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저녁집회(1)
-목회자의 본질적 사명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요 1:6-7)
녹취자: 정은숙B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본질적인 일이 있고 꼭 하기는 해야 하지만 본질적일이 아닌 것들이 있습니다. 급하기로 따지자면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도 급히 해야 될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고 아무리 잘 했어도 사명을 잘 감당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사람이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좋지 않습니까? 나쁜 교인들을 원하시면 한 번 아멘 해보십시오. 좋은 사람이 좋지요? 사람이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원수가 없고 적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고 친절합니다. 좋지요? 두 번째, 사람을 사귀다보면 삼년, 사년, 혹은 십년 동안을 같이 다녔는데 절대로 밥 한 번 안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유전자가 뼛속 깊이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밥 얻어먹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친구가 없습니다. 돈은 안 쓰니까 좀 모을지 모르지만 친구가 없습니다. 목회자의 세계에서도 큰 것이 아니라 그냥 국수 한 그릇을 먹어도 내가 먼저 내겠다는 사람에게 친구가 많지 밥 실컷 먹고 구두끈 계속 매고 앉아있으면 데리고는 다니지만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경험해보니까 돈의 많고 적음의 문제도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워낙 가난해보니까. 너무 가난하던 시절엔 아무도 안 만났습니다. 만나야 뭐 얻어먹는데 그게 별로 좋은 겁니까? 그렇지만 돈이 많아도 안 하는 사람은 절대 안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밥도 참 잘 사주고 어렵다고 하면 잘 도와주고 또 무슨 일을 할 때 지혜로운 사람은 미련한 사람보다 좋지 않습니까? 목회자가 제일 힘든 사람이 미련한데 열심히 많은 교인, 굉장히 목회자를 힘들게 합니다. 그리고 또 미련한데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항상 앞서서 일을 저지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주 지혜도 있습니다. 이 사람의 직업은 군인입니다. 그런데 전쟁은 못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군인에게 동의하시겠습니까? 여쭤보는 것입니다. 군인이 있는데 사람도 좋고 다 좋습니다. 그런데 전쟁은 못합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을 군인으로 쓰겠습니까? 안 씁니다. 성질이 좀 까다롭고 못돼먹었어도 일단 전쟁이 나면 이길 수 있는 사람을 군인으로 쓰지 않습니까?
군인 이야기를 했는데 그럼 목사 이야기를 해봅시다. 밥도 잘 사주고 어느 교인하고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그냥 물에 슬 탄 것 같이 술에 물 탄 것 같이 사람이 한 없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뿐입니다. 본질적인 것이 무엇이냐, 군인에게 본질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전쟁을 잘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말도 안 되지만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겠습니다. 아주 청렴합니다. 요즘 군인들 나와서 신상 털기 하지 않습니까? 너무 청렴하고 누구한테 십 원 한 푼 안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 나면 도망가는 군인보다는 뇌물을 좀 받더라도 용감해서 나라를 위해서 불같이 싸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멘 할 것 까지는 없습니다. 기왕이면 청렴하고 전쟁도 잘하고 이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군인이 전쟁하는 사람이라면 목사는 뭐하는 사람입니까? 이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성경은 한 칼에 이 질문을 잘라 버립니다. 믿게 하려는 사람입니다. 믿게 하려는 사람. 무엇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까? 그 빛을 믿게 하려는 사람입니다. 그 빛은 누구지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불신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만들고 믿은 사람에게는 그 믿음이 계속 강해지도록 믿게 만드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이제는 명쾌해졌습니다. 사람도 좋고 머리도 좋고 공부도 많이 했고 남에게 밥도 잘 사주고 이웃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다 좋습니다. 그런데 믿게는 못 만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모든 것이 좋은데 전쟁 못하는 군인과 같은 것입니다. 군인이라고 하면 너무 자존심이 상하니까 장군이라고 합시다. 밥도 잘 먹고 사람도 좋은데 전쟁 나면 병사보다 더 빨리 도망갑니다. 똥별입니다. 똥별.
