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반 4주차
녹취자: 최원정
8장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성함, 속성, 삼위일체까지 이 3과가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하나님은 어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라면 8, 9, 10과는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나에 대한 대답이다. 그래서 하나님, 신론, 기독론도 그런 구조로 되어 있다. 목차를 다시 보면 기독론에 보면 14, 15과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인가, 16, 17과는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시나입니다. 구원론은 성격이 좀 달라요. 그리고 교회론은 성격이 같아요. 23, 24과는 교회는 무엇인가. 그 다음에 25, 26, 27과는 교회는 무슨 일을 하나.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데 외우기 쉽다. 신론 같은 경우 6과를 절반으로 나누어 3과는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가, 7, 8, 9과는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나.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8과에서는 작정이라고 부른다. 그다음에 9과에서는 창조, 10과에서는 섭리라고 되어 있다. 작정부터 보면, 작정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흔히 무얼 하기를 작정했다고 하잖아요. 인간은 작정을 해도 작심삼일이잖아요. 교리반도 고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젊음을 불태우리라고 들어오는데 3주하면 그만두게 되죠. 그동안 뇌를 휴가 보냈잖아요.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쥐가 나는 것입니다. 예전에 교리반에서는 되게 3000페이지를 읽었어요. 1주에 평균 200페이지의 책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테이프 듣고 과제하고 하다가 중간에 퐁퐁 나가요. 졸업률이 60%밖에 안돼서 타협을 했다. 지금 최소한 이정도는 해야지 교리반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해서 내놓은 것입니다. 한 학기 배우면서 서론만 한학기를 배워요. 그 다음에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을 순서로 3년 반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송하지 않아요? 솔직히 교리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생사용 설명서이고 신앙 사용 설명서이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우리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한 삶의 목표가 달려 있는 것인데 운전면허 시험만큼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모독이고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에요. 죽는 날까지 학생이에요. 공부하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머리는 중심 잡으라고 준 것이 아니라 공부하라고 준 것이다. 강아지에게 공부하라고 해도 공부 못한다. 인간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부지런히 책을 읽고 수입의 10%는 십일조를 하고 5%는 책을 사라. 30년 예수를 믿으면 예수 믿은 흔적이 서가 속에 나타나야 한다. 생명보다 소중한 하나님을 살아온 걸어 온 길인데 그분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이 세상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지식을 갖고 있을 때 사람들 하나하나를 깨우쳐서 어린 석은 길에서 바른길로 돌아오게 하는데 천만금을 가지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수십억의 돈을 가지고 한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없다.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겠지만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것은 가르침이다. 가르치지 않는 것은 짐승만도 못하다. 짐승은 짐승이지만 그 보다 내려갈 수 없다. 개만도 못한 개가 있는가? 인간은 개만도 못한 개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위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누가 물어봐도 무슨 책을 읽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쓸데없는 소설 나부랭이를 들고 다니면 안 된다. 사상, 기독교, 성경에 관한 진리, 위대한 신앙인의 삶을 봐라. 나아가서 자연의 세계, 사회에 관한 책들을 읽어가야 한다.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지런히 책을 항상 읽어라. 돈이 없다고 하면 우리교회 같은 곳이 어디 있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다. 허접하고 이상한 길로 인도하는 책은 없다. 그런 시설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되나. 직원이 있으면서 늘 있으면서 봉사하는 교회가 어디 있나. 공부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도덕적 통치라는 책이 너무 어려워서 공과도 안한 책이 있다. 심방을 갔는데 초등학교 나온 권사님이에요. 도덕적 통치를 읽고 있대요. 대학원 학생도 어렵다고 내려놓은 책이라는 데, 어렵지 않으세요? 하니까 아니요 뭐가 어려워요. 6번째 읽고 있는데 너무 은혜로워요. 각주까지 읽고 있어요. 목사님이 늘 하시는 말씀인데. 그게 바로 세상의 학력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하고자 하는 정신과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다 쉽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면 어려울수록 정말 예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야. 복잡한 게 있을수록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거야. 무슨 소린지 아세요? 사람 만나서 교제를 하는데 두 번 만났는데 거의 백치야. 얼굴이 그림같이 예뻐도 만화에 나온 사람처럼 느껴지는, 매력이 없는 거야. 얼굴이 못생겨도 기대감 없이 만났는데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야. 저 사람의 말은 얼마 안되는데 저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들어있을까. 깊은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싫증을 금방 느끼지 않는데.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제 8과
