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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실장 수련회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엡 4:11)
여기에 보면 목회자들을 세우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는 그 당시에만 있었던 사람들이고, 선지자도 이 당시에만 있었던 사람들인데, 복음 전하는 전도자 혹은 선교사 혹은 목사 교사, 여기서 교사는 오늘날 교회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선생, 교회의 박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문적으로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교회를 세상을 향해 변증하기도 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이런 직분들을 세우신 이유가 뭐냐하면 사람은 종류는 많지만 결국은 세가지의 일을 하게하는 건데 ‘성도를 온전케하며’ 여기에서 성도가 온전하다는 거는 뭐냐하면 ‘완전하다’ 그런 뜻인데 히랍어로 보면 ‘다 자랐다’라는 뜻입니다. 어린 신앙을 가진 신자들을 어른처럼 잘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성도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봉사라고 하는 것은 원래 히랍어 원어로는 ‘디야코나야’인데 식탁에서 노예들이 시중드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하게해서 결국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몸을 세운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많이 전도해서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이고, 그 사람들이 똑바로 예수를 믿어서 교회 전체가 주님 마음 닮은 교회가 되게 하는 것 그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그 다음에 핏줄처럼 온 몸에 연결되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성령의 은혜가 골고루 흘러들어가서 그렇게 주님을 잘 믿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장만 할딱 할딱 뛰고 있는 사람보고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다고 말할수 없듯이, 목회자나 몇몇 은혜받은 성도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들은 거의 식물인간 상태같은 교회를 제대로 된 교회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목사나 이런 말씀의 종들을 통해서 은혜를 많이 입게 된 것은 그렇게 해서 세워졌으면 봉사의 일을 하게 하려 함이라 이런 얘기인 것입니다. 예수 잘 믿고 잘 섬기게 하시기 위함이라 이런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받은 성도의 가장 중요한 바는 하나님 앞에 제대로 주님의 사람이 되고, 제대로 예수믿고 제대로 봉사하는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교회일꾼 쓸 때 일순위로 보는게 그 사람이 은혜를 받는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봉사할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가 그렇게 봉사를 하게 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들이 결국 그렇게 봉사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까? 그 봉사라는 것은 결국은 한편으로는 은혜를 받은 결과이고, 한편으로는 그 봉사의 일을 잘 함으로써 말씀사역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게 하는 이 일이 바로 하나님 섬기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문서선교부 직원은 설교하거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소중한 것을 잘 보존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사역실에 있어서 그렇게 인터넷을 하고 교회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하는 것도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홍보실에 인재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말씀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방송 선교회에서 하는 일이 4800만원 드는데 그냥 반 이상 접어버릴까 했습니다. 이번에는 장로님들이 반대하셨었습니다. 저만 있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 기독교 방송국에서 하는 것 150만원씩 나가는데 몇 년 접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그거를 듣고 은혜를 받고 힘을 얻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거를 줄이지 그거를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그것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말씀 사역을 계속 불리는 것입니다.
제가 늘 이야기 하지만 내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고 편안하게 하면 하늘나라에서 상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좀 본래의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저께도 눈물이 나도록 힘들었던게 뭐냐하면 제 나이가 이제 50대 중반입니다. 이제 주석을 쓰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르는데 그 주석이라는게 쓰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니깐 지금부터 3년 뒤서부터 주석을 쓰기 시작한다고 하고 75세까지 쓴다고 해봐야, 그 안에 죽을지도 모르지만 몇권이나 쓰고 죽겠습니까? 그것 무슨 얘기냐하면, 여러분들이 일을 잘 하면 그게 제가 쓴것도 여러분 덕입니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마음이 갈려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이게 두 날개입니다. 목회사역하고 이건데, 그거를 이해못하는 우리 집사람이, 그거 실장도 불렀는데 내버려 두라고 그러는데 그럴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말씀이 흘러 들어가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멍청한 바보가 방앗간에 가서 떡하는데 위에다 쌀을 빻아서 잔뜩 집어넣고 그러면 그게 가래떡이 되서 나옵니다. 그런데 ‘나야 쌀을 찧어서 멀어 넣으면 되지, 구멍이 뚫렸든 말든 내가 뭔 상관이 있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그게 빠져 나와서 떡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 마치 우리의 몸이 ‘좋은거 먹으면 되는거 아냐. 변비가 되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 있어’ 라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떨 때는 제가 울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나름대로 하는 일이 많이 있겠지만 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저는 은퇴하는 날까지 이거를 포기를 안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른 교회에 가서 한두달씩 살다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가서 아마 머리가 터져서 직원생활을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 하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씀이 이렇게 흘러 가는 것입니다. 