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직원 수련회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마 25:23).
나는 여기에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맡은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섯 달란트는 잘 설교를 안 합니다. 왜냐하면, 나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 같아서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인데, 오히려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가는 사람은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이에요. 근데 이 사람이 주인이 맡겨준 것을 가지고 잘 섬겨서 그래서 주인이 올 때에 두 달란트를 남겨 주었습니다. 아마 언젠가 설교 속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정말 어려서부터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내가 정말 무엇이든지간에 좀 특별한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짧은 인생을 살더라도 뭔가 굵은 획을 긋고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죽는 것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회심한 후에도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나는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 같지는 않아요.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이다.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는데, 만약에 그 사람이 세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이 두 달란트 남겼더라면, 절대적인 면에서는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이 잘했지만은 주님께 이렇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인정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남겼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이 달란트가 우리는 동전 한 닢 정도 되겠구나, 그러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구요, 1980년도에 인플레이션을 기준으로, 미국을 기준으로 840만 원 정도 되는 돈이에요. 그러니까 자금 환율이 변한 것과 모든 것을 따지면 이 한 달란트는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돈 입니다. 이런 달란트를 누구에게 몇 개를 맡겨주시느냐는 하나님의 주권이야! 그리고 우리가 보기에는 왜 난 공부 못할까? 왜 난 저 사람처럼 얼굴이 예쁘지 않을까? 왜 나는 저 사람처럼 힘이 세거나 수완이 없을까? 고민 하지만 하나님은 각각 그 달란트를 다르게 주심으로써 질서들을 형성하고 그 각각 다른 달란트들 때문에 사람들이 어울리면서 살아가게끔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죠. 그래서 건축은 잘 하지만 요리는 못하기 때문에 음식점 사람들이 먹고 살고 요리는 잘 하지만 법적인 문제는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돈 벌어서 변호사를 먹여 살리는 거거든요.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질서를 형성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나에게 얼마를 주셨는데 왜 나에게는 이것밖에 안주셨을까? 그걸 가지고 고민을 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은 악한 것이에요.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생각하고 그리고 내가 부족한 것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대신 두 달란트를 내가 받았으면 다섯 달란트를 남기지 못 하는 것 때문에 고민하다가 한 달란트도 못 남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받은 것만큼 이라도 잘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달란트는 적용을 하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천적인 재능도 포함되지만 특별히 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을 기회로 해석을 해요. 기회, 나에게 섬길 수 있는 기회, 봉사할 수 있는 기회, 직업 활동을 하며 살아 갈 수 있는 기회 또 가정을 주셔서 내가 부모가 되고 자녀가 되고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될 수 있는 기회, 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되고 실장이 되고 간사가 된 그런 기회, 그걸 가리키는 거죠. 또 문제가 있는 시대에 태어난 기회, 그걸 가리키는 거죠. 그거를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시지 않으셔요. 어떤 사람에겐 더 많이 주시고 어떤 사람에겐 덜 주시는 거죠. 그런데 오늘 여기에 보면 주인이 칭찬하는 것이 세 가지로 나와요. 잘 하였도다. 잘 하였도다, 라고 하는 거 에요. 그게 뭐냐 하면, 달란트를 맡은 사람의 가장 중요한 것은 잘----하는 거 에요. 근데 사람들이 이게 거꾸로 돼. 그래서 뭐라 그러냐 하면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은 안중에도 별로 없고 나 상처 많은 사람입니다! 나 좀 사랑해 주세요!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죠! 나를 긍휼히 여겨 주세요! 그러고 들이 미는 거 에요. 근데 이상하게 잘 하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쉽게 경험되지 않아요. 제가 몇 년 전에 성화와 헌신이라는 시리즈로 사경회를 했어요. 나에게는 굉장히 도전이 되는 시리즈였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은 잘 하는 사람들, 잘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그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그들에게 변화를 주시는 거 에요.
