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수련회 저녁예배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시43:2下-3)
이 세상에서 신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늘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교통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저녁때 그런 생각을 잠깐 했는데 이렇게 수련회에 오면 저는 마음이 더욱 더 간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하루에도 한두 차례씩 마음을 다 쏟아 붙는 그런 교통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마음이 온전히 모아져서 정말 하나님만 바라면 살아야 되겠다라고 하는 소원을 갖게 되든지 혹은 기도를 통해서 마음이 이렇게 쭉 쏟아지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또 하나님 앞에 부족한 자기의 모습 때문에 깊이 감동을 받든지 이렇게 하는 것만이 영혼의 싫증을 없애는 길이고 신앙의 예민함과 열렬함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저는 지난 하반기에 목회 사역에 있어서 감사한 일 중에 하나가 있었다면 여러분을 향해서 제 마음이 많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물론 닫힌 적은 별로 없었지만 솔직히 이야기해서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여러분들을 제 마음 깊이 한사람 한사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늘 마음에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한사람 한사람을 깊이 더 많이 사랑하고 돌보는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너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저는 하반기에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사실 제가 진 짊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십년 동안을 목회를 하면서 너무 힘이 들어서 목회를 못한 것은 지난 상반기가 꼭 한번 이었습니다. 20년이 넘는 목회 사역 가운데 처음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 과정을 쭉 그치면서 한편으로는 왜 목회자인 저와 그리고 우리 교역자들이 여러분들을 더 특별히 따뜻하게 사랑하고 돌보고 또 따뜻하게 목회하고 그러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많이 가슴 아팠고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하는 그런 구체적인 마음이 생겨나고 그리고 여러분들을 향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가 목회하고 난 다음에 가장 많이 회복되었던 그런 한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별로 믿을지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수련회 하는 동안 내내 여러분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 따뜻한 돌봄을 받으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여러분들이 언제든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 하면서 그렇게 여러분들이 아름다운 선교사역을 해 나가기를 저는 바랍니다.
그런 모든 것을 인증하면서 동시에 이제 여러분들, 그리고 교역자들 보면서 제 마음에 깊이 아렸던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그 개개인이 하나님을 찾고 추구하는 거룩한 집요함이 너무 약하다는 것입니다. 어려움도 있고 갈등도 있고 그리고 힘든 일도 있지만 그러나 신앙은 우리의 전부지 않습니까? 그런데 너무나 싶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리고 분투하고자 하는 노력이 너무나 미약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그것을 지켜야 되겠다라고 하는 진지한 결단과 자기를 복종 시키는 노력들이 부족하고 그래서 신앙적으로 미끄러지면 이렇게 하나님을 계속 섬기면서 살아가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 원망하고 혹은 이렇게 내가 일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내 신앙이 미끄러지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그런 것들이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더군다나 말씀의 정리가 잘 된 사람들이 명철하게 자기의 영혼의 상태를 이해하고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오늘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반문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내 대적들의 압제를 위하여서 슬프게 다닙니까? 이 이야기는 무슨 뜻입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슬프게 침체 가운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요번에도 어느 지체가 와서 계속해서 자기가 곤고할 수밖에 없는 것을 설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막 웃으면서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너를 부러워하는 이유 다섯 가지를 말해볼까?” 그랬더니 부흥회 10분도 안 되서 자기 말을 번복합니다. “ 그래요. 목사님! 사실은 제가 받은 은혜가 너무 많고 진짜 어떻게 생각하면 걱정거리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이 아니라 너무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은혜 생활을 잘할 때 우리마음 속에는 항상 감사의 꽃다발이 있습니다. 이 모든 감사.
