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과기대 특강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막6:18-20)
녹취자: 정은숙
신학공부는 참 어렵습니다. 모든 공부가 그러하겠지만 그저 안하려고 마음먹으면 할 것이 별로 없는 것이 신학공부이고 제대로 하려고 하면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습니다. 더욱이 이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에 어떤 태로도 훈련을 받는가에 따라서 목회는 현저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목회자의 신학적 입장이 교회의 신학적 입장이 되는 것이고 목회자의 인격이나 태도가 교회의 모든 형태를 결정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연단을 받고 공부하는 것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지도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매우 어렵고 고통이 많은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지도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한두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지도자는 공부도 잘해야겠지요. 무지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도자가 되는 것은 그의 지적인 능력이나 육체의 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의 크기는 그의 정신의 크기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남다른 정신세계를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정신의 크기는 그리고 방향은 그의 인격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인격은 그의 정신의 나타남이고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은 결국 인격이라는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하는 모든 과정이 하나님 앞에서 그 정신의 크기를 키워가는 과정입니다. 지도자는 특별한 사람으로 태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보통사람과 꼭 같은 준비의 길을 걸어서는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어떻게 신학 훈련을 받고 신학의 길을 걸어가느냐 이것에 의해서 미래에 그의 사역의 모습도 당연히 결정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례 요한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상당부분을 할애해서 세례 요한의 인격에 대해서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 악한 헤롯왕도 세례 요한을 두려워했었는데 그 사람의 인격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세례 요한과 정적의 관계에 있었지만 그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세례 요한의 인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광야에서 연단을 받으며 형성된 인격이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연단을 받은 것처럼 우리 자신도 연단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줄 수 있는 인격으로 성숙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제 앞으로 지도자가 될 터인데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하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신학의 도상에서 여러분이 연단을 받는 과정에서 주님의 사람으로 빚어져 가지 않으면 앞으로 여러분이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목회를 할 때 좋은 지도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제일 먼저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목회자로서의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을 이끄는 기술이나 형태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 역시 그 사람이 누구냐에 달려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리더십입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을 보면 리더십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한 가지는 소인배와 같은 리더십입니다. 그런가하면 군자와 같은 리더십도 있습니다. 소인배와 같은 지도자들은 우두머리가 되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공동체가 가진 목표를 따라 가치를 정하는 대신 자신이 만족을 누리는 대로 공동체를 이끄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인배 형 리더십입니다. 이런 리더는 항상 사람들은 통합하기 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시켜 패를 만듭니다. 그래서 분열이 그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대의를 위한 것 같지만 대부분 자신의 이기심과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 분열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군자 형 지도자는 사람들을 끌어안고 그리고 통합하고 연합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통합하고 연합하는 일에 힘쓰게 됩니다. 그래서 소인배는 일하고 나면 사람들이 나뉘고 찢어지지만 군자는 일을 하고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보람을 느끼고 협력하며 더 큰일을 위한 비전을 품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한 사람의 정신으로부터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여러분은 혹시 셰클턴의 위대한 항해라고 하는 책을 읽어보셨습니까? 셰클턴은 영국의 탐험가였습니다. 1800년대에 북극을 탐험하게 되었고 거기서 그들은 조난을 당했습니다.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그 혹한의 바다를 1200킬로나 항해하여 도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그 때 죽음의 항해가 될 구조요청의 길을 대원들을 안전한 곳에 남겨두고 자신이 직접 가기로 하였고 작은 배를 타고 항해를 떠날 때에 남아있는 대원들 중 문제를 일으키는 대원들을 모두 데리고 그 죽음의 항해를 자청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이 고통을 받더라도 남아있는 대원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풍랑과 사투하며 1200킬로의 항해에 성공했고 몇 달 뒤 구조대원들과 함께 셰클턴 일행은 안전하게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책이 몇 해 전 발간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며 미국과 전세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일독을 권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야할 길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기를 버릴 줄 아는 희생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신학생 시절부터 아주 몸에 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뼈 사이에 노예의 유전자가 배어있어서 무엇을 하든지 남을 섬기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때 그것이 기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크고 위대한 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헤아리고 그들을 위해 준비하는 태도 그것은 사소해보이지만 반복되는 그러한 섬김이 앞으로 그가 어떤 정신으로 목회할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일에 있어서도 남을 배려하고 그리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용기와 결단은 세심함과 사랑을 겸비할 때 빛나는 것입니다. 