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헌신 필요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제물을 허비하고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고후 12:15)
녹취자 : 김세나
어제 저녁에 우리들이 세움받은 지도자들의 일반적 자격 기준에 대해서 우리들이 살펴 보았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신앙, 두 번째는 신실함,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사심이 없는 깨끗함이었습니다. 구체적 강론으로 들어가서 리더에게 있어서 리더십을 뛰어나게 만드는 요인이 한 가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가 없으면 다른 모든 것이 갖추어져도 절대로 리더십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오늘 말씀 드리려 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희생입니다. 희생. 희생입니다. 사도바울이 오늘 이야기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희생이 없이는 결코 리더로서 설 수 없습니다. 보스와 리더가 다른 점은 보스는 갈 곳을 명령하고 사람들을 그리로 내 모는 기능을 하지만, 리더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설복해서 그 길을 따라오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리더입니다. 그러니까 보스와는 다릅니다. 동기 자체가 보스의 말을 듣는 동기는 두려움과 이익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리더를 따르는 것은 그 리더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와 리더와 함께 성취하고자 하는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보스와 리더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그래서 보스와 리더는 결코 같지 않고 두 사람은 현저하게 구별됩니다. 또 보스는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자신이 이익을 보려고 하지만 리더의 목표는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모든 성과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리더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끼친 본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보스는 인격이 조잡해도 사람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만 있으면 보스가 될 수 있는데 리더는 인격 없이는 절대로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순간 까지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소용이 될 때에는 그 리더를 리더처럼 인정이 되지만 그것이 어긋나게 될 때는 차갑게 등을 돌리는 그런 것이 됩니다. 그래서 보스 밑에는 결코 진실한 팔로워들이 있을 수 없고 그리고 진실하게 그 사람을 따르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을 수 없고 리더 밑에는, 진실한 리더 밑에는 똘만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참된 리더와 보스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은 충분히 보스가 되시는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셨지만, 예수님 자신은 리더가 되셨습니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살게 하시고 싶으셨던 당신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을 살게 하고 싶으셨던 삶을 예수님이 몸소 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사는 것인지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그게 아주 훌륭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마가복음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고 자기 몸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리더가 이렇게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사람들이 아니고 또한 그 리더도 모두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각자 그릇의 크기가 다 다릅니다. 따르는 사람도 마찬 가지이고 리더도 마찬 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따라와도 리더입니다. 눈길을 걸어가는데 한 사람이 앞서면 그 사람이 리더입니다. 그리고 수 만명이 따르는 사람도 리더입니다. 그런데 자기희생이 없는 리더에게는 항상 자기와 똑같은 팔로워 들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교역자들이 참 헌신적입니다. 건강을 안 돌볼 정도로 그렇습니다. 누구 한 사람도 게으르거나 요령을 피우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부 목사 때문에 너무 힘이 드니까, 왜냐하면 자꾸 열심히 안 하고 요령을 피우니까 뭐라 그랬냐 하면 마음속으로 그랬답니다. 하나님, 그냥 저렇게 일을 안 하고 저렇게 태만하게 사는데 다른 것 다 그만두시고 저 밑에 가서 목회를 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기와 똑같은 사람들과 만나서 일하게 도와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희생이 없는 팔로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리더가 되면 자기가 팔로워였을 때의 모습과 똑같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라옵니다.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하면, 사람이 가서 전도를 해 오는데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전도해 옵니다. 그러니까 주일이나 간신히 지키는 사람이 어떻게 전도해 오느냐 하면 똑같이 전기 감전된 것처럼 똑같이 그 사람 수준에서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확실하고 딱 부러진 사람이 전도하면 그 사람들도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뭐냐 하면 희생정신입니다. 그래서 어떤 정신을 가져야 하느냐 하면 자자란 부자들은 돈을 벌면서 일을 성취하여 사업을 완수하는 정신적인 즐거움보다는 바보 같이 조금씩 돈을 쓰는 즐거움을 가진 것입니다. 거기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은 절대로 큰 사업을 못 합니다.
