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교리반
녹취자 : 양일구
I. 본문해설
지금 시간에는 인간의 상태에 의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인간의 상태는 세 가지 상태가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원시 상태, 죄 아래 있는 인간, 은혜 언약 안에 있는 인간으로 분류합니다. 은혜 언약 안에 있는 인간도 아직도 은혜 언약 안에 있지만 중생하지 못한 인간도 있고, 중생한 인간도 있고, 중생한 인간 중에서도 영생에 상태에 들어간 인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인간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이야기한 인간들은 구원론 ( )여기서는 인간에 대해서 세 상태에 대해서만 다루고, 그 뒤에 적용되는 것은 구원론 ( )
A. 죄의 기원
“성경은 가르쳐 주기를 최초의 죄는 낙원에 있었던 아담과 하와의 범죄 결과로 세상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 최초의 죄는 뱀의 형태로 가장한 사탄의 시험에 의해 발생된 것인데, 사탄은 인간의 마음속에 의혹과 불신의 씨를 뿌렸던 것이다....선악과를 먹음은 그 자체가 지적인 면에서는 불신앙과 자만심을, 의지면에서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을, 감정면에서는 금지된 실과를 먹으려는 호기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92p
뱀을 종교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뱀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뱀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뱀은 도구였을 뿐이고, 죄는 어디에서 왔는지는 명백하게 이미 하늘 나라에서 범죄가 이루어지고 그 죄가 이 지상에까지 유입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창조 그 자체가 예전에 메카프나나치오의 교리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이 두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사경회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적인 분이 시기 때문에 당연히 천상 세계는 지적인 세계입니다. 지성적 세계입니다. 다시 말해 가시적 세계가 아니라 가지적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 코, 귀등 감각기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없습니다. 지상 나라는 감각으로 볼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계획이 신비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은 눈에 보입니다. 똑같이 천상 세계는 보이지 않는 가지적 세계이고, 지상 세계는 가시적 세계입니다.
그런 감각들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통치가 예수님이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듯이 뜻이 가지적 세계에서 이루어진 것 처럼 가시적 세계에서도 이루어지리라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님께서 가져오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미션입니다. 그러면 그런 하나님을 사단이 대적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연히 가지적 세계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또 가지적 세계에서 하나님과 대항했다면 가시적 세계를 내버려 두겠습니까, 너무나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똑같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는 가지적 세계를 통해서, 그 뜻이 가시적 세계에서 구현되기를 바랬다면은 사단도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천상으로부터의 죄가 지상으로까지 내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단은 “하나님같이 될 수 있다”고 인간을 유혹합니다. 이 유혹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은 이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동질이 형성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너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말은 나는 지금 비록 취업전전하는 신세지만 개발하면 대통령 같이 될 수 있는 동질의 잠재력이 있다고 제시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셔서 하나님과 가장 닮은 존재로 만드셨지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영원히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것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부단한 순종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상태를 한번에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마음 먹는 ( ) 굉장히 강한 유혹의 끌림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인간이 죄를 짓게 내버려 두시는가, 그것은 하나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안하시기로 하신 것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신 자유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음식점에 가면 인형이 인사하는 것을 본적있으실 것입니다. 들어갈 때 인사하고 나올 때 또 인사하고, 깜빡하고 다시 들어가면 또 같은 인사를 합니다. 그것은 기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경배를 받으시는 것은 그렇게 기계적으로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아주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이 타락을 하게 되는데, 최초의 죄는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은데에 있다. 