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할 때
“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대하 7:1-3)
녹취자: 배미라
제가 사실 웬만하면 외부의 강의를 잘 안 나가는데 개척교회에 관한 거라 그래서 제가 개척을 직접 해본 사람으로서 ‘이런 기회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제가 강의에 응했습니다. 마침 시간을 비우고 응했는데 제가 여러분들에게 원고를 또 본부에서 달라고 해서 원고를 썼는데 원고는 집에서 읽어보시고, 오늘은 그 원고에 메이지 않고 제가 개척을 해 본 선배로서 여러분들 어떤 분이 오셨느냐 물었더니 개척을 하시겠는 분, 지금 막 시작하신 분, 개척한지 얼마 안 된 분 이렇게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는 내가 꼭 가서 내가 개척을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딱 올해 30년을 열린 교회를 목회를 하였습니다. 지하실에서 이거 1/3 크기만 한 예배당을 얻어서 7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앞에 두 개의 교회가 교회를 하다가 안 돼서 떠나간 자리에서 우리가 교회를 한 것입니다. 얼마나 열악했는지, 완전 지하실이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항상 물이 나와서 새벽기도 때면 물이 흥건해져서 신발을 벗고 들어와서 예배를 드려야 될 정도의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한 일을 한 것이었습니다. 전기에 감전되면 다 죽는 것인데 거길 또 철벅거리면서 온 교인이나 올라가서 또 그거를 설교한 사람이나 똑같았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교회를 30년을 해오고 여기까지 와보니까 여러분들을 뵈올 때 참 안됐다 그런 모습들이 보입니다. 어떤 면에서 ‘안 됐다’라는 생각이 드냐 하면 우선 첫째, 시기를 좀 잘 못 타고났다. 제가 개척하던 30년 전에만 교회를 했어도 그때는 열 개의 교회가 세워지면 일곱 개 교회는 그래도 됐습니다. 거기서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리면 10개의 교회를 세우면 10개의 교회 모두 다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0개의 교회를 세우면 3개 정도 생존하고 나머지 일곱 교회는 그냥 묻어버리는 그런 시대가 된 가운데 여러분들이 태어났고 또 하나는 뭐냐면 시대상이 그때 만해도 그래도 우리나라가 아직 경제적으로 이 정도로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종교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원래 선교학적으로 나라가 부유해지게 되면 종교에 대한 갈망들이 세속적인 것으로 대치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어가는 시대에 여러분이 아마 보더라도 주위에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일 년 내에 50명 모이고 이년 내에 100명이 되고 삼 년 내에 200명이 되고 한 교회를 여러분도 아마 찾기가 힘들 것입니다. 없지는 않은데 아주 극히 예외적이고 그거는 저의 제자들이 교회를 개척한 것을 보더라도 너무 명백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이 안됐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지금 교회를 개척해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느냐, 교회를 개척해서 200명을 넘는 교회를 보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개척한 후 10년 안에 200명이 넘는 교회 너무 힘듭니다. 인구가 급속하게 줄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15년 전만 해도 상반기에 유아세례를 50명 정도 주고 하반기에 50명 줬습니다. 올해 13명 줬습니다. 점점 유아실이 아이기고 교인이 코로나 나기 전까지 저희가 장년 교인이 3300명이 모였는데, 2400명 모일 때 청년이 850명이었습니다. 지금은 3300명이었을 때에 650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니까 비율로 따진다면 1200명 쯤 모여야지만 정상입니다. 그만큼 인구가 청년인구부터 현저하게 줄게 되고, 그다음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기독교 자체에 대해 회의를 품은 사람들도 많이 있고 이렇게 되면서 옛날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면 점에서 여러분들에게 참 어려운 시대에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축하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개척교회를 한다는 것만큼 보람된 일이 없습니다. 이정도 전투력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개척교회를 한 것만큼 보람된 건 없습니다. 문제는 그 교회가 되기만 하면, 안 될 때는 우리 개척할 때만 해도 지하실이기는 하지만 1500만 원 제 저금통장에서 뽑아서 보증금을 내고 60만 원 월세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60만 원 주고 얻을 수 있는 예배당이 없습니다. 왜냐면 상가 2~3층만 얻어도 한 달에 400만 원, 500만 원 월세를 내라고 합니다. 이게 결국은 감당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교회를 더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람된 것은 개척교회를 해서 목회를 잘해서 교회가 서기만 하면 사실 그것보다 더 보람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하나씩 살펴봅시다. 개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사람들은 장소를 어디에다 정할 것인가, 어느 신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가, 그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공간을 가질 것인가 너무 중요합니다. 