1. 하나님의 작정의 일반적 의미
하나님의 작정이란 장차 발생할 모든 일들을 미리 정하시는 그의 영원하신 계획 혹은 목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장적은 여러 특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단일한 작정이지만 가끔 복수형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하나님의 작정은 창조와 구속에 있어서 모든 사역을 포함하며 인간의 죄된 행위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내포한다. 하나님의 작정은 죄가 세상에 들어옴을 명백히 드러내주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범죄행위의 책임자로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와 관련된 하나님의 작정은 허용적인 작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이 죄를 막으실 수 없다고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문제가 되잖아요. 무능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해석을 하면 안되고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누구에게 죄를 짓게 했다고 하면 하나님이 죄의 원저자가 되니까 문제가 된다. 이 죄가 들어온 것에 대해 하나님은 불가항력적으로 죄가 들어오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면 무능이 문제가 되고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죄가 들어오게 했다 하면 죄가 악이고 하나님은 선이신데 하나님이 스스로에게 모순되는 일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작정은 작정인데 소극적 작정, 혹은 허용적 작정이라 부른다. 죄가 들어오게끔 허용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의 원인이라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왜 죄가 들어온 것을 허용하실까? 그것은 이제 하나님의 깊은 섭리 속에 감추어져 있어요. 하나님은 국부적으로 항상 선한 것만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다. 국부적 혹은 국지적으로는 나쁜 것이고 죄인데, 그것을 인간이 저질렀지만 그래서 결국은 모든 것이 망가져버린다고 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능력의 문제가 되는 것인데. 하나님이 정말 전능하신 분이라면 죄가 안 나오게 할 수도 있고 죄가 들어왔다고 해서 그것이 악한 것이지만 그 악한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실 수 있으셔야지 능력 있으신 분이라고 봐야 하잖아요. 죄를 허용했다고 하면 왜 죄를 허용했을까? 두가지 설명이 가능한데, 첫째 하나는 인간에 대한 자율의 인정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기계처럼 만들지 않고 당신처럼 인간 스스로 무엇을 앍고 결정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주체로 창조하셨다. 이간의 원래 모습이다. 만약에 그것을 못하게 하면 인간의 본래 아름다움이 훼손이 되는 것이다. 이상한 예일지 모르지만 예를 들어 집에서 치와와 같은 예쁜 강아지를 기르는데 강아지가 밤마다 방에 들어오겠다고 문을 긁어서 계속 바스락 소리를 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데려와서 개 앞다리 두 개를 잘라버리면 되겠어요? 개가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개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앞다리 없이 배로 기는 모습을 생각해봐요. 하나님이 인간이 악을 행해도 그 본래의 가진 자율을 존중해주신 것이다.
두 번째로 옛날에 중국에서 살다가 너무 괴로우면 자살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소금을 먹는 거였어요. 소금을 먹는 것이 자살하는 수단이었어요. 소금을 고농도로 농축한 것을 간수라 하는데, 그 자체를 먹으면 죽는다. 락스의 성분도 나트륨을 농축한 것입니다. 벌컥 마시면 죽어요. 농축한 소금, 독약으로 쓰이는 그것이 두부를 만드는데 없으면 안 되는 재료에요. 간수가 없으면 두부가 뭉치지를 않아요. 옛날부터 두부는 바닷가에서 유명했다. 좋은 간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강릉에 학사평 두부 같은 것이 유명하잖아요. 그러니까 가만히 보면 인간이 하나님께 대항해서 죄를 저질렀지만 하나님은 죄를 사용해서 죄가 없을 때보다 더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지만 타락했기 때문에 더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절절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의 마음을 녹이는 하나님의 용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죄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인간이 알 수 없는 사랑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 깨닫게 되잖아요. 구속의 사랑이에요. 시리즈에 들어가 보면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인간의 의무라는 설교가 있는데 진짜 탁월한 시리즈에요. 기독교의 매우 중요한 치명적인 내용을 거기서 다루고 있다. 일주일 동안 조용히 듣고 독파한다면 인생이 바뀔 것이다. 예수를 믿어도 핵심이 뭔가, 믿어도 되는 것인가? 이런 사람들이 들으면 새사람이 된다.
