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사역과 죄의 확신
I. 들어가는 말
설교 사역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계승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것은 첫째로, 불신자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려 하심이고, 둘째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은 성경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통하여 성취된다.
따라서 설교란,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하여 알게 하고, 소극적으로는 죄에 대하여 알게 함으로써 성경을 주신 목적을 회중 가운데 구현하는 것이다. 설교자가 인간의 죄에 대하여 지적하는 것은 회중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을 바르게 알게 함에 있어서, 유일한 길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매우 중요한 길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죄와 고통은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반드시 인간에게 그 이해의 빛 아래서 자기의 삶을 판단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인식은 반드시 도덕적 책임에 대하여 묻기 때문이다.
설교는 단지 회중들의 생활의 태도를 바꾸도록 윤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설교가 그러하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을 도덕주의라는 이념의 머슴으로 만드는 것이다. 설교는 회중을 하나님 앞에서 세우는 것이다. 그러하여 그분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들을 사랑하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의 표명인 성경의 계명을 준수하고자 하며 살게 하는 것이다.
설교 사역이 불신자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신자들을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절실하다. 왜냐하면 누구도 회개 없이는 그렇게 될 수 없으며, 자기의 죄를 깨닫지 않고는 회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은 인간의 어두운 지성을 밝혀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조명하심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II. 조명과 확신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조명이란 성령의 도움으로써 이성적 기능에 의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알고,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다. 조명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의 빛은 인간의 개념과 이해력에 무엇인가 더해지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미리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신자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인간의 개념과 이해력에 성경에 대한 어떤 깨달음들의 더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 자기 깨어짐에 이르도록 적용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확신(conviction)이 반드시 필요하다. 죄의 확신은 바로 ‘성령의 조명으로 인식하게 된 죄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도덕적 책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 죄 가운데 지속적으로 머물 때 도래하게 될 죄의 비참한 결과에 대하여 인식함으로써 현재 자신의 영혼의 상태와 삶의 태도를 부인하게 된다.
성령의 조명에 이어서, 진정한 참회의 자기 깨어짐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확신하는 일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강요나 일체의 억압이 없이 솔직한 마음으로 자신이 깨뜨려져서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일이 필요하다.
A. 성령의 조명과 관련하여 고려할 점
성령의 조명과 관련하여 몇 가지 고려할 점들이 있다. 자기 깨어짐에 이르게 하시는 성령의 조명하시는 역사는 죄로 인하여 찾아온 영혼의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고 지성의 작용을 일깨워 자기 안에 있는 죄와 죄의 비참한 결과를 보게 하다. 이것은 잠시 동안 일어날 수도 있고, 오래도록 지속될 수도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 몇 가지 사실이 고려되어야 하다.
1. 조명을 통한 인식과 확신
첫째로는, 최초의 조명을 통하여 죄를 인식한다. 인간은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조명하심으로 생각은 죄를 인식한다. 최초의 조명을 통해 죄를 인식한 사람은 인식된 죄와 자신과의 관계를 추론하게 되고 그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인 순서일 뿐이고 최초의 조명에서 깨닫는 인식에는 이미 이러한 이성의 추론이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조명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성령의 비추심에 대한 이성의 추론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가 조명을 통하여 갖게 되는 죄의 확신은 도덕적 설득의 방법을 가지고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신자가 죄에 대하여 아무리 진지하고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단지 객관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죄의 확신이라고 부르지 않다. 자기 깨어짐에 이르게 하는 ‘죄의 확신’(conviction of sin)은 자신 안에 있는 죄에 대한 도덕적 확신이기 때문이다.
2. 이성의 추론과 확신
둘째로는, 이어지는 이성의 추론은 죄의 확신을 강화한다. 성령의 조명을 통한 죄의 인식은 이미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성령의 조명으로 죄를 인식함에 있어서 죄와 자신과의 관계를 숙고하는 일 없이 관계없는 사물을 보듯이 객관적으로만 자기의 죄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죄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도덕적 판단을 포함한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초의 조명에 이어지는 더욱 성실한 이성의 추론을 통해서 성령의 조명이 계속되거나, 효과가 유지된다.