섬세함과 사랑의 배려가 없는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은 그를 따르는 어떤 사람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더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두 번째로 넘어가겠습니다. 리더십과 함께 두 번째로 생각해야할 덕목은 예절입니다. 예절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를 존중하고 그리고 높여주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저희 한국에서는 노회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양회라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있는데 그 중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전도사 한 사람을 채용했습니다. 여 전도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역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영혼을 사랑하고 사역을 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과 함께 심방을 갔습니다. 심방이 끝나고 나면 교인들이 음식을 차려서 대접을 합니다. 한국에서는 목회자들을 일반적으로 존경합니다. 목사님이 자주 심방을 오시는 것도 아니니까 음식을 잘 차려서 대접을 합니다. 그러면 모든 음식 중에는 특별하게 좋은 음식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중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일단 어른이 제일 먼저 수저를 들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합니다. 특히 아주 중요한 요리는 어른이 손을 대기 전까지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예절입니다. 중국도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 전도사는 중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심방 갈 때마다 사역은 잘 못하면서 먹는 데는 열심히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생선 요리 같은 것을 아주 예쁘게 꾸밉니다. 그런 것들을 기도가 끝나고 나면 목사님은 식사 시작도 안했는데 제일 먼저 공격을 해서 허물어버립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목사가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한 번 두 번 두고 보는데 점점 심해집니다. 여러분도 잘 알아두셔야 합니다. 심방을 가면 항상 목회자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막 물어보는 것이 아닙니다. 심방을 하는 목회자와 심방을 받는 사람이 대화를 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심방에 동행한 사람들의 예절입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님이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 묻고 싶은데 이 여전도사가 다 물어봅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는 소외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질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교회에서 그 전도사가 쫓겨났습니다.
우리 집이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것은 약 60년 전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살고 있던 다른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저도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쯤 되었을 때 일입니다. 안 믿는 가족들이 교회에 대해서 아주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우리 집에 심방을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목사님이 오셔서 예수를 믿으라고 조금만 잘 얘기해주면 모든 사람이 교회에 갈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비록 불신자 집안이었지만 열심히 준비를 했습니다. 김치도 담그고 고기도 사오고 그래서 정말 맛있게 점심을 차렸습니다. 심방이 끝나고 그 점심을 내왔습니다. 예배를 드렸는데 아주 은혜로웠습니다. 그리고 밥상이 나왔습니다. 화기애애하게 모두 둘러앉아서 밥을 먹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습니다. 밥을 먹고 배가 부르신 목사님이 벽에 기대 앉으셨고 젓가락을 집어서 이빨을 쑤시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것은 아주 최악의 예절입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계속 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마시고 두 다리를 쭉 벌리고 가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 토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정 복음화가 20년 연기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차라리 심방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훨씬 더 빨리 우리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목사들의 수준이 저렇게 저급하구나라는 것을 알려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우리 가족이 그 때 예수 믿을 뻔 하다가 20년이나 예수를 안 믿게 된 이유를 자기의 그 예의 없는 태도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 사람이 목사님을 따라온 운전기사였다면 그 사람 때문에 예수를 안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지도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거 참 버릇없는 운전기사가 따라다니는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교역자들에게 항상 애기합니다. 영적이고 특별한 가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가치 위에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능력 있고 신령한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일반적으로 교양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커다란 호텔 커피숍에서 목사님들이 모여서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목사님이 대화를 하다말고 갑자기 하얀 냅킨에다 커피 프림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커피 프림으로 자기 구두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카펫에 프림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커피 프림으로 구두를 닦으면 윤이 잘나고 구두를 오래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주 야비한 태도입니다. 너무 에의 바르지 못한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도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서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교인이 신앙생활을 잘 못하길래 상담을 하는데 그 사람은 교회 온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애기할수록 그 사람은 자꾸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목회자는 더 가까이 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이 사람이 경청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잘 듣는 줄 알았는데 한참 듣고 있던 교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좀 떨어져 앉아서 이야기하실래요? 목회자가 물었습니다. 왜요? 입에서 냄새가 너무 나거든요. 제가 전 세계 어디 가든지 가지고 다니는 필수 휴대품이 있습니다. 저는 누구를 만나든지 가글하지 않고는 만나는 적이 없습니다. 목회자가 아무리 아름다운 교훈을 준다 하더라고 입에서 썩은 냄새가 쏟아지는데 그걸 어떻게 참을 수 있겠습니까? 항상 정결하고 깨끗한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화려하고 사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정결하고 존중받는 시민으로서 신사와 숙녀가 되어야 합니다.
