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 교역자 세미나 1
오늘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영적 성장과 두 번째,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 세 번째, 사역의 축복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1. 영적 성장
우선 첫째, 자기 자신이 섬기면서 아무리 힘들고 역경이 와도 자기 자신의 신앙에 성장이 있으면 힘들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1학년일 때는 힘들지만 2학년일 때는 힘들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영어공부는 그 글자크기가 학년이 올라 갈수록 작아지고 어려워지지만 차근차근 학년이 올라가면 어렵다는 생각이 어느새 들지 않습니다. 신앙의 성장이 있으면 어려움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역에 실패했다고 하는 것은 개인적인 신앙에 실패했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신앙이 계속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거기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결국은 개인의 영적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지적인 내용을 아는 것으로부터 자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는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식은 공부를 통해 습득하고 은혜는 기도를 통해 공급을 받는 그런 이분법적 원리가 아니라 이 두 가지가 한 인격 안에 함께 엮어지면서 성장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은혜가 지식에 의해 온전해 지고 지식이 은혜를 불러 옵니다.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지만 성령이 기도 속으로 인도하심을 체험하고 나면 기도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은혜를 통해서 지식이 풍부해지고 또 체험이 없다고 해도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체득하고 터득한 진리에 대해서 은혜를 경험할 때 그 진리의 지식이 어떤 것인지 명확한 이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식에 있어서 한 해 동안 얼마나 성장을 했는가, 성경 자체에 대해 지식이 얼마나 늘어났고 그 뿐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신앙 보다 지식이 얼마나 더 높아지게 되었는가 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무지한 사람들을 다루는 능력의 향상을 의미합니다. 무지한 사람들을 다루는 능력이 얼마나 지적으로 준비되어서 성장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한 번 점검을 해보고 성장했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년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눈물이 날 정도로 없지만 그래도 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정신 차려서 말씀을 듣고 말씀을 아는 지식들이 축적되어 가도록 그 지식들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경을 더 깊이 탐구하고 설교를 들으면서 성도들을 실제적으로 돌볼 수 있는 지식들을 많이 습득해 가라는 것입니다. 준비가 잘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로 보내셔도 훌륭하게 감당을 해 나 갑니다. 그래서 항상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사역을 하면서도 항상 미래를 준비해 나가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미래가 자기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말씀을 탐구해 가면서 말씀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시험에 든 사람은 어떻게 붙들어 줘야 하는가, 기도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그리고 회심한 사람들이 은혜 안에 사는 비결은 무엇인가, 기독교 진리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이 어떻게 영적으로 새로워 질수 있는가, 또 죄 가운데 빠져 있어서 영혼의 깊은 침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일어서서 돌아서 나올 수 있는가, 그런 등등의 것들을 탐구하면서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중요하고 또 그런 것들을 통해서 지식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은혜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구약에서 성령의 일반적 사역은 사람보다는 일을 중심으로 하는 사역이어서 필요하면 그 사람에게 오셔서 일을 하시고 떠나가시는 그런 역사였고, 신약에서는 믿는 순간 성령님이 우리 안에 보혜사로서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인격을 가지신 그 분이 인격을 가진 우리 안에 오셔서 두 인격이 우리 안에 있어서 한 인격이 어느 한 인격을 파괴하거나 짓밟는 일 없이 우리가 우리들에게 하는 것을 방해 하지 않으시면서 우리를 인도하고 지도하신다. 구약에 보면 두 성령의 경험사이에 있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뭐냐하면 성령님이 오시는데 신약시대처럼 인격적으로 내주하시는 것은 아닌데 계속해서 강하고 따뜻하고 어떤 축복된 힘으로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느끼는 그런 인격적인 것은 못 느꼈지만 그런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다윗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특별한 사람들이었고 기름 부음과 함께 성령이 임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많이 알아갔고 첫 번째 사람들과는 달리 두 번째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떠나가심으로 엄청난 재앙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 자신을 버리는 것으로 묘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대표적인 경우가 사울로 신약과 구약 중간에 속하는 사람이다.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서 떠나시므로 악 신이 그에게 임해 비참한 말로를 마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에게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삶은 크나 큰 축복이다. 성령의 은혜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우리들이 주님을 닮아가게 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화라는 것 자체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현상이고 우리의 죄된 성품에 영향을 미치는 성령님의 사역이기 때문에 성령의 은혜 속에 살아가지 않고는 영적인 성장을 바랄 수 없다.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게 하는 한 요소인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삶은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아주 민감하셔서 우리가 슬픈 생각을 하고 그러는 것만으로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시는 분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고 신앙을 관리하면서 생명 가운데 잘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영적으로 계속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있어서 진보가 있었는가, 물론 사역 중에 낙심되는 것 때문에 영혼을 힘들게 해서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하나님이 나를 바닥에 내던지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것은 모두 과정입니다. 그것을 모두 극복하고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혜 안에 친밀함이 증진되었는가 아니면 퇴보되었는가 할 때 만일 퇴보되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이 뒤로 미끄러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다스리고 하나님이 특별히 나에게 사역을 맡겨준 사람이라고 생각 하면서 자기를 잘 다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년 한 해는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내년 한 해도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증진되는 그러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으면 좋겠다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