(예화) 우리 교회에 장철수 집사라고 있습니다. 큰 회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 옷 입고 다니는 게, 서울 공대 나오고 연대종합상사에 있다가 무역하고 하는데, 회사가 몇 개인지 모릅니다. 입고 있는 옷이 전부 다 합쳐서 10만원이 안 된답니다. 정말 멋도 낼 줄 모르고 그렇게 삽니다. 그리고 관심이 무엇이냐 하면 회사가 커지고 하는 것 보다도, 관심이 뭐냐 하면 지위가 높아지고 그런게 아니고, 신문에도 자주 나옵니다. 그러면 그게 무엇이냐 하면 사업입니다. 사업의 성취입니다. 공장도 크고 2년 만에 똑같은 공장을 또 짓고, 대단하네, 그랬습니다. 목사님, 그 까짓 공장만 자꾸 지어서 뭐 합니까. 돈을 벌어야지. 내가 보기에는 돈을 벌어도 쓸 줄 모르는데.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사업을 합니다. 그런데 졸부 기질이 있는 사람들은 사업을 조금 하고, 일의 성취를 통해 맛보는 것 보다는 거기에서 벌리는 돈을 야금야금 쓰면서 거기에서 맛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파산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리더는 항상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면 자기에게 부여된 일이 무엇이고, 그리고 팔로워들을 데리고 성취해야 할 일에 대한 무한한 가치에 마음이 불타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것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리더가 될 수도 없고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면 말하자면 목자가 되면 선한 목자가 되지 못하고 일을 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리더가 되면 안 됩니다. 스스로 자기 그릇을 알아야 합니다.
일단 그러한 가치를 알고 나면 그 다음에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하느냐 하면 희생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희생 정신을 가져야 하느냐 하면 무제한의 희생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잃어버리는 것이냐.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무제한의 희생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데 어제 말씀 드렸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이 동기가 되면 그렇게 무제한의 희생하는 것이 리더로서 이를 악물고 고생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세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신기한 것이 뭐냐 하면 내가 나와 함께 일한 팔로워들은 리더가 이만큼 희생한 것은 이해를 잘 못하고 자기의 이익이 요만큼 침해 된 것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굉장히 예민한 것입니다. 그래서 희생을 하는데 있어서 이 희생이 누군가에 의해서 금방 파악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내 희생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 희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진정한 리더는 희생을 할 때에 내가 희생 중이라는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들이 여러분들을 위해서 많은 희생을 합니다. 특별히 엊그제도 심방을 갔는데 나면서부터 반신불수가 된 아이를 데리고 학교를 간다. 그 다음에 치료를 받는다.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부모들은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진정으로 희생이 이루어집니다. 둘이 다투고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자기는 희생했다고 이야기 하는데 나는 한번도 파악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자기 희생한 것을 낱낱이 이야기를 하고 나열을 하는데 주저리 주저리 한이 맺혔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희생했다라고 하는 것이 아직까지도 가슴에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희생 그 자체의 동기가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다, 이해할 것이다, 즉각적으로 내가 한 희생이 사람들에게 파악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낙심하게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한 원리가 예수님에게서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희생을 길을 걸어가신 이유는 우리에게 본을 남기시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은 1차적인 목표라기 보다는 부수적인 성과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떻게 그러한 희생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는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걸어갔습니다. 그래서 상주시는 이심을 믿고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이 길을 기뻐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희생이 필요합니다. 전폭적인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때에 거기에서 강한 리더의 리더십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들이 생겨납니다. 