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2교구 리더 세미나
- 순 목양에 대한 질의응답 -
녹취자 : 오희열
질문 1) 총무로 섬기고 있는 이세희입니다. 순원을 심방하는데 순원이 순장님에게 온전히 마음을 열어놓고 신뢰하는 관계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순장을 평가한다거나 자기 얘기는 하지 않고 뭔가 완전히 오픈하지 않은 상태에서 겉도는 얘기만 한다든지 하면 순장님들이 어려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순장님이 어떻게 풀어 가면 좋을지 질문을 드립니다.
답변 1) 내가 여러분을 오늘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초창기 때에는 교역자들이 심방하는 것부터 사람들을 다루는 모든 것을 나와 함께 “On the job training”을 했습니다. 내가 심방가면 함께 따라가서 해보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일이 점점 많아지니까 그렇게 하기가 힘들어지면서, 교역자 수가 많아지고, 교회가 팽창하면서 교역자들이 빨리빨리 교역자가 되다보니까 그런 부분들이 많이 미숙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미숙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임을 통해서 그런 것들이 100% 해소가 된다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한 번 내가 이야기를 하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이번에 나온 이 질문을 듣고 우리는 막 웃었지만 사실 웃을 이야기가 아니라 구역장, 순장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심각한 것입니다. 매일매일 부딪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꽤 어려운 일입니다.
아까 나온 순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순장은 됐지만 순장으로서 순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리학적인 “라포(rapport)”가 형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라포”는 심리학적 용어로 “공감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아직 안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심방이 계속 피하면서 만나지 않는 경우, 그것은 사실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것을 포기하면 그 사람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는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여는 것은 아부한다고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김형모 목사라는 분을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예전에 “10대들의 쪽지”를 발간했습니다. 저와도 몇 번 만났습니다. 이분 말씀이, 자신은 그 사역을 하기 때문에 교회사역을 도저히 할 수 없는데 어떤 교회에서 주일에 설교만 해줘도 좋으니까 중등부나 고등부를 맡아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다고 하고 맡아서 설교만 하기로 했는데 그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학생들이 안 나오면 심방도 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한 학생이 예배 시간에 계획적으로 방해를 하는 것 처럼 정신 사납게 해서 한 차례 때렸다고 합니다. 지금 같으면 큰일 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통했습니다. 그 학생이 맞고 집에 가서 같은 교회 교인인 엄마에게 이르고 그 학생은 교회도 안 나갔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전화해도 소용없고 심방가도 만나주지를 않았습니다. 기도하면서 열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하루 또는 이틀, 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써서 열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결국은 마음이 열리고 답장이 오고 만났다고 합니다.
여러분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금의 문자 메시지 같은 것은 그렇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문자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들이 다 마음을 엽니까? 아닙니다. 목양관계에서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은 목양을 하는 사람과 목양을 받는 사람이 동일하게 예수를 만났을 때, 그때 누가 열라고 하지 않아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똑같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동료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공통적인 관심사가 생겨나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어려울 수밖에 없고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전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그 사람에게도 좋은 언니나 오빠, 친구, 혹은 동생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으로 남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다가가면 언젠가는 마음을 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실제적인 그런 노력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목회하면서도 느끼는 것은, 도저히 가깝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는데 하나님께서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십니다. 그때 계속 마음이 그 사람에게로 가면서 뭔가를 움직였던 사람들은 그런 기회에 활용을 아주 잘하게 됩니다. 전에 내가 고등부를 할 때도 아주 까칠하고 변화 받지 않던 학생이 있어서 선생님과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장례식 기간에 매일매일 찾아가다시피 했습니다. 마지막에 하관 예배까지 선생님과 따라 갔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결혼하지 않은 자매는 그렇게까지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열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중에 어떤 학생은 목회자의 아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과 함께 강조해야할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그를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음에 없이 그 사람을 보고 ‘저 사람도 내 순원인데…’하며 부담감을 느껴서 갑자기 행동으로 문자를 보내고 미소를 짓고 친한 척을 해도 평소에 그 순장이 자기에게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압니다. 기가 막히게 압니다. 그래서 마음 중심으로 그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조언을 하나 더 하자면, 순원이 심방을 거부하고 만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좌불안석이 되는 순장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툭하고 던진 이야기가 순원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이야기가 되어서 상처주고 돌아와서 후회하거나 그런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이미 마음을 열고 심방을 하는 사람에게도 내가 오늘 설교한 것처럼 가르칠 것을 한 보따리 가져가서, 오랜만에 아들 만난 아빠처럼 한 번에 그를 비틀어서 교정해 주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지금 접골원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접골원은 한 번에 뼈를 맞춰야 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그 사람의 관심사의 이야기 강물에 자기도 흘러갈 용의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것은 질문입니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굉장히 풍부한 상식을 갖추게 되었는데 책을 읽어서 습득한 것도 있지만 대화를 하면서 얻게 됩니다.
어떤 사람을 심방을 했는데 그 사람은 비행기 조종사였습니다. 우리 교인의 남편이지만 처음 가서 만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음을 잘 열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뭘 물어보면 옆에서 아내가 다 대답을 해주고 이 남편은 가만히 앉아서 귤만 먹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대화의 문을 열어야겠습니까? “예수 믿으십니까?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이렇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썰렁해지겠습니까? “비행기 조종하십니까? 저는 비행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하고, “제트 기류가 뭡니까?” 하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비행기가 뜨려면 속도가 얼마나 되어야 뜰 수 있습니까?”, “뜰 때가 위험합니까, 내릴 때가 위험합니까?”, “비행기가 내릴 때는 가지고 있는 연료를 모두 공중에 버리고 착륙한다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회항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평소에 상식이 있으면 더 좋습니다. “최근에 보잉사에서 나온 787i의 제원에 보니까 이런 기능이 있던데 그게 전에 나온 777과 뭐가 다른 것입니까?”하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것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막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항상 배우는 듯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상대방이 이야기의 주체가 됩니다. 자연스럽게 이 사람을 신뢰하는 분위기가 생겨납니다. 그렇게 흐르듯 다가서 사람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나면 예의상으로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는 보상심리를 가지게 됩니다. 그때 친근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말문을 열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장을 잘 한 사람들은 시집, 장가를 잘 갑니다. 사람을 잘 다룰 줄 알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순장을 잘 했는지, 그렇다고 해서 아까 그 형제처럼 순원 중에서 골라보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라고 양떼를 맡긴 것은 아닙니다. 기르라고 했지 잡아먹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서 마음 문을 열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놀랍게 지혜를 주십니다. 설명할 수 없는 지혜를 주십니다. 문제는 지레 그런 상황을 겁먹고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의 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축호전도를 보냈더니 벨을 누르면서 속으로 ‘제발 나오지 마라, 나오지 마라.’했답니다.
