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하나님의 형상
(질의 응답)
녹취자 : 조원정
아우구스티누스는『독백록』(Solioquia)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 치료받은) 영혼의 응시는 비로소 이 응시함의 최종적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의 바로 그 봄을 따르게 된다. 이는 더 이상의 응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응시해야 할 더 이상의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완전한 덕이며, 이성이 그 목적에 도달한 후에야 복된 삶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봄 자체는 영혼 안에 있는 총명이며, 이해하는 것과 이해된 것에 의해 성장하게 된다.”(1.6.13).
그의 설명은 기독교의 지적인 전통을 확고하게 보여 줍니다. 지식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도록 이바지해야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창조목적을 따라 살게 하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형상은 교제를 통해 은혜 안에서 진리 안에서 점점 더 온전해가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신자의 성화이며, 영화에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죄의 타락에 의해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었고,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사람과 완전한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이 일을 완전히 할 수 있었는데 목회자는 그래도 그것을 본받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전환되고 보이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높이까지 낮아져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소위 하나님에 관한 이중적 지식(Duplex Cognitio Dei)을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cognitio Dei creatoris), 두 번째는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cognitio Dei redemptoris)입니다. 시간적으로는 전자가 먼저이지만 모든 지식을 지식으로서 바로 알게 하는 것은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안 됩니다.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인간이 태어나고 그 지식 때문에 모든 만물들을 보게 됩니다. 이게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다가 구속 받습니다. 그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다시 상승된 영혼으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자연적인 지식이라면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신앙의 지식입니다.
맥체인(Robert Murray M'Cheyne)은 스코틀랜드 목회자이자 부흥운동의 지도자였습니다. 29세의 나이에 발진티푸스 병으로 죽습니다. 청교도 역사에서 아주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인물 중의 하나입니다. 이 사람이 설교하러 단상에 오르면 설교를 시작하기도 전에 교인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방금 만나고 온 목회자가 저런 얼굴이면 하나님은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시며 우리는 얼마나 죄인인가를 생각하면서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신학의 목적은 공부 자체가 아니라 공부를 도구 삼아서 자신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 두 번째 이유는 이웃들에게 그런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학이라는 학문은 주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밟고 올라가는 사닥다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학문과 일치를 이루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더 온전히 본받아가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가면서 행복을 누리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는 이유입니다.
강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질문 1]
제가 들은 바로는 조선의 신학교를 처음 열었을 때에는 대부분의 신학생들이 과거 급제 준비를 하다가 고종황제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들어온지라 소위 그분들은 유교, 곧 동양철학을 했으면서도 당시 서양철학도 함께 접하면서 신학을 했기에 우리나라 백여 년 전의 목사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상당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한문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동양 철학이 배제된 상황에서 서양철학을 접목하면서 신학하다 보니까 한국적인 사역에서 많이 어긋나는 것은 아닙니까? 한국의 도포자락에서 신학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 1세대 목사님들은 나름대로 신학의 초기화 작업을 했는데, 한문도 알지 못하고 이율곡과 성리학의 대부 이퇴계의 사상도 모르고, 그 밖에 동양사상이 배제된 오늘날의 상황에서 기독교 신학은 이를 채택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기독교적 이성과 세상 사람들의 세속적인 이성은 어떻게 구분해야 합니까?
→ [답변 1]
강의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그때 공부한 사람들은 소 잡고 시장에서 물건 팔던 그런 상민들이 신학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한학 교육을 받으면서 유교의 사상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한국 교회 초기의 그런 전통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부터 사대부 계층에서 기독교 신학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천주실의와 같은 책들이 중국에서 들어왔고 그 전에도 그런 문물들이 서학이라고 하는 이름 하에 청나라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그 사상에 대한 예리한 철학적 평가들이 이루어집니다. 그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놀랍게도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그 사상을 공부하면서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자생 그리스도인이 생겨나게 됩니다. 혹자는 이야기하기를 천주교 신앙은 선교사를 통한 복음 전파 이전에 책만 들어와 있었을 때에 이미 천주교 신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후에 선교를 통해서 이것들이 만나게 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돌아가, 기본적으로 사대부들이 가지고 있는 도에 대한 관념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관념은 일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본받을만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선비정신입니다. 학문과 삶의 윤리의 일치를 이루어 위기지학(爲己之學)하고 위인지학(爲人之學)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선비정신은 지금도 되새겨 볼 만 합니다.
