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교리반
A. 조나단 에드워즈
조나단 에드워즈는 18세기에 살았던 대단한 인물입니다. 제가 조나단 에드워즈를 처음 만난 것은 1988년도 신학교 교수로 막 부임할 시기인데, 교회에서 교육 전도사 생활하며 중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청교도 서적을 굉장히 많이 읽었는데, 그 때에 조나단 에드워즈를 알게 되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사실은 청교도 역사와는 거리가 좀 멉니다. 청교도 역사는 18세기에 이미 다 끝났었습니다. 더군다나 청교도는 영국이야기이고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사람입니다.
1620년에 메이플라호를 타고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런데 영국 청교도들은 건너가다가 다 죽습니다. 그러다가 백년 후에 이민의 역사로 다시 세워지는데, 거기에서 청교도로 이야기하는게 무성의하지만 초창기에는 그런 전통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 나갔습니다.
부흥에 관해서 관심을 깊게 가지게 되었는데, 그 때 나의 생각이나 고민이나 이런 것들은 [거룩한 부흥]이라는 책 속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때의 더 원시적인 형태로 [창세기의 신앙성]이라는 책 속에도 나와 있는데, 연대를 따라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8세기의 인물이었는데, 미국의 역사상 1740년대에 있었던 미국의 제 1차 대각성이 있을 때, 주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 당시 주도적인 인물들이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찰스 웨슬리, 존 웨슬리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정상적인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글씨가 작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흥이라는 부분만 읽게 되었고 책 쓰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뜸해졌습니다. 목회 하다가 그 후에 다시 에드워즈를 읽게 되면서 그 사상의 심오한 깊이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미국 역사상 “The Great”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학자라고 말할 정도의 천재였습니다. 3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6살 때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8살 때 유물론에 대핸 두 번째 논물을 발표하고, 13살에 예일 대학교에 들어갈 때 이미 청교도 책을 가지고 놀았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라틴어, 희랍어를 마스터하고 특별히 라틴어의 천재였습니다. 그래서 졸업할 때 대표로 연설할 때 라틴어로 연설을 합니다. 16살 때는 자연 철학에 관한 논문을 써서 유럽에 있는 학회지에 등재하게 됩니다. 그것이 [거미에 관하여]라는 논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계몽주의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몽주의의 특징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없는 것 내지는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성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기독교의 기본적인 동정녀 탄생, 인성과 신성의 동일성, 천지창조, 부활, 심판등의 기독교의 객관적인 진리들이 위협을 받게 되며, 최종적으로 “하나님은 없다”라는 사상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 속에서 철저하게 개혁신학을 붙들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위대하시다는 것을 변증하게 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나는 논쟁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할 정도로 논쟁에 탁월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학만 했던 것에 반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역사, 자연 과학, 철학 등에 대한 탁월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조나단 에드워즈는 17살에 예일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2년 뒤에 대학원을 마칠 때 교수가 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가 영국의 고서방을 돌다가 우연히 먼지가 케케묵은 책을 발견하는데 그것이 바로 에드워즈의 저작전집이었습니다. 그것을 집에 가지고 와서 읽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당시 잘나가는 외과의사였고, 왕실 주치의의 조수로 일하던 전도 유망한 젊은이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타락과 죄 이런 것들이 환경 때문인 줄 알았는데, 거기 오는 사람들은 왕실 주치의니까 귀족 이런 사람들만 오는데 그 속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더러운 삶이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하고 똑같이 되풀이 되는 것을 발견하면서 인간의 질병을 고치는 것으로는 희망이 없다. 그래서 목사가 됩니다. 그는 에드워즈 목사의 읽으며 “나는 거대한 자연 앞에 서 있는 티끌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에드워즈는 정말 어마어마한 인물입니다.