소위 이야기하는 미국에서 이야기하는 place 장소, preach설교, fee parking lot주차장, 이 세 개를 업계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꼽을 정도로 그렇게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데, 그것보다 더, 성경으로 돌아가서 볼 때 진짜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설교 말씀을 가진 목회자들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진리를 위해 있는 것이지 진리가 교회를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개척을 한다고 할 때 간과하는 가장 커다란 것이 뭐냐 하면 개척하겠다는 계획은 있는데 개척을 하지 않고서는 개척을 해서 토해내지 않고는 안 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마음 안에서 불타고 있는가 그거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결국은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장소를 좋은 데를 얻고 사람들이 모인다 –모이지도 않겠지만- 모인다고 하더라도 결국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진리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변화되는 경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교회를 계속 나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오래된 교회야 부모님이 다니고 핏줄 인연으로 엮여졌다고 하지만 개척교회에 사실 누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런데 목회자들이 가장 간과하는 건 개척을 하겠다고 하는데 피 끓는 설교가 마음 안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계획은 있는데 피 끓는 설교가 없으니까 결국은 모든 것이 마치 사업을 경영하고 계획하고 경영하듯이 그런 방식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결코 그렇게 서지 않습니다.
제가 30년을 설교를 했는데, 요즘은 나이도 되고 은퇴할 때도 됐고 하니까, 그리고 하루에 일주일에 평균 40분에서 길면 90분 되는 설교를 1, 2, 3, 4부를 4번을 해야 됩니다. 내가 부목사들 안 맡깁니다. 하다 보니까 이젠 그런데다 오후까지 뭘 해달라고 해서 이게 수요일이 되어도 체력이 회복이 지금은 안됩니다. 그래서 온전히 주일에만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건강할 때 소원이 병원에 한 번 입원해보는 것이 50대 초반까지 소원이었습니다. 그렇게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50대 후반에 병원에 입원하기 시작해서 11년동안 12번을 입원하고 10번을 수술을 했습니다. 해마다 수술을 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까 몸무게가 20kg가까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힘도 너무 없어지고. 이제 한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수요예배 설교도 부목사들한테 맡기고, 그리고 우리는 금요예배는 교구별로 드리니까 그렇게 하고 이러는데 그전까지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요일까지는 모두 제가 설교 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설교를 하지 않으면서 제가 저 밑에 앉아있는 날은 아주 예외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30년 동안에 강단에서 공식적으로 설교하고 강의한 개수가 7800회입니다. 그러니까 30으로 나누면 결국은 260회 정도 1년에 한 거니까 그러면 거의 매일 하다시피 한 것입니다. 그렇게 엄청난 양을 설교를 하는데 기운이 없어지는데 그렇게 못합니다. 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가장 개척한 것에 대해서 행복감을 느낄 때가 언제냐면 월급 받을 사례금 들어오는 날이 아니라 내가 설교할 교회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내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이 불덩어리를 나누어주면 그걸 먹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저는 감사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최고의 설교 준비는 뭐냐 하면 자기가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그 설교를 하나님께 성경을 읽으면서 직접 듣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자기가 깨어지고 변화되고 눈물을 흘리고 은혜를 받고 그 말씀 앞에서 뒹굴다가 온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설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헬므트 퀼르케라는 독일의 신학자가 1940년대 경에 자유주의가 밀려오는 시대인데 그가 목사와 설교에 대해서 강의를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 것은 일주일 동안 그 말씀과 더불어 피 흘리기까지 몸부림치면서 살아왔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 어느 교회를 가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요즘 교인들이 너무나 안일하고 편안한 교회만 찾아간다 그런 이야기로 제가 좀 교인들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어렸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의 기억인데 저는 실제로 천막을 쳐놓고 가마니를 깔고 예배드리는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진짜 가면 이런 의자가 없습니다. 가마니를 쭉 깔았습니다. 강대에는 사과 궤짝을 한두 개정도 엎어 놓고 풍금 그런 거 없습니다. 그 후에 다 들어 온 거지 풍금도 없었습니다. 박수 치면서 옛날에 순복음 교회처럼 그렇게 찬송을 부르고 목사님이 올라가서 설교하는 옛날 교회를 다녀봤지만 어린 나이에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뭐냐하면 어느 교회를 가든지 간에 설교하는 설교자-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목회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잊혀지지 않는 것은 설교시간에 보이는 설교자의 목의 핏줄 이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든지 설교를 하는데 핏대를 세우면서 핏줄이 굵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리를 고래고래 외치면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게 1960년대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은 개척했을 때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제가 교수 생활도 하고 공부는 나름대로 꽤 했지만 부족 했을텐데 비교해보면 지금 설교 준비하는 시간은 그때 설교 준비하는 시간의 3배입니다. 