목사의 주된 것이 그것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은 지금은 다 은퇴하시고 돌아가셨는데 그 분은 시골 목회를 하시면서 확고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전임자가 그냥 예배만 드리고 기도를 하는데 동네에서 인사성 없고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소문이 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목사님이 부임해서 아무리 전도를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이러면 안 되겠구나 이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야 되겠구나 하고 접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살다 갔으니까 농사를 지을 줄 알겠습니까? 뭘 알겠습니까? 그런데 이 목사님이 바둑 하나를 잘 둡니다. 그래서 노인정에 가서 바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집 저집 다니면서 바둑을 가르쳐주고 바둑을 두니까 동네사람들하고 너무 잘 친해진 것입니다. 바둑이라는 것이 한 판 두면 30분,한 시간이 걸립니다. 두 시간도 금방 가지 않습니까?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바둑을 두는 것입니다. 온 동네 어른들하고 다 친해졌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결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에 나오는 것 하고는 친한 것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목사 싸가지 없다는 소리는 안 듣습니다. 그런데 이웃에서 만나면 인사하고 그런데 교회는 안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믿게 했어야지 나오지요. 바둑으로는 믿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여기서 십 년 넘게 전도를 했습니다. 항상 전도할 때 제가 강조하는 것은 한 번 보고 말 사람처럼 전도하지 말고 평생 같이 살 이웃처럼 복음을 전해라 인격적으로 그래서 절대 이웃 교회와 다투지 말고,. 얼마나 재미있느냐하면 아파트가 들어오면 동네에 있는 교회에서 모든 아파트에 자기 교패를 다 붙입니다. 허락도 안 받고. 그 대신 종이로 붙입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교회에서 전도를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교인인데 왜 전도를 하느냐 그 사람보고 이 교회 다니냐고 물어보면 전혀 모릅니다. 그냥 와서 뚜르르 붙여놓고 갑니다. 찜해놓고 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전도한다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는 것을 동네 주민들이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인격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렇게 칭찬을 듣고 잘 하는 것이 장기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너무너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그 자체가 안 믿는 사람을 믿게끔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부족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생각은 바르지 않습니까? 문화주택을 지어놓고 아파트 한 채에 몇 억 하는 아주 좋은 강남의 아파트인데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식인종라면 그것이 문화주택이 됩니까? 안 되잖아요. 그러면 아무리 교인이 많이 모이는 게 보기 좋더라도 예수도 안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 우글거리고 모였을 때 그게 진짜 목회의 성공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조금이 모여도 이 사람들이 정말 믿는 사람이냐 라는 질문을 목회자는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합시다. 목사님, 안 믿는 사람 천명을 모아놓은 목회가 위대한 겁니까, 아니면 믿는 사람 열 명을 모아놓은 목회가 위대한 겁니까? 후자입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거기에 주님이 계십니다. 그러니까 나머지는 전부다 부차적인 일입니다.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정체성이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사람들이 믿느냐 우선 그 이야기하기 전에 무엇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우리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무엇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까? 꼭 기억해두십시오. 네 단어를 믿는 것입니다. 더도 말고 네 단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 네 가지 단어를 믿을 때에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무슨 뜻입니까? 핵심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 그리고 위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모든 사람의 대표자로서 예수께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은 예수님이 받으시고 그 덕분에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때 효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다는 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실제로 설교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비행기를 타는 것도 안 떨어지고 날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타는 것 아닙니까? 요즘은 그런 이발소가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이렇게 눕혀놓고 면도해주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하기 전에 가죽끈에다가 샥샥 샥샥 갈지 않습니까? 어떤 목사님이 전도 좀 열심히 하라고 교인들에게 그렇게 강조를 했답니다. 그 교인 중에 한 사람이 이발사였습니다. 