오늘 날의 프리스턴 대학교 전신인 뉴저지 대학의 초대 총장을 역임합니다. 53살의 나이에 (천연두 실험 접종하고 결국은 죽는다) 생을 마감합니다. 만약 살았으면 더 엄청난 작품이 나왔을 것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작품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예일 대학에서 다시 자료를 manuscripts를 카피해서 비평론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현재 25권 나와 있습니다. 3권정도 더 나올것입니다. 몇 권 빼놓고 중요한 것은 다 나왔습니다. 굉장합니다. 철학적인 사유의 폭이 다른 신학자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사조와 싸우는 용감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당대의 뉴턴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조나단 에드워즈였습니다. 뉴턴이 모든 물리학을 새로 쓰고 있었거든요. 이것을 목회자가 다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물리학과 신학과의 관계가 굉장히 밀접합니다. 아이슈타인이 나타나면서 뉴턴의 체계가 무너지게 되면서 학문의 새로운 세계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상대성 원리도 들어옵니다. 그렇게 해서 700페이지 책이 27권쯤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또 그는 메모의 천재였습니다. ‘내 기억력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왜냐하면 한번도 믿은적이 없으니까’ 부인이 메모지와 펜을 마련해주면 말을 타고 가면서도 옷에다가 핀으로 메모를 꼽습니다. 집에서는 부인이 하나하나 다 떼어서 보관했고 아직까지도 남았습니다. 언제 한번 조나단 에드워즈의 밤 해서 우주와 인간과 역사, 자연세계 공부합시다. 저는 이분을 만나게 하셔서 7년정도 멘토링을 받았는데, 이 분 자료는 아마 거의 1000권정도 있고 모든 자료를 사려고 하고 있습니다. 박사학위논문은 60권정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영어를 잘하면 에드워즈 저작전집 사서 읽어보세요. 300년 전 불신앙의 시대에 살았던 어둠에 맞서 거목과 같이 싸웠던 에드워즈를 본 받아, 자라나는 꿈나무 같은 성도들이 요즘 시대의 거목과 같이 자라서 주의 영광이 드러나길 바랍니다. 어렵지만, 인내심을 갖고 사서 읽어보십시오. 양연식 목사 논문 중에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향”에 나옵니다.
B. 창조
1부에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존재에 관한 것이었고, 2부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나옵니다. 창조, 섭리 두 가지로 나옵니다.
“작정의 시행은 창조 사업부터 시작된다. 이 창조 사업은 모든 계시의 시작이요, 기초이며 모든 종교 생활의 근원인 것이다.” 68p
여러분 성경 66권의 요절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요한복음 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이것이 요절입니다. 요절이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구절인데, 그것 말고 성경 66권을 다 모아서 딱 한절로 요약하라고 하면 뭐가 나오겠습니까? 창세기 1:1절입니다. 창세기 1:1절의 토대가 있고 그 위에 요한복음 3:16절이 놓이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창조가 있었는데 타락했기 때문에 구속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구속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을 향한 놀라운 은혜가 찬란하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창조, 타락, 구속, 완성으로 이어집니다. 요한복음 3:16절이 요절이지만 그것도 창세기 1:1절 토대 위에 놓이지 않으면 허공에 뜬 말씀일 뿐입니다. 창세기 1:1절은 성경 전체의 요약이고, 그 요약 위에 있는 가장 중요한 요절은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창조란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부분적으로는 먼저 있었던 물질을 사용치 않고 창조하시고, 한편으로는 본질상 불충분한 물질로부터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산출해 내신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68p
1) 범신론과 자연신론
범신론은 판베이즘(pantheism) 이라고 하는데, “판”(pan)은 희랍어로 “모든”이라는 뜻입니다. 즉, 모든 것이 신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얼음 덩어리가 녹으면 물이 됩니다. 물을 끓이면 김이 되고 더 끓이면 수증기가 되고 더 끓이면 없어져버립니다. 없어져버린다는 것은 사실 김을 기준으로 없어진다는 것이지 없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각각 형태는 다르지만 원소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속임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얼음, 출렁거리는 물, 거기다가 물감 탄 물,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것, 이런 현상에 속지 않고 본질을 본다면 H2O, 즉 산소와 수소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더 멀리 가면 나중 가면 무일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무의 상태에서부터 창조가 되었다고 보고, 모든 눈에 보이는 인간과 자연 사물들은 결국 진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환원되고 환원되어서 신과 한 덩어리가 되는 것, 범아일여사상이 대표적인 범신론입니다. 오늘날의 범신론이 아주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신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의 사상이 다시 오늘 날 환영을 받고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사고 방식이기도 합니다. 극단적으로 과학을 추구하면서도 한쪽으로는 아주 종교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교적인 것이 건전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범신론입니다. 범신론에서의 창조는 플라톤 같은 사람이 범신론자인데, 하나님 자신이 너무 차고 넘쳤기 때문에 그것이 흘러나온 것이 이 세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출설이라고 합니다.
자연신론은 계몽주의 시대 때 생긴 것인데,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법칙을 정해놓으셨는데 하나님이 이제는 모든 세계에 간섭하시지 않으시고 모든 것은 법칙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사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섭리를 부인하게 됩니다.
2) 창조의 시기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다“ 태초는 언제인가, 태초는 모든 만물들이 생기기 시작한 그 때입니다. 그러면 그 전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 라는 질문은 물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태초 전에는 끝없는 영원이 존재한다고 본다. 오늘 우리들이 생각 할 때, 세계라고 하는 것도 무한한 영원의 틈바구니 사이에 있는 신앙적인 존재입니다. 티끌같이 하찮은 것이 인간입니다.
