습니다. 그 자식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점수를 얼마를 맞았나 그런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는데 네가 예배를 정말 예쁘게 잘 드렸다고 하더라. 진짜 엄마는 너무 기쁘다. 아빠는 너무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해주십시오. 그렇게 아이를 대하면서 이 아이가 말씀, 기도, 예배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그 아이가 자신의 영혼에 변화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옵니다. 마지막까지 인격적인 방법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가 있어도 자식을 포기하지 말고 내 자식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끝까지 참으면서 이 아이를 말씀과 기도에 가까이 가게 만들어주는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많이 하면 다 기억을 못 할 것 같아서 마지막 세 번째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부모가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느 집 이야기입니다. 애들이 하도 게임만 하고 만화만 보고 부모 말도 안 듣고 많이 먹고 살이 쪄서 운동도 안 하고 뒹굴거렸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나무라도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상담을 했더니 부모가 먼저 책을 읽는 모본을 보이라고 그랬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다 치웠습니다. 사실 자녀 때문에 텔레비전을 둔 부모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기들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싹 치우고 책꽂이를 거실에 내놨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들이 떠들면 엄마는 책 읽는다고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아빠도 퇴근을 하고 돌아와서 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들이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모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저 길로 가라고 하지 말고 자기가 먼저 그 길을 가면서 이리로 오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기도 안 하는 부모가 자녀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절대 안 가르칩니다. 양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부모가 자기 자식이 기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부모의 신앙생활이 너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면 자식이 그것을 본받을 수도 있고 본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매일 가정폭력, 언어폭력을 하고 집안 질서가 없이 남편과 아내가 싸우고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 남남처럼 살아가면 그 아이들이 그 안에서 이미 신앙에 대한 반감이 싹틉니다. 저러고 주일에 같이 교회 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인은 위선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부모가 완전하지 않아도 진실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나에 대해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구나. 나는 아빠와 생각이 다르고 엄마의 이야기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 엄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우리 아빠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자기가 신앙에 공감을 하면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신앙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 그까짓게 뭐가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어쨌든 엄마, 아빠는 자신이 고백하는데로 살려고 애를 썼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고 교회에서 권사, 장로 등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집에 가서 말다툼을 안 합니까? 가끔 바가지 안 긁습니까? 아내에게 소리 지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보고 배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한 번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고 정말 잘못되었다는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을 자식들이 볼 때 역으로 그것이 교육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집에 가서 일체의 온유함과 사랑으로 가정을 다스리고 가정의 질서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넓게 생각하면 남편과 아내가 악악 거리고 싸울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장사를 할 것도 아니고 이윤을 남길 것도 아닌데 생각의 차이거나 기분이 조금 우울하거나 하는 차이입니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넘어가 주고 이해해주고 저렇게 연약한 부분이기 때문에 내 남편, 내 아내로 불렀다고 이해를 해줘야 합니다. 가정에서나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부모의 진실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도 자기가 잘못했으면 찾아가서 아이에게 잘못했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내가 어제 너무 화가 나서 함부로 이야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전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이 아니었다. 내가 너에게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 엄마가 다음부터 조심할게. 아빠가 다음부터 안 그럴게’라고 그렇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빌면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자신의 엄마 아빠가 모자란 사람이지만 조금씩 완전해져가는 사람이라는 것이 가슴에 다가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부모가 모본을 보여야합니다. 예배당에 나와서 자기는 계속 딴 생각을 하고 조는 부모가 아이에게 너 오늘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렸냐고 물어볼 수가 있겠습니까. 부모가 태만한 이유는 자기 신앙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신앙에 관심이 있으면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모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위에서 하수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교육하면 안 됩니다. 간혹 그렇게 교육해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를 존중해주면서 아이의 눈높이로 내려와서 설득하면서 신앙의 진정한 기쁨과 하나님 안에서 맛보는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교육시키는 최고의 방법은 매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전심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부모를 아이들이 직접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저렇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엄마 아빠가 저렇게 간절히 매달리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이 틀림이 없구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부모를 보면서 아이들은 말은 안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구나를 깨닫습니다. 부모의 모본이 너무 중요합니다. 아이들을 향해서도 절대 폭언을 퍼붓지 마십시오.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적이 있다면 아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비십시오. 그것이 아이들과의 관계가 깨지지 않는 비결입니다. 부모는 권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막말을 할 수가 있고, 아이가 대들 기운도 없고 돈도 없으니 아이는 독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부모는 지워집니다. 