(1) 하나님 작정의 특성
인간이 항상 이해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지혜에 근거한 것이다. ① 영원 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영원적이다. ② 하나님의 작정은 효과적이므로 반드시 발생한다. 그것을 이제 효과적이라고도 하지만 유효적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작정을 하고 작심삼일이라서 마음이 변하거나 마음이 안변해도 상황이 변해서 도저히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은 그러신 법이 없다. ③ 하나님의 작정은 불변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참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④ 하나님의 작정은 무조건 적이다. 즉 계획의 성취는 인간의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행위를 명백히 하신다. 이간이 어떤 행위를 하게 되면 이게 하나님의 작정이 이렇게 펼쳐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연을 써서 두루마리를 말았어요. 맨 위에서부터 펴보는데, 처음에는 모르지만 하나씩 하나씩 펴 보이면서 글씨, 그림이 나오면서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처럼 펼쳐지는 것을 섭리라고 하고 작정은 그것이 일어날 수 있도록 미리 만든 것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의 작정의 범위를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작정 안에는 인간의 선악간의 행위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과 인간 생명의 기간과 거할 장소 까지 포함된다. 하나님의 작정이 이 세상에 들어온 죄와 관련지을 때는 허용적이다.
(2) 작정교리에 대한 반대설
많은 사람들이 작정교리를 믿지 못하는데, 세 가지 반대설이다.
a. 인간의 도덕적 자유와 모순된다.
하나님이 작정하셨다면 결국은 인간이 자유가 없지 않느냐. 좀 다르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이 정하셨다면 인간은 아무리 애써 봐도 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은 필연성과 관련되는 것이다. 필연적이라는 것은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될 수밖에 없도록 강제되는 것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죠. 거스를 수 없는데 거스르려면 물을 뿜어낼 수 있는 별도의 기계를 개발해서 자연법칙보다 강한 힘으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여야 가능한데 분수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필연성이란 자연적인 경우와 도덕적인 경우는 각각 다르다. 자연적인 경우에 필연성은 법칙이 그대로 작용해서 자연 사물들을 피동적으로 움직일 뿐이에요. 물을 쏟으면 스스로 물이 어떻게 못하고 법칙이 시키는 대로 가는 거야. 도덕적인 경우에는 인간이 해당이 되는 거야. 그럴 경우에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의 성향이다. 옛 말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일이 없다. 참새에게는 곡식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어요.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는 거야. 인간이 예를 들자면 도벽이 있다. 생활수준과는 상관없이 물건을 훔치는 습성이 본성 속에 베여 있어요. 인간은 훔쳐요. 훔치는 순간에도 누가 강요해서 훔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도벽이 시키는 거야. 그것은 그 속에 있는 도벽이라는 성향은 자기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에 아주 자유로운 것입니다. 억지로 시킨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으로서는 이러면 안 되는데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술에 인 박이거나 담배에 인 박이는 사람도 그런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가장 커다란 행복의 요인은 신앙생활을 하고 부지런히 성화되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 마땅히 하여야 할 일들이 자기도 그것을 하는 기쁜 성향이 되는 것. 이것이 신앙의 목표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들이 있잖아요. 도리적인 행동이 있잖아요. 그것을 행하는 것이 자기에게도 기쁨이 되는 성향을 갖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사람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이 사람의 성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의 삶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생활이고 삶입니다. 근데 우리의 옛 성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싫으니까 끊임없이 저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를 작정하셨을 뿐 아니라 자유로움으로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양면을 함께 조화시킬 수는 없지만 본래부터 모순되었다고 성경이 증명해주지 않는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과 인간의 도덕적인 선택은 둘다 완전히 자유로워요. 그런데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그 길을 인간이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그 길을 가도록 타율적으로 강제된다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그리로 갈 줄 알았기 때문에 미리 정하신 것도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의존하게 도니까 그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정하시고 인간도 자유롭게 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정해졌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살아 봐야 안다. 예를 들자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누가 반가운 사람을 만날 것 같은 꿈을 꿨는데 아침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잊어버렸는데 일하고 밥 먹고 길거리에서 누구를 만났는데 동창을 만난 것입니다. 내가 널 만나려고 꿈을 꿨구나. 그럴 때 있잖아요. 나는 완전히 미리 정하진 것 같았는데 나는 자유롭게 살았는데 결국 그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속에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지각될 수 있다면 모든 것에 뛰어나신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것과 인간이 모든 것이 자유롭다는 것인 모순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하나님이 나를 예수 믿지 못한 사람으로 작정해 놓았기에 내가 예수 안 믿은 책임이 없다. 그런 식으로 성립이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자유는 완전히 자유로운데 그것은 일치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미리 우리가 알 수가 없다.
b.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 받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게 한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들의 구원 여부를 결정하셨다면 인간들은 인간의 노력과 완전 무관한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틀렸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에 관해 어떻게 작정하셨는지를 알지 못한다. 더욱이 하나님은 인간의 최종적인 운명을 결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실현되어가는 방법까지 작정하신 것이다. 목적이란 지정된 방법의 결과로서만 작정되어짐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을 낙망케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격려시켜 준다.