근데 사실은 이렇게 설명을 해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하나님 앞에 나를 긍휼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과 자기 연민의 마음은 틀리는 거 에요. 자기 연민의 마음은 하나님이 참 싫어하시는 마음이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시고,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면 상한 감정에 빠지기는 하는데 하나님을 갈망하지는 않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 뭐냐 하면, 자기 연민에 깊이 빠지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없어요. 자기 연민에 빠질 때는 사람이 마음이 굉장히 약해 보이는 데도 하나님을 향해서는 원망하는 마음과 불순종하는 마음이 아주 굳게 마음이 굳어지게 되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잘 하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디밀면서 나 상처 많은 사람이고 나 괴로운 사람이니까 나 좀 사랑해 주시라고 그러고 하나님 앞에 디미는 거 에요. 위로 못 받아요. 제 경험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런 거 경험해 본적 있죠. 어떤 감정으로 말미암아서 자신이 비감해져서 눈물이 막 흐르는데 기도는 안 될 적 있죠. 그런 적 없어요? 너무 비감하고 비참하고 그래서 눈에서 눈물이 막 흐르는데 이상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는 안 되는 적 있죠. 그게 바로 자기 연민이에요. 그러면 안돼요.
그래서 뭐냐 하면 잘----해야 돼. 잘----해야 돼. 하는 거는 마음이 없어도 할 수 있어요. 근데 잘--하는 거는 마음이 그리로 향하지 않으면 절대로 잘-- 할 수 없어요. 하다못해 설거지 하나를 해도 건성으로 하는 사람과 마음이 있어서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차이가 있는 거죠. 그래서 고민을 해도 일 하면서 고민을 해야 돼요.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설교자들을 깨우는 강연을 많이 하셨잖아요. 목사와 설교나 성령세례 이런 것들을 읽어보면 결론은 뭐냐 하면 성령 받지 않으면 하지마라 이거거든요. 그 강연을 들으면서 많은 목회자들이 고민에 빠졌어요. 자기에게는 그런 게 없는 거 에요. 그래서 목사님께 물었어요. 목사님 저는 처음 시작부터 잘못 됐거든요. 저는 하나님을 깊이 만난 적도 없고, 그러면서 인제 쭉 말하는 거 에요. 저는 이제 목회를 접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처음부터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의외로 목사님이 뭐라 그러냐 하면은, 하면서 고민 하십시오. 지금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그것을, 내일도 설교하고 다음 주에도 설교하면서 고민 하십시오. 당신이 변화될 것입니다. 그만두면 그런 고민 자체가 없어져 버리는 거죠.
그래서 저는 미끄러지는 교역자나 직원들을 많이 봤어요. 얼마나 많이 나와 함께 섬겼겠어요. 그중에 충성스럽게 잘 하다가 하나님이 인도하신 사람도 있고 미끄러진 사람도 있는데, 미끄러진 지점이 대게 뭐냐 하면 그거에요. 저같이 능력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 일만 맡아서 주님께 손해를 끼치는 것 같다고, 그러는데 사실은 그것은 그냥 이야기일 뿐이고 잘--하고 싶은 의욕이 없는 것이에요. 오히려 부족해도 잘-- 하려고 그 자리에서 정---말 애를 쓸 때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에 은혜를 내리시는 거 에요.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바라기 때문이에요. 잘----해야 돼요. 근데 우리는 마음의 악의만 없으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렇게 생각 하거든요. 양심에 찔리지 않으니까, 돈을 훔쳤다든지, 누구를 미워했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잘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깊이 죄송해 하고 그러지 안찮아요. 근데 그건 잘못된 거 에요. 그건 잘못된 거죠.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한데 우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잘----하려는 선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된다. 또 하나는 뭐냐 하면 끊임없이 자기가 섬기는 그 일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야 되는 거 에요. 그래야지만 잘----할 수 있는 거죠. 그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잘----해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거 에요.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요.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요.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돼야 돼요. 직장에서도 보면 사표를 낸다고 그러면 마음속으로 굉장히 기쁜 사람이 있고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사장이 큰일 났다 이러는 사람이 있다 이거죠. 그 차이가 어디에 있겠어요. 잘----하는 사람, 니가 가면 너 같은 사람을 내가 어디서 찾을 수 있겠니? 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오늘 이 주인이 칭찬을 하는 거 에요. 잘----하였도다. 너무나 잘-----한 거 에요. 우리가 하나님이 보실 때 그런 사람이 돼야 된다 이거죠. 잘-----하는 사람.