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저녁집회(2)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에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요 1: 7-8)
녹취자: 김혜진
어제 저녁에는 목사의 본질적인 사명이 사람들을 믿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는 우리들이 무슨 설교를 하든지 그 설교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설교가 되어야 하고, 또 그 설교가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만남에 의해서 주어지는 감화력이 있는 설교 말씀이 되어야 한다고 여러분들에게 증거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목회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목회는 양 무리를 치는 것입니다. 같은 짐승이라도 사자를 수십 마리 데리고 있는 것은 사자를 친다고 말 안합니다. 양인 경우에 양을 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양을 친다고 말합니다. 조금만 낮추십시오. 그러니까 만약에 사람들에 염소에서 변하여 양이 되지 않으면, 사실상 목양이 불가능한 겁니다. 하나님도 있는지 없는지 희미하고, 예수님도 깔보는 사람들을 우리 아무것도 아닌 목사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그 사람들 뒤나 따라다니면서 비유나 맞춰주는 것도 목회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제 말씀드린 이 내용이 목회에서 너무 중요한 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 있게, 겸손히 능력 있게 하나님 말씀을 전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될 때에, 비로써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그들이 새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 만약에 이 일이 아주 훌륭하게 이루어진다고 가정해 봅시다. 얼마나 우리의 목회가 기쁘고 행복하겠습니까? 예배드릴 때마다 새로운 결심 자가 생기고, 말 안 듣고 목회에 고통을 주던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여,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게 될 때에, 얼마나 놀라운 기쁨이 우리의 목회에 깃들겠습니까? 누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아까 이야기 했습니다. ‘사람이 왔나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는 증언하러 왔다.’ 한 이야기를 여기서 또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목회를 잘 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지면 교인들은 목회자인 우리를 존경하고, 어디 가서 앉아도 항상 편안한 자리는 우리보고 차지하라 그러고, 가끔 식사를 해도 자신들은 못 먹는 음식을, 자신들은 감히 먹지 못하는 좋은 음식을 내놓고, 어디 가서 식사 한 끼를 대접해도 좀처럼 자신들은 먹지 못하는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목회자도 사람인지라 우쭐해 질수 있는 겁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본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다른 사람을 딛고 일어서서 우두머리가 되어 그들을 지배하려고 하는 욕망과, 두 번째는 비슷한 것인데, 만약 그게 불가능할 경우에는 누군가 자기를 강하게 지배하는 사람 밑에 예속되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 때에 인간은 아주 편안한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종교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짧은 교회의 역사를 봐도 이단들이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 나타나서 자기가 자칭 예수라고 한 사람이 50명도 넘는다고 하니까 이거 뭐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도 나오고 별사람이 다 나옵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아예 처음부터 이단이 생기기도 하지만, 원래 이단이라는 말 자체가 끝이 다르다 이런 뜻 입니다. 시작은 항상 정통 교회에서 시작을 합니다. 시작도 정통 교회에서 안했으면 그거는 이단이라 그러지 않고 이교라고 그럽니다. 처음부터 다른 종교를 만 든 겁니다. 그런데 이단은 그렇게 안하고 정통교회에서 물을 먹고 자랍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정통교회에서 마각을 드러내면서 다른 종교를 만듭니다.
(예화) 혹시 여러분들은 1960년대에 박태선 장로를 중심으로 해서 움직였던 전 도관 운동을 기억하십니까? 굉장했습니다. 그 집회에 나가서 정말로 천막을 쳐놓고 집회 할 때에 그 위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봤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병도 참 많이 나았고, 뭐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이단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한 번에 이단이 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점차 새로운 교리를 만들고, 만들고 만들면서 이단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 사람들은 왜 정통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것과 똑같은 것을 가르쳐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사람들을 모으지 왜 자꾸 다른 것을 이야기 하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거는 모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어떤 자신을 위해서? 네! 정통교회에서 목회자들이 받는 대우나 지위보다 훨씬 높은 독보적인 지위를 같고 싶은데, 정통적인 교회의 구조와 제도 그 성경의 해석을 따라서는 그런 지위를 용납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교회는 정통 교회와 다르다 고 그러면서 마각을 드러내면서, 그러면서 자기가 원하는 체제를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지도자로 자신을 부각시켜서 그 근거를 대기 위해서 성경을 그 의도에 맞게끔 다르게 해석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총체적인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결국 무슨 의미입니까? 결국은 자신의 욕망을 성경 속에 투사해서 자신이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모든 자기를 인하여 믿게 된 사람들로부터 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화) 최근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이단에 교주가 하나 있었는데, 문제를 많이 일으키더니 결국은 꼬리를 잡혔습니다. 그래서 그 여신도들을 추행한 협의로 법정 실형을 선고 받고, 그것도 한 십년 이상을 선고 받고, 십년 정도 선고를 받고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혼도 하지 않은 예쁜 처녀들이 수없이 수십 명씩 몰려서 면회를 간답니다. 그 여자들은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영적으로 그 교주와 결혼을 했다는 겁니다. 자신이, 그래서 자신은 동정을 지키면서 일평생을 독신으로 살기로 맹세한 여자들입니다. 그 여자들도 시간이 지나니까 30대 40대에 이름을 떨치던 사람이 이제 벌써 60이 넘었으니까 세월이 흘러가지 않습니까? 꽃다운 그 젊은이들이 같이 늙어갑니다. 그러면 또 젊은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무서운 겁니다. 이 속에는 미혹의 여운이 있습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도저히 납득 될 수 없는데 그게 이상한 사람들에게는 믿어지는 겁니다. 마치 예전에는 우리가 2000년 전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나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그러다가 믿어지는 것처럼, 그들은 그게 믿어지는 겁니다. 그 황당한 이야기가 믿어지는 겁니다. 그게 뭡니까? 우리는 성령이 역사하셔서 믿어지는 것이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미혹의 악령이 역사해서 믿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이단은 시간이 흐르면 그 위세가 꺾이고, 결국은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래서 이단은 끊임없이 떠오르곤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또 다른 변종이 나타나고 하지만, 그래서 이단들은 계속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겁니다.