유교에서 다루고 있는 지식들은 알다시피 천지가 어떻게 창조 되었을까부터 시작하여 인간 삶의 구체적인 문제까지 내려오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우주론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나 원천적인 답변은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주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그 우주의 원리를 따라서 인간 도덕이 수립되고, 그렇게 자연에 대한 이해와 도덕에 대한 일치를 이루면서 우리들이 먹고 마시고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의 커다란 가치관 체계 속에서 움직이게 된다는 그들의 설명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든 아니면 자연의 이치든 인간관계든 뭐든지 간에 선비가 된다는 것은 곧 인간으로서 참되게 살아야 될 도를 찾아가는 것이었고, 공직에 오르는 것은 바로 그 뜻을 이 세상에 펼치기 위해서 나라의 부름에 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나라에서 큰 공직에 부르기 전에 이미 그 길을 걷던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다시 부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맹자」(孟子)의 등문공편(滕文公篇)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데서 살아가며, 가장 올바른 곳에 자리를 잡으며, 천하에서 제일 큰 길로 행하며, 뜻을 얻으면 이웃과 함께 그 길을 걷고,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라도 그 길을 가는 사람이다. 부귀가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며, 빈천이 그의 뜻을 옮기지 못한다. 무력의 위협이 그를 굽힐 수 없으니, 이런 사람을 우리는 ‘대장부’라고 부른다.”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 與民由之 不得志 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 大丈夫.).
우리들은 흔히 알통이 울퉁불퉁하게 나오고 누구라도 한판 붙어볼만한 사람을 대장부라 지칭하지만 대장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대장부는 자기 가치관과 신념이 있어서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대장부입니다. 유학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이 대장부는 아닙니다. 어떤 유학자는 유학을 공부하지만 삶이 그 유학 사상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사기도 치고 부귀영화도 누리고 수시로 변모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유학자이기는 하지만 선비라고 하지 않습니다. 선비는 공직에 부름을 받기 전에도 그런 대장부로서 살아가다가 공직으로 부여받으면 다른 사람을 그런 길을 가도록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고 공직에서 물러나게 되면 다시 옛날에 가게 되는 그 길을 걸어가면 돼는 것입니다.
사도 세자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거기에 보면 영조가 세자를 세웠는데 그 아들이 성에 안 차는 것입니다. 글공부 하라고 하면 그림이나 그리고 있고 하니 잘라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왕이 신하를 부릅니다. “네가 회의할 때 주청을 올려라. 폐하 이 세자는 가망이 없습니다. 폐하시고 다른 사람을 세우십시오. 이렇게 네가 말해라.” 그랬더니 그 사람이 유서를 써놓고 죽습니다. ‘폐하, 그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옵니다.’ 그 다음 신하에게 부탁을 했더니 그 사람 또한 자결하였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이 나란히 죽습니다. 유교 전통에 있어서 선비가 목숨을 끊는 것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피를 뿌리는 웅변입니다.
제가 지금 동양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유교 사상에는 배움과 삶을 통합을 할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위협과 협박이 와도 도리를 따라서 기개 있게 사는 것이 사람의 삶이지 그 기개를 꺾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개, 돼지와 같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선비가 되는 그 순간, 진정한 선비는 죽을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수없는 사람이 핍박 속에서 목이 잘려 죽어가도 대쪽처럼 똑바로 서서 자기 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게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어떤 의미에서 상실하고 있는 세계관입니다. 원래의 기독교는 그랬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세계관을 버리고 전혀 다른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따라 살고 죽는 것입니다. 그것을 따라 핍박을 받습니다. 그것을 가장 간단한 말로 하면 복음이라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통합적인 세계관을 신앙 속에서 장중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바로 그 사상을 따라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결핍된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통적인 신학함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질문 2]
요즘 굉장히 고민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크리스천들의 보통의 이해에서 출발하는 질문입니다. 영국교회에 다니는 많은 신자들이 다들 저와 같은 신학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게이가 괜찮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봐야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참 지식은 믿음이 없이는 출발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믿음에 들어와 있다고 보이는 사람들도, 심지어 평신도 입장이 아닌 지도자들인데도 굉장히 열정적으로 미션을 하면서도 뒤에서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답변 2]