다음 주까지 한 사람 전도하라고 하는데 도저히 난감한 것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발을 하느라고 전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도 걱정이 돼서 불 끄고 집에 가려고 막 나서는데 손님 하나가 들어오더니 아저씨 이발 좀 해주세요, 지금 퇴근해야되는데 그랬더니 난 꼭 이발해야하는데 한 번만 봐 주세요 그래서 들어오세요 그리고 큰 이발소에 불을 다 끄고 하나만 켜놓고 이발을 하는데 머리를 깎으면서 이 이발사 집사님은 계속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사람 어떻게 전도해야 하나 그래도 어쨌든 이 사람이 토요일 마지막 사람인데 어떻게든 전도를 해야겠는 것입니다. 이발을 마치고 면도를 하려고 누웠습니다. 가죽에다 열심히 갈면서도 유난히 오래 갈았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을 해야 하니까. 뭐라고 전도해야하나 뭐라고 전도해야 하나 하면서 막 갈고 전도를 해야겠다 하고 컴컴한 데서 비누를 쫙 바르고 목에다가 칼을 척 대면서 혹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컴컴한 불도 꺼진 이발소에서 칼 가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리더니 척하고 목에 대면서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러면서 어떤 분이 그러는 것입니다. 면도사에게 목을 맡기는 것도 믿음 없이는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그 믿음이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확률입니다. 비행기 중에 떨어지는 비행기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전 세계에 여객기가 얼마나 될까요? 1,700개의 공항이 있고 75,000대가 날아다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떨어질 확률은 보도 위를 걸어갈 때 차가 뛰어 올라와서 나를 치어죽일 확률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수없이 비행기가 뜨는데 두 대 뜨고 한 대가 떨어지면 절대 안탑니다. 수만 대 떠서 한 대 떨어지는데 내가 거기 해당되랴 하고 우리는 비행기를 탑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믿는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확률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아도 되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 믿음이 무엇인가하면 이 믿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 의지하는 것 이외에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안 믿으면 커다란 형벌과 불행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의 마음은 절대적으로 예수를 의지할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평생 강약은 다르지만 그 순간을 통해서 일평생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심이고 중생입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는가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이제껏 구원의 길이라고 생각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기 전에 우리의 구원이 무엇입니까? 그 때의 구원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과는 다른 것입니다. 불신자 만나서 돈이 없어서 사업에 계속 고통 받는 사람에게 선생님 제가 구원해드릴까요? 하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돈 빌려 주시려구요,그럽니다. 왜? 그 때는 우리와 같은 구원 개념이 아니니까 어려움 속에서 벗어나서 행복해지는 모든 것이 그 사람들 생각에는 구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을 예술에서 찾았고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을 가족의 행복에서 찾았고 어떤 사람은 그저 자기 바르고 성형수술하고 예쁘게 가꾸는데서 찾았고 지식에서 찾았고 어떤 사람은 쾌락에서 찾았고, 그런데 그게 구원의 길이 아니다, 그것을 모두 버리는 것이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하신 그일, 복음의 말씀에 대해 마음 속에 기쁨으로 찬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이것은 확률이 아니기 때문에 머리를 굴려서 믿고 안 믿고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 사람 마음속에 역사해주셔야만 생겨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이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이렇게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우리 어렸을 때 동네에 부화장이 많았습니다. 부화장을 현대식으로 시설을 해놓은 것이 아니라 나 아는 집도 학교 갔다 오다보면 부화장을 했는데 그 때는 아주 옛날이니까 사람들이 안방에서만 살고 방은 비워놓고 불을 땝니다. 거기에 계란을 깔아놓습니다. 신기한 게 병아리들이 그 방안에서 수시로 나옵니다. 나올 때가 되면 속에서 움직입니다. 이놈은 다 된 것입니다. 다 됐는데 보니까 껍질에 쌓여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본능적으로 껍질을 주둥이로 톡톡 두드립니다. 그러면 뚝하고 껍질이 깨지고 걸어 나옵니다. 예외 없이 걸어 나온 병아리들은 한참동안 뚤레뚤레 봅니다, 너무 충격적인 것입니다. 알 속에 있을 때는 그게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 깨고 나오고 보니까 생전 보지도 못한 세상에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게 바로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거듭나게 해주셔서 거듭나지 않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영적인 세계,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진리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이 세상 너머에 있는 그 하늘나라와 영적인 세계와 이 진리의 말씀이 진짜 있는 것이고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진짜 있는 것이 아니구나 깨닫는 것입니다.