왜 이 거룩한 본문을 놓고 이단의 교주 이야기를 하느냐? 우리 목회자들에게도 저 마음 밑바닥 속에는 그런 교주가 될 위험성들을 조금씩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웃으셨지만 다 가지고 있는 겁니다. 나는 이 세상에 수많은 목회자를 만나봤어도, 그 사람의 설교와 목회를 칭찬하고 좋게 이야기 해 줄때에, 짜증내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게 우리 모든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도 자기의 책 속에서 말하기를 ‘누군가 자신의 생각에 동조를 해서 좋은 이야기를 하면 왠지 그 사람이 사랑스럽고 착하게 느껴지고, 생각이 달라서 다른 이야기를 하면 왠지 모르게 섭섭해서 저 사람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나도 잘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지는 게 자신의 마음 이었다’ 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 위대한 인물도 그랬다면 우리도 똑같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들이 조심해야 될 것은, 우리는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겁니다. 진정한 영적인 깊이는, 남은 알 수 없는 나 자신의 깊은 내면을 주님의 말씀의 빛으로 비추어서, 그것을 미리 보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의 깊이 이고 경건의 깊이인 것입니다.
(예화) 요즘은 기계나 의료시설들이 아주 발달 되서 우리나라도 이제는 암치료가 다른 나라만 못지않습니다. 미국보다도 오히려 생존율이 높은 암이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잘 미리 조사를 하면 좋은 겁니다. 한 번은 저희 동생이 정기 검진을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너 두 한 번 검진을 해봐라” 옆에 있는 친구한테 맨 날 술만 먹고 다니니까 “너 두 한 번 검진해 봐라” “에이 건강하겠지 뭐” “야 그건 사람이 모르는 거야, 나는 매년 한다. 너 두 꼭 가서 한 번 해봐라” 그래 이 친구 가서 한 겁니다. 그런데 위암이야. 그런데 다행히 초기야 초기, 그러니까 의사가 아주 다행이라 그러면서, 이거는 그냥 수술만 하면 나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고 와서는 너무 감사해 하는 겁니다. 나 네가 이야기 안 해줬으면 거기 갈 사람이 아닌데, 삼기 사기 됐더라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초기에 딱 발견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그런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받으면서 우리가 다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뭐 교주가 될 만큼 그렇게 대단한 뭐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을 자신 안에 발견한다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겁니다. 너무 당연하잖아요. 참 놀라운 게 말입니다. 교인이 백 명만 모여도 목회자들이 누구한테 쉽게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르쳐 주고 싶어 하지. 그것은 옳지 않다 이겁니다. 항상 겸손하고 겸비해야 합니다. 왜? ‘그는 빛이 아니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많은 사람들이 깨뜨려지고 은혜를 받으면서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우리 목회자 우리 담임 목사님 합니다. 그 때마다 가슴에 새기는 겁니다. ‘나는 빛이 아니다 나는 빛이 아니다 나는 빛이 아니다‘
(예화)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중매쟁이가 소개를 했습니다. 형제를 저기 있는 자매와 소개를 했습니다. 형제자매를 소개를 해서 성사가 돼야지 구문을 먹지 않습니까? 뭐 좀 국물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둘이 좀 잘해 보라고 잘해 보라고 막 그랬는데, 이 사람이 “결혼 하시오!” 그러니까 “예! 하겠습니다.” 왜 그랬냐 하면 이 중매쟁이가 참 예쁘게 생긴 겁니다. 그 중매쟁이의 말을 감히 거역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인품도 좋고, 그게 가능합니까? 중매쟁이하고 살 게 아니라, 색시하고 살 겁니다. 색시는 성질이 못 되고 얼굴도 못생겼습니다. 근데 중매쟁이는 둘이 결혼만 하면 중매쟁이는 가버립니다. 다른데 가서 돈 벌어야 합니다. 그거하고 똑같은 겁니다. 항상 이것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목회자가 되어서 이름을 내려고 하고,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으려고 하고, 심지어는 노회건 어디건 가서 좀 더 높은 자라에 앉아 보려고 하는, 이런 모든 것들은 구역질나는 세상의 행동들입니다. 이미 우리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우리는 이런 세상 자랑과는 결별한 사람들입니다. 그건 세상의 가치입니다. 겸손하게 성도들이 나를 높이고 마치 나를 주님처럼 생각해도, 항상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나 목사는 빛을 증거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여러분들보다는 특별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나 목사는 빛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해 주야 합니다.
