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하반기 당회 수련회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녹취자: 최영순
주님의 교회에서 우리들이 집사로 섬기든지 목사로 섬기든지 장로로 섬기든지 간에 잘한 사람들은 주님께 칭찬을 들을 것이요, 잘 못한 사람들은 주님께 책망을 받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집사 이야기를 하다가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의 담력을 얻는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집사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집사의 직분은 온전히 섬기는 것인데 그 섬기는 것을 잘한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지위라는 것은 무엇이냐면 우리 한사람 한사람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모두 하나님 앞에 귀한 지위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아름다운 지위는 주님이 보실 때에 아름다우신 지위이고 주님이 높여주신 지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해 나가면, 우리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다기 보다는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 우리들이 신실해져가고 주님을 많이 의지해 가면서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니까 아름다운 성화의 지위에 이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더 크게 사용하셔서 귀한 직분을 맡겨주실 겁니다.
이번에 사랑의 교회 임직식에 가서 세상적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분들이 그런 분들이 은혜를 많이 받고 교회의 장로가 되었는데 설교 속에 어느 목사님이 오셔서 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사에 나오는 실화인데 돈이 많은 지주의 집안에 양반이 예수를 믿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그 집안에 마부도 있고 찬모도 있고 식모도 있는데 마부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둘이 열심히 은혜를 많이 받고 교회생활을 잘하는데 결국 같이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젊은 사람들도 장로가 되던 때라 장로투표를 했는데 마부가 되고 양반 나으리는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나으리는 자존심이 상할 만 했으나 깍듯이 집사로서 “장로님, 장로님”하면서 섬겼답니다. 후에 나으리도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부하던 장로는 더 은혜를 받아 신학교를 가서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교회에 공석이 되자 장로가 새로 온 담임목사를 데리고 왔는데 마부더랍니다. 일평생 마부를 담임목사로 깍듯이 섬기면서 하나님 앞에 봉사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 교회 교인은 담임목사보다 그 장로를 훨씬 존경하게 되었답니다.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뀌었으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옛날에 왕실의 왕손 중에 하나가 일찍이 예수를 믿고 지금의 남대문 있는 곳에서 어느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궁중에서 말발굽을 박던 사람이 장로가 되었습니다. 담임목사가 안건을 내면 장로들이 “저희가 뭘 알겠습니까? 목사님이 잘 처리하시지요.” 하면 좋을텐데 가끔 마부가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목사님 그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네 이놈, 네 놈이 무엇을 안다고 당회에서 떠드느뇨?” 너무 대조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답게 헌신하는 사람들이 한국교회 역사에 참 많습니다. 요즘 들어 장로, 목사 욕하지 옛날에는 성자와 같이 목회하고 섬기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잘한 사람들은 아름다운 지위를 주십니다. 김남근 장로님 이제 오십대 넘으셨는데 벌써 직장 접고 새출발 하실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애에 마지막 남은 좋은 일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장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데서 자꾸 너무 큰 희망을 갖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 우리들이 세월의 흐름에 잘 순응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줄도 배워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장로의 직분을 잘하면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아름다운 지위를 주십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후에 저도 언젠가는 물러나고 죽지 않겠습니까? 그 때 ‘김 목사님 계실 때는 목양을 받는 것 같았는데’, ‘그 때는 정말 말씀이 살아 있었는데’, ‘목사님이 우리에게 목회자로서 본을 보여주셨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야 아름다운 지위를 얻은 생애이듯이 장로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지나가는 것인데 ‘그 장로님이 계셨더라면 난관을 잘 헤쳐갈 수 있었을 텐데, 참 사심 없이 자기의 것을 아끼지 않고 섬겼던 분들이었어.’ 하면 아름다운 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소망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는 ‘믿음의 큰 담력을 얻는다.’ 이것은 주님과의 관계가 아주 돈독해서 나의 일생을 주님께 던진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때문에 어떠한 모험과 위기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육체도 약해지고 정말 약해질 때가 왔을 때 주님을 충분히 의지할 수 있고, 내 인생에 의지할 분은 오직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주님을 의지하고 살 수 있으면 담력 있는 인생입니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너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꿈이야 많이 꾸고 할 일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니까 하는 일이지 10년 전에 자기중심적으로 꿈을 꾸고 일을 벌이던 그 마음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앞질러가고 주님께 밀어달라고 했는데 지금은 주님이 보여주시면 그것을 따라가면서 주님께 힘을 달라고 하는 입장입니다.