젊음도 시간이 지나면 갑니다. 제가 작년에 우리 직원들을 놀렸습니다. 사진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키 174, 몸무게 56킬로, 허리 27인치 사이즈에 양복을 예쁘게 입은 청년이었습니다. 너도 시집가야 되지 않니? 가야죠. 내가 형제 하나 소개시켜줄까? 네, 이 형제 어떠냐? 보더니 너무 예뻐서 부담스럽네요. 걱정하지마라, 나다. 35년 전 사진입니다. 그것을 매일 수년간 만난 사람인데 그게 나리라고는 생각을 못합니다. 그것이 세월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렇게 태어났지만 흘러가고 변하고 마지막에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잠시 있는 것을 영원히 있을 것처럼 사랑하고 잃어버리고 나면 울고불고 가슴아파하고 그랬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면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이 안개와 같다는 사실을 알고 영원한 것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계속 은혜를 받아야지만 그도 행복하고 교회도 행복하지 여러분, 목회하는데 어제 나온 교인 때문에 속상해서 목회를 못하겠다는 목사 본 적 있습니까? 없지요. 어제 나온 교인이 뭘 알아서 속을 썩이겠습니까? 어느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오래 된 교인은 닭과 같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오래된 닭은 알을 못 낳는다. 전도도 안 한다. 오래된 닭은 사납다. 그래서 맨날 싸운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닭은 고기가 질기다. 말을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랬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래된 교인도 매일매일 새롭게 믿음이 생겨야지만 알도 낳고 싸움도 안하고 고기도 연하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만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그 빛에 대하여 증거 해야 합니다. 지난해에도 제가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예배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매주일 눈물바다로 만들 그런 탁월한 설교자가 되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확률적으로 안 그럴 수가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달란트를 다섯 주셨느냐 둘 주셨느냐 하나 주셨느냐 사명은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사명을 주셨어도 은사를 많이 주신 사람이 있고 덜 주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선교하라고 파송을 해서 내보냈는데 선교를 안 합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전도의 은사를 자기에게 안 주셨다는 것입니다, 말이 됩니까? 은사를 주셨는지 안 주셨는지는 나중 문제고 그것은 사명입니다. 사명은 은사를 초월합니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많이 주신 사람들은 잘하겠지요, 그러나 조금 주신 사람도 열심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은사는 충성할 때 있는지 없는지 나타나지 놀면서는 안 나타납니다. 땅에 묻힌 보화가 땅을 갈아봐야 나오지 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있는지 없는지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과와는 상관이 없이 반드시 해야 하는 목사의 본질적 일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안 하면 나쁜 목사입니다. 직무유기입니다. 왜? 그 사람들을 전도하라고 예수 믿게 만들라고 하나님이 소명을 주셨고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으면 그것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선 설교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것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 어떻게 사셨는지 어떻게 죽으셨는지 어떻게 부활하셨는지 어떻게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는지 어떻게 거기서 우리를 위해서 생명과 은혜를 사랑을 공급해주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는지 어떻게 마지막에 구름 타고 이 세상에 오실 것인지 이것이 설교의 중심적인 내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남의 말을 잘 안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별로 남의 설교도 많이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가끔 설교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눈을 수술하느라고 한 주간 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었습니다. 주일날 나 같으면 눈을 이렇게 가리고 설교를 할 텐데 하도 하지 말라고 난리를 하니까 병원에 누워있어도 죽을병이 아니니까 오전에는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침례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명색이 서울인데 너무 죄송한 이야기지만 화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설교를 할까? 무시하는 게 아니라 어눌하고 학식이 모자라도 투박하게나마 예수를 설교해야 하는데 요즘이 어떤 때라고 목사한테 돈도 주고 밥도 사주고 잘해주었더니 복을 받더라 이 사설을 한 시간 늘어놓고 축도로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명색이 장로교회에서. 아, 정말 사람이 듣기에도 마음이 아픈데 주님이 보실 때 당신 증거 하라고 보냈더니 목사 잘 섬기라고 한 시간 내내 그거 교인들이 생각 있는 사람이 요즘같이 약은 현대인이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걸 듣고 한 주간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어떻게 조국교회가 이렇게 됐을까?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두 교회만 봤으니까 망정이지 수많은 교회들이 그런 형편이 아니겠습니까? 