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착한 사람이라는 거죠. 우리의 내면이 어떠한가에 의해서 우리의 행동도 나오지만, 반대로 우리가 하는 일에 의해서 우리의 내면이 형성이 되는 거죠. 우리들이 잘----하려고 하면 우리가 계속 착한 사람이 되는 거죠. 왜 착한 사람이 되는지 설명을 할 테니까 들어보세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아무렇게나 대충 하려고 하면 언제나 그 일은 우리 능력 안에 있어요. 왜냐하면 대충 하는 것 자체가 내 능력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런데 잘-----하려고 하다가 보면 그 잘----이라고 하는 목표는 내 능력 밖에 있을 때가 너무 많은 거 에요. 무슨 뜻인지 아세요? 예를 들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줄을 하나 그어라 그러면 탁자위에 올라가서 색연필로 죽-- 잡아당겨서 그으면 그어요! 그런데 책상을 통과 하면서 모든 지점이 90도가 되게끔 줄을 그어라 그러면 그 다음에는 인제 이게 우리 힘으로는 잘 안 되는 거 에요. 도구가 필요하죠? 분도기가 필요하죠? 좋은 구리스 펜이 필요하죠? 이렇게 하면서 누군가가 여기서 붙잡아 줘서 줄을 그어서 똑같이 그을 때 이 탁자 세 개의 중간을 지날 수 있는 거죠. 우리의 능력을 벗어날 때가 많은 거 에요. 그런데도 잘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어! 그러면 결국 거기서 자기가 한없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는 거죠.
추사 김 정희 라는 사람이 독특한 추사체를 완성하죠! 그것도 완벽하게 독창적인 것은 아니라고 그러데요? 근데 한창 추사체라고 하는 힘 있는 글씨체를 완성을 할 때에 그가 그런 고백을 해요. 이 붓 하나 오고가는 글씨 하나에 말하자면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간다는 거 에요. 바둑판은 이쪽에 열아홉 줄, 이쪽에 열아홉 줄 이에요. 그런데 바둑을 많이 둔 사람들 이야기는 뭐냐 하면 처음에 둘 때에는 바둑판으로 보이지만은 한참 바둑을 두다가 실력이 늘면 바둑판이 좁게 느껴지는데 단수가 올라가서 바둑의 심오한 도를 터득하게 되면 이 돌 맹이 하나 딱 내려놓을 때 중원과 같이 넓은 벌판으로 보인다는 거 에요. 그 점 하나에 외로움을 느낀다는 거 에요. 그렇게 잘---하여야 되겠다고 하는 세계는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이라 이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자꾸 능력이 없다 힘이 없다 그러는데 사실 중요한건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힘이 아니에요.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시면 우리가 힘이 없어요. 이미 맡겨 주실 때에 하나님 앞에 의지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는 보증이 이미 있는 거 에요. 이미 있는 거란 말이에요. 이미 있는 거 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어떤 일을 하나님께서 맡기시면 자기가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재는 거 에요. 아! 나는 이것도 못하는데, 이것도 못하는데, 이것도 못하는데,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하나님은 그런 걸 원하시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잘----하는 것이 자기의 능력 밖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되는 거 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가 우리의 마음이 가장 착해지는 때에요. 주님이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할 수 없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아---주 낮아질 때 그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거 에요. 그게 착한 마음이에요. 그게 반복해서 계속 일어나요. 왜? 잘---하기 때문에... 그러면 착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하나님을 의지 할 수밖에 없게 되죠.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화날 때가 언제냐 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 최선을 다 했는데 안 되는 거, 여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자유로와요. 왜냐하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어떤 때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줘도 나는 거기까지 밖에 못한다, 그런 일이 있어요. 예를 들자면, 교회 건축 같은 게 그래요. 잘못한 부분들도 있는데 다시 한 번 기회를 줘도,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그렇게 밖에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서는 자유로와요. 근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렇게 잘----하여야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잘----감당하려고 노력을 하면 착해 지는데, 아무렇게나 해야 되겠다고 맘을 먹으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잘-----해야 되겠다는 목표가 없이 일하게 될 때 일을 하면 일을 할수록 사람이 나빠지는 거 에요. 아마 여러분 보셨을 거 에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 있어요. 마음이 아주 악해지고 모질어지는 사람들을 보셨을 거 에요. 그렇게 되는 거 에요.