두 번째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인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그 자체도 성령의 은혜와 진리를 섞으면 저절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 안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음식물이 우리에게 칼로리를 공급해서 힘을 내게 만들어 줍니다.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면 의욕도 없고 생각도 골몰하게 하기 힘들 정도로 지칩니다. 음식 그 자체가 힘이 아니고 소화 작용을 거쳐 영양가 높은 음식의 즙들이 위장을 통해 흡수되고 그것들이 핏속에 들어가면서 체액이 되고 체액이 핏 속에 들어가면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교회지체 하나가 완전히 육체가 완전 침체 상태에 있었는데 교인 중 하나가 나에게 링거를 하나를 가져와 투약해 보라 한 것이 있어 그것을 병원 근무하는 자매를 시켜 맞게 하였다. 신기하게도 아플 때 링거를 맞으면 15분 후면 안 아프기 시작한다. 정말 거짓말 같다. 그렇게 아미노산이 들어가면서 뼈 마디 사이를 괴롭히던 병원체들이 더 맛있는 아미노산을 찾아서 들어가고 흩어집니다. 흩어진 다음 연약한 부분이 양분에 의해 보강되어서 다음에 와서 공격을 해도 안전합니다. 이런 소화의 작용을 통해서 우리 몸은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비빔밥처럼 만들면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인격화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말씀과 성령을 공급 받아 그것을 우리 안에 소화시켜서 우리의 영혼 속에 골고루 퍼지게 만드는 소화의 작용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에 부어지지만 그것은 비인격적 힘으로 우리 영혼 속에 주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을 통해서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격체로서 지, 정, 의를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 자신을 추구하는 삶이 이루어 질 때에 우리가 진리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섭취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이 결핍될 때 좋은 지식이 주어져도 계속 우리의 머리 속에 쌓이면서 지적으로 교만하게 하고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항상 그것이 자기의 종교적인 열정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을 해버려서 소화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많이 체험하는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많이 깨달은 사람이 모두 지식에서 뛰어나다는 사실에도 동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지식과 성령의 은혜들이 울의 인격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자리한다는 사실들을 간과했기 때문에 그런 결론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가는 우리가 어느 방면에서 하나님을 추구할 수 있는가 라고 할 수 있으며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개인적인 경건에 있어서이고 둘째, 우리의 삶과 셋째,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진리와 성령을 토대로 자라간다는 것입니다.
A. 개인적인 경건
하나님과의 영적 생활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우리 자신의 마음의 불결을 회개로 씻어내고 믿음을 굳건히 하고 주님을 더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 그렇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위해서 제거하는 그러한 작업들을 꾸준히 해 나가기 위한 경건 생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속에 영향을 미치도록 묵상하거나 명상하면서 사는 것과 말씀을 부지런히 읽으면서 영혼의 양식을 삼는 것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사는 것 이런 삶에 있어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진보를 가져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건이라는 것 즉, 하나님을 향한 추구라고 하는 것은 오늘 주님을 추구했다고 해서 보상이 주어지거나 오늘 하루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일 우리의 사역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사역이나 실제적인 섬김보다는 이런 개인적인 경건을 추구하는 것을 소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경건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추구는 운동선수로 말하면 기초 체력과 같습니다. 골프나 당구선수, 탁구선수들이 모든 운동을 불문하고 기초체력을 연마하는 것은 동일하다. 골프 선수들은 벤치 프레스를 이용해 근육을 키우는 것을 금기시하고, 레스링 선수들은 벤치 프레스를 이용해 근육을 키우고 완력을 강화시킵니다. 그런 차이가 있어서도 기초체력을 보강하는 것은 모든 운동에 공통적인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건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자세나 삶의 질이라는 것은 영아부, 장년부, 유아부, 지역 전도사, 목사를 막론하고 똑같습니다. 즉 그 기본기에 충실하고 영혼의 유익을 많이 얻으면 부족한 부분들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구하면서 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적 재능과 후천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자신에게 딱 맞는 사역이 주어지면 좋지만 하나님은 대부분 우리가 자신 있게 잘 할 수 있는데 우리를 두시지 않고 가장 두려워하고 자신 없어 하는 부분에 세우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를 잘 변화 시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할 때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되고 어떤 자존심과의 싸움이 오고 이것을 사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지금은 모르고 살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소죽이나 끓이고 노예로 살았을 때 그것이 국무총리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성경은 그 과정이 필수적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기서 깊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주님이 자신을 이곳에 세우셨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은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위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려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많이 기도하고 말씀의 은혜 속에 늘 살아서 한 사람의 신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그러한 삶을 매일 매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B. 우리의 삶
