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6. 강북제2교구 특별집회
팀장 수련회 새벽예배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녹취자: 박은희B
이제 사랑에 관한 교훈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12장에서는 온갖 은사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합니다. 그리고 그 은사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서 좋은 길을 보이겠다. 그러면서 이제 13장에서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그 전에 서론 부분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네 가지로 크게 이야기를 하는데 첫째는 방언, 두 번째는 예언, 그다음에는 믿음, 그 다음에는 헌신을 이야기 합니다. 방언과 그다음에 예언 이 두 가지는 어떤 의미에서 그 사람의 신령한 뭐라 그럴까 신령한 은사의 중요한 척도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방언도 모든 것이 그렇지만 방언도 굉장히 신비스럽고 이 땅에 있으면서 천사의 말을 하고 방언을 한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신비한 경험이었고 그리고 또 하나, 예언은 더더욱 신비한 기능이었단 말입니다.
예언은 구약에서부터 신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미리 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맡기시는 하나의 신탁이었는데, 구약에서는 신탁을 받은 사람들은 정말 아주 극소수에 한정된 사람들이었고, 신약에서 이런 예언의 능력들이 주어졌을 때에 그 사람들은 그런 맥락에서 보았기 때문에 아주 굉장히 신비스러운 것이었고, 예언이 있으면 예배 중에 자기에게 임한 그 예언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렇게 아주 신령한 은사의 말하자면 핵심 중에 하나였다 이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그다음에 있는 삶이 뭐냐 하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게 믿음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은 무엇을 하기에 적합한 거냐 하면 아주 연약하게 이 땅을 살아가는 그 인간이 하늘에 능력을 이 땅에 불러 내리기에 아주 적합한 도구가 바로 믿음이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자기가 활용하면서 살아가는 중요한 비결이었단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신령한 은사의 세계라기보다는 신령한 은사의 체험과 함께 믿음은 정말 그 능력을 불러일으키는 도구였고 그래서 충만한 믿음 속에서 산다. 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큰 능력을 땅에 불러 내리는 그런 것이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12장에서 또한 믿음의 능력을 또한 이야기 한단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헌신입니다. 그 헌신인데 거의 무제한적인 헌신입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자기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정도로 그렇게 헌신된 것이란 말입니다.
당시에는 샐롯 당원이라고 하는 열렬당원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구냐 하면 오늘로 말하자면 황해 동해투사 비슷하게 로마의 말하자면, 테러 같은 것을 행하면서 그러면서 이제 그 무력으로라도 로마로부터 독립을 쟁취해야 된다. 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의 분발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그렇게 민족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요즘에 이슬람 과격단체처럼.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재미있는 것이 뭐냐 하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것도 아니요” 그리고 일인칭이 들어간단 말입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여기서 우리들이 중요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뭐냐 하면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면서 내게는 아무것도 아니요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것도 아니요.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내가 죽어라하고 무엇을 하고 났을 때에 그때에 내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한일을 보고 감탄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유익을 얻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늘 이야기하지만 한사람의 신앙의 성숙의 정도는 얼마나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얼마나 그 사람이 광범위하게 자신의 모든 삶의 분야에 있어서 모든 행함이 주님을 사랑하는 동기가 되느냐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종종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사람들의 믿음의 파산을 보게 됩니다. 결국 아주 엄청난 미끄러짐과 그런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것들은 결국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속에서 열심히 일한 마지막 결과,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일하는 마음과 그 다음에 에너지가 따로 있고, 신앙 생활하는 에너지와 마음이 따로 있고, 이렇게 되면 결국은 마지막에 일하는 에너지가 고갈되고, 일하는 에너지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은혜 생활하는 그 에너지에 의해서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에 의해서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하다가 사람들이 어떤 한계에 오게 되면 그 다음에 이번에는 어떠 하냐하면 일하는 에너지에 의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길 에너지들이 모두 상실 되고나면 탈진현상이 오니까 그다음에는 일을 그만둡니다. 그리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에너지가 주님을 믿고 사랑할 에너지를 모두 다 잠식해버렸는데 요번에 일을 그만둬버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냐하면, 일을 그만두면 이쪽 에너지가 쫙 차서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세워주신 그곳에서 자기가 자기 멋대로 이탈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가볍게 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십시오.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실 때에, 그 때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크고 중요한 직분들을 주시고, 어떤 사람들은 작은 직분들을 주시는데 이것은 지위에 높낮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다양한 직분들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항상 하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한곳에서 두시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떠나서 다른 일을 하게도 하시고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부르셔서 하나님이 자기 일을 맡기기도 하십니다. 목회를 하다가 선교지로 가기도하고 이교회에 있었는데 하나님이 저 교회로 인도하시기도 하고 또 우리교회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직원으로 봉사하다가 교역자로 부름을 받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새로운 부르심을 따라서 우리들이 움직이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니까. 그러나 이제 그러한 진지한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뜻의 분별, 이런 것도 없이 어느 한계성향에 몰려서 내가 그런 것들을 내 마음대로 택하고, 그 다음에 멀리하고,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면 필연적으로 불순종에 아주 가깝게 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열렬히 기도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자리에 있을 때에 그렇게 열렬한 기도가 가능 해지는 것이고, 또 우리가 혹시 잘못하거나해서 우리가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어도, 하나님이 세워주신 자리에서 기도 하는 것과 이탈 되어버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런 것은 다르다 이것입니다.