세 번째로는 뭐라고 했냐면, 충성된 종아!!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거는 착한 성품이 사람에게 대한 것이라면 이 충성스러움은 하나님을 향한 거 에요. 하나님께 향한 사랑이에요. 그것이 섬기면 섬길수록 계속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거죠. 이런 경우 보셨죠? 섬기면 섬길수록 허해지고 그다음에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은 때 있죠? 그래서 어떤 반성이 드냐 하면 내가 이렇게 사역하는 것이 가한가!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이것을 그만두고 쉼의 시간을 가져야 되겠다 하고 사역의 손을 놓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었던 그나마도 반성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러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이런 갈망하는 마음 자체의 불이 딱 꺼지는 거 에요. 어.. 존 오웬 목사님이 자기의 책속에서 하나님 앞에 신자의 마음이 아주 비상하게 강팍해지는 때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순간에 강팍해지는 때가 있는 거 에요. 근데 그 원인을 몇 가지 드는 가운데 그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맡기신 의무에서 이탈할 때, 하나님이 맡기신 의무에서 이탈할 때 급속하게 확 굳어지는 거 에요. 그것은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그래요. 하나님의 징벌의 측면이 있다는 거 에요. 그게 바로 오늘 여기서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충성된 종아 라고 하는 것에 대한 정 반대의 상황이에요. 그래서 정----말 섬기면 섬길수록 주님 사랑하게 되고 주님 의지하게 되고 그런 거 에요. 어려움이 많아도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것과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딴 곳으로 가는 것은 틀려요. 그거는 다른 거 에요. 그래서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정--말 착하고, 그렇게 충성된 종,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랬잖아요? 그게 바로 하나님 일을 하는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그거에요.
근데 나는 13년 동안 이렇게 섬기면서 정----말 질겨요. 그렇게 형편없고 어떻게 보면 가시 같은 성품도 있고 이러던 지체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아---주 아름다운 인격으로 변해가요. 아---주 변해가요. 그러는가 하면 마음이 강팍하고 굳어져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훨씬 더 멀어지는 사람들도 만나게 돼요. 그런 것을 보면서 이 주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시는 명령이 얼마나 진실한 것인가를 발견하게 돼요.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뭐라 그러느냐 하면, 두 가지 복을 주시는 거 에요.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찌어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제일 나쁜 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자기 즐거움에 빠지려고 하는 거 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이 없이 자기를 만족하게 하는 그것에 빠지는 거죠. 근데 그것은 나쁜 것이에요. 그래서 자기의 이익, 그것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나쁜 거 에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 나간 교회가 평화 교회라는 교회인데, 미아리 삼영동 고개 언덕 올라가는 거기에 있는데 거기를 우리 고모들 등에 업혀서 거기를 다녔어요. 서라벌 예대 있는 맞은편 쪽인데, 거기에서 위쪽인데, 그 교회를 어려서도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데 한 세 살, 네 살, 다섯 살 그때였던 것 같은데... 그 후로부터 한 삼십여 년 지나서 제가 그 교회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참 감회가 무량 하더라 구요. 근데 그 교회를 목회하던 목사님이 참 고생을 많이 하시면서 그 교회를 개척하셔서 공동묘지에다가 교회를 개척하셔가지고 그렇게 큰 교회를 일구셨는데, 그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셔요. 