몇 해 전 지방에 있는 어느 신학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를 꼭 만나고 싶다는 학생들이 열 명 정도 서울로 올라갈테니 목사님을 뵈올 수 있게 해달라는 간곡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비서가 안 된다고 말을 하려고 하다가 제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쁜데도 시간을 내주었습니다. 10킬로나 되는 먼 길을 차를 타고 이 김목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내가 중국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유명합니다. 그래서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자매는 결혼한 자매인데 만났더니 막 떨었습니다. 왜 떠느냐 그랬더니 꿈꾸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학생들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뭐 한마디만 얘기해도 전부 노트를 꺼내서 열심히 적었습니다. 한국에도 아주 공부 잘하고 똑똑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고 여기 오시는 교수님들 대부분이 전부 그런 학교입니다. 총신 고신 합신 그런 학교 학생들이 다 훌륭한 학생들입니다. 그런데 그 학교는 저 지방에 있는 학교였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학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항상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유지합니다. 같이 대화도 하고 다과도 나누고 질문도 받고 그리고 서재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이 보고 싶고 만나고 해달라고 애원했는데 그 중에 한 학생이 츄리닝을 입고 왔습니다. 그것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예의 없음입니다. 어른을 만날 때는 항상 정장을 하고 혹은 정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정한 복장을 하고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운동화를 신고 온 것입니다. 제가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참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신학생 때도 저렇게 예의가 없는데 교회 지도자가 되면 목사님, 예의가 없으시군요. 목사님, 그렇게 하시는 것은 신사가 아닙니다. 교인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인이 그렇게 말한다면 목회자와 헤어지려고 마음을 먹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지적해서 혼을 내줄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이처럼 예의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교인들은 아주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도 있지만 혹은 아주 많이 배우고 그리고 높은 지위에 있는 교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에의 바르고 품위 있는 교역자가 되어야합니다. 가난하고 검소한 것은 흠이 아니지만 예의 없고 야비하고 촌스러운 것은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런 것에 늘 신경을 써야합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우리 교역자들을 모아놓고 패션에 대해서도 가르쳐줍니다. 목회자의 헤어스타일은 어떤 것이 좋을까 옷차림새는 어떤 것이 좋을까 그리고 이 사람을 불러내서 세우고 왜 이런 옷차림은 잘못되었는지 색깔과 모양의 조화, 이런 것들도 얘기해줍니다. 우리 교회 목회자의 아내가 20명쯤 있는데 그 자매들이 늘 같이 공동으로 모입니다. 그때 항상 빼놓지 않는 특강이 있는데 사모의 차림새에 대해서입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서로 경험들을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열린교회에 처음 사모로 오면 저 시골사람같이 왔다가 6개월쯤 지나면 도시 사람처럼 바뀝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비싼 옷을 사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유행하는 모양과 색깔, 이런 것들, 머리 모양 같은 것들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많은 배려와 그리고 준비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입사를 했습니다. 입사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면접관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차림새가 그 꼴이 뭔가? 그랬더니 이 청년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랬더니 면접관이 그랬습니다. 너희 하나님은 중심만 보지만 우리 회사는 외모도 본다고 말입니다. 교인들이 깊은 신앙심으로 우리의 중심만을 보고 나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면 이런 강의가 필요 없겠지요. 그러나 교인들은 중심도 보지만 외모도 봅니다. 여러분도 아마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의 인격은 오랜 세월동안 인내를 통하여 형성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위대한 고린도전서 13장을 기억할 것입니다. 거기서 사도 바울은 사랑의 속성을 말했습니다. 가장 반복해서 말한 유사한 사랑의 속성은 오래 참음이었습니다. 사랑과는 거리가 먼 충동적이고 폭압적이고 독선적이던 젊은이 사도 바울이 사랑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속성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라고 말입니다. 사랑이 무엇일까요? 사랑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혹은 그것을 지속하고자 하는 성향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성향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이 없을 때에는 나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사랑이 생기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자신이 견디기 힘든 것을 참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는 그것을 참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밥을 열심히 먹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은 참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잠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퍼지도록 잠을 자는 것을 가리켜서 참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참고 싶은데 까지만 참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참음은 참기 싫고 참을 수 없는 시점에서부터 겨우 참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목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목회란 마음에 눈물이 가득한 것. 