이 실과의 먹음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금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죄된 것이다. 그 실과 자체는 존재론적인 특이성이 있다고 보면 안됩니다. 그냥 일반적인 것이고 하나님께서 실과에 의미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실과를 먹음은 인간이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적으로 복종시키지 아니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몇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지적인 면에서는 불신앙과 자만심, 의지적인 면에서는 욕망을, 감정적인 면에서는 금지된 실과를 먹으려는 호기심, 인격 전체가 개입되어서 총괄적으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의 특성입니다. 그 결과로 인간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전적으로 타락하여 죽음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을 때도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짓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도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듯이 자신의 육체 안에 무엇인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모두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금하신 것들을 명령하며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B. 죄의 본질
악과 죄라는 말을 혼동하는데, 죄는 뿌리이고, 악은 거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의 죄와 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서 ‘죄’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Sin'일 것 같지만 사실 ‘Sin’이 아닙니다. ‘Sin’은 실존법상의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Crime‘입니다. ‘Crime‘이 실존법적상의 법을 어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법 그러면 ’Criminal Law’입니다. 그렇다면 'Sin'과 ‘Crime‘‘은 무엇이 틀립니까, 'Sin'은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도덕적인 죄입니다. 정신과 마음에 연결된 죄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양심의 자유가 있어서 마음속으로 수 없이 사람을 죽여도 처벌 받지 않습니다. 그것이 양심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털 끝 하나라도 건드려서 피를 흘리게 했다면 그것은 ‘Crime‘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와 벌은 "Sin Punishment"가 아니라, “Crime Punishment’가 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Crime’이라고 하는 것은 죄라기 보다는 악이라고 합니다. 악은 무엇이냐하면, 이러한 모든 실존법상의 죄들이 결국은 Sin이라는 뿌리로부터 나와서 그것들이 질서를 해치면서 영향을 행사하는 모든 것을 악이라고 봅니다. 악이라는 말도 어느 의미에서 쓰여지는가에 따라 정의가 달라집니다. 악은 정신적인 것과 정신적인 뿌리로부터 나오는 결과, 그 결과가 선을 방해하고 악으로 기울게 될 때, 우리들이 이것을 가르켜 ‘Evil’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아우구스투누스(Augustinus)는 ‘악이란 그릇된 질서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마음의 악이라는 말입니다. 그 마음의 악이 실무로 옮겨지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들이 말하는 'Crime'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1) 죄는 특별 악이다
특별 악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악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2) 죄는 절대적 성질을 가진다.
“죄의 본질은 악의 일종, 즉 인간이 책임져야할 도덕적 악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로 말미암아 인간은 정죄하에 놓이게 된다.... 죄란 불법이며 율법에 대한 복종의 결여이며, 율법에 의해 요구되는 사랑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성경은 항상 죄를 율법과 관련해서 생각한다.” 95p
3) 죄는 하나님의 뜻에 관계된다.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이 없는 것입니다. 아노미아(Anomia)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규칙을 깔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대한 복종의 결여, 아는데 온전히 복종을 안하는 것입니다. 신적 율법에 의해 결정되는 사랑과는 반대되는 것 잘못된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4) 죄는 죄책과 오염을 내포한다.
그러면 여기에서 죄는 죄책과 오염을 내포한다고 그랬는데 여기서 죄책이라는 것과 오염은 무엇입니까, 첫 째로 죄란 인간으로 하여금 형벌에 빠트리게 하는 죄책, 죄에 대한 책임입니다. ‘길트’(guilt) 라고 하는데, 유죄라고 하면 ‘길티’(guilty)라고 합니다. 길트(guilt)는 죄에 대한 사법적 책임입니다. 그 다음에 오염은 부패성입니다.
예를 들어서 차를 몰고 가다가 딴 생각을 해서 남의 집 담벼락을 들이 받아 무너뜨렸습니다. 큰일났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인이 뛰어나오는데 같은 교회 교인입니다. 그래서 사정을 말하고 담장을 물어주겠다고 했는데, 집 주인은 괜찮다고 말합니다. 담벼락을 차로 박아서 벽이 무너지면 죄에 대한 책임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담장을 원래대로 원상복구해줘야 할 책임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집 주인이 그냥 보내줍니다. 죄책이 있었는데 죄책을 깨끗이 없애준 것입니다. 그것을 칭의입니다. 그런데 ( ) 오염입니다.