뭐냐 하면, 자기는 교역자들에게 이야기 한다는 거 에요. 직원들과 교역자, 거기도 뭐 교인이 한 사천 명 모이니까 교역자, 직원에게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거 에요. 금년 한해에 우리의 사역을 농사로 생각한다면, 1월 달에 생활비를 딱 받았을 때 섭섭한 마음을 품는 다면 그해의 농사는 망친거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받들면서 한해를 봉사해야 하는데, 사례비를 딱 받았을 때 내가 ‘나를 이것밖에 안주나’ 하고 섭섭한 마음을 가슴에 품으면 하나님이 처음 사명에 섰을 때 그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 하시면서 복을 안 주신다 이 얘기에요. 40여년 이상 목회를 하면서 자신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경험을 했다 이 얘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즐거움 그 자체를 내가 일하는 것에 대한 댓가, 대우, 이런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내가 힘을 보태어서 이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잘----이루어져서 주님께 영광을 돌렸는가! 거기에서 내가 기쁨을 느끼고 만족을 느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죠. 이렇게 하나님 때문에 잘---하고 하나님 때문에 부족해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주님 앞에서 착하게 된 사람들은 절---대로 많이 섬긴 후에 가슴에 한이 남지 않아요. 근데 굉장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데 세월이 흘러간 다음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하고 보면 이안에 한이 많어. 그것은 뭐냐 하면 충성스럽게 일을 열심히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충성스러운 삶을 산 게 아니에요. 충성스러운 삶은 하나님을 향한 삶이에요. 네가 정---말 많이 애쓰고 일했구나. 제가 주님을 섬긴 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늘 주님의 교회를 아프게 하고 힘든 기억 밖에는 없습니다. 이 고백이 나오는 게 주님 때문에 봉사한 거 에요. 주님 때문에 봉사한 거 에요.
근데 순간이더라고, 순간... 어느 한순간에 교인들이 나를 섭섭하게 대한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어느 한순간에 확-- 마음이 상하면서 이제껏 내가 섬겨오면서 손해를 보았던 일, 희생했던 일, 이런 것들이 아프게 확-- 다가오는 거 에요. 그때에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은 마음을 떠난 섬김이 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여기 보내셨을 때, 교회가 우리를 부른 것도 아니고, 담임목사가 부른 것도 아니고, 행정목사가 부른 것도 아니고, 그게 뭐냐 하면 각자 하나님이 불러서 여기에 있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잘----해서 나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잘----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기뻐할 수 있어야 돼요. 무화가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우리에 양떼가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 없어도 나의 작은 섬김을 통해서 참 잘---- 이루어 졌다. 아멘-----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는 거 에요.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행복이에요.
마지막으로 하나의 더 큰 복을 주시는데, 더 큰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그랬어요. 더 많은 것을 하나님이 맡겨 주시겠다고, 주인이 얘기하는데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죠. 절-----대로 하나님은 무명으로 있던 어떤 사람에게 갑자기 어마어마한 큰 일을 맡기지 않으셔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그가 어떻게 감당하는지를 하나, 하나, 하나, 하나 보시면서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욱더 크고 많은 것으로 맡겨 주시는 거 에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는 것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뜻이에요.