(예화) 1980년대의 일이었습니다. 초반에 어느 날 어느 목사님이 자기 방에서 앉아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따르릉! “여보세요?” 아주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 겁니다. “목사님! 거기 아무교의 무슨 교회죠? 거기 담임 목사님 누구누구하고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누구요? 내가 이 교회 담임 목사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는 무슨 동네에 사는 아무개 집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웬일 입니까?” “저 혹시 목사님, 화요일 새벽마다 무슨 방송국에 목사님 설교 내 보내시죠?” “네, 그런데요?” “아휴, 목사님! 정말 반갑습니다. 제가 화요일 새벽마다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얼마나 은혜를 받는지 제 다 죽었던 영혼이 목사님 설교를 듣고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소리를 들으면 짜증나겠습니까? 좋겠습니까? 좋겠지요! 그게 함정입니다. 그게 그렇게 그냥 전화통을 놓지 않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목사님을 칭찬을 하니, 목사님이 마음이 다 풀렸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아이, 목사님! 좋은 소식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어요.” “뭔데요?” “제가 여행사를 하거든요.” “그래요?” “근데 정말 기도 많이 하고 이 여행사를 했는데, 하나님이 복을 너무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어느 날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내가 너에게 이렇게 많이 복을 줬는데 너는 주의 종들을 섬겨라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 회사 생긴 설립 3주년 기념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목사 30명만 뽑아서 무료로 성지순례를 13일 동안만 시켜드리겠다는 겁니다. 그러더니 목사님이 그 중 한 명이 되셨다는 겁니다.” 짜증나겠습니까? 신경질 나겠습니까? 하하하! 그래서 그 때에 해외여행은 정말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나이 제한도 있고, 그러니까 목사님이 “아 뭐 그런 것까지 내가 아니라고” “아, 아닙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서라도 꼭 가셔야 합니다. 목사님만 보내드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가서 목사님 수종을 들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보따리를 싸 가지고 김포공항에 나갔더니, 진짜 30명이 모인 겁니다. 근데 교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은 없고, 어쨌든 훌륭한 목사님이라니까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인 겁니다. 그래가지고 여행을 시작한 겁니다. 야, 이게 뭐 그 당시에 미국만 갔다 오면 미국 갔다 왔다고 나팔을 불던 시절인데, 그게 한 나라도 아니고 이집트 뭐 저기 어디야 이스라엘, 그 다음에 거기 터기, 요르단까지 가는데, 호텔도 한국에서 자 본적이 없는 최고의 호텔에다가, 그 큰 회사의 사장인데도 접시를 들고 다니면서 그렇게 목사님들 시중을 드는 겁니다. 놀라운 겁니다. 30명의 목사님들이 모여서 이구동성으로 그 여 집사 사장을 칭찬을 하는데 참 그런 사람 없다고, 돈을 저 정도 벌었으면 얼마나 교만할 텐데, 야 저런 사람이 없다고, 그러고 어쨌든11일 12일을 여행을 했습니다. 마지막 날 밤입니다. 그런데 전갈이 연락이 온 겁니다. 오늘 마지막 날 밤이니까 회의가 있으니까 목사님들 모두 강당에 모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예배라도 드리려나? 하고 같이 들 죽 내려갔는데 보니까 기절초풍할 노릇입니다. 이 뒤에 깃발이 걸려있는데 그 당시 굉장히 유명한 이단의 깃발입니다. 그래놓고 목사님들이 다 모이니까, 이 여사장이 얼굴이 싹 변한 사람이 되어서 “목사님들은 우리 교주 아무개 선생이 주는 돈으로 이제껏 호화 여행을 하셨습니다. 사진도 있고 증거도 모두 남겼습니다. 우리에게 협조를 하시렵니까? 본국에 가서 공개되시렵니까?” 그 당시 공개 되며 는 면직이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여러 명의 목사가 면직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아예 도착하자마자 노회에 달려가서 이실직고하고 고백하고 자청해서 벌을 받고 해결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감추고 있다가 면직된 사람도 있습니다. 많습니다. 그 13일이 끝나도록 그 많은 사람들이 입에 침을 바르고 이 여 성도를 칭찬을 했는데, 이 여 성도가 어느 교회에 다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일평생 잊히지 않는 훌륭한 지침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공짜를 무조건 미워하십시오. 그 속에 뭔가 위험한 게들었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무조건! 그것을 칼같이 잘라서 버려야 합니다. 싫다! 그러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게 무슨 망신입니까? 더 심한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게 한 번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밤중에 호텔에다 문을 열고 여자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래서 걸리나 안 걸리나 봐 가지고 다 찍는 겁니다. 그러니 그게 무슨 짓입니까? 그게 처음 시발이 어디서 된 겁니까? 여행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지! 칭찬에 미혹이 되어서 마음의 경계를 다 풀어 버린 겁니다.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항상 잊지 말아야 될 것이, 마음속에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누가 뭐 좋은 이야기를 하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누가 좋은 이야기를 하면 쓸데없는 소리! 대놓고 그러면 그 사람이 막 화를 낼 것입니다. 하나님 저건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제발 그만 두어라!
