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구역장 수련회 새벽예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딤 4:15~16)
녹취자: 허혜숙
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모든 일들은 일을 하면 일이 됩니다. 그런데 영혼을 돌보는 이 일은 그냥 순수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한다고 해서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몸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도 마지막 궁극적으로는 영혼을 위하여 이바지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핵심적으로 어떤 사람을 예수 믿도록 회심에 이르게 돕고 또 한편으로는 이미 회심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회심의 은혜 속에 있도록 붙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목회 사역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이 일들은 모두가 다 영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은 무슨 짐짝을 옮기듯이 옮기고, 과수원을 지키듯이 앉아서 지키면 지켜지는 그런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준비를 우리들이 다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면 이 목회사역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가면서 때로는 우리의 마음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패할 때도 있고 또 부패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상황을 만나서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잘못된 마음이 되어서 옳지 않은 목표를 아주 훌륭한 목표인 것처럼 추구하는 그런 어리석음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한계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데 그런 속에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자신의 신앙 하나 간수하면서 사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닌데 그 위에 영혼까지 돌보라는 책임까지 주어졌으니 이것이 보통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는 항상 같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침체가운데 들게 되면 영혼을 섬기는 이 일이 한없이 무거워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영혼을 잘 돌볼 수 있을 때에만 남의 영혼도 잘 돌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워질 때 그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돌보는 이것이 한없이 어려워지고 그렇게 영혼을 섬기는 일이 어려워질 때 이 일에 대한 부담 대문에 나의 영혼이 더 눌리고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이 짐을 벗어버리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짐을 벗어버리고 나면 편하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자극과 가책 그리고 매일 영혼들을 만날 때마다 ‘봐라 이것이 네 모습이다’하는 하나님의 어떤 판단, 이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고통은 좀 낫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온 몸에 더러운 오물이 묻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이 거울로 그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자유롭지만 거울로 확인하고 나면 늘 그것이 부담이 되듯이 마찬가지로 우리의 목회사역은 그런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치워버리고 나면 어느 정도는 우리의 마음에 자유가 옵니다. 그런데 그런 자유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으로 우리를 살리는 그런 종류의 자유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목회사역을 하면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진보를 위해서 전심전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의 진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 앞부분에 죽 나오는 ‘정욕을 피하고 모든 일에 참되고 진실하게 영혼들을 돌보고 자신의 연소함을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사를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다시 불일 듯 하게 하며’ 이렇게 하나님 앞에 처음 소명을 받았던 때의 그 목적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일에 있어서 전심전력하여 자신의 진보를 이루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보십시다. 우리들이 스스로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잘 하는 것 같지만 우리들이 정말 교회사속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분투했던 믿음의 사람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생활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레이너대이의 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러한 사실들을 발견합니다. 전도자의 뜨거운 마음, 하나님 앞에 성결한 생활, 자기를 끊임없이 버리고 목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자기희생적인 삶, 이단과 오류 속에 가득한 시대에 태어나서 이것들과 더불어서 분투하고 몸부림치며 싸우는 치열한 삶,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의 기도, 우리의 경건, 우리의 말씀에 대한 지식, 하나님을 아는 것, 온전한 생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분투하는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는 현저히 부족하고 모자라는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절실하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하찮은 존재인가 하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진보하여야 할 그런 부분들이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전심전력하여’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진보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전심전력’하라고 한 이 말은 단순히 외적인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열심히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면 지식이 늘어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그런 방식으로 습득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신학적 사실들을 터득한다고 할지라도 마음으로는 한 번도 하나님을 향하여 시선을 모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된 지식에 대해서 정말 필요한 앎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과 그 지식을 알게 하는 도구 사이를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신학에 대한 지식, 교리에 대한 깨달음, 심지어 성경에 대한 지식까지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달해주는 통로일 뿐입니다. 