질문 2) OOO순장이라고 합니다. 순장과 순원이 일대일로 만났을 때는 괜찮지만 순원들끼리 만났을 때는 서로 성향이 잘 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싸움까지는 아니어도 서로 피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조화롭게 순모임을 할 수 있을지 질문 드립니다.
답변 2) 그것은 대개 어린아이 그룹, 스무 살, 스물한 살 그룹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고 나이 든 사람들의 그룹에서 그런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빨리 장년부로 올려 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유연(flexible)합니다. 그리고 결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과도 또 다릅니다. 여러분이 결혼을 하게 되면 최소한 네 명 정도는 상대도 해보지 않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만나야 하고 시동생들은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결혼을 한 시동생이라면 더 많아집니다. 거기에 볶이면서 한 10년을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살아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갈 수 있는 기술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100% 신앙만은 아닙니다. 신앙과 본성적인 것들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품고 살아가느냐에 의해서 그 사람의 성화가 입증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어제 저녁에 팍! 하고 스쳐가는 책의 내용이 생각났는데 “돌멩이는 흐르는 물에 부딪치면서 반들반들해지고 인간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세련되어져 간다.” 가끔 사람들과 사교를 하다보면 진짜 세련된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세련된 사람들의 특징은 엄청나게 우아한 것을 세련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세련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우아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치미는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세련된 사람들이 반드시 얼굴이 예쁜 사람은 아닙니다. 세련된 사람들의 특징은 만나는 그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오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런 말씀드리기가 미안하지만 주님을 만나서 확 깨어지면서 다루어져 본 적도 없고, 사람들에게 부딪치면서 꺾여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4형제 중에서 맏인데 처음에 신학교를 들어가서 한 교회에서 8년을 사역하고 나올 때 얼마나 지독하게 연단을 받았던지 두 가지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신 있다고 말한 것도 지금 생각하면 교만이었지만 하나는 “얼마든지 가난해도 나는 견딜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이상한 인간을 만나도 나는 참을 수 있다.”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것은 수능이었고 취업준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취업시험은 수능에 비교할 수 없이 어렵습니다. 어쨌든 그런 연단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 섞여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지 못한 채 유아독존으로 온 사람들은 자기가 쫙 뻗대고 나가니까 자기편에 서 주는 사람들만 남고 자기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납니다. 아주 외롭습니다. 쭉 한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각자 그 나이가 되어서 함께 모인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서 이런 사람들이 세상의 계모임과 다르니까 한 번에 꺾여져 주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마다 여러분은 저를 생각하십시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를 내가 이끌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순장을 잘 하면서 고생한 사람들은 저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저를 깊이 공감합니다. 그래서 순장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저 사람을 딴 데로 보내버리면 좋을텐데…” 그러면 그 사람을 데려가는 순은 죽으라는 말입니까? 그 사람이 아니어도 죽겠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이 사람을 누그러뜨리고 조화시키면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보면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이 일곱 명이 모였는데 어느 날 한 사건이 생겨서 그 일곱 명이 모두 친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중에서 최대 공약수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을 가깝게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1대2로 트리플데이트를 할 때 가능하면 둘이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으로 엮어서 셋이서 하도록 해야 합니다. 심방할 때도 그렇게 해서 만일 자기가 빠져도 두 사람이 같이 연결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순장이나 팀장으로서 수련회나 행사 준비로 일을 할 때도 인간관계를 생각하면서 두 사람을 같이 묶어 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주일학교를 할 때, 어떤 두 사람을 결혼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둘을 묶어서 계속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한 1년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혀 안 되는 사람을 묶지 말고 될 사람들을 먼저 묶어야 합니다. 이 일을 자기가 맡은 1년 동안 지옥처럼 나오기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나 사모하는 모임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는 것입니다. 서로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한꺼번에 큰 진전은 못해도 빨리 성격 파악을 해서 서로 워낙 상극인 사람들에게 같이 일을 시키면 일도 안 되고 인간관계만 부서지니까 피해야 합니다. 자리에 앉힐 때도 미리 가서 의자에 표를 붙여서 그 자리에 앉도록 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곱 명 중에서 두 사람만 성공시켜도 사람들의 갈등요인인 다섯 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면 또 남은 사람끼리 묶어보고, 그러면 요인이 둘로 셋으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계속 마음에 염두해 두고 노력하는 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급격하게 친해집니다. 여름휴가를 가거나 당일치기 말고 1박이나 2박을 하는 것입니다. 한 5일이나 유럽여행처럼 10박11일을 하면 굉장히 달라집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계속 엮어가고, 중요한 것은 분위기가 좋고 상태가 좋을 때 다름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가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부딪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증가되는 것이 곧 성화의 발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피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격려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집에 불러서 같이 요리를 하는 것처럼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어서 둘이 그 작업을 하게 하거나 여행을 가게 하는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지 기도하면서 하면 놀라운 결과가 생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순장으로서 자기 순원들을 감당해야겠다는 헌신할 수 있는 몫을 요만큼만 정해 놓으면 그 이상으로 헌신해서 바깥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고 남는 것입니다. “내 맘에 드는 친구를 데리고 가도 시간이 없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 그게 일이지, 내 돈 써가면서 그 일을 왜 해?” 하면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한 때는 제자훈련에 빠져서 제자훈련을 하다가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지만 예전에 신대원 1학년 때 쓴 책이 있는데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영혼을 인도하는 법”, “1 to 1 양육법”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을 청년부에서 복사해서 책으로 만들어 주면 제가 특강을 해 주겠습니다. 한 30년 전에 쓴 책이지만 초창기에 1 to 1 하는 요령을 거기에 담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여러분이 상담에 관해서 아주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알고 있어서 순장이 하는 역할의 50% 이상이라고 생각되는 상담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많은 것을 쏟아내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 들어주고 가서 속이 후련하게 해주고 가면 “그 순장 참 좋은 순장이었는데…”하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 얘기만 하고 싶어하는 순장들은 모자라는 순장입니다.
