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 수련회 2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사 64:1~4)
녹취자 : 허 혜숙
이사야 선지자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전망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커다란 영적인 부흥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그 부흥을 물을 끓이고 불이 섶을 사르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보십시오.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집어넣습니다. 움직이지 않습니다. 조용합니다. 아마 그것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엄청난 노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솥에 손을 한 번도 안 대고 밑에 계속 불을 때면 물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힘차게 솟구치면서 온천처럼 끓기 시작합니다. 그 열에너지가 얼마나 엄청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안 움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해 나가면 해 나갑니다. 그런데 밑바닥부터 솟구쳐서 출렁거려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목이 아프도록 설교를 하고 지체들 하나하나 붙들고 사정을 하고 도와달라고 해도 안 움직입니다.
여러분, 기회가 닿으면 한 번 가보시면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양양에 가서 위로 가면 양양호텔이 있고 그 호텔 안쪽에서 더 안으로 들어가면 고려시대 때 지어진 낙산사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그 낙산사가 바다를 바라보는 아주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거기에 동해안이 나오면 항상 일출을 치는 의상대가 낙산사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습니다. 그 낙산사가 95년도인가 하나도 안 남기고 불에 다 탔습니다. 고성 쪽에서 예비군 훈련을 하다가 군인들이 대포를 쐈습니다. 파편이 튀어서 숲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고성에서부터 불이 타서 낙산사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모두 깨끗이 탔습니다. 군 하나 전체가 다 탔습니다. 아시다시피 여기는 6차선 도로입니다. 그 날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어서 불꽃이 휘날리면서 6차선 도로를 건너서 길 건너편에 낙산사가 있었는데 불이 옮겨 붙어서 다 타버린 것입니다. 그것을 천억 가까이 들여서 보수를 했는데 보면 우습습니다. 보수를 해서 건물은 낡았는데 지붕은 새것입니다. 어쨌든 아주 메마른 계절이었고 바람이 많이 불어 짐승들도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불길이 번지고 평상시 같으면 도저히 불길이 옮겨 붙을 것 같지 않았는데 워낙 큰 불이 붙으니까 바람을 타고 날아서 6차선 도로를 건너서 깨끗이 타버린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서 있는 나무나 숲이, 숲이나 나무가 아니라 이 세상에 더러운 가치관과 세속주의와 회심하지 못한 영혼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세속적인 욕망이라든지 이런 것들이라면 그 불길이 확 타오르면서 그런 것들을 삼켜버립니다. 우리의 사역이 항상 그런 일들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좋은 때를 만나든지 힘든 때를 만나든지 충성스럽게 하나님께 봉사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부흥에 대한 아주 절실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존 오웬 목사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두 가지로 핵심을 요약을 하셨는데 하나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사는 것과 또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아주 절박하고 간절한 영적인 갈망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관상기도에서 말하는 것처럼 허심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찬 내면의 세계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특징이고 이 세상에서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을 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역을 맡겨주셨는데 좋은 때나 나쁜 때나 힘든 때나 우리들이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 경험을 보면 목회자는 자기 연민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것은 사단의 유혹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이 매일 강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도 ‘이제 다 죽고 나 하나 남았습니다’ 그렇게 낙심하잖아요? 그것이 인간적인 면모입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낙심하게 되는 것과 자신이 낙심 속에 빠지는 것은 별개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누가 자신의 한계를 못 느끼는 사람이 있겠으며 누가 낙심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항상 이야기하지만 한 번도 목회자라는 이 자리가 정말 나한테 딱 맞는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언제나 우리 삶이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고 설교를 하고 나면 ‘야, 정말 난 참 무능 하구나’ 교회 어려운 일을 처리하면서도 ‘아, 난 참 지혜가 부족 하구나’ 여러분들이 회의를 하면서 나한테 지적을 받을 때도 그런 생각을 늘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과 자기연민에 빠져 들어가서 거기에 미끄러지듯이 들어가고 하는 목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툭툭 털어버리고 ‘삶이란 것이다, 다 그렇지’ 그렇게 생각을 해야지 자기만 특별한 고난을 받고 있다거나 자신이 한없이 불쌍해 보인다거나 이런 감정 속으로 들어가면 사역을 할 수 있는 길이 다 빠져나가서 무기력, 다음에는 마음의 방종, 하나님을 향한 원망, 급기야는 사역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이 막 스며들게 됩니다. 그때마다 우리들이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일상적으로 우리들이 해 나갈 일들을 해 나가면서도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꼭 마음에 품어야 할 것들은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목회지에 오셔서 현저하게 하나님이 우리의 목회지에 함께 해 주시므로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 입이다.