내가 그래서 가끔 교역자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가 세워주신 자리에 있는 것을 하나님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세워 주신 곳에 있지 않고 이탈하고 튕겨나가 버리면 하나님께서 안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탈하고 나가면,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그 긴 세월이 흐른 다음에 만나 봐도 그 사람의 영혼의 회복이 없습니다. 그것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을 해야 된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모든 가벼운 결정이나 행동이나 이런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던지 간에 내게도 유익이 있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이것입니다. 그런데 내게도 유익이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의 것을 챙기려고 한다고 해서 내게 유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답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사랑. 그런데 그 사랑이 일차적으로 뭐냐 하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라 이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올라가기 때문에 우리들이 일차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소화하는 세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동기가 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모든 섬김의 기초가 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더 배워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어려움이 오면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난관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을 극복하면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즘에 교회를 돌보면서 안타까운 것이 뭐냐 하면, 사람이 열정은 있는데 너무 힘이 없습니다. 열정이 있고 힘이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 열정조차도 사랑의 열정이 힘이라고 하는 틀 속에 있을 때에는 보호를 받으면서 그 열정의 불이 오래도록 계속되는데, 힘이라고 하는 틀이 없으면 마차 골조 없이 세워놓은 집과 같아서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둘이서 그렇게 뜨겁게 사랑을 합니다. 열렬히 좋아하고 집에서 반대해도 결혼하고 그러다가 좀 그냥 헤어지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래도 나는 그만둬야 되겠다. 그리고 나서 차선을 택하겠다. 이겁니다. 그 길이 가시밭길이어서 이 사람하고 계속 사랑하면서 사는 것 보다는 그 길이 훨씬 쉽다. 그리고 팽개칩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렇게 하고 이혼하고 와 가지고 또 다른 자매 데리고 와가지고 나보고 결혼식주례 서고 교회서 결혼식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내가 야단을 쳤습니다. “되지도 않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말이야. 응? 어디서 그따위 짓을 하고 앉았느냐고. 이혼한 것조차도 내가 허락을 안 하는 건데 어디 와서 교회 빌려주고 담임 목사보고 주례 서달라고 그러냐고. 불법에 동참 하는 거냐고” 너무 없습니다. 그게 결국 왜 그렇게 힘이 없느냐? 왜 그렇게 힘이 없느냐? 뭐냐 하면 동기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너무 자기중심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이것입니다. 우리가 뭘 하던지 간에 그가 아무도 없고, 하나님도 안계시고 오직 나한테 고통을 주는 형제, 나한테 고통을 주는 자매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올바른 믿음생활 해나가는 사람들은 무슨 세계를 가지고 있냐 하면,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인생의 많은 일들과 상황을 신앙화하는 방법,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소화하면서 살아가는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진정한 신앙입니다. 그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거기에서 이렇게 깊은 누구를 사랑하면 필히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절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틀 속에 들어가 있으면 사랑하는 일이 쉽지.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일이 쉽지. 왜? 그 사람이 다 내가 기뻐하는 일만하는데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쉽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 누구도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난 그래서 내가 결혼생활을 23년을 했는데 어떤 생각을 하게 되냐 하면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한사람을 깊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때에, 그 때에, 그 한사람의 인간성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너무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죄가 들어오고 타락한 이후로 부터는 말이지, 결혼하게 되면 그것자체가 그 사람을 하나님이 성화시키는 많은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스운 이야기인줄 모르지만 나도 23년을 살아오면서 성격이 너무 달라. 