대게 두 가지 면에서 나타나는데 그게 뭐냐 하면 희생하는 리더를 보면서 첫 번째 드는 생각은 우리가 함께 추구하고자 하는 그 일의 목표가 갖는 가치를 희생하는 리더의 모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이솝우화에 보면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배가 고파서 포도를 따 먹으려 하는데 아무리 깡총거리고 뛰어도 코 끝에서 달랑달랑 닿다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죽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뭐라 그러냐 하면 이 까짓 신포도를 먹어서 뭐해, 그러면서 갑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에 대해서 우리들이 계속 도전을 하다가 힘겨워지게 되면 그 일의 가치가 점점점점 우리 속에 불타는 것이 아니라 희석이 되는 것입니다. 불타면 계속 도전을 세게 합니다. 그런데 그게 실질적으로 도전이 안 되면 그것이 가치가 점점 떨어집니다. 영적인 것도 똑같습니다. 하나님 만나려고 계속 하나님 앞에 나아갔는데 계속 하나님 안 만나진다.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못만나다니, 그러면서 열열해 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이라는게 다 그렇지, 꼭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야 되나. 남들이 그러는데 너무 그렇게 집착하면 신비주의라 하는데 그러면서 뒤로 물러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모세도 맨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소명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반항했지만, 나중에는 얼마나 중차대하게 받아들입니까. 내 생명을 거둬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한 것입니다. 리더도 그러니 팔로워들은 더 많이 그럴 위험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 때에 그 일에 대한 가치를 각인시키는 것이 뭐냐 하면 리더의 무한한 희생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그 것이 정말 가치있고 필요한 일이라는 인상을 확연하게 부여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뭐냐 하면 비록 리더와 함께 크리스챤 리더를 이야기 합니다. 같이 추구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하지만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 하면 리더로서 그 사람에 대한 신뢰나 인격에 대하여 아무 상관이 없이 내가 똑같이 함께 일해 나갈 수 있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은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사실 실제에서는 안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비록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리더가 자꾸 자기의 기대를 배반하고 실망시키고 그러면 아무리 신앙이 뛰어나도 그 가치를 공유하고 걸어나가는 데 방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희생하는 리더를 보면서 뭘 깨닫느냐 하면, 그 희생하는 리더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인격적으로 더욱 더 깊이 결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인격적인 결속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하나님의 일과 세상일의 차이입니다. 로마서 16장 마지막 장에 보면 지루할 정도로 사람이름이 별의별 사람 이름이 다 나옵니다. 거기에서 뭘 보는가 하면 위대한 리더 바울 뿐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과 관계를 갖고 있었던 인간 바울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문안하면서 그들 하나하나를 다 물어보면서 챙기는 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게 바로 말하자면 리더의 인격과 얼마나 결탁되어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리더는 아주 희생적이어야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를 읽으면서 사람들이 막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칭찬하는 것처럼 감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슴에 깊이 와 닿았던 부분은 뭐냐하면 그 남극탐험을 가서 그 다음에 완전히 갇혀서 아무 여망이 없고 물고기 잡아서 피 뚝뚝 떨어지는 살점을 잡아서 불도 없고 그렇게 살아가는 비참한 처지에 있는 대원들을 위해서 1270km 떨어진 곳에 살아들어올지 모르는 그 길을 7m 길이 배를 타고 갈 때 남아있는 사람들 속에서 문제가 될 만한 어려움이 되는 사람들을 가지가 다 끌어안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기에서 문제가 될 사람은 자기가 끌어안고 가도 자기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 끌어안고 갑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희생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무한한 감동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역경이 오면 올수록 그 리더를 더더욱 신뢰하고 의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희생입니다. 리더의 희생이 그것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리더의 희생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굉장히 팔로워들에 대해서 담대하게 만들어 줍니다. 자기를 온전히 희생하지 못한 사람은 항상 비굴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전적으로 희생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담대함이 있습니다.