그것은 목회자에게 뒤따르는 끊임없는 인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통이 무엇일까요? 고통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고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거기는 고통이 없습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질서 속으로 들어가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바로 고통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엄청난 인내심을 갖지 않으면 결코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한 교회로 옮기고 나서 일 년도 못되었는데 목회지를 옮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메뚜기처럼 늘 사역지를 옮겨 다니는 사람들, 좀 더 쉽고 조건이 좋은 곳으로 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목회자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억울하고 할 말이 많아도 그것을 참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목회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약점도 있지만 때로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오해를 받을 때 변명하고 오해를 해명하는 것은 누구든지 억울한 오해를 받는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그런데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받는 오해를 해소해야겠는데 때로는 오해하게끔 내버려둡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오해를 충분히 해명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을 밝혀서 몇 사람을 나쁜 사람을 만들어야합니다.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내가 오해를 받으면 나 하나가 참으면 끝나는데 내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이 사람이 잘못 말했다는 것, 그것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애기해서 저 사람의 잘못을 보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나는 존경하고 사랑하느냐하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피해보고 끝날 일이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피해자들이 더 생겨납니다. 누구든지 존경받고 인정받고 싶지 오해받고 무시당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전체를 생각해서 그것을 참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예화) 한국에서 실제로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크지도 않고 교인 백여 명 정도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에 결혼하지 않은 자매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자매가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점점 배가 불러오는 것입니다.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 정도 되면 웬만하면 교회를 떠날 텐데 그 자매는 왜 그런지 씩씩하게 교회에 나왔습니다. 나중에 감출 수 없이 커지니까 교회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우리 교회 청년인데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저렇게 아이가 생겼냐 교회 제직회에서 불러서 물었습니다. 그 아이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갖고 누구 아이냐 그 자매가 목사님 아이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오래 전에 부인이 돌아가시고 혼자 기거하시면서 교회를 돌보셨습니다. 이 자매가 가끔 교회에 가서 목사님 빨래도 해드리고 밥도 해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온 교회 교인들이 믿어버린 것입니다. 목사님이 아니라고 했으나 목사님에게는 발언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쫓겨났습니다. 자매는 아이를 출산했고 그 아이를 목사님께 줘버리고 목사님은 퇴직금도 없이 그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월이 오 년 정도 흘렀습니다. 무슨 일인지 그 자매는 교회에 계속 나왔습니다. 그 교회에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이 자매가 부흥회 때 은혜를 받고 자기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때 그 아이는 목사님 아이가 아니라 목사님을 내쫓으려고 한 그 어느 유부남 집사의 아이였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온 교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집사님들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전국을 수소문해서 찾았더니 강원도에 있는 어느 탄광에 들어가서 광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년동안 자기가 광부 일을 해서 이 아이를 기른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한국 같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고소 고발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이런 정도 되면 누가 참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결국은 그 목사님은 오해가 풀렸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서 크게 사죄를 하고 마침 그 교회에 목사님이 다른 곳으로 가시기 때문에 다시 자신의 교회에 부임하여 평생 존경을 받으며 목회를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인내는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때로는 오해 그리고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당하는 괴로움을 이길 때도 있지만 어디 그뿐입니까?