그러니까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받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는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장로교가 이성적으로 비난받는 것 중에 하나가 예정론이다. 예정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예정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다 찾아보면 예정을 저 앞을 바라보고 예정을 이야기 하는 것은 거의 없다. 예정은 믿지 않은 사람이 이야기 하는 용어가 아니다. 이미 예수를 믿은 사람이 회고적으로 자신이 예수 믿고 이 자리에 오게 된 것까지의 뒤를 돌아볼 때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 속에 나를 하나님 자녀로 만드시려고 선택을 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정이라는 것은 도덕적 피조물에 대한 작정을 뜻하는 것인데 예정은 그 자체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이다. 송영적인 목적이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다메섹에서 가는 길에, 청년 때의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구원을 받고 보니까 그 은혜가 신기하고 너무 감사한 거야. 처음에는 자기 같은 죄인을 다메섹에서 구원하셨다고 본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지고 보니까 그게 아니라 자기 어머니가 자기를 잉태할 때 뱃속에서부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너 엄마 뱃속에 있는 사울아, 내가 이제 너를 큰 주의 종으로 써야겠다. 이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신앙이 더 깊어지고 나니까 그게 아니라 영원 전에 이 세계가 창조되고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하셔서 인간 속에 어느 시대에 자기 같은 인간을 태어나게 하셔서 예수님 믿게 해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자신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깨닫게 된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이에요. 예정의 목적이 구원받은 성도가 앞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구원받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면서 나의 나된 것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구나. 주님의 은혜가 너무 귀하구나. 참 감사하다. 이렇게 고백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나같은 인간을 구원한 것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영원 전에 이루어진 일이라면 그래서 그게 꼭 이루어진 일이라면 이 세상에 환란, 핍박이 많아도 그분을 의지하며 인생길을 걸어가면 그렇게 신실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인도할 것이다. 반드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해주실 것이다. 구원에 대해 깊은 감사와 안정감과 확신을 갖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예정의 교리를 말하게 하신 것이지 불신자 놓고 인간들이 이 중에 예정된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예수 안 믿는 엄마 아빠 중 예정이 안 되어 있으면 전도하면 힘든 것이라고 감별하라고 주신 예정의 교리가 아니다.
c. 하나님을 죄의 조작자로 만든다.
그렇지 않아요. 죄가 작정가운데 들어 있는 것은 사살이지만 하나님 자신의 직접적 해위에 의해 죄를 산출된 것은 아니다. 죄와 관련된 문제 역시 인간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없는 신비로 남아 있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불신자들 혹은 철학자들이 가끔 신이 없는 게 틀림없다. 왜 신이 있다면 어떻게 세상이 개판일 수 있느냐. 이에 대해 엘빈 플란팅가라는 외국의 기독교철학자는 그럼 왜 세상이 선해야 하냐. 그것은 어디서 나온 결론이냐. 세상이 선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왜 이렇게 개판이냐. 왜 이렇게 나쁜 놈이 많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상이 선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선하게 할 수 있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진짜 없다면 세상이 반드시 선해야 한다는 당위성 같은 것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왜 모든 사람이 선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느냐 이것입니다. 왜 꼭 세상이 그렇게 선한 세상이 되어야 하냐. 악한 세상이 되면 되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원래 선한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이 마땅히 돌아가야 할 바이냐. 이것도 근거가 없다. 그러고 이야기를 해야 맞는다는 것이다. 신이 없다면. 이번에 주기도문 공과하면서 앤서니 플루 이야기 기억나죠? 세계에서 유명한 현대 무신론자의 대부인데, 영국의 무신론자 앤서니 플루가 유신론을 발표하잖아요. 신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그렇다고 내가 예수쟁이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그를 추앙하고 따르던 수많은 후배들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이었죠.
2. 예정
예정이란 도덕적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다. 예정 속에는 선인과 악인, 즉 모든 인류와 천사, 마귀,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한다. 성경은 선택을 다음과 같이 몇 개의 측면으로 말하고 있다.
(1) 선택
① 구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선택 ② 개인적인 인물의 선택 ③ 구원 받은 개개인을 선택. 이 중 마지막 것이 우리가 고찰하고자 하는 구원에 있어서 선택이다. 그러므로 선택이란 인류 중 얼마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라 정의할 수 있다.
