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반 강의
녹취자: 조은상
30과를 보겠습니다.
부활, 마지막 세계, 무궁세계, 부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자가 부활 할 것을 가르쳐 준다. 구약은 이에 대해서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신약은 이에 대해 충분한 증명을 제공해 준다. (강독)
부활의 성질,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육체적 부활을 기대하라고 말씀해 준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은 육체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한 부활은 고린도전서 15장과 로마서 8장에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다. 부활을 의로운 자나 악한 자들 모두를 포함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의로운 자만을 위한 구원과 영화가 될 것이다. (강독)
부활을 하는데, 일단 우리가 지난시간에 배운 내용에 의하면 중간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중간상태에 들어가서 마지막 심판 때 부활하게 됩니다. 부활 하게 될 때에는 음부에 있는 사람들은 나와서 부활하고, 낙원에 있는 사람도 나와서 부활한 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완전히 들어가게 됩니다. 그 때 그 상태가 어떤 상태냐면 완전한 몸을 입은 상태입니다. 그 부활체는 심판을 위한 부활이기도 하고, 영광을 위한 부활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심판의 부활 생명의 부활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그 부활체가 어떠하겠는가 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이 부활 했을 때 예수님의 부활체는 분명히 만져보면 몸이 있지만, 그러나 문이 닫혀 있어도 통과할 수 있고, 예수님이 무엇인가를 잡수실 수도 있고, 안 잡수실 수도 있고, 그렇게 지금의 육체와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함께 가진 그런 변화된 육체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육체의 상태에서 형벌을 받는다면, 형벌이 가능하겠습니까? 조금하면 죽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런 심판을 받기에 적합하도록 부활하고 영생을 적합하도록 부활하는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든 최종적인 상태라고 봅니다.
오늘 날 지옥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지옥을 만드실 수 있는가 하는 논의 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는 어쨌든 성경을 기초로 이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만약에 지옥이 없다면 천국의 정당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하신 판단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많은 문제들일 등장합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이성주의 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시대에 이러한 지옥의 심판을 위한 부활의 교리 같은 것들은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보이겠지만,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교리라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믿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 보겠습니다.
부활의 시기
성경에 의하면, 일반적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세상 끝날과 일치할 것이며, 최후 심판 바로 직전에 있을 것이다. 전천년설 주장자들은 이중적 부활을 주장하는데, 그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시의 의로운 자의 부활이요, (강독)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천년동안 이 세상 나라를 다스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다스림에는 의인들이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의인의 부활이 먼저 있고, 천년의 왕국 기간이 끝나고 나면, 그다음에 불의한 자들이 부활하여 영원할 형벌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모두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으로 가르쳐 준다. 악한 자의 심판을 재림과 관련시키며, 의로운 자의 부활이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준다.
최후의 심판
부활의 교리는 최후의 심판의 교리와 연결된다. 성경은 궁극적 심판이 집행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심판주가 되실 것이다. 이러한 명예는 그의 구속사업에 대한 보상으로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것이다. 천사들은 그를 보조할 것이며, 성도들도 그의 심판사역에 다소나마 참여할 것이다. (강독)
심판 받을 무리들
인류 개개인이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있다.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의로운 자는 심판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구절(마태복은 13장 30절, 40~43절, 49절, 25장 31-36절,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어긋난다. 마귀도 분명히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강독)
최후 심판은 자연히 세상 끝날에 되어질 것이며, 죽은 자의 부활 후에 즉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심판의 기간은 결정되어질 수 없습니다. 심판날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필연적으로 24시간의 하루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년이 하루와 같다고 말하는 전천년설-특별히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주의자들의 주장도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4번이 중요합니다. 성도들과 죄인들이 심판받게 될 표준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시된 의지이다. 줄치십시오, 이방인 들은 동그라미 치고, 자연법을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니, 유대인들은 구약계시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요, 복음의 충만한 계시를 안자들은 복음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강독)
무슨 뜻인가 하면, 사람을 가르면 결국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약만 믿는 유대인 들, 그리고 복음을 들어서 안 사람들, 그리고 완전히 복음이고 율법이고 성경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 가끔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이순신 장군은 구원 받았습니까? 이런 질문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에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두 곳에 새기셨습니다. 하나는 돌판에 새기신 율법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마음에 새긴 율법인데, 이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십계명은 구약이기 때문에 끝난 계명이 아니라, 영원히 가치가 있는 계명이고, 인간의 모든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들은 이 십계명으로 집약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이 율법의 핵심에 대한 인상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분명하게 가슴에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 율법의 기준을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에 로마서가 양심이 스스로 율법이 되어서 그들을 심판하다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성경 계시로 보여주지 않은 사람들을 심판하신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정당성이 위배되지 않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마음에 분명하게 도덕률을 새겨 두셨습니다.