한 순간에 비취는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충분히 자기의 죄를 인식하고 자기 깨어짐에 이르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더 많은 이성의 추론과 성령의 조명하시는 역사가 필요하기도 하다. 신자가 양심을 거스르는, 뚜렷하고 개별적인 범죄에 대한 죄책감 아래 있을 때에는 단 한 번의 비췸으로도 자기 깨어짐이 가능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거나 자신의 죄를 합리화할 논리를 가진 신자들의 경우에는 보다 치밀한 이성적인 추론과 이를 사용하시는 성령의 조명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세리와 창기와 같은 자들은 많이 회개하고 그분을 믿었지만, 바리새인을 비롯한 종교인들의 회심을 보기 어려웠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마 21:31, 21:32).
3. 확신케 하시는 성령
셋째로는, 죄를 확신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같은 철학자들은 악에 대한 이성적 추론 자체가 그 악을 멀리하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인간에게 악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가리키기만 하면 그 악을 행하는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음에 대하여 스스로 확신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인간에게 죄를 확신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이시다.
이성에 의한 인식 없이는 죄를 확신할 수 없고, 자신의 죄를 확신하지 않는 사람이 그 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확신할 수 없지만, 죄 자체를 확신하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
성령께서는 이처럼 죄를 깨닫게 하시고 자신의 도덕적 책임을 확신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게 하신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또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자 하는 자에게 죄의 확신을 갖게 하시며, 회개하고자 하는 자를 회개하도록 도우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확신함에 있어서도 인간은 여전히 책임을 지고 있다.
B. 도덕적 책임의 인식
죄의 확신은 반드시 자신의 죄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다. 그리고 죄에 대한 인식이 이러한 도덕적 책임을 자각하게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참된 자기 깨어짐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비중생자나 중생한 신자를 막론하고 자신의 죄를 깨달은 사람이 도덕적 책임을 느낀다면, 도대체 그것은 누구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것인가?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갖게 되는 죄의 확신은, 그것이 개별적인 범죄를 통하여 손해를 입한 특정인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 대하여 느끼는 도덕적 책임에 대한 확신이 아니다. 그것을 포함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이상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확신이다. 따라서 죄의 확신에 있어서 핵심을 이루는 도덕적 책임에 대한 확신을 말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고려되어야 하다.
1. 하나님 앞에서의 확신
첫째로는, 죄의 확신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도덕적 책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중생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인간의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확신이다. 인간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어떠한 식으로든지 죄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평안을 얻을 수 없다. 신자는 자신이 지은 죄가 하나님께 손해를 입힌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을 통렬히 확신함으로써 자기 깨어짐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죄의 확신은 단순히 죄가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존재론적인 확신이 아니라, 그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 대한 확신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확신은 언제나 자신의 죄에 대해서 책임져야 하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동반하다. 비중생자 조차도 중생하기 이전에 이러한 죄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을 청교도들은 ‘중생 이전의 성령의 역사’로 분류해 중생 자체와는 구별되는 또 다른 성령의 역사로 보았다. 그러한 비중생자들 조차도 죄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는 하나님의 존재는 물론 인간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는다(욘 3:4-9).
2. 절대선의 존재 증거
둘째로는, 죄의 확신은 창조의 목적인 절대선(絶對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의 죄는 절대악(絶對惡)이니 죄의 존재를 인식할 때 죄 자체 뿐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 책임을 동시에 확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 곧 하나님 앞에서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확신은 신자 뿐 아니라 비중생자에게도 있다는 것은 두 가지 사실을 증거한다.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또 한편으로는 그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만드신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확신하는 도덕적 책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갖는 확신이며, 또한 그것이 ‘악(惡)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곧 자신의 죄스러운 마음의 움직임이나 행위가 세상과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인 선(善)에 거스른다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비중생자에게서도 발견되는 이러한 죄책감은 최고 이성(最高 理性, summa ratio)인 하나님의 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며, 이 하나님의 법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향하는 법이다.