그런데 침체 속에 들어가 있을 때는 마귀는 우리의 눈을 자꾸 어둡게 합니다. 그래서 우울하고 부정적인 일을 자꾸 생각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들을 다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예외가 있습니다. 이런 것도 어렵고, 저런 것도 어렵고 많은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 시인이 그렇게 대적들의 압제를 인하여 슬프게 다니다가 끄덕 고개를 들어 보니까 자기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운명일 수 없다. 내가 왜 그렇게 다녀야 합니까? 그러면서 “내 영혼아!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답입니다. 그것이 정답입니다. 우리의 이 인생길에서 이어가는 이 신앙의 길은 이 세상하고는 코드가 안 맞는 것입니다. 맞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 불을 피우는 것과 같고 추운 겨울날에 따뜻한 체온을 보존하는 것처럼 이 세상과 우리의 신앙이 이 코드가 안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 앞에 근심도 있고 고난도 있고 그리고 어두움 속에서 심할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머리가 하얗게 늙어서 마지막에 주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계속 그렇습니다. 계속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신앙의 그런 상항과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바라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이 고정된 삶 하나님을 바라는 삶 그 때마다 우리가 예전에 어떻게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고 그리고 죄 가운데 방황 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큰 은혜가 됩니다.
그래서 (****모름) 언젠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그런 고백을 하나님 앞에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지금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여기에 서 있는, 주님이 맡겨 주신 자리에서 서있는 고통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어두움 속에서 흐느끼던 그 영혼의 죄로 말미암는 고통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각하고 나면 먼저 우리가 주님의 길에 서서 겪는 어려움들이 갑자기 가볍게 느껴집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시종 일관 하나님의 바라는 그런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아무리 주위에서 여러분들을 따뜻하게 해주고 그리고 여러분들을 배려해 주고 여러분들을 칭찬하고 그래도 그것이 여러분 영혼을 (모름)세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동기는 부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영혼의 강건함은 언제나 하나님을 앙망하는데서 옵니다.
그러니까 뭐라고 성경이 말합니까? 장정도 피곤하고, 젊은이도 피곤하지만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들은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하늘을 오르는 것처럼 새 힘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 하나님을 우르르 보는 그런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시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야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기도 생활을 안 하는 것을 보면 너무 슬픕니다. 그러고 마지막에 뭐가 남을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영혼이 가장 위험합니다. 성경적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가롯 유다의 영혼이 얼마나 위험했습니까? 다윗의 영혼이 얼마나 위험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영혼이 가장 위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는 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한 삶을 살아도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살기가 매우 쉬운 사람들이 바로 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아는 자매가 있었는데 청년부 사역하면서 제가 돌보아 왔던 자매입니다. 직장에 가면 얼마나 핍박을 하는지 그 자매도 30대 1을 뚫고 들어간 공부는 많이 안 했어도 아주 똑똑한 자매입니다. 들어갔는데 회사는 좋은데 얼마나 언니들이 왕따를 시키고 구박을 하는지 이 계기가 뭐냐 하면 주일날 자신들하고 어울려서 등산도 가고 술도 마시러 안 간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외톨이가 되어가지고 그렇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해야 되는데 너무 새벽에 나오라 그러고 밤 열한시에 들려 보내 주니까 자매가 직장에 가서 점심시간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기도를 합니다. 자기 구역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언제나 화장실에 들어가서 그 변기뚜껑을 덮고 거기 엎드려서 기도하면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왜 거기서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투쟁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그런 것을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두 믿는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에 교회에서 섬기면서 예배를 빠집니까? 성도의 기본적인 의무를 게을리 합니까? 그러면서 오히려 그렇게 때문에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멀러진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하지 않은 것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면 마지막에 뭐가 나올까? 아마 자신을 고용한 교회에 대한 원망 그리고 상처 난 마음 망가진 영혼이 재고품처럼 남을 것입니다. 그렇게 섬기면 뭐합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것이 뭔가 하면 기도입니다. 은혜의 수단 가운데 그 어떤 것들보다도 기도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의 가장 훌륭한 표현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부복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그 자세 자체가 항복하는 자세입니다. 엎드려서.