그런 도덕률을 사상적으로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계몽주의가 끝나고 근대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시작되면서 체계적으로 양심의 기준이 되는 인간의 도덕법들을 부인해 보려는 시도들이 조직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양심이 실종되는 이유는 바로 율법에 대한 뚜렷한 인식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엔 양심이 실종됩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도덕교육이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절대적인 기준으로서의 법을 부인하니까 양심이라는 것 자체가 아주 상대적인 게 되고, 오히려 양심이 아주 예민하면 정신병적인 집착으로 오해합니다. 그렇게 되니까. 아이들에 대한 도덕교육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어떤 도덕율을 이야기해도 ‘왜 안 되는 돼요?’ 라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남의 것을 훔치면 안 됩니다.’ ‘왜 안 되는 돼요?’ ‘간음하지 마라.’ ‘왜 나쁜데요?’ ‘살인하지 마라.’ ‘왜 안 되는 돼요?’ ‘부모를 공경하라.’ ‘무슨 근거로 그렇게 하죠?’ 그렇기 때문에 근거를 집중적으로 공격을 함으로써 모든 도덕의 기반들을 허물어서 결국 인간이 모든 도덕을 스스로 규정하고 설정하는 주체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다음 최후의 상태, 악인의 최후상태, 악인은 지옥이라 불리우는 형벌의 장소로 보내진다. 어떤 학자는 지옥이 장소임을 부인하고 상태로 간주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장소적 용어를 사용한다. 이런 곳에서는 완전히 신적 은총을 빼앗길 것이며, 생활의 불안을 끊임없이 경험할 것이며, 영육간의 고통을 당할 것이며, 양심의 번뇌와 실망에 빠질 것이다. 그들의 형벌은 등급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당하는 형벌은 영원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학자는 영속과 영원이라는 말이 오랜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부인한다. (강독)
부인하면 어떻게 되냐면,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모두 다시 복권되고. 심지어는 사단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통상적인 의미가 아니므로, 장래 형벌에 적용될 때, 이간은 제한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 형벌은 끝없는 형벌을 지적하는 것이다.(강독)
의인의 최후 상태, 신자의 최후 상태는 현세가 끝나고, 새 창조가 이룩되기 전에 이루어질 것이다. 이 미래의 창조는 전적으로 새 창조가 아니라, 현 우주의 갱신인 것이다. (강독)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새 창조가 된다고 해서 이 세상이 모두 파멸되고 없어져 버리고, 우리는 다른 우주 공간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지금 있는 현재에 지구를 포함한 우주가 하나님께 인간이 타락하여 저주를 받기 이전의 상태로 갱신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 다음 천국은 성도들이 영원히 거할 처소가 될 것이다. 천국을 하나의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을 분명히 하나의 장소로 언급하고 있다. (강독)
그래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천국이 이루어져도 풀밭이 있고, 다시 원시상태로 돌아가서 옷도 입지 않고, 벌거벗고, 과일이나 따먹으며 띵까 띵까하고 노는 그런 곳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문화가 건설될 것이고, 이 세계에서는 흥망과 그 모든 것들이 아주 탁월한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문화 속에도 충만하게 될 것이라는 세계를 우리가 상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흔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하얀 희랍식 옷을 입고, 사자와 어깨동무하고 뒹굴고, 사과나 따먹고, 강가에서 뒹굴고 노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봅니다. 그대신 그곳에는 끊임없는 기쁨이 있을 것이고, 여기에서 경험하는 불안과 고통, 인간 관계의 깨뜨려짐은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부분이 도덕적으로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3장이 30번째로 막을 내렸는데 30번째 설교를 들어 보십시오. 30번째 설교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어떠한 형태가 될 것인가라는 것인데, 결론은 그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가 될 것이다. 어떤 식의 사랑의 나라가 되냐하면, 모든 인류가 서로를 향해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을 하는 사랑의 나라가 되리라 하는 것입니다.
의인의 보상은 영생이니 끝없는 생명일 뿐 아니라, 현재의 불완전이나 불안이 없으며, 모든 면에서 완전한 생인 것이다. (강독)
생은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생명이 무엇입니까? 생물학, 의학, 생화학과 출신 손들어 보십시오. 틀려도 괜찮습니다. 자유롭게 대답해 보십시오. 생명이 무엇인지는 명확한 정의가 불가능 합니다. 어떤 철학자는 생명은 죽음에 항거하는 모든 기능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생물학에서는 생물의 특징을 무엇을 이야기 하냐면, ‘response’ 반응입니다. 즉 , 생명체는 외부의 조건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이 생명체입니다.