우리의 삶이 철저해야 합니다. 교역자 중에 늦게 까지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고 새벽기도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그러면 경건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추구가 될 수 없습니다. 삶이 철저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경건에 있어서의 추구가 간절해 지고 열렬해 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삶을 잘 돌아보고 전에는 복잡하고 다양했는데 이제는 단순해진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추운 겨울에도 오목 랜즈로 종이나 옷이 타들어 가지만 초점이 모아지지 않으면 쨍쨍 내리쬐는 여름에도 타들어가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쓰셨던 사람 모세나 다윗이나 아브라함이나 예수님이나 요한이나 선지자들이나 모두 두 눈이 한 가지 목표에 고정된 타오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즐겨 사용하셨던 화법 중에 “너희부모와 아내와 자식을 미워하지 아니하면... ” 히브리 사람들의 표현 양식에 보면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다 미워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미움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하나에 집중됩니다. 관심을 분산시키면서 주님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삶이 재편되고 단순해져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음악을 좋아하거나 꽃을 좋아하거나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삶의 초점을 흔들 만큼 좋아하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취미생활 한두 가지는 정신의 배설구지만 너무 깊이 빠져 본래적 목표를 집중함에 방해가 될 정도로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취미이든 간에 절대로 안 됩니다.
예전에 전도사 한 분의 경우 예수 믿고 술도 담배도 모두 끊었으나 한 가지 야구를 끊지 못했습니다. 주일예배 후에 야구장으로 달려가 경기를 보고 돌아옵니다. 삶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고 살아가면서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길을 흔들어 놓을 만큼 충분한 휴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C.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추구
일이 일되게 하지 말고 신앙이 되게 하라! 그래서 일을 놓고 하나님에게 깊이 매달리고 일이 마쳐진 후 마쳐진 그 일 때문에 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일 때문에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신나야 합니다. 교회건축하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한 해 동안 백억, 삼 일에 일억이 지출이 된 것입니다. 교인 700명이던 시절에 건축 헌금을 했고 다시는 안 했습니다. 이것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었으나 지체들이 구하면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연한 기회에 생각지도 않은 사람을 만나게 하셔서 대출을 받게 하시고 더 싸게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게 하셨습니다. 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신앙이 더욱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일에 신앙으로 대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일 사이에 계셔서 역사해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재능이 많으나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사람은 영광이 잘 안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을 쓰셔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기를 좋아하시고 교제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동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을 통해 일하시고 그들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고 자신의 기쁨을 그들의 기쁨으로 나누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사역에 축복이 부어지는 비결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나라에 축복이 부어졌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사람이니까 요셉 자신의 재산이 아닌데도 요셉이 하는 일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도 아닌 애굽의 온 나라에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기뻐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고 계시는 일도 기쁨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모든 사람이 이러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가는 아픔이 없이는 결코 우리는 사역의 축복을 기대 할 수 없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냥 꾸려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 회심이 있을까요? 함께 일하는 동역자의 깊은 은혜가 있을까요? 은혜와 긍휼을 물 붓듯이 부으시는 하나님의 부흥의 방불함이 그 곳에 있을까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가는 아픔이 나를 깨뜨리고 그렇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를 관처럼 쓰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은혜를 흘려보내시고 싶어 하시나 관이 항상 막혀 있으면 하나님께서 닦아내십니다. 오래 예수 믿고 굳어진 사람은 하나님이 강하게 닦아내시고 결국 그 사람은 그 일을 관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가면 세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둘째, 자신의 사역의 축복이 되고 셋째, 더 소중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a.하나님께 영광
감리교의 설교자 에스펠이라는 사람은 이름 없는 교회에서 훌륭한 사역으로 유명합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도 노쎄턴 교회에서 말 못할 고난을 겪으면서 쫓겨나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와 교단에 걸출한 사람들이 쫓겨난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교단에서 거의 설교의 황제로 불리워지는 인천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굉장히 힘들게 쫓겨나다시피 한 생애를 사셨던 분이고 말할 수 없이 역경의 세월을 거친 사람들을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주님의 사람 만들어 가시면서 그 사람이 주님의 사람이 된 만큼 사용을 하십니다. 주님께 소중하게 쓰임 받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 모두 신학적 견해가 달라도 모두 머리가 숙여지는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만큼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 개인의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사역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b. 자신의 사역에 하나님의 축복
두 번째,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위해서는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닌 사역을 해야 합니다. 사역자들을 보면 처음에는 사역이 주어지면 뛰어들지만 어려움이 있을 때 하기는 하는데 마음 한구석에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길밖에 없을까, 관둘까, 이것을 계속 참아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면 마지못해 하는 사역이 됩니다. 그래서 선뜻 내키지 않는 것을 할 때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습니다. 기꺼운 마음이 아닌 것은 몸은 하는데 마음이 안 바쳐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어진 마음을 보시고 마음을 그 위에 기름을 부으시고 역사해 주시는 것인데 그래서 그 사람이 변화되고 그 배에서 생수와 같이 강이 흘러가는데 그 마음이 바쳐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해 주시겠습니까?