질문 3) 순모인 진행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마음이 더 가고 예쁜 영혼이 있고 덜 예쁜 영혼이 있는데, 그렇게 마음이 갈릴 때 주님의 마음을 모든 영혼을 동일하게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목사님도 그런 경험들이 분명히 있으셨을 것 같은데 그때 어떻게 극복을 하셨고 어떤 기도를 하셨고 어떤 이야기를 저희에게 들려주실 수 있을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3) 어떻게 사랑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의 부모님도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냐고 하시지만 사실 엄지손가락은 새끼손가락보다 덜 아픕니다. 아십니까? 똑같은 힘으로 깨물어 보면 금방 압니다. 분명히 다릅니다. 이것을 전제로 하고 저 같은 경우에는 내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미모가 뛰어난 구역원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시험에 들 일이 없었습니다. 저를 좋아하는 몇 사람은 있었는데 제 마음에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경우보다 이런 경우에 시험을 많이 받았습니다. 변화를 받고 은혜를 받고 내가 목양자로서 나와 함께 뜻을 같이 하면서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가진 삶이 이 사람에게 잘 transfer 될 때, 그때 교제의 기쁨도 누리지만 내가 특별히 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만나서 같이 일반적인 이야기도 하고 봉사도 하는데 공감이 떨어지는 경우, 그때는 뭘 사러가도 다른 사람과 가고 싶고 같이 일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하고 싶지 그 사람과는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마음에 시험 비슷하게 느낀 적은 있습니다. 이것은 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느끼는 것일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어서 결국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될 수 있으면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좋고 속의 사람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에게 그런 약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내가 노력은 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이렇게 변화를 받고 잘 섬기는 사람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모아서 누군가 타겟을 놓고 그 한 사람의 변화를 위해서 서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기는 내 편이고 저기는 남의 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같이 대화를 하다가 보면 우리와 한 편이 되게 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공동체에 이런 것이 부족하고 이런 것을 공감하지 못하고 있구나, 이런 것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기도제목을 모아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변화됩니다. 여러분이 심방을 할 때도 단 둘이 만나는 것이 좋을 때가 있고 다른 한 사람을 더 데리고 만나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잘 이해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이 좋을 때가 있고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잘 분별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calm down 하고 형제가 순을 맡고 있는 경우에는 자매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제가 권하기는 목사님과 상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처음부터 그 교제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도를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하나님의 뜻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하면서 전개가 되는 것이지 죽어도 싫은데 그런 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죽어도 싫은 사람은 어떤 계기가 되어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것은 확실하게 결혼합니다. 누군가에 대해서 불꽃 튀게 싫다고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면 계기가 마련 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런 사람 둘이 다 결합을 합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빨리 만나십시오.
질문 4) 지친 순원을 push할까요, 살살 달랠까요? 지체들 중 다른 섬김을 하고 있는 경우, 전체 모임 후에 순모임을 독려하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다들 섬기고 나서 지쳐있는 상태라 강하게 push 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인지, 그냥 자발적인 마음을 갖도록 놔두어야 하는지 항상 고민스럽습니다.
답변 4) 굉장히 좋은 질문입니다. 다른 섬김을 하고 있는 어떤 지체들에게 순모임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 것인데 저는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을 push 할지 내버려둘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내 순에 배정된 A라는 사람이 고등부 교사로 섬긴다고 합시다. 거기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목양을 잘 받고 일하는데 보람을 느끼면서 아주 잘 영적인 공급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잘 합니다. 신앙생활과 섬기는 것이 밀착되어 있는 경우에는 굳이 그 사람을 push해서 그 교사 모임을 깨도록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그 당시 대학부나 청년부에 교사를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주고 나면 보내주는 사람이 잘 골라서 보내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우리는 잘 골라서 보내줍니다. 그때는 잘 적응이 안 되는 사람을 보내주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은 보내지를 않고 자기들이 구역장, 순장으로 쓰기에도 바빴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런 부적응자들을 모아서 외인구단을 만들었습니다. 수백 명 중에서 관심의 울타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밥을 사주고 야유회도 가고 상담도 해 주고 성경도 가르쳐주고 독서토론도 해 주고 고민도 들어주면서 비로소 그 사람이 내가 인도하는 중등부나 고등부에 와서 목양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했습니다. “거기 순모임을 가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가 우선순위이다. 그러면 너를 돌봐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잘 되는 사람들을 굳이 다른 순 모임에 참석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섬김을 하고 있는데도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 교육부서의 목회자와 의논을 해서 거기서 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적절한지, 그 영혼을 위해서 이 섬김을 어떻게 해 주어야하는지를 생각해서 결정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 사람을 내버려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케어를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못 나간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의욕이 없어서 그쪽 부서를 핑계대고 아예 안 나가는 수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은 격려를 해야 합니다. 대개 신앙적으로 미끄러진 사람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관심과 사랑입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서 안에서도 열심히 섬기고 기도하는 그런 사람들은 목회자의 시선 안에 있어도 이 사람이 바깥으로 나가게 되면 처음에는 어느 정도 마음을 쓰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도 똑같은 상태가 되면 솔직히 얘기해서 목회자도 돌볼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한 시간 투자할 것을 다른 곳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관심과 사랑입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갑자기 신령하고 영적인 것, 회심했는지 안 했는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충분히 힘들고 지치고 외롭다는 생각을 하고 따뜻한 교제이 분위기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분위기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선택적으로 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5) 순원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교리 및 공부 중심적인 교회라고 느끼고 자신을 그것과는 맞지 않아서 경건서적 자체를 너무 어려워했던 순원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옮겨야 하겠다고 결심한 지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담임 목사님은 어떤 권면을 하시겠습니까?