난 그 교회를 욕하거나 깔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영국 청교도 역사를 보면 목사들이 모여서 기도회를 했답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회를 위해서 아무개 목사님이 대표기도를 하겠습니다. 그 목사님 이름은 외웠었는데 잊어버렸습니다. 기도를 하라고 했으면 빨리 기도를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끙끙거리면서 기도를 못하니까 둘러앉았던 사람들이 속으로 긴장도 되고 짜증도 나고 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 한참 기다려도 기도가 안 나오더니 잠시 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 오, 주님 그때 성령이 불같이 임하신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회개시킨 것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아십니까? 투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련되지 않을 수도 있고 깊이가 깊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설교를 듣고 나면 저 목사는 예수에 사로잡힌 사람이구나 정말 살아도 예수를 위해 살고 죽어도 예수를 위해서 죽으려는 사람이구나, 설교 내용은 짧고 투박해도 뭔가 가슴 속에 확하고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 교회학교에서 있었던 일인데 선생님이 복음을 전했더니 아이가 회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집에 가서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엄마, 전도사님이 우리에게 십자가를 믿으라고 설교 할 때에도 나는 안 믿어졌어, 그런데 우리 선생님이 오늘 저녁에 예수님이 네 죄를 위해 죽으셨단다. 하고 눈물을 흘리실 때 나는 모두 믿어졌어. 반드시 현란하고 학식 있는 설교가 반드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가 전도사님이 열심히 설교할 때는 안 믿어졌는데 선생님이 예수님이 너를 위해 돌아가셨어 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 그때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로 아이의 마음에 믿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설교 내용입니다. 내용이 투박하고 못생겼어도 사람들에게 달콤하지 않아도 그 속에 예수의 십자가의 피 냄새가 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목회자로서 생각해봅시다, 사람이 마음에 없는 말을 하려면 자꾸 더듬습니다. 그리고 말이 자꾸 꼬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있는 이야기는 생각도 못했는데 청산유수처럼 나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왜 우리가 목회할 때 살아도 죽어도 예수를 전하는 이 내용이 주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게 우리의 마음속에 가장 꼭대기에 없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 마음 맨 꼭대기에 a를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b가 있습니다. a를 말할 때는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b를 말할 때는 자꾸 꼬입니다.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목사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 때문에 최근에 그 십자가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려본 적이 언제입니까? 지금 우리의 목회는 고단하고 내일 아침이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거두시면 좋겠지만 언젠가 그 분이 구름타고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희열에 벅찬 적이 언제입니까? 이런 개인적인 십자가와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이 우리의 경건의 세계 속에서 사라지기 때움에 설교의 중심적인 메시지가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 얘기합니까? 오늘날 시대에는 복음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누가 얘기합니까? 복음은 너무 진해서 현대인들이 안 먹으니까 복음에 물을 많이 타서 자기도 모르게 예수의 피를 살짝 마시게 하면 된다고 누가 가르칩니까? 그런 것이 있습니까? 그랬다면 왜 그렇게 사도들이 박해를 받고 그 잘난 사도 바울이 그렇게 고난을 당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저의 생각은 선명하고 일관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설교를 준비해도 조용기 목사님만큼 못하겠지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분들은 그 분들의 세상에 있고 나는 내게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장담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어떻게요? 죽어도 예수를 전하리라 마음을 먹고 죽어도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겠다 이 마음을 가지고 설교 준비를 하십시오. 필요하면 주석도 보시고 필요하면 남의 설교집 보셔도 괜찮습니다. 베끼지는 마십시오. 읽고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설교집을 읽고 하나님 앞에 기도 많이 하고는 덮어놓고 자기 말로 다시 쓰는 것입니다. 제가 로마서 설교를 한다고 사도 바울의 말입니까? 아니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기억하고 필요하면 예화도 들고 해서 너무 길게 하지 말고 적당한 길이로 해서 그리고는 일주일 내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 주일 예배 설교 때 하나님, 교인들 좀 뒤집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라가서 온 힘을 다해서 설교 열 편하고 정년퇴직할 사람처럼 은퇴할 사람처럼 외치는 것입니다. 뭐가 무섭습니까? 아무리 무서워봐야 교인들이 나가라는 말 밖에 더 하겠습니까? 어디 간들 밥 못 먹겠습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그리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 설교를 듣고 모두 뒤집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어디선가는 그런 설교를 목마르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회개합니다. 그 사람이 양떼가 되는 것입니다.