c. 하나님의 사역에 준비된 자신
어느 사역자 한 분이 그만 두면서 떠날 때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떠난다 하니 애석하다. 당신은 사역의 기간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앞으로 남은 생애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지만 당신은 한 번도 사역 한 적이 없다. 목사님이 보기에 당신은 별명을 붙인다면 머뭇거리는 서생이었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조금 지식이 부족한 것이 있어도 마음을 바치는 사람을 마음을 빼놓고 모든 것 다 바치는 사람보다 더욱 소중히 생각하시면서 그들에게 부어주십니다.
엄마들은 아이가 아플 때 그 똥을 퍼 다가 자세히 살피고 심지어 찍어 먹어 보기도 합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을 나온 후 사역이 아닌 것처럼 느낄 때 진리를 위해 피를 토하고 죽으라면 죽겠는데 전도사한테 왜 겨울에 수도를 얼렸냐고 하면서 집중 폭격을 하는데 나 자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항상 이기는 사람은 매 순간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손에 의탁하고 주님이 이곳에 자신을 세우셨기 때문에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마음 내키지 않음을 모두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는 마음의 원천은 모두 교만이고 영혼을 덜 사랑하는 것입니다. 시집 올 때 사 온 요강 속에 녹말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을 때 그게 누가 당뇨병에 걸린 것인가 싶어 만져 본 경험이 있습니다. 과천에서 <똥 전시회>를 했는데 거기에 “똥이 더럽다고 생각하시는 당신에게 똥 침을 놓아 드리겠습니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연단은 상황의 가혹함을 보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면에서 다듬어 지지 않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상황은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는 시금석입니다. 뭐냐하면 영적인 문제와 깊이 관련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저도 그러한 철저한 연단을 받았고 그래서 이제 갈탄 난로 여섯 개를 5분 내에 연기 안 피우고 불을 지핍니다. 지도자 자신이 기꺼운 마음이고 너무 좋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양 무리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축복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3. 사역의 축복
세 번째, 하나님이 어디에 축복해 주셔야 하는가 입니다.
먼저 영혼들에게 축복해 주셔야 하고 그 다음 동역자들에게 축복해 주셔야 합니다. 우선 동역자를 축복하셔야 하는데 목회자는 자신을 격려하는 열 사람에게 격려되기 보다는 자기를 싫어하는 한 사람 때문에 낙담이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런 어려움을 가진 목회자가 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져야 할 것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아부도 유화의 제스처도 아니고 잘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런 동역자들이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고 삐쳤을 때 어른 같은 마음을 가지고 어린 아이를 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토라진 것을 보는 것 같이 생각하면서 동등하게 대칭 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어서 그것을 안타깝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으면 저 사람들이 생각할 때 자기들은 목회자를 싫어하는데 목회자는 자기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러면 돌아 올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 요즘 내 욕하고 다닌다며? 내가 무슨 욕먹을 짓 했는데? 우리 한번 남자답게 오늘 이 자리에서 결판을 내 보자 ” 이러면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영원히 차단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보면 아주 싫어 하다가 적절히 그 문제를 다루면 아주 뜨겁게 사랑하는 관계가 되는 동역의 관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목회입니다.
그래서 저는 직원을 쓸 때 열린 교회와 목사에 대해 좋게 여기는 사람을 쓰지만 가끔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런 곳이 아니고 목회자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나면 그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 교정을 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사람들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축복을 하나님이 동역자들에게 부어 주시기 위해서는 동역자들을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인내입니다. 꺾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고 품어 준다는 것과 꺾인다는 것은 다릅니다. 꺾이지 않는 방법이 정면 대결을 통해 헤개모니를 쟁탈하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 처럼 휘어질 수는 있으나 꺾이지 않고 위쪽으로 금이 가버리는 경우를 말합니다. 절대로 꺾을 수 없습니다. 휘긴 휘나 절대로 꺾이지 않는 유연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경영할 때 정직하고 투명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예산도 바람직한가 합당한가를 따져보고 인터넷에 올려 등록 교인이 원하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나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