설교 원고도 훨씬 꼼꼼해져서 지금은 거의 그냥 절반 가까이 원고를 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그 당시에는 안 그랬습니다. 간단하게 메모해 와가지고 칼빈이 초기에 설교 했던 것처럼 그렇게 열렬히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지하실 교회에서 7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다음날이 월요일이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나가야 됩니다. 담임 목회자가 아닐 때는 새벽기도가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새벽기도 가는데 아침에 신발을 신다가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입니다. 학교 교수 생활을 너무 과로해서입니다. 그래도 내가 쓰러져도 내가 교회를 가야지 그러고 갔는데, 7명이 주일날 개척을 했는데 월요일날 가니까 나 혼자 나왔거나 몇 명 나왔겠지 그러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8명이 새벽기도를 드리려고 앉아있는 것입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게 목회라는 게 뒤로 물러설 생각을 하면 안되는구나. 그리고 저는 월요일 날 지금도 월요일 날 휴무 안 합니다. 월요일날 쉰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30년 하면서 안식년을 간 것이 7개월 한 번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씩은 제가 한 3번 간 것 같습니다. 저는 교회를 제가 떠나면 큰일 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은 떠나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집착이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살아온 게 그런 거니까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사는 대로 살다가 내년이고 후년이고 은퇴하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설교를 하는데 예배 시간에 주일날 교인들이 조금씩 조금씩 모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설교를 합니다. 그러면 시끄러워서 설교를 계속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교인들이 계속 소리 내서 울었습니다. 그래서 ‘울지마요, 정신 차리고 듣는 거부터 들어라. 당신들이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내가 설교를 끝까지 못하지 않느냐? 소리내지 말아라.’ 입으로 틀어막고 이제 흐느끼면서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12월에 개척했는데 3월에 35명이 모였습니다. 7명이 개척을 했는데 그때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피를 토하듯이 설교하면 1년이면 400명이야 안 모이겠나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웬걸 1년을 막 열심히 했는데 교인이 60명 모였습니다. 지금은 60명 모였다고 하면 아마 기적이 일어났다 그럴지 모르지만 제 자신에게는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유도 몰랐습니다. 별로 생각 안하고 어쨌든 주일만 가면 은혜를 부어주셨으니까 그냥 교인이 조금씩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몇 년 지나면서 깊은 반성을 했습니다. 그 반성이 무엇이냐 하면 어느 날 기도하는데 ‘야 너는 좀 네 교회에 집중해라’ 그러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에는 제가 초창기에 여기저기서 초청을 받아서 열심히 다니던 강사였습니다. 운전해주는 사람도 없어서 내가 차를 몰고 집회를 다녔는데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영업하는 사람이 ‘아저씨 영업하세요?’ 그랬습니다. ‘어떻게 1년에 55000km를 뛰셨어요.’ 그걸 몰고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집회를 다니고 교회에는 항상 금요일 날 도착을 해서 금요 기도회 하고, 그 다음에 토요일에 준비하고, 주일날 설교하고 주일 오후예배까지 설교를 하면 저 바깥에서 저녁 예배 헌신 예배 데려가려고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어느 한순간에 ‘아, 이건 아니다’ 그러고 깊이 반성하고 ‘이제 안 간다’ 선언을 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큰 순복음 교회에서 수요일에 불렀는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못간다, 왜 못가냐 그래서 수요일은 본 교회에서 예배 드려야된다 그랬더니 그럼 수요일은 다른 강사를 부를 테니까 월화목만 해 달랬습니다. 그렇게 해서 집회를 하고 해외를 나가도 수요일 날 저녁예배까지는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교회가 비로소 모이기 시작하더라하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지하실에서 행복하게 목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공간을 더 넓혀가지고 사람들이 들어가는데 그때 제 주일 설교만 보통 100분이었습니다. 설교를 하는데 교인들이 자꾸 쓰러지는 거입니다. 기적이 일어나서 쓰러지는 게 아니라 산소 공급이 부족해서 지하에 있으니까 할수 없이 구멍 하나 뚫었습니다. 바깥에서 공기가 들어오게 구멍을 뚫어놓고 예배를 드리고 그렇게 하면서 그래도 양보안하고 그냥 열심히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200명 정도 모였을 때 교회가 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연도 많지만 어쨌든 그게 방배역 사거리에 있는 옛날에 감리교회 터에 경신교회라고 있었는데 총신대역 사거리에 바로 있었습니다. 예배당을 그 교회가 건축업자한테 팔고 다른 데로 교회를 지어서 이사를 갔고 그 교회를 빌딩을 지어서 분양을 하려고 했는데 IMF가 터진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도 가니까 지하실에 있다가 갑자기 큰 예배당에 가니까 궁궐에 온 것 같았습니다. 전에 예배당은 그저 교인이 100명 들어가면 꽉 찬 예배당이었는데, 교인이 한 900명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이었으니까 처음에는 1본당에만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게 3년 반 만에 꽉 찼습니다. 1000명 정도가 됐습니다. 매주 사람들이 적으면 15명, 많으면 45명 그렇게 와서 듣는 것입니다.