어느 한 시대에 태어나서 그 시대의 정신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인데, 항상 하나님의 말씀, 객관적으로 불변하는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고민하면서 그것들을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해도 꽉 붙들고 살며,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를 실제적인 경건 속에서 배양하면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가 이런 세상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능력이 끊어졌을 때 우리는 그런 문화의 옷을 입고 나오는 많은 현상 속에서 아주 호혜적이 되며, 진리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많은 현실 속에서 도덕적으로 감염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다음의 얘기를 듣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는데 지금부터 20년 전의 일입니다. 1990년대의 일입니다. 덴마크에서 1970년대에 섹스 박람회가 처음 열립니다. 북구라파에서도 성에 대해서 가장 먼저 개방한 곳이 덴마크라고 여겨지고 지금도 유럽에서 동성애와 같은 것들이 가장 왕성한 곳이 북유럽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이슈도 안 될 정도입니다. 기자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글을 쓴 것입니다. 그 글을 읽었는데 제가 설마라고 반문하면서 읽었습니다. 그 기자가 어느 집을 방문했답니다. 복층으로 된 집이었는데 자기는 1층에서 자기로 하고,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딸애의 남자 친구가 찾아온 것입니다. 고등학생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그 집 딸아이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나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12시가 다 되어서 이제 자야겠는데 남자 친구가 안 가는 것입니다.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답니다. “아니 저 남자 친구는 밤이 이렇게 늦었는데 왜 집에 안 돌아가느냐”고 물었더니 자고 간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기자는 너무 황당해서 당신 딸이 거기 있는데 괜찮으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아무 문제없다고, 건강 검진도 끝냈고 아주 건강한 남자 아이라고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게 벌써 25년 전쯤의 아주 평범한 사람의 가정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이미 그런 것들이 다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북유럽 쪽은 루터파를 받아들인 전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들은 이미 동성애를 모두 허용하였습니다. 장기간 동안에 사회적인 설득의 과정을 거쳐서 이제는 죄라고 못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교 역사를 보면 비슷한 실례가 있습니다. 당시 양반들은 첩을 다 거느렸습니다.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는데 선교사들이 이 사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선교사들은 그 행위를 간음이라고 꾸짖었습니다. 당시 한국 사람에게는 지금의 무슬림과 마찬 가지로 양반이면 당연히 첩이 있고 그 당시 수명도 짧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를 이을 수 없었으니 축첩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1세기 로마 시대에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25세였습니다. 빨리 장가가고 빨리 후손을 낳고 빨리 공부하고 빨리 죽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나 키케로는 예외적으로 오래 산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1940년대 평균 국민 연령이 34세 정도였으니 선교사들의 그런 비난에 대해 양반들은 어이가 없는 것입니다. 살기 힘들어서 예수를 믿었는데 자신의 가족들이 간음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니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그때 선교사들이 어떻게 한 지 아십니까? 회의를 했습니다. 원칙을 정했습니다. 회심하기 전까지의 부인들은 인정하되, 회심 이후에는 축첩할 수 없다라고 말입니다. 축첩하면 이제 치리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인들조차도 자기 남편이 아내를 얻는 것을 어느 정도는 체념하고 받아들였던 시대였습니다. 그만큼 사회적인 의식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유럽의 성적 개방은 사회적 통념 상 당연한 것으로 허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를 면도칼로 긋듯이 싹 자르고 왕성한 도덕의식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보통 중요한 사상 교육이나 하나님의 은혜, 또는 다른 공동체들과는 다른 우리 공동체 안에서의 도덕률의 통용과 같은 것들을 어려서부터 보면서 자라나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주일날 교회에 나오긴 하지만 이미 저 밑에서부터 다 섞이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런던에서 목회한 로이 클레멘스(Roy Clements)의 얘기를 아십니까? 천 명 정도 되는 교회를 목회했답니다. 책도 많이 썼답니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쪽지를 써놓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내용인 즉 내 인생의 최대의 실수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결혼을 한 것, 두 번째는 목회자가 된 것이었답니다. 대학교 때 게이였다가 회심해서 그것을 버리고 살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가 떨어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스트레스도 받고 아내와의 관계도 안 좋았을 것입니다. 또다시 옛 습성으로 흘러가다가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같이 도망간 정부가 남자였답니다. 단순히 말도 안 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와 교회가 어떻게 교묘하게 꼬여있는지를 깊이 고민하면서 세상이 아무리 우리에게 나팔을 불어도 왜 우리는 그런 도덕관을 받아들일 수 없는가를 명료하게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질문 3]
여기 영국 000 교회에 세 자녀를 둔 사모님이 남편인 목사님께 자신을 풀어달라고 했답니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레즈비언이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짝궁이 다시 합치자고 해서 그러고 싶다고 했답니다. 결국은 헤어졌는데 진짜 무서운 일입니다. 제가 영국에 31년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교리가지고 절대 안 싸웁니다. 영국 성공회도 이런 말을 합니다. 이단이 아닌 다음에야 여러분 하고 싶은 데로 하면서 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동성애를 통과시켰습니다. 저도 회중 교회 목사이지만 회중교회가 동성연애에 대해 합법화를 하면 저는 이 교단 떠날 것입니다. 한국으로 가서 다시 개척을 할 것입니다.
