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참척, 그 쓰라림에 울 때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눅 7:11-15)
녹취자: 김경애
소설가 박완서 씨에게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예비의사였는데 죽었습니다. 그때 그는 약 두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술로 세월을 보냈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밥을 먹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식을 앞세우고 그러고도 살겠다고 밥을 먹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토할 것 같이 싫어서 죽을 것 같았다.’ 라고 말입니다. 20세기를 흔들어놓았던 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이론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어린아이의 죽음 앞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이 새롭다. 생각만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아이의 죽음으로 내 불쌍한 아내는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다.’ 한 시대를 호령하며 나라를 건졌던 이순신 장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을 앞세우고 난 후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하늘이 이렇게 비정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아있다니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부모의 마음속에 흐르는 자식을 향한 정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옛날에 자식이 부모를 남겨두고 먼저 죽는 것은 커다란 불효였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식이 죽은 장례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식을 여윈 것을 가리켜서 ‘참척’(慘慽)이라고 불렀는데 슬프다는 ‘참’과 고통스럽다는 ‘척’이 합쳐진 말입니다. 즉, ‘참척’은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자신이 앞세워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슬픔’을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상명’(喪明)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옛날 중국고사의 잘 아는 사람이 자식을 떠나보낸 후 눈이 멀었다고 해서 나온 말입니다. 자식이 죽어서 먼저 떠나보내면 부모는 절망 속에서 빛을 잃어버린 캄캄한 어두움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은 나인이라는 작은 성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과부인 한 여자에게 외아들이 있었는데 청년이 되기까지 자라다가 죽었습니다. 이 여자가 언제 남편과 이별을 하고 혼자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아주 어린 아이일 때 남편이 이 여자를 버렸거나 혹은 사별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과부에게 외아들이 있었으니 그 외아들은 이 과부인 여자의 모든 희망이었고 삶의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런 청대 같은 아들이 어느 한 순간 죽어버렸습니다. 그 어머니는 엄청난 슬픔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아이의 죽음을 앞세우고 그 여인이 관을 뒤따르고 아마 친척과 친구들이 그 뒤를 잇고 조문객들이 따라오며 한 행렬이 성에서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또 한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앞에 계시고 제자들이 뒤따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왔습니다. 자, 이쪽 줄에는 죽은 시체가 앞서고 따라오는 죽음의 행렬이고 저쪽 줄은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가 앞서고 전도해서 사람을 살리는 행렬이 나아오고 있었습니다. 두 행렬이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이 여자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고 아마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 4살 5살 된 어린아이가 소아암에 걸렸습니다. 제가 심방을 갔는데 정말 너무 너무 예쁜데 의사가 모든 희망을 포기했습니다. 너무 가여웠습니다. 진심으로 ‘내가 저 아이를 대신해서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목사의 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 엄마, 아빠의 마음은 어땠겠습니까? 아빠가 이 딸의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이제 조금 있으면 하늘나라에 갈 거야! 엄마 아빠도 금방 따라갈 테니까 거기서 친구들과 잘 놀고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응’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인형을 품에 꼭 안았습니다. 그리고 불과 2, 3일후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도 사람은 어차피 모두 죽습니다. 그 아이는 조금 일찍 죽었지만 엄마 아빠도 그때 그 부부들이 30대 후반이었으니까 넉넉잡고 50년만 살면 둘 다 죽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날에 부활한 몸으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천국에서 만나든지 아니면 부활한 몸으로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죽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와 헤어질 때 그렇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정말 목사로서 ‘이 아이 대신 내가 여기에 누워서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가여웠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영적인 눈으로 보면 우리가 잠시 헤어져도 다시 만날 인연이라면 슬프지만 사실은 그 슬픔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의 자녀들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리고 죽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남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신앙의 고백대로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지옥에 갈 것입니다. 지옥에서는 두 번의 기회가 없습니다. 한번입니다. 한번 가면 그것으로써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모든 성도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더욱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들어야합니다. 왜? 만약에 예수 안 믿고 구원받지 못한 여러분들의 자녀가 지금 육체로 죽었다면 여러분들은 아마 여기에 없을 것입니다. 아이가 죽은 현장에 가서 미친 듯이 통곡하며 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죽어있는 영혼을-예수를 안 믿은 영혼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의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고 죽어있는 상태에 대해서 우리에게는 참척의 슬픔이 있습니까?