어두음의 밝을 빛을 비춰 주시고
하나님을 바라라는 그런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침이면 새벽기도 끝나면 마당에서 성경을 요렇게 보면 출근시간에 임박해서 달려오면서 옵니다. ‘하. 퇴근시간 일에 몰려가지고 밤 열시 열한시에도 못 들어가는데 이것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 영혼을 관리해 나갈까? 나라도 여러분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 주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 생활해야 됩니다. 그리고 항상 이야기하는 건데 일이.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그 일이 가장 큰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영적인 관심사와 육적인 관심사가 따로 돌고 자기가 맡은 주의 일이 육적인 관심사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목회 자료실에서 원고를 만지는 사람들은 그 일이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이 되고 관리실에서 교회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그 관리가 가장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커다란 계약이 있거나 공사에 난간이 부딪히면 늘 기도하면서 좋은 업자를 만나도록 양심적으로 시공이 되도록 그래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교회에 유익을 주도록 그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교회 제정을 맡은 간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목양적 구조를 유지해 나가는데 필요한 그런 재정들을 채우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행정을 맡은 간사들은 행정을 맡은 간사들대로 자신들이 더 유능해져서 그냥 교회의 유능한 혈관 노릇은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비서는 비서대로 목사님의 일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슬기로움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열린 공간은 열린 공간대로 열린 공간을 이용하는 지체들을 위해서 그리고 지혜로운 경영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영상 팀은 영상 팀대로 기도하면서 그래서 자신의 재주를 의지하면서 그 홍보물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논문도 쓰게 해 주십니다. 정말 막판에 몰려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거의 컨닝 치기를 했는데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논문의 착상을 주시고 전개하시고 기가 막힌 자료를 만나게 해주시고 그러면서 정리해 나갑니다.
그러한 신앙에 의한 창작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고 또 문서선교부는 문서선교부대로 보다 더 테잎이 계속 이중녹음이 나오고 그러면 그것도 또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시오. 어떨 때는 기계 붙들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책을 쓰면서 그런 영적 전투를 많이 경험합니다. 기가 막히게 써 내려가고 지금 원고 마감시간이 다가오는데 컴퓨터가 작동을 안 하는 것입니다. 컴퓨터 붙들고 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거나 혹은 그래도 안 나오면 하나님이 더 좋은 원고를 주시기 위해서 날라 가게 하셨구나 하고 믿음으로 매달리면 더 좋은 책이 나옵니다.
그렇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위해서 온 교회에서 자신이 가장 간절히 많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서 영광의 관심사와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섬김이 일치 되는 그런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성은 이 세상에서 삶과 동강나 그런 고립된 영성이 아니라 그렇게 우리의 삶 깊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 깊이 베여 들어간 섬김입니다.
(예화) 제가 어렸을 때 그 변두리에 조그만 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그런 교회들이 몇 있습니다. 강단을 걸레로 청소하는 일을 아예 연초에 임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에게. 그런 일을 하던 어린 학생하나였는데, 뭐 작은 교회니까 그런 수 있겠죠. 임명을 받았는데 그랬답니다. 아침에 주일날 일찍 나와서 그 시절에 무슨 더운물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찬물로 걸레를 화장실에서 빨아서 추운 겨울날 가지고 와서 강단을 닦기 전에 엎드려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 제가 이 강단을 닦으면서 제 마음도 닦이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저도 한 일년 반 동안 교회에 가서 고등부 전도사 할 때 토요일마다 철야를 하면서 한 이년 했습니다. 그러면서 청소를 제가 직접 한 이백여명이 앉을 주 있는 공간을 제가 직접 청소를 했습니다. 그 때 강대를 마지막으로 닦으면서 항상 똑같이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일 제가 여기서 설교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걸레로 잘 닦으면 일주일 동안 먼지로 가득 차 있던 이 강대가 깨끗해지는 것처럼 하나님 내일 말씀을 선포할 때 이 말씀이 걸레가 되어서 영혼에 붙은 더러운 때들을 깨끗이 씻어 내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니까 청소를 하면서 저는 그렇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소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그렇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일이 우리를 은혜 받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하고 선교를 하면서도 마음이 더러워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구의 더러운 한 모퉁이를 정화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청결한 창조의 원리를 이해하는 행복감 속에 사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요셉 아닌가요? 저는 하나 묻고 싶습니다. 국무총리가 되어서 나라 일을 돌보는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이 클까요? 아니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끌려가서 그 집에 노예 생활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 기쁨이 컷을 까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쓰레기나 치우는 청소부의 지위에 일 만개를 보탠다고 할지라도 국무총리만큼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도 기뻤고 그때도 기뻤습니다.