→ [답변 3]
미국의 PCUSA(presbyterian Church USA)는 이미 동성애를 허용했습니다. 매우 슬픈 것은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확신을 가진 것도 아닌데 한국 목회자들이 그 교단을 못 떠납니다. 왜 못 떠나는가 하면 은퇴한 목회자들의 복지가 잘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를 위해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을 이유가 그들에겐 없는 것입니다. 트리니티 신대에서 역사신학을 가르치는 더글라스 스위니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루터주의 신자였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눈물이 났습니다. 모든 것들을 참고 양보해 왔지만 루터주의 교회들이 동성애까지 허용하며 넘어가게 되자 자신들은 그 교회에 있을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루터주의 교단도 가톨릭과 비슷해서 모든 재산이 그 교단에 속해 있다 보니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빈 몸만 떠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조상이 헌금하고 대대로 세운 교회를 맨몸으로 떠난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용기 있는 사람은 떠나는 것입니다. 내 친구 더글라스도 나왔습니다.
[질문 4]
우리 회중교회가 잉글랜드 장로교회와 합해서 유나이티드 리폼드처치가 되었습니다. 회중교회는 안수집사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 회중교단은 안 갔습니다. 매머드 처치만 모두 뺏겼습니다. 지금 여기는 사례비가 나옵니다. 목회자에게 삼천 파운드 보냈는데 그 교회로부터 받는 돈은 천 오백으로 떨어지면 당장 교회를 팔라고 합니다. 유나이트 처치에 등록이 되면 모든 재산이 유나이트 처치 총회로 갑니다. 총회도 돈이 모자라니까 교회 하나 팔아서 일년 쓰고, 또 하나 팔아서 일년 쓰고, 일전에 저희 교회 지붕 수리를 해야 한다니까 한 교회를 팔아서 서른 개가 넘는 교회가 쪼개서 사용했습니다. 비참합니다.
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언급했던 본회퍼 이야기가 사역하면서 오래 남습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는 말을 하셨으며, 본회퍼는 그 말씀을 생각하며 그 길을 갔다고 하는데 아랍권에서 사역하면서 이 문장이 많이 떠오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개종을 권하는 것은 죽음을 권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극단적인 양태로 인한 전 세계적인 또 다른 매스미디어를 통한 이용당함에 건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굉장히 지혜로움이 필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질적으로 개종 앞에서는 죽으라고 해야지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시대가 점점 이렇게 흘러가면서 시대적인 정신 안에서 그 세계관을 받아들일 때 진정 우리 기독교도 그런 극단적인 양태를 띄어야지만 될 시대적인 상황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 되는 것인가에 대한 목사님의 나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답변 4]
1999년도인가 터키에서 대지진이 한번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한국에서 많은 구호물자를 보냈습니다. 컨테이너에 엄청난 물자들이 들어오니까 터키 사람들이 아주 고맙게 그것을 받았습니다. 박스를 뜯으니까 옷이며 먹을 것이 막 나오는 것입니다. 터키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굉장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으며 형제의 나라라고 합니다. 월드컵 때에도 3.4위전에서 져주는 바람에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구호물자 박스의 맨 밑바닥에서 성경책이 나옵니다. 거기 정치가들이 모여서 텔레비전에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종교를 팔아먹으면서까지 한국에 빵을 구걸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다고 말입니다. 한국 사람은 아마도 이런 성경 구절을 생각하면서 보냈을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하라. 저는 솔직히 목사지만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 박스를 뜯어보다가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이 한 둘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것을 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터키에 있는 모든 선교사들도 안타까워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지진이 났을 때에 엄청나게 많은 헌신을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물자도 보내주고, 자원 봉사도 엄청나게 많이 했습니다. 지진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희생적으로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선교방법은 이런 것들을 한 순간에 빛을 바래게 해 버립니다. 저는 질문하신 문제에 대해 이런 대처방법을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를 공격하고 무신론을 세우고 이교를 세울 때에는 논리로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보여야 하고 방어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강조되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변함없이 자기의 사상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한 15년 전에 미국에 갔을 때 일입니다. 여기에서 홀리데이인이면 고급숙소인데 뉴욕에서는 다 썩어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숙소에 들어가 무심코 리모콘으로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북구라파 텔레비전이 그쪽으로 연결이 되어서 생중계가 되는 것입니다. 스웨덴 방송인데 여기 공간의 열배 정도 되는 공개홀에 모여서 토크쇼를 하는 것입니다. 모인 사람의 수가 사 오백 명은 족히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완벽한 누드 차림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토크쇼 진행자, 게스트, 손들고 발언을 하는 방청객 모두, 10대부터 80대까지 저는 충격이었습니다. 