3. 악덕스러움의 확신
셋째로는, 따라서 죄의 확신은 곧 죄의 ‘악덕스러움’(viciousness)에 대한 확신이다. 이것은 죄에 대하여 확신하는 도덕적 책임이 인간의 윤리차원을 넘어선 우주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자기 깨어짐으로 나아가는 신자의 죄에 대한 확신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창조 목적인 선(善)을 기준으로 한 도덕적 평가의 결과를 확신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죄를 판단함에 있어서 자기중심적인 견해를 버리고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시 51:4).
자신이 악덕스러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될 때, 신자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 앞에 ‘악덕스럽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악덕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그 지점에서 자신의 존재가 ‘추루(醜陋, pravis)하다’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그러한 악덕스럽고 추루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울러 확신하게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갈망하게 됨으로써 자기 깨어짐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III. 확신하는 내용들
죄의 확신이 조명을 통해 인식된 죄에 대해 절대선(summum bonum) 앞에서 그것이 악덕스러움을 알고 도덕적 책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라면, 그 확신의 대상이 되는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그것들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A. 죄의 존재
첫 번째, 죄의 존재이다. 신자는 조명을 통해서 자기 안에 있는 죄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다. 이것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로 나뉘어 진다. 첫째로는, 존재론적으로 죄가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다. 신자는 대부분 자기 안에 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성경이 여러 곳에서 그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를 인식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개념적인 이해와 경험적인 이해가 그것이다. 신자로 하여금 자기 깨어짐에 이르게 하는 죄의 확신은 개념적인 이해가 아니라 경험적인 이해이다. 신자가 죄의 확신을 통하여 갖게 되는 죄에 대한 지식은 죄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는, 그것이 자기 안에서 존재할 뿐 아니라 악한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다(롬 7:21-23).
B. 개별적인 실행죄
두 번째, 개별적인 실행죄이다. 신자가 이 모든 죄의 존재, 작용하는 힘과 원천적인 능력을 확신하게 되는 것은 자기가 지은 개별적인 실행죄를 확신함으로 가능하게 된다. 실행죄는 신자가 의지를 가지고 짓는 죄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는 마음으로 짓는 죄와 행동으로 짓는 죄로 대별된다. 자기 깨어짐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신자는 자신이 행한 개별적인 죄에 대하여 도덕적 책임을 확신함으로써 죄의 원천이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 앞에 처벌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C. 죄의 원천
세 번째, 죄의 원천이다. 죄의 확신에서 이어지는 조명과 이성적 추론은 자기 안에 있는 죄의 존재를 인식하게 할 뿐 아니라 그러한 개별적인 죄를 양산하는 원천으로서의 강력한 죄의 경향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분출하는 개별적인 정욕(情慾)들을 통해서 그 존재와 힘을 경험하고 확신하게 된다. 이때 신자는 아무도 도울 길이 없는 상황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죄가 존재 뿐 아니라 그 뿌리가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한 경험을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특히 그것이 자기 안에 있는 선한 의지를 거스르는 강력한 힘으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때, 신자는 선을 행함에 있어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리게 된다.
D. 하나님의 심판
네 번째, 하나님의 심판이다. 자기 깨어짐으로 나아가는 신자의 죄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 앞에서의 도덕적 책임을 동반하는 확신이기 때문에 이것은 반드시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확신을 포함하다. 신자는 율법과 양심을 통하여, 율법을 모르는 불신자들은 양심 자체가 율법이 되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확신하게 하다. 자기 깨어짐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신자는 자신이 행한 개별적인 죄에 대하여 도덕적 책임을 확신함으로써 죄의 원천이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 앞에 처벌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신자가 자기 깨어짐에 이르도록 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엄위에 대한 특별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눅 5:8, 눅 18:13, 행 19:17-18).
IV. 죄를 확신함에 있어서 인간의 책임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확신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그러나 조명을 통하여 죄의 확신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책임이 뒤따른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인간에게 죄를 확신시키심에 있어서 인간의 본성과 의지를 안에서, 그것들을 통해, 그것들과 함께 역사하시지 그러한 본성과 의지 없이, 그것들을 거슬러서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리적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들을 숙고하여야 하다.