설교 내용이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날 유행하는 한 번 설교를 들어보시고 자로 재보십시오. 여기 예수가 있나 그런데 그 내용만 가지면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뭐라고 나옵니까? 증거하고 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면 설교의 내용이 있어야하고 두 번째는 설교하는 방식이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선생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학생이 앉아있는 옆에 이렇게 지나가고 있는데 책을 보다가 어디를 갔습니다. 책 귀퉁이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나는 세상이라는 법정에 서있는 예수의 증인이다. 내가 생명을 걸고 우리 예수님의 누명을 벗겨드리리라, 무슨 뜻입니까? 변호와 의견은 증언하고는 다릅니다. 법정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큰 사건이 저 사람이 그 일을 했다는 것을 알아도 증인이 없으면, 증거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증인은 누구입니까? 대학 나온 사람이 증인입니까? 박사입니까?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뚱뚱한 사람입니까, 못생긴 사람입니까?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누구입니까? 그 사건이 있던 날 현장에 있던 사람이 증인입니다. 순교라는 영어 단어가 증인이라는 말에서 나옵니다. 같은 단어입니다. 실제 우리나라 법정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현장 목격자가 있는데 네 살짜리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법원에서 그 증거 능력을 인정하고 범인을 단죄했습니다. 증인은 그렇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럼 증인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를 체험하고 십자가를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그냥 예수가 좋습니다. 남들이 그러는데 예수를 믿으면 영생이 있다고들 합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 현장을 보았기 때문에 다르게 어떻게 말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유럽이 발칵 뒤집힌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놈의 루터 내놔라 재판을 해야 되겠다고 유럽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러니까 작센의 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안보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약을 했습니다. 데리고 갈 테니까 재판만 하지 절대 해치지마라 해치면 가만 안 있겠다하고 카톨릭과 약속을 하고 호위를 시켜서 루터를 보냈습니다. 철회하라는 것입니다. 공격이 주어졌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보름스의회에서 카알 5세가 독일 황제니까 개신교든 카톨릭이든 싸우는 게 싫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만 안한다고 하면 되지 않느냐, 안 한다고 해라 황제가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거기에서 마르틴 루터가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의 마음은 확정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성경의 권위와 합당한 인간의 이성으로 내가 주장하는 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에게 입증하지 않는 한 나의 믿음은 성경에 매였습니다. 나도 달리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여 나를 도우소서, 그 유명한 연설입니다. 내가 여기 서있습니다. 달리는 내가 어찌할 수 없나이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혔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취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그 복음이 마음 속에 커다란 정과 같이 쾅! 하고 박혔기 때문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증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목사의 마음은 옹달샘 터의 돌멩이입니다. 옹달샘은 항상 돌멩이가 이렇게 파여져 있지 않습니까? 목사의 마음이 생명의 물은 아닙니다. 생명의 물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목사의 마음에 담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가 이것을 주일날 퍼서 사람들에게 먹이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가지를 아무리 휘둘러도 돌멩이 긁는 소리밖에 안 난다면 그날 물을 못 마시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이 가득 고여서 나오면 사람들이 퍼 마시면서 생명 물을 먹으면서
(찬양)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아멘
성도들이 그걸 먹고 힘을 얻어서 주님의 뜻대로 살 결심을 하고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의 본질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유치해 보인다구요? 아닙니다, 목사는 매일 잊지 말아야할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 만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해야합니다. 그 은혜로 설교를 정성껏 준비해서 힘차게 외치는 것입니다. .주님 의지하면서 피를 토하듯이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것입니다. 때로는 찬찬히 교훈하면서 때로는 힘껏 야단을 치면서 책망을 하고 때로는 잘못된 것을 똑바로 잡아주면서 바르게 하고 때로는 이 길이 옳은 길이다 라고 가르치는 것, 의로 교육하면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작년에 말씀드린 것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모두 예외 없이 변화가 일어난다고 장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진짜 그 진리의 말씀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은 변화됩니다. 새로워집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싶어 합니다, 말씀을 먹고 싶어 하고 봉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더 깊은 말씀을 들려주어서 자기가 아는 예수님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를 깨닫게 해줘서 변화 받게 해주고 하나님 앞에 살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거 하라고 우리를 목사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요? 모든 사람으로 자기로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자기가 믿음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한 번 이번 주부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설교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정 안되겠으면 아주 은혜로운 설교, 스펄전이나 이런 훌륭한 설교자들의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읽으면서 은혜를 받고 똑같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진짜 은혜 받은 것을 따서 원고를 깨끗이 써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그리고 설교를 해보십시오, 반드시 아마 석 달만 하면 여러분들이 꿈도 꾸지 못하던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반드시 일어납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왜? 그 일이 우리 사역의 본질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좀 못하거나 덜하더라도 하나님, 은혜를 달라고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거기서 주님을 믿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꼭 이렇게 되시기를, 듣기만 하지 마시고 이번 주부터 아주 마음에 굳게 결심을 하고 사도바울이 전도에 실패하고 고린도교회 갔을 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노라 그때 고린도 교회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걸 가슴에 굳게 새기고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