(2) 유기
유기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작용 속에서 어떤 사람을 간과하시고 그들의 죄를 따라, 간과한다는 것은 선택할 때 빼놓으시고 그들의 죄를 따라 귿르에게 벌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라 정의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기는 실제적으로 이중적인 목적이 있으니 첫째 구원의 은총을 베푸심에 있어 어떤 사람은 구원을 베풀지 않고 지나가시고 또 그들의 죄를 따라 그들에게 벌하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제 재미있는 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선택과 유기를 정해놓으셨다고 하더라도 선택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고 유기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 믿으려는 불신앙적인 사람이다. 이것을 이성적으로 완벽하게 생각할 수 없지만 우리가 지난 시간에 차원의 문제를 이야기 했잖아요. 하나님의 차원에서 보면 아주 분명하게 설명될 수 있지만 인간의 차원에서 다 설명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죄를 짓고 타락한 이후에는 어떤 사람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타락해서 죄인인데 모두 버리셔야 마땅한데 어떤 사람들을 예수를 믿게 하여 구원해 주신 그 자체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주목하는 것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향한 그 하나님의 불공평을 이야기하는 것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작정하셔서 어떤 사람은 선택으로 어떤 사람은 유기로 정하시지만 그러나 실제로 인간들이 모두 살고난 후에는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들이 공평하고 정의로운 일이었다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실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3) 예정론에 대한 반대설
예정론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불공평의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그릇된 견해이다. 우리 인간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어떤 권리요청을 할 때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원한 구원을 베푸실 의무가 있다고 말할 때만 불공평이란 말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도 물론 행사하고 있지만 소위 이야기하는 사면, 은전이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사형 언도를 받아 죽게 되어 있어요. 대통령에게는 사면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사면해준다. 그럴 때 그 사람에게 사면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벌을 받아야 마땅한데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대통령 혹은 왕이 그 사람에게 특별한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불공평을 행했다고 말할 수 없고 오히려 죽어가지만 살릴 가치가 있는 한 사형수에 대한 대통력이나 혹은 왕의 극단적인 자비라 봐야 한다. 그런 각도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뭘 잘못했냐? 라고 묻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인류가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해 버린 이 마당에서 상황은 아주 다른 것이다. 인간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향해 왜 어떤 사람은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리셨느냐에 대한 설명을 요청할 권리는 없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구원치 않으셨다 해도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공평하신 것이다.
9장 창조
창조는 매우 중요해요. 왜냐하면 성경 66권 전체의 요절을 뽑으라고 하면, 요한복음 3:16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성경 전체의 요절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요한복음 3장 16절도 창세기 1장 1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는 것은 구원이다. 구원은 타락해서 비참해진 인간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그럼 타락해서 비참해지는 인간이 영원 전부터 원래 있었던 존재가 아니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태어난 존재이다. 창조되었기 때문에 타락할 수 있었고 타락했기에 구속이 필요했고 구속이 있으니까 완성이 가능한 것이다. 이 네 개가 성경 전체가 바라보는 네 개의 큰 틀이다. 창조, 타락, 구속, 완성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세상과의 관계를 보는 커다란 틀이다. 그러면 구속에 관한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보였다고 말하지만 창조가 없었다면 타락도, 구속도 없다. 창조가 타락과 구원의 공통적인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1장 1절의 토대 위에 3장 16절이 놓인 것이다.