그때도 마치 불을 토하듯이 설교를 했습니다. 누가 그랬습니다. 목사님이 설교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면 교인이 배로 늘어날 겁니다. 저는 그때 늘 하던 말이 그렇게 하려면 다른 교회로 가라고, 교인 수에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나는 하고 싶은 대로 설교를 했습니다. 보통 100분을 설교했던 것 같습니다. 설교를 하면 너무 감사한 것은 매주 매주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는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의 설교를 표절하는 것은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은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돌아가신 정필동 목사님이 저한테 한번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 방에 저의 강의를 포함해서 1만 개의 카세트 테잎이 있다고 하셨스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들으시면서 남에게서 좋은 것들을 그 연세가 되도록 배우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거를 똑같이 설교하면 안 됩니다. 그거를 가지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 치면서 자기말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비슷하다 그러면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설교 시작하기 전에 자막으로 하면 됩니다. ‘이 설교는 몇 년 몇 월 몇 일 김남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많이 받아서 제가 다시 풀어낸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상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베끼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설교를 듣든지 저 같은 경우에는 신학책들을 읽으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계속 해야 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목회하기 시작하면 책을 놔버립니다. 그렇다고 읽어도 맨 예화집이나 읽고 가벼운 책들을 간증집 같은 걸 읽습니다. 그러면 안 되고 두툼한 신학책들을 읽으면서 실력을 키워야 됩니다. 그러면서 은혜를 받고 설교를 할 때 자기 발전을 위해서 한 개 한 개 아무 상관 없는 설교를 하는 게 아니라 연속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이 주제를 내가 12개의 설교로 해야 되겠다 계획을 세우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공부를 하면서 은혜를 받으면서 항상 설교를 준비하는 게 앞서 나가야 됩니다.
주일날 저는 설교를 다 하고 나면 이런 느낌이 듭니다. ‘아 어떡하지 난 아직 설교할 게 많은데 이 사람들을 일주일 후에나 만나려나’, 수요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요일에 다 못 나옵니다. 그래도 수요일 날 최대한 나오게 해서 열렬히 설교하고, 주일 오후에 설교하고, 금요일에 설교하고, 그렇게 하면서 설교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교회를 교인들이 잘 준비된 교회만 다니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비판을 했는데 그때 옛날에는 다 쓰러져가는 천막에서도 핏줄을 세우면서 설교를 하던 설교자들이 있었다 그랬는데 그 강의가 끝나고 함께 차를 마셨는데 같은 자리에 오신 분이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였습니다. 그분이 저한테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지금 교인들이 너무 안락한 교회만 찾는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어느 목사님이 그렇게 피를 토할 듯이 설교하면 천막 쳐놓은 교회에 갈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 전 충격이었습니다. ‘아, 이게 평신도와 목회자가 바라보는 시대상의 차이구나’ 그러면서 하는 내 이야기가 뭐냐 하면 교회가 커지고 난 다음에는 열 번쯤 설교에서 한 번쯤 홈런을 치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할 때는 매주일마다 잭팟이 터져야 됩니다. 매주일마다 설교를 했더니 눈물을 흘리고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는 교인이 있더라 이렇게 돼야 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지하실이었어도 교회가 크는 것이지, 사람을 모아놓는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된 사람들이 모일 때 그것이 순수한 공동체가 되고 그럴 때 그 교회가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도 말하기를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순결함이다’ 교회의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교회 순결함에 의해서 교회는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 이야기를 안 할 것입니다. 