(예화)나는 그런 것을 생전처음 교회를 옮기면서 그것을 경험하였는데, 지하실에서 이제 올라오는데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질 때는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를 지려고 땅도 알아봤는데 교인들 200명 데리고 짓는다는 것이 엄두도 안 났습니다. 경신교회를 딱 보여주시는데 그 날도 목요일에 철야를 하고 위에 있는 빌딩을 계약하려 하는데 그렇게 마음이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기도하고 새벽에 나오는데 골목을 잘못들어서서 경신교회 골목쪽으로 다른 생각하다가 교회 옮겨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잘못 나온 것입니다. 반대편으로. 딱 나왔는데 방주교회 골목으로 나온 것입니다. 방주교회 골목으로 쭉 나왔는데, 분명히 교회인줄 알았는데 거기에다가 임대 혹은 매매, 노란 현수막을 걸어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딱 보는 순간 가슴이 막 뛰는 것입니다. 차를 유턴을 해서 딱 서서 돌아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교회 건물이 천 평이 되어 보였습니다. 그 때가 IMF가 아니었으면 건물은 보통 350만원 내지 400만원 전세를 줬는데 IMF 때이고 교회 건물이고 하니까 200만원만 쳤습니다. 그랬더니 곱하기 2000하니까 20억이었습니다.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계속 두근 거렸습니다. 그래서 세수도 안 하고 건축위원장과 관계된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가서 쭉 보더니 기가 막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인지 물어봐라 그랬더니 물어보니까 700평이라고 했습니다. 200만원씩 계산을 하니까 14억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이경호 집사에게 그랬습니다. 평당 200만원쯤 달라그럴텐데, 14억 4천만원인가 달라그랬습니다. 10억에 빌리면 빌린다고 그래라. 목사님, 10억 있습니까. 그래서 없지. 천만원도 없는데, 그래도 어쨌든 한다고 그래라. 그래서 갔습니다. 10억이면 우리 목사님이 온다고 그럽디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은 급했던 모양입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본사에 전화를 하더니 10억에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놓고 그 날 밤에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세수도 못하고 아침도 못 먹고 점심도 못 먹고 저녁때가 된 것입니다. 일곱시에 기도회를 가는데 집사님들은 기도회를 하지 말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이제 지금 있는 본당을 갔습니다. 가서 보니까 하품이 나온 것입니다. 저쪽 예배당이 화장실보다 조금 컸습니다. 24평이니까 화장실 두 개 합쳐 놓은 것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본당에 가서 딱 서보니까 이것은 바다였습니다. 그런데 손 잡고 간절히 기도하니까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너무 좋다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찍어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하면 예 하시오 하니까 모두 예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돈은? 가만히 있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내 말대로만 하면 다 됩니다. 그래서 다 모였습니다. 그 전에 어떠한 일이 있었냐 하면 건축위원장 12명을 모아놓고 교회를 짓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한 사람 한 사람 물어보는데, 결론은 뭐냐 하면 교회를 짓는데 의욕이 안 보였습니다. 조금 와서 지하실 교회에서 은혜를 받았는데 이러한 복병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1-2억도 아니고 10억, 15억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난 것입니다. 쭉 앉아서 이야기 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아주 쉽게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관록이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 하니까 무슨 소리냐 그랬습니다. 날 따라 하면 됩니다. 내가 사택. 사택도 아니었습니다. 내 집이었습니다. 집을 팔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집을 팔고 그 다음에 대출 얻은 것을 다 갚고 나면 1억이 남는데 그것을 팔아서 교회에 내 놓겠습니다. 여러분도 날 쫓아 하십시오. 금방 됩니다. 굉장히 우울한 기색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뭐냐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못 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못 한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무제한으로 다 한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까 근심이 모두 사라지고. 그러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제한으로 다 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못 한다. 그 다음에 무슨 마음이 생기냐 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벌써 내 손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모두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마음에 놀라운 평강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냐 하면 열두 명이 모여서 몇 주 전까지 한 사람 한 사람 물어 보니까 교회를 사야겠다는 의욕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 그 열두 명이서 헌금을 했는데 4억2천 만원이 나온 것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있었는데 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교회를 새로 짓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일 때 몇 사람이 그래도 옮겨야 됩니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 했는데 가장 열심히 이야기 한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헌금을 했는데 천만원을 헌금했습니다. 어떻게 그러냐 그랬는데, 덮어놓고 집에 들어갔는데 밤에 잠이 안 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런데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내 마음 속에 새벽녘이 되었는데 맨 처음에는 섭섭하고 그러한 감정이 오더니 그 다음에 편안함이 몰려 왔습니다. 그런데 새벽이 되었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냐 하면 이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이 이것을 안 기뻐하신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내버려 두는 것은 이 사람으로 하여금 미끄러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락을 해서 부부를 오라고 했습니다. 