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토마스 아퀴나스
녹취자: 조경훈, 장미연, 백지영, 김경애, 이솔
역사신학이나 조직신학 전공을 하시는 분들은 알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빌렌 판 스페이커르() 라는 20세기 최대의 마틴 부쳐(Martin Bucer) 연구가가 화란에 있었는데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아펠도른 신학교의 학장을 지내셨고 가문이 대대로 신학자였습니다. 그분과 교분을 많이 갖게 되었고 그분이 일생 동안 모은 일만 권이 넘는 라이브러리를 마지막에 저한테 넘겨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그분과 대화하는 중에 한국 학생 두 사람이 옆에 있었습니다. 한국 학생이 그분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을 할 때 제가 옆에서 한국 사람으로서 좀 창피했습니다.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교수님! 신학에 있어서 철학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리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명색이 화란에 가서 아마도 석사과정이나 박사과정을 하고있는 학생일 텐데 그런 질문을 하니까 깜짝 놀라시면서 대답을 하셨습니다. ‘아니 철학을 모르고 어떻게 신학을 공부하니? 참 이상한 생각도 다 하는구나! 철학을 못 하면 절대 신학 공부를 할 수 없어.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를 모르고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야. 몇 주 전에 김남준 목사가 그 주제에 관해서 작은 책자를 하나 써서 내게 보냈더라. 그것을 내가 읽었는데 너도 한 번 읽어봐라. 거기서 올바르게 이야기를 했더라.’ 그분은 아주 철저한 보수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개혁신학자입니다. 그분은 6개 국어를 하시는 분입니다. 연세가 드신 다음에는 영어로 말하다가 갑자기 화란어로 이야기하다가 불어로 넘어가시는 분이었습니다. 저하고는 달콤한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어떻게 되었느냐? 아리스토텔레스의 근처도 안 간 상태에서 여러 가지 학문을 하는데 오늘 역사를 듣고 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슈어드 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강의의 목적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여러분들에게 가르쳐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굉장히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여러분들이 단시간에 할 수 있는 아닙니다. 다만 기독교 역사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미친 영향이 너무 어마어마 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무엇인지를 알지 않고는 기독교의 진면목을 알 수 없을 정도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기독교 2천 년 역사상 커다란 사상의 쓰나미가 두 번 밀려옵니다. 첫 번째가 초대교회에 있었던 플라톤주의 사상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네오플라토니즘, 신플라톤주의 사상이고 그 물결을 기독교가 훌륭하게 끌어안고 파도 타기를 성공함으로써 보편적인 교회의 선교를 이루게 되었고 로마 전체를 기독교화하는 일에 성공을 하게 됩니다. 그 사상을 끌어안는 일에 성공을 하게 되는 케이스가 일어나게 됩니다. 두 번째 밀려온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쓰나미는 십자군 전쟁 이후에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12세기, 13세기, 14세기, 15세기까지 약 300년 동안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 두 개의 쓰나미를 성공적으로 넘음으로써 기독교는 그야말로 생존할 수 있었고 설교에 날개를 펼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집중해서 목차를 보겠습니다. 크게 ‘아리스토텔레스주의란 무엇인가?’ 다음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잊혀짐과 재발견’,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사적 의미’ 이렇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주의란 무엇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아리스토텔리아니즘이라는 이 용어는 어느 분야에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definition이 다릅니다. (다음페이지) 세속학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라고 할 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논리적이고 경험적인 철학, 과학함의 전통입니다. 논리학, 물리학, 생물학, 윤리학, 정치학, 형이상학, 신학에 이르기까지 자연 세계에 대한 연구와 경험적인 관찰, 논리적인 추론의 중점을 둔 사주를 가리키는 것이니 이것은 오늘날의 대학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학이 세워진 지가 언제쯤일까? 이렇게 물어보면 사람들이 “글쎄요. 16세기요?” 아닙니다. 12세기에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기독교권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때 세워진 학교가 볼로니아 그다음에 살리에르, 파리대학교, 옥스퍼드, 캠브리지 등등이 그때 세워지게 됩니다. 12세기경에. 그러나 여러분, 이슬람 세계에서는 대학의 기원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늦게 잡아도 9세기 중엽입니다. 그러면 몇 년 차이가 납니까? 12세기대 9세대니까 3백 90년 차이가 나고 더 멀리 보는 사람들은 6세기까지 거슬러 가는데 6세기에 있는 도서관이 이미 10만 권의 장서를 간직하고 있었던 이슬람의 도서관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그런 학문적인 센타들이 결집된 것이 비교도 안되는 엄청난 유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을 때 충격을 받은 것이 저 무지한 짐승들의 나라를 개명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전쟁에서 이겨야 된다고 가봤는데 너무너무 놀라운 문명의 현격한 격차를 느끼면서 기독교권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과학의 기술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달해 있었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이제 이것이 세속학문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라면 기독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라는 것은 개념이 좀 다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반으로 기독교 사상 및 교리체계를 수립하는 것.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주의라고 부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철학, 과학개념의 방법을 기독교 신앙과 조화시키는 에클레티시즘이라고 하는데 그런 절충주의 방식으로 가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주의라고 부릅니다. 그가 가진 사상을 이용해서 자연적 이성과 초자연적 계시를 통합하고자 하는 주의와 입장을 아리스토텔레스주의라고 기독교에서는 define을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인가? 이 사람은 384년에 태어나서 322년까지 산 사람입니다. 그렇게 그 당시로서는 짧게 산 것은 아닌데 선생님 플라톤 보다는 한 20년 정도 덜 삽니다. 플라톤은 아주 장수했습니다. 20년간 플라톤 아카데미아에서 수학을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알렉산더 대왕의 개인 교사를 하게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퍼트리려고 했던 헬레니즘이라고 하는 것을 그리스 문명을 헬레니즘이라고 한다. 이렇게 배웠는데 사실이 아니고 그리스 문명은 그리스 문명이고 헬레니즘은 헬레니즘입니다. 그리스 문명이 동방 문화와 만나서 융합을 이룬 그 결과물이 헬레니즘입니다. 헬라스라는 그 지역에서 온 것인데 그 헬레니즘의 철학을 이 스승으로부터 물려받게 됩니다. 그리고 오직 그것을 하나의 선교 사상. 이런 그리스 철학의 빛을 따라서 살지 않는 인생을 어떻게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하면서 선교적인 동기를 가지고 평생 동안 정복을 하면서 살다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플라톤이 죽은 후에 그는 이 아카데미에서 떨어져나와서 독자적인 교육기관인 루케이온을 설립하게 되고 아데네에서 반마케도니아 정서가 강해지면서 불교 문제로 고발되고 열두 달 후인 62세 때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사상은 플라톤의 비 물체적인 이데아의 견해를 비판하고 플라톤의 관념론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지 않고 관념론과 유물론의 사이에서 자기 사상을 세우고자 했고 다만 자연을 논하는 경우에는 유물론적인 색채가 농후한 그런 사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다음 봅니다.
여기에 보면 지금 희미한데 라파엘로가 그린 아데네 학당의 그 유명한 그림입니다. 이게 로마의 베드로 성당에 가면 시스티나 성당만 보고 대게 돌아오는데 2층에 올라가면 철학자의 방이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 가면 이 라파엘로의 그림이 보관되어 있는데 약 1510년경에 그려진 것이고 여기에서 딱 두 사람이 나오는데 정 중앙에 보입니다.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이 사람이 플라톤이고 플라톤의 손에는 한 권의 책이 수직으로 들려있고 이 옆에 사람은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인데 한 책이 수평으로 들려있습니다. 이 책의 이름은 티마이오스라고 하는 책이고 이 사람의 작품이고 이것은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이라고 하는 작품입니다. 티마이오스라는 작품은 무엇을 하는 책이냐 하면 우선 이 사람의 철학은 위로부터의 철학입니다. 일자라는 것. 톱 온 하나만 있는 존재 그런 뜻입니다. 모든 세계를 일자라고 보는 것은 플라톤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플라톤 이전에 단편들로만 남아있는 파르메니데스 같은 철학자들이 이미 온 세계는 있음으로 가득 차 있고 이것을 일자라고 불렀고 그 일자에서 모든 것들이 파생되어 나오게 된다. 그런 영원한 일자가 데미우르고스라고 하는 제2의 신을 사용해서 물질세계에 관여함으로 이데아를 실재에 이런 물질적인 것들로 만들어서 창조해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티마이오스라고 하는 창조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티마이오스는 창조만이 아니라 윤리, 생물학, 천체학까지 모두 동원해서 인류의 기원과 작동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에 비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에티카를 책을 들고 있는데 니코마코스라는 자기의 아들이 아버지의 생전에 가르침을 편집해서 만들었다고 해서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쓴 것은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를 제자들이 녹취한 것을 정리했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그런데 손가락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은데 이 사람은 저 하늘로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고 이 사람은 손가락 하나로 위를 가리키고 이 사람은 다섯 손가락을 다 펴서 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네 눈앞에 보이는 이 모든 것은 다 화상이라네. 이 모든 것은 위에 일자로부터 내려온 것이니 정신이 이 모든 물질의 세계를 초탈하여 위로 상승하고 그 위에서 일자를 만나고 아래로 해석되어 올 때 그것들의 존재의 근거와 이유와 목적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대 자신도 그 속에 있다네.” 이런 의미라면 이 사람은 “그게 아니지요. 그게 아니라 그러면 여기 눈앞에 펼쳐진 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볼 수 없는 것에서 출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는 직업이 의사였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동물을 해부하고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하는 현장을 보면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 관찰에 아주 뛰어납니다. 그래서 동물학에 대한 책, 식물학에 대한 책은 이미 그 도감의 원조가 되어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직접 수많은 생물들과 동물을 그림으로 그렸고 그것이 동물학과 식물학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그런 동물의 세계, 생물의 세계를 관찰하다 보면 엄격한 causality 소위 인과관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출발을 해서 정신이 상승함으로 위로 가는 것이어야 되기 때문에 먼저 고려해야 될 것은 보이는 이 세계입니다. 이렇게 각각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속담의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플라톤주의자가 되든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가 되든지 성향적으로 둘로 나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의 평가에 의하면 결국 이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반대했기 때문에 굉장히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은 과장된 점이 많습니다. 두 분의 나이 차이가 한 20세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이 두 분이 어떻게 서로를 존중했냐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돌아가신 다음에 우리 플라톤 선생님을 미천한 자들이 그 이름을 칭송하는 것 자체가 선생님에게는 말할 수 없는 모욕이 됩니다. 라고 할 정도로 존중심을 가지고 있었고 한편 선생님은 어느 날 아리스토텔레스가 결석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디에 갔니? 그 학생이 없으니 온 강의실이 벙어리들이 모인 곳이 되었구나.”라고 할 정도로 서로에 대해서 탁월한 존중심을 가지고 있있던 것입니다.