“창조 사역의 첫 부분은 엄밀히 무에서의 창조이며, 기존 재료를 사용치 않은 창조였다” 69p
없어지는 것은 원래 없어지는 것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큰 나무인데 불로 태우면 없어집니다. 어떻게 없어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원래 사물들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신기합니다. 인간도 이런 창조를 많이 흉내냅니다. 화학제품들을 뽑아내는 것, 석탄에서 프라스틱, 나일론을 뽑아냅니다. 비슷하지도 않은데 나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됩니다.
3) 창조의 궁극적 목적
“어떤 학자들은 창조의 궁극적 목적을 인간의 행복에서 찾으려 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신에게서 충족함을 가지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자신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피조물은 창조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피조물의 찬양을 받기 위해 벌려놓은 하나의 허황한 구경거리로서 꾸며진 것이 아니라, 피조물이 안녕을 촉진시키고, 피조물들로 하여금 창조주를 찬양하도록 이끌어 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69p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영광이 모자라서 보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은 영광을 더 받으실수도 없고 덜 받으실 수도 없습니다. 태양 같은 것을 보면 구름이 끼면 해가 없다, 컴컴하다 그러지만 구름이 높아봐야 10km인데 그 위로는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신학적으로 본체적 영광, 발성적 영광, 효과적 영광으로 구분합니다. 본체적 영광은 하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발성적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하신 특정한 장소에 하나님의 영광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효과적 영광은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이 도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광입니다. 엄밀히 말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입니다. 예를 들어 열린 교회에 오신 분들 중에 다른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이미 하신 분들이 계실텐데, 그들이 열린 교회에서 보여주는 도덕적인 행위들은 그의 전에 신앙 생활을 하던 교회를 빛나게 하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해 주는 존재로 살아갈 때, 그 때 인간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리가 안됩니다. 왜냐하면 곧 그 자체의 근원이 하나님 자신 밖에는 없습니다. 전정으로 행복해지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복된 관계 속에서 살면 행복해집니다.
여러분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입니다. 근데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이 네잎클로버라고 찾아낸 것을 보면 사실 네잎클로버가 아니라 비슷하게 생긴 잡초들입니다. 행운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나폴레옹이 전쟁터에 나갔는데 전쟁에 나가면서도 마차에다가 책을 싣고 다녔다고 합니다. 3000권을 읽었대요. 전쟁을 하던 중 우연히 땅바닥에 네잎 짜리 클로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서 보는 순간 총알이 휙 하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에서 모여서 나온겁니다. 클로버가 모여서 분집생활을 합니다. 세잎클로버를 막 밝으면서 네잎클로버를 찾는데, 세잎클로버의 상징은 행복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행복을 짚밟으면서 행운만 찾는 것입니다. 행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입니다. 오히려 행운을 밟으면서 난 그런 행운 필요 없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주님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행운은 인생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없어도 되는데 그것이 주어지면 위로 쑥 올라가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르고 행운이 와야 감사합니다.
어느 아들이 뺀질거리며 예수를 안 믿었다고 합니다. 그 날도 싫은 소리를 하며 집을 나서서 차를 몰고 나가는데 빙판에 미끌어지면서 죽을뻔했고 차가 폐차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서는 “아버지, 나는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나봐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행복에 대해서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여러분 그런 기도가 잘 나옵니까? 따뜻한 가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지체가 있는 교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라서 감사합니다. 남자라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 기도 할 때 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 안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과 인간의 행복은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과 행복을 포기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에 사심이 너무 많아서 그런 고민이 생기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간의 갈등과 고민이 생깁니다. 그래서 교회도 필요하고 영혼을 돌보는 일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인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자리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온전히 주님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면서 살았던 때가 가장 행복했었을 것입니다.
4) 창조교리에 대한 이설
a. 이원론
“물질은 영원한 것인데, 이 물질로부터 세상이 우연히 또는 고도의 직접적인 힘에 의해 발생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두 영원자가 함께 존재할 수 없으므로, 두 개의 무한자가 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70p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만약에 궁극적인 존재가 둘이 있다면 서로 의존적인 존재가 되고, 그 중 어느 하나도 필수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만든이 없이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에 만든이가 없는 물질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도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b. 유출설
앞의 설명 참조.