1. 창조에 관한 일반적인 고찰
창조란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부분적으로는 먼저 있었던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불충분한 물질로부터 우주와 만물을 산출해 내신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만드시거나 이미 있는 어떤 것들을 사용해서 보다 완전한 것을 만드시는 그 모든 하나님의 행위를 가리켜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창조라고 부른다. 창조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으로 나타나 있다. 그래서 삼위일체 강의를 들으면 나오겠지만, 삼각형으로 성부, 성자, 성령으로 되어 있다고 치면 삼위일체는 항상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부 없이 성자, 성령만 계시거나 성령과 성부 없이 성자만 따로 계시는 것이 없다. 성령이 계신 곳에 성부, 성자도 있고 성부가 계신 곳에 성령과 성자가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세계와 관계를 맺을 때 어느 위가, 위격이 우선적으로 관계를 맺느냐 라고 하는 것은 그 관계가 어떤 성격의 일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자면 창조일 경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모두 창조에 참여하시지만 우선적으로 이 창조는 성부의 일이에요. 그리고 성자와 성령과 함께 성부가 세상을 창조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구속을 볼 때, 성부와 성령이 함께 구속을 이루시지만 우선적으로 이 일에 관여하시는 것은 성자이시다. 또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할 때 이때에는 성부도 성자도 참여하시지만 성령이 우선적으로 이 일에 관여하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과 멀어졌던 사람의 마음속에 믿음을 심어주시고 믿은 사람으로 하여금 성화되어가도록 만들어 주신다. 그래서 이렇게 위격이 한 성부, 성자, 성령 한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하느냐에 따라 주되게 어느 위격이 관여하시는가가 결정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범심론과는 반대로 창조가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임을 주장한다. 범신론이란 예를 들자면 플라톤의 경우에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생각하면서 유출설이라는 것을 이야기 한다. 커다란 항아리가 있는데 물이 가득 부어지면 넘쳐서 흐르겠죠? 마찬가지로 세계는 신의 본성이 꽈악 차서 너무 충만해서 바깥으로 흘러 넘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이 세상으로 보는 것이다. 신이 의도한 것도 아니고 신이 적극적으로 좋아한 것도 아니고 넘치는 신의 끼가 발동을 해서 이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계는 하찮고 열등한 것이다. 육적이고 물질적이고 개별적인 이런 것들을 유치하고 악한 것이고 정신적, 영적, 신적인 것으로 상승할수록 그것은 선하다. 라고 하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운 플라톤주의의 물질계약설이다. 물질은 모두 악하다. 영적인 것, 정신적인 것은 고상한 것이다. 플라토닉 러브라고 하잖아요. 정신적인 사랑 육체와는 상관없는 정신적인 사랑. 이런 것을 고상한 것들로 보는 것이다.
또 우리는 자연신론에 반대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므로 이 세상은 항상 하나님을 의존함으로 존속한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상을 나날이 유지해 나가신다.
범신론은 모든 이 세상의 물질은 임시적인 것이고 이것들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면 그게 곧 신이다. 자연신론은 신은 너무 높고 고상하기 때문에 이런 세계와 관계가 없고 법칙만 만들어 놓고 당신은 철수했다. 너무 멀리 있어서 신은 가까이 하기에는 먼 당신이다. 법칙만 움직이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어떠한 형태의 신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연의 법칙(도덕법칙 포함)만 남겨놓은 세상이라는 것을 자연신론 혹은 이신론이라고 한다.
(1) 창조의 시기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남께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 곧 현 물질세계의 시작을 가르쳐 준다. 이 태초 전에는 끝없는 영원이 존재한다고 본다. 창조의 첫 부분은 엄밀히 무로부터의 창조이며 기존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창조였다. 무에서의 창조란 표현은 성경에서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외경 중에 기록되어 있다. 다음 성구에 분명히 잘 나타나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은 이 세계를 있어라. 하고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어요. 그러면 모든 것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뭐하고 계셨습니까? 그러는데 그것은 성립이 안 됩니다.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물질의 존재와 함께 시간이 함께 도입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이 창조되지 않았던 때, 하나님은 뭐하고 계셨냐는 것 자체가 질문의 모순이다. ‘때’라고 하는 것 자체가 시간이기에 창조와 함께 시간이 들어오는 것이고 그 전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적인 전이라는 것은 없다. 그래서 영원의 창조가 이루어지기 전, 영원은 시간의 앞뒤 순서가 없다. 시간이 도입이 안 되어 있으니까. 하나님은 좀 더 일찍 세상을 창조하실 수 없었고, 좀 더 늦게 세상을 창조하실 수도 없었죠. 늦다, 이르다 하는 것도 시간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창조하시므로 시간이 들어오는 것이다.
(2) 창조의 궁극적 목적
어떤 학자들은 창조의 궁극적 목적을 행복에서 찾으려 한다.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신에게 충족함을 가지시는 분이기 때문에 자신을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피조물의 찬양을 받기 위해 벌려 놓은 하나의 구경거리가 아니라 피조물의 안녕을 촉진하고 피조물들로 하여금 창조주를 찬양하도록 이끌어주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것은 천지창조의 목적 시리즈를 보면,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다. 인간이 죄를 지어서 악하게 되었다. 그 악한 것을 선하게 되돌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악을 징벌하시고 선을 격려하시는 조취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타락해서 망가졌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스스로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비상한 방법으로 개입하셔서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를 위해 죗값을 치르고 죽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다. 결국은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으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러분의 삶이나 사상, 생각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행복하고 복 되구나 왜 그럴까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구나 무엇 때문일까 아 저 사람 한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는 구나.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창조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은 그 안에서 가장 행복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인간의 행복이냐 하나님의 영광이냐가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모순적인 것은 아니다.