그다음 보겠습니다.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얼 했느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책을 이렇게 방대한 분야에 대해서 한 사람이 전공서를 남길 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범주론, 명제론, 해석학, 분석론(전편/ 후편), 토피카, 변증론, 소피스트적 논박, 궤변론, 자연학, 천체론, 생성소멸론, 기상론, 영원론, 자연학, 장수와 단명, 동물시, 형이상학, 윤리학, 대윤리학, 에우데모스 윤리학, 정치, 경제 그다음에 정체론, 시학, 수사학까지 어마어마한 분야의 책을 남겨 놓습니다. 얼마나 쓰고 죽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학문이라는 형태가 아직 안 되었던 때에 남겨 놓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 전에 조각, 조각되어 있던 학문을 모두 한곳으로 수렴해서 그렇게 해서 모아서 정리를 해서 새로운 형태의 학문의 체계를 남기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궁금한 것은 저렇게 어마어마하게 위대한 사람이 왜 그렇게 서양 역사에서 잊혀져 버렸을까? 궁금하지요? 결국은 대학도 아랍 세계에서 350년 이상 먼저 생기고 종합병원도 아랍에서 생기고 화학도 전부 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아랍 세계에서 이루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랍 세계에 먼저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기독교권에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구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잊혀졌을까? 첫째 언어적인 이유입니다. 그 당시의 식자들의 기본 언어는 라틴어였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은 그리스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도 코인의 그리스어가 아니라 아티카 그리스어입니다. 그리스어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제일 오래된 그릭으로 호메릭 그릭.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잇는 그릭이고 그다음이 아티카 그릭, 아티카 그릭이 바로 이런 그리스의 저자들이 남긴 문학가들이 남긴 그런 작품들이고 그 보다 약간 쉬운 것들이 교부들이 남긴 책들이고 그다음이 코이노. 코이네 만국 공용어인 그리스 성경이 쓰여진 코이네입니다. 라틴어가 로마 제국의 지식인들의 언어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라틴어로 번역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잊혀졌습니다. 두 번째는 작품의 재질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이 대부분 초창기 기록될 때 비용적인 이유 때문에 파피루스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파피루스는 우리가 판때기처럼 된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파피루스도 둥글게 말 수 있는 파피루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글씨를 열매즙 같은 것으로 펜으로 글을 썼는데 몇 번 이렇게 돌리다 보면 글자가 지워지잖아요. 그리고 재질 자체가 쉽게 부스러지고 습기에 약합니다. 그래서 작품의 재질 때문에 오래 보존이 안 되었습니다. 다음의 더 큰 문제가 당대의 학풍입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스토아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가 양대 산맥을 이루며 로마 사상의 세계를 거의 섭렵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신교 사상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아직까지도 그냥 민간 신앙으로 남아있는 것이고 체계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 양대 산맥으로 휩쓸고 있는 철학 사상이 스토아주의와 에피큐리오스주의가 대세였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받아들여질 공간이 매우 적었고 일단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별로 없었습니다. 네 번째는 작품의 내용이 예전에 사람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자체가 너무 복잡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 정도 교육을 받으셨는데 이게 궁금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오늘이라도 한 번 도서관에 펴보십시오. 아마 곱게 모셔져 있고 대출도 안 됐었을 겁니다. 펼쳐보시고 다섯 페이지를 읽었는데도 잠이 안 오시면 그분은 굉장히 특별한 분이에요. 정신을 집중 안 했거나 아니면 탁월한 철학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확실히 7페이지를 잠이 들 것이고 영어 원서를 읽는다면 더 빨리 잠이 올 것이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의 사고 구조로는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난해한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2세기 변증가들의 시대를 거치면서 기독교가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공인되기까지 항상 죽도록 피 흘리는 박해를 받았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봄날이 있었고 미친 듯한 광풍이 몰아치는 피비린내 나는 박해 시기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황제는 초기에는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했는데 후에는 기독교에 대해서 관용을 베푸는 그런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가운데 기독교가 많은 부침을 하게 됩니다. 그때 뛰어난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오리겐 같은 경우는 그리스어를 아주 잘했기 때문에 다 원어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지성인들이 있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세계관하고 잘 안 맞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물질세계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이렇게 기독교는 믿는데 “물질세계는 원래 영원히 신과 함께 영원히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구체적이게 되는데) 그런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그다음에 철저한 기계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의 섭리라든지 기적 같은 것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 배타적이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당시 확산되고 있는 기독교 세계관하고 코드가 안 맞았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그것을 탐구해낼 의지를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주의를 기독교가 추방했다고 하는데 역사적인 문헌에는 그런 기록이 안 나옵니다. 공식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못 읽게 하거나 혹은 금지시키는 것이 초대교회에는 안 나타납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잊혀져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데도 이것이 완전히 잊혀졌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작품이 너무 난해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주석가들이었는데 직접 이해를 못 하니까 그것을 해설해서 설명해주는 책들이 전파되었는데 괄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비기독교인들이었고 괄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 양쪽 줄기에 의해서 이것들이 전파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다음, 초대 중세 교부들과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들을 보겠습니다. 자, 우리 당시에 교회를 보면 크게 어떻게 있었지요?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있었고 그다음에 안디옥 교회가 있었고 그사이에 예루살렘 교회가 있고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있고 그다음에 로마 교회가 있고 이렇게 다섯 개의 교회가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슬람의 침략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6세기경부터 7세기 사이에. 이 얼마나 놀랍냐면 파죽지세로 기독교권을 점령하고 모래바람을 일으켰는데 90년 동안 로마가 점령했던 영토보다 두 배의 영토. 로마가 900년 동안 걸려서 만든 영토의 약 2배를 80내지 90년 동안에 정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 세계가 이슬람화 되게 되는 것입니다. 궁금한 게 이것입니다. 어떻게 그 사람들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발전한 그 로마 제국을 그렇게 초토화시키고 이슬람 제국을 수립할 수 있었을까? 어디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아들이면서 그것으로 모든 학문을 체계화하면서 눈부신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루어냈던 것입니다. 재미있으라고 한마디 거들어보겠습니다.
1차 십자군 전쟁에서는 아주 훌륭하게 승리합니다. 그러나 2차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3차에서 대결전을 하게 되는데 이때 총사령관이 말하자면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였습니다. 리처드가 거기에 술탄하고 만나서 담판을 집니다. ‘절대 우리를 못 이긴다. 그러니까 너희는 더 많은 피를 보지 말고 항복을 하라.’ 그러면서 큰 칼을 꺼내서 옆에 있는 쇠로 만든 고리를 끊어버립니다. 술탄은 빙긋이 웃으면서 커튼을 방에서 뜯어서 공중으로 던져버립니다. 반달 검을 들어서 샥∼하고 흔들었는데 커튼이 땅에 닿기 전에 절반으로 샥∼찢어지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까?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 하늘과 땅이었음을 말해주는 예화입니다. 리처드 왕의 칼은 쇠덩어리입니다. 힘으로 내리쳐서 쇠줄을 끊어야 되는데 이 반달 검은 얼마나 담금질이 잘 되었는지 떨어지는 커튼을 위로 이렇게 흔드니까 샥∼ 하고 베어지는 겁니다. 이미 벌써 과학 기술에 있어서 사회의 시스템에 있어서 비교가 안 되는 선진국과 후진국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첫 번째 빼놓고 다 지게 됩니다. 8차까지. 완벽하게 패배합니다. 4차는 아예 그냥 동원했다가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가야 되는데 콘스탄티노플을 쳐들어가 가지고 콘스탄티노플을 멸망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십자군 전쟁이.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치욕적인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수용론자들이 있고 반대론자들이 있었습니다. 반대론자들은 아프리카학파 사람들입니다. 전부 다 다른 지역들은 이슬람에 의해서 점령이 되었는데 아프리카 쪽 사람들은 여러분들이 아프리카의 거두라고 할 수 있는 카르타고학파라고 말하는데 테르툴리아누스입니다. 이 사람이 한 유명한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아데네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하면서 철학의 신학 쪽으로의 도입, 철학을 사용하여 기독교를 변증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면서 호교론적인 글들을 쓰게 됩니다. 아이러니한 건 뭐냐 하면 이 사람에 의해서 삼위일체, 끄리 니 따스, 페르소나, 위격 그다음에 레알 리 따스, 실재라고 하는 중요한 삼위일체 신학을 구성하는 신학 용어들 20여 개가 이 사람에 의해서 수리되고 이 사람이 없었으면 신학 진술이 굉장히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수많은 신학 용어들을 만들어 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사람은 아데네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신앙의 중요성을 이런 식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히에로니무스 같은 사람입니다. 제롬, 라틴 벌 게이트를 번역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이데아론, 영혼의 불멸성, 창조와 섭리를 기독교의 교리를 부인한다고 비판하고 유스티니아누스 같은 사람들은 더 철저하게 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배격했던 사람이고 사상적으로 보면 온건하기는 하지만 어거스틴도 넓은 범주에서는 북아프리카 라틴 교부 속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경우에는 조금 재고해야 될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긴 합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학파 쪽에서는 클레멘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플라톤주의를 호교론에 사용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적극 이용해서 기독교 교리를 정교하게 수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독교 기본 교리와 상충 되는 것들은 비판하고 거부하게 됩니다.