(예화) 어느 한 사업가가 자수성가를 해서 연매출 400억의 기업을 키웠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TV에 우수기업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은 바닥부터 자수성가한 사람이라서 대단합니다. 얼마나 아끼는지 그 큰 회사의 사장이 공용주차장에만 차를 대고 그것도 6시 넘어서 주차 계산하는 사람이 퇴근할 때를 기다렸다가 차를 대서 주차비를 아낄 정도였답니다. 이 사람이 친구네가 상을 당해서 강원도의 태백 쪽으로 문상을 간 것입니다. 문상을 갔다가 거기 강원 랜드가 있다니까 한번 가서 놀이 삼아서 빠징코를 해본 것입니다. 그날 저녁에 잠깐 했는데 700만원을 딴것입니다. 이 사람이 생각하기에 나는 아마 빠징코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나보다 하며 그다음에 하루 마음을 먹고 일부러 간 것입니다. 하루 종일 기계를 돌렸는데 2,000만원을 잃었습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무엇이 있는가하면 지고는 못 배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좋게 이야기하면 투지이지만 끈기지만 그런 것이 거기에 적용될 것은 아닙니다. 2,000만원을 털어먹고 ‘아이 자식들 이런 식으로 돈을 빼먹는구나!’ 하면서 손을 털고 ‘잘 먹고 잘살아라.’ 그러고 나오면 다행인데 ‘다음에 와서 꼭 복수를 하마.’ 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복수가 되겠습니까? 나는 그것이 어떤 비밀인지는 몰라도 처음 가서 대부분 돈을 땄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두 번 세 번 가서 계속 땄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간 것입니다. 자꾸 잃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거의 다 날려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밤새워서 빠징코을 돌리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여보, 큰일 났어’ 울면서 전화가 온 것입니다. ‘뭔데?’ ‘우리 딸 미국으로 유학 간 우리 딸이 교통사고로 지금 죽었대.’ ‘나 사업상 매우 바빠 내가 못가니까 당신이 갔다 와.’ 그 사람이 아빠가 맞습니까? 딸을 전혀 사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딸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거기에 사로잡히니까 그 사랑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400억을 잃었답니다. 그래서 그 재산의 전부를 잃어버려서 이 사람이 소송을 냈습니다. 그래서 40억 정도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글을 쓴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가 이해가 안 갔답니다. 어떻게 그렇게 미쳐서 자식이 죽었는데도 모를 정도로 그렇게 빠졌는지 자기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고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식이 아닌 다른 것을 너무 사랑하니까 자식이 죽었는데도 흘릴 눈물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서울은 소위 이야기하는 교육푸어입니다. 돈을 벌어서 자식들 교육을 시키다보니까 집도 못 사고 가난하게 사는 것입니다. 부부가 벌어서 한사람 버는 돈은 교육비로 다 충당을 해도 이 아이의 교육비를 다 댈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미친 듯이 교육을 시키고 심지어 마트에 가서 알바를 해서 애들 학원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합니까? 그래야지만 그래도 번듯한 직장에 취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취직을 하려고합니까? 먹고 살아야하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부모가 그렇게 희생하고 자식을 위해서 애를 써도 자식들이 부모의 그런 마음을 아는 아이들이 몇 안 됩니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해서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할지라도 요즘은 취업이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10명의 청년을 만나면 6명은 비정규직입니다. 그러니까 10명의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아이들은 열 명에 한, 두 명 될까 말까 입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뜻대로 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재산도 남겨주고 교육도 최고로 시켜주어야 하고 등등 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그 아이의 일생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믿는 신자로서 자식이 태어나면 두 가지만 해주면 부모로서는 거의 다 한 것입니다. 첫째는 교육을 잘 시켜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자식으로 만들면 부모로서 일을 다 한 것이고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가 되게 해주면 부모의 역할은 다 한 것입니다. 살면서 수많은 일을 만날 것입니다. 때로는 시련을 만나고 때로는 좋은 일도 만날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나쁜 일을 만나면 나쁜 일 때문에 괴롭고 심지어는 가정이 깨집니다. 좋은 일을 만납니다. 교만해집니다. 그리고 탈선합니다. 그렇게 해서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니까 결국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냥 그런 돈이나 학벌이나 그런 것만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그런 것들이 우리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본질적인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자녀에게도 그것을 적용해서 자녀를 어떻게 해야지만 참사람답게 살게 하고 인생을 살면서 불행도 만나고 행운도 만날 텐데 그런 일과는 상관없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신앙이 아니면 답이 안 나옵니다.