c. 진화론
기독교에서는 진화론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진화론을 어디에서 어디까지 인정하냐하면, 종에서 종으로 진화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종 속에서의 진화는 인정합니다. 예를 들면, 소히 이야기하는 “라마르크(Lamarck, Jean Baptiste 1744.8.1 ~ 1829.12.18)의 용불용설”(Theory of Use and Disuse, 用不用說) 즉, 사용하는 것들은 더 많이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점점 더 퇴화되는, 그러한 기능들이 완전히 발달되고 퇴화되었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장고한 세월에 걸쳐서 변한다고 볼 때, 이 종에서 다른 종 사이의 오가는 길이가 확정된 기간보다 훨씬 더 길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다 많은 화석들이 종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런 것들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연속적인 증거가 없고 처음과 끝만 존재하는 것에 대한 비판)
이렇게 이야기 하면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 대표적인 무신론자이며 진화론자) 같은 사람들은 반박을 하겠지만 우리는 성경에 근거해서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C. 영적 세계의 창조
1) 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증명
“자유주의 신학은 영적 세계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러나 성경은 천사들의 존재와 그들의 참 인격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천사들은 우수한 영적 존재, 살과 뼈도 없으므로 볼 수 없는 존재이다. 천사 중에도 어떤 천사는 선하고 거룩하며, 선택받은 존재인데 반하여, 나머지 천사는 그들 본래의 위치에서 타락함으로 악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71p
2) 천사의 부류
a. 그룹
그룹이라고 하는 것은 ‘접근하다’ ‘가까이하다’ 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 “케롭”(kerub)에서 나옵니다. 아마 영어에서는 ‘케루빔’(cherubim)인데 원래 히브리어를 영어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빔”(bim)은 복수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천사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존엄과 영광을 선포하며, 에덴 동산에서나 성막과 성전에서나 지상에서 임재하실 때에 하나님의 거룩성을 호위한다.” 71p
b. 스랍
“천사들 중에는 스랍이라 불리우는 천사가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이사야 6:2-3에서만 언급되어 있다. 스랍들은 하늘의 보좌를 호위하여 시중들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또 그들은 화해의 목적을 수행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올바로 접근하도록 준비시킨다.” 72p
c. 가브리엘과 미가엘
천사장은 가브리엘과 미가엘, 루시퍼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가브리엘은 왕명을 출납하는 천사이고, 미가엘은 전투하는 천사이고, 루시퍼는 타락해서 사탄이 되었습니다. 마귀는 복수를 쓰지 않고 단수로 씁니다. 마귀들이 아니라 마귀는 항상 하나입니다. 그것이 바로 satan(사탄), 루시퍼입니다.
“가브리엘의 특별한 업무는 신적 계시를 인간에게 전달하며, 그 계시를 해석해 주는 것이다. 미가엘은 천사장이라고 불리는데 그는 하나님의 백성의 대적을 대항하여 여호와의 전투를 대행하는 용감한 전사이다. 성경에는 이 천사들 외에도 정사와 권세와 보좌와 주관자라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기독되어 있다. 이러한 명칭들은 천사들 사이에도 등급과 위엄의 차이가 있을을 지적하는 것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찬양하고 있다고 한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로, 천사들은 구원 받은 자들을 위해 봉사하며, 죄인들의 회개를 기뻐하며 신자를 돌보며 소자를 보호하며 교회 안에 계시며 신자들을 아브라함의 품으로 인도한다. 또 천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전달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며 하나님의 대적들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기도 한다.“ 72p
가끔 수호천사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경에 나옵니다. 수호천사가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때 그 때 마다 창조하시는데 육체는 어머니의 태에서 빚어지고 적절한 시기에 하나님이 영원의 창조하셨을 때 결합시킵니다. 그러면 수호천사는 언제 만들어서 인간이 하나 태어날 때마다 인간에서 붙어있게 하시고, 또 만약에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죽는다면 그 수호천사는 할 일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그 할 일이 없어진 천사는 또 다른 사람을 지목받는 것인지 복잡합니다. 그래서 칼빈이 이런 논쟁을 그만하고 천사는 우리를 보호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므로 돕는다는 정도로 만족하자고 이야기합니다.
d. 악한 천사들
이것이 말하자면 귀신입니다. 세상의 개념은 인간이 죽으면 귀신이 되는 것입니다. 구천을 떠돌면서 한이 많거나 충분히 공덕을 쌓지 못했던 사람들은 좋은 곳에 못가고 귀신노릇을 하며 때로 몰려다닙니다. 이런 귀신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패거리처럼 몰려다니면서 인간들이나 혼내주는데, 우리는 육체를 털어버리고 이렇게 구천을 헤매는데 너희들은 아니야 그러면서 귀신들이 몰려다니면서 인간을 괴롭힙니다. 건물 같은 것 지을 때, 고사를 지내는 것도 건축비 조금 들이고 기적적으로 건물을 짓는다거나 복을 내려달라고 하는 것 보다는 심술 부리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뇌물을 먹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귀신이 원래는 천사들이었는데 그들이 타락하면서 귀신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정상적으로 생활하면 겁 먹을게 없습니다. 빛 가운데 살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요즘 굉장히 조심해야 할 것은 마지막 때가 되면서 특별히 정신병 같은 것들이 많이 생겨나는데 그런 것들에서 건강하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속에서 사랑하며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확인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그렇게 은혜를 받으면서 생활하면 정신병 같은 것들은 걸리지 않습니다. 최근에 최진실씨와 그의 동생이 죽는 것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사람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몇 년 동안 문 밖을 못나오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랑으로 2년씩 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서 다시 예수 믿고 세상을 살아가게 만들어 준 간증들이 있습니다. 열린신문에 다 나와 있습니다.