그래서 전달해주는 통로를 많이 습득할 때 우리에게 어떤 이성적인 기쁨과 우월감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지식 자체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를 닮게 만들고 그 사랑 안에 사는 것을 행복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것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보다 애매한 말이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그것은 이성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언젠가 살아오면서 주님을 만났다고 하는 크고 작은 경험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새로운 당신 성품의 빛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그렇게 만드시고 인격을 변화시키십니다. 그 순간에 개인적으로 큰 부흥을 경험했을 때 여태까지 제가 공부를 놀지 않고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에 그런 하나님을 만난 개인적인 부흥이 있었을 때 그런 신학적인 지식이 하얗게 빛을 바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아, 이거구나’ 온갖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인간들의 그 묘사가 있었지만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아, 그런 것들이 결국은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이렇게 거룩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표현한 것이구나.’ 한 사람이 주님을 깊이 만나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서술(묘사)이 나옵니다. 그런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오면 다음 사람도 주님을 만나고 똑같이 그것을 이해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고 두 다리, 세 다리 거쳐 가면 그것들이 덧칠을 하고 빠지고 또 덧칠이 되고 빠지고 하면서 사실은 하나님 자신을 보여주기에는 현저히 모자란 그런 묘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 아무리 많이 터득했다고 하더라도 어린아이가 한 번 십자가에서 나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거룩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고 인격적으로 그 사랑을 깊이 경험한 그 순간의 앎에 비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이 두 가지는 같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경험과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참된 지식의 가치관과 그것이 바로 진보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 모든 생활을 통해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이 신앙의 생활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진정한 진보이고 사랑이고 믿음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여러 가지 많은 문제에 둘러싸여 있는 아들과 같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묘책들을 많이 알려주고 기술들을 전수해 주는 대신에 이 아들 디모데로 하여금 ‘너의 믿음의 전수를 위해서 전심전력하라’ 우리가 흔히 우리의 환경이 너무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 환경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잘 믿도록 도와준 적이 언젠가 있었습니다. 그건 것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고 믿음으로 매일매일 살아가서 우리의 신앙이 크고 견고해지면 예전에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현실들을 극복하고 이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사역을 하다보면 늘 어렵지만 특별히 어려운 때가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도저히 더는 못할 것 같은 그런 고통스러운 때도 오고 때로는 유혹도 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무릎을 꿇고 무너지는 것은 그런 환경의 외적인 환경의 절대적 크기 때문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끊임없이 찾고 그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면서 나의 기도생활의 진보가 있을 때에 그 때에 놀랍게 기도하러 갈 때에는 캄캄해서 ‘이제는 모든 것을 접어야 되겠다’라는 마음이 드는데 기도하고 나면 예기치 못한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이길 힘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이기게 하시고 또 믿음으로 살게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때로는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때로는 하나님이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면서 살아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요약을 하면 ‘전심전력해서 너희 진보를 나타내라’ 여기에서 ‘나타내라’ 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진보를 하라 그런 뜻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전심전력해서 주님 앞에 하나님을 추구하며 사니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괄목할만하게 드러난다 그런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전심전력해서 진보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길이고 우리의 양 떼들을 건지고 구원하는 길인 것입니다. 로이드 존슨목사님이 자기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다, 소명이 어떤 것이다’라고 강연을 하고 나면 항상 어떤 사람들이 와서 ‘나는 목회를 하고 있는데 지금 보니까 소명도 목사님이 하시는 것처럼 받지 않았고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살아가는 목회자도 아닙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확신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물으면 그때마다 목사님께서는 ‘하면서 고민하십시오. 