그러면 여러분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우리의 목회에 부어주시는 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 해 전에 새 중앙 교회에 있는 교인이 우리교회에 등록을 했는데 그 사람은 거기에서 도서관을 섬기는 지체였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에 있으니까 책을 사잖습니까? 그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라는 책이 입고를 했답니다. 그 분이 그 책을 읽고 은혜를 많이 받고 고민을 하다가 우리교회에 등록을 했답니다. 저는 만나지는 못했습니다만 그 분의 간증이 참 재미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를 많이 주시는지 뭐라고 하냐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기도 속에서 참 많이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기도 하면 응답해 주시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고... 그런데 재미있는 말은 하나님이 기도응답은 참 많이 주셔서 수많은 간증을 갖게 해 주셨는데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사랑해 주신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고 합니다. 시편에 보면 나옵니다. ‘그래서 저들이 원하는 것은 주셨으나 저희의 영혼은 파리하게 하셨나이다’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좋은 동역 자를 만나는 것, 또 충성스러운 일꾼들을 하나님께서 교구들의 부서에 주셔서 그들이 우리들의 목회에 위로가 되는 것, 그 모든 것들이 그런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고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의 목회사역에 복을 주신다고 할 때에 그것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혼을 추수하게 해 주시는 것, 그래서 심령에 큰 변화를 주셔서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이 회심하게 하시고 회심했으나 미끄러진 사람들이 간증을 남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목회의 커다란 복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없는데도 자신의 목회사역이 행복하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 세상의 사업과 혼돈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셔도 한 가지 일을 안 주시면 그것은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가서 대접을 받고 이런 저런 섭리 속에서 많은 것들이 형통해 지는 것들은 이 세상의 자원으로 하나님 없어도 되는 일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우리 목회에 영혼들이 변화되는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하나님의 영광스런 부흥을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6장에 보면 선지자가 소명을 받을 때 이런 커다란 부흥을 개인적으로 경험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 앞에서 두려워 떨고 또 자기 같은 죄인을 부르셔서 일꾼 삼으시는 자비까지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선지자가 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느냐 하면 자기가 개인적으로 부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개인적으로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모두 자기 같은 부흥을 누릴 때까지 사역에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주님의 강림하심을, 이 땅에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갈망하고 몸부림치며 부르짖는 이 모든 것까지 마지막에 이 자신이 그런 부흥을 개인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놀라운 부흥을 쏟아 부어주시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이 우리들이 개인의 신앙의 경험과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이 분리되고 나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귀로 들은 자도 없고 깨달은 자도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두 가지 요소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시대에 있었던 수많은 잡신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저런 것들을 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술사들도 피, 개구리, 이, 이런 역사를 일으킬 때 똑같이 따라 하잖습니까? 그들도 어느 정도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저런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는 커다란 본질적인 부흥이 아니더라도 교회에 헌금이 많이 나올 수 있고 그래서 목회자가 넉넉하고 저도 교회를 지을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단들이 어마어마한 헌금을 걷어서 짓는 종교적인 건축물들은 어떻게 건축된다고 우리들이 바라 볼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아도 그런 것들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이 물을 끓임과 같이 이 세상에 있는 죄인들을 변화시키시고 침체되어 있던 교회를 물이 끓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변화를 겪게 하시고 무엇으로도 없앨 수 없었던 것들을 강한 불길처럼 타올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죄악을 사르고 변화시키는 이런 놀라운 일들은 당신이 직접 개입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주 외에는 누가 이런 일을 하실 이가 있겠습니까?’하나님만이 그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노회에 갔는데 노회에 어떤 장로님이 나를 붙들고 자기네 교회의 답답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청년부가 자꾸 죽어가더랍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청년부가 죽어 가냐?’ 교회 청년들이 100여명이 모였는데 50명도 안 남게 청년부가 찌그러진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들하고 교역자들하고 대책을 세웠는데 마지막 나온 결론이 ‘이래서는 안 된다’ 하면서 청년부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습니다. 그래서 청년부가 잘 되는 교회에 가 보니까 인테리어부터 틀린 것입니다. 