두 번째는 metabolism, 신진대사입니다. 이것은 자충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이안에서 스스로 대사를 통해서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죽었다고 할 때는 신진대사가 끝납니다. 100년을 살아도 살아있는 날 동안에는 썩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장한 청년이라도 죽으면 이틀도 안 지나서 썩기 시작하고 냄새가 납니다. 그것이 metabolism이 사라져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metabolism이 있기 때문에 사실은 response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가 modes(양태)라고 하는데, 모드를 보면 에어컨에서 난방, 냉방, 송풍 등이 있듯이, 어떤 사물이 이 사물이 외부의 환경을 계속 만나면 이것에 의해 무생물체인 경우 모드가 바뀌지 않는다. 무생물체인 경우 모드가 바뀌는 것이 아니고, 열을 받아서 녹든지 증발하는 변화는 일어나지만, 생명체의 경우 어떤 A라는 조건이 계속 주어지면 반응이 일어나면서 변양이 일어납니다. 양태가 변한다고 해서 변양(Modification)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자면 생물하자들이 이야기 할 때 우리가 그 이야기가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지만, 선인장이 있으면 선인장이 원래 잎이었는데 물기가 없는 곳에서 적응하다 보니 가시로 변한 것이라든지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변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인간이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거기에서 인간이 어떻게 끊임없는 환경 속에서 변하는가라는 것들을 정신의 변화와 육체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수반 물리학이라고 합니다. 수반은 따라온다는 의미인데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끊임없이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고,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우리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깨뜨려 지면, 화학적으로 말하면 여기서 펩타이드가 나오는데, 그 물질이 분비되는 것들이 변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지속적으로 도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뇌 자체에서 변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종하게 살면 마찬가지로 방종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몸 자체가 항구적인 변양을 같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생명체의 조건입니다. 생명체가 그런 특성을 가진 것이다.
세 번째는 transcription입니다. 이것은 성경책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생명공학에서 이야기 하는 것인데, 전사입니다. 베끼는 것입니다. 여기에 self를 붙이면 자기전사가 됩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자기와 동일한 것들을 남기려고 하는 특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콩을 심으면 계속 콩이 나옵니다. 콩은 그런 조건을 제시 안 해주면 가만히 있지만, 그런 조건만 딱 제시해 줘서 습도 온도가 맞으면 싹이 납니다. 얼마 전에 3000년 전에 볍씨를 다시 살아나게 해서 싹을 틔웠다는 말을 해외토픽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살아나기만 하면 그것들은 열매를 맺어 자기와 똑같은 개체를 남기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이 가지고 있는 특성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들이 영혼과 관련시켜서 영적 생명을 이야기 한다면 똑같습니다. 영적으로 생명이 있는 자들은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좋고 나쁜 것에 대하여 반응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 자신 안에 생명의 원리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가득 차도록 신진대사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과 완전히 동떨어진 상태에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을 맺고 잇는 상태에서 이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이 법칙을 만드시면, 법칙의 결과입니다. 높은 곳에서 물건을 내려두면 이것들이 떨어집니다. 이것이 법칙입니다. 이 법칙만 있고 하나님만 안계신가? 그게 아니고 바로 이 법칙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 법칙이 법칙으로 계속 실행되게 하십니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중생과 회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놀라운 존재의 성향의 변화를 우리에게 주셨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감각적인 인식론적인 변화를 주셔서 존재론 적으로도 변화되고, 인식론적으로도 변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변화들이 법칙처럼 작용해서 하나님 없이 유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과 함께 하시면서 그 법칙이 법칙으로써 실행이 되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적인 성향이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성향을 우리에게 주시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가운데 유지되는 것이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도 그것들이 가능해진다고우리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간의 모든 생명은 생명이야 말로 하나님께 대한 놀라운 의존성을 드러내고, 또 인간의 영혼의 생명은 더더욱 하나님을 향한 탁월한 의존성을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영원 무궁세계에서 충만하게 누리는 그 영적인 생명도 역시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장악된 그런 종류의 영적인 생명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봅니다.
그 다음에 이러한 생명의 충만, 하나님과의 교통, 혹은 교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영생의 본질이다. 모든 사람은 완전한 복락을 누릴 것이지만, 이 천국의 복락에도 등급이 있을 것이다.(강독)
이것은 사실 생각들이 나뉩니다. 그런 등급들이 뭐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등급이 있을 것이다. 있는데 그 등급은 높은 등급 받은 사람은 기분이 좋고, 낮은 등급 받은 사람은 짜증이 나서 거기서 질투가 일어나는 그런 종류의 등급은 아닐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해서 이 천국에서의 영원한 복락을 누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독교교리를 모두 다 마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