그 때 우리의 마지막 위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사람보기에는 내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주께서 나의 중심을 아신다. 주님은 나와 동행하신다. 이것이 노년에 가장 큰 위로입니다. 이게 믿음의 큰 담력입니다. 거기에서 모험도 할 수 있고, 도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이런 얘기 예배시간에 하면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못하고 여기서 하는데 부산 장 목사네 교회 집회에 갔습니다. 수영로 교회가 경상도 말로 억수로 커져서 3만 명이 모인답니다. 3만 명이 순수하게 전도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자그만 교회가 많이 축이 났답니다. 거기까지는 내가 목회를 못하고 설교 내용도 별로 없으니까 큰 교회 가서 신앙생활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교인이 이만 오천에서 3만 명 모이는 교회에 타 교회에서 오는 장로가 이백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삼백 명 가까운 장로들이 거기에 출석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 때 내 마음에 확 밀려온 게 ‘저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교회에 장로로 세워주셨을 때는 그 교회에서 온전히 헌신해서, 물론 신앙에 있어서 진리는 가장 중요합니다. 설교의 은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살아있는 예배는 무엇보다도 더 소중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교회를 넘어서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많은 장로님이 와 있지만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합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안쓰럽고 해서 ‘어떡하든지 교회에서 저 사람들 따뜻하게 잘 보듬어서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종신하게 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여기서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고 자기 교회에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부족해도 그 목사님 사랑하고 섬기고 그러다가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한 가지 생각은 ‘어떡하던지 교회를 아프게 하고 떠나온 사람들인데 정말 다시 한 번 은혜 회복되어서 돌아갈 수 없다면 이 교회에서 속죄하면서 주님을 섬겨야 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데 한번 교회를 떠돌아다닌 사람들에게는 그 유전자가 있어서 두 번, 세 번, 교회에 상처를 내면서 자꾸 떠돌아다니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큰 교회에서 장로가 삼백 명 가까이 모인다는데 그 교회에서 대우나 해주겠습니까? 자기가 창립 받은 교회를 팽개치고 거기에 중형교회 하나 할 정도로 장로들이 모이는데, 마지막으로 장로로서 너무 부끄러운 인생입니다. 또 아무것도 상관없이 소 잡아먹은 귀신모양 은혜도 없이 교회와의 관계도 깨진 채 이를 악물고 한 교회에 버티는 것도 그것도 나는 잘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의 구김이 없이 이 교회가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마지막 교회라고 생각하고 은퇴한 뒤에는 괜찮습니다. 목사가 은퇴하면 그 교회에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듯이 은퇴한 뒤에는 상관없습니다. 자기의 사명을 다 완수한 것입니다.
그러나 있는 동안에는 마음을 다해서 그렇게 섬기다가 종신하십시오. 나는 여러분과 함께 일하면서 힘들 때도 있고, 목회자로서 이렇게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느껴질 때도 있었고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한 번도 여러분하고 헤어지는 상상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나 장로는 너무 노년이 불행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신앙생활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이석희 장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집사나 목사, 장로이기 전에 한 사람의 신자로서 좋은 신앙생활 하시면 교인들이 그 중심을 압니다. 좋은 신앙생활 하시면서 날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시면서 슬기롭게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야지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게 해주신 의무를 다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보면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다’ 그랬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신자의 믿음, 삶 ,이런 것을 건물이라고 한다면 교회는 바로 진리와 진실의 기둥이 되고 터가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진리는 세상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에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나 목사는 든든합니다. 교회에 오래 눌러 앉아 든든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흡족히 마시고 튼튼해지는 가운데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셔야 됩니다. 그것만 잘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다 잘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으셔서 든든해지셔야 됩니다.
동물도 나이를 먹고 식물도 나이를 먹는데 동물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추해집니다. 정말 힘이 없어지고 약해집니다. 백수의 왕이라는 호랑이도 15년 정도 삽니다. 결국은 죽는데 마지막에는 이빨이 다 삭아서 고기를 소화를 못시킵니다. 그 때 포수들이 총살시킵니다. 그런데 우리 목사나 장로의 마지막 노년이 동물처럼 나이가 들면 안 되고 우리의 육체는 그래도 심성과 모든 것들이 나무와 같아서 쭉 뻗어나가면서 커다란 둥지가 되는 것처럼 우리들이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몇 주 전에 제가 의정부에 있는 교회에 부흥회를 갔는데 신학교 동창입니다. 스물 몇 살 부터 같이 알고 지낸 목사인데 검찰에 있던 형제가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었는데 아까 장로님 말씀하신 예배 문제를 가지고 6주 설교를 했는데 그것을 목사가 듣고 나에게 반문을 했습니다. “도대체 요즘 같은 시대에 그 설교를 듣고 남아있는 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 교회 참 희한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얘기를 들을 때에 마음속으로 그랬습니다. “장로님을 포함해서 은혜를 받은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교훈과 책망을 견디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서른아홉에 교회를 개척해서 이제 마지막 저의 교회인데 인생 살고 남은 것은 열린교회 하나이고 장로님들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교회가 마지막 우리가 섬겼는데 은퇴할 때 병들고 망가진 교회라면 우리의 인생도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주님 앞에 온 힘을 다해 제가 성도의 본을 보이려고 애를 쓰고 온 힘을 다해 달려갈 길을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도록 충성스럽게 마지막까지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서 믿음생활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