주목할 사람은 오리게네스입니다. 이 사람은 굉장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냥 오리겐 그러면 우화적 해석의 선두주자고 작품이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사람이 일평생 쓴 책이 2천 권입니다. 믿어지십니까? 안 믿어지실 것입니다. 쓰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베껴도 평생 2천 권을 못 베낍니다.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이 사람이 천재였습니다. 그리고 순교하고 싶어서 안달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투옥이 되어서 순교를 기다리고 있는데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가족 걱정하지 마시고 거기서 순교하십시오. 아버지가 배교하고 와서 그 더러운 손으로 벌어오는 밥을 먹으면서 저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죽으십시오.” 그러던 소년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죽고 나서 만세를 불렀고, 그 다음에는 기회가 닿으면 순교할 기회를 찾는 것입니다. 엄마가 말합니다. “얘야, 오리겐아, 봐라.” 여섯 명이 동생들이 누워 자고있는 것입니다. “네가 죽으면 너는 영광이겠지만 엄마는 이 동생들하고 어떻게 사냐?” 그래서 거기서 마음을 돌리고 공부를 하게 되고, 클레멘스에 의해서 열여덟 살에 교리학교 교장이 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의 제자냐 하면 신플라톤주의의 대가라고 불리는 플로티노스와 함께 암모니아사카스라고 하는 플라톤주의자에게서 공부를 한 동무 수학한 처지입니다. 한 사람은 기독교가 아닌 쪽의 플라톤주의의 거두가 됐고, 이 사람은 기독교 안에서 플라톤주의의 거두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는 것은 이때는 아직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이 안 세워져 있었습니다. ‘페이 아르콘’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리스어로 쓰였습니다. 이것은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도 김성수 박사에게서 번역이 됐는데, 이런 책들을 보면 초기 기독교에서 어떻게 기독교교리들이 세워졌는가 하는 것들을 추적해 볼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사람은 과도하게 플라톤주의에 경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플라톤주의의 세계관을 따르고 있었고, 그렇지만 그런 신과 자유, 내세에 대한 믿음을 보충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인 논증을 사용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플라톤주의자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신학방법론에 있어서는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경우에 태생은 저쪽인데 그런데 수용론자에 듭니다. 그래서 아까 내가 여기에 넣기가 애매하다고 얘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빅토리아누스라는 사람이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모두 잘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번역을 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의 지금은 사라진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를 읽으면서 일생에 잊히지 않는 한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필로소피아(philosophia)’라는 단어입니다. ‘필로(philo)’는 ‘사랑’이고 ‘소피아(sophia)’는 ‘지혜’입니다. 거기서 ‘필로소피(philosophy)’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필로소피’는 결국은 지(智)에 대한 사랑입니다. 지혜에 대한 사랑. 그것을 받으면서 이 세상에 허무를 느끼고 지혜를 찾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게 됩니다. 그때 빅토리아누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같은 것들을 번역을 했는데 이것을 아우구스티누스가 간접적으로 읽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체계가 분석적이고 종합적인 내용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아우구스티누스는 꼭 읽어야 됩니다. 제가 아우구스티누스를 평생 사랑하고 공부해온 사람으로 말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를 1년만 읽으면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봅니다. 아니 1년도 필요 없고 몇 권의 책만 정독을 한다면 인생이 바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를 과감하게 수용합니다. 신플라톤주의는 뭐냐 하면, 구플라톤주의가 있었는데 그 플라톤주의 운동이 이때쯤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부활할 수 있었던 좋은 배경이 뭐냐 하면, 기독교가 점점 세력을 얻으면서 기독교가 사상을 아직 구체적으로 확립하지 못했을 때 유사한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플라톤주의였습니다. 옛날의 플라톤주의는 일자(一者)라고 하는 신이 있고 세계가 있는데, 신은 물질과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존재이고 물질은 신과 연관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열등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될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신플라톤주의에서 설명을 해냅니다.
어떻게 설명을 했느냐 하면, 일자가 있는데 그 일자의 신성이 철철 넘쳐흘러서 그것이 지성이 되고, 그 지성이 넘쳐서 세계혼이 되고, 세계혼이 넘쳐서 그것들이 수많은 사물들을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설명함으로서, 무한한 일자와 유한한 피조물들이 어떻게 연관을 맺게 되었는지를 설명을 해내게 되는데, 이것이 그대로 기독교에 적용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는 세계를 신성이 흘러넘친 게 아니라 신의 자유로운 창조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표현을 바꾸면, 훌륭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세계가 창조된 근원들을 특히 그리스철학에 있는 로고스 이론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가 찾는 세계관의 틀에 딱 맞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과감하게 수용을 하게 되었고, 아우구스티누스나 빅토리아누스나 이런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이 플라톤을 원서로 읽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 해설서들을 읽으면서 접근을 하게 됩니다. 특히 과감하게 스토아학파나 그 다음에 포르피리의 해석 같은 것들을 통해서 접근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통해서 과감하게 수용을 하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틀에 머물지를 않고 이것들을 융합해서 성경이 이야기하는 기독교의 진리들을 수립하는 데에 이 양대(兩大)의 사상을 사용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추천하는 책 하나는 플로티노스라고 하는 사람이 쓴 ‘엔네아데스((Enneades)’라는 작품입니다. 이것은 플라톤주의 연구에 있어서 꼭 읽고 넘어가야 되는 책인데, 저는 그 책을 읽고 너무 감탄을 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비기독교인이 쓴 책인데 조직신학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명쾌하게 세계의 신비와 만물의 조화에 대해서 탁월한 설명을 해낸 책이었습니다. 일반계시로서 어떻게 이렇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감탄을 자아내게 했는데, 이런 것들이 기독교 신학수립에 상당한 골격을 제공해 주었다고 그렇게 평가되고 있는 바입니다.
그 다음에 시간이 흘러가서 480년경, 이때는 이미 474년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이제 그 제국의 시대가 끝나게 됩니다. 이때 로마의 마지막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보에티우스라는 인물이 태어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이 시대에 아직까지도 존속하고 있었던 아데네의 아카데미아에 유학을 해서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사상을 섭렵하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분명히 멸망한 나라의 사람인데, 게르만족은 나라는 힘으로 정복했지만 실제로 나라를 다스려갈 수 있는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런 지적 능력이 안 되었습니다. 그냥 싸우기 좋아하고 장식 좋아하고 먹고 마시는 것 좋아하는 그런 세속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결국 게르만족이 들어와서 게르만 제국이 생긴 게 아니라 나라가 그냥 다 삼지 사방으로 찢어져서 군웅들이 할거하는 그런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때 돌아와서 테오도리쿠스왕 아래서 보에티우스가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제국의 질서를 하나로 통일하는 정치철학을 제공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게르만족들의 모함을 당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에 고통을 받으면서 쓴 책이 그 유명한 ‘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입니다. 거기에서 철학의 여신이 등장을 합니다. 그래서 염장 지르는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보에티우스, 그대는 평소에 철학을 하고 지혜를 사랑했다던데 막상 죽을 때가 되니 마음에 평정심을 잃는 것 보니 너도 별거 아니구나.” 이런 식으로 시비를 겁니다. 보에티우스가 응답을 하고, 시가 나오고 산문의 대답이 나오는 식으로 하면서 거기 진술한 내용은 뭐냐 하면, - 기독교인이었지요. 당연히. 당연히 기독교인이었습니다. - 쉽게 이야기하면 철학의 위로가 아니라 철학적 신학의 위로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것이고 등등등등 하면서 영원한 세계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 시를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흔네 살 정도에 사형을 당하는데 평생 살아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책을 번역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던 사람입니다. 아마 플라톤까지 포함해서. 그랬더라면 아마 구라파의 역사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범주론, 영지론 정도까지 번역을 하고, 포르피리에 의해서 이사고게, 이사고게는 뭐냐 하면 ‘아이사, 뭐뭐 속으로, 아고 인도하다’라는 뜻을 가진 논리학 책입니다. 그것을 번역하고 주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수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결국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그 당시에 밀려오던 철학 사조들을 경시하고 대적하던 교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끌어안고 씨름하면서 기독교적으로 방어하고 변증하며 재해석해서 기독교의 고유한 교리를 세우려고 몸부림쳤던 교회는 살아남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다음,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면 다시 기독교 세계에 발견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이것입니다. 크게 두 개의 요소가 있는데, 하나는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서로마제국의 멸망, 그 다음에 서유럽 중심 문화의 몰락, 메로빙거왕조와 카롤링거왕조의 관계들이 성립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하면, 세계사의 지식이 좀 필요한데 여러분이 세계사 이제 다 잊어버리셨지요. 역사하시는 분들은 좀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잠깐 보겠습니다.
게르만족이 왜 이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까? 역사적으로 흉노족, 훈족이 서방으로 이동을 하면서 그러면서 결국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흉노족이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고조선의 후예라고 밝혀집니다. 고조선이 미쳤던 그 영향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커다란 특강의 제목인데, 고조선의 유민들이 흩어지면서 그 사람들이 씨앗이 되어서 흉노족을 이루게 되고, 훈족이라고 부르고, 그 훈족들은 서구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게르만족은 얼마나 강했냐 하면 시저도 게르만족 땅을 정복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이유는, 죽여도 죽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돌격하는 부대였고 그 다음에 또 하나는 그 땅이 척박해서 점령해 봐야 세금 나올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 인간들하고는 접촉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고 거기는 경계를 긋고 아예 로마가 점령을 포기해 버린 나라일 정도로 용맹했는데, 그러나 훈족의 상대는 안됐습니다. 훈족이 밀려오자 밀려나게 되고, 밀려난 이 사람들이 이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로마제국의 상황이 어떻게 됐느냐 하면, 1세기, 2세기까지는 계속 새로운 곳이 정복이 되면서 물자들이 로마제국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로마제국이 경제적인 이득을 얻는 것은 새로운 정복지에서 얻은 금은보화를 싣고 들어오고 그 다음에 조공들이 들어오면서 로마를 번창하게 하고 제국을 융성시켰는데, 더 이상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점령할 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전쟁을 해봐야 사막지대 그 다음에 숲지대 이런데 있으니까 거기 가봐야 점령할 사람도 없고 들어올 돈도 없는 것입니다. 로마 시대의 제국의 지도를 보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기름진 쪽으로 띠처럼 좍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모양이 말발굽 모양으로 길게 생겨서 통치하기도 무지하게 힘듭니다. 너무 넓어서. 그리고 여러분은 생소한 이야기겠지만 황제가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280년에 칙령에 의해서 정황제 두 사람과 부황제 두 사람을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아프리카 이쪽 그 다음에 그 위쪽, 그 다음에 유럽 쪽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의 정황제가로마에 하나 콘스토플에 하나, 그 다음에 이 아래에 하나 그 다음에 프랑스 영국 쪽을 관할하는 쪽 하나 부황제가 둘씩 있어서, 두 명의 황제와 두 명의 부황제가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부황제 중 한 사람이 바로 프랑스 쪽에 있던 사람이 콘스탄티누스입니다.