답변 5) 공부를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3분의 2라도 따라오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교리 및 공부 중심적인 교회라고 느끼면서 자신은 그것과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개 해 보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의 맛을 별로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참된 회심, 그리고 은혜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회심하게 되면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랑하는 마음이 확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 그분이 누군지 알고 싶은 갈증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깊이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지식이 감동을 줍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는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옛날에 받은 어떤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와 피와 살이 섞이지 않은 사람인데도 그 사람이 수십 년 전에 상처받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기가 상처를 받은 것 같은 아픔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 싫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의 아버지가 어마어마하게 부자라고 합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되면 왜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결혼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 사람을 사랑하면 사랑을 깨뜨릴 정도의 부정적인 비리의 발견이 아닌 한 어떤 지식이든지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고 그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이 비밀스러운 이야기일수록 자신은 깊은 소속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똑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단 단순한 이성으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면서 상당한 지식으로 들어갔다고 할때는 지금 상태가 좀 나쁘다고 해도 옛날에는 이미 거기까지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대개 회심이 문제가 됩니다. 회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 적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과 이야기 해 보면 신앙이 unstable 합니다.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체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출렁거립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사람은 신앙에 대해서 굉장히 감정적인 자극을 원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피곤해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 사람의 영혼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이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알고 싶어하는, 그 사람의 한계 안에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고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깊이가 깊지 않으면서도 얇게 이야기하면서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책들이나 설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이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교리, 공부 이외에도 열린교회에 또 다른 신앙의 기쁨들이 있다는 것, 반드시 문과출신이어야만 열린교회에서 신앙생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해 주어야 하고 여러분은 잘 보지 않겠지만 열린 신문에 보면 간증란이 있습니다. 요즘은 사실 몇 개를 제외하고는 깊이가 좀 떨어지는 것 같은데 옛날 간증 중에는 정말 깊이 있는 간증이 많았습니다. 거기서 똑같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여기 교회가 너무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문에 들어가서 “노정석”을 검색해 보면 한 10년 전에 그 형제가 세미나에 와서 글로벌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대해서 강의 할 때 유럽의 14세기 부터해서 지성사를 훑으면서 철학사를 이야기 하면서 여기서 우리들이 불변하는 복음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강의를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고 장문의 간증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 간증을 읽어보면 굉장히 생생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것 말고도 기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섬기는 부서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 나에게 걸리면 즐겨 주던 것이 녹취 헌신자 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사람이 변화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듣고 정리가 안 되었는데 옛날에는 80분, 90분을 집중하지 못하고 말씀을 건지지 못했는데 그것을 놓고 컴퓨터에 타자를 치면서 듣고 쓰고 타이핑한 것을 다시 읽으면서 이 사람이 변화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것 어떻습니까? 매주 하자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한 번 먹을 것도 사주면서 분위기를 잘 만들어서 기분이 좋을 때 “한 달 동안만 우리 순모임 시간에 뭔가 공부를 해 보자.”, 아니면 “따로 만나서 공부를 해 보자.”고 해서 설교 시리즈 중 하나를 택해서 일곱 명이 모여서 세 개를 분배할 때 그런 자매에게 하나를 주면서 “네가 대학에서 리포트를 쓰듯이 한 장에 잘 정리해서 다음 시간에 여기서 발표를 해라.” 하면 그 자매가 돌아가서 열심히 읽고 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사람들이 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를 옮기겠다고 결심하면서 떠나겠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좀 붙들어 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허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로 옮긴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이 가서 생존할 수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지체들을 대하면 좋겠습니다.
질문 6) 청년들의 나이 차이 양극화 현상, 체력차이 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요즘 고령인 청년 지체들이 하도 많아서 피곤하다거나 힘들다는 이유로 전체모임처럼 청년들이 다같이 함께 하는 자리에는 절대 가려고 하지 않고 순 모임에만 나오는 지체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설득을 해도 그런 모임이 있다면 아예 예배만 드리고 집에 가곤 합니다. 어떻게 동기부여를 해야 합니까?
답변 6) 청년의 나이 차이 양극화 현상, 50세가 된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 사람과 이제 막 18살이 되어서 올라온 사람하고 비교하면 할아버지와 손녀가 만난 셈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너무 나이가 많이 든 청년들은 좀 쉬게 해 주십시오. 근력이 없으시니까 경로우대를 해 주십시오. 자기네들은 막 즐겁다고 뛰는데 연세 드신 분들은 유치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 해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로우대를 조금 해 주시고, 함께 하는 자리에 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속이 좀 빈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면 너무 어린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자기가 빠져줘야만 잘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연세 든 청년 순원들의 배려라고 생각을 하시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장년부로 얼른 올려 보내십시오. 그래서 한 1년 경로우대하다가 올려보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 모임에서 순서를 하나 드려도 좋습니다. 연세 드신 분으로서 나와서 한 말씀한다든지,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우울증을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는 간증을 한다든지 말입니다.
그리고 나이차이의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어차피 청년부에 머물 수 있는 나이를 딱 잘라서 35세 이상이면 청년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고 올려 버리든지 해야 하는데 무조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체력차이는 운동을 해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은 그리 본질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질문 7) 순모임 시간에 맥을 끊거나 공과나눔 시간에 이끌어가는 틀에 반하는 순원이 있을 때 정말 김이 빠집니다. 그 분위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목사님 도와주세요.
