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교리반
녹취자 : 양일구
I. 본문해설
벌코프의 조직신학에서 배우는 것들은 양도 할 수 없는 선에서 알아야 될 국민 상식 수준의 구원론만 가르켜줍니다. 벌코프는 암기해야 될 내용들이고,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은 반복적으로 읽기를 권합니다. 암기되지 않은 지식은 끈 떨어진 지식과 같습니다. “우리는 공부한다 그러므로 공부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과 보편적 인간과 개별적 인간, 나를 배우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이 모든 지식은 그리스도를 배움으로 가장 잘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해 배우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A. 회심과 믿음
“중생에서 비롯된 변화가 의식적인 생활 가운데서 나타날 때, 우리는 회심이라고 본다”
회심은 중생한 영혼의 최초의 움직임입니다. 그 움직임이 의식 속에서 파악되는 것입니다.
1) 회심에 대한 일반적 고찰
시험문제
“회심이란 중생받은 자로 하여금 그들의 의식적 생활 가운데서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정의를 보면 하나님이 회심의 창시자이고, 중생은 새 생활의 의식적인 변화를 통하여 저절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특별한 역사를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에 있어서는 하나님만 역사하시고 인간은 피동적인 대 반하여 회심에 있어서는 인간은 협력하도록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인간은 다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행하는 것 뿐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 기여하는 것이 있습니까, 엄마가 힘 줘서 낳는 것이지, 태어나는 데 이바지 하는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생도 죽어있는 영혼 그 자체가 살아나게 하는데 이바지 할 수 없습니다. 중생은 일반적 역사, 회심은 현렵적 역사입니다.
“회심은 중생과 같이 순간적인 변화이지, 성화와 같은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다”
어느 한 순간에 분명하게 회심하게 됩니다,. 이 회심이 대부분 어른들의 경우에는 중생과 회심이 일치합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중생과 회심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심의 경험이 있는가, 어느 날, 언제 회심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심한 결과가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 마음 속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중생하고 회심하게 되면 존재론적인 변화, 즉 자기를 사랑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또 인식론적인 변화, 즉 하나님의 아름다움, 신비를 지각할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록 사랑은 점점 더 깊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중생과는 달리 회심은 인간의 무의식적 생활에서 일어난다기 보다는 오히려 의식적인 생활 가운데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회심은 모든 성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회심이 각 사람의 생활에서 현저한 전환점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회심의 경험이 외적으로 굉장히 강렬해도 그것이 참다운 회심이 아닐 수 있고, 외적으로 강열하지 않은 데도 참다운 회심일 수 있다. 회심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 사람에게 중생하고 회심한 증거가 있는가, 존재론적, 인식론적인 변화가 있는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것에 다 있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이 액기스 처럼 뭉쳐있는 곳이 성경의 계시 속입니다. 중생한 자의 뚜렷한 특징은 성경이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말씀의 미각을 회복하는 길“ 시리즈 참조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세상을 자꾸 사랑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진짜 그것이 사랑할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는 상관없이, 자기가 아름답다고 느끼고 끌리면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선한 것에 끌립니까, 아름다운 것에 끌립니까, 아름다운 것에 끌립니다.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선한 것입니까, 악한것입니까, 그런데 공부 안하고 게임을 하는 것은 게임이 이쁘니까 끌리는 것입니다. 공부 안하고 맨날 게임만 하면 나중에 몰고올 결과가 당시에는 안보입니다. 그런 것들을 벗어나는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는 것이 신앙의 지혜입니다.
“마음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 일시적인 회심도 있다.”