그렇게 됐었는데 이게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느냐 하면, 점점 제국이 풍요로워지면서 사실은 로마의 가장 중요한 정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로마의 군대가 정신이 무너지면서 로마가 무너진 것입니다. 그 로마의 군대가 무너진 것은, 유세비우스가 증언을 하는데 로마의 군인들은 훈련을 전쟁처럼 훈련했고, 그러니까 훈련은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었고 전쟁은 피 흘리는 훈련이었다고 묘사할 정도로 자부심이 있었으니까, 쉬운 곳은 용병들에게 맡기고 진짜 힘들고 어려운 곳은 로마인 아니면 군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원래 로마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많이 들어오고 부유하게 되니까 자기 아들을 군대 보내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위 관료들이 법을 만들어서 어떻게 하냐 하면 돈을 얼마를 내면 아들을 군 면제를 시켜주는 것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산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게르만족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산악지대에 살고 있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용병을 해서 먹고 살았는데, 우선 게르만족이라 덩치가 좋고 그 다음에 머리가 좀 나빠서 충직합니다. 그냥 있는 그 자리에서 그 폼페이에서 창 들고 그렇게 화산재에 묻힌 사람들이 다 게르만 용병입니다. 그러니까 충성스럽기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뭐냐 하면 월급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기를 느낄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지금 굶어 죽겠다. 왜 월급을 안 주냐?” 처음에는 무슨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로마에 돈이 없는 것입니다. 흥청망청 써서 국고가 텅 빈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게르만족들이 생각하기를 우리 어차피 여기서 굻어 죽나 싸우다 죽나 마찬가지인데 죽더라도 한번 쳐들어가 보고 죽자 했는데, 쳐들어가니까 모든 로마 군인들이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래서 거의 피 흘리지 않고 로마를 접수해버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제국을 다스릴만한 정치적인 경륜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러면서 서로마제국은 아주 순식간에 멸망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러던 와중에 그 게르만족들 중에서 아주 뛰어난 왕국이 하나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게 역사 속에서 배운 프랑크왕국입니다. 그 왕국 중에 크로이스왕조가 클로비스라는 인물이 나오고 그 사람이 메로빙거왕조의 창시자입니다. 이 사람이 콘스탄틴 대제하고 유사한 경험을 하면서 결국은 기독교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말하자면 메로빙거왕조가 지나고 그다음에 그러다가 그 후에 왕들이 별로 신통치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카를 마르텔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훌륭하게 전쟁에서 승리하고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피핀입니다. 피핀이 나라를 뒤집어서 접수를 해서 메로빙거왕조는 멸망하고 카롤링거왕조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피핀 왕조가 아니라 카롤링거왕조가 되는 이유는, 그 피핀의 아들이 카를, 여러분들이 역사 속에서 배운 샤를마뉴 혹은 칼 대제, 그 다음에 카를대제, 깔로 대제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에 의해서 소위 이야기하는 중세의 무디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이 사람이 엄청난 교육의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기 시작을 합니다. 이 사람이 칼 대제가 돼서 제국을 다 지배하게 되었는데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종교회의에 참석을 했는데 거기서 변론을 기가 막히게 하는 한 천재를 만나게 됩니다. 알키누스라고 하는 사제였습니다. 이 사람이 영국태생으로 요크셔에서 온 사람인데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물론이고 라틴어까지 줄줄줄줄 꿰면서 어려운 신학적인 난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보면서 ‘아, 저 인물이다’하고 그 사람을 자기의 제국의 교육을 맡길 적임자로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교육의 뜻을 가지고 있었던 카를대제는, 샤를마뉴는, (왜 샤를마뉴라고 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그 사람을 프랑스 사람으로 보고, 그 다음에 독일 사람들은 독일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이름이 그렇게 잡다하게 생긴 것입니다. 영어에서는 챨스라고 부릅니다. - 그 사람이 자신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국민교육의 꿈을 갖고 있었는데 사실은 문맹자였습니다. 그래서 알키누스를 만나고 난 다음에 돌아와서 독학으로 공부를 해서 문자를 깨우치게 됩니다.
알키누스가 드디어 왔을 때 사실을 이야기하니까 “제가 한번 돌아보겠습니다.”하고 다 돌아보고 나서 탄식을 했습니다. “왕이여 이 나라에서의 교육은 불가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책이 없습니다. 전 제국에 있는 책을 합해도 요크셔도서관에 있는 책만큼도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알키누스 선생” “소를 키우셔야 되겠습니다.” “무슨 소를 키우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게 뭐냐 하면, 양피지라고 해서 꼭 양만 쓰는 게 아니라 말부터 소까지 다 쓰는데, 배받이만 뜯어서 수없이 무두질을 해서 얇은 종이처럼 만들어서 쓰는데 한 마리에 두 장밖에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2백 페이지짜리 책을 만들려면 백 마리의 소가 죽어야 됩니다.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소를 키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필경사들을 동원해서 입수할 수 있는 모든 그리스 로마의 문헌들을 입수하면서 그것을 필사를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 다음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됐느냐 하면 이제 세월이 흐릅니다. 그래서 한 5세기쯤 됐을 때 네스토리우스파와 소위 단성론자들의 말하자면 이단 논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론이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과 아래로부터 그리스도론이 있지 않습니까? 위로부터 그리스도론은 “육화(肉化)되기 전에 이미 그분은 하나님이셨다. 때가 되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 이게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고,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원래 신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셨다. 너무너무 뛰어나서 하나님이 그를 자기 아들로 인정해주셔서 신의 위격으로 올려주신 것이다.” 그게 양자설입니다. 그런 주장을 네스토리우스파와 단성론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보다, 말하자면 인성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옛날에 있었던 기억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옛날에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하던 영지주의의 환상이 떠오르는 것이지요. 전부가 다 가현설(假現說)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럴 경우에 무슨 문제가 생깁니까? 십자가의 죽음도 죽은 척 한 것입니다. 그러면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십자가의 죽음이 역사적으로 육체를 가지고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경계하면서 인성을 강조해야 되겠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스토리우스의 주장도 어떻게 보면 결과론적으로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지만 사실은 그 사람들은 그 사람 나름대로 한쪽 극단을 굉장히 고민했던 흔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이단으로 정죄되어서 정리가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어디로 도망을 가느냐 하면 시리아, 페르시아, 안티오키아, 다마스쿠스, 엘리사 등으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리아어로 먼저 번역이 됩니다. 이 사람들이, 네스토리우스가 아리스토텔레스 전공자였습니다. 아주 탁월한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고 다 가지고 간 것입니다. 가서 시리아에서 번역을 하고 페르시아에서 번역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때는 이미 벌써 시간이 흐르면서 이슬람들이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스페인 쪽 그쪽을 다 점령하고 그 다음에 이쪽 로마 쪽으로 내려와서 시칠리아섬까지 다 점령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서 말하자면 이슬람권들이 다 점령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이 사람들이 그 치하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대우를 잘 받았습니다. 종교가 다른데.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헌이 물건입니다. 보니까 어마어마한 지식의 세계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역을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보호해주면서, “너희들 나름대로 기독교를 믿어라. 그 대신 아리스토텔레스와 이 그리스 작품들을 번역하는 일에 기여하라.” 그래서 어느 정도냐 하면 약간 과장도 있는데, 양피지에다가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의 문헌을 번역해가면 번역이 잘 됐는지를 검토한 다음에 관청에서 저울 위에 올려놓고 그 무게만큼의 금을 달아서 번역료로 주었다고 합니다. 별로 감탄도 안 하십니다. 그러니까 번역만 하면 호화로운 집에서 살 수 있을 정도의 여건을 갖추게 되고 고위직들과 서로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번역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뭐냐 하면 다마스쿠스의 요한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메섹의 요한’이라고 역사 시간에 배운 사람인데, 이 작품을 읽어보십시오. 철학, 이단론, 정통신앙론 저는 다 읽었습니다. 그런데 탁월합니다. 오늘날같이 이렇게 세상의 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통합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사실 당대의 마지막 교부였다고 말해도 됩니다.
그 다음, 이슬람 세계에 의해서 압바스 왕조가 들어서게 됐는데 6세기에 아누시라완왕 치하에서 그리스 사상이 들어오는 것을 가지고 이슬람에서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거기 뭐가 있었습니까? 이슬람사상이 있었으니까. 두 개가 충돌을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충돌 안 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충돌을 경험했던 것과 나중에 경험하는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때 이 왕이, 아누시라완이라는 이 왕이 결단을 내립니다. 여기에는 해독이 되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해독시키기로 하고 과감하게 받아들여야지만 새로운 문명을 이룰 수 있다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바그다드에 학교가 세워지고 그리스어, 시리아어, 페르시아어로 된 책을 전부 다 중역하게 되는데 아랍어로 번역합니다. 그러면서 드디어 그리스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전 면모가 광범위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830년에는 압둘라 알 마문 칼리파가 ‘지혜의 집’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이것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면 세종이 만들었던 집현전 같은 것입니다.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를 지혜의 원천으로 보고 그와 관련된 모든 도서를 모으며 최고의 학자들이 여기에서 모든 학문을 연구할 수 있도록 왕이 직접 후원해 주는 엄청난 사역을 하기 시작합니다. 10세기 초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집이 완역됩니다. 기독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완역된 것은 13세기에 와야 이루어집니다. 300년을 뒤진 것인데 이렇게 이루어지게 되고 이 사람들도 신플라톤주의 입장에서 몇몇 사람들이 나오는데 알파라비 같은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논리학을 수용하고 플라톤주의적인 입장의 입각 점을 가지고 두 사상을 통합하려고 합니다. 다 기억해야 할 사람들인데 알파라비, 아비센나, 알가잘리, 아베로에즈 이렇게 네 사람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인데 기억하기 어려우면 두 사람 아비센나와 아베로에즈를 기억해야 하고, 한 사람만 기억해야 한다면 아베로에즈를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사람은 플라톤주의 입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통합하려고 했다면 아비첸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 플라톤을 가미하여 사상의 체계를 세우고자 합니다. 이 사람은 천재였습니다. 이미 18세 때에 모든 학문을 끝냅니다. 안 믿어집니다. 이 사람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논리학, 자연학, 심리학, 형이상학까지 모두 완벽하게 체계를 만드는데 누구 때문이었겠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를 완독하고 완전히 이해하고 자기 사상으로 아랍주의의 맥락에서 그것을 재진술해서 사상의 체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사상이라는 것은 아무리 존 듀이나 영미 철학을 전공해도 마지막에 생각할 때 영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말로 생각합니다. 만약에 그것까지 영어로 사고 되면 그는 이제 한국 사람과는 잘 통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진짜 미국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아예 거기서 태어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항상 자기 말로 사고하게 되어있습니다. 사르트르나 하이데거 같은 사람이 동양철학을 비판하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자인 동사가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철학이 되겠느냐고 합니다. 그리스어로 말하면 ‘에이나이’ 라는 부정사 ‘To be’라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철학이 사유가 되겠느냐고 중국과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철학을 깔아뭉개는 발언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굉장히 무식한 발언입니다. 왜 무식하냐 하면 사유체계 자체가 동서양의 철학, 여기서 동양이라는 것은 모든 동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를 이야기합니다. 동북아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첫째가 종사하는 직업 환경이 철학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하면 서양은 크레타문명을 중심으로, 에게문명을 중심으로, 그리스 문명으로 확장되어 나가면서 서양문명을 형성합니다. 기본적으로 상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문명입니다. 상업을 하다보니까 이것은 있는 그대로 믿으면 바보입니다. 반드시 거래에 실패합니다. 뭐라고 말하면 ‘이것은 현상이고 저 뒤에는 무슨 속셈이 있을까?’ 그렇게 계속해서 묻다 보니까 본질을 묻게 됩니다. 그런데 그에 비해서 동양은 어떠냐 하면 현상을 그대로 믿어야 하는 직업에 종사합니다. 농사입니다. 비가 오면 곧 봄이 옵니다. 믿어야 합니다. 봄이 오면 씨를 뿌려야 합니다. 씨를 뿌리면 비가 옵니다. 그러면 싹이 납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잎이 돋아나고 가을이 되면 열매가 맺습니다. 서리 내리기 전에 추수해야 합니다. 현상 속에 본질을 자꾸 캐들어갈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환경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온 차이이지 그것이 마치 천재성의 차이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문명적인 맥락을 너무 못 읽은 것입니다.