답변 7) 순모임 시간에 맥을 끊는 것은 순모임 시간에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닌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인데 그럴 때는 이런 방법이 있습니다. 끝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줄 테니까 맥을 끊지 말고 우리가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자고 존중을 해 줍니다. 끝났는데 더 이상 시간을 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다음 공과 시작하기 전에 시간을 주겠다고 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시간을 줘서 들어주고 아예 공과공부하기 전에 “오늘은 맥대로 흘러갑시다. 맥에서 어긋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간식을 먹는 시간에 돌아가면서 얘기를 해 봅시다.” 하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기에는 그 사람이 맥을 끊고 생뚱맞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말 주변이 없어서 그렇지 그 사람에게는 맥락이 있는 것입니다. 보통사람이 공감하지 못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높은 수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천재라고 하고 아래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눈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순원들은 대개 천재보다는 눈치가 없어서 그런 것인데 사실 거기서도 그런 이야기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공과공부 할 때는 맥을 자꾸 끊는 것을 순장 자신이 그렇게 할 때가 많습니다. 순원 입장에서 볼 때는 “왜 순장이 저러지?” 합니다. 공부를 할 때 똑바로 쭉 나가면 좋은데, 똑바로 가면 아스팔트길이나 콘크리트 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똑바로 나가면서 주위에 꽃도 피고 개울도 흐르는 순모임을 이끌어나가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순모임 준비를 잘 해서 와야 합니다. 주루룩 보고 와서 ‘이건 내가 다 아는 것이다.’하고 답 몇 개 달아서 오면 안 되고 이 부분에서 어떤 질문을 해 본다든지, 어떤 도형을 가져와 보여주면서 무슨 느낌이 있는지 순원들이 이야기 할 때 그 이야기가 이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말입니다. 또는 공과를 마치고 다음 주 공과내용을 보니까 거기에 관련된 어떤 이야기가 참 좋겠다고 생각하고 자발적인 의지를 가진 순원에게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우리가 모두 읽고 스토리를 알고 있지만 remind 하는 의미에서 네가 와서 한 3분 정도에 그 이야기를 리얼하게 다시 재현해 다오.”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혹은 김남주씨의 “편지”라는 시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낭독을 해보도록 시켜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맞는 음악도 미리 녹음해 와서 요즘 나오는 리모트 스피커로 틀어주고 말입니다. 뭔가 모일 때마다 굉장히 새로운 것이 있어야 합니다. 왔는데 그냥 서울우유 하나씩 주고 오후 시간에 재미도 없고, 모임시간의 60%는 순장 혼자 떠들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순원들은 지겨워서 고개를 숙이면서,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리더는 뭔가 항상 이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entertainment 의 요소를 가져야 하는데 entertainment 가 오락이나 자기 스스로 즐거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자기를 한 번 풀어준 다음에, 사람들이 ‘김남주씨의 시와 다음 주 공과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편지”라는 시를 집에 가서 검색해 봅니다. 와서 순장이 다섯 장 복사해서 나눠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악이 나오고 낭독을 합니다. 더 좋은 것은 “나하고 만나서 차 한 잔 마시자.”하고 만나서 “음악을 준비했는데 한 번 낭독해 봐라.”하고 준비해서 모임에서 사람들 앞에서 “낭송자 OO님이 낭송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뭔가 거기에 재미의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매주 그것을 개발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리더는 순원들이 지칠만할 때 영양제를 주듯이 그런 요소들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임에 올 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깔깔거리며 활짝 웃을만한 유머를 50개 정도는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그것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에서는 CEO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유머집 한 권을 사면 두어 개 밖에 건질 것이 없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많습니다. 케케묵은 것 말고 따끈따끈한 것을 가지고 와서 지쳤다고 생각될 때 하나를 얘기해줘서 막 웃게 만들거나 아니면 커다란 감동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거기에 가면 예기치 못한 서프라이즈가 있다는 것을 개대하도록 그런 요소를 도입해야 합니다.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면서 지겹다고 하며 다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직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1위가 “인간관계”였습니다. 그 나이에 다시 직자을 옮겨서 연봉을 더 준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큰 것입니다. 더구나 중간으로 이상하게 들어갈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예 밑으로 들어갈 때는 눈치만 보면 되는데 중간은 어중간한 것입니다. 위에서도 소외당하고 아래에서도 소외당할 수 있는 두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CEO는 CRO입니다. CEO는 Chief Executive Officer 인데, CRO는 Chief Recollection Officer, 추억을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순장과 1년을 보냈는데 기억나는 일이 없냐고 물었을 때 토요일이면 집요하게 전화를 했던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하면 좋은 순장이 아닙니다. 잊혀지지 않는 일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조금만 있으면 딸기가 나오는 시기인데 신문에 보니까 겨울에도 딸기 하우스가 있어서 연인들이 많이 간다고 합니다. 1인당 15,000원씩만 내면 마음껏 따 먹고 올 수 있고 쉐이크나 크림도 만들게 해 준답니다. 그런 식으로 뭔가 새로운 것들, 그래서 바쁜 직장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사회적인 욕구들을 여기서 어느 정도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디어를 계속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생각하면서 모임을 재미있게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풀립니다. 마음을 열지 않아서 문제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맥을 끊는 순원들에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반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정면으로 까고 뭉게는 것은 절대 하면 안 됩니다. 명백한 잘못이 있을 경우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항상 상대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의견이 있다고 하면 반대의 의견을 이야기하도록 하고 자기는 그것을 잘 조정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꺼냈는데 묵사발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자기가 주도권을 가지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는 것을 얘기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쭉 자기의 이야기를 할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측면은 어떻게 생각할까?”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이끌고 너무 길어지는 것이면 아까 이야기했듯이 공과공부를 끝내고 마지막에 3분 정도 시간을 드릴테니까 이야기를 하도록 지혜롭게 풀어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8) 목사님은 카톡을 하지 않으십니까? (예) 그러면 투표는 하셨나요? 선거철에 순의 카톡방에서 정치, 정당과 관련한 내용이 화제로 오른 적이 있습니다. 세상의 민감한 사항이 화제로 오르면 누가 상처를 받거나 선입견이 생길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리려고 했습니다. 세상의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 순장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 궁금합니다.