D. 물질 세계의 창조
1) 창조의 기간 ( 24시간설과 시대설 )
창조의 기간에 대해서 중요한 것은 “날”이라는 것이 정말 24시간을 의미하는 것인가‘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창세기 1장을 ‘날’이라고 놓고 보면, 인간의 역사와 물질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불과 5일정도 밖에 차이가 안납니다. 그리고 그 밑에 족보들의 역사가 나옵니다. 물론 인간과 물질의 역사 중간에 빠진 연대가 있다하더라도, 인간이 아무리 오래살았다해봐야 천년정도이고, 열 대가 빠졌다고해도 만년이고, 백대가 빠졌다고 하면 십만년인데, 오늘 날 보편적으로 지구의 나이를 45억년 정도로 보니까 이것이 설명이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지구의 나이를 45억년 정도로 보는 것은 “날”이라는 시간적 개념으로 측정해서 연대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연대 속에 인간의 오류로 빠진 연대가 있다손 치더라도 인간과 물질의 역사가 45억년정도까지 나올 수 없는 측정연대의 오류에 대한 설명)
그래서 개혁주의 안에서도 창세기 1장의 “날”이라고 하는 것을 히브리어로 ‘욤’(yom)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24시간이라고 보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나는 오히려 시대론쪽에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영어로는 age theory(시대설) 또는 Day theory(날설)이라고도 하는데, 예를 들자면, ‘천지가 창조된 날의 때의 내력이 이러하니라“ 할 때, 그 ”때“가 ”욤“(yom)입니다. 천지가 창조된 날의 내력이라는 것은 날이 아니라 period(기간)입니다. 6일동안 창조됩니다. “누가 통치하던 날에“ 할 때의 날은 하루를 의미하지 않고 긴 시간을 의미하듯이 ”천지가 창조된 날”의 날은 6일을 의미합니다. 굉장히 많은 복잡한 이론들이 많습니다. (1시간 7초)
24시간설로도 볼 수 있고, 시대설로도 볼 수 있습니다. 24시간설로 보면, 긴 지질학적인 과학의 증거들에 의하면 많이 차이가 많고 또 거기에 대한 반론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나무를 잘라 보면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간도 나이 관념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사람이 나이가 얼마나 들었는지 의학적으로 감정을 하면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성숙한 세계 창조론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이 이 세계를 성숙한 상태에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나무도 있고 다 있고 공중에는 새가 날고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냇가 데려가서 이것을 연령 감정해주세요 했는데 의사가 방금 태어났습니다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든 그 있는 그 상태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러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석유는 엄청난 세월이 흘러야 되는데 그것은 어떻하냐는 말들도 있는데, 다 인간이 필요할 줄 알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시원하지가 않고 너무 우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시대설을 채택하게 되면 지질학적 연대가 들어오면서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약점도 있습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이 쉬셨다고 하는데 그것도 긴 시간을 하나님이 쉬신 것인가, 그러면 마지막 창조가 완성된 날을 기념하라고 하셨는데 그것도 긴시대였는가 안식일은 어떤 접촉점을 갖는가, 라는 많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해도 그런 하나를 가지고 대항하고 싸울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2) 6일간의 사역
❶ 빛의 창조 | ❹ 빛을 가진 물체의 창조 |
❷ 궁창(공간)의 창조와 물의 분리 | ❺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창조 |
❸ 물과 마른 땅의 분리 : 인간과 짐승이 거처할 땅의 준비 | ❻ 땅의 짐승과 육축과 기는 것과 인간의 창조 |
(책 75p 도표참조)
6일간의 창조 사역은 유사성이 있습니다. ❶은 빛을 창조하시고, ❹는 빛을 가진 물체를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궁창은 좀 더 확실한 번역으로 히브리말 “라키아”(raqia)라는 단어인데, “라티아”(ratia)는 ‘때리다‘라는 뜻이고 “라키아“(raqia)는 ‘평평하게 펼처진‘ 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이라고 할 때, Sky이와 heaven하고 어떻게 다릅니까? Sky는 스카이다이버들이 뛰어내리고 새들이 날라다니는 것이 Sky이고 heaven은 그보다 더 먼 하늘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창공 그러면 공기가 있어서 파란 하늘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이 파란 하늘을 뭔가 두들겨서 넓게 펴놓은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히브리 사람들의 우주관이었습니다. 별은 거기에 매달려 있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❷ 궁창의 분리와 ❺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창조, 그래서 ❶❷❸은 거할 장소의 창조이고, ❹❺❻일 날 내용의 컨탠츠를 짋어넣는 것입니다. 빛을 만들고 빛을 가진 물체, 공간과 물을 창조하고 공간을 나는 새와 물고기들을 집어넣으시고, 물과 마른 땅이 분리되고 짐승과 육축과 인간이 창조됩니다. 인간은 맨 마지막에 창조됩니다.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목적이 인간에게로 수렴되고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로 수렴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인간은 창조의 면류관이라고 말합니다.