(칠판 설명) 성질상 부패성은 선천적입니다. 전적 타락, 전적 무능이 됩니다. 무능은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인간의 요구에 맞도록 선을 행하기에 무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선을 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 선은 하나님 앞에 도달할 수 있는 구원의 전제조건으로의 선이 아닙니다. 그 선을 우리들이 2차적 선이라고 부릅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선이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선입니다. 이것을 일반 은총에서 일반 은총의 효과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인간이 선을 행해서 하나님 앞에 이룰 수 있다고 보고, 또 통공사상이라고 해서 다른 성인들은 너무 공로가 많아서 자기를 구원하고도 남아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빌려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면죄부가 그런 이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주 많이 남은 것이 마리아입니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이 얻어가도 아직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을 내고 사야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적 타락은 인간이 속속들이 다 부패했다고 하는 깊이와 정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범위의 문제와 더 깊이 관련 됩니다. 그러면이 완벽하게 부패해서 아무것도 행할 수 없는가,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을 조건으로서 선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사실 인간에게는 나름대로 2차적인 선을 행할 수 있는 여지가 남습니다. 이것은 범위와 훨씬 더 관련이 큽니다. 부패한 성질이 지성, 의지, 감성의 모든 영혼과 정신 기능 속에 심지어는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사람이 결국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영혼에는 어두움이 드리우고 그로말미암아 지성은 눈멀고 영혼은 어두움에 차고, 그래서 ‘다크니스’가 됩니다. 영혼의 어두움이 지성으로 적용되고 그 다음에 감정으로 의지로 적용됩니다. 여기에서 ‘눈 멀음’으로 나타납니다. 그 다음에 감정은 충동에 사로잡히고 의지는 허무한 것에 굴복하게 됩니다. (인터넷 - 총신에서 기독교 학문과 교양이라는 시리즈의 강의 참고)
죄는 육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이 영혼과 몸이라고 하는 것은 일원론적으로 소통을 하게 되어있어서 인간이 절망하면 육체도 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면 육체에 그 고통의 흔적들이 남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체적으로 어디든지 부패성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런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 죄가 있으므로 부패한 성질을 갖고 태어난다“ 96p
제가 여러분들에게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공동체로 창조하시려고 하셨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세계와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의 교리)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의 몸으로 창조하시려고 하셨기 때문에 한 사람이 타락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이어지는 후손들 모두가 죄를 범하고 타락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5) 죄는 인간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신앙이 거하는 자리와 죄가 거하는 자리는 마음입니다. (마음 지킴이 책 참조) 그래서 신자의 마음은 전쟁터입니다. 은혜와 죄가 서로 점령지를 자치하려고 합니다. 불신앙은 어디에 자리잡습니까? 불신앙은 안믿겠다는 것입니다. 회의, 의심은 믿을려고 하는데 잘 안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앙이 더 나쁜 것입니다. 불신앙은 자신의 의지로 믿지 않기 위해 뜻을 세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중대한 의지적인 힘입니다. 안믿겠다는 강력한 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불신앙은 마음에 깃들고, 신앙도 마음에 깃들기 때문에 적군과 우군이 심하게 싸우는 것입니다. 사랑과 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좁은 땅덩어리 하나를 두고 치열하게 전쟁을 벌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또 다른 이름은 마음지킴이입니다. (마음 지킴이라는 교리를 듣고 인터넷을 뒤져서 ‘죄의 속임을 이기는 길‘이라는 시리즈를 참조)
마음 지킴은 후발적인 것입니다. 마음 지킴보다 먼저 되는 것은 생각지킴입니다. 죄가 들어오게 되면 사람이 바이러스 먹은 것 처럼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뒤엉키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침체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늘 즐겨하는 말이 “몰라요 골치아퍼 생각해본 적이 없어“라는 말을 합니다. (죄의 속임을 이기는 길 시리즈 강추, 은혜와 부패 라는 시리즈 참조 지성을 정복해 가는 방법) 죄는 인간의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6) 죄는 외부적 행위만은 아니다.