답변 8) 순의 카톡방에서 정치, 정당, 이런 얘기들이 화제로 올라오면 리더는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항상 자기의 입장을 선명하게 밝히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게 대답의 전부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저의 설교를 들으면서 헷갈린다고 합니다. 진보일까, 보수일까 말입니다. 어떤 때에 보면 극진보입니다. 저는 화폐 폐지론자입니다. 화폐를 없애서 길거리에서 고구마 5천원어치를 사도 모두 카드로 사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금전의 거래가 공개가 되게 하자는 주의입니다. 그리고 세금을 공평하게 물리고 세금을 낮추자는 주의입니다. 누구도 이렇게 과격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정치적인 입장을 그렇게 표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다가 그것이 마음에 맞지 않아서 상처를 받는 것도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데 그것을 왜 자기가 야당을 찍었느냐 여당을 찍었느냐, 김무성 죽일 놈, 박지원 죽일 놈 하면서, 호남 사람에게 원성을 사고 경상도 사람들에게 원망을 살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없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항상 무게중심을 확고히 해도 한 3분의 1정도 걸쳐있는 듯한 뉘앙스를 주어서 이 사람을 설득하면 이쪽으로도 기울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여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하기 좋은 이야기는 양비론입니다. 나쁜 점을 이쪽에서 이야기하면 여기에서도 하고 저쪽에서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는 중심이 딱 서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지지하면서도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사람의 장점이나 지지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단점까지도 자기가 파악하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추도록 처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9) 만인 평등주의를 외치는 순원과 만날 경우, 교회 구성원은 평등하므로 자유롭게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순원이 있습니다.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에 이 사람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까요?
답변 9) 이 사람의 생각은 잘못되었습니다. 평등이라는 개념과 평등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하는 것이 질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번에 박순용 목사님이 좋은 책을 썼습니다. “참된 교회로 돌아오라”, 교회에 대한 책으로 제가 추천사를 썼습니다. 그런 책들이나 내가 쓴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교회의 질서와 하나님의 통치”, 그리고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성도와 공동생활”, 이런 시리즈들을 보면서 먼저 신학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평등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이 얘기는 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주권과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할 가치, 이런 것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혼자서 투표용지를 이만큼 많이 투표함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지금 질문하고 있는 형제가 가지고 있는 권력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형제와 똑같은 사람 백만 명이 모여도 할 수 없는 일을 대통령은 도장 하나로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합법적으로 사회계약에 의해서 대통령에게 그런 권한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질서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권한을 준 것입니다. 아래 사람은 그 보다 권한이 작고 분산되어 있고 대통령이라도 모든 부분에, 예를 들어서 관양동에 있는 열린 교회의 건축을 허가해 주라고 함부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질서입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정부의 원리이고 교회에도 똑같이 그런 원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구조 속에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 모든 교회의 질서의 정점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세를 가지고 교회를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평등주의를 외쳐도 그 사람이 예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한다면, 예수님은 교회가 어떤 모양이기를 원하셨을지, 그런 권위를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이 명령하시는 교회의 질서는 어떤 것일지, 그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예수님께 대해서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를 가지고 성경에서 교회가 어떤 질서에 서야한다는 것을, 모든 선입관을 배제하고 차근차근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교회가 어떤 질서와 기능을 따라서 움직이기를 원하셨는지 생각을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그 안에서 평등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영혼의 가치나 존엄성이 서로 다를 수는 없지만 교회 일에 있어서는 목사는 목사에게 장로는 장로에게 교사는 교사에게 집사는 집사에게 각기 주신 질서의 자리가 있고 그 서 있는 그 자리는 사람을 보고 해 주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오든지 직분 자체를 존중해 주면서 질서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론의 교육이 현저히 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자유질문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이든지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질문 10) 정신과적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 확실하고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는 지체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교회와 목양자간의 관계가 깨어지지 않으면서도 그 지체가 상담과 치료가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답변 10)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정신의학적인 지식이 목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젊기 때문에 문제가 덜 되는데, 갱년기가 넘어가면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Supervenience, 혹은 Psychosomatic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인간의 정신은 물질인 육체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꽃향기는 물질적인 것인데 그것을 맡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집니다. 똑같은 환경인데 지하실에서 이 모임을 하는 것보다 어거스틴 파크 옆에서 하고 조금 있다가 저쪽에 서서 사진이라도 찍자고 하면 굉장히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처음부터 물질과 정신이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정신적인 문제들을 마귀가 들린 것이라 해석하는 방식은 무식한 것입니다. 성경이 그런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들렸다고 기독교인이 판정하는 것들 중에서 상당수는 마귀가 아니라 순수한 정신과적인 문제들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지혜롭게 잘 분별하고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귀신이 들렸지만 귀신을 쫓아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이 함께 결합되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복잡한 문제들을 섣부르게 다루지 말고 그럴 때는 교역자와 의논을 하고 교역자도 자신의 역량이 되는 한도 내에서 돕고 다른 전문가 집단, 우리 교회에 두터운 상담팀들이 있는데 그런 상담사역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받고 신앙적으로 깊이가 있고 은혜의 체험들이 풍부한 정신과 의사와 만나서 물리적인 치료를 함께 병행해야 합니다.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사람도 사실 하루에 알약 한 알씩만 먹어도 그 문제가 거의 해결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정신과를 찾아간다는 것이 굉장히 부끄러운 것이고 신앙에 있어서 내가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터부가 아직도 많은데 아무 상관없습니다.