이것은 포르노도 아니고 공개방송입니다. 눈길을 끈 것은 내 눈에 보기에 70대 정도 되는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누드도 젊은 사람들은 좀 봐 줄만 하지만 늙은이들은 쭈글쭈글해가지고 배만 아래블록 나오고, 그런 차림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추한 것입니다. 그 나이가 먹도록 그 사람은 판단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겠습니까? 20대에야 행복했겠지요. 그런 것을 보면서 가슴이 서늘하도록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데, 허무에 대한 인간의 몸부림, 하이데거가 이야기했듯이 모든 것을 부인하면 자유가 주어지는데 그 자유는 무시무시한 자유인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공허하고 비참해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말할 수 없는 인간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있었던 이건희 회장 소식 아십니까? 그 사람이 가진 재산이 8조인가 9조원 정도 된다는데, 돈 많으면 뭐합니까? 인생사는 것 자체가 그렇게 재미없고 시시한데. 어떤 가치를 따라서 자기인생을 살아가야 하나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을 때 인간은 방황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의연한 삶으로 그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다가 예수를 믿게 된 형제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전도 하는 사람 없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냐고 물었더니 대학에서 미국인들과 같이 공부를 하는데 자기도 공부 꽤나 해서 미국에 왔는데 전혀 행복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캠퍼스 안에서 진짜 머리도 단정하게 하고 행복하게 사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형제가 말하기를 “목사님 그 사람들은 말하기 전에 모습 자체가 달랐습니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동성애가 어쩌고저쩌고 해도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걸어가면서 너무나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 믿을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질문 5]
창조주를 아는 지식은 일반적으로 이성으로도 어느 정도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복음을 통해서 믿음 안에서 출발하는데, 아직 복음을 접하지 않은 일련의 사람들, 충분히 추론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탁월하게 전달하여 이해시킬 수 있는 접근 방법이 있을까요?
→[답변 5]
‘창조주를 아는 지식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아주 완전하고 훌륭한 지식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만드셨고 이 모든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정도의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국에 유명한 무신론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옥스퍼드와 레딩에서도 가르쳤던 앤터니 플루(Antony Flew, 1923-2010)라는 사람이 서른 한권의 책을 씁니다. 이 사람은 전 세계의 무신론의 대부였습니다. 아버지가 감리교 목사였는데 이 사람은 불신자가 되었고 무신론에 빠졌으며 대표적인 책인『신학과 위증성』(Theology and Falsification)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랬던 그 사람이 충격적인 책을 2007년에 씁니다.『존재하는 신』(There is a God). 하나님은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거기에서 이야기하는 신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이 아니라 플라톤이 이야기한 신입니다.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신은 소위 일자(一者), 희랍어로는 토온(to on)이라고 하는 그런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찬투데이와 인터뷰도 합니다. 무신론자였던 그가 갑자기 왜 신이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전 세계 무신론 철학자들이 이 사람 때문에 쇼크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무신론자들의 대부가 이제 와서는 신이 있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이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보니 그는 철학을 하면서부터 이제까지 자기가 살아온 원칙이 있었답니다. 내용인 즉 논리가 말하는 데까지는 끝까지 간다. 그것이 플라톤에게 배운 철학 방식이랍니다. 신이 없다고 주장하고 보니 그 원칙대로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끝까지 밀어 붙이고 나니 신이 존재하더라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그가 말하는 신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인격적인 신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성경을 읽는다든지 기도를 한다든지 그런 것을 안 합니다. 유럽에서는 플라톤의 하나님을 믿는 유사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출석도 안하면서 철학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막연하게 믿는 것입니다. 창조주에 대한 지식은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 그리스도가 자기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 내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인격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구속주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주를 통해서 비로소 창조주가 어떤 분이신지를 올바로 알게 되며, 그러기 전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위와 같은 지식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