이야기하면 너무 긴데 그것은 다른 기회에 하고 아비첸나가 ‘의학정전’이라는 치유의 책을 씁니다. 치유의 책은 의학서적이 아니라 논리학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의 사고가 병들고, 자연학을 모르기 때문에 미신에 빠지고, 수학을 모르기 때문에 셈을 못해 천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이 누구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물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형이상학을 모르기 때문에 본질을 알 수 없는데 그것이 모두 질병이라고 합니다. 그 정신의 질병을 치료해 주는 것이 이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볼 때 우리 모두 사실은 깊은 병에 걸린 채 신약이라는 아스피린만 먹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너는 병이 안 낫는다고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대답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답은 여러분에게 맡깁니다. 이 사람이 의학정전이라는 책을 씁니다. 5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은 의학생리학입니다. 생리학을 저도 공부했는데 정말 재미있습니다. 2권에서는 약물과 복합처방을 씁니다. 3권에서는 개별장기의 질병으로 이루어지고, 4권에서는 이 개별장기들이 함께 연결되면서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지 종합질병에 관해서 씁니다. 5권에서는 이런 복잡한 몸을 어떻게 복합적으로 치료할 것인가를 제시하는데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히포크라테스가 쓴 의학서가 모든 의학의 기본교과서였는데 이것이 폐기 처분되고 아비첸나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살리에리’라는 대학이 초창기 11세기에 서게 되는데 거기에 보면 아비첸나의 동상이 서 있고 의학정전이라는 카논이 부조물로 나옵니다. 그럴 정도입니다.
이에 비해서 알가잘리는 철학자가 아니라 완전 신학자였습니다. 철학을 모두 제시하면서 철학자들이 스스로 얼마나 모순되는지를 말하자면서 고유한 이슬람 신앙을 파수하고자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제일 주목해야 할 것이 다 잊어버려도 좋으니까 아베로에즈는 기억하십시오. 이 사람 아베로에즈는 기독교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기독교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접하게 된 것이 아베로에즈를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그전까지는 Philosophers, 철학자 그러면 누구를 가리켰느냐 하면 플라톤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는 Philosophers 하면 그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의미하게 되었고 ‘꿈엔 딱 토르’ 영어로 이야기하면 커먼테이터인데 그 사람은 아베로에즈입니다. 별명이 붙여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이고 이 철학자가 너무 어려우니까 커먼테이트를 통해서 이해하게 되는데 이 사람은 거의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가장 중요한 해석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너무 어려우니까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세 번의 주해서를 씁니다. 첫 번째 주해서를 상세하게 썼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아리스토텔레스나 이 해설이나 거의 비슷하다. 너무 어렵다.’ 그러니까 더 쉽게 확 줄여서 두 번째를 씁니다. 이것도 감당하기 버겁다고 하니까 또 더 짧게 줄여서 씁니다. 마치 루이스 베르콥이 조직신학 7권을 ‘기독교 개론’, ‘Summary of Christian Doctrine’ 한 권짜리로 요약하듯 이렇게 쓰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드디어 재미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구논리학과 아벨라르두스입니다. 아벨라르두스는 11세기의 사람인데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아랍의 문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때 아랍의 책들도 함께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아랍의 책들이 들어왔는데 보니까 다 꼬불꼬불한 글씨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했더니 아랍어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된 것을 찾으라고 수배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상당한 돈을 주고 사게 됩니다. 그때 아직 아리스토텔레스가 완전히 재발견되기 전에 아주 중요한 인물 한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가 아벨라르두스 혹은 불어로는 ‘삐에르 아벨라르’라는 사람입니다. 역사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이 사람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데 이 사람이 쓴 것이 논리학이 굉장히 유명한 책입니다. 이 사람이 더 유명한 것은 사실은 철학 때문에 유명한 것이 아니라 스캔들로 유명해집니다. 엘로이즈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원래 프랑스의 발레라는 시골 출신인데 워낙 똑똑해서 독학으로 공부하는데 그때 손에 넣고 공부한 책이 논리학책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이 라틴어로 번역된 책으로 공부했는데 그것도 원전을 본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해설된 것을 봤는데 이 사람의 머리 수준이 거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를 가르쳐주면 두 개, 세 개로 변형시키면서 자기 나름대로 논리학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논리학입니다. 그래서 아벨라르두스가 변증학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했느냐 하면 거기에 있다가 다른 한 도시에 가서 해보니까 겨룰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린 나이에 칠판을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가르치는데 인기가 굉장합니다. 내가 그래도 큰물에 가서 놀아야지 여기서 이래야 되겠냐고 간 곳이 파리였습니다. 그 당시의 파리는 철학자들의 도시였습니다. 그때 파리의 교육은 크게 4개의 기관이 담당했는데 첫째는 궁정 학교가 있었습니다. 왕실의 후원을 받는 귀족들의 학교입니다. 그다음에 주교자 성당학교가 있었습니다. 도시에 있는 큰 성당의 학교입니다. 당연히 노트르담 교회 안에 주교자 성당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약간 시골에 수도원학교가 있었고 그다음 네 번째가 개인 학교였습니다. 개인학교가 그 당시 파리의 개인 교사들이 수많은 작은 학원들을 만들면서 논리학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면 논리학이나 산술학이나 예를 들자면 그리스 시대 때에 3학 4과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셉티무스 레버랄리스라고 해서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4가지 학문은 이수해야 합니다. 그 3학이 무엇이냐 하면 논리학, 수사학, 문법학입니다. Trivium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Trivial ‘하찮은’이라는 영어 단어가 나올 정도로 이것은 모든 사람이 공부하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학문의 세계가 있었고, 그다음에 4과는 수학과 관련이 되는데 산술학, 기학, 천문학, 수학의 음의 표현인 음악, 이렇게 7가지 학문을 해야지만 자유인으로서 어떤 상황에서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랬는데 이 아벨라르두스는 천재였습니다. 그래서 파리에서 쭉 보니까 강의를 들어보니까 별것 아닙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여기서 내가 한번 이름을 날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때는 신학과 상관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가장 인기 좋은 사람이 하는 곳이 어디인가 보니까 여기에 있는 주교자 학교가 있는데 샹포의 윌리엄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탁월하게 논리학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성실하게 학교에 다닙니다. 불과 얼마를 다니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어느 수업 시간에 ‘학생들 질문 있습니까?’ 그러니까 한 학생이 일어서더니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한 강의 중에 모순되는 것을 모두 다 찾아서 질문하기 시작했는데 샹포의 윌리엄이 결국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것으로 학자의 수명이 끝날 정도의 치명상을 입습니다. 그리고는 ‘사실 나는 학생으로 와있지만 학생이 아니라 나는 선생이다. 이런 후진 데서 교육하지 말고 우리 학원으로 와라.’ 하고 학생들을 데리고 나갑니다. 그리고 가만히 보니까 지금 지역이 생각이 나지 않는데 안셀무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캔터베리의 안셀무스가 아닌 다른 안셀무스인데 성경을 아주 잘 가리키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가서 또 똑같은 방식으로 개박살을 냅니다. 일시에 이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 됩니다. 돈다발에 싸여서 살 정도로 우리로 말하자면 초특급 강사입니다. 요즘 강사료를 일 년에 백억 이상 받는다는 일타강사가 있답니다. 백억이 이백억까지 올라간답니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받으면서 승승장구하던 차에 노트르담의 참사회의 참사회원인 플베르라는 참사관이 이 아벨라르두스를 찾아옵니다.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뭡니까?’ ‘저에게 조카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요?’ ‘걔가 공부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우리 학교를 보내든지 다른 학교를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얘가 너무 예뻐서 시선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공부하지 못한답니다. 그리고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개인 교사를 부르면 되지 않습니까?’ ‘개인 교사가 오기만 하면 몇 주 안에 개박살이 나서 사표를 냅니다.’ 왜? 이 질문의 수준이 선생을 능가합니다. 호기심이 나서 ‘내가 한번 만나보죠.’ 그리고 만났는데 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예쁜 얼굴입니다. 이 플베르트는 이 아이를 잘 키워서 프랑스 왕실의 왕비를 만들어서 자기가 출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카딸을 양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보니까 눈을 아래로 까면서 질문을 해대는 것입니다. 그것을 유창하게 답변하면서 ‘그 정도 수준의 질문을 그 나이에 하냐? 이런 것 정도는 안해 보았니?’ 하면서 가능한 질문을 제시합니다. 한, 두 번 만나면서 이 여자 엘 로이즈의 자존심이 꺾이면서 그다음부터는 열심히 공부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부할 때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계속 한숨을 쉬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정신 차려라.’ ‘선생님! 선생님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제게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남자는 감이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봐.’ ‘선생님 제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알 수 있어.’ 그러면서 사건이 생깁니다. 엘로이즈가 열렬히 사랑하게 되고 결국은 아이를 갖게 됩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니까 둘이 도망을 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아들을 낳고 아들의 이름을 아스트라라부스라는 이름을 짓게 되는데 아스트라라부스는 그 당시 아랍 사람들이 만든 천칭계입니다. 별자리를 보면서 다이얼을 돌려서 기계를 맞추면 그것에서 별들의 위치를 설명해 주는 것이 그때 있었습니다. 그런 학문에 이미 눈을 뜨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풀베르트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자기 일생일대의 대 프로젝트인 왕비 프로젝트를 저 거지 같은 녀석이 다 망쳐놓은 것입니다. 쫓아가서 아이를 빼앗고 여자애는 수도원으로 보내버리고 평생 남자구실을 할 수 없도록 칼로 거세해 버립니다. 그리고 철학계에서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철학계에서 사라져 버리고 어느 수도원에서 허드렛일하다가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고 다시 강사 자리에 복귀하면서 이 사람은 유명세를 더 치르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철학계를 다 평정하고 나니까 저 위에 있는 하나의 학문의 세계가 보이는 것입니다. 무슨 학문이겠습니까? 신학의 세계가 보이는 것입니다. 저기에 도전해서 교회를 평정해 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신학에 도전합니다. 이 사람의 스승이 유명론으로 유명한 로스켈리누스였습니다. 그 밑에서 6년을 배웠는데 아벨라르두스만 이야기해도 2시간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이제 정리를 하고 진전해야겠습니다.