영적인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찰스 스펄전 목사의 일생동안 그를 괴롭힌 질병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통풍(Gout) 우울증(Depression)이었습니다. 저는 이 Depression 이라는 명칭을 우울증이라고 번역한 놈이 누군지 굉장히 무식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울증 자체는 사람이 확 찌그러진 것처럼 보입니다. Depression은 사실 “침체증”입니다. 우울증이 아닙니다. 침체가 온 것입니다. “Spiritual Depression” 이라고 하면 “영적 침체”를 말합니다. 제가 얘기해봐야 귀를 기울이지도 않겠지만 저는 우울증이라는 말을 “침체증”으로 바꾸자고 하고 싶습니다. 의사에게도 이야기 했더니 제 얘기에 상당부분 동의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우울증이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번역이라는 것입니다. Depression 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 있는 것인데 그것이 강도가 강하게, 지속적으로, 물리적인 어떤 요인으로, 단순히 감정적으로 일시적인 요인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어떤 육체적인 요인을 수반해서 작용이 계속 일어날 때 그것이 질병군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불과 1~2주 치료해서 나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1년씩 치료를 해도 낫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싸잡아서 Depression 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그렇게 교역자와 의논을 하고 여러분에게 기회가 닿으면 그런 면에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특강을 들어야 합니다. 목자에게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필요한데 뛰어난 지식과 사랑, 용기, 이 세 가지가 기본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돌봐야 하는데 영혼이 뭔지도 모르고 이 사람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상담해 줄 수 있습니다. 자기의 순원이 그런 것에 빠졌으면 부지런히 공부를 해서 Depression 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순원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주위의 전문가로부터 귀동냥을 해서라도 올바른 코스로 가도록 해야 합니다. 정신병원 같은 곳에 가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사람가운데는 적절한 순간에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 유능한 상담사를 만나서 돌보아졌더라면 그렇게까지 가지 않았을 사람들도 많은 것입니다. 결국 그 주위에서 사람들을 망치는 것입니다. 굉장히 조심해서 그것을 다루어야 합니다. 빨리 이런 조치나 치료를 받도록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풀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신과 약을 하나 먹는 것과 약국에서 아스피린 하나를 사서 먹는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충분히 설득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정신과 신체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조금만 설명해줘도 동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 11) 저희가 순모임을 하다보면 순장만 일방적으로 말할 수 없고 어떤 순원의 고민에 대해서 다른 순원이 상담을 해 주고 서로 말이 오가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때 신학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아주 세상적인 지혜, 때로는 행복추구, 이런 것이 신학적으로 옳고 그름이 아니라 네가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네가 행복하면 그게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거나, 결혼이나 인생관에 대해서 굉장히 세상적인 지혜를 반복적으로 이야기 할 때 그것이 신앙인으로 보기에는 옳지 않는데 그렇다고 저 순원이 얘기하는 것을 그 자리에서 반박하기에는 그렇고,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얘기하는 것을 그대로 두다 보면 새신자같은 순원들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형성되어 가는 것에 문제가 될 것 같아서 고민이 될 때가 많이 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조정을 해야 하는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답변 11) 그것이 바로 아까 이야기했듯이, 순모임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초점이 모아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님을 깊이 만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근본적을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맛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그렇게 변화된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입니다. 질문에 나타난 경우는 전혀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예수 중심적으로 확고하게 변화되어 본 적이 없거나 아니면 변화되었다고 해도 현대사상에 굉장히 부패하고 오염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집에 가서 서가를 찾아보면 온전하게 된 신학서적이나 교리서들이 없고 오만 잡동사니 책들이 있거나, 아니면 그나마도 읽기 싫어서 인터넷을 뒤적이면서 누구의 강의에 뿅갔거나, 그런 사람일 경우가 많습니다. 체계적으로 똘똘하게 이야기하면 책을 좀 읽은 사람이고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만 거품을 물고 이야기하고 연관된 것을 물어볼 때 우왕좌왕하면 어디서 동영상 강의 하나를 들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잘 분별해서 그것에 대해서 수시로 교역자와 소통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느끼는 것은 순에서 굉장히 복잡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상하게 교역자에게 보고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감당해서 해결을 하든가, 여러분이 귀찮을 정도로 교역자를 찾아가서 모임이 끝나면 목사님을 만나기 위해서 사람들이 줄을 서고, 간사님도 있으니까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하겠는지 적절한 대책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목사님이나 혹은 장로님이 도움이 될 만하다면 장로님이라도 만나서 여러분 스스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양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어떻게 하든 돌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냥 끌어안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에게 들어보면 교역자도 상황을 잘 모릅니다. 말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속이 끓으면서 망가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곪는 것은 그 영혼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목양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예수의 사람으로 온전히 잘 세우는 것보다 더 큰 사명은 교회에 없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저한테라도 물어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목사님에게 물어보고 혹은 이러이러한 목양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면 석 달에 한 번이라도 모여서 이런 일은 어떻게 해야할지 목양의 경험이 풍부한 교역자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목양은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풍부한 목양의 경험을 가진 전도사님들도 많고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누구에게든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죽어 가는데 내 의술로는 치료가 안 됩니다. 내가 인턴인데 레지던트를 불렀는데도 감당이 안 되고, 당직의사를 불렀는데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런데 옆의 병원의 의사가 고칠 수 있다면 도움을 받지 않겠습니까? 연세 드신 김경혜 전도사님 같은 경우는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아주 실제적인 도움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 도움을 받아서 얘기를 듣는 것입니다.