왜? 중요한 것은 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과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일치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여러분들을 돌보느라고 돌보면서 제 마음에 가장 깊이 와서 꽂힌 그 느낌은 여러분들이 영적생활이 이런 면에 있어서 분리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묻는 것이 그것입니다. 교회관리일 하면서 교회관리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그 일을 위해 기도해 주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교회재정을 맡은 자네가 재정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다면 누가 기도합니까? 다른 사람은 얼마나 교회 돈이 들어오고 모자라는지 뭘 써야 되는지도 모르는데, 아마 여기 앉은 여러분들 중에도 정말 우리교회에 하나님께서 재정 적으로 채워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눈물 흘리면서 해 본 지체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원리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신이 맡겨진 자리에서 자신의 영적 삶과 사역이 불일치하는 기도는 없는가?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 라는 것입니다.
이 시인이 그걸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슬프게 다녀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하나님의 집에 있게 되었으니 우리는 선교사입니다. 여러분들은 선교하고 있는 중입니다. 직장에서 여러분들이 직업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러분들은 선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상당수는 많은 기회들을 포기하고 여기에 들어섰습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입니다. 상급으로 여러분들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선교사입니다. 그리고 교역자들도 성숙한 많은 교인들도 여러분들을 그렇게 생각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왜 슬프게 다녀야 됩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 자녀 되게 하셨고 어두움 가운데서 복음의 빛을 만나게 하셔서 많은 주님의 사랑 가운데 선택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 앞에서 그리고 주님 앞에서 정말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도 직원이 몇 사람 더 들어올 계획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교역자를 선택할 때 기도했던 것보다 더 많이 기도 하면서 그를 주님이 인도해 주님이 인도해 주시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은 너무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주님의 나라에 가보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어두움 속에서 건져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택하기 위해서 제가 이렇게 많이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은 더 어떠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너무 귀합니다. 슬퍼해야 할 이유가 없고 낙심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어두움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주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손을 뻗히면 수많은 진리들이 있고 그리고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목회자가 있고 여러분들을 돌보고 싶어 하는 여러분들의 목자들이 있습니다. 손을 뻗으면 도움을 구할 수가 있고 기도를 부탁하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슬프게 다녀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침체 속에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를 비하 하거나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슬프게 생각하는 이 모든 것들은 결코 어떤 의미에서든지 하나님께로부터 아닙니다. 절대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질그릇 같이 연약한 인생에 꺼져가는 심지의 불꽃과 같이 연약한 상한 갈대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지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오늘도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에 보니까 주의 빛과 진리로 우리를 성산에 인도해 달라는 강청이 나옵니다. 이 빛과 진리는 같은 의미의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빛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통을 가리키는 것이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빛과 진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과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분들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구해도 그것은 주는 만족은 언제나 일시적일 따름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와 위로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꼭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도 교역자들이 와서 수련회를 하고 한해를 평가 했습니다. 잠자리에 다 들면 어려워하는 교역자와 붙들고 이야기를 하면서 두시까지 세시까지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게 너무 우리는 연약합니다. 정말 연약합니다. 그래서 함께 울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 중에 강한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