이 아벨라르도 그의 공헌이 무엇이냐 하면 그 이전까지는 실재론이 완전히 지배하던 세계였습니다. 실재론이 무엇이냐 하면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위에 일차가 있고 실재가 있고 나머지는 다 XX다. 예를 들자면 사람이라는 것이 진짜 실재이고 김 아무개, 신 아무개, 최 아무개 이것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것들은 마지막에 실재로 돌아가는 것이고 참으로 있는 것은 실재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이것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유명론입니다. 유명론은 유명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름밖에 없다고 해서 유명론입니다. 유일하다고 할 때의 唯 자와 名 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로스켈리누스 같은 사람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 목에 대고 ‘동물’ 그럴 때 동물은 플라티우스보키스 목청의 떨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실체가 없다고 보면 기독교에서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 성부, 성자, 성령이 있는데 실재가 없다면 이것은 삼신이 되어버리고 이 세 신이 어떻게 관계되는지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의 실재인 신적 본질이 있고 그 하나의 신적 본질이 세 위격을 가질 때 세 위격을 가지면서도 한 하나님인 것이 설명되는 것입니다. 더 큰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그 죄 때문에 죄가 우리의 왕 노릇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어떤 실재가 오염되지 않고는 그런 것들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실재가 빠져 버리면 안 된다는 것들을 입증합니다.
더 큰 것은 무엇이냐 하면 큰 교회가 5개나 있었는데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로마 있었는데 다 망했습니다. 마지막에 다 이슬람의 수중에 떨어지고 달랑 하나 남은 것이 로마교회입니다. 쥐꼬리만 한 교회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다 간섭합니다. 로마교회라는 보편교회가 먼저 있는 것이냐? 개별교회가 먼저 있는 것이냐? 이것이 유명론을 촉발하는 요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유명론의 입장에서는 로마교회는 이름뿐이고 개별적인 교회가 진짜 교회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고 보편론의 입장에서는 ‘무슨 소리냐? 이 개별교회들은 우연히 있는 것이고 로마교회만이 단 하나의 교회이다.’ 이렇게 됩니다. 그 사이에서 아벨라르두스가 소위 이야기하는 것이 온건 실재론이라는 것을 다시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개인의 중요성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사건입니다. 십자군원정 때만 해도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교회라는 엄청난 대의를 위해서 죽어가는 그런 부속품들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되었던 것을 개인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으로 끌어올리면서 현대 시민혁명과도 연결되는 사상이 여기에서 발아됩니다.
그러면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함께 엮어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스콜라주의입니다. 스콜라주의라는 것이 ‘스콜라’라는 말에서 왔고 스콜라주의는 원래 그리스어입니다. ‘스콜레’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한가하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의 공부는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밥 벌어먹고 바쁜 사람들은 못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못 했습니다. 그때의 선구자가 누구냐 하면 안셀무스였습니다. 아벨라르두스 같은 이런 사람입니다. 안셀무스는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입니다. 영국의 런던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반쯤 가면 어마어마하게 큰 성당입니다. 거기에 주교로 있었습니다. 제가 그 성당에 가서 수위에게 여기 혹시 안셀무스가 목회하던 곳이 아니냐고 하니까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왔다가 가도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 너는 그런 질문을 하냐고 대단하다고 하면서 설명해 준다고 막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원래 이 사람이 아오스타 사람인데 이탈리아반도 북부지방에서 아주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껄렁껄렁한 인간이었고 엄마는 굉장히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안셀무스가 탁월하게 공부를 잘했는데 아버지의 집에서 있다가 가출합니다. 가출할 때 그냥 나오지 않고 아버지 돈을 왕창 가지고 나와서 그 돈을 가지고 학원비로 씁니다. 다 돌아다녔는데 배울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때 프랑스 베크의 랜 프랭크스는 탁월한 선생님이 가르치는 수도원이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갑니다. 거기서 공부합니다. 랜 프랭크스가 대주교로 가고 거기서 죽자, 원장이 되고 랜 프랭크스의 후임으로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됩니다. 이 사람이 쓴 책이 ‘프로슬로기온 모놀로기온’이라는 책입니다. 신 존재 증명에 대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가지고 이성주의라고 반복하는데 리처드 먼로 교수가 말했듯이 이것은 일종의 Benediction 그러니까 하나님을 송축하는 의미에서 쓴 것이지 이성으로 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습니다.’ ‘크레도 우트 인텔리 감’ 그다음에는 ‘비레스 코바이런스 인텔렉트’ 지혜를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래서 지금 십자군 전쟁 절대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벨라르두스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스콜라주의가 태동하게 됩니다. 기독교가 탈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신앙 운동이 일어나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이제 들어오게 되고 이러면서 카타리파 알비파 같은 것들이 나오게 되면 설명할 수 없고 시간이 없어서. 그래서 중세 신학에서는 이제 긴장이 이어서 이랬는데 그런데 파리 대학에서 이제 아리스토텔레스 강의 금지령이 내립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금지한 게 아니라 자유롭게 연구는 할 수 있는데 강의는 하지 말라고 내려요. 왜냐하면 아까 이야기한 것 같은 그런 몇 가지 문제 천지창조의 문제하고 또 하나는 인간의 영혼 문제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영혼이 물질이라고 봤습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데모 클레스토스 이후 계속 나오는 원자론 같은 데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물질과 형상이 함께 만나는데 그런데 형상만 따로 존재하는 거는 그것은 플라톤의 생각이고 그것은 함께 물질과 함께 소멸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아리까리한 말을 남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영혼은 육체의 소멸과 함께 사라진다. 그것도 물질의 일종이니까. 그런데 지성은 글쎄 어떻게 될까?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초기에는 완전히 유물론적으로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플라톤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이게 이제 연구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 지성이 이제 그거 아베로에즈 같은 사람이 어떻게 보면 그 지성이 우주로 돌아가는데 모든 지성이 단일하게 만나버린다 이렇게 우주적인 지성으로 단일 지성론이라 그러는데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문제가 되냐면 사후에 심판 같은 게 불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군지 모릅니다. 한 덩어리가 돼버렸기 때문에. 이런 거 그다음에 신의 창조 섭리 이런 것들 때문에 이제 긴장감이 있으면서 1210년, 1215년, 1231년, 1236년 네 번에 걸쳐서 강의 금지령이 내려요. 특히 31년에는 재미있는 게 뭐냐 하면 잘못된 것을 고칠 때까지는 강의를 못한다. 이렇게.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돼?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우리보고 보지 말라 그럴까? 그러니까 이제 더 열심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산됩니다. 그때 이제 대 알베르투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로저 베이컨베이트에 살았는데 그때 알베르투스가 파리 대학에 있었고 그다음에 1255년에 이제 아리스토텔레스가 전면적으로 수용되게 됩니다. 받아들여지면서 모든 과목을 다 강의해도 좋다고 이야기하게 되고 이때 이제 이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인물하고 보나벤츄라입니다. 이거 같은 사제 기관이 아니고 보나벤츄래에서는 프란체스코 소속의 수도사였고 그다음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도미니코스 수도원의 수도사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알베르투스 그다음에 일자의 명제에 대한 00, 그다음 넘어가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결론적으로 쭉 보면 마무리를 해야 될 시간이 다가오는데 급하네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반응이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지는데 보수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는 그 당시에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신플라톤주의와 아우구스트누스주의를 철저하게 옹호를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기득권 계층으로 저항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보나벤츄라, 프란치스코 학파, 겐트의 앙리 같은 사람들이 이런 입장에 서있었고 보나벤츄라의 작품은 한번 읽어보십시오. 대단합니다. 어마어마합니다.