(3) 창조교리에 대한 이설
창조교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그릇된 이론을 주장한다.
a. 이원론
물질은 영원한 것인데 이 물질로부터 세상이 우연히 혹은 고도의 힘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과 물질은 동일하게 영원하다고 본다. 무한하고 영원한 것은 하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느 하나가 어느 하나를 의존하고 있으면 완전한 것이 될 수 없고 어느 하나가, 어느 하나와 영원하다면 그 영원한 것은 그 서로를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논리의 모순이다. 그래서 완전하고 영원한 것은 하나밖에 없어야 한다. 거기에서 모든 것들이 의존되는 것이다. 두 개 다 출처를 갖지 말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출처가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지만 물질이 출처가 없다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어요 인정할 수 있겠어요?
b. 유출설
다른 학자들은 하나님과 세상이 본질상 하나라고 주장하며 세상은 신이 존재할 때 필연적으로 생겼다고 주장한다.
c. 진화론
다른 학자들은 진화론을 주장하는데 진화란 우주의 기원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현재 진화론에 대한 비판서가 많이 나왔는데, 저는 중학교 때 진화론 교과서를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었다. 포유동물의 발생초기부터 변화되는 주기표 본 적있죠? 처음에는 똑같았는데 점점 토끼, 사람, 고양이로 변하는데 거짓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깊이 빠져 들어가서 믿게 된다. 성경을 놓고 볼 때 종 안에서의 진화는 인정을 해요. 예를 들어 북극에 곰이 있는데 100년 동안 몸무게가 45kg정도 줄었다고 합니다. 온난화 되고 활동의 시기가 짧아지고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지니까 스스로 몸을 줄이는 것이다. 이래서 생겨나게 된 것이 맘모스와 같은 코끼리이다. 아주 작은 코끼리도 발견되잖아요. 이런 것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개와 고양이 사이를 거치기 위해 수만 년을 거치는 동안 개가 고양이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라면 고정 된 시기보다 종과 종 사이를 이동하는 데에 거친 변종의 시기가 무척 길 거 아니에요 수많은 화석이나 증거들이 나와야 하잖아요. 우리 눈앞에도 종과 종 사이를 오가는 피조물들이 보여야 하잖아요. 발견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하나의 가설이다. 그런 점에서 합당한 세계에 대한 설명이 못 된다.
2. 영적세계의 창조
하나님께서는 두 세계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는 지상세계, 또 하나의 세계는 천상세계이다. 지상세계에는 물질세계, 천상세계에는 영적세계이다. 두 세계를 통해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과 지혜로 창조하시고 당신을 보듯이 거울처럼 그 세계를 바라보면서 기뻐하시는 것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커다란 뜻이다.
(1) 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증명
영적 세계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천산들의 존재와 인격성을 인정해야 하는데, 천사들은 우수한 영적 존재이며 살과 뼈도 없으므로 볼 수 없는 존재이다. 천사 중에 어떤 천사는 선하고 거룩하며 선택받은 존재인데 나머지 천사는 그들 본래의 위치에서 타락함으로 악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2) 천사의 부류
a. 그룹
우리가 그룹이라고 하니까 한 덩어리로 돌아다니는 천사, 떼를 지어 다니는 천사로 생각하지만 ‘케룹’이라고 한다. ‘카라브라’는 동사에서 이 단어가 오는데 ‘가까이 다가가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고르반’이라는 단어이다.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다. 케룹이 복수가 되면 케루빔이라 한다. 우리가 한국어로 번역할 때 ‘케룹’, 혹은 ‘체룹(영어)’으로 부르는데 그룹으로 부드러운 발음으로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존엄, 영광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거룩성을 호위한다.
b. 스랍
천사들 중에는 스랍들이라 불리는 천사가 있는데 스랍들은 하늘의 보좌를 옹위하여 시중들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화해의 목적을 수행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올바로 다가오도록 준비시킨다.
c. 가브리엘과 미가엘
가브리엘은 신적 계시를 인간에게 전달하며 그 계시를 해석해준다. 미가엘은 천사장이라고 불리우는데 그는 하나님 백성의 대적을 대항하여 여호와의 전투를 대행하는 용감한 전사다. 성경에는 이 천사들ㅇ 외에도 정사와 권세, 보좌, 주관자라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천사들 사이에도 등급과 위엄의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3.) 천사들의 하는 일(업무, 봉사)
하나님을 찬양하고 계속 죄가 들어온 이후로 구원받은 자를 위해 봉사하며 회개를 기뻐하며 신자들을 돌보며 소자를 보호하며 교회 안에 계시며 신자들을 아브라함의 품으로 인도한다. 또 천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전달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축복을 전달하며, 하나님의 대적들에게 심판을 집행한다. 지금도 특별계시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그랬다는 것이다.