우리 집사람하고. 나는 내향적이고 우리 집사람은 외향적이고 나는 논리적이고 그 사람은 굉장히 감성적입니다. 나는 섬세하고 거기는 이렇게 좀 직선적이지. 그러니까 너무 달라. 결혼하고 맨 처음에는 맨날 다투었어. 다툰다고 그래봐야 싸우는 게 아니라 그때도 나는 지금 못지않게 신앙생활을 잘 했으니까 늘 가슴 아파 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의사소통이 서로 안 되는 것입니다. 23년을 지나오면서 이제 비로소 이렇게 발에 편한 신발처럼 그렇게 서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엄청나게 깍이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렇게 우리 집사람을 생각하면 ‘아휴, 참 강적을 만나서 고생했다.’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닙니다. 웬만했으면 아마 손에 잡혀서 살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약한 적을 붙여주면 우리 집사람은 변화가 안 되겠거든. 강적을 붙여주신 것입니다. 맨날 그럽니다. “참, 여보! 하나님의 섭리가 놀라워. 당신 같은 강적을 안 만났으면 내가 웬만큼 살았을 턴데.” 정말 어떤 때는 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살을 에는 것처럼 그렇게. 그게 한편만 그랬겠냐고 응? 그 강적을 데리고 사는 것은 또 어떻겠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막 살을 에는 것처럼 그렇게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한권도 책 참삭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목회자의 아내에 대한 책들이 가끔 나오지만,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가슴에 하나도 와 닿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쓴 책 이외에는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요즘도 그렇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책을 계속 읽습니다. 하여튼. 부지런히 읽는데, 혼자 마루에서 읽다가 감탄을 합니다. 여보! 당신, 여자도 안 되어봤는데 어떻게 그렇게 여자를 잘 알아요? 그것이 다 강적 만나서 깎이고 깎여서. 그래도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이기면서 극복하면서 살아오게 되니까 지금 발에 맞는 신발처럼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누가 이렇게 보면 왜 이혼하거나 그다음에 사별하고 다시 장가가고 시집가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보면 그렇게 측은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맞추고 살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걸 또 두 번째 맞출 라니 그게 23년을 맞추어도 겨우 맞추었는데 이제 또. 그래서 내가 그러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드메로라고 사람이 프랑스의 혁명가였는데, 그 사람이 크리스챤이면서도 사회혁명에 관심이 많았던 19세기 사람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뭐냐 하면 온 세계를 변화시키게 도와달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랬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온 세계는 좀 너무 많고 내 민족이라도 좀 변화시키도록 도와달라고, 그 다음에 도저히 변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또 더 나이 먹어서, 그러는 자기가 사회 혁명하는 동안에, 가족들은 가족들 자체가 자기가 보기에는 혁명의 대상일 정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을 변화시키게 해달라고 마지막유언이 죽을 때가 되어서 마지막에 유언처럼 남긴 이야기가 뭐냐 하면 “하나님,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급한 혁명의 대상은 나였습니다. 나를 변화시켜주십시오.” 그게 인생말년의 기도 제목이었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힘든 것입니다.
나는 이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일하잖습니까? 그리고 교회에서 이제 이렇게 같이 일하는 집사님이나 이렇게 보잖습니까? 이렇게 보면 성격도 원만하지도 않고 자기 깐에는 잘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보편적이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튑니다. 튀는데 그게 무슨 창의나 성실이나 이런 것으로 튀는 것이 아니라, 굽은 성격 이런 것으로 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다듬어진 흔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나야 너한테 적응하면서 살면 되 되지만 세상에 나는 너의 목자니까 적응하며 살아준다마는 ‘야 ,네가 세상에 나가봐라. 여태까지 산 세상은 가두리 양식장이야. 응? 그거 펼쳐놓고 이제 바다로 나가보라고.’ 그러니까 그 봐라.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형제를 만나도 살벌하고, 시어머님 시아버지 만나도 살벌하고, 직장에 가도 얄짤 없어. 어느 미친놈이 거기에 자기가 적응을 하면서 살아주느냐고 왜?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적응 안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자기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면 목사인 내 마음은 그렇게 슬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항로가 보입니다. 얼마나 고달픈 인생길을 살아갈지 이렇게 보입니다.