헌금은 부부가 같이 하는 거니까. 그리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넘치도록 들어왔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잘 될 것이라고 보는데 천만원이 뭐냐. 이게 하나님께서 여태껏 여러분들에게 배푸신 은혜나 모든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슬퍼하십니다. 인격적으로 잘 이야기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내가 너희에게 물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요. 너희의 영혼에 대한 염려다. 점심때까지 다시 써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4천만원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통해서 오히려 그 사람들이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하긴 했는데 하나님이 평안을 안 주시더랍니다. 그러니까 너무 기쁘고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항상 깨닫는 것이지만 내가 그때 깊이 깨달은 것이 뭐냐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많이 헌신된 팔로워와 희생할 줄 모르는 리더 한 사람이 있는 조직보다는 이기적인 많은 팔로워들이 있고 희생적인 리더가 있는 조직이 훨씬 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리더는 팔로워들을 움직일 수 있는데 팔로워는 리더를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때 깨달은 것이 뭐냐 하면 그것이구나. 나를 완전히 비우고 그리고 희생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길을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배 목사님들이 늘 이야기하는 대로, 성경에도 나오지만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그 정신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그러한 희생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냐하면 부모가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해서 알뜰하게 돈을 모으는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녀를 위한 것이듯이 사도바울이 자기를 허비하면서 영혼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그것이 자기의 기쁨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대상이 누구였냐 하면 고린도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사도바울의 마음을 아주 아프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미끄러지고 타락하고 그런 것들은 일반적인 시각에서 물러난 것이라 하더라도 자꾸 이 고린도 교인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사도바울은 사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자꾸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계속해서 제가 사도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사도가 아니다. 사도바울이 가르쳐주는 복음이 너무 버겁고 엄격했습니다. 자기네는 좀 파당도 짖고 성적으로도 좀 타락하고 항구도시이고 돈도 많으니까 그 돈을 가지고 적당히 세상도 사랑하고 살고 싶은데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따라서 살려고 보니까 윤리적인 삶이 너무 엄격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자기 혼자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이 사도로 부르셨다고 하는데 누가 보았냐. 누가 증명해 주는 사람이 있냐. 옆에 있는 사람은 뭘 들었다고 하지만 이상한 소리 나는 것만 들었지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닌데 어떻게 아냐. 그런 체험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 12명 속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러면서 계속해서 사도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인데도 사도바울이 희생의 본을 보여준 것입니다. 희생의 본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게 감동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모든 사람을 향해서 마음이 똑같다고 한다면 거짓말입니다. 언제한번 교역자들이 모여서 자기끼리 이야기 했는데 모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목사님이 나만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옆의 사람이 나도 그랬는데, 나도 그랬는데. 그런데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게 다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강아지가 밥도 먹이고 과자도 줬는데 자기 주인인데 들어가기만 하면 그냥 짓습니다. 한두 번 그러면 그래도 계속 그러면 싫습니다. 애들도 사탕도 한번 두 번 주면 아이고 예쁘다 그러면 목사님 그러면 좋지만 아이고 예쁘다 그랬을 때 마치 유괴범 만난 것처럼 인상을 쓰고 도망가고 자기 엄마 품에 안겨서 나를 눈을 흘겨 보면 서너번 하다 보면 나도 싫습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진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할 때 기쁩니다. 그러나 나를 반대하거나 나를 인정해주지 않거나 심지어 나의 희생을 몰라 주거나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너무 필요합니다.
(예화) 이제 수영로 교회에 갔더니 정필두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미친다는 것입니다. 토요일날 설교를 준비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아무개 권사와 아무개 집사 있죠? 목사님, 엄청 갈구고 다닙니다. 하필 꼭 토요일에 전화옵니다. 이렇게 이렇게 막 갈구고 다닙니다. 그러면 설교 준비는 안 되고 갈구고 다니는 광경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교인이 만 몇천 명이니까 별의별 사람 다 있을 것입니다. 갈구고 다니는 광경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서 나중에 토요일날 코드를 빼놓았답니다. 어떻게 하나 괴로워하다가 나중에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합니다. 마음에 너무 괴롭고 미운 사람이 있으면 기도할 때 제일 먼저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그 사람이 정말 미운데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 도와 달라고. 그 사람을 위해서 계속 축복한다고 합니다. 어떤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하느냐 하면,. 그렇게 계속 기도하면 사랑스러워 진답니다. 그때까지.