딱하나 설교를 여러분들이 깊이 생각하면서 나에게 피를 토할 설교가 있는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다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하지 않으리라 할라치면, 내 마음에 불이 있어서 사무치는 것 같아서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이 참 나에게 있는가,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열렬하고 치열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목회자의 성경책과 찬송가는 눈물에 젖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진리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발사와 목사의 직업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딱 두 개의 도구만 들고 있으면 어디가서든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발사는 가위와 빗, 그리고 목사는 성경과 찬송, 두 개만 갖고 있으면 어디 가서 진리를 설교하든지 간에 하면 되는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은행에서 빌리면 되고 컴퓨터를 모르면 컴퓨터 하는 사람 부르면 되고 영상을 모르면 영상 하는 사람이 교회 와서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그러니까 설교에 온 힘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개척교회 해서 성공할 것인가 못할 것인가 미리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남의 교회에 불러달라고 그럽니다. 가서 내가 설교했는데 교인들이 주님을 만나고 눈물을 흘리는 교인들이 있는가, 절대 없다 그거는 아직 교회 개척할 준비가 안 된 겁니다. 그리고 해도 그 결과는 그렇게 썩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 설교가 토대가 될 때 교회에는 예배의 감격이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주님을 만날 때 그때 비로소 성도의 교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있는 설교를 하려면 결국 어떻게 되야 되겠느냐, 자기가 하나님의 설교를 듣는 사람이 되야 됩니다. 그것이 설교를 통해서든, 깊은 기도를 통해서든, 책을 통해서든지, 자기의 마음을 후벼 파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서편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오정혜가 나와서 스타가 된 영화, 오정혜가 노래를 부르고 창을 하고 남자아이가 장구를 칩니다. 장마단에서 그렇게 하고 나서 여관에 들어가서 선생님한테 엄청나게 혼을 납니다. ‘야, 이놈아 장구를 두드리면 다 장구질인 줄 아냐’ 그리고 오정혜한테 ‘야, 니가 노래를 하면 다 창인 줄 아냐 가슴에 한이 맺혀야 되는거야 이것아’ 하면서 이제 야단을 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목회자의 마음속에 한이 배어 나와야 합니다. 외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도록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서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불덩어리를 이 마음속에 가진 사람들이 되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십시오. 최근에 성경을 읽다가 아니면 경건 서적을 읽다가, 아니면 남의 설교를 듣다가, 아니면 혹시 기도하다가 깨달음이 있어서 가슴이 찢어지도록 울어본 경험이 언제입니까? 언제인지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게 매일 매일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설교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러면 간단하게 준비를 해도 그걸 풀어서 길게 설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설교라고 하는 것은 목회자가 말씀의 은혜를 받고 또 간절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그것들이 모두 어우러지면서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노래도 잘하고, 작곡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이런 사람이 있으면 너무 좋겠지요. 그런 만능 엔터테이너는 극히 드뭅니다. 지극히 소수입니다. 결국은 그렇기 때문에 노래하는 사람은 작곡자를 필요로 하고, 또 작곡자는 춤추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좋은 설교를 많이 들으십시오. 그리고 좋은 책을 읽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으십시오. 그래서 마지막에 책을 다 읽었는데 ‘야 진짜 이 저자는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박수치고 싶은 책을 읽으라는 게 아니라, 책을 다 읽고 나면 자기가 너무 비참해져서 무릎 꿇고 울고 싶은 그런 책을 읽으라는 것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조언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말씀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때 그때 치열하게 설교할 수 있는 그 힘이 생겨나고, 그렇게 설교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밑에 한 줄쯤 나오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피를 토할 듯 설교하면 교인이 반드시 모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진리의 손길을 내밀면 그 진리를 붙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교인이 될 때 행복한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말씀의 은혜를 내가 받고 생각해야 됩니다. 설교하려고 먼저 하지 말고, 설교 듣는 사람으로서 내가 은혜를 받는 사람인가 생각하면서 그 마음에 불이 붙여져서 이거를 누군가에게 전하지 않고는 내가 견딜 수가 없다고 하는 그 갈망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한편의 설교는 한 사발의 피입니다. 그래서 내가 토혈을 목회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목회하고 심방하고 글을 쓰고 기도하고 영혼을 돌보고 교육하고 그런다면 이 시대가 아무리 종교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래도 사람은 말할 수 없이 가슴이 허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런 교회에 와서 말씀에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