가난도 견뎌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 같은 신학대학원 시절에 정말 가난했습니다. 먹고 살만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가니까 너무너무 가난했습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 많은 인내를 배웠습니다. 교회에 들어가서 살았는데 교회 청소도 하고 그러면서 관리인처럼 살았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교회당 옆에 다 쓰러져가는 집이었는데 비가 오면 방에 물이 샙니다. 그릇을 아홉 개를 놔야합니다. 띵 띵 띵 띵. 띵 띵 띵 띵. 겨울의 일이었습니다. 항상 조갈이 나서 밤에 물을 많이 마셨는데 찬물을 떠서 머리 위에 놓고 아내와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결혼한 지 일 년 밖에 안 되었는데 우리 집사람 나이가 스물다섯이고 저는 스물일곱이었습니다. 밤에 자다가 너무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사발을 들었는데 물이 안 나왔습니다. 눈을 떠서 보니까 사발의 물이 꽝꽝 얼었습니다. 옆에 보니까 아내가 이불을 덮고 있는데 코가 새빨갰습니다. 그리고 하얗게 콧김이 나왔습니다. 너무 추웠습니다. 그렇게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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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도자로 쓰시기 위해서 치열한 인내 속에서 다듬으시고 연단하셔서 쓰시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들이 지금에 와서 보면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아주 훌륭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교회 마당에 집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 가는데 새벽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까 댓돌위에 봉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열어보니까 고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그 당시 고기가 굉장히 귀했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우리가 못살았고 나라도 훨씬 가난할 때였으니까 80년대 초쯤 됐습니다. 그래서 그 고기를 썰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고기를 안 먹어서 제가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교인이 말하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제가 고기를 댓돌 위에 올려놓았는데 드셨어요? 네, 먹었습니다. 그 고기를 고추장에 무쳐서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 전도사님, 그 좋은 소고기를 고추장에 볶아서 드셨어요? 아, 그게 소고기였습니까? 너무 오랫동안 못 먹어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고생한 것이 가슴이 아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넉넉함 대신 고난을 주셔서 연단을 받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평생 살면서 누구에게 내가 이렇게 어려우니 나를 도와주십시오 라고 도움을 한 번도 청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사례금을 주는데 그 당시 월급이 삼백오십 위안 쯤 되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에 한번 씩 내는 신학교 등록금은 이천이백오십 위안 쯤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먹고 6개월을 모아도 학비가 안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우리를 대우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 있으면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도우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나 지금은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생했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괴로웠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 월급 받아서는 학교에 다닐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장학금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명예의 문제가 아니가 생활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치열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항상 한 삼일씩 앓았습니다. 그렇게 4년을 공부했는데 전교 수석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생활이 안 되니까 매 학기 최선을 다하다보니까 수석을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생각했지요.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신학대학교 4년 뿐 아니라 신학대학원 3년도 그렇게 어렵게 다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도와주는 사람도 많이 나타나는데 우리는 돕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좋은 인격, 그리고 훌륭한 태도를 가지고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이 되기를 바라시겠지요? 그렇지만 고난은 싫지요? 참는 것은 괴롭지요? 그러나 참고 고난을 당하는 것 없이 그렇게 예수 향기가 나는 사람으로 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이 목회를 하게 되면 결혼을 해야지 목회를 하게 되겠지요.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자신에게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사모의 인격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합니다. 저는 목회자의 아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목사님들이 목회를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회자는 수시로 교회를 옮깁니다. 교회를 옮길 때마다 항상 돈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모님이 돈을 잘 빌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투자를 합니다. 잘 되면 이익이 남고 안 되면 교인들의 돈을 떼어먹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문제가 일어납니다. 최근에 제가 아는 교회에서도 교인들의 돈을 거두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투자를 했다가 경제가 나빠지면서 원금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던 교회는 내 돈 돌려달라고 아수라장이 되었고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런 것들도 모두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의 인격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사치하는 목회자 아내의 생활, 다른 사람과 다투고 헐뜯기를 좋아하는 태도, 그리고 교인들은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데 한없이 게으른 목회자 아내의 생활의 태도, 이런 것들은 두고두고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모도 좋은 인격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과장과 거짓말, 허위, 이런 것들은 잘못된 것들입니다. 신학교 교수로 있을 때 일입니다. 학생들이 리포트를 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리포트는 어디서 본 듯한 리포트였습니다. 바닥에 놓고 찾았더니 똑같은 내용의 리포트인데 이 사람은 이런 글자체, 저 사람은 저런 글자체, 신학생이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최근에 미국에 갔다가 미국의 유수한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일 년 뒤에 박사 논문 중 한 문장이 다른 논문과 완벽하게 똑같다는 이유 한 문장이 똑같다는 이유 때문에 박사 학위가 취소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적인 도둑질입니다. 다른 사람이 발견한 것을 마치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쓰는 것입니다. 중국에도 그런 것이 있습니까? 미국에는 많습니다. 그것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악입니다. 미국에는 박사 논문을 쓰면 그 파일을 컴퓨터에 넣어서 돌립니다. 그러면 이 논문이 어느 부분이 남의 것을 인용한 것인지 한 번에 다 프로그램에 나옵니다. 그런 것들은 매우 비겁한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학문을 하는 사람의 태도일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에 한상동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아주 유명한 분이었는데 이 분이 신학교를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들어오는 본과가 있었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들어가는 예과가 있었습니다. 예과에 다니셨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그런데 시험시간이었습니다. 영어 시험 시간이었는데 다른 시험은 잘 모르면 설교라도 쓰고 나오겠는데 그러면 설마 빵점을 주겠습니까? 아이 엠 어 보이가 입력이 안 되었는데 출력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한숨을 쉬면서 주님을 주여 주여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옆의 학생이 시험지를 옆으로 자꾸 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한상동 전도사는 이 사람이 왜 그러나 했는데 자기를 불쌍히 생각해서 보고 쓰라고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시험지를 덮고 산에 올라가서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평소에 어떤 태도로 살았기래 나를 가장 잘 하는 학우가 시험지를 보여주면 내가 커닝해서 답안을 쓸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세월이 흐른 후에 영어를 잘해서 시험지를 보여준 학생의 이름은 잊혀졌지만 백지를 낸 그 목사님은 후에 그 학교의 총장이 되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방법입니다. 항상 진실하고 거룩해야합니다.