그래서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서 청년부를 리모델링을 하고 청년부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악기도 다 사다주고 청년부를 다시 새롭게 시작했답니다. 1년이 지났는데 30명도 안 남게 더 떨어졌답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물론 그런 것들도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악기도 있고 청년들이 모일 공간도 있고 하면 더 낫겠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절대로 본질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진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 이외에는 그런 모든 것들을 변화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법과 수단들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의지해야 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필요에 의해서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 하신다’라고 말합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향해 앙망하는 일,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보고 그 분을 의지하고 그 분께만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목마르고 하나님이 주실 복에 정말 간절히 매달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보면 ‘야, 저 설교 가지고 어떻게 목회를 할까?’ 하는데 합니다. ‘저렇게 해서 어떻게 목회를 할까?’ 그런데 설교가 그렇게 탁월하지 못해도 목회자가 진실한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면 어제 말씀드린 것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이 영혼들을 변화시키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자기의 교회를 많은 목회자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한두 가지 특이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에게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여러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세상에 제일 비겁한 사람들이 자기의 목회를 변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결국은 자신에게 달린 것입니다. 목회하는 후배에게 간절하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장로 한 사람이 얼마나 괴롭히는 지 도대체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미나에 참석하는데 하도 장로가 괴롭혀서 마음이 괴로워서 숙제를 하지 못했다고 편지를 보내와서 숙제를 못했으니까 어차피 못 오지만 그냥 목회가 그런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참고 그냥 하나님을 간절히 앙망하면 그것에 의해서 우리들이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혈혈단신으로 목회 한다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목회에 좋은 결실이 있으면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되고 안 되고 어려운 것이 있으면 이것은 결국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나의 신앙에 대한 성적표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우러르는 마음이 간절해야 됩니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목회가 무엇입니까' 물어보아서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것입니다’그런 마음에 있는 영혼들을 붙들고 고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증거가 있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깊이 충성하고 헌신하면 하나님이 그대로 우리의 사역에 갚아주십니다. 그래서 나는 사실 교회를 섬기면서 목회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는데 열심히 섬겨도 마음을 바쳐서 고뇌하며 섬길 때 이외에는 목회에 별로 가르쳐 준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이제껏 살아오면서 큰 힘이 됩니다.
예전 교회에서 햇수로 7년 있다가 떠나면서 인사를 드렸더니 목사님이 아주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전도사님은 교수로 있으니까 우리 교회를 떠날 이유가 없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제 때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청년사역을 해 보고 싶습니다’ 했더니 부랴부랴 당회를 소집해서 청년부를 하나 만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닌 것 같아서 떠나왔습니다. 떠나면서 나의 소외를 이야기했더니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교회를 사랑하셔서 양떼들을 맡기셨는데 그 집에 충성스럽게 하나님이 아니면 주실 수 없는 그런 변화를 전면적으로 갈망하면서 사역에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몸부림 칠 때, 십자가 지는 삶을 살려고 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리고 반드시 그런 기도에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수련회를 계기로 새롭게 결심하십시오. 모든 생각들을 접고 주님이 맡겨주신 이 자리에서 정말 내 모든 마음을 쏟아 부어서 살아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면 주님이 반드시 본질적인 변화를 주실 것입니다. 89년도에 개인적으로 부흥을 깊이 경험했을 때 내게 다가오는 생각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이제껏 신학에서 배웠던 말하려고 했던 그 하나님이 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이구나. 신학이 하얗게 빛이 바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막스 쉐퍼드라는 미국의 청교도가 이야기했듯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깊이 만났다는 영적인 깊은 인식들이 살아있어서 언제나 그것이 부채의식으로 자리 잡아 간절히 하나님 앞에 일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본질을 깊이 승부하고 예수님의 생명을 가져서 내가 죽어서라도 영혼들이 변화 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주님을 높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 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거기에 하나님의 목회의 영광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