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목회자 세미나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시138:3)
녹취자 : 허혜숙
다윗의 시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기도의 유익이 여기에 나옵니다. 우리 모든 목회자들이 기도가 유익하다는 것을 동의하지 않은 목회자는 없을 것이고 또 누가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할 때 그것이 하찮은 것이라고 이야기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로이드 존슨 목사님이 말년에 어떤 분에게 질문을 받았답니다. ‘목사님, 기도와 설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이 설교의 대가가 하는 말이 ‘설교는 항상 쉽고 기도는 언제나 어렵습니다.’ 그것이 설교의 대가의 마지막 증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자신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기도를 좀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권하고 싶은 책이 있는데 데이비드 브래이너드의 일기입니다.’ 그랬습니다. 저도 그 책을 여섯 권을 사서 여섯 번을 읽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한 권씩 새로 사서 읽었는데 지금도 네 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 책을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읽혀 보니까 사람들의 반응이 한결같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야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실 로이드 존슨 목사님도 그 책을 읽으면서 ‘영혼이 갈하고 침체가 되었을 때 가까이 읽었던 책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설교의 대가에게도 기도는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설교는 일단 어느 경지에 오르고 성경을 아는 탄탄한 신학적인 지식들이 뒷받침이 되면 그것이 뒤로 후퇴하는 법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냐 하면 주님을 깊이 만나고 신학이 탄탄한 사람이 그냥 한 번 성령을 입고 준비 없이 설교하는 것이 주님을 별로 못 만나고 신학이 없는 사람이 밤새도록 준비한 사람보다 훨씬 낫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스승 가운데 김이곤 목사님이 계신데 총신의 마지막 학자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 분도 저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저희 교회에 두 번이나 오셨고 그 분의 아들 김철언 목사님과는 THM에서 같이 공부를 했었고 지금 퓰러 신하교 교수로 있습니다. 그 분이 총신에서 채플 시간에 저를 많이 눈물을 흘리게 한 교수님입니다. 다른 교수님들은 컴퓨터에서 열심히 쳐가지고 출력을 해가지고 오시는데 그 분은 달랑 성경 한 권 들고 오십니다. 아침에 채플 올라가려고 하다 보면 양지 캠퍼스에서 자신의 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수대기실에서 창가에 항상 서셔서 다 낡아진 성경을 돋보기를 쓰시고 보고 계십니다. ‘아, 저 양반 오늘 설교시구나’ 하면 틀림없습니다. 항상 그 분은 우리에게 항상 성경을 들고 설교를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성경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고 이 성경이 설교자와 밀착되었다는 것을 항상 가슴에 대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한 동안 따라했는데 너무 베끼는 것 같아서 이제는 내려놓았습니다. 늘 조용하신 말로 사도행전 20장 같은 설교는 얼마나 울었는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키도 작으시고 기운도 별로 없으시고 천천히 설교하시는데 그 분의 뼈 속에서 우러나오는 언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느 청교도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입에서 나온 말은 사람의 머리에 까지 가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갑니다’
그런데 청교도의 체험적 설교의 특징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가 안 되었어도 주님을 깊이 만나고, 성령을 늘 가까이 하고, 신학적인 지식이 탄탄하면, 잠깐 읽고 설교하러 가도 그 내용이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밤새도록 설교한 것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물론 우리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바는 전자의 사람이 밤새워서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정답이죠. 그러나 기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는 대가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제 밤까지 정말 기도가 잘 되었는데 오늘 아침에 기도가 잘 안 될 수 있습니다. 경험해 보셨죠? 저녁때까지 기도가 잘 하고 들어 갔는데 들어가서 밤새워서 마누라하고 싸웠어요. 새벽에 교회는 나와서 무릎은 꿇었는데 철판이 내려오죠? ‘너희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 함이라’. 어디 부부싸움뿐이겠습니까? 마음의 욕심과 정욕, 그 다음에 유혹을 받을 때 이런 수많은 것에 의해서 우리의 기도는 날마다 방해를 받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의 IT산업이 어느 정도 발전을 했는지 여러분, 인공위성을 띠우잖아요? 우리나라에서 4년 전에 세계에서 다섯 번 째론가 인공위성을 띠웠는데 거의 1m까지 분석이 됩니다. 전에는 거의 6m수준이었습니다. 띠우면 이것이 트럭이다 자동차다 이런 정도만 알았는데 지금은 이 트럭이 무슨 종류의 트럭인가가 거의 분간이 되고 앞으로 목표가 60cm를 띠우는 것입니다. 60cm는 유럽에서 잘 나가는 나라들 몇 나라만 띠웠습니다. 