옛날에 어느 임금님이 살았답니다. 재밌는 얘기를 하겠습니다. 임금님에게는 항상 누가 있지요? 예쁜 딸이 하나 있습니다. 공주입니다. 사위를 얻고 싶은데 사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광고를 냈습니다. 나에게 외동딸이 있는데 이 딸을 시집보내고 싶다. 왕의 사위가 되고 싶은 사람은 모두 모여라. 성 앞에 끝이 안 보일정도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였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왕자가 될 사람을 고르는데 지금부터 너희에게 꽃씨를 나누어줄텐데 그 꽃씨가 종류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꽃씨가 뒤섞인 것입니다. 그 꽃씨를 이 만큼 쌓아놓고 몇 알씩 주면서 이 꽃씨를 가지고 가장 예쁜 꽃을 피워가지고 온 사람에게 내 딸을 주고 사위를 삼겠다고 했습니다. 한 6개월이 지난 후에 사람들이 손에 손에 화분을 들고 모였습니다. 신기하게 멋있는 꽃이 다 있는 것입니다. 왕이 아무도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한 청년이 화분을 들고 왔는데 꽃은 없고 흙만 담아가지고 왔습니다. 폐하, 제가 이 꽃씨를 심고 물도 주고 햇빛도 쪼이고 온 힘을 다해서 6개월 동안 길렀지만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 사람에게 공주를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꽃씨를 나누어주기 전에 푹푹 삶았습니다. 그래서 꽃씨를 다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입니다.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정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거짓을 미워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는 가난하고 힘들지만 그러나 목회자가 되고 교인들이 목회자를 잘 섬기면 가난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그 때가 되도 가난하던 시절을 잊어버리지 않고 검소하고 절제 있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고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없음이라 그렇기 때문에 항상 탐욕을 버리고 그렇게 정직하게 살 수 있을 때 그의 설교는 빛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한 번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이다음에 크게 교회를 목회할 때 어떤 목회자의 삶이 도움이 될까요?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아온 목회자가 목회를 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살아온 사람이 목회를 잘 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난하게 산 것이?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어떤 목회자들은 넉넉하게 되었을 때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일단 넉넉해지고 나면 다시 가난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면 넉넉하게 산 사람이 목회를 잘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자로 살던 사람들은 원래 쓰던 가락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된 다음에도 그렇게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정답은 무엇일까요? 가난하게 살았느냐 부하게 살았느냐 그 사 실이 목회를 잘하게 하거나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이냐 입니다. 가난하게 살았었는데 말씀으로 변화가 되었다면 가난한 시절을 생각하면 가난한 교인들을 배려하고 자기의 처지에 안분지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유하게 살았는데 은혜를 많이 받았다면 그 또한 그렇게 부유하게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물질의 욕망을 내지 않고 충만한 삶을 살수 있을 것입니다.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본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자연적인 본성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고 무엇보다도 안분지족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존귀한 인물이었습니다. 히포의 대 주교가 되었을 때 특히 많은 교인들의 존경을 받았고 분에 넘치는 선물들을 교인들이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중에는 아주 훌륭한 의복도 있었고 아주 고급스러운 물건도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요? 그것들을 모두 모았다가 나중에 팔아서 돈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런 태도가 여러분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가난한 때에 동역자들을 물질로 돕고 섬기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자로서 자신을 빚어가는 방식입니다.