부모를 오랫동안 가슴에 기억이 남게 만드는 것은 존경과 사랑입니다. 자기도 살아보니까 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을 깨달을 때 부모가 대단한 사람으로 느껴지고 자기가 결혼해서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 어렵게 느껴질 때 부모가 자기를 어떤 사랑으로 사랑했는지가 절절히 느껴집니다. 그런 역할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모로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절대로 작은 부르심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부모로서 잘살아서 이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와의 관계를 잘 지키고 아이에게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본을 보이며 그것이 등대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이를 향해서 진심을 잘 고백하지 않듯이 자기 엄마가 자기를 위해서 얼마나 오래 참고 견디는 지요, 우리 집사람이 자기도 시집가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기하고 똑같은 딸을 낳으면 내 마음을 알게 될거라고 합니다.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런데 그 화를 자녀를 향해 쏟아 붓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자기 신앙도 망가지고 아이도 망가집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팍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릴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정말 여러분들의 자녀는 복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좋은 부모가 되어 보려고 자식들이 진정한 신앙인이 되게 하기 위해, 지금 600여 명이 동시에 제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님, 아버님은 그런 부모가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눈물을 흘리며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다시 태어나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눈물 흘려 주고 나의 신앙을 위해 잠든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복해주는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부모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아오고 그런 가르침을 주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의 어린 시절의 저를 생각하면 한없이 눈물이 납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데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 아이가 동요를 부르면서 인생의 비애를 생각하면서 뒤뜰에서 눈물을 흘리고 멀리 떨어진 부모가 보고 싶어서 장독대에서 울고 이제 열 다섯 살 밖에 안 되었는데 자살을 매일 생각했습니다. 그런 불행을 여러분들이 자식들에게 물려주면 하나님 앞에 가서 네가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무엇을 했냐고 물을 때에 나는 너에게 나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가르쳐주었는데 네 자녀는 그렇게 방황을 하고 많은 눈물을 흘리며 돌보는 자 없이 불쌍하게 인생을 살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의 자녀를 한 번 보십시오. 거기가 바로 여러분들의 자리입니다. 그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를 사랑하고 그 아이와 함께 기도하고 그 아이에게 우리의 경건한 신앙의 도리를 가르치겠다고 하나님 앞에 서약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너는 내 운명이고, 내가 비록 부자는 못되고 이 세상에서 이름을 기억해줄 만한 유명한 사람은 못되어도, 재능이 별로 없어도 자식인 너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는 패배하지 않았다고 주님께 인정받고 싶다는 그 결심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자녀를 위한 눈물이 마른 부모에게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울 눈물이 없습니다. 요즘도 매일 자녀들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저도 젊어서는 그러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왜 우리 애들은 저렇게 못났을까, 학교에 가서 1등 하라는 것도 아니고 2, 3등만 하라는데 그것도 못 하나’ 했습니다. ‘서울대 가라는 거 아니고 연고대만 가면 되는데 그것도 못하나’하느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때 못했던 것을 요새합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렇게 가엾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는 평생 그렇습니다.
몇 달 전에 했던 설교를 기억하실 겁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을 하다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가족들이 이렇게 나를 괴롭혀도 참아야 하나, 특히 자식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기들은 부모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부모를 지배하려고 들고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 설교를 하고 돌아갔더니 우리 아들이 들어오는 나를 안아주면서 오늘 설교는 구구절절 자신의 가슴을 녹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도 고생을 해보니까 애비의 마음을 아는구나 했습니다. 아이가 둘인데 보통 신경이 쓰이는게 아닐 것입니다.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녀들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셔야 됩니다. 자녀들의 신앙은 여러분의 신앙과 결탁되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서 부모들이 울면서 기도하는 것만큼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더 큰 것은 없습니다. 눈물로 기도해준 자식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못할 때 여러분들이 엄마 아빠로서 자녀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아빠들도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아내에게만 맡기지 말고 진심으로 기도해주십시오.
유년부에서 여러 해 전에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아빠한테 가서 품에 안겨 기도를 받고 오라고 했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숙제가 아닙니다. 월요일부터 아이가 졸랐습니다. 아빠 숙제가 있는데 아빠가 나를 안아주고 기도해주는거라고 했는데, 이 아빠가 안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별로 안 하는 아빠거니와 아이를 끌어 앉고 하는 것이 너무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안 하다가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민망했습니다. 계속 미루니까 하루는 아이가 짜증을 냈습니다. ‘아빠는 왜 이렇게 게을러 터져? 그까짓게 뭐가 그리 어려운데 나 하나 안아주고 기도해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라고 1학년인데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할 수 없이 아이를 끌어안고 기도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아이가 태어나서 끌어안고 기도하는 것이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기도하다가 아빠가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매일 그 아이를 끌어안고 기도하고 이 아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이 내 인생에 피할 수 없는 숙제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많은 박수를 받는 것보다 더 큰 상급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녀의 이름을 끌어안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건 할 수 없어도 기도하는 것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만 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 아이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면 놀라운 변화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부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