죄 자체도 총체적인 것입니다. 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대한 적의입니다. 적의란 ‘enmity to god’ ‘하나님과 원수 되나니’라고 할 때, 엔노티(enmity) 입니다. 적의라는 것은 적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죄는 반감과 대적으로 구분됩니다. ‘어벌젼’(aversion)은 지성과 감정에 관한 것이고, ‘오퍼지션’(opposition) 의지에 관한 것입니다. 반감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나보다 뛰어난 특징은 시비거리가 되고, 모든 것이 다 곡해되는 것입니다. 부모님 한테 반감을 느껴보면 아버지의 음성도 듣기 싫어집니다. 대적은 한 판 뜨자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은혜가 싫어서 죄가 융성하게 되면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이 싫은 것입니다. 교회도 싫고 내가 영적으로 죄가 꽉 차게 되면 은혜 받은 사람도 싫어집니다. 왜 싫으냐면 하나님 가까이 있기 때문에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침체에 빠졌을때 어울리는 친구와 은혜 받았을때의 친구가 다릅니다. 침체에 빠졋을때 친구는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사람입니다. 놀라운 것은 끼리끼리 만납니다. 한 사람이 시험에 들면 시험이 놀랍게 시험에 들도록 충분히 준비된 사람들을 찾아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부패하게 됩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한 적의이고, 그것은 반감과 대적입니다.
C. 인류 생활에 있어서의 죄
첫 째는 맹렬함입니다. 퍼벌씨입니다. (성화와 기도라는 책) 두 번째는 미친 기운 즉 광기입니다.(Madness) 미친 기운이란 이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미친 기운이 죄 속에 있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대담함입니다.(볼트네스)
1) 아담의 죄와 후손의 죄
a. 실제설
이것은 영혼의 선제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수지처럼 인간 본성이 함께 있었는데 아담이 죄를 지으면서 더러운 먹물이 들어와 저수지 전체를 더럽힌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그 인간 본성이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결론적으로 모든 인간이 타락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b. 대표설
개혁 신학의 대표적인 학설로서 이 견해에 의하면 아담은 후손과 이중적 계약의 관계를 갖는데, 언약의 머리로서의 관계와 자연적 출생으로서의 머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적 인생의 머리가 되었고, 언약의 머리로서 인생의 대표이었던 것입니다.
c. 간접 전가설
“이 이론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만, 아담의 죄책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관계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담의 부패는 그의 후손에게 전가되며, 이 부패성은 인간들을 개인적으로 죄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들은 그들이 아담 안에서 유죄하기 때문에 부패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부패하기 때문에 죄 된다는 것이다.” 97p
2) 원죄와 범죄
범죄는 자범죄 또는 실행죄라고 부릅니다. 죄책은 칭의를 통해서 해결하고 오염은 성화로 해결하다가 결국 완전 성화가 안되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죽음과 함께 성화를 완성하셔서 영화롭게 하셔서 영원히 당신과 교제를 누리며 살게 하시는 것이 구속 드라마의 완성입니다.
a. 원죄
“아담의 죄책은 우리에게 전가 되었다. 대표자로 범죄했기 때문에 우리가 죄된 인간이다.” 97p
영적 선이라는 것은 인간이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질만한 선을 행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며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인간이 거듭나고 거듭난 후에도 지속적인 주님의 중보를 통해서 은혜 안에서 살아갈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b. 본죄
“본죄란 말은 외부적 행위의 죄뿐 아니라, 원죄로 인해 일어나는 의식적인 죄된 생각, 욕망, 결심 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개인이 그의 고유의 성질과 경향으로부터 구별하여 행동한 죄이다. 원죄는 하나이지만, 본죄는 여럿이다. 본죄는 교만, 질투, 증오, 감각적 육욕, 악한 욕망과 같은 내적 생활의 죄이며, 사기, 도적, 살인, 간음 등과 같은 외적 생활의 죄이기도 하다.“ 98p
D. 은혜 계약 안에 있는 인간
구속 언약은 성부와 성자, 성령 사이에 영원 전부터 맺어진 언약입니다. 삼위일체 안에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언약이 맺어지고 그 맺어진 언약이 구체적으로 은혜언약이라는 형태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실현됩니다. 다시 설명하면 삼위 하나님이 영원 전에 인간이 타락하실 것을 아시고,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언약이 삼위 사이에 맺어지고 이 맺어진 언약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구체적인 구속의 계획으로 실행이 되는데 이것이 은혜 언약입니다.