그러니까 자자란 리더는 자기를 자기 편에 선 사람과 편에 서지 않은 사람을 골라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멀리합니다. 멀리해서 그를 고립시킵니다. 그런데 탁월한 리더는 그 사람을 가슴에 끌어안고 자기 가슴속에서 녹여버립니다. 한때 이제 마음을 참 아프게 하고 떠난 지체가 있습니다. 미끄러져서 떠난 가운데 교회를 향한 절절한 사랑, 목사님을 향한 눈물 겨운 존경심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몇 달이 지납니다. 6개월 1년쯤 되었을 때 우연히 결혼식에 왔습니다. 너는 목사님 잊어버렸지? 나는 하루도 너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 사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데 눈물이 쭉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그냥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몇 주 있다가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몇 주 있다가 장문의 긴 편지가 왔습니다. 옛날에 내가 깨닫게 해주고 싶었던 내용을 다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리더의 그러한 태도가 한 사람의 영혼에 살고 죽음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몇 번을 경험했습니다. 나는 그게 단순히 너가 오건 아니건 나는 별 것 아니다 생각을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용서가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자유를 회복하게 하고 살립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사도바울이 한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이 아니고 자기를 반대하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해서 진심으로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희생의 방법인데 그게 뭐냐 하면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물질과 두 번째는 자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이야기 하지만 자신이 어디에 헌신된 사람인가 하는 것은 물질이 어디에 쓰여지는가를 보면 정확하게 압니다. 그래서 자신의 외모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그것 가지고 옷 사입고 수술하고 뭐 사서 바르고 그러는 일에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또한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아껴서 가족들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리더가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 말하자면 이기적인 이기심을 뛰어넘는 그러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기독교 지도자적인 위치에서 일하면서 이런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에게 뭐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뒷골목의 보스도 이런 점에 있어서는 열린 사람들이야. 옛날 전두환씨 같은 사람들. 청와대 경비원들이 너무 좋아했답니다. 노태우는 세어서 20만원씩 봉투에 넣어서 주었는데 전두환은 딱 쥐어서 주었답니다. 고생했다고. 그런 것입니다. 암흑가에 있는 사람들도 그 정도는 합니다. 기독교 지도자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자기 자신까지, 나 자신까지 허비한다. 그게 뭐냐 하면 자기 전부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전부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물질은 겨우 시작일 뿐이고 그 자신이 그 자신이 나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영혼의 변화와 유익과 손해 모든 것들을 자기의 것처럼 여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처럼 여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 내가 한번 일본 야쿠자에 대한 책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야쿠자는 마피아 비슷한 조직입니다. 얼마나 놀라운가 하면 한번 들어가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딱 들어가면 만약에 이 조직원이 임무를 수행하다가 피살되든지 문제가 생기면 완벽하게 가족들에 대해서 책임을 줍니다. 나는 그것을 쭉 읽으면서 상당히 윤리적인 조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직원은 사라졌어도 그 가족들에 대해서 완벽하게 책임을 다했습니다. 그러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그러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직원들이 안 나갑니다. 10년 15년 근무합니다. 청년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갑니다. 그 월급 가지고 안 되니까 할 수 없이 아이들 학자금을 대 주다 보니까 아이 둘이 대학을 다닌다고 하면 1년 학자금만 해도 공대 생명공학부는 오백 몇 십만원씩 된다고 하니까. 이게 애들 합치면 연봉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부담스럽게 생각하면 안 된다. 교회가 그 사람들의 젊음을 가져가지 않았냐. 인생 전체를 가져가 가지 않았냐. 그러한 것을 생각을 안 하면 어떻게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나라에 대해서 배신감을 느꼈을 때가 언제냐 하면 아버님이 6.25 때 총상을 입으셨습니다. 지금도 날이 추워지면 여기가 쑤시십니다. 공산군에게 잡아서, 그래서 그것을 절단하는 것인데 유명한 군의관이 집도하는 바람에 간신히 살아난 것입니다. 그런데 10원 하나 안 주었습니다. 