교역자들도 일하면서 여러분들이 잘 하기 때문에 확확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거는 미디어 사역부에 부탁하면 되는 구나. 이거는 관리실에 부탁하면 되는구나. 이거는 행정실에서 해결해 줍니다. 이거는 열린공간에 협조를 얻으면 됩니다. 이거는 출판실에서 해낼수 있습니다.’ 그거를 믿으니까 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 두 개를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잘 해나가면 매주 모일 필요도 없습니다. 일주일 혹은 두주, 길면 한달에 한번정도 모여서 안되는게 뭐냐고 얘기하고 풀어주면 됩니다. 올해 저랑 같이 있었던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힘들게 행정조직을 이끌어 가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가장 잘하는 부서가 뭐냐하면 제가 돌아볼 필요없이 일하는 부서입니다. 그렇게 하게끔 해줘야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씀 사역이 원활하게 흘러가지 않는 것입니다. 해내야한다 이것입니다. 교육파트에서 언제까지 뭐가 필요하다고 하면 머리가 터져도 해내야합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시설이 불편하다. 이거는 핑계되면 안됩니다. 해내야 합니다. 순교도 하고, 아골골짝 빈들에도 간다고 했지 않습니까? 교회의 관리 맡겨둔 사람을 하나님이 북한 선교가라고 절대 안그러십니다. 출판실 맡겨둔 사람보고 소말리아에 가서 순교하라고 안그러십니다. 거기서 그 정신으로 살아야합니다. 안되는게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가 저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역자들도 서너번 저한테 그 얘기하면 저한테 찍힙니다. 일을 안줍니다. ‘그래, 너가 힘들어 하는구나.’ 그러고 안줍니다. 그러니까 아주 편하게 해준다 이겁니다. 그러다가 이제 정신을 차립니다. ‘아, 이거 목회 사역이 이런게 아니구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전투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최대의 방송 BBC에서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 여왕 페하가 나와서 연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선이 끊어진 것입니다. 곧 시작이 될텐데 수리를 하자고 마음을 먹으면 결국은 중개방송을 못한다고 자막을 내보내야 합니다. 윗 사람한테 보고할 시간도 없습니다. 직원 하나가 이쪽줄 저쪽줄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1940년대 실화입니다. 전기를 아는지 모르겠는데, 700볼트가 흘러도 이렇게 들어와서 나가면 잘 안죽습니다. 문제는 들어왔는데 나갈때가 없을 때 감전이 돼서 죽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기하냐면 감전이 되면 구두에 구멍이 먼저 납니다. 구두에 구멍이 나면서 땅으로 어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고 바닥이 전연체든지 해서 문제가 생겨서 전기가 빠져나가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허공에 있는 사람이 전기줄을 잘못 만지면 빠져나갈수가 없어서 감전되서 죽는 것입니다. 바닥에 구멍을 내고 전기가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목회든지 교회 봉사든지 그냥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냥 해나가는 것은 그냥 직장생활입니다. 그거는 상이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네가 직장 다녔지, 언제 날 섬겼냐?’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 사역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그림자입니다. 자꾸 문제가 생기고 담임목사한테서 혼나고 그리고 계속 일이 틀어지고 잘되고 있던 직원들이 계속 사고치고 그러면 하나님이 그거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자꾸 문제가 생기고 담임목사한테서 혼나고 그리고 계속 일이 틀어지고 잘되고 있던 직원들이 계속 사고치고 그럴 때 여러분들이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 사랑하던 때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는게 아닌 것입니다. 김준성 목사가 교역자 중에 저를 아주 힘들게 한 몇 사람 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한 11년 같이 있었는데 처음 몇 년동안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본인이 안수받겠다고 그래서 안수는 다른교회 이름으로 받게하고, 여기 있고 싶다고 그랬는데 가라고 그랬습니다. 너네 교단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년 반 있다가 전도국 문제가 나오면서 의논하던 끝에 ‘김준성 목사를 다시 부릅시다.‘ 그리고 이제 1년만, 2년 만에 다시 불렀는데 사람이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교회에 가서 섬겨보고 나서 아주 질린 것입니다. 사모하고 둘다 다 많이 변했습니다. 일을 잘하게 변했다는게 아니라 일은 옛날처럼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음 자세가 변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발전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자세로 이 일을 하는가에 의해서 우리를 발전시키기도 하고 찌그러 뜨리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저렇게 못할까 그랬더니 나중에 하는 이야기가 중고등부를 맡겨 주었는데 ’이거를 내가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 그렇게 생각하는게 2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눈에 딱 보이는 것입니다. 반쯤은 마음이 떠나고 반은 마음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한번도 저는 교역자나 직원이 제가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의외로 사표를 던진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미 마음이 떠난 것이 충분히 보여서 예상을 하고 있으면 그사람이 사표를 내는 것입니다. 저같이 경험이 없는 사람도 여러분들이 마음이 교회에 있는지 없는지를 알수 있는데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 잘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마음이 자기 일을 떠나 있는 가운데 일을 해갈 때 그게 직장생활을 하는것이지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을 할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저는 간절히 1년에 한번 정도 여러분이 수련회에 오고, 나머지는 여러분 속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만족스럽게 이 사역이 교역자들처럼 그렇게 움직일때까지는 절대로 저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제가 15년동안 살아온 방식을 보면 잘 알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부탁하는 것은 저보고 여러분들에게 적응하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 안한다 이말입니다. 