미국은 어느 정도일까 밝히지 않는데 아마도 10cm이하 일 것이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위에서 찍어서 저 놈이 대머리인가 머리숱이 많은 사람인가 그것까지도 분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찍어내고 거기에 GPS를 달아서 표적 사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소위 말하는 ‘써지칼 범빙’이라고 해서 건물 하나를 날려버리는 그런 방법이 아니라 앞으로는 ‘세 번째 창문에 나란히 앉은 세 사람 중 가운데 앉은 사람 머리’ 이렇게 가능해 진다는 말입니다. 프로젝트를 띄워서 화면으로 된다는 말입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무서운 세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공위성이 그렇게 첨단이 있어도 이번에 연평해전에서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구름이 가려버린 것입니다. 그 첨단이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해상도가 무슨 1m이하로 내려가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구름이 가려 버리니까 그냥 허옇게 보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결국은 기도를 통해서 로이드 존슨 목사님도 참 여러 번 말씀 하셨지만 기도는 항상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기도가 잘 되면 은혜를 받아서 겸손해 지고 기도가 안 되면 이놈의 인생 하면서 겸손해 집니다. 그러니까 참 어려운 거죠? 로이드 존슨 목사님에 대해서 참 대단한 것은 이번에 ‘페터노스트’에서 역사 신학 시리즈가 계속 나오는데 제가 거의 다 collection을 하는데 대단합니다. 로이드 존슨 목사님의 위상이 그 정도라는 것을 보면서 제가 상당한 격려라든지 그런 것을 받았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에 대해서 박사 논문을 많이 쓰는데 특히 한국 사람들이 즐겨서 여러 나라에서 많이 썼는데 그 논문을 써가지고는 사람들이 베다니 존스 여사를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살아있는 로이드 존스의 부인이었으니까. 그래서 그것을 갖다 주면 베다니 존스 여사가 그 책을 죽 읽고 늘 빼놓지 않는 말이 있었답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내 남편을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내 남편을 위대한 설교자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생을 지켜본 나는 내 남편을 압니다. My husband was a man of prayer. 내 남편은 일평생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사실은 설교는 늘 쉽고 기도는 어렵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을 보면 기도 한 시인이 하나님 앞에 받았던 유익이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그것이 우리의 목회의 간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을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17년 지내오면서 그렇게 험하게 목회를 해왔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주위에 보면 하도 험하게 목회를 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평안하게 목회를 했느냐고 하면 저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고비들이 참 많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셨습니다. 이번에도 교인이 천 명 정도 일 때 이곳에 왔는데 이 건물이 70년대 때에 지어진 건물이고 10년이 지났고 지금 현재 3천명이 이 땅을 밟고 다니는데 너무 마음이 불안해서 천 만원을 주고 구조진단을 의뢰를 해서 안전진단을 받았습니다. 결론은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보강을 하지 않으면 아주 심각하다. 그래서 보강을 하기로 하고 견적을 뽑았는데 9억이 나왔습니다. 언제 부서져 버릴지 모를 이 건물에 9억을 어떻게 집어넣으랴? 그래서 제가 잠이 안 왔습니다. 1년에 아무리 모아봐야 13억 정도 나오는데 1년 모은 것을 한 입에 털어 놓은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매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에 있어서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좀 도와주십시오. 계속 기도를 하고 지난 주 토요일은 새벽 5시까지 너무 괴로워서 잠을 못 잤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나? 결국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이끄시겠지만 9억이 든다면 사실은 11억이 드는 것이거든요? 이 콩알만 한 건물에다 어떻게 아까워서 그 돈을 바르고 예배당을 40일 동안 사용을 못 한다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막 고민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그 회사에 연락해서 사장을 오라 해라 해서 만났습니다. 죽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 사장이 하는 말이 이것은 정말 심각하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이 꼭 해야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정도를 가는 사람이니까 그럼 하겠다 그런데 나는 전문가가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데 어떻겠느냐? 내 아이디어를 한 번 들어보겠느냐? 하고 20분 동안 설명을 했습니다. 마지막 설명을 다 듣고 이 전문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그렇게 하신다구요? 가서 계산을 해봐야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목사님 말씀대로 한다면 공사를 안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가서 직원들을 데리고 보고서를 써가지고 중간보고를 하겠다고 왔습니다. 1억 정도면 끝낼 수 있도록 그렇게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1주일이면 공사가 끝나는 공법으로.