E. 섭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창조하신 세상을 유지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자연히 창조교리 다음에는 섭리교리를 생각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며,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 속에서 활동하시며, 만물을 정해진 목적에 맞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섭리는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데, 그 첫 번째는 존재에 관례된 것이며, 둘째는 활동에 관한 것이며, 셋째는 만물의 목적에 관한 것이다.” 78p
1) 하나님의 협력의 요소
a. 보존
“보존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사역이다. 세상은 별개의 존재로서, 하나님의 한 부분이 아니지만, 계속적인 존재의 근거를 갖는다. 세상은 만물을 존재케 하시고 활동케 하시는 신적 권능의 계속적인 행사를 통하여 유지된다.” 79p
세상과 하나님은 별개의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따로 존재하시지 않고, 모든 세상은 하나님 안에서 근거를 갖습니다.
b. 협력
“협력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피조물과 협력하시며 피조물로 하여금 그들의 해야 할 일을 행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라 정의 할 수 있다. 이것은 세계 속에 자연력과 인간의 의지와 같은 실제적 제 2의 원인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원인들이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선악간의 모든 행위 속에서까지라도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행동하도록 자극시키며, 순간 순간마다 그들의 행동에 함께 해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을 동일한 원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제일 원인이요, 인간은 제 2원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침을 이룬 말들이 각기 그 일에 한 부분을 담당한 것 처럼, 인간도 일의 한 부분을 각기 하고 있는 것 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과 인간이 행한 동일한 행위라도 전체적인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의 행동인 동시에 인간의 행동인 것이다. 또한 우리 인간 신인렵력교리가 인간의 죄악 행위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라는 그릇된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 79p
이것이 무슨 뜻이냐하면, 인간이 하는데 결국은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또 죄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그렇게 안하기를 바라시지만 인간이 그렇게 하는 바람에 하나님이 당했다 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이 작정하셨다고 봅니다. 쉽게 생각하면, 인간은 타락한 다음으로는 선한 일을 하는데에서는 자신의 힘으로 안되며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며, 선한 일을 했을 경우에는 하나님을 찬송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올바르고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일을 할 때에는 인간이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 일을 행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들도 사실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도덕적 통치에 들어가면 1차적 선, 2차적 선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잘 읽으면서 정리하면 좋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고 성령이 주도적으로 역사하셔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이 이루어졌을 경우에는 결국 그 분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반면에 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너무 많습니다. 모든 악에 대해서 인간은 전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악에 대한 책임이 부여됩니다. 계시가 드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섭리란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아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순간 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다 라는 마음을 갖고, 실제로 실현하는데에서는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실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들이 변화되지 않을거다 라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어차피 주님께 주권이 있는데 내가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될일이 안될까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그렇게 하시기로 마음을 먹으신 것입니다.
c. 통치
“통치란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들의 존재하는 목적에 맞도록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신구약에서 우주의 왕(다스리는 자)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다스리시는 피조물의 성질에 맞도록 자신의 법칙을 적용시키셨다." 80p
2) 섭리교리에 대한 그릇된 견해
a. 자연신론적 관념
“이 견해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세상의 법칙을 확립하셨고, 세상을 움직이게 해 놓으시고는 세상에서 손을 때셨다고 주장한다.” 80p
디이트리히 본회퍼는 나치 치하에서 사형당한 천재적인 학자였는데, 그 사람이 쓴 [신도의 공동생활]이라는 박사 논문이 있습니다. 예전에 보면서 눈물을 흘린 책입니다. 거기에 보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총을 들고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우다가 잡혀서 결국 사형당합니다. 이 사람의 주장은 버스에 승객을 태우고 미치광이가 운전을 하면, 그 운전대를 빼앗아야지 나머지 사람들이 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세계에 하나님이 간섭안하시나? 예전 미개한 시대나 간섭하셨지 요즘은 안하신다. 이것은 성숙한 세계와 사회라는 개념입니다. 결국 인간들끼리 자결정적으로 살아가도록 하나님은 허락을 해주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도덕적 의무에 대한 책임은 아주 높아지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계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관여는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도 없는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결국 자유주의적 신학사상입니다.