나는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심지어는 신학교 선생이 된 후에도 내가 이렇게 글을 써서 한국 교회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하나님이 내게 주실 것이다, 나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 그런 거는 상상도 한 적이 없어요. 그저 하나 꿈꾸는 것이 있다면 내가 진실하게 잘----해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하는 정도였고, 후에 은혜를 받고 나서는 내가 삼천리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간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서 그래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정도의 소원이었어요. 그러나 그 후에 하나님께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지금도 이렇게 글을 계속 쓰면서 살아요.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저의 글을 통해서, 열린 교회의 설교를 통해서 목회의 정신을 세우고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세워요. 그래서 어떤 때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뭐냐 하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큰일들을 맡기셨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는 거죠. 하나님은 작은 것으로 우리를 시험 하셔요.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생생한 경험인데, 90년도의 일이었어요. 그때에 요만한 책자 하나를 만들고 있었어요. 학교에서 심포지엄을 했는데, 교회의 회복에 관한 심포지엄 이었어요. 세 발제자가 나와서 발표를 하고 그중에 한사람이 나였는데 그걸 발표를 한 다음에 이상하게 그거를 출판할 정도까지는 뭐 아직 그런 실력은 안됐고, 작은 책자라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라는 마음을 갖게 하셨어요. 근데 너무 코피가 날 정도로 힘든 생활인데, 그때 라이커 타자기라고 해가지고 이렇게 테잎이 지나가고 치면 리본을 때려가지고 이렇게 타이프가 쳐지는 그런 거였어요. 그러니까 각주를 쓸려면 그걸 줄을 계산을 해서 돌려서 치고, 하여튼 굉장히 복잡하죠. 근데 어쨌든 그거를 타이프를 치면서 하게 됐어요. 근데 인천이 집이었는데 강의하고 뭐하고 학교 다니고, 도저히 시간이 안나요. 어느 하루는 이거를 타이프를 치는데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이거 그만 둬버릴까? 내가 이걸 해야 될 의무가 어디 있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이 이 일을 정말 기뻐하신다는 생각이 드는 거 에요. 그래서 몇 칠에 걸쳐서 혼자서 또드락거리면서 타이프를 쳐서 요만한 책자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 한 일주일 동안 그 일을 하는데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그 일을 할 때 내가 기도하는 것 만큼이나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내 마음에 느껴지는 거 에요. 아주 선명하게.... 지금 나는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게 많은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어요.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 놓은 책자를 받고 은혜를 받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김 경해 전도사였어요. 이쪽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강의안이 남아서 저쪽 학교에 갖다가 팔았어요. 그걸 또 팔겠다고 그 덜덜거리는 차에다가 싣고 간 사람이 진 광혜 집사였어요. 그래서 거기서 팔았는데, 그 타이프 친 책을 사가지고 가서 읽으면서 은혜를 받은 사람이 김 경해 전도사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작은 것에 아주 훌륭하게 충성 할 때 하나님이 더 많은 것을, 더 많은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십니다. 전 세계를 흔들어 놓은 전도자, 디엘 무디가 직접 전도한 사람이 백만 명이 넘는다고 보는데, 원래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작은 주일학교 한 클라스 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큰 것들을 맡겨 주신 거 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아주 작은 거 같고 하찮은 거 같을지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가 충성스럽게 하면 지경을 계속 넓혀 주셔요. 그 연구실에서 똑딱거리고 이렇게 두드려서 오백 부, 천부 만들어서, 천부 까지도 못 찍죠. 이백 부, 삼백 부, 오백 부 만들어서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때에 내 책이 일 년에 수십만 부씩 그렇게 팔려서 사람들의 가슴에 감화를 주고 그들의 가는 인생의 길들에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하나님께서는 꼭 그렇게 작은 것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큰 것을 맡겨 주셔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제껏 까지 우리의 길을 인도 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인도하시는 거 에요. 그겁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자기의 현재 위치와 자리에 대해서 불만을 느끼면서 그렇게 뒤로 물러서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거죠.