(4) 악한 천사들
악한천사들도 본래는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본래의 위치를 유지하지 못했다. 악한 천사들의 특별한 죄는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들은 아마도 하나님을 대항했으며 신적 권위를 열망했을 것이다. 사단은 천사들 중 높은 위치를 가진 자로서 타락한 천사들 중 공인된 우두머리가 되었다. 사탄과 그 무리들은 초인간적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파괴하고자 하며 선택받은 자까지라도 우매하게 하여 미혹하려 하고 간악한 방법으로 죄인들에게 범죄 하도록 미혹한다
3. 물질세계의 창조
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기록이 나타나는데 이제 이 창조의 사역이 창조의 기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두 가지 설이 있다. 히브리말로 ‘날’이라는 단어 ‘욤’히브리 단어를 쓰는데 24시간 날짜를 말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기간을 뜻하기도 한다. 이 해석은 어떤 사람들은 24시간이라고 정확히 본다. 같은 개혁주의 안에서도 24시간이 아니라 장구한 지질학적 연대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면 이제 무슨 문제가 나오냐 하면 24시간이라고 놓고 보면 성경에 나오는 기록들을 다 합치면 연대가 주전 4004년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전에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질학적 연대로 과학에 의해 보면 지구가 태어난 것은 45억 년쯤 되었다고 보고 태양계가 생성된 것은 70억년 정도 우주가 형성된 것은 150억 년 전쯤으로 보잖아요. 과학이 정확하게 맞출 수 없지만 갭이 너무 크다. 젊은 지구 창조설이라고 해서 세계가 창조된 것이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많은 난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에 날로 보게 되면 과학적인 발견하고 거리가 멀고 대화가 안 되지만 시대로 보게 되면 과학하고 이야기가 잘 되지만 문제는 안식일의 개념이 날을 기념으로 한 것이지 시대로 기념으로 한 것일까 라는 의문과 첫째 날과 둘째 날이라고 한 것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라고 했는데 12시간이 되는데 여기서 첫째 날이라고 하는 것도 정확하게 24시간이라 할 수 없다.
이렇게 대해서는 같은 개혁주의 안에서도 24시간으로 보는 사람과 시대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 둘 중에 하나를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배척하지 말고 그런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우리가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대설 쪽 해설이 훨씬 더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더 깊은 과학적 논의로 들어가게 되면 복잡한 논쟁들이 펼쳐진다. 우리가 과학과 성경 사이의 어떤 관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2) 6일간의 사역
처음 3일과 다음 3일의 창조에는 평행되는 유사성이 있다. 첫째 날에는 빛의 창조 넷째 날은 빛을 가진 물체의 창조이다. 궁창이란 시궁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말로 ‘라키아’라는 단어이다. ‘라카’가 두드리다 라는 뜻인 데 평평하게 펼쳐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결국 하늘을 이야기 한다. 지구가 있고 파란 하늘이 있다고 본 것이다. 쟁반처럼 생긴 땅에 별이 매달려 있다고 본 것이다. 궁창이라고 봤는데 결국 하나의 공간이다. 그래서 하늘이다. 궁창이 있고 궁창 위에 물과 아래 물로 나뉘는데 위에 물은 대기수이다. 수분을 머금은. 궁창 아래의 물은 모여서 물이 된 것이다. 위에 대기수가 내려오면 지상수가 증발을 많이 하고 창조 때부터 물의 양이 일정량을 계속 유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균형을 이루냐, 이루지 못하냐에 따라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놓고 공주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가 창조되고 셋째 날은 물과 마른땅이 분리가 되는데 인간과 짐승이 거할 땅이 준비가 되는데 6일 날은 땅의 짐승과 기는 것,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날짜설 같은 것을 보면 하루, 하루 안에 밤에는 해당 안 될 테니까 낮 12시간 동안 하나님이 이 세상에 모든 땅의 짐승과 육축과 기는 것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다. 아담이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준다. 하나님이 보시니까 혼자 있는 것이 안 되어 보이니까 하와를 창조하셔서 둘을 한 가정을 만들게 하신다. 이 모든 것이 12시간 안에 일어나야 한다.
(3)진화론
진화론자들은 만물의 기원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반대하여 만물 기원의 진화론적 입장을 주장한다. 모든 종류의 식물과 동물은 물론 지성, 도덕, 종교와 같은 생활의 여러 형태마저도 자연력의 산물인 완전한 자연적 과정에 의해 발전되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