그다음에 이제 비판적 수용주의 극단적 아베주의부터 이야기할게요. 여기는 이제 극단적인데 아베로에즈에 의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전면적인 수용이 아베로에즈는 이슬람에서도 파문당합니다. 아베로에즈는 어떻게 봤냐면 최고의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뿐이다. 그리고 코라는 그 최고의 철학을 어린아이들이 알아듣게 쓴 유치하기까지 낮아지도록 쓴 우화적 설명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을 기독교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이성주의가 강화되는데 이게 브라방의 시제는 아까 그 보에티우스가 아니라 또 다른 다치아의 보에티우스 같은 사람이 여기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결국 이것도 영향력을 상실하고 이것도 영향력을 상실하고 이쪽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성경과 신플라톤주의를 근간으로 초자연적 진리를 설명합니다. 양보 안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자연학을 받아들여서 이미 주어진 계시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그다음에 명제론, 분석론 이런 것들을 철저하게 사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 세계에는 인과관계의 법칙이 엄밀히 적용한다고 보고 기적의 경우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도 보고 다시 말해서 신앙의 세계는 플라톤주의적으로 성경을 가지고 믿음으로 해석을 해야 하고 자연 세계는 자연 법칙으로 해석을 해야 되고 둘 다 하나님이 주신 법칙이다. 이렇게 그래서 은총은 본성을 자연을 완성한다 혹은 본성을 완성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대 알베르투스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다음 그 토마스 아퀴나스는 누구냐 이 사람은 아키노라는 마을에서 태어나요. 그래서 아퀴나스라는 이름이 나온 것입니다. 이 사람은 원래 한 어렸을 때 아마도 5, 6살쯤에 베네딕토 수도회로 몬테카지노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로 올리바티오라고 해서 이미 봉헌된 어린아이로서 거기에 이제 수도생활로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이제 교황권과 왕권과의 갈등으로 학교가 폐쇄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와서 그래서 이제 어디를 가게 되냐 하면 우선 이거부터 보겠습니다. 카톨릭 신학자고 나폴리 대학으로 가게 됩니다. 나폴리 대학은 프리드리히 2세가 만든 대학이고 교황권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뭐든지 가르쳐도 된다고 개방을 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대학으로 키우는데 거기에 가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게 됩니다. 그 공부를 하는데 거기서 천재성을 보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그렇게 거기서 나폴리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중에 재미있는 일화 하나만 소개하면 좀 피로가 풀릴 것입니다.
아퀴나스가 논문을 하나 썼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다음에 부활이라고 하는 논문을 썼는데 어느 날 마음이 갈급하니까 예배당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야 저 유명한 천재가 어떻게 기도하는지 우리 좀 구경하자.’ 그리고 기둥 뒤에 숨어서 구경을 하는데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는데 이 강대에서 십자가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뭐냐 하면 ‘아퀴나스야 너는 참 나에 대해서 잘 썼구나. 올바르게 썼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랴?’ 그랬더니 아퀴나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도미네 노미니시데’ ‘주님이시어 당신 말고는 내게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기도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학교를 오가면서 충격적인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수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는데 그 수준이 나폴리 대학의 강의실에서 교수가 아니면 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지적인 수준을 가지고 결론은 철학으로 내는 게 아니라 복음으로 내는 것입니다. 감동을 받으면서 도미니코회 수도사들이었습니다. 거기에 가입을 하게 됩니다. 엄마 몰래. 그리고 이제 그 도미니코 수도사로서 있는데 총장님이 오셔서 그 사람을 면담하더니 얘는 너무 천재적인데 여기다 내버려 두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빠져버리겠다 해서 경건을 돕기 위해서 파리 대학으로 유학을 가라. 그리고 추천을 해줍니다. 엄마 몰래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붙잡혀 옵니다. 붙잡혀 오니까 형들이 얘의 이 모든 열정은 애가 너무 경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탑에다가 가두고 예쁜 옷을 입혀서 여자를 돈 주고 사서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를 꼬셔서 칠계를 범하게 하면 엄청난 보상을 해주겠다. 그리고 가서 유혹을 하는데 토마스 아퀴나스가 딱 그가 들어오는 걸 보고 벽난로에서 장작을 꺼내서 휘두르면서 마귀야 물러가라. 그리고 저기에다가 십자가를 그려요. 순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파리 대학으로 가게 됩니다. 파리 대학으로 가서 거기서 이제 유명한 스승을 만나게 됩니다. 그게 대 알베르투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라고 하는 인물이었는데 이분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해설한 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게 맞는지를 다 검사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동물지가 나오면 그 동물지를 가지고 동물을 찾아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펴놓고 진짜 그렇게 똥을 싸는지, 진짜 배를 가르면 그 내장이 나오는지를 조사해서 이건 틀렸다 해보니까 아니더라 다 고칩니다. 그럴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열정을 품었는데 결론은 뭐냐 하면 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좋든지 싫든지 상관없이 이미 벌써 그 당대의 정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식자층에서. 그러니까 이것을 해석을 해서 새롭게 제시하지 않으면 기독교 자체가 외면을 받는 위기가 올 것이라는 것을 선지자적인 안목으로 간파를 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다 완전히 점검하면서 이건 틀렸다 이건 틀렸다고 말하면서 옳은 것을 사용하고 그런 것을 교정해 주면서 새로운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파리 대학에서.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사명이 떨어져요. 교황청에서. 그게 뭐냐 하면 퀠런이라는 곳에 고등교육기관을 세워야 되는데 당신밖에 적임자가 없다. 그러면 그곳으로 교장으로 임명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쌍제르망이라고 하는 수도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강의 금지령이 내렸을 때 자연학을 강의하고 거기에 미친 듯이 가서 강의를 듣습니다. 그리고는 퀠런으로 따라갑니다. 따라가서 거기서 공부를 합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또 피곤을 잊기 위해서 재미있는 일 일화 한 가지만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집이 돈이 좀 있는 귀족 가문이었기 때문에 양피지를 살 돈이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해서 썼는데 그 메모지를 놓고 온 것입니다. 학생들이 주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이게 배우지도 않은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한 1년 뒤에 배울 내용을 예습을 한 종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내용을 모르니까 이게 누가 이런 걸 남겼을까? 당연히 선생님이 맡겼겠지. 그리고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에게 갖다 줍니다. 마그누스가 딱 보더니 ‘이것은 누가 쓴 거냐?’ ‘선생님 것 아니세요’? ‘내 꺼 아니다.’ 딱 보고 ‘아퀴나스 거구나.’ 그리고 아퀴나스를 불러서 칭찬을 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럴 정도로 그렇게 철저하게 공부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이 사람이 이제 어떻게 됐냐면 결국은 뭐냐 하면 제일 위대한 것이 뭐냐 하면 신학대전을 남기는 것입니다. 신학대전이 어느 정도 분량이냐 하면 약 60권입니다. 그런데 그 책만 쓰고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60권은 이 사람이 49살에 죽었는데 그때까지 쓴 책의 7분의 1입니다. 한 420권의 책을 쓴 것입니다. 궁금하지 않아요? 어떻게 아까 오리겐은 2천 권 이 사람은 450권이라는 책을 썼을까? 아무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가설이 거의 확실한 가설은 이것입니다. 필사자들의 방이 있고 여기에 여러 명의 필사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혼자 들어와서 ‘신학대전 씁시다. 어디까지 썼지요?’ 그러면 ‘천지창조에 대해 썼습니다.’ ‘자 2항부터 나갑니다.’ 창조를 막 부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초안을 써야 되지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은 아직 정서하기 전이니까 막 자기만이 알아볼 수 있도록 속기로 깔겨 쓰는 것입니다. 그럼 정서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옆으로 이동해서 ‘어디까지 했죠?’ ‘출애굽기 2장 10절까지 하다 말았습니다.’ ‘그러면 11절 들어갑니다. 쓰세요.’ 그리고 출애굽기 주석을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뚜기처럼 이동하면서 불러주고. 그리고 끝나면 다시 돌아가서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썼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속에 이미 모든 게 다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신학대전은 읽으신 분은 거의 없겠지만 이것은 철학사에서도 꼭 짚고 넘어가는 책입니다. 어마어마한 책입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중 유물론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어쨌든지 간에 관념적인 요소인 부동의 동작 제1의 원리 이런 걸 해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이루게 됐는데 우리 개신교에서는 이 사람의 평가를 아주 박하게 하고 이성주의 신앙을 팔아먹은 이성주의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나간 것입니다. 그다음 보겠습니다.
알베르투스와의 만남은 그 정도로 하겠습니다. 그다음에 넘어가겠습니다. 이렇게 했는데 이게 이제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의 구조입니다. 그래서 1부, 2부, 3부로 나뉘어져요. 1부는 신에게로부터 이몰네이션 세계와 인간이 발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거기서 힘과 인간과 천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게 되고 2부는 레마네이션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와 인간은 신을 찾아가야 될 것 아닙니까? 회귀입니다. 회귀. 윤리론입니다. 이것이 60권 중에서 이게 30권을 차지합니다. 윤리론에 들어가면 그리고 내 마지막에 3부는 세계의 발출과 회귀의 근거 교회 성사, 그리스도 내세론 등이 나오는데 3부는 자기가 다 완성을 못 해서 후배들이 완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면 한 문항에 한 문항에 약 4장에서 15장까지로 이루어졌고 할 수 있는 모든 질문들이 제기됩니다. 그리고 반박할 이론이 나오고 거기에 대한 변증이 이루어지고 그다음에 정리가 나오고 마지막에 솔루션이 나오는 4부로 구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 무엇과 똑같으냐면 어디서 나온 전통이냐 하면 중세에 책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학문이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느냐 하면 디스피타치오 라는 수업 방식입니다. 그래서 그건 뭐냐 하면 말하자면 토론 방식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디스피타치오를 하냐 하면 예를 들어서 한 남자가 여러 여자에게 장가를 들 수 있는가 이런 논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떡하냐면 먼저 성경에서 그럴 수 있다 아니다를 다 찾아냅니다.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쓴 사람이 아벨라르두스고 그 사람이 쓴 책이 시크리트 논이라고 합니다. 인스 오아 낫 이라 하는 예스 오아 노 이라고 하는 그 책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고 그다음에는 이제 초대 교부들의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그다음에 이제 자기 의견을 표력하고 마지막에 결론을 내는 것입니다. 그거 한 주제를 가지고 2박 3일 동안을 8시간씩 토론을 벌입니다. 그때의 그 발표자가 대개 바칼레리오스라고 하는 대학원생이 발표를 하는데 그러면 온갖 심혈을 기울여서 연구를 해서 발표를 하면 그때의 교수들 사제들 학문에 관심 있는 사제들 대학원생들 학부생들까지 다 지도교수까지 다 와서 참여를 합니다. 그러면 이제 발표를 하면 그다음에 교수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기는 좀 괜찮아. 대학원생들이 이제 질문을 하는데 이때는 저 사람을 개판으로 뭉개야지만 자기가 다음에 바칼레리오스로 임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학문의 유능성을 보이는 거라 피도 눈물도 없이 하이에나 같이 예를 들어서 물어뜯는 것입니다. 그걸 이제 답변을 다 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까지 끝내고 나면 교수님이 가서 그것을 다 며칠 내에 정리를 해서 그날 밤에 정리를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장이라는 것을 최종적으로 발표를 하면서 한 남자가 여러 여자에게 결혼을 할 수 있다 없다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해결은 이런 경우엔 안 되고 이런 경우엔 된다. 이런 식으로 답이 나오겠죠? 이런 식으로 답변을 내려서 이것이 우리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유 토론 그것을 정규 토론이라고 해서 그래서 그 뭐냐 하면 디스피타치 오르디나 오르디나 라고 하고 그다음에 오르디나리아 라고 하고 그다음에 자유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디스피타치 쿠보드 리베르다라는 것인데 그것은 교수가 이제 발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발표자는 총장이 지명하고 이 교수는 할 수 있는 건 논제를 못 정하고 분야만 정합니다. 예를 들자면 그리스 철학, 중세 철학 그다음에 무슨 분석론, 논리학, 이렇게 정하면 그다음에는 그냥 모든 사람이 아무거나 질문을 해도 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교수가 갔다가 대답을 못하면 명성이 샹포의 윌리암처럼 단숨에 추락해서 무명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유명해지기도 하는데 그거를 평생 1~2년을 빼놓고는 죽을 때까지 계속했던 유일한 교수가 있습니다. 누구겠어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뭐든지 물어라. 뭐든지 질문해라.’ 그러면서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렇게 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행복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넘어가겠습니다.