1) 성령적 근거
“구속의 계획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속에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스도는 그가 세상에 오시기 전에 그에게 맺으신 계약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또 성부로부터 받은 부탁에 대해 거듭 거듭 언급하셨다.“ 104p
2) 구속 계약에 있어서 성자
"그리스도께서는 구속 계약의 머리가 되실 뿐 아니라, 보증이 되신다. 보증인은 타인의 법적 의무를 자신이 책임지는 인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짊어지셨고, 자기 백성을 위한 법적 요구에 응하셨다.“ 104p
3) 구속 계약의 요구와 약속
a. 요구
"성자 자신은 죄가 없지만 인간의 현재의 나약성을 책임지도록 성부께서 그에게 요구하셨다. 즉 성자는 선택자를 위해 형벌을 받으시고 영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법 아래 처하게 해야 하며, 또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자신의 공적을 자기 백성에게 적용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생활을 유지하게 해야 했다." 105p
b. 약속
이것은 성부와 성자 사이에서만 맺어진 언약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삼위가 모두 구속 계약의 당사자가 되십니다.
4) 은혜의 계약
은혜 계약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이 죄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고 나서 은혜 계약이 실행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방법이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토대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은혜 계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행위 언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만드신 다음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말라는 것이 조건이고 그렇게 되면 영생할 것이라는 것이 결과입니다. 그것이 책임과 의무가 함께 주어지는 것이고 행위를 가지고 담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열매를 보고 먹는 상상을 했어도 실제로 따먹지 않았다면 계약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에 많이 달려있다고 해서 행위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은혜 언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받을 만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방법이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서 은혜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1) 계약의 당사자들
a) 목적의 수단으로서의 계약
언약 계명을 잘 이해해야만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은혜 언약이있다라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스도를 중보로 해서 은혜 언약이 맺어집니다. 은헤 언약의 성립 자체가 구원의 축복을 하나님께서 누리게 해주시고 그것을 은혜로 받아들이기로 한 은혜, 즉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은 믿음이 됩니다. 은혜언약은 실제로 구원받은 사람보다 넓습니다. (칠판 설명 - 아브라함부터 그리스도까지 족보 그림을 참조하면 좋을 듯)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있고, 야곱과 에서도 있고, 이삭과 이스마엘도 있습니다. 이들은 조상인 아브라함의 시작으로 같은 씨에서 퍼져나온 자손들인데, 같은 씨에서 시작하지만 이삭과 이스마엘의 족보가 다르게 흘러 혈통들을 형성하고, 야곱과 에서의 족보 역시 같은 씨에서 나왔지만 그 이후의 다른 혈통을 형성합니다.
하나님이 외적으로 은혜 언약 안에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 언약 안에서 자손들은 많은 유익을 누립니다. 우선 이 안에 계시가 있습니다. 은혜 언약 안에서 이들이 진실하게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고 또 죄와 더불어 싸우려고 하면 은혜를 무한히 공급해주시는데, 문제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 책임에서 다른 길로 빠져나가는데 그것이 불신앙입니다. 언약의 파기자가 되어서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혈통적 이스라엘로 보자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었는데 이방인이었데 하나님의 은헤 언약의 혈통 속으로 구원을 받고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레아, 그는 햇 사람이었습니다. 히타이트 족속이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입니다. 갈렙은 그나스족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혈통이 문제가 아니라 신앙으로 이 사람들이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오고 불신앙으로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공동체 자체가 계속 신앙으로 들어오고 불신앙으로 빠져나가는 커다란 개방적인 구조를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서 아브라함 안에서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겠다는 언약들이 성취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의 닫혀진 공동체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열려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그는 은혜 언약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가 어린 아이의 상태에서 죽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 아이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상당히 성인이 되었는데도 믿음을 안받아들이고 죽었다면 구원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자녀만 있지 손자는 없자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해야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부모가 믿음이 있다고 해서 그 자녀가 부모의 믿음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은 없습니다. 각자가 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래서 그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야 됩니다.