우리 옛말에 무슨 말이 있냐하면 “사람됨이 그의 운명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아까 그 말이 딱 정답입니다. 성경적으로 봐도 정답입니다. 뭐냐 하면 한사람의 삶은 천지창조 원리하고 똑 같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이렇게 내 놓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야비하면 계속해서 야비한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실하면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진실한 길로 걷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걸어가니까 자신이 볼 때에 자기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해도 이게 사람들이 용납해주기가 너무 힘든 사람입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혼자 살아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뭐 사랑하고 그래도 있지, 아까 이야기 했듯이 누군가를 사랑하는데서 오는 아픔과 고통 통증을 이것을 순화 시킬 수 있는 신앙의 세계나 이런 명상의 시간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묵상의 세계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게 자기가 원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사랑하지만 그렇게 안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체들 이렇게 보면, 자기는 와서 남들이 뭐 자기를 용납 안 해주고 그러고 쭉 이야기 하는데 자기 자신 속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려서부터 어린나이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좍 이렇게 깨어지는 것입니다. 깨어지는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좍 깨어지는 세계가 있으면, 그 사람이 깨어지는 세계가 있으면, 그것이 능력이 되어서 자기가 계속 변화 됩니다. 그런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결혼을 하든지 사람들과 만나게 돼서 부딪치고 깨뜨려지면 그것을 계속 소화하는 것입니다. 기도 속에서 은혜 속에서. 그러니까 진짜 강적을 만나도, 그 강적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어도, 그 속에서 자기가 깨뜨려지고 하면서 하나님이 훌륭한 사람으로 빚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울가에 가면 돌멩이가 다 동글동글 하잖습니까? 그게 왜 그런 것 같습니까? 처음에는 바위 깨트려진 것 그런 것들 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홍수 같은 것이 나면서 막 굴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텔레비전 박스같이 저렇게 네모난 돌멩이도 물을 타고 한 몇 백 미터만 굴러가면 동그란 돌이 됩니다. 그래서 홍수가 나면 밑에서 바위들 부딪치는 소리가 천둥치는 소리같이 납니다. 그러면서 저 아래로 내려가면 동그란 돌멩이로 다 변합니다. 그게 말하자면 세련되어가는 것입니다. 그 위에 물에 의하여 닦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좋은 돌멩이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쭉 거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자면 성품이 원만하고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세계가 다름이 아닌 사랑의 세계입니다. 사랑.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가만히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누구를 끝까지 사랑한 적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주님도 끝까지 사랑을 못했는데 어느 인간을 우리가 끝까지 사랑합니까? 정말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답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고 그러니까 사랑을 밖으로 일하고 이렇게 하는 것을 통해서 사람의 사랑을 잰다는 것은 부정확합니다. 여기 얘기하잖습니까?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의 능력이 있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며” 자기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면 그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 읽을 때마다 왜 80년대의 가슴 아프게 하는 분신자살이 계속 있었잖습니까? 그 생각이 납니다.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데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막 사회에 대한 치열한 한, 원망, 그리고 막 견디기 힘든 미움, 이런 것들 말입니다. 가득 쌓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항상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났을 때마다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느냐 하면은, 이 사랑의 과정이 나의 완성의 과정이구나.