그러면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손을 들어서 표시해볼 필요는 없지만 여러분들에게도 자녀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습니까?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까? 내가 죽고 부모의 울타리가 사라져도 이 아이는 정말 하나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 아이이기 때문에 내가 이 아이는 믿을 수 없어도 이 아이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가 있을 정도로 아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물어야할 질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유족하게 부모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고 평안한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야곱의 고백대로 심히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살아졌습니다. 정말 극한 가난의 세월, 환란과 시련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세월도 보냈지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찬양)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부모의 도움으로 아무에게도 도움 없이 그렇게 가난하게 힘겹게 폭풍과 시련의 시절을 지나며 살았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니까. 주님을 붙들고 그렇게 살아가니까 살아졌습니다. 지나고 나니까 부모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고 평안한 인생길을 살아온 사람 못지않게 좋은 일을 보면서 살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돈? 돈을 모아서 물려준다고요? 미국에도 로또가 있는데 그중에 유명한 것이 슈퍼볼입니다. 어느 해 미국에서 슈퍼볼에 당첨된 사람들의 인생이 그 후에 어떻게 풀렸는지를 조사했습니다. 놀랍습니다. 모두 불행해졌습니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불행해졌습니다. 그 사람들 중의 한 케이스인데 슈퍼볼의 당첨이 계속 없어서 당첨 액이 계속 쌓였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2,600억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이 당첨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혼자 한 것이 아니라 공장 다니는 직원 10명이 계를 만들어서 매달 50불씩 내서 공동으로 복권으로 사고 맞으면 10명이 똑같이 나누어 갖기로 약조를 하고 슈퍼볼티켓을 10년간 샀답니다. 어느 날 1등이 당첨이 되어서 260억씩 나누어가졌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했습니다. 그랬더니 10명이 다 똑같았는데 첫 번째가 사표를 내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새 차를 샀습니다. 세 번째는 이혼을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젊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집을 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똑같이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마약중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파산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로또를 맞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똑같습니다. 한 사람 빼놓고 거의 똑같이 인생이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5,000원, 10,000원 맞은 사람들은 불행해지지 않았는데 큰 것을 맞는 사람들은 다 불행해졌습니다.
(예화)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한 집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조상대대로 밭을 조상에게 물려받아서 가난하게 평생을 살았습니다. 지게 통에 거름을 실어 나르고 호박을 심고 야채도 심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도시발표가 났습니다. 아버지가 나는 못 간다고 버틴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난리가 난 것입니다. 아버지 정신이 나갔느냐고 지금 개발하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오는데 말입니다. 농부가 땅을 떠나서 어디로 가느냐고 그러면 여기서 나오는 돈으로 나는 다른 곳에 가서 농토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자식들이 동의를 했겠습니까? 했을 리가 없습니다. 180억의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개같이 달려들어서 뜯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분배가 공정했을 리가 없습니다. 형제들끼리 줄 소송을 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아버지는 충격을 받고 쓰러져서 뇌졸중으로 죽었습니다. 엄마는 그것을 보다가 너무 고통을 받다가 중풍에 걸려서 사지를 못 쓰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식들은 계속해서 법정싸움을 벌인 것입니다. 돈을 많이 받은 자식은 당연한 수순으로 이혼하고 한 가정이 완전히 풍비박산이 되었습니다.