기도하면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목회자들이 하나님께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는 한 우리 목회자 편입니다. 제가 그것을 어디에서 경험했느냐면 제가 살던 동네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목사님이 신체적으로 어려우신 분이었습니다. 거기에 다 신뢰하지는 않지만 아주 신기하게 은혜를 받은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사람들을 그렇게 책망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신뢰하지는 않는데, ‘당신은 너무 욕심이 많다’ 이런 식으로, 그런데 그 자매가 이야기하는 것이 신기하게 교인들이 얼마 안 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어떤 것을 하나님이 슬퍼하시는지를 자기에게 거의 보여주셨는데 꽁꽁 숨기시고 결점을 안 보여주시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목회자랍니다. 그런데 그 목회자가 결점이 없냐 하면 아무도 동의를 안 합니다. 하나님이 웬만하면 목회자 편이십니다. 그런데 저도 목회를 하면서 그런 것을 참 많이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목사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하나님이 내 편이시구나 그런 것을 참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면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마음에 교회에서 어려운 일이 있고 고통을 받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싸우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잘 처리 해주십니다. 안 되면 그냥 불러 가십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해결 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그렇게 매달리시면 됩니다. 무엇이든지 매달리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정말 놀랍게 주십니다.
저희가 이 터에다 교회를 지었는데 9년 전에 금융비용까지 80억짜리 프로젝트였습니다. 이것을 와서 계약할 때 교회 통장에 1500만원 있었습니다. 계약금을 교인한테 빌려서 했습니다. 3억을 계약금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런 정도로 하나님이 거짓말같이 함께 하십니다. 그것을 믿으셔야 됩니다. 지금은 연대에 계시다가 은퇴하셨는데 김준기 목사님이라고 계십니다. 그 분이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하와이에서 가장 칭찬받는 교회 중의 하나였고 미국에서 목회에 있어서 가장 편안하고 성공적으로 목회를 했다고 치는 한인 교회 열 개 중의 하나에 들었답니다. 교인들도 목사님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평화로웠던 시절인데 당회에서 장로가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와서 사인하라고 하더랍니다. 뭐냐고 했더니 우리가 평생 목사님을 모시겠다는 약속이고 목사님은 OK 한다는 사인입니다. 그것을 받는 순간에 사실 그것이 한인교회에서 목사로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한인교회에서 들어와라 나가라 그러고 임기를 정해서 고용사장 취급하고 그러는데 사인할 마음이 생기지 않고 기도해야 할 마음이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고국으로 돌아가라’ 그러시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아멘! 하고 고국이 그 동안 어떻게 변했나 하고 왔는데 그 때 한국은 전세대란이 일어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자기 미국에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 한국에 왔는데도 자기 식구가 들어갈 전세를 얻을 수가 없는 금액이더랍니다. 