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o500 세미나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 20:9)
녹취자: 김지윤
종교개혁의 대의를 잘 정리하고 가르쳐서 당대의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다음 세대의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은 절실하게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헌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교회는 자기의 시대만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시대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종교 개혁의 유산들을 그야말로 유산으로 남겨주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한 세대의 운동으로 끝냈을 것입니다. 종교 개혁가들의 분출하는 열정과 헌신이 있었고,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의 치열한 지적인 헌신과 학문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방대한 자료를 남겼고 그리고 우리는 그 유산들을 가지고 다음 세대 그 다음세대를 이어오면서 오늘날 개혁교회의 모습을 일구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에 우리가 그것으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우리에게 값진 신앙의 유산들을 물려주었고 역사적으로는 네덜란드와 유럽에 있는 교회들에게 커다란 각성을 안겨주는 도구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나라에서 청교도의 작품들이 대부분의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오래 전 존 오웬 목사님이 설교했던 교회에 갔을 때 그 교회에 있는 목회자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의 교인이 존 오웬을 좋아하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좋아하냐 싫어하냐를 묻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텐데 우리들은 존 오웬을 모른다고 말합니다.
몇 년 전 화란의 한 신학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피치우스를 전공하는 사람이었고 피치우스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신학자 중에 한사람입니다. 영국 청교도의 영성과 그리고 칼빈주의 개혁신학을 기가 막히게 조화시켰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그렇게 피치우스를 좋아하는데 피치우스가 오늘날 다시 살아나서 예전에 행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화란 사람들에게 설교한다면 너희 화란 백성들이 좋아하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는 절대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자로 하나를 더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때 사람들은 피치우스의 가르침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러면 무엇이 피치우스 같은 사람의 가르침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그 가르침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은 그에 대해서 답할 것이 없다고 저에게 대답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로 그에 대한 답을 주는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골수에 사무친 칼빈주의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예레미야는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은 사람이었고 그 말씀대로 예언을 했더니 핍박을 받아서 시위대 뜰에 갇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예언했더니 심한 핍박으로 돌아왔고 그는 너무나 괴로워서 그는 내심 내가 다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결심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떤 불이 마음속에 역사하고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나온 골수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 성경에 뼈들 속에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 뼈라고 하는 의미는 겉에 있는 이 외면적인 육체 속에 있는 깊은 심령의 좌소를 상징하는 말로 자주 사용이 되었습니다. 마치 창세기 2장에서 하와를 향해 아담이 이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 뼈처럼 말입니다.
골수에 사무친 그 불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우리가 읽은 그 앞에 보면 그는 말하기를 여러 차례 하나님이 자기를 이기시는 일들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상식과 인간의 감정, 자기만의 나름대로의 판단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진리의 힘이 그를 사로잡았고 그것을 그를 이기었기 때문에 그의 의지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장악되었고 그래서 그는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골수에 사무친 불을 가진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골수에 있는 그 불은 토해놓아야지만 겨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불이고 간직하고 있으면 자신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는 그러한 종류의 불입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 그는 애가를 지어 탄식하면서 사람들에게 외치기를 예루살렘은 이렇게 망해버렸는데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그는 말하기를 너희에게는 내 마음에 사무친 것 같은 불이 없는지 한번 살펴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는 지금 망해서 하나님 앞에 원통하게 통곡하고 있는데 백성들은 그 난리통에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귀중품들과 감추어두었던 돈을 가지고 곡식을 사러 부지런히 뛰어 다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러한 종류의 강력한 불이 필요합니다. 정말 기도하지 않는 개혁 신학자,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진리에 철저히 복종시키려 하지 않는 칼빈주의자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큰일을 오늘날 우리 시대와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마틴 루터는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한 사람의 신학자가 되는 것은 독서와 명상을 통해 이루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하여 죽고 태어나는 경험을 통해서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비화 하는 일에 있어서 텐타치오 고통 혹은 이 시련을 아주 중요한 과정이라고 여겼습니다. 마치 칼빈이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하면서 모든 인간들의 가장 중요한 본문은 섭리 속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역경들을 견디면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하나님 주권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맥이 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루터는 당시 참된 설교와 거짓된 설교자의 구분을 고난이 있는가, 없는가를 가지고 구분점을 삼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공부는 신학자와 교수들이 하고 뜨거운 열정은 목회자들이 소유하여야 한다는 식의 분업 체제를 과연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종종 미국에서 오늘날 복음주의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를 질문을 합니다. 마슨같은 학자는 그 뿌리를 개혁주의 전통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학자들은 18세기의 신앙부흥운동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참된 복음주의는 이 두 개의 뿌리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유장한 개혁신학과 불붙는 부흥이 함께 결합되었던 한 인물 조나단 에드워즈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에게는 기도 많이 하는 신학자 가슴에 불을 품고 있어서 강의실을 뛰쳐나가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교수 그리고 부지런히 밤늦도록 유장한 개혁신학의 유산들을 탐구하는 열렬한 탐구력이 있는 목회자 이 두 가지를 겸비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레미야는 아마도 어린 나이에 선지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그러면서 그는 주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골수에 사무쳐 외치지 않으면 안 되는 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과 같은 신적인 강제력이 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회자와 그리고 모든 신학자들이 양쪽에 다 날이 선 검을 든 사람처럼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양쪽에 날이 선 이 검은 한쪽은 논쟁하기 위한 검이고 또 한쪽은 교화하기 위한 검입니다. 교화하기 위한 검은 보다 더 원숙하고 경험적이고 수사학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어 회개하게 하고 거듭나게 하고 주님의 은혜를 받게 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헌신하게끔 만들어주는 칼이어야 하는 반면에 한쪽에 있는 이 검은 아주 날카롭고 정치적이고 스콜라틱하고 치열하고 그리고 끝까지 뿌리를 뽑고야 마는 논쟁의 정신과 전문가의 정신을 함께 가진 그런 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검을 든 신학자들이 교회를 두루 에우고 있고 이러한 검을 든 목회자들이 조국의 교회를 에워싸고 있고 세계의 보편 교회를 에워싸고 있을 때 이 세상의 헛된 사상들이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며 수많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가입하게 되는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헌신하고 치열하게 연구하고 그리고 열렬히 땀흘려 기도하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학문과 목회와 복음전도와 선교와 모든 활동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한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을 비록 아주 작은 운동이지만 이 운동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떠있는 한조각의 구름은 한조각일 뿐이지만 증거의 구름이고 이 구름들이 많이 모여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가 공의와 사랑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그 물이 공법이 되어 물같이, 정의가 되어 하수같이 흘러가 이 세상을 윤택하게 하게 될 하나님의 영광의 날을 우리 모두 바라보며 우리 맡은 바 일에 헌신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