그런데 어저께 아롱이다롱이 이야기를 하고 일곱 빛깔 무지개 이야기를 했는데, 하여튼 전도사때 있던 교회에서 하여튼 그 부분만 사람을 끝까지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을, 하여튼 치열하게 그렇게 훈련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 8년 있고 나온 다음에는 어떤 마음이 들었냐하면, 이제는 아무리 개떡 같은 사람을 만나도 내가 그 사람을 감화시키고 변화시킬 자신은 없는데 그 사람하고 같이 일할 자신은 있다. 라고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내 앞에 선임전도사가 있었는데 하여튼 안수집사하고 수시로 대판걸이로 싸우는 것입니다. 성격들이 너무 독특합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 속에서 하여튼 그 긴 세월동안 그렇게 치열하게 고통을, 얼마나 힘들면, 나는 성격이 누가 나 때문에 힘들어 한다면 밤에 잠을 못 잤습니다. 지금은 잘 잡니다. 너는 그래라 나는. 그리고 그 밤에 찾아가서 이것을 정리를 해야지만 잠을 자는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그런 비슷한 성격이 진광희 집사가 그런 성격입니다. 요즘은 좀 나이 들어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런 성격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이 많이 깎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같이 일하고 있는 부하직원이나 동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게 되는 사람, 그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으로서 그렇게 살아가면 여러분 자신이 완성이 안 됩니다. 두고 보십시오. 별 사람 다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 이제 단련하시기 위해서 어떤 때는 우리는 검증의, 검증의 과정을 거치잖습니까? 그런데 정말 진짜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언제 자기 가까이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그 때는 할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그냥 참고 있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습니다. 참고 계속해서 사랑해주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는 속에서 자기 자신이 완성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쭉 완성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답은 있습니다. 뭐냐 하면 사람마다 그것을 금방 깨닫는 사람이 있고 오래되어야 깨닫는 사람이 있지만, 한 가지 뭐냐 하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 압니다. 그것을 향해서 마음의 문을 열 때에 금방 여는 사람이 있고, 오래 있어야 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금방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오랜 후에야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는 자기를 깊이 사랑해주는 것은 압니다. 그리고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처음에 자기에게 갖는 관심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더 많이 사랑받겠다고 하는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것을 압니다. 다독거리고. 그러면서 많이 사랑할 때, 그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자신의 부족 때문에, 혹은 그 사람의 부족 때문에, 우리를 모두 다 좋다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 때마다 항상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냐하면, 하나님을 그렇게 깊이 사랑하고 그리고 정말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서 할 때마다 뭘 깨닫느냐 하면 내게 사랑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게 사랑이 너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번 여러분들을 생각을 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은 나는 이렇게 사십 여명의 사람들 하고 사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잘 하면서 이렇게 사랑스러워지는 때가 있는가하면, 아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힘들 때 있잖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사랑스러울 때는 내 기도를 덜 받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를 굉장히 힘들게 할 때는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건 나를 위한 기도입니다. 사실은. 왜 그러냐 하면, 이렇게 나를 사랑하고 참 착하게 하나님 앞에 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는 자원이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사랑스러우니까. 그러나 영 돌아가라 그러면 질러가고 질러가라면 돌아가고 올려놓으라면 내려놓고 가라고 그러면 앉아있고 앉으라고 그러면 엎드려있고 이런 사람들을 이렇게 보면 벌써 그래도 단독 목회를 10년을 하고 전도사까지 하면 20년, 전도사 생활을 13년 했습니다. 그러니까 20년을 넘는 생활을 했는데, 보고서를 한 장만 갖다놓고 두 번만 넘기면 그 속에서 일주일이 그림처럼 다 지나갑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심방 잘 안합니다. 그리고 영혼들 잘 안 챙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마다 기복이 있으니까 그럴 것 아닙니까? 그런 게 딱 느껴집니다. 그러면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나. 그런 것들이 한두 번 쌓이면 자기는 무슨 사정이 있는지 내가 그것까지 다 못 캐지만 어쨌든지 간에 영혼들을 잘 안 돌 본다. 그럴 경우에는 마음이 아프잖습니까? 그런데다가 그것만이 아니라 일을 펑펑 터뜨려서 이제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교회 돈이 들어가게 하거나 하여튼 뭔가를 하여튼 손해를 자꾸 줍니다. 