그래서 와서 아무래도 참 주님이 가정예배 드리면서 ‘그렇게 주님이 가라고 하시니까 내가 가보니까 우리가 살 거처를 마련할 수 없더라’ 하고 낙심하니까 제일 밑에 막내아들이 4-5살쯤 되었는데 예배시간에 ‘아빠, 하나님이 도와주셔도 안 돼?’ 그러더랍니다. 거기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좋은 응답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셔도 안 돼?’ 인간으로 생각하면 안 되죠. 그렇지만 주님이 도와주셔도 안 되는 일은 없거든요. 그래서 아브라함 링컨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의 대적의 숫자가 얼마인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문제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목회에 걸어온 모든 일이 그럽니다. 기도하고 안 되면 강도를 높이고, 그래도 안 되면 금식하고, 그래도 안 되면 차라리 여기에서 죽여 달라고, 저녁에 눈을 감으면서 아침에 눈을 뜨지 않게 해 달라고 매달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주십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들이 늘 아는 이야기이고 그 다음이 저의 관심사입니다.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여기에서 ‘장려한다’는 말이 히브리 말로 ‘타르히베니’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라하브’라는 단어에서 나왔는데 ‘라하브’는 ‘거칠다’ ‘힘세다’, 거기에서 ‘폭풍’이라는 말도 오고 ‘라합’이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나왔습니다. 억센 여자, 거친 여자 그런 뜻이니까 촌스럽죠?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확장시켜서 강하게 만들다 이런 뜻입니다. 예를 한 번 들면 가슴에 선명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 자기가 발성할 수 있는 음역 대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면 힘도 안 들고 참 편안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음이 나오면, 예를 들어 파바라치의 네슨도르마 같은 하이 C가 나온다면 못 올라가죠. 그런데 올라가는 사람들도 한 번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내기 위해 계속 연습을 할 때 목이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옛날에 우리 국악에서 소리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소리꾼이 되려면 그 소리를 폭포수 아래에서 연습을 합니다. 절벽이 되고 폭포가 떨어지면 그 속으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소리를 외쳐서 그 소리가 폭포를 떨어지는 물 벽을 뚫고 10리에서 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청이 트여야 된다고 하는데 평범한 사람이 목청이 트이려고 한다면 소리를 하다가 목이 터져서 목에서 피가 세 사발이 나와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음역을 자유자제로 넘나드는 소리꾼이 되는 것입니다.
보시면 알지만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따지면 시골 노인네들이 얼마나 몸을 움직입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소죽 끓이고 밭 갈고 계속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잘 보십시오. 시골 노인네 평생 노동하고 산 사람 데려다 놓고 도시에서 헬스 30년 한 사람과 두 사람 세워놓으면 체형이 비교가 안 됩니다. 이 사람은 골고루 뻗었는데 이 사람은 튼튼하기는 한데 이상하게 시골스럽게 튼튼한 것입니다. 몸이 엉킨 가운데 그것이 뭐냐면 쓰는 근육만 계속 쓰니까 그런 것입니다.