(2) 은혜 계약의 약속과 요구
a. 은혜 계약의 약속
사실은 계약도 언약도 맞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말에 적절하게 표현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혼란이 생깁니다. 구약에서 제일 먼저 계약을 맺다는 단어가 나오는데 “카라트 베리트”(Karath Beriyth)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베리트”(Beriyth)는 언약입니다. 베리트(Beriyth)는 아마도 아카드어 '비르투'(birtu)에서 왔을 거라고 봅니다. 이것은 족쇄입니다. 다시 말해서 야유회 가서 두 사람 다리를 묶어서 뛰는 것 처럼 비르투(birtu)를 통해서 하나 이상의 사람이 공동운체가명 되는 것, 거기에서 비르투(birtu)라는 말이 왔을 거라도 보는 것입니다.
(칠판 설명) 고대 근동에 있는 “밧셀 트리티”(vassal treaty) 라고 해서 종주권 조약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왕이 있고, 모든 땅을 관리하기 어려워서 땅을 떼어내서 왕이 보기에 괜찮은 사람에게 그 떼어낸 땅의 영주로 삼습니다. 그것을 ‘밧셀’(vassal) 이라고 합니다. (suzerain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주가 되는 것을 봉신이라고 하고. 그 영주를 삼는 것을 종주라고 합니다. 종주가 봉신을 임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문서를 작성해서 언약을 맺습니다. 다시 말하면 왕이 작성해서 영주로 삼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약서를 3장을 작성합니다. 소를 두 동강이를 내서 벌려놓은 후, 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이 서서 신들을 부릅니다. 왜냐하면 증인이 되어달라는 의미로 행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어길 시에는 신들의 저주가 있을지어다 라며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갑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둘 중 한 사람이 계약을 어기면 짐승이 쪼개진 것 처럼 우리도 심판을 받아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지나가서 계약서의 한 장은 갑과 을이 가져가고, 한 장은 신당에다 보관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15세기에 있었던 고대 근동의 언약 체계의식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셔도 아브라함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났던 신들은 너절하고 신실성이 없던 신들이었습니다. 개 때같이 몰려다니면서 잿밥이나 뜯어먹는 신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무리 하나님이 당신을 믿어보라고 말씀하셔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쪼개진 짐승의 가운데를 지나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이냐하면 하나님이 언약을 안 지키시면 스스로 쪼개져 죽겠다는 의미입니다. 말도 안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인간의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가르쳐주십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언약이 이런 그림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은 항상 죽음에 이르는 약속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음으로 이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나가야 하는데 그리스도가 대신 지나가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대신 고난을 받으셔서 우리를 그렇게 구원하신 것입니다.
b. 은혜 계약의 약속과 요구
이런 언약으니 성격은 주권적 성격이 있습니다. 권위있게 종주가 불러 봉신을 하라는 것은 주권적인 것입니다. 이런 언약의 형태를 맺음으로서 의무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 측면이 함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 언약 개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제네바를 비롯한 칼빈과 영국으로 들어가서는 인간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그래서 자기네들을 스스로 ‘카비넌터’(ovenanter) 언약도, 즉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언약도라고 불렀고 영국에서는 청교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고 그래서 이 언약 관계를 폐기할 수 없다고 하며 수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제 시대 때 55명이 설교를 하고 50명이 순교합니다. 그러나 50명 모두가 순교라고 말하기는 힘들고 순교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2만명이 순교합니다. 언약 사상의 힘이라는 것이 굉장한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한 없는 은혜와 특권을 누리며 살지만 우리에게는 영광스러운 의무가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하나님과의 맹약이 있습니다. 이것을 배반하면 우리는 정말 구원받은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언약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언약 사상의 힘입니다.