돈? 돈이 여러분들의 자녀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옛말이 있습니다. 삼대를 가는 부자가 없다고 했는데 없습니다. 그리고 그 돈 때문에 행복해지는 사람보다 불행해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결국 무엇입니까? 어차피 자식들은 여러분들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어야겠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것은 그것은 그 아이들의 인생의 보험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살아보지 않았습니까? 정말 눈도 뜰 수 없는 시련, 폭풍 같은 고난, 가난, 별의별 인생의 시련과 어려움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이깁니다. 왜? 여러분들이 다 증인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있는데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니까 그것을 이깁니다. 더 믿음이 좋아집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 같은 인간을 이렇게 사랑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믿음을 갖지 아니하면 그러면 그는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말입니다. 나쁜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이 결국은 좋은 일이 되고, 좋은 일이 일어나도 좋은 일이 됩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면 제가 묻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입니까? 예수를 믿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아직 잘 모르니까 애가 좀 크면 예수를 믿겠지 하지만 예수를 믿습니까? 머리가 크고 나니까 더 안 믿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교회를 안 간다고 하면 엄마가 인상을 쓰면 따라옵니다. 조금 크면 ‘너 교회 안가면 이번 주 용돈 없다.’ 그러면 따라옵니다. 그런데 애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더럽고 치사해서 알바를 한다고 하면서 안 따라갑니다. 얘가 대학을 들어가고 직장을 다닐 때는 부모가 그 아이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러다가 걔네들을 내버려두면 어느 날 결혼하겠다고 데려왔는데 불교신자를 데려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데 어떠냐고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살아갑니다. 자녀에 대한 책임은 1차적으로 부모에게 있습니다. 자녀의 신앙교육의 1차적인 책임은 부모가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영적으로 죽은 자식에 대해서 부모인 여러분들이 정말 참척의 마음이 있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예수를 믿고 있지 않다면 정말 영혼이 죽어있는 자식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입니까? 그리고 믿었다고 하더라도 정말 주님을 사랑하며 신앙생활하지 않는 자녀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이 언제입니까?
오늘 예수님이 그렇게 슬퍼하는 과부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울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보니까 이 여자는 통곡하면서 자기 아들의 관 뒤를 따라온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여기에 보면 ‘예수님 우리아들 좀 살려주세요.’ 이 여자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더라. 그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냥 자식이 죽은 것을 보며 처절한 마음으로 참척의 슬픔을 가슴에 안고 울었던 것입니다. 그러더니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희랍어로 말하자면 창자가 흔들리기까지 감동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이 창자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으니’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그 여자가 외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그렇게 참척의 슬픔에 우는 여자를 보면서 예수님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여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 긍휼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더니 예수님이 ‘울지 마라.’ 얼마나 가엾었으면 이 여자에게 ‘울지 마라.’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내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러자 죽었던 시체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앉아서 말도 하고 움직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청년을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이 엄마의 기쁨이 어땠겠습니까? 이제 완전히 죽어 장례까지 끝난 아들이 다시 살아나서 자신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 그 기쁨이 어땠겠습니까? 보십시오. 정말 예수 안 믿는 아이를 부모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렸을 때는 잔소리도 하고 때로는 회초리라도 때리지만 이 큰 아이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이 과부는 예수님이 불쌍히 여길 정도로 울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 여자가 슬피 우는 참척의 아픔을 기억하시고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기도는 그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힘입니다. 하나님도 여러분들의 자녀가 예수 믿고 변화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간절히 기도하셔야합니다. 눈물의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떠한 경우라도 살려주십니다.