목회의 우아함이라고 하는 것은 평소에는 안 쓰던 근육을 발달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제목입니다. 사람이 기도를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지만 그 영역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일은 매우 특별한 일이고 어마어마한 고통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기까지 기도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고민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오죽하면 목회자들도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까지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죽기까지 기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잃어버린 하나의 문제들입니다. 유산들입니다. 청교도는 그런 점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잖아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쓰는 폐활량이 우리 몸이 전체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의 1/3밖에 안 쓴다고 합니다. 그것을 여기까지가 내가 들이마시는 한계인데 더 들어 마셔서 폐활량을 늘리려고 하면 이 폐의 튜브가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반복이 되면서 폐활량이 커져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대개 자기가 고통을 안 받고 기도 할 수 있는 한계까지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 시인이 바로 ‘타르히게니’의 경험을 한 것입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환난을 만났는데 이것이 악한 인간들과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씨름을 한 것입니다. 내가 이런 어려운 일을 만났는데 하나님 나를 버리시렵니까? 그리고 하나님 앞에 깊이 몸부림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니까 자기가 예전에 도달해 보지 못했던 기도에 도달하면서 자기의 이 심령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더 강하여 지는 것, 억세어 지는 것, 마치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서 더 깊게 들어 마시면 이것이 찢어질 듯 한 고통이 느껴지면서 핏줄과 핏줄이 벌어지면서 폐 용량이 늘어나듯이 그런 고통을 동반하면서 자신이 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진짜 기도에 깊이 들어가면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셔서 날 사용하셔서 기도하시고 끝나고 나면 주님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시는 것 같은 그런 탈진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표현하는 바에 의하면 피의 펌프질입니다. 깊은 고통 속에서 피의 펌프질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 웰츠나 존 낙스나 데이비드 브레이드너드나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생애에 대한 기록들을 읽어보면 그들은 신음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마음의 깊은 고통을 느끼면서 신음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누구도 그것을 능가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목사님들, 혹시 최필근이라는 신학자를 아십니까? 아마 기억 못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1930년대의 신학자입니다. 그 시대에 동경에서 신학을 하고 돌아왔으니까 당대에는 사실은 따라올 수 없는 엘리트였고 이 사람의 전공이 비교 종교학이었습니다. 아마도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하고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이 오시자마자 평양에 있는 큰 교회 담임목회자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교회에서는 긍지를 느끼면서 청빙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그만큼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교회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시찰의 기능이 거저 노회와 개교회의 중간다리 역할인데 그때 위원들이 시찰을 했습니다. 평일에 갔는데 교회를 돌아 볼 뿐이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다가 사찰을 만났습니다. ‘집사님, 우리가 시찰을 나왔다가 이제 돌아가는데 왜 예전에 그렇게 뜨겁고 부흥하던 교회가 요즘은 이렇게 교인도 적게 모이고 냉랭하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도대체 왜 그렇습니까?’ ‘아이구 목사님, 저같이 교회에서 쓰레질이나 하는 사찰이 뭘 알겠습니까? 전 모릅니다.’ ‘그래요?’ 하면서 막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런데 저는 잘 모르는데 한 가지 변한 것은 있습니다.’ ‘아, 그것이 뭡니까?’ ‘옛날 목사님은 새벽기도 나오셔서 오래 기도하셨는데 요즘 목사님은 그냥 금방 일어나서 집에 들어가십니다.’ 그 때 시찰위원들이 ‘아, 그렇구나, 이것은 교회 운영이나 경영에서 찾을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 개인이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기도생활이 문제구나’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바쁘시겠지만 저보다는 조금 덜 바쁘시지 않겠어요? 더 많이 한가하지는 않겠지만 누가 한가하겠습니까? 새벽기도를 만드시고 저는 그런 점에서 하목사를 존경하는데 하목사가 목회하던 옥스퍼드에 갔더니 새벽기도라고 해서 제가 영국에 갔을 때 그 집에 일주일을 묵었는데 이 친구가 내가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피곤할까봐 미안해서 안 깨우고 슬며시 나가는데 내가 먼저 일어나서 기다렸다가 같이 가곤 했는데 새벽에 교인도 안 모입니다. 세 명인가 모이는데 왜 교인도 없는데 새벽기도를 하느냐 했더니 ‘형, 나는 나를 믿을 수가 없어. 그래서 나 때문에 새벽기도를 만든 거야.’ 그러는 겁니다. 훌륭합니다. 그렇게 자기와 약속을 하고 새벽기도를 나가는데 교인이 30명이 모여도 대부분이 새벽예배를 안 나와도 언제나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목사가 이야기하는데 혼자 기도할 때는 없데요. 항상 3명, 두 명, 많이 나오면 네 명, 여섯 명 그렇게 나온답니다. 그리고 말 할 수 있잖아요? 너무 곤고해 보이면 새벽기도 좀 나오거라 이야기 할 수 있잖아요?