하나님은 일의 크기를 보면서 사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일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태도, 태도 때문에 기뻐하시는 거 에요. 나는 그런 생각을 해요.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그러셨거든요? 이새의 아들 다윗이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앞으로 합해질 거다! 그게 아니라. 지금 지금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지금 그렇다는 거거든요? 근데 이새의 아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하다 는 인정을 받았을 때 뭘 하고 있었어요? 장군도 아니었고 무슨 정치가 중에 국회의원이 된 것도 아니었고 따르는 무리들이 있어서 무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싸움터에 나간적도 없었어요. 그냥 양떼 치는 이름 없는, 아버지도 자식이라고 별로 인정을 해주지 않는 무명의 목동이었어요. 근데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그는 내 마음에 합하다 그러셨거든요.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절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일의 크기로는 하나님께 감동을 드릴 수가 없어요. 그 일은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아무리 위대하고 커도 그것은 하나님께 감동을 드릴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는 것은 일에 대한 태도에요. 태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시는 거 에요. 양떼를 치는데, 우리 같은 이렇게 성직과 세속 직이라고 갈라서 이야기 한다면 이새의 아들 다윗은 하나님의 일을 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의 일을 한 적도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다 는 인정을 받은 거 에요. 뭘 하며 살았겠어요? 아니 짐승들 데리고 가서 꼴 먹이고, 그리고 저녁때가 되면 들어와서 우리에 가두고, 똥 치우고, 돌봐주고, 가축 돌보고, 맹수와 싸우고,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고, 가축이 질병이 걸렸는지를 보고 치료해 주고, 아니 그렇게 하면서 살았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성경에는 자세히 안 나오지만 틀림없이 양떼를 몰고 목초지를 찾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생각하고, 짐승들이 잠든 밤이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맹수들의 공격으로부터 자기의 가축을 지키면서 그러면서 하늘의 별을 보고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노래하고 그렇게 살았을 거 에요. 근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니까 하나님이 양 치던 목동을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목자를 삼으시잖아요.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그래서 충----성되고 훌륭하게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거 에요.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을 잘-----해야 돼요. 그거는 도와 줄 사람이 없어요. 신앙생활을 잘-----해야 돼요. 충성스럽게...... 그래야지만,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착하고 충성되게 잘----해서 더 큰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고, 더 큰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우리의 삶의 가치는 양상이 아니에요. 양태가 아니라 본질이야! 하나님이 보실 때에 정말 아름답게 그렇게 살아가면 그게 성공한 인생이고 아름다운 인생이야! 세상 사람들 다 알아도 주님이 모르신다고 그러면 그건 잘 사는 인생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몰라도 주님이 나를,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해 주시고, 네가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니 더욱 큰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 잘---했다! 착하구나! 정----말 충성 되구나! 라고 인정해 주시면 거기에 우리의 충분한 위로가 있는 거 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들이 살아가야죠. 살아가야 되죠.
섬기면서 어떤 때는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고, 담임목사인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여러분은 왜 안 들겠어요! 그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세요. 내가 교인들이 불러서 목사가 되었나? 내가 교회가 불러서 목사가 되었나? 아니죠! 그러니까 그런 것들로 인해서 섭섭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자기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 에요. 중요한 거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신 거 에요. 그래서 나는 나의 갈 길을 모르지만은 아직은 하나님이 여기 있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감사하면서 어렵고 힘들 때가 많이 있지만,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인내하고 또 견디고, 또 견디고, 또 믿고, 또 바라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거 에요. 14년을 달려 왔는데 한 번도 이 자리가 내 자리다, 목회의 옷을 탁 입었을 때 이게 나한테 딱 맞는구나, 어디 가서 내가 이거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느껴 본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아침에 눈뜨면 밤에 잠들 때까지 내 옷이 아닌 거 같고.....(찬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 하여도...... , 어떤 때는 근심이 많이 되고 괴로운 일이 있어요 집에서도 말을 할 수가 없고, 교역자를 만나서 말 할 수도 없고, 직원들을 만나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웃으면서 지내야 되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내 마음에 슬픔이나 괴로움이 없는 줄 알고 목사님은 참 여유롭구나! 그렇게 생각 할지 모르지만은 사실은 마음속으로는 한없는 괴로움 속에서 6개월 동안을 눈을 감으면 다시 뜨고 싶지 않았어요. 6개월 동안을 이제 제가 충분히 살았으니 내 생명을 거둬 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러면서도 항상 잊지 말아야 되는 것은 여기에 하나님이 나를 세워 주셧고 아직은 그만둬라--- 그러시지 않으시는 거 에요. 종은 주인 맘이야! 자기 맘대로 하겠다, 못하겠다, 그다음에 그만 두겠다, 그거는 주인을 향한 아주 중대한 모독이죠! 그런 태도를 하나님이 제일 슬퍼하시죠. 잘----하고 싶은데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지혜를 주십시오, 능력을 주십시오, 물질을 주십시오, 건강을 주십시오, 이런 걸 안주시면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과, 전혀 틀린 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 순간 그렇게 의지하는 거 에요. 그래서 걸어가는 길이 고난이 많고 괴로움이 많아도 그래서 주님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거 에요. 그러면서 흘러가는 거 에요. 우리의 이 일은 직장생활이 아니에요. 정말 아니고, 많은 외로움과 괴로움, 그런 것과 더불어 싸우는 거 에요.