b. 범신론적 관념
“범신론자들은 하나님과 세상을 구별하지 않고, 이 둘을 동일시하므로 섭리교리를 인정치 않는다. 또 세상에 제 2원인이 없다고 보며, 하나님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직접적인 조정자라고 본다” 81p
하나님이 세계와 신 사이의 공의는 부정하고 제2원인은 없다. 하나님이 모두 하시는거다. 어떤 법칙도 많이 작용을 합니다.
3) 비상 섭리(이적)
“우리는 일반 섭리와 특별 섭리로 구별하는데, 이 특별 섭리 속에서 이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81p
요새 리모컨이 일반화 되어있습니다. 선풍기, 컴퓨터, 에어컨, TV, 온열기등 많은 곳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통합하는 방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리모컨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기적같지 않겠어요? 이 쪽에서 누르면 다른 쪽에서 불이 들어옵니다.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이해의 스펙트럼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법칙을 벗어나는 것 같아도 우리가 모르는 법칙이 많이 있습니다. 반대로 볼 때, 질병 같은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질병을 불행의 신이 나를 저주한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빨을 잘못 관리 하면 심근경색으로 죽는다고 하면 여러분은 동의됩니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식이 없어서 동의를 못합니다. 이빨을 관리 안하면 잇몸이 벌어지면서 거기에 균이 들어갑니다. 그 균이 심장까지 돌면 심근경색이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질병을 내버려두면 고름이 계속 들어가면서 콩팥으로 들어가서 콩팥을 망가뜨립니다. 이것을 알았을 때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지식이 없이 질병에 걸렸으면 불행이 다가왔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기적이라는 것도 우리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법칙을 초월한 것이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법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F. 인간론
인간론의 구조를 보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부터 시작해서 ‘무슨 일을 하나‘로 나뉘질 않고, 상태에 따라 나뉩니다. 첫 째는 원시 상태의 인간입니다. 원시 상태 인간은 유인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기 이전, 즉 타락 이전의 인간을 이야기합니다. 둘 째는 타락한 이후에 있는 인간, 셋 째는 은혜 계약 안에 있는 인간입니다. 즉, 구속 받을 사람으로서 은혜 언약 안에 있는 사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3가지 상태로 구분합니다.
1) 원시 상태의 인간
“인간은 영혼과 육체, 두 부분으로 구성 되어 있다는 것이 통상적인 견해이다....”86p
어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영과 육과 혼 등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실은 혼과 영이라는 말은 교차적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어떤 물건의 구성 요소를 보기 위해서는 공장으로 가보면 됩니다. 맨 처음 인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흙으로 육체를 만드시고, 거기에 생기, 즉 영혼을 불어 넣으십니다. 즉 영혼과 육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이 작용하는 하나의 기능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실제에 있어서는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영과 혼과 골수와 관절등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의 영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여“라고 한다고 해서 인간을 네 구성요소로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구성 요소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영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을 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2) 개인 영혼의 기원
a. 선재설
“사람의 영혼이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기 전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87p
이것은 처음에 하나님이 영혼을 저수지 같은 데에다가 한꺼번에 창조하셨는데, 육체가 만들어 질때마다 하나씩 짝을 입힙니다. 아담의 타락은 그 영혼의 저수지 전체를 더럽히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 이것을 통해서 설명이 잘됩니다. 그런데 설명이 어려운 본문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신 그것은 원래 있던 데에서 하나를 불러 온 것인가, 아니면 새로 창조한 것인가, 물론 우리는 창조한 것을 봅니다. 선제설은 오늘 날에는 환영을 못받고 있습니다.
b. 유전설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혼을 그들의 부모에게서 유전받는다고 한다“ 87p 루터교의 견해
유전설의 강점은 “하와의 영혼 창조에 대해 성경에 기록이 없고 후손들이 조상의 허리에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동물들의 경우에는 육체와 혼이 가족적 특성의 유전과 죄의 타락성의 유전에 의해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전해진다는 사실에 근거를 갖는데, 그것은 육체에 관한 문제라기 보다는 혼에 관해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갖는 특성에 따라 아이들도 비슷한 특성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한 강점)
그런데 유전설의 어려운 점은 부모를 영혼의 창조자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이면 그것이 개별적으로 된 것이지 찢어져서 다시 번식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의 영혼이 아이들에게 물려지게 될까 하는 반론을 갖게 됩니다.