예화
신대원 3학년 때 농촌 봉사를 갔습니다. 그 때 저는 어린이 사역에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 농촌 지역에서는 아이들을 전도해 데리고 와서 성경학교를 해야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아이들을 어디가서 데려올수 있냐고 물으니, 아이들을 데려오려면 3시간은 걸릴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설마’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3시간이 걸렸습니다. 가는데 1시간 30분, 오는데 1시간 30분, 봉고도 없이 걸어서 아이들을 50명정도 데리고 왔습니다. 시골 예배당 마루에 아이들을 동그랗게 둘러 앉혀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다음에 기도회를 하는데, 성령님이 은혜를 주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찬송을 부른 다음에 기도를 하는 순간 아이들이 회개를 하면서 회심을 하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청년들이 함께 울며 기도했는데, 그 아이들 중에는 절대 회심하지 않았던 뺀질뺀질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기도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드디어 이 아이가 회심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 끝나고 저녁때가 되어서 다 함께 모여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성령님이 은혜를 주셔서 뜨거운 기도회를 한 것과 아이들이 회심한 것에 대해 간증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오늘 기도회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묻자, 오늘 정말 은혜가 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듣고 싶은 오늘 주님을 만나 회심했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왜 회개했나? 왜 눈물을 흘렸나? 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시골 아이들이 학용품도 없이 걸어다니는 것이 너무 불쌍해서 울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누가 그래서 울었을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외적인 증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증거는 될 수 있지만, 완벽한 증거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경렬하게 회개의 경험이 있어도 두 가지 변화가 도입되지 않은 사람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고, 오히려 그런 변화가 별로 없어도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 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들어오게 될 때, 그 때 그 사람이 진짜 회심한 사람입니다.
“회심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반복을 인정하지 않지만, 이 반복이란 회심의 반복이 아니라, 흐려졌던 새생명의 회복적 활동을 말한다. 소극적 회개와 적극적 회개가 있다. ”
좁은 의미의 회심은 구원에 이르는 최초의 회개와 믿음이고, 넓은 의미의 회심은 그러한 회심의 경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2) 회심의 소극적 요소인 회개
“회개란 과거를 돌아보는 것으로서 죄인의 의식적인 생활 가운데서 죄를 쫒아버림으로 일어나는 변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1) 회개의 요소
a. 지적 요소
“이것은 과거의 생활이 자신의 비행과 추행, 무력함을 수반한 죄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b. 감정적 요소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대항하여 슬퍼하는 것이다”
c. 의지적 요소
“이것은 목적의 변화에서 일어나는 요소인데, 죄로부터의 내적인 전환과 이런 죄를 용서받고 씻어버리려는 성향을 가르킨다”
지, 정, 의 전인격적인 변화입니다. 누가 물건을 훔쳤다고 하면, 훔친 물건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지성입니다. 내가 이런 짓을 하다니 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감정입니다. 다시 돌려드려야지 하는 것은 의지입니다. 그 안에는 똑같이 죄에 대한 인식도 똑같이 생겨날 것이고,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날 것이고, 죄에 항거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래서 회개에는 반드시 열매가 뒤따릅니다.
(2) 로마 가톨릭의 개념
“로마 가톨릭은 죄에 대해 외적 관념을 가지며 회개는 선척전 죄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외적 형벌에 대한 공포로부터 일어나는 것에 불과한 개인적 범죄에 대한 슬픔이며,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신부에게 말하는 고백이며, 금식수행, 성지순례,
요즘 성지순례는 성지순례가 아니라 성지여행입니다. 예전에는 이교도들의 핍박을 견디며 목숨을 거는 말그대로 성지순례였습니다만 요즘은 좋은 호텔에서 스파나 하고 관광용품도 사고, 편하게 보고 오는 여행입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은 회개의 관념을 자기의 죄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털어버리는 것입니다. 죄가 가지고 있는 영적 특성 갖은 것들을 이길 수 없게 됩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영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서, 세계의 구원과 창조와 구원과 구속과 완성을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을 바라보는 개념이 아닙니다. 존 오웬의 신앙이라는 책에 보면, 죄의 형이상학이라는 ( )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이해하면 교리 전체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3) 회심의 적극적 요소인 믿음의 종류
(1) 믿음의 종류
a. 역사적 믿음
“이 신앙은 아무런 실제적, 도덕적, 영적 반응없이 진리를 지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본다. 이 신앙은 중생한 자에게는 뿌리 밖지 못하는 것으로 양심의 자극과 감정의 흥분으로 종교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시적이라 칭하는 이유는 영속적 성질이 없음므로 시련과 박해시에는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다운 구원이라고 볼 수 없고, 마귀도 가질 수 있는 종류의 믿음입니다.
b. 일시적 믿음
c.. 이적적 믿음
“성경은 또한 이적적인 믿음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이 신앙은 이적이 자기에 의해 두는 자신을 위하여 행해질 수 있다는 개인적 확신이다. 이 믿음은 구원적 신앙을 수반할 수도 있고, 수반 하지 않을 수 있다.”