그러면 왜 그러나 하고 기도를 계속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기서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하게 하는 사람, 내 기대에 맞는 사람으로 사랑하는 그것은 능력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그냥 저절로 그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도를 하게 되고, 그것을 보면서 기도를 많이 해주게 되면 사랑이 생깁니다. 그래서 정말 그게 안 될 때, 그 때에 하나님을 많이 더 의지하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제 에너지를 주십니다. 그 에너지를 가지고 이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저사람 좀 어디로 가버리게 해달라고 이렇게 기도하면 대개 응답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또 소 잡아먹은 귀신처럼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어느 목사님이 하도 사역도 개떡같이 하고 이래서 이제 마음이 벌써 없다 이거지. 그래서 그만두려나보다 그래서 은근히 불러서 “내년에는 무슨 계획이 있나?” “계속 있을 겁니다.” 그랬답니다. 자기는 갔으면 좋겠는데 주님이 맡겨주신 자리에서 계속 있을 것입니다. 속으로 그런답니다. 주님이 맡겨주셨는데 어찌 태도가 그러냐? 소 잡아먹은 귀신 모양 앉은 자리에서 은근과 끈기로 버틴다. 이겁니다. 그런데 정말 확실한 것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한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깊이 사랑하잖습니까? 그 사람은 안 변할 수 있는데 나는 변합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겠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깊이 사랑하면 그 사람은 안 변하는데 내가 변합니다. 그 비유를 하자면 뭐냐 하면, 칼을 가지고 저기 뭐냐 나무를 이렇게 깎는데, 나무가 워낙 단단하면 나무에는 변화가 적게 일어나는데 칼에는 변화가 많이 일어납니다. 많이 닳고 무디어 지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성격적으로도 막 이렇게 칼 같고 이랬던 사람들인데 이렇게 다듬어 집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온유하게 변합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영혼들과 함께 이렇게 하나님을 섬겨가면서, 우리가 영혼들을 돌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태도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아주 굉장히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그것은 지도자가 될수록 더욱 심합니다. 더욱 커지고. 그래서 이제 지도자가 우울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표정하나도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매력 있는 리더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유능하고 똑똑하고 그래도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인격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라고 하는 것이 없으면 그러면 그 마치 이렇게 재주부리는 원숭이 보듯이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이렇게 생각을 드는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내수동교회 있을 때에 그 양반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암에 걸려서 돌아가셨는데 한창 영혼들을 섬기면서 부흥을 경험할 때였는데, 학교는 고등학교 밖에 안 나왔지만 사람이 이렇게 그 뭐 저기 뭐지? 델타포스 같은데서 영화 나오는 수염많이 난 사람 있지? 그 누구니? 그 사람 비슷해. 그 영화배우하고 비슷하고 사람이 덥수룩해. 자매들이 너무 좋아했어. 그런데 부인하고 10년 차이가 나. 그런데 부인이 10살이 어려. 그런데 사람이 서글서글하고 누구에게나 너그럽고 하니까는 자매들이 청년부에서 인기투표를 했답니다. 우리 교회에서 시집가고 싶은 남자, 그래서 그 1위가 그 집사님이 뽑혔어. 그래가지고 그 결과를 알려주었더니 부인이 참 재미있습니다. “아휴, 데리고 가서 살라고 그래” 그러니까 자기는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은 남편이 병들고 마지막에는 교회도 서로 다른 교회 다니고 그러다 결국에 죽었는데 똑 같습니다. 뭐냐 하면 소용없습니다. 내가 그래서 교회에 대해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부부생활하고 똑 같아서 아무리 유명하고 딴 데 뭐 어쩌고 그래도 소용없습니다. 자기가정 잘 못하면 아무 소용없듯이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함께 생활하고 자체들에 대해서 깊은 사랑이 있고, 그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때에 비로소 그 사람이 자기가 내다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라고 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자기 안에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그리스도의 모본을 생각하고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향해 이미 행하신 일과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사랑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완성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깨뜨려져야 됩니다. 정말 많이 깨뜨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심사숙고 하여야 합니다. 이제 인사를 하거나 할 때도 여러분하고 의논을 하겠지만 심사숙고 하여야 됩니다. 그리고 일단 자기의 사람으로 들어오면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비굴해지면 안 됩니다.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일해보고 싶은 그러한 소원을 갖게끔, 그러한 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사랑의 힘이 많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기도 많이 하고, 내가 끊임없이 주님께 사랑 받을 때 사랑할 수 있는 여력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