두 번째는 거기에서 오래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안 되어도 거기에 계속 엎드려 계십시오. 우리 부목사들한테 강조를 했더니 지금은 다들 간 사람들이지만 오랫동안 기도하라고 했더니 책을 들고 와서 거기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건 아니죠. 누가 자기보고 양복입고 와 가지고 거기에서 책 읽고 있으라고 합니까? 그것은 아니죠. 오래 무릎 꿇고 엎드리십시오. 제가 목회 하다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최악의 경우에는 금식을 하지만 이 나이가 되면 금식하면 온 몸에 신호가 오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시간을 정합니다. ‘지금은 비상이다 12시까지는 일어나지 말자. 세상없이 바빠도 비서한테 모든 스케줄을 부실 수 있는 것은 부셔버려라, 집회 약속한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는 다 깨버려라, 교역자 회의 못 한다고 그래라 밤중으로 옮겨라. 심방 가는 것 취소한다고 해라, 만날 약속 있는 것 목사님이 편찮으시다고 그래라,’ 정리하고 그리고 엎드려서 12시까지는 안 일어나야 되겠다, 지금 상황은, 아침 굶고 엎드려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되든 안 되든 심지어는 하다가 어떤 때는 전날 너무 곤해서 엎드려서 잠을 잘 때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일어나지 말고 거기에서 버티는 것입니다. 주님 도와달라고. 이상한 것이 기도를 하면 할수록 기도제목이 계속 늘어납니다. 안하면 안 할수록 기도 할 것이 없습니다. 낮 12시까지야 모르겠지만 요즘 너무 많이 약해졌습니다. 제가 활동적인 상황이 되고 그러니까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교역자들한테 사인을 하고 할 때 하루 세 시간은 기도를 하자, 새벽에 세 시간을 기도를 하든지 그것을 기준으로 하고 하루 세 시간을 기도하자, 요즘 많이 약해져서 마음에 각성을 하고 있는데 아직 젊으시잖아요? 매달려서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그저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길게 하지 말고 저는 새벽 설교를 약 20분 정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교인들에게 기도를 하도록, 새벽기도를 하도록, 그래서 최소한 못 나오는 것에 마음에 갈등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목회지가 변합니다. 아침에 나오셔서 세 시간 정도만 엎드려서 기도가 안 되더라도 기도하고 그러면서 엎드려 계셔 보십시오. 반드시 교회가 변합니다. 권위가 있습니다. 저한테는 감히 기도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만 따르릉~ ‘사모님이세요? 목사님 계세요?’ ‘목사님 새벽예배에서 아직 안 오셨는데요?’ 교회에 따르릉 전화 걸어서 ‘목사님 나오셨어요?’ ‘네, 목사님 새벽에 일찍 나오셨는데요?’ ‘그런데?’ ‘잠깐만요, 교회에서 지금 계속 기도하고 계시는데요?’ 서너 번 만 전화 그렇게 받으면 오전시간에 교인들이 절대 전화 안 합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고통을 받을 때 그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고하면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를 베푸십니다.