d. 구원적 믿음
“성경은 구원적 신앙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구원적 믿음의 필연성을 강조한다. 이 신앙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죄의 자리는 마음이며, 또한 신앙의 자리 역시 마음이며, 사랑의 자리도 마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 같이 함께 마음에 있을 수도 있고 안그럴 수도 있다. “마음지킴의 교리 책이나 테잎 참고” 마음 지킴의 교리에서 보면, 우리의 마음이 치열한 전쟁터라고 나온다. 죄도 우리의 마음을 정렴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사랑도 우리의 마음을 정렴하려고 하며 치열한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신자의 또 다른 별명은 마음지킴이입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들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잠언 4: 23
(2) 믿음의 요소
“우리는 진정한 구원적 믿음의 요소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지, 정, 의를 모두 동반한다.”
a. 지적 요소(지식)
b. 감정적 요소 (찬동)
c. 의지적 요소
“이 요소는 구원받는 요소의 으뜸가는 요소이다. 영적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신뢰인데, 이 시뢰는 그리스도에게 범죄한 영혼의 항복을 포함하는 것이다. 마지막 분석에 의하면 구원받는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구원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신앙의 수행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복적으로 권고받는 인간의 활동이다.”
(3) 믿음의 확신
믿음의 확신이 있어야만 구원을 받는 것인가, 아니면 확신이 없어도 상관이 없는 것인가, 여러분은 어느 것이 맞다고 보십니까,
“감리교에서는 믿은 자는 자기가 하나님 자녀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그가 궁극적 구원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은혜에서 떨어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올바른 견해는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포함하는 진정한 믿음이란 자연히 안정과 보호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 확신은 영구한 의식적 소유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충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의와 불안정의 동요받을지도 모름으로 확신을 ( ) 기도함으로서, 명상함으로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이 그 확신에 달린 것은 아니지만, 확신이 필요없는 것은 아닙니다.
B. 칭의
1)칭의의 성질과 요소
“칭의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 근거해서 죄인을 외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칭의는 중생이나 회심이나 성화와 같이 갱신의 행위나 과정이 아니므로, 죄인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신분에 영향을 준다” - 171p
“칭의는 몇 가지 특별한 점에서 성화와 차이가 있다. 첫 째 칭의는 죄인 밖에서 하나님 법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서 죄책을 제거해주며, 단번에 영원히 완성되는 행위이다. 둘 째 성화는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죄의 오염을 제거해주며 계속적으로 일생을 거쳐 일어나는 과정이다.”
(1) 칭의의 성질
인간에게는 원죄와 좌범죄, 즉 실행죄가 있습니다. 원죄는 실행죄의 뿌리가 됩니다. 원죄는 물려받은 죄입니다. 이 원죄는 죄책과 오염이 있는데, 죄책은 죄에 대한 사법적 책임입니다. 오염은 선천적 부패성입니다. 죄책은 칭의에 의해서 단번에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차를 몰고 가다가 남의 집 담벼락을 들이받았습니다. 주인이 나왔는데, 같은 교회 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물어주려고 하는데, 주인이 하는 말이, 어차피 벽을 허물고 새로 지을려고 했다면서 그냥 가라고 합니다. 이것이 죄책이 해결이 되는 칭의입니다. 그런데 무너진 담장도 그냥 있고, 찌그러진 차도 그냥 있습니다. 그것은 오염입니다. 이 오염은 성화에 의해서 해결이 됩니다. 죄책은 순간에 해결이 되고, 오염은 일생에 거쳐서 점진적으로 해결이 되어 갑니다.