그다음에 611개 중에서 512개를 답변하고 99개는 후대의 제자들이 보충합니다. 그래서 611개중에 512개가 답변하는데 저거 하나에 보통 4개에서 15개 이루어지게 되니까 약 4천개 내지 5천개의 질문과 대답이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논박 대 주장, 논박, 자기주장, 논쟁의 해결 이렇게 4부 구조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게 옛날에 아벨라르두스에 비하면 굉장히 13개나 됐었는데 줄어든 것입니다. 이렇게 간략하게 한 거고 아퀴나스의 윤리학은 쭉 있는데 뭘 봤냐면 세 가지 법이 있다고 본 거죠. 인간이 만든 실정법, 자연법, 영혼법이 있다고 봤는데 어떻게 봤냐 하면 자연법에 어긋나는 실정법은 처음부터 무효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악법도 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그러는데 그건 거짓말이고 그게 아니라 자연법에 맞지 않으면 그건 법도 아니다. 자연법 어디서 왔느냐 영원한 하나님의 뜻에서 왔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가야 되냐 하면 지혜, 정의, 절제, 용기 플라톤의 사추덕을 기본으로 하되 거기에 중용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과 기독교적인 신망의 덕을 포함해야 된다. 그래서 극단적인 금욕주의 같은 것들을 강조하지 않고 중용의 도리를 하면서 그러나 이것들이 양심의 작용이 매 순간 판단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프로네시스가 형성되어야 된다. 프로네시스가 뭐냐 하면 지향성입니다 경향성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불쌍한 사람을 보면 즉각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도와주게 몸에 이렇게 대게끔 누가 뭘 한다 그러면 그를 이렇게 섬기는 것이 반사적으로 행동이 되게끔 사람 속에 형성이 될 때 그 사람이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 이런 내용들로 이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래서 이제 결론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 사람들은 알렉산드리아 전경을 성경으로 믿었기 때문에 우리가 외경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전경으로 믿었기 때문에 마리아 숭배 사상이라든지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든지 이런 등등의 무형 실체론이 이렇게 동의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당대에 이미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배격하고 고립되는 기독교를 선택하여 자멸의 길을 걸어가는 대신 어거스틴이 그 이전에 약 90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밀려오는 쓰나미 같은 사상을 용감하게 받아들이고 소화해서 기독교적으로 재진술하여 선교적으로 당대의 사상에 맞서는 기독교적인 답변을 내놓음으로써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외톨이가 되지 않고 오히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바람이다. 이 두 개의 파도를 넘고 지금 오늘날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제3의 물결 앞에 서 있는데 여러분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이상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간보다 제가 5분을 더 썼는데 또 아쉬우니까 한 사람의 의미 있는 질문만 받겠습니다. 질문이 없으면 소감이라도 좋으니까 누구든지 말씀하십시오.
(질문 1) 포스트 모더니즘을 지금 말씀하셨는데 지금 저희가 그러면 대비해야 할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세계 사상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정리가 될 수 있을 거라 하면 그 외에 우리가 또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답변 1) 아직까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장 커다란 물결이라고 보고 그 대답을 원하면 저를 다시 한 번 부르십시오. 또 이 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거는 이제 칸트와 칸트주의가 어떻게 무너지고 그다음에 그 이후에 니체부터 시작을 해야 됩니다. 프리드리 니체부터 시작을 해서 어떻게 이제 미셀 푸코와 데르다에 이르기까지 해체주의가 나오게 됐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상적인 배경이 어떻게 되는가라는 것은 우리가 철학사적으로 공부를 많이 해야 되고 그래도 답을 얻고 싶으면 우선 니체의 책을 좀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대개 니체를 읽으라고 그러면 짜라투스트라부터 읽는데 그거는 너무 어려운 책이고 이 사람을 보라. 에케 호무라는 책부터 시작해서 몇 권의 책을 읽고 나중에 강의를 들으시면 설명이 될 거라고 봅니다.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한 분만 더 받겠습니다.
(질문 2) 해석 집 가는 주 알렉산드아파 가지고 이야기하시면 오르겐이나 이쪽 약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자적으로 우리가 또 어떻게 봐야 하는지?
(답변 2)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게 뭐냐 하면 이제 엄밀하게 말하면 어거스틴도 성경 해석학에 있어서는 알레고리 학파에 속하거나 알레고리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알레고리만 주장한 건 아닙니다. 이것은 문자적 의미, 상징적 의미, 영적 의미, 도덕적 의미 이렇게 사중적 의미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우화적으로 해석한 성경 해석의 결론을 결코 교리를 세우는 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교훈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거스틴의 설교가 마치 쓰레기인 것처럼 우리는 대학원에서 배웠습니다. 특히 오리겐 같은 설교. 그런데 그건 다 거짓말입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읽어보면 어마어마하게 장엄한 철학적인 요소들이 그 안에 담겨 있고 결코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우화적인 해석 그거는 그 사중의 해석은 그 당시에 전체적인 대세였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어거스틴이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해설할 때 감동을 받으며 회심했던 이유가 바로 그 우화적 해석 때문에 된 건데 그 우화적 해석이라는 것이 엉터리가 없는 게 아니라 이런 거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 사람이 감동을 받고 회심했던 설교하게 만들었던 설교중에 하나가 뭐였냐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문자적으로 그렇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거는 이 사건만을 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그 후로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바로 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그 마음으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바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그것이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우화적인 해석이라 보는 모형론적인 해석이 그 안에 포함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비판이 일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닌데 그러나 그렇게 위험할 정도로 성경 해석을 뒤덮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화적으로 해석된 것을 교리와 신학을 세우는 근거로 사용한 적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시면서 안 읽어서 문제지 읽어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이것으로서 마치겠습니다.
(질문 3) 목사님 와서 너무 감사하고요. 이렇게 목사님 강의 듣다 보면 다 철학자가 돼야 되지 않은가 이런 요구를 받습니다. 프렉티셔널이 시어널이 됩니다. 이것을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는데 읽을 시간이 그러니까 중요한 거는 알겠는데 우리 네슬리 유비인 같은 분들은 모더니즘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교회가 복음을 살아내면서 이겨내야 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딱 들으면 그러면 목사들이나 선교사들이 다 그런 방대한 신학적인 그 역사적인 그런 문헌들을 다 읽어서 소화해내서 이 시대와 싸워야 되는데 그러면 교회가 복음을 살아내는 거라고 또 이렇게 신학적이고 또 철학적인 그런 조류를 알아서 하는 것과 어떻게 우리 목사님은 이렇게 융합을 해내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답변 3) 그게 이제 그렇잖아요. 학문의 세계가 드없이 넓은데 어떤 구약학자 한 사람이 헤세드 하나를 30년을 연구했는데 그 산에 아직 아래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 우리가 그 학문의 세계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건 뭐냐 하면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철학자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것은 신학에 있어서 아주 필수적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하루아침에 누구의 사상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본따서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독서하고 특히 사색을 하면서 이러한 눈에 보이는 현상 뒤에는 어떤 세계의 정신이 오늘날을 움직이고 있고 중세를 움직였고 움직이고 있었는가?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공부를 하면 공부한 만큼 우리에게 지혜를 주는 것입니다.
저도 목회하고 선교하고 다 하잖아요. 그런데 뭐냐 하면 사람이 좋아하면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어서 연애를 못 한다는 것은 아직 제대로 된 사랑을 못 만나서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 만나면 화장실 갈 시간 없어도 연애할 시간은 나옵니다. 그러니까 공부하면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거 정리하려면 책 한 20권 정도 읽어도 정리하기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저도 이게 하루아침에 터득한 게 아니라 오랜 세월 저 공부하던 스터디 멤버들이 여기 있고 지금 다들 박사학위 받고 돌아오는데 2008년부터 가르쳐서 제가 공부하면서 수많은 세월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한 것입니다. 제가 어느 날 대학원에 들어가서 아리스토텔레스로 Th. M. 논문을 쓴 건 아닙니다. 그런 거 쓰는 사람도 없지만 평소에 살아갈 때 그냥 이렇게 꾸준히 영양분을 섭취하듯이 읽을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조금씩 읽어가면서 자기의 사고의 근육을 키워가면 여러분도 세월이 많이 흐르면 그렇게 사유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이 철학을 공부하면 정말 좋은 게 뭐냐 하면 누구 한 사람의 말에 속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볼 때 유익이 뭐냐 하면 철학을 하면 할수록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는 것들을 더 많이 입증하게 되고 철학자들이 허무하다는 거를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 폭로하는 것과 모르고 공격하는 것은 너무 다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익혀가고 우리보다 더 뛰어나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앞에 걸어갔던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들은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넓은 수만 평의 땅에서 싸웠다면 우리는 몇 평의 땅이라도 이제 경작하면서 싸워나가려고 애를 계속 쓸 때 우리의 역량도 점점 증가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합리적인가 그런 찬송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