제가 17년 목회를 하면서 배운 한 가지 평범한 진리가 있습니다. 목사가 자기가 설교한 강단에 엎드려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 눈물이 교회 바닥에 고여서 흐릅니다. 이상하게 그 눈물을 먹으면 쓴 뿌리는 죽고 주님이 심은 나무들은 자라고 변화 됩니다. 그래서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시인처럼 기도하면서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그렇게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자신의 영혼이 천국 이슬로 흠뻑 젖은 가운데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뭘 하든지 간에. 그렇게 하면서 목회에 온 마음을 쏟으면서 교인들의 모든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해야 됩니다.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통합 측에 남대문 교회를 목회하던 ‘배 명준’ 목사님이 계십니다. 저는 그 분을 참 존경합니다. 그 분한테서 제가 한 학기를 목회서신을 배웠는데 정말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한 교회에서 42년을 목회하시고 은퇴하셨는데 진짜 목사중의 목사입니다. 그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자기가 마지막 은퇴할 때 교인이 5천명이었는데 거의 모든 아이들 이름까지 외웠답니다. 이 인원가지고 저는 거의 포기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했더니 ‘아니 어떻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교인 카드 50장이 기본 업무량입니다. 식구들 이름까지 부르면서 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5천 명이면 백 번이 되지 않습니까? 새로운 교인들이 계속 들어오긴 하지만 기준으로 놓고 보면 많이 할 때는 백 오십 가정, 적게는 50가정 어쨌든 최소한 50가정이 dead lile 이었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1년 이면 똑같은 카드를 몇 번을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1년 다니다 교회를 떠나면 파악이 안 되지만 오래 다녔으면 한 번도 심방을 안 가도, 얼굴은 몰라도 교인들의 이름을 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저의 집 사람도 기도를 많이 하는데 교인들이 350명 정도 모일 때까지는 매일 모든 교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은 못하지요. 그래서 교회에서 백 대 기도제목을 만들어서 그것을 가지고 읽으면서 기도하게 하는데 목사님들이 기도하셔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신문먼저 펼쳐서 읽은 목사는 설교 할 때마다 오늘 신문에,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 먼저 펼치는 목사는 설교 할 때 오늘 본문은 이렇게 설교를 하고 늘 기도하는사람들은 무슨 설교를 하든지 간에 마지막 끝 날 때는 기도 좀 하시오 이렇게 끝납니다. 한 사람의 목회자가 한 마디의 말로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끼치기 위해서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날들을 그 말대로 살아가려고 몸부림 친 피가 묻어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한 마디가 감동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슴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기도를 간절히 매달려 하면서 영혼의 확장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간증할 내용들이 많습니다만 제가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복음을 새롭게 알게 된 계기도 사실은 제가 내수동 교회에 오목사님과 함께 있을 때 오목사님은 중등부에 있다가 취업이 되어가지고 대전에 있는 원자력 연구소에 결혼해서 가시고 저는 고등부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갔는데 애들이 나의 신앙과 신학으로는 거의 70%는 회심을 안 했습니다. 구원이 없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괴로워했는데 정말 험한 사역지였습니다. 지금 고등부가 20명밖에 안 모인다고 합니다. 강도사 한 사람이 엄청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 때 80명 모였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물으니까 제 마음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토요일 9시마다 보따리 싸가지고 교회 가서 철야를 2년 동안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도 깊이 많이 변화되고 저도 거기에서 주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까 나 혼자 추운 겨울에 교회당에 가서 교회 청소하고 그 때는 전기장판도 없었고 그냥 스트로폴 하나 깔고 위에 담요 하나 깔고 엎드려서 밤새도록 기도하다가 너무 피곤하면 새벽에 잠깐 자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몇 주 지나고 설교를 계속하니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밤중에 하나씩 둘씩 오는 것입니다. 전도사님하고 같이 기도하겠다구요. 많이 모일 때 30명 까지 모였습니다. 놀라운 것이 보여 가지고 찬송 하나 부르고 우리 기도합시다 하고 몇 번 기도했는데 먼동이 훤하게 트는 것입니다. 그런 밤들을 여러 날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면서 정말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서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이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교역자들에게 저는 말합니다. ‘자기가 말씀 전하면 거기에서 죽을 각오로 기도를 해라 그러면 정말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죽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저보고 자꾸 ‘이민교회 특성은’ 그렇게 말하는데 이민교회 특성이 있겠지요. 그렇게 따지면 국내 교회 특성도 있구요, 시골교회 특성도 있고, 도시교회 특성도 있습니다. 다 어렵습니다. 어디에도 쉬운 곳은 없습니다. 쉬우면 왜 이 십자가를 우리에게 지라고 하셨겠습니까? 그런데 기도는 그 모든 것을 이깁니다. 돌아가셔서 한 가지만 해 보십시오. 크게 욕심내지 말고 우선 ‘새벽기도를 만들겠다. 세 시간 동안은 내가 안 일어나겠다’ 너무 피곤하면 엎드려서 무릎을 꿇고 강대상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세 시간이며 안 일어나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고 기도하기 시작해 보십시오. 반드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