맨디티 크라인이라는 학자는 왕이 영주로 불러서 밧셀(vassal)로 해서 종주권 조약을 맺은 것 처럼 처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위치가 그러했다고 말합니다. 인간에게 처음 맡겨주셔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섭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봉신이 되었으면 충실하게 상황의 뜻을 받들어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도록 창조의 목적을 따라 봉사했어야 하는데 자기가 쥐위에 오르자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것을 인간의 범죄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언약을 파기한 것입니다. 파기한 인간에게 돌아가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렇게 형벌 받아야 될 인간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밖혀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방법입니다. 구약의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의 사건인 십자가를 향해 달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는 최대의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서건들이 한 없이 달음질 치면서 십자가로 달려오고, 십자가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미래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3) 은혜 계약의 특성
a. 은혜로운 계약이다.
b. 영원한 계약이다.
c. 특수한 계약이다.
d. 단일한 계약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할 때 어떤 행동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라고 할 때 안하면 개패듯 패면 공포에 사로잡혀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중국이나 북한 아이들) 그러면 미친듯이 공부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공부를 하긴 하지만 이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다른 방법으로 설득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감화를 주어서 공부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은혜로 설득하십니다.
계약이 짤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계약을 통해서 당신의 성품과 경륜을 보여주시지만, 그 시대 시대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약이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단적으로 짤라버리면 세대주의가 되어버립니다. 세대주의에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 이 때 )에만 해당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e. 유원적 계약이다. 테스트먼트(Testament)가 유원적이라는 뜻입니다.
f. 조건적인 동시에 무조건적인 계약이다.
4) 은혜 언약 안에 있는 회원
a. 계약 안에 있는 성인
b. 계약 안에 있는 신자의 자녀들
계약 아래 있지만 그들이 진실로 은혜 언약 안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을 믿고 그 다음에 그 계약을 따라 충실하게 살아가는 조건을 이행해야합니다. 그래서 입교라고 하는 것이 부모 때문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c. 계약 안에 있는 비 중생자들
중생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도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고, 믿음의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도 아직 중생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엔ㄴ 비중생자로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없기에 세례도 받고 의무도 행할 것이지만, 그들이 만약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믿음을 갖고 언약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그런 모든 외적인 징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약의 파괴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의무라는 것을 여기서는 강조합니다. 교회 나오는데 은혜가 되고, 드리나마나합니다. 그러다가 교회를 안갑니다. 가봐야 소용없기에 교회를 안가기로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막보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언약 관계를 깨트리는 일종의 행동이 됩니다. 자신이 왜 잘못되었나를 생각하고 은혜를 받기위해 개선되기 위해서 노력해야합니다.
5) 계약의 시대적 경륜
a. 계약의 최초 계시
b. 노아와의 언약
무지개 언약이라고 하는데 다시는 홍수로 사람들을 멸하지 않을 것이며 추위와 더위와 추수등등의 축복이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 ) 지탱하게 하셔서 인간들이 생명을 부지하고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은혜와 구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형벌의 효과를 경감시켜 주는 것입니다.
c. 아브라함과의 언약
할례를 행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8일만에 고추의 표피를 깝니다. 의학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태어난지 8일 정도가 바이타민 케이가 가장 최고도로 나와서 할례를 행하는 것이 적합한 때라고 했습니다. 써컴이라고 해서 아이 낳자마자 산부인과에서 써컴을 하시겠냐고 묻습니다. 거기에서 굉장히 많은 이물질이 생겨나고 ( ) 원인이 됩니다. 그것은 교육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쉬하면서 자신의 고추를 보면서 자신의 아덴티티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에 대한 교육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d. 시내산에서의 계약
시내산에서의 계약의 성격은 복합적입니다. 행위언약적인 요소와 은혜언약적인 요소가 같이 들어가 있습니다. (죄와 은혜의 지배 중 각주 속에서 도표 확인)
e. 신약의 새 계약
신약의 새 계약은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해서 이루어진 계약입니다. 이 계약을 외형적으로 볼 때는 교회에 이미 출석하고 하나님을 믿은 경건한 가정들의 후손들이 이 언약 속에 들어오지만 그러나 누가 이 언약 속에 들어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될 때 이 언약의 성질은 굉장히 영적이고 신약에서 이야기 하는 영적이고 충만한 복이고 또 혈통과는 상관없이 어떤 계층의 사람들에게나 주님을 믿고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도하고 살아가는 것이 요채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