섭리 속에서 하나님이 영혼들을 목회하는 사람으로 세우셨으니 전심전력해서 이 일을 하면서 고민 하십시오’ 라고 하신답니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양떼들을 돌보는 이 일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일입니다. 이 일을 해나가면서 우리가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때마다 우리들이 온 마음을 다해서 이 일을 하면서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나의 영혼을 돌보고 나의 영혼을 주님 앞에 가꾸어 진리에 부합하도록 살고 또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목양의 현실들을 극복해 나가며 사는 이 모든 힘이 여러분들이 환경으로부터 공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공급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이렇게 평탄하고 안일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봅시다. 사랑하지 않고 마음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여러분들을 의지할수록 기분이 나쁘고 불쾌하겠지만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여러분들을 깊이 의지할 때 여러분들은 힘들면서도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목회사역을 맡기시고 그 영혼을 돌보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편안하고 좋은 목회적 환경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그와는 반대로 고통스럽고 괴로운 환경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의 모난 성격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고 회심하지 않은 지체들이나 인간성이 망가진 회심한 지체들을 통해서 그런 괴로움은 얼마든지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런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연약한 가시와 같은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이러한 정신입니다. 우리들이 영혼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이상하게 생각하면 마음속에 분노 같은 것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이 목양지 자체가 병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마음에 괴로움이 있고 그럴 때마다 원래 이 길은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이다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찬양)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원래 그런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안 나에게 이 일로 섬기라고 주님이 부르셨다’ 이렇게 생각해야지 일어나는 모든 괴로운 일들이 ‘이것이 모두 부당한 것이고 내 일생 가운데 없어도 되는 일이고 영혼을 돌보는 사역가운데 이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라고 생각하면 너무 많은 괴로움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맨 처음에 하나님이 우리를 이 목양에 부르셨을 때의 마음을 다시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믿음에 있어서 진보가 멈추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나의 끊임없는 시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 것입니다. 언젠가 신학교 교수님을 만났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쓴 몇 권의 책을 드렸더니 만져보면서 ‘목사님, 어쩌면 이렇게 능력이 많으세요? 다른 사람들은 한 가지 일을 하기에도 벅찬데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면서도 그렇게 목회를 잘해 나가시니 말예요.’ 그래서 제가 ‘물위에 떠있는 백조가 우아해 보이지만 물속에서는 두 발이 불이나, 미친 듯이 특히 오리가 그저 유유히 떠가는 것 같지만 밑에서는 발바닥에 불이나’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말씀 그렸잖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신 사람, 하나님이 능력을 많이 주신 사람, 하나님이 달란트를 많이 주신 사람, 주님이 깊이 만나주신 사람, 남이 알지 못한 은혜와 진리의 세계를 깊이 깨닫게 해 주신 사람 가운데 평안하고 힘들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다루시지를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매순간 당신 자신을 향하여 진보하도록 그렇게 우리를 부르시려고 때로는 우리를 고난 속에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이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인간이든지 간에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 믿음의 진보가 우리에게서 오는 것입니까? 돈을 버는 것이라면 우리 힘으로 해야겠지요. 그러나 이 믿음의 진보는 모든 일에 있어서의 우리 힘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맡겨주신 양떼들을 돌보고 많은 성과가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목양사역을 잘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비밀을 압니다. 항상 주님 앞에 서 있는 동안에는 우리의 마음이 비참하도록 낮아지고 만물의 찌끼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서 주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죽으심에 자기를 대입시켜야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의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맨 처음에 돌볼 때마다 한 1년 돌보면 우리의 믿음이 더 깊어지고 또한 1년 돌보고 나면 더 깊어지고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알게 되고 영혼을 돌보지 아니하였더라면 깨달을 수 없었던 자신 속에 있는 쓴 뿌리들도 발견하게 되는 것이고 하는 그런 과정을 거쳐서 걸어가는 것이고 때로는 안팎으로 우겨 쌈을 당해서 아무 길이 없는 것처럼 그런 절망과 어둠 속을 지날 때도 있는데 이때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이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고 기뻐하시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의지하면 당신은 나를 홀로 두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 티끌과 같은 존재들이지만 하나님이 아주 아름답게 우리를 사용하셔서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던 또 다른 아름다운 본을 우리가 돌보는 영혼들에게 남길 것입니다. 사람은 사라져도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고 또 그 사람에 대한 인물에 대한 기억마저 사라져도 그 사람이 가르쳤던 진리는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목양을 잘 감당해서 언젠가 여러분들의 인생을 마름하는 그 날에 이렇게 영혼들을 돌보며 하나님 앞에 십자가를 지고 걸어갔던 그 영혼 섬김의 때가 가장 행복했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