A. 성령-인간의 협력 사역
첫 번째, 성령과 인간 사이의 협력적 사역에 관해서이다. 먼저 살펴 볼 것은 자기 깨어짐에 있어서 인간의 책임이다. 자기 깨어짐은 회개 안에 있는 작용이고, 신자의 회개는 성화의 작용 안에 있다. 그리고 회심은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리킨다.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좁은 의미의 회심이든지, 혹은 넓은 의미의 회심, 곧 성화 과정에서 신자가 경험하는 회심 경험의 반복을 가리키는 것이든지 간에 모두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는 사역이지만 인간의 협력사용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회개하고자 하지 않는 죄인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려는 죄인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매우 가능성이 적은 추측이다. 자기 깨어짐에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신자는 스스로의 결단을 통하여 죄에 대한 사랑을 버릴 수 없고, 자기의에 대한 신뢰를 포기할 수 없다. 오직 성령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를 사모하지 않는 신자에게는 그런 복스러운 자기 깨어짐이 일어나지 않다. 자기 깨어짐에 이르게 하는 죄의 확신은 바로 이러한 성령-인간 협력 사역으로 규정되는 성화 과정에 있다. 따라서 신자가 자기의 죄를 확신함에도 책임이 따르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B. 인간의 책임
두 번째, 죄의 확신에 있어서 인간의 책임이다. 성령께서 신자로 하여금 자기 깨어짐에 이르도록, 죄를 확신하게 하심에 있어서 인간 편에서는 다음과 같은 책임이 강조되어야 하다. 왜냐하면 죄를 확신하는 일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신자 안에서 신자와 함께 그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리적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숙고하여야 하다.
1. 정직할 것
첫째로는, 정직해져야 하다. 여기서 정직은 조명을 통해 인식하고 확신하게 된 바를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드러난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 참회에 이르러야 할 죄인의 마음은 부패하고 거짓되기 때문에, 할 수 있으면 조명을 통해 얻은 죄에 관한 사실들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다. 이러한 이끌림에는 언제나 부패하고 완고한 의지의 작용이 있다. 이것이 최초의 생각은 물론, 이후에 이어지는 이성의 추론에도 깊이 개입한다. 따라서 이와 관련하여 신자의 의무는 다음과 같이 지적될 수 있다.
a. 최초의 빛에 대하여
첫째로, 소극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조명의 빛을 받아들여야 하다. 성령께서 신자로 하여금 자신이 지은 죄를 볼 수 있도록 비춰주시고, 그것을 감지한 이성이 그것을 받아들여 죄와 자신과의 관계를 생각나게 해 주었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경우, 최초의 조명을 통해 얻은 지식은 아직 치밀한 논리를 갖지 않은 생각일 뿐이다. 이어지는 이성적인 추론의 도움 없이는 죄에 대한 어느 정도의 명료화된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조명을 통해 비춰주신 그 작은 지식의 빛은 회피하는 이성의 치밀한 추론 보다 더 진실하다. 이 때 신자는 성령께서 조명하실 때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이러한 부패한 본성의 부정직해지려는 성향이 내재함으로 미리 알고 성령께서 비춰주신 사실을 회피하려는 우세한 본성 보다는 자신 밖에서 주어진 조명의 지식을 진실로 받아들이려는 정직함이 필요하다. 누구도 이러한 정직함 없이는 죄를 확신함으로 참된 자기 깨어짐에 이를 수 없다.
b. 이성적 추론에 대하여
둘째로, 적극적 의미에서 이어지는 이성의 추론의 결과에 대하여 정직해야 하다. 이성적 추론은 부패한 본성의 지배를 받으면 신뢰할 수 없지만, 그러한 부당한 지배로부터 벗어날수록 이성의 추론과 양심의 기능은 신뢰할만하다. 그것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사용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돌이키시기 때문에, 일단은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다.