미국에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있는데, 피터릴백 박사가 총장입니다. 저보다 서너 살 연배인데 우리교회에 몇 번 오셨습니다. 저와 친분이 많은데 지난해는 거기 가서 개강 수련회도 인도 했는데, 난 이 분에게서 참 평생 잊혀지지 않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같이 대화를 하는 겁니다. 옆에 사람이 열린 교회 좋은 점을 이야기 해 주는 겁니다. “아 총장님 사실 이 교회가요, 일곱 명이 시작을 했는데요,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같으면 뭐라 그럽니까? 아 김 목사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니면 성도들이 참 열심히 대단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찬송하십시다! 하나님 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그냥 이 속에서 저절로 수시로 천천히 흘러나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정말 도우셨습니다. 오! 우리 주님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찬양)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깊이 젖어야 됩니다. 저도 젊었을 때에는 생각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아직도,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목회는 우리의 이름을 내는 수단이 아니고, 우리가 많은 사람들 앞에 존경을 받는 것은 우리의 순수한 목회사역의 결과 이어야지, 그것이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조지 윗필드 라는 18세기의 전설적인 청교도 설교자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얼마나 설교가 능력이 있었던지, 하여튼 어떤 사람이 스웨덴에서 비행기를 타고 저녁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왔는데, 그 설교를 듣고 은혜를 많이 받았고, 어떤 사람은 미국에서 대서양을 건너서 설교를 들으려고 왔는데, 뭐라 그랬느냐 하면 ‘한 번 설교를 듣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야 된다면 나는 또 오겠다.’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모든 사람으로 나를 잊어버리게 하라. 오직 예수만을 기억하게 하라.’ 외쳤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우리 중 누가 이런 점에 있어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항상 마음속에,
(찬양)
나는 소리요,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요,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치는 소리요.
저 달을 보세요. 하면 사람들이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보면 되겠습니까? 아유, 손도 어쩌면 그렇게 고우시고 손톱도 예쁘시고, 매니큐어는 일제를 바르셨나? 달을 언제 보겠습니까? 그거는 가장 추한 목회의 모습입니다. 이제 나이들이 드시고 연세들이 드시고 은퇴할 때가 되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가장 마음에 소원하는 것이 세 가지 정도는 있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자신이 떠난 뒤에도 쪼그라들어서 없어지는 것을 원하는 목회자는 없을 겁니다. 좋은 후임이 와서 이렇게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교회에서 은퇴를 하지만, 교인들의 마음에 ‘당신 누구요’ 그렇게 잊혀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래도 무엇인가 생활의 넉넉함이 있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우리에게 집착이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정말 언제든지 이 세상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헤어진다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나는 처음부터 부름을 받았을 때, 우리 예수님은 높아져야 하겠고 나는 낮아져야 하리라. 우리 주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노라는 그 신앙이 동기가 되어서 목회사역에 발을 들여놓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 처음 마음을 일관되게 유지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기죽지 말고, 그리고 당당하게 나는 주님이 보낸 외치는 소리요, 온 마음을 다하여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나를 하나님이 보낸 사람처럼 존경해도 마음속에 항상 외쳐야 될 말은, “얘들아! 나는 빛이 아니란다. 너희들은 나를 잊어버리고 너희들을 사랑하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바라 보거라.” 이렇게 가르칠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외롭지 않도록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