그래서 마이크로필름에 아버님이 어디에서 전투해서 부상 당한 것이 다 나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복사해서 가니까 화장실로 오라는 것입니다. 화장실로. 그래서 화장실로 가니까, 이것 꼭 되고 싶으냐고 되고 싶다고. 진짜 되고 싶으냐고 진짜 되고 싶다고 하니까, 도와줄까? 네. 그러니까 진짜 도와줄까? 그러다가 나중에는 문을 확 열고 화장실을 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돈 달라는 것입니다. 돈 주면 해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말씀에 줄 돈이 없어서 못 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난했으니까. 그 나라를 위해서 젊음을 바치고 죽은 사람들 다리가 망가져서 불구처럼 일생을 산 사람들을 어떻게 그렇게 대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은 나중에 시대가 딱 좋아지니까 진작 해드렸어야죠 하면서 도장을 딱 찍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80만원씩 매달 나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나옵니다. 진작 아버님이 했으면 우리는 무지하게 득을 봤습니다. 우리는 중학교 시험 볼 때도 그냥 10점을 줬습니다. 애들이 경복 갈 실력도 안 되는데 경기고등학교, 경기중학교 가고 그랬습니다. 공무원은 아마 지금도 10점씩 주고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이 세상의 나라도 그러는데 대학 등록금, 젊음을 다 가지고 갔는데 그런 정도야 해줘야 되지 않냐.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들이 누가 우리를 따르겠는가. 우리가 정말 희생하고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이 생활해 보면 알지만 전부다 껍질 속에 쌓여져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받아 본 사람들이 너무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말 소중하다라고 하는 것을 남한테 인정받아 본 사람도 별로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누군가가 인정해주고 잘해주면 처음에는 경계하고 두려워합니다. 나한테 무엇을 빼앗가려고 나한테 앵기나. 그리고 소라가 쏙 들어가듯이, 게가 구멍으로 들어가듯이 싹 들어갑니다. 베풀면서도 상처받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가치가 없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사도바울이 그런 모본을 보인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그 기초가 뭐냐. 그 기초가 사랑입니다. 사랑. 사랑이 기초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사랑은 자기가 희생한 것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장부처럼 모아 두었다가 언제 폭발하면 다 쏟아져 나오지 않습니까. 뭐했고, 뭐했고 뭐했고 그 때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하면서 다 쏟아져 나옵니다. 사랑에 의해서 용해되지 않으면, 항상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를 보면 그 동안 절 위해서 너무나도 많이 희생하셨죠. 부모의 마음은 희생이라고 생각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다 용해 시켜 버립니다. 그런데 나도 그렇습니다. 어떤 때는 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장부책이 쭉 나옵니다. 자식, 내가 옛날에 어려울 때 어떻게 도와줬고, 어떻게 했고, 어떻게 했고 그런데 그 까짓것으로 해, 그러다가 터집니다. 터지면 줄줄이 장부책 열면 나옵니다. 너 그때 나도 어려운데 내가 널 이렇게 해줬고, 이렇게 해줬고. 다 나옵니다. 결국 무엇을 입증해 주냐 하면 사랑이 없다라고 하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의해서 다 용해 됩니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합니다. 후배들이 가끔이 교회 개척 대게 힘들다는데 힘드셨죠? 하나도 힘든 기억이 안 납니다. 어떤 때는 힘들다고 생각이 나면서도 지금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교인들을 힘들게 한 것이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목사님, 힘드시죠? 아니. 나는 그렇게 동정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기초가 사랑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 영혼을 향한 사랑에 있으면 이게 다 용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하면 희생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못하게 하면 가슴에 한이 되고 못이 되는 것입니다. 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생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게 마음입니다. 리더가 항상 팔로워들에 대해서 그러한 것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 때 어떠한 생각을 갖게 되느냐 하면 옆에 든든한 나무가 서 있는 것 같은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쉽게 요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거기에 서 있는 사람, 그래서 리더십은 내가 목회를 이야기 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들판을 가로 지르고 흐르는 한줄기 강물과 같은 것입니다. 강이 새가 와서 운다고 이리로 도망가고 여기에 뭐가 어떻다 하다고 이리로 흘러가고 강이 그렇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강은 계속 흘러갑니다. 와서 먹고 집짓고 사는 사람도 있고 한번 발 씻고 동물도 있고, 똥만 싸고 도망가는 새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흘러갑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고향 떠나서 다시 돌아와서 보면 그래도 고향의 강은 흐릅니다. 