진흙 같은 이 몸을 정금 같게 하시는 모든 언약에 강해 보여도 너무나 약합니다. 그래서 서로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거는 모두 다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붙들어 주는 것은 주님의 얼굴로부터 비치는 빛과 그리고 진리의 말씀, 수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대적으로 인해서 죽음의 벼랑 끝에 내 몰릴 것 같은 위기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면 그렇게 담대해 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시에 그 고통이 변하여 하나님 앞에 노래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말씀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빛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가서 그 말씀 속에서 위로와 힘을 얻고 그리고 새로운 능력으로 도움을 얻고 이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정말 진실한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이제 새해가 되면 조금 여유 있어 질 테니까 정말 여러분 자신들 영혼을 위해서도 평일 날 모여서 말씀 공부하고 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그러면서 끝임 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빛과 말씀의 진리 앞에서 그렇게 채우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엊그제도 교역자 한사람이 저에게 그런 고백을 합니다. 이번 가을 기도학교 사경회에 얼마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는지 자신은 정말 몇 년 만에 완전히 남아 있던 어려움과 연약함을 떨치고 하나님이 생애 적으로 자기를 만나 주셨다. 그러면 그 마음속에서 교역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목사님을 만나고 처음 강력한 복음의 회심을 경험한 이래로 두 번째로 그렇게 강력하게 하나님이 가슴을 파헤치고 지나가셔서 그래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게 막혀 있던 내가 붙들고 있던 것들 깨끗이 털어 버리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새로운 능력을 받게 하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주님의 일꾼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강한 위로와 힘을 얻고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성산으로 인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성소의 개념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거기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만나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성소에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특별한 임재의 영광이 있는 그곳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은혜의 빛이 인도한다고 하는. 그래서 거기서 자신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성소에서 기도하고 혹은 성소를 향해서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심지어는 아이를 못 낳는 여자도 성소에 올라와서 하나님 앞에 빌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성소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빌고 그렇게 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그 인생의 문제 속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사는 하나님의 백성의 큰 복을 거기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로와 용기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만 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또 일을 안 한다고 해서 은혜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그 일마저도 안 하면 아마 하나님이 세워준 자리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 두 가지가 일치한 삶을 살며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빛에 인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계속 은혜 안에서 자라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향해서 말할 수 없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화) 이번에 멕스 로케이드가 그린 쓴 책으로 어린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봤는데 너무 은혜로웠습니다. 애벌레 한 마리가 이렇게 태어나서 하늘을 보니까 예쁜 나비들이 날라 옵니다. “아이참 나는 저런 날개도 없고” 너무 슬퍼서 애벌레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는 저런 날개도 없고 헐헐 날라 다니지도 못하고 난 이게 뭐예요. 매일 풀잎 사이로 기워 다니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얘야. 너는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나의 창조의 작품이란다. 네가 알지 못하는 큰 계획이 나한테는 있단다.” 그러고 그 다음날 또 보니까는 개미를 만났는데 이 쬐금한 개미가 빵 부스러기를 들고 가는 것입니다. 자기 몸보다 몇 십 배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애벌레는 힘이 없습니다. 팔 다리도 없고, 그러곤 너무 슬펐습니다. “하나님! 전 이제 뭐예요. 개미는 저렇게 힘도 센데 난 그런 것도 없고.” 그러고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또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넌 가장 좋은 작품이다. 너 모르는 큰 계획이 나한테 있지. 그 다음날 또 보니까 예쁜 무당벌레가 기가 막힌 외투를 입고 빨강 바탕에 까만 점이 있고 반드레한 무당벌레가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는데 너무너무 부러운 것입니다. 자기를 이렇게 보니 푸르둥둥하고 꼭 지렁이 같이 생겨서 꿈틀꿈틀 기어 다니는 모습이 너무 비참했습니다. 또 기도 하니 하나님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기도를 몇 차례 했는데 어느 날 그렇게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아랫도리가 무거워지는 것 같더니 껍데기가 빠져 나가며 하늘로 확 날아올라요. 그러더니 자기가 부러워하던 개미, 나비, 그리고 무당벌레 모두 자기를 향해서 박수를 치면서 그렇게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서 정말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경외하면서 그 진리에 붙잡혀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사람들이 차마 꿈꾸지 못하는 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어떤 사람은 아마 십년 후에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위대한 선교에 동참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정말 그렇게 하나님의 빛과 진리의 인도를 받으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서 언제나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