저는 좀 걱정스러운 것이, 여러분이 책임의식이 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순원들을 다루다가 잘 안 된다면 빨리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임명해 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모든 순원을 잘 다루지는 못할 것을 알고 교회가 임명을 해 준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빨리 전도사님이나 목사님에게 부탁을 해서 자문을 구하고 목사님이 자신의 역량에 닿는 것을 해결하고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면 연결을 하고, 한 번 그 문제를 극복하면 그만큼 영혼을 다루는 지식이 증가해 가는 것입니다. 요즘 목양을 하는 것을 제가 세세히 다 알지는 못하지만 너무 소극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비유가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양들이 수렁에 빠졌다고 한다면 내가 지금 결혼식에 가기 위해서 어제 백화점에서 산 예쁜 투피스와 스타킹과 예쁜 샌들을 신었는데도 그것을 망치면서까지 진창에 뛰어들어서 영혼을 건질 수 있을 정도의 aggressive 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공격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 되면 내가 너를 위해서 정신과 의사는 못 만나겠느냐, 목사님을 못 만나겠느냐, 누구를 못 만나겠느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뚜껑을 덮어 놓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굉장히 많은 순들이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냥 덮어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에스겔 34장에 나오는 것 같이 좋은 목자가 아닙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노라.” 그러면 자기가 기꺼이 수고를 해서 그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어볼 사람들도 있고 돌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해결책을 같이 찾아야 합니다. 어차피 목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담임목사이지만 혼자 하지 않습니다. 같이 합니다. 그리고 목사님들도 수시로 물어봅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서로서로 도움을 받으면서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질문 12) 지금 세대가 문자보다 영상에 익숙하고 이성적 사유보다 감성적인 감동에 이끌리는 세대이다 보니 올바른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이 시대를 읽는 것에 대해서 지체들이 많이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지필 해 주신 좋은 책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장이 그것을 체화해서 그들에게 전하는데 많이 어려워하는 순원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합일점을 어떻게 찾아야하는지 조언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답변 12) 한 번의 모임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항상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수면 아래의 얼음이고 내가 실질적으로 모임시간에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수면 위의 빙산이다.” 10%만 물 위에 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굉장히 한계를 느끼는 것은 책 한 권을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진짜 한심할 정도로 읽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사는 것입니다. 무슨 모임을 하든지 간에 말입니다. 제가 총신대에서 강의할 때 이야기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바닥에 놓고 군화발로 한 번에 밟아서 차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그리고 책으로 눈을 돌려라 인생이 바뀔 것이다.” 없다고 못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충분히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도 꼭 필요한 것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주체성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나방떼처럼 화면에 매달려서 거기에서 썰 푸는 선전, 광고, PR, 사람을 자극하는 뉴스, 기사거리, 그것도 상당수는 정확하지 않은 것들에 좌우되면서 그런 것에 판단을 맡기고 사는 것이 창피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명백한 것이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돌이켜 서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순원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수 있겠습니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나온 책들, 저는 요즘 시간이 없어서 보지 못하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최근에 카툰으로 나온 “우울한 날은 있다” 같은 것, 이것은 책 전체가 만화로 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책인가 할 정도인데 그것이 수백만 부가 팔렸습니다. 그리고 “The present”, “내 치즈를 누가 옮겼을까?” 이런 책들 중에서 뭔가 우리에게 정통 신학을 가르쳐주는 것이라면 좋고, 아니면 생각할 계기를 던져 주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나오게 하고 나온 이야기를 어떻게 엮어서 신앙적으로 이끌 수 있겠다고 한다면 그런 것을 읽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읽는 것을 자극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조금 더 긴 글을 읽게 하고 조금 더 읽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했다”를 예를 들면 거기 나오는 예화만 모두 복사해서 예화 하나만 읽어오게 하면 쉬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예화가 왜 나왔는지 옆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은 그 앞에 있는 이야기를 읽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공부를 해 나가게 하고 진짜 정신이 아리송한 사람들은 도실장이 언제나 환영할 테니까 녹취헌신자로 인도를 하십시오. 그래서 세 사람이 녹취해서 두 사람 것을 버려도 좋으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녹취해 보도록 해서 변화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면 좋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영상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구역장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한 7년 전의 오래된 이야기인데 구역장 세미나에 가서 그때 40대 초반 자매의 간증을 들으면서 제가 한 이야기가, “그대가 열린교회의 표준 구역장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자매는 컴퓨터 기술 계통에 종사해서 연봉을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받는 자매였습니다. 직장을 다니니까 늘 바빴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예배출석만 하고 모임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자매는 열린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남편이 늘 교회를 잘 다니지 못하고 떠돌다가 열린교회에 오더니 여기는 예배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해서 남편 때문에 등록을 하고 다녔는데 본인은 직장이 바빠서 참석을 못 한 것입니다. 구역에서는 늘 오라고 하니까 자격지심에 ‘우리 구역장은 나를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구나. 내가 한 번 구역예배에 참석해서 얼마나 똑똑하고 신앙이 좋은지 보여줘야겠다.’ 생각을 하고, 마침 그때 집이 팔리고 이사를 가게 되니까 그걸 핑계로 교회를 옮길 생각을 하면서 교회를 떠나기 전에 자기의 실력을 좀 보여주겠노라고 작심을 하고 교회에서 하도 칼빈, 칼빈 하니까 퓨리탄 도서관에 와서 칼빈의 미가서, 이사야 설교집을 읽었답니다. 그 한 권을 읽으면서 회심을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 목사님은 너무 부드러운 설교자구나. 이 칼빈은 잡아먹을 듯이 설교를 했는데, 우리 목사님은 설교할 때마다 우리에게 야단만 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우리 목사님은 너무 많이 discount 하신 것이었구나.”했답니다. 그렇게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 자매를 돌보았던 구역장이 있었는데 나중에 우리 교회 교역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을 3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점심 때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이 자매가 퍼붓는 이야기만 듣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눈물로 기도한 것입니다. 그것을 3년 했을 때 이 자매가 회심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세계가 열리면서 자기가 똑같은 방식으로 구역장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간증입니다.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문현숙 구역장의 간증)
결론은, 여러분이 순원의 회심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나에게 상담을 한 많은 내용 가운데 절반 정도는 방법과 기술의 문제이지만 절반은 여러분이 가진 에너지의 문제입니다. 저 구역장처럼 여러분이 여러분의 순원들의 이름을 가지고 순모임 후에 집에 가서 통곡할 수 있다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순장인 여러분이 이미 예배에서 유익을 받지 못하고 미끄러지면 여러분의 순원들을 목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항상 일찍 와서, 절대로 아래층에 내려가서 예배드리지 말고 3층으로 올라와서 앞자리에 똑바로 앉아서 맑은 정신으로 온전히 집중해서 설교를 이해하고 그 시간에 주님을 만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사를 거는 각오로 예배를 드리고 그 설교의 말씀을 놓치면 집에 가서 다시 재독하면서 터득하고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서 치열한 기도가 되게 하고, 그래서 예배의 유익을 누리지 못하는 여러분의 지체들이 정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지체들의 예배생활을 점검해 보십시오. 그래서 그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예배시간에 주님을 만나는 예배자로 세울 때 그 사람들이 양이 됩니다. 목양은 양을 목양하는 것이지 짐승을 목양하는 것은 목양이 아닙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회심할 수 있도록, 그렇게 예배에 주님을 만나도록 여러분이 절실하게 기도해서 여러분이 하나의 대처법을 가지고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의 가르치는 양떼들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된다면 지금 질문지 가운데 절반은 나오지 않을 문제들입니다. 여러분의 순원 중에서 회심하지 않은 순원이 얼마나 되는지 점검하고 그 사람들이 정말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엄마의 마음 가지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이 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