그것이 리더십입니다. 막 타향 떠돌다가 오니까 강이 푯말 하나 남겨놓고 도망갔습니다. 너가 날 버렸으니 나도 널 떠난다. 그것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흘러갑니다. 그러는 사이에 두루두루두루 적시면서 가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마음 아플 때 그렇습니다. 전혀 사실이 아닌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오해를 하고 그리고 그것으로서 자신의 미끄러짐을 정당화하면서 내 곁을 떠나고 그러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기도하고 그러다보면 계속 흐릅니다. 한참 있으면 다시 오고 싶대,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강물처럼 흐르는데 갔다가 다시 와서 먹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고 그러는거지. 그게 무슨 그게 어떻게 하냐. 예수님도 모든 사람이 좋다고 안 했는데 어떻게 나를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겠는가. 하나님 앞에서 강물처럼 계속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게 리더십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고 내가 돌보는 영혼들을 깊이 사랑하고 팔로워들을 인격적으로 깊이 끌어안고 내가 넘치도록 희생하면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해를 하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흘러갑니다. 동기가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래서 정말 교회를 섬기면서 느낀 것은 무엇이냐 하면 교사들과도 많이 살아오면서 보면 대학부나 청년부에서 똘똘한 사람들은 다 자기가 쓰고 그리고 자기들도 잘 안 사용하는 찌끄러기들을 내려 보냅니다. 그래서 와 보면 진짜 황당한 사람들이 내려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 아무리 이야기 해 본들 좋은 사람들을 주겠느냐고. 줄수는 있습니다. 그 사람이 청년부 안 한다고 하면 줍니다. 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말합니다. 거기에서 잘 다듬어져서 좋은 사람이 여기에서 내려오면 그러면 항상 거기에서 다듬어졌기 때문에 소속감이 거기에 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럽니다. 망가진 사람 기도해주고 사랑해주고 은혜를 끼치고 그렇게 해서 거기에서는 인정 못 받았을 것 아닙니까. 여기에 와서 내가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데려가서 엑스레이 찍어주고 생활비 없으면 쫓아가서 쌀 사주고 책 없다고 하면 책 사주고 어지럽다고 하면 청심환 사다주고, 눈물로 기도해주고 그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거든. 그러니까 매료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어차피 고향이 없는 사람이니까 뿌리를 내딛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청년부에서 그럽니다. 우리는 품질이 별로 안 좋은 사람을 내 보냈는데 어쩌면 그렇게 만족을 하면서 잘 하냐. 그럴 수가 없는데. 거기에서 못 심겠다고 뽑은 것이니까 우리 땅에다가 잘 심어서 그렇게 해서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데려가고 집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쫓아가서 해결해주고 집안에 누가 죽었다고 하면 내가 청년부보다도 먼저 달려가서 해결해주고 그랬습니다. 살림 어렵다고 하면 보태주고 그랫습니다. 무제한으로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 하면 지체 하나인데 성탄절 예배 때 너무 아파서 예배를 못 나온 것입니다. 오후에 전도사님과 생선회를 먹으러 간다고 했더니 예배는 못 나왔는데 오후 2시에 뛰어 나온 것입니다. 너무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바꿔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나 달라고. 교회학교 전도사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러한 것입니다. 아무나 달라. 워낙 아닌 사람은 말고. 왠만하면 달라. 거기에 대해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싫다. 어렵기만 하면 고향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충전 받으러 다시 가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막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대학 졸업하고 친구들이 만나서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졸업하고, 너 뭐하냐. 나 내수동 교회 고등부 교사야. 목숨걸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진심으로 영혼들이 사랑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여러분 위해서 눈물 겹게 사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깊이 주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사역 감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 때에 그 리더십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지금도 그리스도의 고난의 사실에 직면할 때 할말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죽으셨는데 할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제한으로. 그래서 고등부 교사, 전도사 하고 그러면서 무슨 일이다 그러면 천리마다 하지 않고 쫓아내려 갑니다. 더군다나 몇 명 안 되니까. 그렇게 한 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