(예화) 제가 신학대학원에서 강의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한 25년 전입니다. 학생 중에 아저씨 한분이 있었는데 강의 중에 그렇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몇 번 찾아왔습니다. ‘교수님 점심을 한번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는 밥 먹기가 싫었습니다. 칼자국이 이렇게 나서 너무 험상궂었습니다. 매번 그래서 거절할 수 없어서 일식집에 가서 초밥을 시켜줘서 초밥을 먹고 있는데 ‘목사님은 제가 누군지 모르시죠?’ ‘모르죠.’ ‘제가 지방의 유명한 폭력조직의 보스였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한때 조직폭력배로 날렸던 김태촌이 자기 밑에 있던 아이였답니다. 그리고 반란이 일어나서 한판 겨루다가 자기가 거기서 지고 서울로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가까웠던 때였답니다. 그때부터 나는 빠징코가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폭들의 도움이 없이는 빠징코를 할 수 없답니다. 연말이 다가오니까 아이들 생활비도 주어야하니까 한번 쭉 돌면서 수금을 한답니다. 그날도 부하들과 수금을 하고 거나하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골목을 지나가는데 불현듯 교회에 가보고 싶더랍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문을 여니까 열리더랍니다. 문을 열고 그냥 자기는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들었던 것이 생각나서 그냥 물을 열고 들어갔는데 예배당에 술 취한 채로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들어가자마자 고꾸라졌답니다. 그리고는 코에서, 입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그 다음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누가 설교하는 사람도 없는데 갑자기 봇물 터지듯이 자신의 죄가 쏟아져 나오면서 교회의 바닥을 기면서 회개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 세계에서 깨끗이 끊고 새사람이 되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어머니가 그렇게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너는 언젠가 예수를 믿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여러분 역사상에 한 시대를 움직였던 위대한 신앙의 인물 뒤에 공통적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제가 그분을 직접 만났는데 김성은 장군이라고 육군 참모총장을 했고 국방부장관도 지냈습니다. 벌써 돌아가셨습니다. 박정희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군에 입대해서 장교를 지냈는데 6.25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이기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관 29살에 별을 달았습니다. 내가 이야기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29살에 별을 달았으니 생각을 해보십시오. 별을 달고 이 모든 것은 우리 어머니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별을 달고 지프차를 타고 부관들을 거느리고 잠깐 어머니에게 들른 것입니다. 골목에 들어와서 빵빵하고 내려서 어머니가 집에서 뛰어나오십니다. ‘어머니 제가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어머니가 ‘우리 아들 장하다. 네 나이에 장군이 웬 말이냐?’ 그럴 줄 알았는데 이 어머니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시더랍니다. ‘얘야, 나는 네가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치마를 걷어 올려서 당신의 다리를 보여주는데 무릎 전체가 낙타 등처럼 변했더랍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뒤로 돌아서서 문을 닫아버렸답니다. 결국은 그분이 목사님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일평생 장로님으로 지냈습니다. 거기서 굉장히 커다란 충격을 받으면서 ‘우리 어머니는 이 세상의 명예를 기뻐하는 분이 아니구나.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우리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까?’ 그리고 6.25 모든 과정을 신앙으로 이겨왔다는 간증을 하면서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하셔야합니다. 특히 여러분들의 자녀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며 그 자녀들이 주님을 만나고 새사람이 되기를 빌어야합니다.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빌어야합니다. 제가 아는 선교사님 한분이 긴 세월 선교사역을 마치고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녀를 여럿 두셨는데 그 자녀들이 모두 훌륭하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이 물어보았습니다. 사모님 어떻게 자녀들을 기르셨기에 저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그랬더니 그 선교사인 사모님이 아주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아니야, 나는 자식들을 생각할 때마다 늘 미안해! 해준 것이 없어. 선교지도 수시로 옮기는 바람에 아이들이 교육도 바로 받지 못했어요.’ (그것도 미국 같은 곳에 있어야지만 학교도 좋은 곳에 가지 저기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이나 섬 같은 곳이나 동남아에 다니니 아이들이 교육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나는 두 가지는 아니고 한 가지는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서 가르쳤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애들아 너희들이 어떤 사람이 되든지 엄마는 괜찮다. 그런데 한 가지만은 잊지 말아. 너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라.’
(찬양)
잠시 머물 이 세상 헛된 것들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도 귀하다.
부모인 여러분이 눈물을 흘리며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눈물을 아이들이 인생을 살면서 흘리게 됩니다. 아이들을 자기 자식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부모인데 재산을 팔아서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다리를 잘라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심장을 파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울어달라는 것인데 그것을 못하겠습니까? 주님이 그 아이는 신앙이 없지만, 우리의 자식은 믿음이 없어도 그 아이의 영혼을 보며 슬피 우는 우리의 마음을 보셔서 주님이 ‘울지 마라.’ 그리고 ‘청년아 일어나라.’ 살려주시는 우리 주님을 믿고 자녀의 구원을 위해 눈물의 기도로 간구하는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