여러분들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한이 있어도 전 그렇게 안한다는 것입니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접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 전체적인 것을 어떻게 움직여야되는지 알고 있으니까 담임 목사님의 뜻에 따르게 해달라는 것이 여러분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님을 만족하게 해달라는 것이 여러분들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까지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제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면 나쁜 마음이지만 이게 교회를 위한 마음이기 때문에 저는 물러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는 이야기가 우리 둘의 인간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와의 관계이고, 교회와의 관계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사랑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려가면서까지 교회를 봉사할 생각은 없습니다. 또 여러분 사랑하고 성도 사랑하지만 교회와의 관계를 허물어뜨리면서까지 여러분 개인을 위해서 봉사할 생각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점에 있어서는 저는 단호합니다. 그리고 그거는 지도자로써 기본적인 자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가장 힘든게 무엇이냐면 여러분들이 저에게 ’당신이 나에게 적응하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낼 때 그때 저는 너무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의지가 있는거냐 없는거냐 이것입니다.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이것입니다. ’자 여기를 봐라. 얼마나 깨끗하고 좋으냐, 우리 게스트 하우스는 다 낡아서 벌레들이 기어다닌다. 그렇게 깨끗하게 고쳐라.‘ 그렇게 이야기할 때 그게 힘들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고자의 보고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목사님. 안됩니다.‘ ’왜 안되냐?‘ ’못하겠습니다.‘ ’왜 안되냐?‘ ’예산이 없습니다.‘ 그렇게 보고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 사람이 하고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예산이 없는 것이 다행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할수 있습니다. 목사님. 사람 두 사람 쓰면 일주일 안에 맞출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산 편성표를 보니까 이거를 수리 할수 있는 예산이 안잡혀 있습니다. 예비비라도 쓸수 있게 장로님들에게 허락을 맡아 주십시오. 그러면 일주일 안에 끝내겠습니다.‘ 못하겠다는 이야기는 둘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전자의 사람은 안되는 환경에 안주하려는 것이고, 후자의 사람은 자기는 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입니다. ’자! 금년에 1월부터 12월까지 한 설교를 가지고 공과공부를 해야겠는데 3주후에 책이 나오도록 해봐라.‘ ’안됩니다. 못합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냐면 지금 있는 것 가지고 해보려고 하니까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의지가 있는 사람은 담임 목사님이 이야기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이루어져야 한다고 우선 움질일수 없는 전제를 해놓고 나머지를 짜 맞추는 것입니다. ’2주동안 특근하고 월요일 휴가 반납하고 세사람을 투입해서 교역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해내면 2주일동안 작업해서 일주일동안 제작할수 있습니다.‘ 그거는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또 이야기 하는 것이 뭐냐하면 바빠서라고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도 안바쁜 사람이 없고 그러면 무슨 지시사항을 이야기하는데 너무 바빠서라고 하는 뜻은 무슨 뜻이냐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중요한 일이고 당신이 지시한 일은 하찮은 일이라는 뜻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즉시 ’못챙겼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다음주부터라도 챙기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항상 해결을 해야겠다라는 의지를 가지고 해나가야된다는 것입니다. 이 통로가 잘 될 때 이게 말하자면 물길입니다. 말씀사역은 산 위에 저수지에 있는 물을 계속 채우는 것이고, 행정사역은 그 수문을 열 때 그 물이 쓸모없이 계곡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논과 밭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물길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게을러서 물길을 안만듭니다. 수문이 확 열릴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강북에 가면 어느 교회가 있는데 담임목사님이 널리 알려진 부흥사입니다. 그분이 한창 전성기때 인기가 참 좋았습니다. 교인이 3천명까지 모였습니다. 금요일날 집회에 갔었는데 3년만에 천 오백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천명 남짓 나올것입니다.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지만 거기에 있는 부목사 이야기를 들으니까 버그가 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천명 모이는 교회가 갑자기 담임목사님 인기가 높아지면서 집회가는 교회에서 사람들이 교회를 옮기면서 사람들이 몰려드니까 순식간에 삼천명이 되었는데 그거를 콘트롤해 나갈수 있는 능력이 교회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와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하는 가를 생각하면서 전형적인 자세를 가지고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렇게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화요일날 교역자가 모여서 회의를 하며 주춤 주춤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올인을 안하는 것입니다. 선명하게 보입니다. 결국 언젠가는 미끄러집니다. 올인하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게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새롭게 하고 지나간 일들은 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새로운 마음으로 할것인가 말것인가 그렇게 멈칫거려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제가 항상하는 이야기가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이 여러분들의 기도제목의 첫 번째가 안되면 여러분 신앙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재무를 맡았으면 ’교인들이 헌금을 되게 안하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고 ’내 기도가 부족해서 헌금이 이렇게 안들어오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그게 요셉의 정신입니다. 노예에 불과했지 않습니까? 수십명의 노예가 있었을텐데 하나님이 요셉을 보디발의 집의 총무로 삼으셔서 그래서 그 집을 관장하게 하신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져야되는 것입니다. 방송사고가 자꾸나고 문제가 자꾸 생겨서 사람들에게 지적을 받으면 ’기합이 빠졌구나‘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기도로 마음이 하나되도록 모으지 않고 그냥 기술을 가지고 일을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되는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들이 해야되는 것입니다.