이번에도 직원들, 교역자, 20명 가까이 정리하면서 얼마나 괴로운지 내가 그랬어요. 차라리 내가 짤렸으면 더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내 평생에 이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지! 너----무 너무 아퍼요. 그렇게 걸어가는 길이 우리의 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모든 동기가 우리에게 주는 사례, 대우 그런 것이 되어서는 안돼요. 종종 같이 일하던 교역자나 직원들이 자기 일을 그만 두면서 장래성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하나님은 단순한 사람들을 좋아하셔요. 주님이 말씀하시니 내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는 단순한 순종.... 그러면 지금 내가 이렇게 보내고 나면 나중에 나의 삶이 어떻게 될까?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주 놀랍고 정교하게 준비하고 계셔요. 그리고 손해나게 하시는 법이 없어요.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래서 이제부터 기도 제목을 바꿔봐! 어떻게 바꾸냐 하면, 제가 몸이 약해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지혜가 없어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 제게 물질이 없어서 섬길 수 없습니다, 저는 원래 재능이 없어서 이걸 못합니다, 사명감이 더 있는 사람이 제 자리에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기도 하지 말고 주님이 여기 세워 주셨는데 나에게는 이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주십시오, 건강이 없습니다, 건강을 주십시오, 물질이 부족합니다, 물질을 주십시오, 지혜가 모자랍니다, 모든 것을 후히 주사 꾸짖지 않으신다고 하셨으니 내게 지혜를 주십시오, 나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여기에 세워 주셨으니까 돕는 일꾼들을 내게 붙여 주십시오. 그렇게 해야 돼요. 하나님이 얼마나 예쁘게 느껴지시겟어요. 이렇게 직원들이 담임 목사인 나에게 요구 사항을 할 때에도 두 종류의 사람으로 딱 분류가 돼요. 그게 뭐냐 하면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이렇게 해 주십시오 라는 사람이 있고, 꼭 그렇게 하고 싶은데 자기가 있는 자원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되기 때문에 도와달라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그것은 한순간에 가슴에 다가와요. 그러면 모든 것을 다 걸고 밀어주고 싶어요. 도와주고 싶어요. 주위에서 반대를 해도 뿌리치고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요. 하나님도 꼭 같은 마음이세요. 제가 잘------할 거거든요? 근데 하나님 나에게 은혜가 필요합니다. 건강이 필요합니다. 물질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바쳐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요. 너무 너무 놀라우셔요. 너무 너무 놀라우셔요. 하나님이 도와주셔요. 그게 하나님의 역사에요. 도와주셔요. 아----주 놀랍게 도와주셔요. 14년간 살아온 이 목회 생활이 그거의 연속이었어요. 너----무 너무.... 도저히 할 수가 없어요. 근데 이 일을 해야 되는 일이야.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셔. 하나님 난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나를 어떻게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신기하게 돈이 없을 때는 돈을, 사람이 필요 할 때는 기가 막힌 사람들을 보내주시는 거 에요.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이 어쩌면 그런 나의 기도의 응답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씩 보내주셔요. 그래서 감당 할 수 있게끔 하나님이 능력 주시고, 힘을 주시는 거죠. 정말 놀라워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죠.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주위에 있는 목회자들이나 특히 신학교의 교수들이 내 사역을 이렇게 보면서 되게 궁금해 해요. 두 번 놀라요. 뭐냐 하면은 그렇게 바쁜 속에서 내가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교회 와서 돌아보고는 어느 교회보다도 목사님을 도와주는 사람이 요소, 요소에 잘-----배치되어서 헌신한다는 거, 그걸 보고 놀라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나의 이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사역에 동참하게 하셨어요. 여러분들이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이 놀랍게 여러분들에게 더 많은 것으로 맡겨주실 거 에요. 그리고 정-----말 영광스럽게 그렇게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게 해 주실 거 에요. 그걸 믿으면서 살아가는 거 에요. 그것이 신앙생활이에요.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