제가 아는 어누 교수님은 영국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너무 돈이 없어서 고통을 받다가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노트를 펴보니까 노트 속에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누가 주었는지 편지 한 장 없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깊이 감동을 받고 눈물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학생이 결심을 합니다. 나도 영국을 떠나기 전에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주어야지 했습니다. 열린교회에서 한국과 해외에 있는 학생들에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신학생 섬김의 날입니다. 국내에 있는 신학교 10곳을 매해 방문합니다. 가서 점심을 한 끼 아주 잘 대접을 하고 내 책을 한권씩 거저 주고 내가 가서 설교 한 번 하고 장학금을 주고 그것을 열 학교를 합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미국에 있는 학교들도 시작했습니다. 계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학대학원 다니던 시절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학교 식당에 갔더니 고기를 이렇게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밥을 퍼서 가지고 갔더니 고기를 이만큼 주고 상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이것이 무엇입니까? 싼 가격에 이렇게 좋은 반찬을 줍니까? 여러분의 선배들, 20년 전에 졸업한 선배들이 돈을 모아서 여러분에게 고기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돈이 없지만 이다음에 내가 목회를 해서 교회가 커지면 꼭 와서 우리 후배들을 이렇게 대접하리라. 총신 학생이 천팔백 명입니다. 한 끼 대접하는데 점심 한 끼를 딱 대접하는데 오만위안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매년 하고 있습니다. 칠년을 했습니다. 그리고 장학금도 계속 지급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받은 대로 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지도자가 되어서 어떻게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의 종노릇을 하는지 그렇게 배워가고 실천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이 살아있는 사역자의 모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찬양)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것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우리 한국에는 가시고기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아주 조그만 고기입니다. 크기가 그저 요만할까 조그만 고기입니다. 여러해 전에 텔레비전에서 가시고기의 일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울컥 눈물이 솟았습니다. 그 가시고기는 모든 물고기가 그렇듯이 알을 낳습니다. 암컷이 알을 낳고 수컷이 거기에다 수정을 시키면 물고기가 나옵니다. 대개 모든 물고기들이 어미가 새끼를 돌보는데 이 가시고기는 어미는 알만 낳고 도망갑니다. 그러면 아빠 고기가 거기다 정자를 쏟아서 수정이 되면 물고기가 생겨날 것 아닙니까? 저 구석진 곳에다가 알을 낳습니다. 물이 흘러가는 곳에 낳으면 물에 떠내려가거나 다른 물고기가 와서 먹어버리니까 구석진 곳에 낳습니다. 구석진 곳에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물이 흐르지 않으니까 산소가 부족합니다. 그러면 알이 거기서 상합니다. 그러니까 암컷이 알을 낳고 간 다음에 이 가시고기 아빠가 지느러미 두 개로 물질을 계속합니다. 그러면서 물을 계속 갈아줍니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23일 동안 그러고 나면 새끼들이 조그만게 나옵니다. 아빠고기는 배짝 마르고 지느러미는 너덜너덜합니다. 물에 상하고 부패합니다. 양분이 계속 공급이 되어야 생생할텐데 좀 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결국은 너덜너덜해집니다. 그래도 계속 물고기들이 오지 못하도록 막고 새물을 공급합니다. 물고기들이 와서 알을 먹으려고 하면 사납게 막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새끼들을 못나가게 하고 산소를 먹으면서 새끼들이 자랍니다. 너무 지쳐서 점점 잘 못하니까 그러다가 죽습니다. 그러면 새끼들이 첫 번째 먹는 음식이 아빠의 몸입니다. 그것을 뜯어먹으면서 자랍니다. 그러고 나면 뼈만 남게 되고 새끼들을 꽤 큽니다. 가시고기의 일생입니다. 목회자의 일생이 바로 그런 가시고기의 일생과 같은 것입니다.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목회자는 그렇게 살다가 교회와 예수를 닮은 교인들을 남겨두고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큰 영광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젊어서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꿈에 부풀어 있을 것입니다. 나도 젊을 때가 있었으니까요. 서른아홉 살에 열린교회를 일곱 명의 성도와 함께 개척해서 교회를 세웠지만 두 개의 교회가 망하고 나간 그 지하실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엊그제 같습니다. 그런데 벌써 20면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잠깐입니다. 그래서 잘 준비되어서 아주 짧은 시간동안 불꽃처럼 그렇게 주님을 위해 살고 마지막에 죽는 것 그것이 목회자의 일생입니다. 세상의 영광이나 이 세상의 물질 그런 것들은 바란다면 이 길로 들어서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목회의 길은 자기 죽음의 길입니다. 가시고기와 같은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