c. 창조설 (개혁파 견해)
“이 학설은 개인 영혼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인데, 그 시기는 명백히 알 수 없다고 말한다.” 88p
그러나 창조설은 예수님의 무죄성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난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가족적 특성의 유전에 대해 설명하지 못합니다. 마리아가 죄인에 불과한데 죄인의 몸에서 난 예수님의 무죄성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에 대한 가족적 특성의 유전에 대한 설명을 못하며, 하나님을 죄된 영혼의 창조자로 보이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마리아가 무죄했다고 말하지만, 그럼 마리아의 어머니는 죄성을 갖기 때문에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계속 올라가다보면 결국 하와까지 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와는 선악과를 먹은 장본인이기 때문에 설명이 안됩니다.
3)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인간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친다” 88p
a. 로마 카톨릭의 견해
로마 카톨릭은 하나님의 형상을 영혼의 영성, 의지의 자유, 불멸성과 같은 인간이 부여받은 몇 가지 자연적 은사들 가운데서 찾으려고 한다.“ 89p
b. 루터파 견해
“루터파 교회는 전적으로 로마 카톨릭의 견해를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하나님의 형상이 창조시에 인간에게 부여해준 영적 성질 곧 참 지식과 의와 거룩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89p
c. 개혁파 견해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자연적 형상과 도덕적 형상을 구별한다.“ 89p
인간은 어떤 사물들을 파악할 때 그 배후를 보고 사물의 질서들을 파악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요즘은 수많은 정보의 량이 핸드폰 하나에 모두 들어갑니다. 어느 곳에서나 수많은 정보들을 저장해서 꺼내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세상입니다. 전 세계 정보의 양이 1조 기가바이트랍니다. 기술이 발달되면 한 컴퓨터 속에 세계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인간은 또 하나님으로부터 도덕적 형상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보다 제한된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이며, 참 지식과 의와 거룩 속에 존재하는 형상인데, 죄로 말미암아 상실되었으나 그리스도에 의해 회복된 것이다.
4) 행위 계약 속에 있는 인간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계약을 맺으셨다. 이 본래의 계약을 행위 계약이라고 부른다.“ 90p
(1) 행위 계약의 성경적 증명
a.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였다. (롬 5:12 - 21)
b. 호세아 6 : 7절에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라고 기록되었으니, 아담의 죄는 계약의 이반이라고 부를 수 있다.
(2) 행위 계약의 요소
a. 계약의 당사자
“삼위 일체 하나님과 인류의 대표자 되는 아담” 90p
b. 계약의 약속
"계약의 약속은 가장 고귀한 의미로, 생명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은 죽음의 가능성을 초월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신자들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게 된다.“ 91p
c. 계약의 조건
“절대적 순종이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지말라는 엄한 명령은 순수한 순종에 대한 시험이었던 것이다.” 91p
d. 계약의 형벌
“총괄적 의미로 여기서 형벌이란, 육체적, 영적, 영원적인 죽음인 것이다.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일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영혼의 분리를 말하는 것이다.” 91p
e. 계약의 상징
“생명나무가 하나의 상징이었다면, 이 계약의 유일한 상징이었을 것이다. 생명나무는 생명의 상징과 보증으로 지명된 듯하다.” 91p
생명나무는 영생의 상징이고, 지식의 나무는 판결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통해서 판결을 받는다는 의미도 있고 악이 들어옴으로서 선악의 대조가 생긴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3) 행위 계약의 유효성
이 행위 계약은 결국 첫 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말라 정녕 죽으리라”는 언약관계의 개념입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행위 계약이 완전 폐기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견해이다. 완전한 순종의 요구는 아직도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위하여 존속한다. 이런 인간들은 이러한 요구에 응하지 못했지만 그 조건은 유효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계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적 요구에 응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계약이 타락한 후 무력하게 되었으므로 생명의 길이 되지 못한다.” 91p
그러므로 은혜의 언약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더 이상 이 행위 계약의 지배를 받지 않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 행위 계약이 유효하게 살아 있기 때문에 그 계약을 따라서 심판을 받고 육체의 죽음은 물론이거니와 영혼의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 언약을 어긴 결과입니다.
질문 : 시편에 나오는 “셀라“의 뜻을 알고 싶습니다.
답 : ‘셀라’의 뜻은 확실하진 않지만 대게 동의할 수 있는게 ‘음을 높여 부르시오’라는 정도의 뜻일 것으로 봅니다. 셀라가 높다, 올라가다 라는 뜻입니다. 조바꿈이나...이것은 음악적 기호이기 때문에 시편을 읽을 때 읽지 않습니다. 빼고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