신자의 마음을 조명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죄와 자신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을 때 신자가 부정직함으로 그러한 조명의 지식을 의지를 가지고 떨쳐버리지 않는다면, 인식된 사실을 배종(胚種)으로 삼아 이성적인 추론이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죄를 자각한 신자가 참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죄를 확신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 때 신자가 죄와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대하여 추론하는 이성의 작용을 신뢰하고 그 추론의 작용을 통하여 산출되는 논리적 귀결을 받아들이려는 정직함이 필요하다. 비록 신자의 이성이 부패한 본성의 방해하는 작용으로 말미암아 정당한 추론에 지장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조명을 통해 비춰진 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죄 없음을 확신하게 해주는 완전한 추론에 이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신자는 조명된 죄에 대하여 이성이 추론하는 바를 반박할 수 없는 한에서는 사실로 받아들이려는 정직함이 필요하고, 이렇게 한다면 성령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신자가 이성의 추론 작용에 개입하는 부패성의 방해하는 작용에도 불구하고 참된 죄의 확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2. 관심을 회피하지 말 것
둘째로는, 관심을 회피하지 말 것이 요구된다. 최초의 조명을 주어진 죄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지식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이성의 추론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죄인의 마음은 관심을 회피하려고 하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성경의 보도에도 나타난다.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행 24:24-25).
그는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고, 그것은 분명히 그에게 어떤 조명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두려옴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회피하였다. 주어진 조명의 지식은 그에게 죄와 심판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추론하도록 자극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회피하였다. 단순히 생각을 또 다른 생각으로 떨쳐 버린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 문제에 관하여 이성으로써 추론하지 않고자 회피하였다. 벨릭스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죄의 확신을 회피하였으나, 실제로 자신의 죄에 관하여 조명의 빛을 얻게 된 신자들이 이성의 정당한 추론을 통하여 죄의 확신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회피하게 하는 요인은 그들 안에 있는 죄 된 욕망만큼이나 다양하다. 때로는 즐거움에 대한 기대 때문에, 특별한 애정이 없어도 일상적인 일들에 대한 습관 때문에 조명된 지식을 회피하여 죄의 확신에 이르지 못하다. 결국 이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가르쳐준 조명의 지식이 이성의 추론을 통하여 다다르게 될 결론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죄에 대한 사랑, 집착, 외로움 그리고 심판의 두려움 등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나 죄인의 이러한 회피는 결국 자기를 죄에서 건질 하나님 대면하기를 회피하는 것이다. 그는 결코 자기 깨어짐에 이를 수 없다.
3. 믿음을 가질 것
셋째로는, 믿음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 이것은 자기 안에 죄에 관하여 자신의 느낌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자기 깨어짐이 필요한 상태 아래 있는 신자는 평소에 자기 안에 있는 죄를 느끼며 살지 못하다. 왜냐하면 죄를 사랑하고 죄의 경향성을 따라 사는 동안에는 죄의 존재와 힘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죄의 존재는 죄를 미워할 때 잘 느껴지고, 죄의 힘은 은혜를 따라 살고자 할 때에 그 힘이 느껴지지 때문이니, 이는 마치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자가 천천히 흐르는 강물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자신이 죄의 존재와 그 힘을 느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가 있다는 성경의 진리를 자신의 느낌보다 더욱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 힘을 정확하게 인지하기를 힘써야 한다.
V. 결론
설교는 회중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일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멀리 떠난 자신의 삶을 변명할 논리의 퇴롤 차단하는 동시에, 자기의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하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특히 죄를 깨닫게 하시고 책망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설교를 통한 어떠한 회심도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일회적인 회심이든지, 혹은 그 회심의 반복이든지 간에 그것은 성경의 의미를 올바르게 드러내고자 하는 설교자의 해석 활동과 그것을 통하여 드러난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하실 뿐 아니라, 죄에 대하여 확신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설교에 있어서 죄인들을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지성과 의지의 작용을 초월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지성에 말을 건네시고, 인간의 의지를 감화시켜 당신의 뜻을 따르게 하신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마치 자신의 설교를 통하여 회중들의 영혼의 심연까지 깊은 영향을 끼쳐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 사람이 되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고 설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교자는 최선을 다하여 성경의 진리를 해석하고, 이를 위하여 학문의 도움을 받지만, 그것으로써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죄인들의 영혼의 어둠을 밝혀 지성으로써 자신이 설교하는 성경 진리를 이해하게 하고, 나아가 죄를 확신하게 함으로써 자기 깨어짐에 이르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마음을 다하여 의존하고 간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