(2) 칭의의 요소
a. 소극적 요소 (그리스도에 의에 근거한 죄의 용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죄를 한꺼번에 용서하신 것이기 때문에 칭의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과거의 죄는 지은 죄고, 현재의 죄는 짓고 있고, 미래의 죄는 무슨 죄를 지을지 모른다는 시간과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시간의 전개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죄는 하나님 시각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없는 영원의 시각에서 모두 한 번에 용서되는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용서해준다고 하지만, 자기가 지은 죄 하나하나를 거명해서 용서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면서 용서받게 됩니다. 또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다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하나님의 영원의 시각에서 한번에 용서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의는 넓은 의미, 좁은 의미도 없고, 일회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죄의 용서를 위해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죄를 저지릅니다. 그 죄도 논리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다 용서해주신 죄입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이유는 멸망 받을까봐 두려워서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남아 있는 죄책의 인식을 떨쳐버리고 용서받지 못했다는 분리의 감정을 없애고, 사제의 확신에 대한 위안을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 때 그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백성들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b. 적극적인 요소 (칭의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양자가 됨)
“칭의로 인해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그의 자녀로 삼으신다. 즉 하나님은 신자들을 자녀의 위치에 두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상속권은 물론 자녀의 모든 권세를 부여하신다. 신자들의 이러한 법적 아들됨은 중생과 성화를 통한 도덕적 아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법적으로 자녀가 되어도, 실제로 자녀답게 되는 것은 즉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왕이 아들이 없어서 왕자하고 똑같은 아이를 왕자로 들였다고 하더라도 왕자다운 품위를 갖추는데는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그렇게 왕의 아들로서 입적되는 것이 양자됨이라면, 왕의 아들답게 되는 것은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도덕적인 아들됨으로 나아갈 때 가능해집니다.
2) 칭의의 시간
사중적 칭의라고 볼 수 있는데, 영원으로부터 오는 칭의, 그리스도 부활로 인한 칭의, 믿음에 의한 칭의, 마지막 심판의 봉적 칭의로 볼 수 있습니다.
(1) 영원으로부터 오는 칭의
“관련적인 의미로 이 칭의를 설명해 보면, 그리스도의의 의는 구속의 뜻으로 신자들에게 이미 설명된 것임으로, 영원으로부터 왔다고 말할지 모르나, 이 설명은 죄인의 칭의에 대한 성경적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뜻 가운데 작정된 것과 역사의 과정에서 실현되는 결과를 구병해야만 한다.”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 안에서 선택되었기 때문에 이미 영원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칭함을 해주셨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칭의라고 말할 때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이 시간속에서 죄인들을 의롭다 칭하시는 것으로 구원 계획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영원으로부터 오는 칭의는 수용하지 않고, 그리스도 부활로 인한 칭의, 믿음에 의한 칭의를 수용합니다.
(2) 그리스도 부활로 인한 칭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한 칭의는 몇 가지이유가 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대한 칭의였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가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칭의는 보편적이고 순수한 객관적 처사임으로 죄인에 대한 개인의 칭의는 아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모든 구원받는 사람들을 의롭다 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그런 점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칭의를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개인에 대한 구원론적인 칭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부활로 인한 칭의도 칭의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가장 고유한 의미의 칭의는 이신칭의입니다.
(3) 믿음에 의한 칭의
“성경은 죄인의 칭에 대해 말할 때,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관적으로 개인적으로 적용하고 전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말은 칭의란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얻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칭의의 도구요, 칭의가 전용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를 자신에게 적용하는데, 이 의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받는다. 인간은 그 믿음이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한 의로 여겨진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은 자신의 본래 의나 자신의 믿음을 근거해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가톨릭과 알미니안파의 잘못을 경계하여야 한다. 인간 자신의 의나 믿음은 인간의 칭의의 근거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자신의 의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 속에서만 발견된다.”
진정한 의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 앞에 시간 속에서 의롭다 인정함을 받게 되는 구원에 이르게 되는 칭의가 가장 고유한 의미의 칭의입니다.
3) 칭의 교리에 대한 반대설
a. “어떤 학자는 인간이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해서 의롭다함을 받는다면, 인간은 은혜로 구원받는 거싱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칭의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역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선물과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 칭하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이다.”
b. “어떤 학자는 죄인을 의롭다 선언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무가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자신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지 않으시고, 죄인들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게 되었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우리를 위해 지불하신 죄 값 때문에 우리들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의 옷을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c. “어떤 학자들은 칭의교리가 도덕생활을 무관심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만일 죄인들이 행위와는 상관없이 의롭다함을 받는다면 왜 죄인들이 개인적인 경건의 마음을 써야만 하는가, 그러나 칭의는 생명력있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기초하므로 이것은 진정 경건생활을 위한 확실한 보증이 된다. 그리스도와 실제로 생명력 있는 연합을 이룩한 자는 도덕적 면에서 무관심할 리가 없다.”
이것은 잘못 적용을 하게 되면 이런 주장이 나옵니다. 거져 구원을 얻었다고 한다면 더 감격해서 하나님게 순종하며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촉진하는 방법이 됩니다. 진정한 회심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따라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